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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존 오웬의 공인 본문/킹제임스 성경 옹호조회수 : 20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6년 1월 8일 18시 5분 6초
  • 존 오웬의 공인 본문/킹제임스 성경 옹호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전통도 아니고, 신학 체계도 아니며, 개인의 신앙 경험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최종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다. 성경이 없다면 복음은 해석될 수 없고, 교리는 기준을 잃으며, 신앙은 각자 제각각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그 성경이 과연 지금 우리 손에 있는가”이다.


    이 문제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고백의 서두에서부터 성경의 본질과 권위, 그리고 보존 문제를 가장 중요한 신앙 고백으로 다룬다. 그 정점이 바로 1647년에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8항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8항은 분명히 말한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던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고, 이 원어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을 주셨을 뿐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하여 특별한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교회는 모든 논쟁에서 이 원어 성경에 최종적으로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모든 성도가 원어를 알 수 없으므로 순수하게 보존된 원어 성경은 각 나라의 통속 언어로 번역되어 교회 가운데서 실제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의 핵심은 단순한 문장 속에 담겨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의 영감을 과거로만 두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고, 모든 시대를 거쳐 보존되어 왔으며, 1647년 당시에도 교회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성경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다시 말해, 이 고백은 소실된 ‘이상적 원본’이나, 학문적으로 복원해야 할 ‘가설적 본문’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한 ‘원어 성경’은 당시 현실 속에 존재하던, 읽을 수 있고 인용할 수 있으며 모든 교리 논쟁의 기준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17세기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의 입장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오웬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신학적 토양 위에 서 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성경의 영감과 보존 문제에서 조금도 중립적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으나, 그 말씀의 일부가 사라져 지금은 불완전하다”는 생각 자체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부정하는 사상으로 보았다.


    오웬에게 성경은 처음 기록될 때만 영감을 받은 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그 말씀은 교회를 위해 보존되었고, 그 보존은 언제나 교회의 공적 사용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참된 성경 본문은 천주교 바티칸 도서관같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된 소수 사본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읽고 설교하고 번역해 온 본문이어야 한다.


    이 확신을 가지고 오웬이 성경 본문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글을 쓰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17세기 성공회 주교였던 월튼(Brian Walton, 1600-1661)이 편집한 ‘런던 다국어 대역 성경’(London Polyglot Bible)의 출간이다. 월튼은 이 다국어 성경에서 다양한 사본들을 나열하며, 전통적으로 교회가 사용해 온 본문보다 로마 카톨릭 학자들이 중시하던 소수 사본들이 더 우수할 수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이는 사실상 종교개혁 이후 교회가 사용해 온 본문 전통, 곧 공인 본문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오웬은 이것을 단순한 학문적 시도로 보지 않았다. 그는 월튼의 접근이 결국 “하나님께서 교회를 수백 년 동안 불완전한 말씀으로 인도하셨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카톨릭적 본문관의 재등장이며, 성경의 확실성과 교회의 권위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사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오웬은 월튼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해 성경 본문의 보존성과 순수성을 변호하는 글을 썼다. 그 대표적인 글이 「성경기록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의 완전성과 순수성에 대하여」(Of the Integrity and Purity of the Hebrew and Greek Text of the Scripture)이다. 이 글에서 오웬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존하셨다면, 그 보존은 교회 전체가 사용하는 데서 드러나야 하며, 그 결과는 종교개혁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던 본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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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웬이 옹호한 본문은 오늘날 성경학자들이 ‘공인 본문’이라고 말하는 본문이다. 이 본문은 16세기 초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가 처음 편집하여 출판한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서 출발한다. 에라스무스는 1516년 바젤에서 최초로 인쇄된 그리스어 신약을 출간했고, 이후 1519년, 1522년, 1527년, 1535년까지 여러 차례 개정판을 내놓았다. 이 본문은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 아니라, 당시 서방 교회가 실제로 사용해 오던 다수의 비잔틴 계열 사본 전통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본문은 곧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종교개혁의 확산과 함께 개신교 교회의 공적 신약 본문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본문은 스테파누스, 베자, 엘제비어 형제를 거치면서 확산되었다.


    이 공인 본문은 단지 학자들의 본문이 아니라, 실제 교회가 사용한 본문이었다. 킹제임스 성경(1611)은 바로 이 공인 본문을 신약의 기초로 삼아 번역되었고, 그 이전에도 동일한 본문 전통은 이미 종교개혁의 핵심 번역 성경들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루터 성경의 신약은 1522년에 에라스무스의 제2판 그리스어 본문을 기초로 번역되었으며, 틴데일 성경 역시 에라스무스의 본문을 사용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칼빈의 사촌이 편집한 올리베탄 성경이 같은 신약 본문 전통 위에서 번역되었다.


    따라서 공인 본문은 특정 지역이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된 본문이 아니라,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약 150년 이상 전 유럽 개신교 교회가 공적으로 사용하고 설교하고 번역해 온 신약 본문이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오웬은 이 본문을 ‘우연히 선택된 학문적 본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섭리로 보존해 오신 말씀의 형태로 이해했고, 이를 흔드는 시도를 신학적으로 단호히 거부했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지역과 언어의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동일한 본문 전통 위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오웬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였다.


    반대로, NIV, ESV 등 현대 역본들의 기초가 되는 로마 카톨릭 계열 소수 사본들은 교회의 지속적이고 공적인 사용을 거치지 않았고, 종종 카톨릭 교리 체계와 결합되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성경의 확실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오웬은 이러한 본문 전통을 교회가 따를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단호히 배제했다. 오웬에게 본문 선택은 단순한 학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의 문제였다.


    이 모든 점에서 오웬의 입장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8항과 정확히 일치한다. 보존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이며, 보존된 말씀은 교회의 손에 있고, 번역 성경은 그 보존된 본문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성경의 보존과 번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이미 역사 속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회피하면 성경 보존에 대한 논의는 실체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존하셨다면, 그 말씀은 반드시 지금 이 땅에서 사람이 손에 들고 읽을 수 있는 성경으로 존재해야 한다. 읽을 수 없고 설교할 수 없는 말씀은 교회를 위한 말씀이 될 수 없다.


    역사는 이에 대해 분명히 증언한다. 종교개혁 이후 약 400년 동안, 침례교를 포함한 개신교 전통 전반에서 공통으로 사용해 온 성경이 있다. 청교도들로부터 조나단 에드워즈, D. L. 무디, 찰스 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동일하게 붙들고 설교해 온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단순한 영어 번역본이 아니다. 이 성경은 오웬이 옹호했던 공인 본문, 곧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섭리로 보존해 오신 신약 본문 위에서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특정 교단의 성경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교회 전체가 공적으로 받아들여 온 성경이다.


    지난 400여 년 동안 이 성경은 설교와 선교, 신학과 언어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유일하게 ‘The Holy Bible’로 인용될 만큼 영어권 문명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이는 교회가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읽어 왔다는 역사적 증거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땅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 없다”는 주장은 성경을 믿는 고백이 아니라, 성경을 의심하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오웬, 그리고 역사 속의 성경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을 뿐 아니라, 교회가 읽고 선포할 수 있는 성경으로 보존하셨다고 믿었다.


    사람이 손으로 들고 읽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시간, 이 땅에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은 존재하며, 그 대표적인 열매가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다.

     

    오웬의 원문은 첨부 파일에 있으니 참조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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