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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 밤낮으로 사흘: 예수님께서는 무슨 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조회수 : 1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6년 11월 6일 13시 13분 48초
  • 밤낮으로 사흘: 예수님께서는 무슨 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많은 교회가 부활절 전 금요일을 ‘성금요일’로 지키며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과 맞추어 보면 이 전통에는 생각해 볼 문제가 하나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땅의 심장부에 계실 기간을 ‘밤낮으로 사흘’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요나의 표적


    마태복음 12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내가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그렇게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마 12:39-40)


    요나서도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더라.”(욘 1:17)라고 기록한다. 요나는 그 안에서 지옥의 배 속에서 부르짖었다고 고백하고(욘 2:2), 주께서 자기 생명을 썩음에서 끌어 올리셨다고 말한다(욘 2:6). 요나의 표적은 곧 죽음과 부활의 표적이다.


    여기서 ‘땅의 심장부’는 무덤이 아니라 지옥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몸은 무덤에 계셨지만 그분의 혼은 땅의 심장부, 곧 지옥에 내려가셨다. 그래서 시편은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시 16:10)라고 예언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밤낮으로 사흘을 무덤에 장사되신 때부터가 아니라 숨을 거두신 때부터 센다.


    유대인들의 날수 표현


    날수를 따지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유대인들은 하루의 일부만 지나도 그날을 하루로 세었고, ‘사흘 동안’, ‘사흘 뒤’, ‘셋째 날’, ‘사흘 안에’ 같은 표현을 같은 기간을 가리키는 말로 함께 썼다. 우리처럼 시간을 꼭 맞추어 세는 방식이 아니었다.


    구약에 그런 예가 여럿 있다. 요셉은 형들을 “사흘 동안 감금하였”는데(창 42:17), 바로 다음 절은 “셋째 날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창 42:18)라고 이어진다. 르호보암 왕은 백성에게 “사흘 동안 떠났다가 다시 내게 오라”(왕상 12:5)라고 했는데, 같은 사건을 역대기는 “사흘 뒤에 다시 내게 오라”(대하 10:5)라고 기록하고, 백성은 왕이 이른 대로 “셋째 날” 왔다(왕상 12:12; 대하 10:12). 다윗이 만난 이집트 청년은 “밤낮으로 사흘 동안 빵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다고 하면서(삼상 30:12), 주인이 자기를 버린 것은 “사흘 전에”였다고 말한다(삼상 30:13). 에스더도 유대인들에게 “사흘 동안 밤낮으로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라고 부탁한 뒤 “셋째 날에” 왕에게 들어갔다(에 4:16-5:1).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마 16:21)이라고도 하시고,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야 할 것”(막 8:31)이라고도 하셨다. 자신의 몸인 성전을 두고는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요 2:19)라고 하셨다. 수제사장들도 빌라도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리라”(마 27:63)라고 하셨다고 말하면서, 무덤을 “셋째 날까지”(마 27:64) 지키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이것은 성경이 일관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이 유대인들의 말하는 방식 그대로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셋째 날’이나 ‘사흘 뒤’라는 표현만으로 예수님께서 무슨 요일에 돌아가셨는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 금요일설도 바로 이 유대인의 표현 방식을 근거로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새벽까지를 사흘로 본다.


    세 가지 주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요일에 대해서는 수요일설, 목요일설, 금요일설이 있다. 부활하신 날은 분명하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 일찍 일어나셨다고 기록한다(마 28:1; 막 16:9; 요 20:1).


    금요일설은 유대인의 표현 방식으로 보면 ‘셋째 날’과 맞는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셨다면 일요일 새벽까지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 두 밤만 있다.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으로 굳이 ‘밤낮으로’라고 밤까지 말씀하신 것을 문자 그대로 받으면 세 번째 밤이 없다.


    그래서 필자도 예전 마태복음 강해에서는 수요일설을 지지했다. ‘밤낮으로 사흘’을 정확히 72시간으로 채우려면 수요일 오후에 돌아가셔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관련 구절들을 통합적으로 자세히 읽으며 본문을 다시 살펴보니 수요일설은 성경 기록과 맞지 않았다. 수요일 오후에 돌아가셨다면 수요일 밤부터 토요일 밤까지 네 밤이 지난다. 정확히 72시간을 맞추려면 토요일 오후에 부활하셨어야 하는데, 성경은 분명히 주의 첫날 일찍 부활하셨다고 말한다.


    목요일설은 세 밤을 문자 그대로 채우면서 일요일 새벽 부활과도 맞는다. ‘셋째 날’과 ‘사흘 뒤’에 대해서는 사건 다음 날부터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을 세는 것으로 이해한다. 필자는 이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하여 지금 예수님께서 목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견해를 택한다.


    유월절과 예비일


    유월절은 첫째 달 니산월 14일이다. 유대인의 하루는 해 질 때, 곧 저녁 여섯 시쯤에 시작되었다.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는 14일 낮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았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제사장들이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희생물을 잡았다고 기록한다. 또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긴 날 아침에도 유월절 어린양을 먹기 위해 재판정에 들어가지 않았다(요 18:28). 그들에게는 유월절 식사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성경과 당시 기록이 보여 주는 사실이다.


    그런데 공관복음은 예수님께서 그 전에 이미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셨다고 기록한다. 이 두 기록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는 오래된 질문이다. 율법은 “첫째 달 십사일 저녁은 주의 유월절이요”(레 23:5)라고 하는데, 이 ‘14일 저녁’이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인지 14일이 끝나는 저녁인지가 바로 쟁점이다. 필자는 예수님께서 14일이 시작되는 수요일 저녁에 유월절 식사를 하셨고,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어린양을 잡은 뒤 15일이 시작되는 목요일 저녁에 먹으려 했다고 이해한다. 누가가 “반드시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야 하는 때 곧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이 오매”(눅 22:7)라고 기록한 것도 그 날이 시작되는 해 질 무렵으로 본다. 이것은 확정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필자가 두 기록을 조화시키는 방식이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신 날을 ‘유월절의 예비일’이라고 부른다(요 19:14). 성경에서 ‘유월절’은 좁게는 14일 하루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무교절까지 합친 명절 전체를 가리킨다. 누가도 이 명절을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라고 부른다(눅 22:1). 그러므로 필자는 유월절의 예비일을 15일의 유월절 식사와 무교절을 준비하는 날, 곧 어린양을 잡는 14일로 이해한다.


    밤낮으로 사흘의 계산


    이것을 바탕으로 그 주간을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14일이 시작되는 수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그 밤에 붙잡히셨다. 같은 14일 목요일 오전 아홉 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막 15:25), 성전에서 유월절 어린양들을 잡던 오후 세 시 무렵 숨을 거두셨으며(마 27:46, 50), 해가 질 때 무덤에 장사되셨다.



    26장_밤낮으로 사흘.png


    밤낮으로 사흘은 숨을 거두신 때부터 이렇게 채워진다. 목요일 오후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의 일부가 첫째 낮이고, 목요일 밤이 첫째 밤이다. 금요일 낮과 밤이 둘째 낮과 둘째 밤이며, 토요일 낮이 셋째 낮이다. 그리고 토요일 해가 진 뒤부터 일요일 새벽까지가 셋째 밤이다. 일요일 새벽에 이르면 세 낮과 세 밤이 모두 채워진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일요일에 “오늘은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 뒤 셋째 날이요”(눅 24:21)라고 한 말도 목요일에 일어난 일 뒤로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을 센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남는 질문들


    목요일 십자가를 말하면 몇 가지 질문이 따라온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유월절 식사의 날짜이다. 마가는 제자들이 준비를 물은 날을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첫날 곧 그들이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날에”(막 14:12)라고 기록한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를 유월절 식사로 기록하고,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유월절의 예비일로 기록한다. 이 두 기록을 함께 맞추는 일은 어느 견해에서든 풀어야 하는 어려운 대목이다. 필자는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이해하지만, 이것이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째, 예비일과 안식일의 문제이다. 마가는 예수님을 장사한 날을 이렇게 기록한다. “한편 그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녁이 되었을 때에”(막 15:42)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몸을 구했다. ‘안식일 전날’은 당시 흔히 금요일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므로 금요일설은 이 구절을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성경은 주간 안식일만 안식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팔절을 두고 “그달 첫째 날을 안식일로 삼을지니”(레 23:24)라고 하고, 속죄일도 “그날은 너희에게 안식하는 안식일이니”(레 23:32)라고 한다. 무교절 첫날도 “첫째 날에는 너희가 거룩한 집회로 모이고 그날에는 아무 노역도 하지 말 것이며”(레 23:7)라고 명령한 날이다. 그래서 필자는 마가가 말한 안식일을 15일 무교절 첫날의 안식일로 읽는다. 요한이 그 안식일을 굳이 ‘큰 날’이라고 부른 것도(요 19:31)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무덤을 지키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간 ‘그 이튿날 곧 예비일 다음 날’(마 27:62)도 이 15일로 본다. 그러면 그 주간에는 금요일의 큰 안식일과 토요일의 주간 안식일이 잇달아 있었던 것이 된다.


    셋째, 향료의 문제이다. 두 안식일이 잇달아 있었다면 여자들은 언제 향료를 마련했는가? 수요일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두 안식일 사이에 향료를 살 수 있는 하루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그분께 기름을 바르려고 이미 향료를 사 두었더라.”(막 16:1)


    킹제임스 성경은 여자들이 안식일이 지났을 때 이미 향료를 사 두었다고 기록한다. 누가도 여자들이 예수님의 몸이 어떻게 놓였는지 지켜본 뒤 “돌아가서 향료와 기름을 예비하고 명령에 따라 안식일에 안식하더라.”(눅 23:56)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에 자기들이 이미 예비해 둔 향료를 가지고 무덤에 갔다(눅 24:1). 필자는 여자들이 목요일 해 지기 전에 향료를 마련해 두고 금요일의 큰 안식일과 토요일의 주간 안식일 동안 안식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두 안식일 사이에 향료를 살 하루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월절 어린양과 첫 열매


    필자가 제시한 시간표에서는 유월절 어린양과 첫 열매의 의미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침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렀고(요 1:29),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물이 되셨느니라.”(고전 5:7)라고 말한다. 이 시간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니산월 14일, 그것도 성전에서 어린양들을 잡던 오후 세 시 무렵에 죽으셨다.


    또 율법은 첫 열매 한 단을 ‘안식일 다음 날에’ 주 앞에 흔들라고 명령한다(레 23:11). 이 시간표에 따르면 큰 안식일과 주간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곧 니산월 17일 일요일이 첫 열매를 드리는 날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그날 새벽에 부활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맺음말


    예수님께서 무슨 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는지를 두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견해가 있어 왔고, 각 견해마다 풀어야 할 본문이 있다. 필자도 예전에는 수요일설을 지지했고, 지금은 목요일설로 이해한다. 목요일설이 모든 질문을 다 해결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필자는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으로 주신 ‘밤낮으로 사흘’을 문자 그대로 받으면서 유대인들의 날수 표현도 함께 고려할 수 있고,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14일과 첫 열매를 드리는 17일까지 한 그림 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목요일설을 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일 자체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 죄들로 인해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셋째 날 다시 일어나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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