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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 스펄전의 성경관과 킹제임스 성경 옹호조회수 : 7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6년 1월 22일 9시 7분 29초
  • 스펄전의 성경관과 킹제임스 성경 옹호


    19세기 후반 영국은 외형적으로 기독교 문명의 절정기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는 성경 자체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독일에서 시작된 고등 비평과 인본주의적 성경관이 영국 신학계로 유입되며,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 종교 의식의 산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의 한복판에서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영감,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적 보존을 굳게 붙들고 맞서 싸운 인물이 바로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이다. 런던 메트로폴리탄 타버내클의 목사로서 ‘설교자들의 왕자’라는 별칭을 얻은 그는 단순한 인기 설교자가 아니라 교회와 신학의 방향을 분별하는 파수꾼이었다.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 무오성 부정이 교회를 잠식해 가는 상황에서, 그는 성경의 영감과 보존에 대한 확신을 목회와 저술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스펄전에게 성경은 신앙의 출발점이 아니라, 신앙 전체를 떠받치는 절대 기준이었다. 그는 “성경의 영감을 가장 강한 의미에서 믿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며, 교리적 타락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에 대한 충분한 믿음의 결핍’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성경의 권위를 한 걸음이라도 양보하는 순간, 교회는 나침반과 닻을 동시에 잃고 시대사조에 떠밀리게 된다. 그는 설교자를 성경 위에 자기 해석을 덧붙이는 해설자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하는 메신저로 보았다. 설교자가 자기 사상이나 시대정신을 성경 위에 올려놓는 순간, 강단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의견을 포장하는 연단으로 전락한다.


    1881년에 출간된 ‘영국 개역 성경’(Revised Version, RV)은 단순한 번역 개정판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경의 최종 권위를 교회에서 학계로 이동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스펄전이 보기에 이는 기존 성경의 표현을 다듬는 개정이 아니라, 학문적 가설을 기준으로 본문 자체를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었다. 말과 문장을 다듬는 수준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그 자체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가 남긴 경고는 날카롭다. “RV 개정자들은 성경의 번역을 고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학자들의 판단에 따라 새로운 성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끊임없이 의심과 비평에 노출되고, 결국 극소수의 학자들만이 ‘이것이 성경이다, 저것은 아니다’라고 판정하는 지위에 서게 된다. 그러면 평범한 성도들과 교회는 스스로 성경을 믿고 읽는 주체가 아니라, 그들의 판단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스펄전이 우려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인본주의 불신 학자들의 끝없는 성경 본문 수정과 비평 속에서 성도들은 성경을 직접 믿는 위치에서 밀려나고, 소수 학자의 판단에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번역 문장의 세련됨이나 현대적 표현 채택 여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교회가 역사 속에서 무엇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어 왔는가라는,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정면으로 흔드는 문제였다. 교회는 사도 시대 이후 약 1,800년 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어 온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해 왔다. 이 본문은 특정 지역이나 시대, 혹은 소수 학자 집단이 임의로 선택한 본문이 아니다. 장구한 교회사 속에서 공적으로 사용되고, 예배와 설교와 교리 형성의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되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보존되어 온 본문이다.


    바로 이 공인 본문에 근거하여 ‘1611년에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KJV)은 단순히 영어권 번역본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교회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신뢰해 온 본문을 충실히 옮긴 성경이었다. 이 성경을 통해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 교리 체계가 정립되었고 성경적 설교와 목회가 뿌리를 내렸다. 또한 이 성경은 세계 선교 운동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복음을 선포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수많은 설교자들이 이 성경을 들고 강단에 섰고, 수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을 붙들고 신앙을 지키다 죽음에 이르렀다.


    KJV의 이러한 역사적 사용은 결코 우연이나 관습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교회 안에서 실제로 사용하시며, 그 말씀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인도해 오셨다는 강력한 역사적 증거이다.


    이러한 역사적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소수의 학자들이 ‘더 오래된 사본’, ‘더 초기 형태로 추정되는 본문’이라는 순수 가설을 앞세워, 교회가 수백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해 온 성경을 다시 재검증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 시도는 성경을 더 잘 이해하려는 겸손한 연구라기보다, 교회가 이미 신뢰해 온 성경을 학문적 판단 아래 재편성하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그 결과 성경은 더 이상 교회의 공적 신앙 위에 굳게 서 있는 말씀이 아니라, 수정과 재구성을 전제로 한 연구 대상, 곧 학문적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회는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다는 확신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성경은 확정된 계시가 아니라, 계속해서 조정되고 수정되는 유동적 본문이 되었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기보다 학자들의 주석과 “더 좋은 사본에는 이 구절이 없다”는 설명 앞에 서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현시대 기독교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직면한다. “그렇다면 1881년 이전에는 과연 교회에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는가?” “사도 시대 이후 수백 년 동안, 종교 개혁 시대와 청교도 시대를 거쳐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불완전한 성경을 붙들고 예배하고 설교하며 선교해 왔다는 말인가?” “루터와 칼빈, 수많은 개혁자들, 청교도들과 이름 없이 죽어 간 순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믿고 생명을 내놓았다는 말인가?”


    더 나아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그렇게 일하시는 분인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교회를 세우시며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시면서, 정작 가장 핵심적인 계시인 말씀은 수백 년 동안 불완전한 상태로 방치해 두셨다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소수 학자들의 손을 통해 비로소 회복하셨다는 말인가?” 이러한 생각은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섭리적 보존에 대한 이해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주신 뒤 그것이 소실되도록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 교회를 낳으셨고, 그 교회를 통해 다시 그 말씀을 보존해 오셨다. 그러므로 교회가 실제로 사용해 왔고, 설교해 왔고, 믿어 왔으며, 생명을 걸고 지켜 온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 시대, 특정 학문 체계, 특정 소수 집단에 의해 비로소 확정된다면, 그 순간부터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판단에 좌우되고 만다.


    RV의 그리스어 본문은 웨스트코트(B. F. Westcott)와 호르트(F. J. A. Hort)가 편집한 비평 본문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데 이 본문은 몇 개의 소수 사본, 즉 로마 카톨릭 전통과 깊이 연결된 사본들을 과도하게 중시했다. 그 결과, 교회 역사 전반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설교되어 온 다수 본문은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다. 참고로 NIV, ESV 등 대다수 현대 역본들도 비평 본문을 근간으로 번역되었다.


    본문 비평의 이면에는 단순한 필사학적 판단을 넘어서는 신학적 전제가 깔려 있었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교회의 역사적 사용을 본문 권위의 기준으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초기 형태로 추정되는 텍스트’라는 학문적 가설을 절대화했다. 이 접근은 성경의 보존을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 학문의 성취로 환원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17세기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의 성경관을 떠올리게 된다. 오웬은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처음에 영감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모든 시대에 교회를 위해 보존되어 왔다고 보았다. 그는 성경 본문을 소수 학자의 판단에 맡기는 발상을 단호히 거부하며, 교회 전체가 실제로 사용해 온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보존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펄전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학문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천주교 소수 비평 본문이 강단으로 직행하면서 설교자의 확신을 잠식하는 방식을 엄중히 경계했다. 설교자가 반복해서 “이 구절은 더 좋은 사본에는 없다”, “이 부분은 후대 삽입이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성도들은 결국 특정 구절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의심하게 된다. 성경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복원된 문헌’이 되는 순간, 믿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스펄전은 이것이야말로 교회를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보았다.


    스펄전의 성경관은 단순한 보수적 취향이 아니라, 교회론적이고 신앙적인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 영감을 주셨을 뿐 아니라, 교회 역사 속에서 그것을 보존해 오셨다. 교회가 실제로 사용해 온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소수 학자의 추정과 가설 위에 새롭게 구성된 본문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스펄전의 입장은 분명하다. 킹제임스 성경은 공인 본문 위에 서서 교회를 통해 검증되고, 설교되고, 믿어져 온 하나님의 말씀이며, 1881년 이전의 교회는 온전한 말씀이 존재하지 않던 암흑기에 머무른 적이 결코 없음을 분명히 증언한다. 그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전 세계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해 온 킹제임스 성경을 지키는 문제는 단순한 번역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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