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 4-5절)
전치사 of의 용례(Usage of preposition ‘of’) 전치사 of는 다음과 같이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I. 소유 - 주의 율법(law of the LORD, 시 1:2), 주의 집(house of the LORD, 시 23:6),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 마 6:33), 성도들의 인내(patience of the saints, 계 14:12). II. 기원 - 믿음으로 얻는 의(righteousness of the faith, 롬 4:11), 물들의 위험(perils of waters, 고후 11:26), 성령의 열매(fruit of the Spirit, 갈 5:22). III. 동격 - 할례라는 표적(sign of circumcision, 롬 4:11), 이 장막 집(house of this tabernacle, 고후 5:1), 성전인 자기 몸(temple of his body, 요 2:21), 믿음이라는 방패(shield of faith, 엡 6:16). IV. 재료 - 고펠나무로 만든 방주(ark of gopher wood, 창 6:14), 쇠막대기(rod of iron, 시 2:9), 금으로 된 머리(head of gold, 단 2:38). V. 목적격 – 주를 두려워하는 것(fear of the LORD, 잠 1:7), 영을 괴롭게 하는 것(vexation of spirit, 전 1:14), 돈을 사랑하는 것(love of money, 딤전 6:10).
이처럼 of의 용례가 다양하므로 of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강조점이 조금 변하게 되며 신학적인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갈 2:16을 보면 ‘works of the law’와 ‘faith of Jesus Christ’가 서로 대비되며 나온다. 이 경우 두 개의 대비를 위해 ‘율법의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번역한다. 우리말에서는 ‘그리스도의 믿음’이 혼동을 가져올 소지가 있지만 여기의 of는 목적격이다. work(행하다)와 believe(믿다)는 모두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이므로, ‘works of the law’는 율법을 행함이고 ‘faith of Jesus Christ’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다. 같은 절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가 문맥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갈 3:2에도 ‘works of the law’와 ‘hearing of faith’가 나란히 나오는데, hear(듣다)도 목적어를 취하므로 이것을 ‘믿음의 들음’이 아니라 ‘믿음에 관하여 들음’이라고 옮겼다.
목적격의 of 역시 많은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창 2:9의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을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라고 하면 영어 표현을 기계적으로 옮긴 번역이 된다. 이런 경우의 of는 목적격으로 쓰여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해야 맞는다. 즉 fear, love, know, vex 등은 동사로 쓰일 때 목적어를 취하는 말이고, 이러한 동작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명사가 of와 함께 쓰이면 of 뒤의 말이 그 행위나 감정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계 3:14의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자’(beginning of the creation of God)의 경우 여호와의 증인들은 of를 소유로 보아 예수님이 ‘창조의 시작’, 곧 창조물 중에서 처음 지어진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의 begin 역시 타동사이므로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으로 보면 예수님이 창조자가 된다. 사실 성경의 전체 구조를 보면 후자가 타당하다(요 1:1–3). 골 1:15에도 예수님을 가리켜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firstborn of every creature)라 하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여기의 of 역시 소유로 해석하려 하지만, bear도 타동사이므로 ‘모든 창조물을 처음 나게 하신 분’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예수님은 창조자가 된다. 바울은 바로 다음 절에서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골 1:16)고 함으로써 후자의 용례가 맞음을 확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