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사도행전 2장 38절: 물 침례는 구원의 조건인가? 세례 중생 교리
안녕하세요?
성경 번역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원어, 영어의 많은 단어들이 복수의 뜻을 가진 경우가 많아 기계적인 번역이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는, 우리의 구원이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거기서 그분께서 흘려주신 고귀한 피를 믿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부활 믿음도 추가될 수 있으나 요점은 우리의 구원이 사람의 행위와 100%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배 출석, 새벽기도, 철야, 헌금, 구제, 선교, 전도, 침례(세례), 주의 만찬(성만찬) 같은 사람의 행위가 전혀 우리의 구원에 일조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런 것들은 구원받은 이후에 주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들이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이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3장 역시 이를 잘 보여 줍니다.
3 우리도 한때는 어리석고 불순종하며 속임을 당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쾌락을 섬기며 악의와 시기 가운데 살고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였으나
4 사람을 향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친절과 사랑이 나타난 뒤에 5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6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 7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성경에는 침례와 같은 행위가 사람의 구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조건인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파나 교단에서는 이런 구절들을 근거로 반드시 물 침례를 받아야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캠벨(Alexander Campbell, 1788~1866)에게서 유래한 그리스도의 교회 일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구절이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베드로의 명령만 따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여기서 뒷부분만 보면 침례를 받아야 죄들의 사면을 얻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물 침례가 구원의 수단이 되거나 적어도 구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믿음에 의한 구원과 맞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문장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베드로의 명령에서 중간에 있는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라는 부분을 잠시 구분하여 읽으면 “회개하고 …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라는 관계가 드러납니다. 참된 회개와 믿음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므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들의 사면을 받는 것은 신약 성경의 구원관과 일치합니다.
실제로 그리스어 원문에서도 ‘회개하라’는 듣는 사람 전체를 향한 복수형 명령이고, ‘너희 각 사람이 침례를 받으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단수형 명령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는 다시 전체를 향한 복수형 표현입니다. 이처럼 회개와 성령님을 받는 일은 전체 청중을 향한 표현으로 제시되고, 그 사이에 각 사람이 침례를 받으라는 명령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죄들의 사면이 회개에만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다른 설교들과 신약 성경의 관련 구절들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사도행전 3장 19절에서 베드로는 같은 유대인들에게 회개하고 회심하여 죄들이 말소되게 하라고 명령하면서 침례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또한 고넬료의 집에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그분의 이름을 통해 죄들의 사면을 받는다고 선포했습니다(행 10:43). 그 말을 듣고 믿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기도 전에 성령님을 받았으며, 그 뒤에 물 침례를 받았습니다(행 10:44-48). 이 사건은 물 침례가 죄들의 사면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와 비슷하게 침례와 구원이 함께 언급되는 구절이 적어도 두 곳 더 있습니다.
첫째는 마가복음 16장 16절입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여기에도 믿음과 침례가 함께 나오므로 둘 다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맨 앞에 오는 것은 ‘믿고’입니다. 구원을 받는 자는 믿고 그 뒤에 침례를 받은 사람이지 침례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또 말씀의 뒷부분을 보면 정죄를 받는 이유는 침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침례가 구원의 조건이었다면 ‘침례를 받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고 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침례는 믿은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며 순종으로 받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행전 22장 16절입니다. 아나니야는 바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네가 왜 주저하느냐?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 침례를 받고 네 죄들을 씻어 버리라.”
이 구절 역시 뒷부분만 보면 침례를 통해 죄들을 씻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라는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의지하는 행위입니다. 죄들의 씻음은 이러한 믿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울 역시 아나니야를 만나기 전에 이미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행 9:5-6; 22:10).
그러므로 이 말씀도 물 침례 자체가 죄들을 씻어 준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침례는 죄들의 씻음을 밖으로 나타내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침례와 구원이 함께 언급되는 구절들은 신약 성경 전체의 구원관과 문맥에 비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구원은 회개와 믿음으로 받으며, 침례는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성경의 번역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 38절이 침례를 통해 죄들의 사면을 얻는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으므로 번역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번역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회개하고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이렇게 번역하면 이미 죄들의 사면을 받은 사람이 침례를 받는다는 뜻이 되므로 침례교의 구원 교리와 잘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교리를 지키기 위해 성경의 문장 구조와 표현을 임의로 바꾸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remission of sins’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for the remission of sins’라는 표현은 앞에 있는 회개와 침례의 명령에 이어서 나옵니다. 이를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라고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표현을 침례에만 연결되도록 앞으로 옮겨 번역하는 것이 원문의 의미를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은 같은 표현이 쓰인 다른 구절들을 보면 더 분명합니다. 영어 ‘for the remission of sins’는 마태복음 26장 28절, 마가복음 1장 4절, 누가복음 3장 3절에도 나오는데 흠정역은 모두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처럼 사면을 향한 목적의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26장 28절의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린 내 피”를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흘린 내 피’로 바꾸면 사면이 먼저 있고 그 때문에 피를 흘리셨다는 말이 되어 복음이 뒤집힙니다. 같은 말을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만 다르게 옮길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라는 말은 원문에서 회개와 침례 두 명령 뒤에 한 번 나오므로 둘 다에 걸립니다. 이것을 정직하게 옮기면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가 되는데, 이 경우 이미 죄들의 사면을 받았으므로 회개하라는 이상한 말이 됩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 그 표현을 침례 앞으로 옮겨 침례에만 연결하여 번역한다면, 번역자가 자신의 교리적 판단을 본문에 집어넣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그리스어 원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문장 구조와 의미를 존중하면서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번역하고, 독자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현재 킹제임스 흠정역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라는 번역은 이러한 원칙에 따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는 사람이 침례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면, 앞에서 살펴본 베드로의 다른 설교와 고넬료 사건, 마가복음 16장 16절과 사도행전 22장 16절 등을 통해 침례와 구원의 관계를 설명해 주면 됩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 교리나 교파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성경의 표현을 인위적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교리는 성경 본문을 우리의 주장에 맞게 고쳐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바르게 해석함으로써 세워야 합니다. 위의 세 가지 예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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