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베드로전서 2장 2절 –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
개역성경: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 표현만 보면 신자가 아직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 있고, 말씀을 통해 조금씩 자라가야 구원에 이른다는 의미처럼 들립니다. 이는 천주교식 점진적 구원론, 즉 평생 행위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어떤 자격을 채워야 주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믿는 즉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의 정확한 번역 흠정역: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 자라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장(grow)’의 목적은 성숙이며, 구원은 그 전제입니다.
이 번역은 신약 전체가 일관되게 말하는 복음의 본질과 일치합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순전한 젖이란 무엇인가? 흠정역은 이 젖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히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라납니다.
하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성장은 **성화(성숙)**의 과정이지, 구원 획득의 조건이 아닙니다.
개역성경은 왜 위험한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는 개역의 표현은 본의 아니게 다음과 같은 오류를 불러옵니다:
구원은 점진적인 것이라는 오해
말씀과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왜곡
사제나 교단의 중재를 통한 ‘구원 관리’ 체제 정당화
이는 로마 가톨릭의 행위 구원, 성례 중심의 구원, 죽을 때까지 확신할 수 없는 구원 교리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타이밍 성경은 명확히 말합니다:
구원은 과거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성도는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구원을 기초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구원을 받았느니라.”(딤후 3:15)
결론: 구원은 순간의 사건, 성장은 평생의 여정 구원은 믿는 순간 즉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장은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삶의 열매입니다.
개역성경의 번역은 이 순서를 뒤집고, 점진적 구원론으로 오도할 수 있습니다.
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은 구원의 순간성과 말씀을 통한 성장을 정확히 구분해 보여줍니다.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 베드로전서 2:2 (흠정역)
구원은 얻기 위해 달리는 경주가 아니라, 이미 얻은 생명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여정입니다. 이 진리가 흔들릴 때, 우리의 복음도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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