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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수아는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대답 : "유다가 거기서 수아라는 이름의 어떤 가나안 족속의 딸을 보고 그녀를 취하여 그녀에게로 들어가니"(창38:2)  And Judah saw there a daughter of a certain Canaanite, whose name was Shuah; and he took her, and went in unto her.   "유다의 아들들은 엘과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수아의 딸 곧 가나안 족속 여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들이더라."(대상2:3)   The sons of Judah; Er, and Onan, and Shelah: which three were born unto him of the daughter of Shua the Canaanitess. And Er, the firstborn of Judah,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he slew him.   이 두절을 얼핏 보면 수아라는 인물이 가나안 족속 남자 같기도 하고 가나안 족속 여자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구절도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대상2:3의 가나안 족속 여인은 수아의 딸이며 결코 수아가 아닙니다. 창38:12에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유다의 아내 곧 수아의 딸이 죽으매"(창38:12) And in process of time the daughter of Shuah Judah's wife died;  히브리말로도 수아는 남성 명사입니다.   물론 모든 성경 사전들도 수아가 가나안 족속 남성이라고 말하며 그의 딸을 유다가 아내로 취하였다고 기록합니다. SHUA: A Canaanite whose daughter Judah took to wife (Gen 38:2,12; 1 Chron 2:3). (from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aedia).   그러므로 유다의 아내는 수아의 딸이며 수아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대상2:3에서 가나안 족속 여인은 곧 수아의 딸입니다. 그러므로 수아는 남자이지 여자가 아닙니다(The Book of Bible Problem by G. D. Bouw, Ph.D.).
2017-10-04 14:06:1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야고보서 4장 5절의 영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 기록이, 우리 안에 거하는 영이 시기하기까지 욕심을 내느니라, 하고 헛되이 말하는 줄로 생각하느냐?(약4:5)   Do ye think that the scripture saith in vain, The spirit that dwelleth in us lusteth to envy?(KJV)   킹제임스 흠정역은 ‘우리 안에 거하는 영’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다른 성경들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되어 있어 어느 것이 맞는지 알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바른 성경/공동 번역 등: 너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시기할 정도로 사모한다고 하신 성경 말씀을 헛된 것으로 생각하느냐? 이런 구절은 앞뒤 문맥과 그 안에 사용된 단어를 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 4-6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4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5 너희는 성경 기록이, 우리 안에 거하는 영이 시기하기까지 욕심을 내느니라, 하고 헛되이 말하는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그분께서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나니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은 물리치시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시느니라.   ---------매튜 헨리 주석: 사람이 마음에서 상상하는 것은 항상 악하다(창6:5). 본성적 부패는 욕심을 부리며 시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람 속의 영은 늘 악한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앨버트 반즈 주석: 야고보는 사람의 시기에 대해서 말한다(약3:16). 4절의 ‘세상과 친구 되는 것’(즉 세상과 친해지려는 영)은 곧 사람 속의 영의 시기로 말미암은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여기의 영을 성령님으로 해석하곤 하는데 이를 위해 그들은 끝 부분의 “lusteth to envy”를 “lusteth against envy”로 바꾼다. 이리 되면 성령님께서 시기를 반대하여(against) 욕심을 내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자연스러운 해석이 아니며 주관적으로 그리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말이 허용하는 해석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여기의 영을 우리 안의 영 혹은 속성으로 보는 해석이다. 즉 우리 안의 영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번영 등을 시기할 정도로 욕심을 낸다.   재미슨 파우셋 주석: 세상과 친구가 되면 우리 영이 다른 사람들을 시기할 정도로 욕심을 낸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데 쓰이는 질투는 envy가 아니라 jealousy입니다. 하나님의 질투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열심(zeal)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 즉 주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열심을 내므로 질투하십니다.   또한 lust라는 말은 음욕을 품는 데 사용되는 좋지 않은 말입니다. 성경은 성령님에 대해 lust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은 lust를 정욕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을 보겠습니다.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For the flesh lusteth against the Spirit, and the Spirit against the flesh: and these are contrary the one to the other: so that ye cannot do the things that ye would.   여기서도 육신은 욕심을 부리지만(lust) 성령님은 그냥 육신을 대적하지, 육신을 대적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6절은 시기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을 겸손한 자라고 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므로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야고보서 4장 5절의 영은 문맥으로 보나 같이 나오는 용어들(욕심, 시기 등)로 보나 사람의 영이지 성령님이 아닙니다.   샬롬   패스터
2017-10-04 13:47:15 | 관리자
여러 명의 다리오   성경에는 다리오라는 이름의 왕이 여럿 나옵니다.   특히 바빌론의 벨사살 왕을 멸망시킨 다리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는 분명히 메데 사람이고 페르시아 왕국의 초대 왕으로 유대인 귀환을 명령한 왕은 고레스인데 이 둘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음은 에스라 사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1. 메대 사람 다리오(단5:31; 9:1; 11:1). 이 사람은 아스티가게스의 아들로서 메대 사람들의 왕이었으며 어머니 쪽으로 에빌므로닥과 고레스의 삼촌이었다. 그는 BC 539년에 갈대아 사람들의 벨사살 왕을 폐위시키고 2년 후에 죽을 때까지 왕좌를 차지하였으며 그 후에 왕좌는 고레스에게 넘어갔다. 그의 통치 때에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다(단6:1-28). 고레스는 BC 536년에 유대인 귀환을 선포하였고 그 결과 유대인들은 BC 606년에 있었던 바빌론의 1차 침공 이후 70년 만에 본토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다리오는 고레스 밑에 있던 대장으로 메대-페르시아 왕국의 일부인 갈대아 사람들의 영역을 다스리도록 세워진 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KJB에는 분명하게 그가 왕으로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단9:1). https://www.biblegateway.com/resources/encyclopedia-of-the-bible/Darius-Mede   2. 다리오 히스타스피스. 에스라와 학개 그리고 스가랴 대언자에 의해 언급된 이 왕은 고레스가 유대인들에게 칙령을 내려 성전을 지으라고 했으나 그 후에 유보된 것을 다시 회복시켜 유대인들이 공사를 하도록 허가한 인물이다(스4:1-24; 5:1-17; 6:1-22; 7:1-28). 그는 주전 521년경에 마기승족의 왕위 찬탈자 스메르디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36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는 정부를 수사(수산)로 옮겼고 바빌론이 자기를 대적하여 반역을 일으키자 반역을 제압하고 바빌론의 성벽을 무너뜨려 렘51:58의 예언을 성취했다.   3. 다리오 코도마누스. 느12:22에 언급된 이 왕은 페르시아의 왕들 중에서 가장 용맹스럽고 인자한 왕이었다. 알렉산더 대제는 여러 차례 그를 패배시켰고 마침내 260년의 역사를 가진 페르시아 왕국을 무너뜨렸다. 다리오는 6년간 통치한 뒤에 자기의 장군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이로써 단8:1-27에 나오는 예언이 성취되었다. 다니엘은 숫양이라는 상징으로 페르시아 왕국이 거대해지는 것을 예언했고 이 양이 뿔로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밀고 들어가나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 숫양은 서쪽에서 나와 땅에 닿지 않고 온 세상을 휘저으며 다닌 염소 즉 눈과 눈 사이에 큰 뿔을 가진 염소인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멸되었다. 다니엘의 예언은 역사상 일어난 일을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다.
2017-08-12 14:36:28 | 관리자
하나님은 무엇을 주셨나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요한일서 4장 13절이 이상하다고 하여 잠시 답을 드립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이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4:13).   Hereby know we that we dwell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th given us of his Spirit.   질문은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셨으므로”에 대한 것이며 초점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는지 목적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 구절에는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러면 영어는 어떤가요?영어에도 “because he hath given us of his Spirit.” 목적어가 없습니다.   이것을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영어 ‘of his Spirit’에서 ‘of’를 빼내야 하는데 원어에도 ‘of’가 들어 있으므로 빼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생략된 목적어는 성령님의 은혜, 영향력, 열매, 은사(선물) 등 그분의 영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7절 이후부터 보면 그분의 영이 주신 것 중 하나가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는 줄 압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7-26 10:54:07 | 관리자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인가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자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실히 믿지만,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냐고 누가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기에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답: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간단한 예를 두 개만 들겠습니다.   1. 이사야서 6장 1-13절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또한 내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2 그것 위에는 스랍들이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채 서 있더라. 그가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며 두 날개로는 날더라. 3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그 외치는 자의 음성으로 인해 문기둥들이 흔들리며 그 집이 연기로 가득하더라.  여기서 이사야는 [주](Lord) 즉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이사야가 자기의 부정한 상태를 고백하자 주님은 그를 정결하게 해 주셨습니다(5-8절). 그리고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9 ¶ 그분[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10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매 그분께서 대답하시되, 도시들이 피폐하게 되어 거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땅은 완전히 황폐하게 되며 12 또 {주}가 사람들을 멀리 옮겨서 이 땅 한가운데에 버림당하는 일이 심히 많을 때까지니라.   12절의 {주}(LORD)와 1-11절의 [주](Lord)는 같은 분입니다.   이 구절들에는 신약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매우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9 ¶ 그분[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10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자, 이에 대해 우리 주 예수님은 수난 당하기 1주일 전 쯤에 요한복음 12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7 ¶ 그러나 그분[예수님]께서 이렇게 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그분을 믿지 아니하였으니 38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말하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러므로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하였으니 그 까닭은 이사야가 다시 말하였기 때문이라. 이르되, 40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더라. 41 이것들은 이사야가 그분[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에 대해 말하였을 때에 이른 것이더라.  39-40절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들은 바로 이사야서 6장 9-10절입니다. 여기서 41절은 참으로 굉장한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사도 요한은 39-40절이 이사야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사야는 그 당시 누구를 보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분이 곧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구절은 신구약의 여러 군데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은 재림 시에 올리브 산에 오실 것입니다. 행1:11-12를 보기 바랍니다. 11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12 그때에 그들이 올리벳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도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더라.   스가랴서 14장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이 기록되어 있습ㄴ다.   1 보라, {주}의 날이 이르리니 사람들이 네게서 노략한 물건들을 네 한가운데서 나누리라. 2 내가 모든 민족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전쟁하게 하리니 그런즉 그 도시가 함락되며 집들이 강탈을 당하고 여인들이 강간을 당하며 그 도시의 반이 포로가 되려니와 백성의 남은 자들은 그 도시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그때에 {주}께서 나아가사 그 민족들과 싸우시되 전에 전쟁의 날에 싸우신 것 같이 하시리라. 4 ¶ 그 날에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설 것이요, 올리브 산이 거기의 한가운데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므로 심히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그 산의 반은 북쪽으로, 그 산의 반은 남쪽으로 이동하리라.   4절을 보면 {주}(LORD)  곧 여호와 하나님이 올리브 산에 강림하시며 주의 날(재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과 비교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 구절들을 모아서 교리를 만드는 것을 우리는 조직 신학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7-26 10:36:0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 번역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원어, 영어의 많은 단어들이 복수의 뜻을 가진 경우가 많아 기계적인 번역이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는, 우리의 구원이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거기서 그분께서 흘려주신 고귀한 피를 믿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부활 믿음도 추가될 수 있으나 요점은 우리의 구원이 사람의 행위와 100%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배 출석, 새벽기도, 철야, 헌금, 구제, 선교, 전도, 침례(세례), 주의 만찬(성만찬) 같은 사람의 행위가 전혀 우리의 구원에 일조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런 것들은 구원받은 이후에 주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들이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이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3장 역시 이를 잘 보여 줍니다.   3 우리도 한때는 어리석고 불순종하며 속임을 당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쾌락을 섬기며 악의와 시기 가운데 살고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였으나 4 사람을 향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친절과 사랑이 나타난 뒤에 5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6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원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 7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성경에는 마치 침례 같은 행위가 사람의 구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파/교단은 이런 구절을 사용해서 반드시 물 침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미국의 캠벨파 그리스도의 교회).   이런 분들이 이를 위해 사용하는 구절은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의 말만 떼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여기서 뒷부분만 보면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물 침례가 구원의 수단 혹은 구원에 일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신약성경의 전체적인 구원관과 전적으로 배치됩니다.   베드로의 말을 다시 보겠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여기서 중간에 들어 있는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를 빼 보면 어떨까요?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이렇게 하면 말이 됩니다. 참된 회개와 믿음은 항상 같이 다니므로 믿음으로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받는 것은 신약성경의 구원관과 일치합니다.   실제로 그리스어 구조를 보면 “회개하라”가 주동사로 되어 있고 “침례를 받아”는 보조동사로 되어 있으므로 죄들의 사면이 “회개하라”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데가 여기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적어도 두 군데가 더 있습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여기도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믿고”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구원 받는 믿음 이후의 일이지 ‘믿는 것’과 ‘침례를 받는 것’, 이 두 가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관련된 구절을 보겠습니다. 아나니야의 말입니다. 이제 네가 왜 주저하느냐?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 침례를 받고 네 죄들을 씻어 버리라, 하더라(행22;16).   여기도 뒷부분만 보면 침례를 받아 죄들을 씻는 것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주]의 이름을 부르며”라는 주요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부르면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믿음과 회개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도 중간에 낀 “일어나 침례를 받고”를 빼면 자연히 말이 됩니다.   이런 구절들을 대하면서 신약성경의 구원관이라는 차원에서 전체 문맥에 맞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행2:38을 오역이라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이것을 얼핏 보면 침례교 교리에 맞는 것 같지만 그리스말이나 영어의 구조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for the remission of sins’라는 말은 다른 데서 모두 “죄들의 사면을 위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을 그런 식으로 하려면 다음처럼 해야 더 정직한 것입니다.   죄들의 사면으로 인해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러나 이렇게 하면 구원 교리가 깨지므로 안 됩니다.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죄들의 사면이 있다고 하면 말이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길은 그리스말, 영어 등에 있는 것처럼, 지금 흠정역 번역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번역하고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구절을 가지고 물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누가 주장하면 설명해 주고 그래도 믿지 않으면 벗어나면 됩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 교리나 교파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문맥에 벗어나게 번역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위의 세 가지 예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6-22 13:03:12 | 관리자
안녕하세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며 이를 조금 더 풀면 즉 지나침은 부족함과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예 1: 영어습득과 학습적응에서 유학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믿음에 갓 초등학생에 입학한 어린아이까지 머나 먼 유학길에 오르더니 이젠 태아들도 덩달아 유학(?)을 떠나고 있다. 실로 ‘과유불급’이다.   예 2: 아무리 학생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뜻이라 해도 지나친 칭찬은 자제하십시오. 과유불급입니다.   이런 종류의 과유불급의 예가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우리 성경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모든 단어를 영감으로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 무오성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모든 단어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보다 더 위에 두면 과유불급이 됩니다.   이런 종류의 과유불급을 유발하게 하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138편 2절입니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주의 거룩한 전을 향해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진리로 인하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니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하셨나이다(시138:2).   I will worship toward thy holy temple, and praise thy name for thy lovingkindness and for thy truth: for thou hast magnified thy word above all thy name.   이것을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또 말씀을 높이려는 선한 의도를 지닌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들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하나님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만드셨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이들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의 여호와나 신약의 예수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성경의 모든 단어들 혹은 성경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보다 혹은 예수님보다 크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해석과 결론이 이렇게 나면 이것은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을 해석하였다고 해도 심각한 과유불급입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근본주의자들이 이런 예를 사용하곤 합니다.   일단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문장의 구조를 보기 바랍니다.   말씀을 이름보다 위로 더 크게 만든 분이 있으니 당연히 그분은 말씀과 이름보다 크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하나님 지체보가 더 크다는 것은 문장 자체가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과 동일하게 놓거나 그 이상으로 놓는 것은 과유불급이요, 합당한 해석이나 처사가 아닙니다.   자, 그러면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하셨나이다’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이름의 용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름은 어떤 존재를 다른 존재에게 알리는 데 사용되는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 정동수라는 이름을 말하면 저의 모든 것(집안, 학력, 직업, 가족 관계, 행한 일, 하고 있는 일, 성품)이 이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138:2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과 그분의 성품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삼하8:13을 봅시다.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시리아 사람 만 팔천 명을 치고 돌아올 때에 이름을 떨치니라.   이럴 때 다윗의 이름은 그가 소금 골짜기에서 시리아 사람 만 팔천 명을 치고 승리한 후 얻은 명성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식으로 이름이 사용된 예가 많습니다.   다음 예는 이름이 주님의 성품 즉 거룩한 성품을 표현한 것입니다.   높고 높으며 영원에 거주하고 이름이 거룩함인 이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것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 For thus saith the high and lofty One that inhabiteth eternity, whose name is Holy;   그러므로 시편 138편 2절은 다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또 인류를 향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계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알리고자 했던 모든 현현, 발표, 행위, 자신의 성품보다 명확성과 중요성 등에서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창조 세상이나 여러 가지 기적들도 다 주님의 이름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그분의 완벽함에 대해, 그분의 목적에 대해 성경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시편 19편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1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이니 3 그것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말이나 언어가 없도다. 4 그것들의 줄이 온 땅에 두루 나갔고 그것들의 말들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 그분께서 해를 위하여 하늘들 안에 장막을 세우셨으므로 5 해는 자기 침소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려는 힘센 자 같이 기뻐하는도다. 6 해가 하늘 끝에서부터 나아가며 그것의 순환 회로는 하늘 끝들에까지 이르나니 해의 열기에서 숨을 것이 없도다.   7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고 {주}의 증언은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주}의 법규들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9 {주}의 두려움은 깨끗하여 영원토록 지속되고 {주}의 판단들은 진실하고 전적으로 의로우니 10 그것들은 금보다, 참으로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해야 할 것들이며 또 꿀과 벌집보다 더 달도다. 11 주의 종이 또한 그것들로 경고를 받나니 그것들을 지킬 때에 큰 보상이 있나이다.   12 누가 능히 자기 잘못들을 깨달으리요? 주께서는 은밀한 허물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을 지키사 고의로 짓는 죄들에서 떠나게 하시고 그 죄들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곧바르게 되어 큰 범법에서 벗어나 무죄하리이다. 14 오 나의 힘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주}여, 내 입의 말들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1-6절은 창조 세상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 즉 그분의 이름입니다. 7-11절은 하나님의 말씀들이며 이 구절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들이 창조 세상보다 큼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혼을 회심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 결과가 12-14절입니다.   시편 138편은 특히 하나님께서 다윗의 혈통을 메시아 혈통으로 삼고 그의 왕좌를 메시아 왕좌로 삼으실 것에 대해 다윗이 감사의 찬송을 드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삼하7 참조).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것 즉 그분의 이름을 드러내는 모든 것보다 그분의 메시아 왕국에 대한 말씀이라는 계시가 더 크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138:2에서 기초는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의 모든 명성과 성품이고 그 기초 위에 놓인 것은 즉 약속의 말씀을 그분께서 친히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말한 시138:2의 의미입니다.   여기의 이름은 예수나 여호와가 아니고 여기의 말씀은 성경책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심각한 과유불급이 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5-31 16:25:1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시편 49편 5절에는 조금 이상한 말이 있습니다.   5 내 발꿈치의 불법이 나를 에워쌀 그 악한 때에 내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랴? Psalm 49:5 Wherefore should I fear in the days of evil, when the iniquity of my heels shall compass me about?   다른 성경들은 이것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개정: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바른: 나를 속이는 자의 악이 나를 둘러쌀 때에 어찌 내가 재앙의 날들을 두려워하랴? 공동: 악을 꾸미는 자들이 나를 뒤쫓고 노려보아도 이 곤경에서 나 어찌 두려워하리.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에 있는 대로 발꿈치(스트롱 번호 6120)를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직역해 놓으니 조금 이상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이 있어 글을 씁니다.   일단 1-5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너희 모든 백성들아, 이것을 들으라.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이라. 2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함께 들을지어다. 3 내 입이 지혜를 말하리니 내 마음의 묵상은 깨달음에서 나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하프를 타며 나의 은밀한 말을 열리로다. 5 내 발꿈치의 불법이 나를 에워쌀 그 악한 때에 내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랴?   먼저 요약을 하고 설명하겠습니다.   요약: 하나님 앞에서 내 죄들이 처리된 이후에 성도는 다시는 그것들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1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5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혼을 무덤의 권능에서 구속하시리니 그분께서 나를 받아 주시리로다. 셀라.   중요 단어: 불법(iniquity, 즉 내가 부당하게 행한 것), 발꿈치: 발의 뒷부분   설명: 내가 불법을 저지른 뒤 거기서 도망가면 내 불법은 내 뒤에(발꿈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 죄들은 어느 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나를 찾아낼 것입니다. 내가 뒤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 내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5절의 compass라는 단어의 뜻) 나를 에워쌌고 나는 과거의 죄들에 의해 에워싸이게 되었으므로 그 죄들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1-2절에 있듯이 이 일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납니다.3-4절 역시 같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죄들이 우리 뒤에 있고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내(시편 기자) 비유 혹은 가르침은 그것이 틀림을 입증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시 자기 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내가 이 죄들을 대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이 죄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 죄들을 다 해결하였습니다.   49편 5절: 내가 그날이 오는 것을 두려워해야만 할까요?49편 6-11절: 이 세상의 재물 등은 이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49편 15절: 오직 하나님께서 내 혼을 구속하실 것입니다.49편 16절: 그러므로 재물이 많은 부자들이 심판 날에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잠언 11장 4절을 보기 바랍니다.   재물은 진노의 날에 유익을 끼치지 못하나 의는 사망에서 건지느니라.   이런 것을 기억하면서 시편 49편을 쭉 읽어 보기 바랍니다. 특별히 발꿈치의 불법이 우리를 에워쌀 때에도 주님이 우리의 변호자가 되심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큰 평안이 있을 줄 믿습니다.   샬롬   패스터   시편 49편   1 너희 모든 백성들아, 이것을 들으라.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이라. 2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함께 들을지어다. 3 내 입이 지혜를 말하리니 내 마음의 묵상은 깨달음에서 나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하프를 타며 나의 은밀한 말을 열리로다. 5 내 발꿈치의 불법이 나를 에워쌀 그 악한 때에 내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랴? 6 자기 재물을 신뢰하고 자기의 많은 부를 자랑하는 자들 중에 7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형제를 구속하거나 그를 위해 [하나님]께 대속물을 바쳐서 8 (그들의 혼을 구속하는 일은 귀중하며 그것은 영원토록 멈추어 있도다.) 9 그가 여전히 영원토록 살게 하며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할 자는 아무도 없도다. 10 지혜로운 자들이 죽고 어리석은 자와 짐승 같은 자도 그와 같이 멸망하여 자기 재물을 남들에게 남기는 것을 그가 보는도다. 11 그들은 속으로 자기들의 집은 영원히 지속되며 자기들의 거처는 모든 세대에 이를 줄로 생각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따라 자기들의 땅을 부르는도다.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귀함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계속 머무르지 못하나니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13 이처럼 그들의 길이 곧 그들의 어리석은 일이로되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그들의 말에 찬동하는도다. 셀라. 14 그들이 양같이 무덤에 놓였은즉 사망이 그들을 먹을 것이요, 곧바른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지배하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이 그들의 거처를 떠나 무덤에서 소멸되리로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혼을 무덤의 권능에서 구속하시리니 그분께서 나를 받아 주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부하게 되고 그의 집의 영광이 늘어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17 그가 죽을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며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하리라. 18 그가 비록 살면서 자기 혼을 축복하였을지라도 네가 네 자신에게 잘 행하면 사람들이 너를 칭찬하리로다. 19 그가 자기 조상들의 세대에게로 가리니 그들이 결코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함 가운데 거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2017-05-23 14:24:48 | 관리자
출2:18의 르우엘과 민10:29의 라구엘은 같은 이름입니다. 히브리어로 רְעוּאֵ֣ל 동일한데, 민수기의 라구엘은 영어로 번역하는데서 르우엘(출2:18의 사람 이름과 같음)을 라구엘로 번역한 것입니다. 두 단어 모두 strong number 7467로 같습니다. 역대상1:35절의 르우엘과도 정확히 동일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기바랍니다.
2017-02-07 11:29:45 | 황규계
안녕하세요? 사람의 구원과 관련해서 우리는 먼저 사람의 구조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triune God)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역시 영, 혼, 몸으로 구성된 삼중적 존재triune being)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사람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인데 기존 성경들은 여기에서도 전 세계 모든 성경과 달리 특이하게 번역을 하여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개역/개정: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킹제임스 흠정역: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사람이 몸(흙)과 영(생명의 숨)이 합쳐진 혼이라는 것인데 기존 성경은 이것을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이런 성경을 쓰다 보니 영이 없는 사람(창세기 1장)이 있고 영이 있는 사람(창세기 2장)이 있다는 ‘이중 아담론’이라는 이단 교리도 나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산 영’(living spirit)이면 결코 죽지 않는데 그러면 도대체 무슨 부활이 필요하며 ‘살려 주는 영’(quickening spirit)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개역/개정: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혹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킹제임스 흠정역: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KJB: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고전15:45에서 개역/개정에서 ‘산 영’(생령)으로 번역된 그리스말 ‘푸스케’(yuchv0, psuche {psoo-khay'})는 그리스어를 조금만 공부해도 누구나 ‘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성경은 이미 창세기 2장 7절에서 ‘살아 있는 혼’을 ‘산 영’(생령)이라고 번역하였으므로 틀린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전15:45를 ‘산 영’(생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후에 나온 개정성경도 과거 개역성경을 쓰던 성도들의 반발이 두려워서인지 이 실수를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NIV, ASV, NASB, 바른 성경, 현대인의 성경 등도 바르게 번역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NIV: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ASV: And Jehovah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바른: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현대인: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산 존재가 되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NIV: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ASV: So al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바른: "첫 사람 아담은 생명체가 되었다." 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다. 현대인: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존재가 되었다.' 라고 쓰여 있으나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성경에는 혼이라는 단어가 535회 나오는데 대부분의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서 4장 12절 같이 꼭 혼이 나와야만 말이 되는 구절에서만 혼을 혼으로 번역했습니다.   개역/개정: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그리고 이런 곳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혼을 영혼이나 자(者) 등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개역/개정/공동: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출12:15) 바른: 누구든지 첫날부터 칠일까지 누룩 넣은 빵을 먹는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이다. 킹제임스 흠정역: 누구든지 누룩 있는 빵을 먹는 혼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개역/개정: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욥7:11)   킹제임스 흠정역: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이 번민 중에 말하며 내 혼이 고통 중에 불평하리이다.   바른: 그러므로 내가 내 입을 다물지 않고 내 영의 고통 때문에 말하며, 내 혼의 쓰라림 때문에 탄식합니다(바른 성경은 바르게 번역함).   위의 욥기를 보면 영과 혼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지만 개역/개정성경은 이것을 전혀 구분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영혼’으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정확성이 떨어지므로 이런 성경으로는 바른 교리를 정립하기가 어려우며 영어로 쓰인 기독교 관련 서적을 번역할 때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자기 교회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을 전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미국 사람들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전도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진짜 전도입니다. 이 경우에 그들은 ‘혼을 구원한다’는 뜻을 가진 ‘soul winning’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나가서 사람의 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에 하나님께서 많은 혼을 구원한 사실을 잘 보여 주지만 기존성경은 이런 것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자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행2:41). 개역/개정: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바른/현대인/공동번역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혼은 사람 자체를 말합니다. 흙으로 빚은 몸에 영이 들어가니 사람이 완전한 인격체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혼이라는 단어는 거의 다 사람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런 차원에서 NIV, 바른 성경, 현대인의 성경은 등은 의역을 하여 혼이라 쓰지 않고 ‘살아 있는 존재’, ‘생명체’, ‘산 존재’등으로 표기하였습니다. 다음에는 혼의 용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의 모든 단어를 있는 그대로 번역한 ‘믿을 수 있는 성경’입니다.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9 10:35:26 | 관리자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저는 빌립보서 2장 12절의 번역 문제를 두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워크아웃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http://blog.naver.com/pastor-jung/220888080687   킹제임스 흠정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빌2:12).   KJB: Wherefore, my beloved, as ye have always obeyed, not as in my presence only,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그런데 구원받은 성도로서 구원에 합당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 그 사람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고 그 이후의 성화는 본인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기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 이후의 선한 행위에 대한 보상은 전적으로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데 잠시라도 이렇게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성경은 이런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바로 다음 구절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빌2;13).   KJB: For it is God which worketh in you both to will and to do of [his] good pleasure.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구원 이후에 선한 행위를 하려는 마음을 주시고 그렇게 하도록 그들을 이끄시는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즉 이 일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영어를 보시면 ‘work in’ 즉 워크인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워크아웃하려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워크인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의 워크인을 성도가 좋아하고 순종하면 선한 행위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됩니다.   이리 되면 엡2:8-9의 순서가 성경적으로 이루어집니다.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8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9 Not of works, lest any man should boast. 10 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unto good works, which God hath before ordaine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한번 위에서 살펴본 모든 구절들을 영어로 보시기 바랍니다. ‘일로 드러내다’, ‘안에서 일하다’, ‘행위’, ‘선한 행위’ 등이 모두 work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이 단어를 일, 행위 등으로 나누어 번역하다 보니 work의 개념을 잡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심지어 작품으로 번역된 workmanship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일해서 만든 것'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일을 해야 합니다.   여하튼 구원받은 뒤에 구원을 워크아웃하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워크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영원토록 내주하시므로 워크인이 가능하며 우리가 순종하며 나아가면 구원의 워크아웃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어떤 구절에 의문이 생기면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워크인으로 우리의 구원을 워크아웃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9 09:38:1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빌립보서 2장 12절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며 설명을 요청해서 잠시 글을 씁니다.   개역/개정/공동/바른성경 등: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흠정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KJB: Wherefore, my beloved, as ye have always obeyed, not as in my presence only,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NIV: Therefore, my dear friends, as you have always obeyed--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기존 성경대로 읽으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은 평생 과정이 됩니다. 이분의 의문은 과연 구원이 평생 과정인지 아니면 구원받은 뒤 성장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본인은 후자가 맞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교회에서 이 구절을 설명할 때는 죽을 때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구원이 이루어지는 뉘앙스로 말하므로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구절에 베드로전서 2장 2절이 합세하면 구원은 필경 죽을 때까지 이루어지는 평생 과정이 되고 맙니다. 개역/개정/공동/바른성경 등: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NIV:  Like newborn babies, crave pure spiritual milk, so that by it you may grow up in your salvation,   NIV는 ‘구원 안에서’ 성장하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깨끗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은 완전히 다릅니다.   흠정역: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KJB:  As newborn babes, 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that ye may grow thereby:   킹제임스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은 아기들로서 즉 새롭게 다시 탄생한 자들로서 말씀을 먹어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을 때까지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두 구절이 합세하면 구원은 일생 동안 끊임없는 전투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과정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에베소서 2장 8-10절 말씀과 완전히 상반됩니다.   흠정역: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의 구원과 성화는 간단합니다. 태어난 뒤 말씀을 먹으며 자라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구원이고 말씀을 먹으며 자라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성화입니다.   성화의 최종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흠정역: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엡4:13)   그러면 빌립보서 2장 12절의 work out(워크아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을 잘 번역하지 않으면 구원이 평생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는 종종 워크아웃 기업 이야기를 듣습니다. 기업이 상태가 부실하면 여러 가지 구제책을 써서 제 기능을 하는 바른 기업으로 만드는 과정이 워크아웃입니다. 워크아웃을 하려면 먼저 그 기업이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없는 기업은 워크아웃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기억하면서 빌2:12를 이해하면 됩니다.   여기의 ‘너희’는 이미 구원받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갓 태어나서 아직 모든 것이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말씀을 먹으면서 성장하여 워크아웃을 해야 합니다. 즉 본인들의 구원을 일로/행위로 성화 과정을 통해 밖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work out: to bring about by work, effort, or action.   다시 말씀 드립니다. 워크아웃은 이미 있는 것을 제 궤도로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자들만 구원을 일로/행위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평생을 벌벌 떨면서 일로/행위로 두려움 속에서 순종하며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천주교의 구원 방식입니다.   이러한 워크아웃의 결과가  14-16절에 나옵니다. 14 모든 일을 불평이나 시비가 없이 할지니 15 이것은 너희가 흠이 없고 무해한 자 곧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민족 가운데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런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세상에서 빛들로 빛나며 16 생명의 말씀을 제시하나니 이로써 나는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지 아니하고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한 것에 대해 그리스도의 날에 기뻐하리라(빌2:14-16).   이렇게 될 때 베드로전서 2장 2절, 에베소서 2장 8-10절과 동일한 해석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빌2:12의 워크아웃은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다’로 이해하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기존 성경처럼 ‘구원을 이루라’고 하면 안 됩니다. 너희가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그것을 너희 삶으로 나타내 보이라고 해야 말이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출생과 성장과 동일합니다.일단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것은 출생입니다. 이것은 구원입니다.그 뒤에 젖을 먹고 자라며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장입니다. 이것은  성화입니다. 즉 사람은 먼저 태어난 뒤 출생을 워크아웃해서 출생의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출생이 안 된 사람은 워크아웃을 못합니다. 평생토록 어머니 뱃속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출생을 이루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것의 의미를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은 성경 번역의 대본인 본문이 달라 생긴 문제이므로 천주교 소수 본문을 번역 대본으로 사용하는 한 어느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바른 본문인지는 현명한 독자께서 이미 간파하셨으리라 믿습니다.이런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려고 하면 아주 쉬운 일입니다.   흠정역: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7 10:05:27 | 관리자
<하나님은 한 분이신가?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안녕하세요?   삼위일체야말로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특이한 것이며 사실 이 교리로 인해 많은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삼위일체를 가르쳐야 할 성경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을 가르친다면 그 결과가 어떨까요?   개역/개정/바른/현대인/공동: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역번역: God is one person. 딤전2:5) 킹제임스 흠정역: 한 하나님이 계시느니라(영어 KJV: There is one God).   이런 번역 문제는 본문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며 번역자들이 원어나 영어 자체를 또는 성경 교리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보통 기독교는 유일신교(Monotheism)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대개 이 말이 한 분의 신(one person God)을 믿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유일신교는 여러 신(many gods)이 아니라 한 하나님(one God)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God is one). 한 분이 아니라 하나이십니다(신6:4-5; 사45:5-6; 엡4:4-6, 딤전2:5,).      킹제임스 흠정역: 4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신6:4)KJB: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개역/개정: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바른 성경(공동, 현대인 등): 들어라. 이스라엘아,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고, 여호와는 한분이시니    개역/개정은 한 하나님, 한 주에 가깝게 ‘하나이신 여호와’라고 번역하였으나 다른 성경들은 모두 한 분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NIV는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으로 하여 한 분은 피하였습니다.   한 하나님, 한 주의 ‘한’은 복합적 단일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장 24절에는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창2:24).    즉 남자와 여자가 둘이지만 복합적 의미의 한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절대적 하나를 나타내는 ‘야케드’(Yachead)라는 말은 총 12번 나오지만(창22:2; 슥12:10의 only) 이 단어는 단 한 번도 ‘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구약성경에서 복합적 하나를 나타내는 ‘에카드’(Echad)는 ‘무리가 하나로 모인 것’ 등을 나타내며 한 주, 한 하나님의 ‘한’은 이것을 표현합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창1:26)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창3:22)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a.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벧전1:2; 롬1:7 등) b. 아들은 하나님이시다(요1:1; 요20:28; 요일5:20) c.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행5:3-4)         그런데 개역/개정성경처럼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여호와의 증인들 주장대로 하나님은 한 분 즉 아버지 하나님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한 분이 아니며 아버지, 아들, 성령님의 뚜렷한 세 분으로 존재하시되 이 세 분이 하나이십니다.    기존 성경들은 야고보서 2장 19절 역시 번역을 잘못하였습니다.   개역성경 등: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하나님이 한 분이기 때문에 귀신들이 떨까요?이상하지 않습니까?   실상은 그러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KJB: Thou believest that there is one God; thou doest well: the devils also believe, and tremble.   마귀들은 한 하나님인 존재하시며 그분이 심판하실 줄 알기에 떠는 것입니다.   심지어 NIV도 이 점을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NIV: You believe that there is one God. Good! Even the demons believe that--and shudder.   그러므로 이런 번역은 영어나 원어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 것이지 본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야말로 너무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의 근간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흠정역: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그런데 기존 성경들은 알렉산드리아 철학을 따라 요한일서 5장 7절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개역: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6 09:49: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기독교는 유일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믿습니다.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므로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이런 속성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삼위일체(Trinity)입니다.   삼위일체는 참으로 중요한 교리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예로부터 이로 인해 여러 이단들이 생겼고 한국에서도 많은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으며 심지어 복음적인 교단의 목사들이나 지도자들도 이런 이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태론이 이단인 이유는 무엇인가'는 양태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양태론자들은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을 가졌으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한분 하나님께서 모양만 성부, 성자, 성령의 다른 형식(forms)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령의 인격은 사라지고 단일한 신격만 남게 되어 이단 사상이 되어 버린다. 전형적인 양태론은 같은 하나님이 창조 시에는 성부 하나님으로, 구속에는 성자 하나님으로, 성화 때는 성령 하나님으로 활동한다고 본다. 즉 양태론은 교회의 정통적 삼위일체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58123/20120913/조덕영-칼럼-양태론-이-이단인-이유는-무엇인가.htm   예를 들어 누가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요,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성도들에게는 목사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이 곧 양태론입니다. 또는 “물은 얼음도 되고 액체도 되고 수증기도 된다.”는 주장 역시 양태론에 근접한 진술입니다.    이렇듯 양태론의 핵심은 한 하나님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고 성령님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분명하게 이단 교리라고 말합니다.   한국에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이고 성령님의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하며 그래서 침례를 줄 때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으로 준다.”고 합니다. 이런 이론이 생기게 된 것은 전적으로 기존 성경의 번역 때문입니다. 이들은 요한복음 17장 11절을 근거로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합니다.   개역: 나[예수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개역성경뿐만 아니라 개역개정, 바른 성경, 공동 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에 분명하게 예수라는 이름이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기에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합니다. 그들이 성경대로 그렇게 믿는다고 주장해도 도저히 반박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대로 믿는다고 주장하므로 본심은 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교리는 결코 이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한편 킹제임스 성경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흠정역: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KJB: And now I am no more in the world, but these are in the world, and I come to thee. Holy Father, keep through thine own name those whom thou hast given me,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로 되어 있습니다. 즉 개역성경에는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자들 즉 믿는 자들을 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다르면 교리가 변할 수밖에 없고 순진하게 성경대로 믿으려 하다가 오히려 이단이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것은 번역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 본문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과 목사들이 알고 있듯이 성경 번역의 대본인 본문(Text)은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개역성경 등의 모체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에서 나온 소수본문(Minority text) 혹은 비평 본문(Critical text)입니다. 그래서 같은 본문에서 나온 NIV, NASB 등도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임을 보여 주며 그 결과 예수 유일주의 같은 이단 교리가 발붙일 틈을 주고 있습니다.   NIV: I will remain in the world no longer, but they are still in the world, and I am coming to you. Holy Father, protect them by the power of your name--the name you gave me--so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    이제 성경적 삼위일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뚜렷이 구분되는 서로 다른 세 인격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한 하나님으로서 이 세 인격체 중 하나가 없으면 한 하나님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간을 생각해 봅시다. 시간은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며 각각이 다 시간이고 이 셋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시간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공간을 차지하면서 반드시 길이(x), 너비(y), 높이(z)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물체가 아닙니다. 아무리 얇은 것도, 작은 것도 반드시 x, y, z 세 방향의 크기를 가지며 이로써 그 물질이(혹은 공간이) 구성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증거들을 우주에 많이 만들어 두셨습니다.   확실한 삼위일체 하나님 –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 을 우리의 유일한 주님으로 삼고 굳건히 세상을 이기며 나갑시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6 09:00:41 | 관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인가요, 세계 혹은 계보인가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마태복음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인가요, 세계 혹은 계보인가요?”라는 질문을 주셔서 답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가 맞음을 보여 줍니다. 먼저 대상 성경 구절을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마1:1).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이 세상 성경 중에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 신약 성경 서두에 “세대에 대한 책이라”(The book of the generation)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역본들은 개역성경처럼 ‘책’을 삭제한 경우가 많고 또한 ‘세대’를 ‘계보’(genealogies) 혹은 개역성경처럼 ‘세계’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역 성경인 NIV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예수그리스도의 족보 기록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의 ‘책’은 엄연히 그리스어 본문에 있으며 이 말은 그리스 말로 ‘비블로스’이고 영어로는 이 단어가 곧 ‘바이블’ 즉 ‘성경’이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단어를 삭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1장 1절에서 이렇게 ‘세대에 대한 책’이라고 선언한 뒤 2절부터 16절까지 단 15절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마태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혹은 계보에 대한 책이라면 당연히 책 전체가 족보를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태복음은 첫 장에서 단지 15절만 족보를 다룹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복음이 족보(계보)를 기록한 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 킹제임스 성경대로 마태복음이 세대에 대한 책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세대는 무엇일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먼저 ‘세대’(generation)라는 단어를 이해하려면 시편 22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시편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30, 3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씨가 그분을 섬기리니 [주]께서 그것을 한 세대로 여기시리라. 그들이 와서 앞으로 태어날 한 백성에게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되 그분께서 이것을 행하셨음을 드러내리로다(시22:30-31).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널리 알리는 씨는 곧 그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믿으면 주님께서 그 씨를 단 한 세대로 여기십니다. 따라서 ‘세대에 대한 책’이라는 말씀은 신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며 바로 거듭난 성도들이 이 책을 들고 주 예수님의 의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께는 자식들(children)은 있어도 손자들(grandchildren)은 없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성경적으로도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형제입니다. 손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한 세대입니다.   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 한 세대로서 모두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대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이 쉽게 풀립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마24:34).   예수님은 33절에서 분명히 제자들(너희)에게 말씀하셨으며 35-42절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 뒤 문맥으로 보아 여기의 세대 역시 그분을 섬기는 씨의 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마12:45에서 ‘사악한 세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세대에 대해 동일한 정의를 적용하면 이 사악한 세대는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어찌 되었든지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은 단지 한 세대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단지 시편 22편만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14:5; 24:6; 73:15; 78:6, 8; 102:18; 112:2; 사53:8; 렘7:29; 마23:36; 24:34; 막13:30; 눅21:32; 행8:33; 벧전2:9 등.   거기서 그들이 큰 두려움 가운데 있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들의 세대(generation) 안에 계시기 때문이로다(시14:5).   그는 감옥에도 가지 못하고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generation)를 밝히 드러내리요? 그는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으며 내 백성의 범법으로 인하여 매를 맞았도다(사53:8).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generation)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 구절들은 다 같은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것이야말로 성경 공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용어색인 즉 ‘Concordance’가 필수적입니다.   스트롱 코드 혹은 스트롱 번호는 무엇인가요?(용어 색인)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0   끝으로 신약 성경은 맨 처음에 책에 대하여 언급하고 맨 마지막에도 책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계시록 22장 1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신약성경에서 저주가 기록된 곳은 단지 여기뿐입니다. 이 저주는 ‘이 책의 말씀에 더하거나 거기서 빼는 자들을 향한 저주’입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이 1차적으로는 계시록이라고 믿으며 또 신약 성경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이 저주는 온갖 종류의 성경 비평가들 곧 성령님께서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 성령님께서 성경을 보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성경이 바르게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성령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보존되었다고 주장하면 그들은 우리를 가리켜 “마귀 들렸다” 혹은 “무식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세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첫 아담의 세대를 도입하면서 역시 창세기 5장 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세대들(generations)에 대한 책이라(창5:1).   5장 1절 이후에는 계속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즉 첫 아담의 세대들(generations)은 다 죽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의 세대(generation)에 속하면 살게 됩니다. 할렐루야!   결론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의 마태복음 1장 1절은 오역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세대를 이해하게 되면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12-15 10:43:56 | 관리자
'비유가 아니면’인가, ‘비유가 없이는’인가?   한국의 대표적 이단 중의 하나인 신천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마태복음 13장 34-35절을 인용합니다.   개역: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들은 34절 즉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사용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모두 비유이며 심지어 창세기 이후의 모든 성경 말씀이 다 비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비유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 혹은 단체(물론 신처지이겠지요)에게 성경을 배워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에도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들의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그들의 성경이 말하니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비유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성경 전체가 비유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사실 바른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마태복음 13장 34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들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이해가 부족함을 아시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요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쉬운 비유(예)를 들어 핵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존 성경에서 ‘비유가 아니면’으로 번역된 구는 영어로 ‘without a parable’이며 이것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비유가 없이는’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 성경 중 이것을 ‘비유가 아니면’으로 오역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의역 성경으로 유명한 NIV도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카톨릭 성경도 ‘비유를 들지 않고는’이라고 바르게 번역하였고 공동 번역도 ‘비유를 쓰지 않고는’이라고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개역성경을 번역한 대한성서공회는 이런 심각한 오류를 알고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 성서 공회는 2024년에 새 한글 성경을 발간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구절이 ‘비유를 들지 않고서는’이라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 성서 공회는 이런 오역을 신속히 발표하고 고쳐야 합니다.   이런 간단한 말씀이 기존 개역성경처럼 잘못 번역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무지 속에 빠뜨립니다. 성경의 오역으로 사이비 종파에 속아 넘어가 궁극적으로 생명을 잃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들(words, 단어들)을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정확히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구절의 번역이 의심쩍거든 꼭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구글 앱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이 성경의 앱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고 개역성경과 대조해서 비교해 가며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의 영감과 보존도 중요하지만 번역 역시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2016-12-15 10:15:2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국의 대부분 성도들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 셈이 맏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셈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의 특별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창5:32, 6:10, 7:13, 대상1:4에는 셈이 가장 먼저 나오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셈은 첫째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들의 조상이요, 연장자(형)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창10:21)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셈이 셈보다 ‘나이 많은 자’(the elder) 즉 연장자 야벳의 동생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기존성경은 다음과 셈이 형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역개정 등 :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한국 성도들의 장자 축복 개념은 대개 셈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음은 김경래 교수님이 쓴 <창세기 1-11장의 난해 구절 성경의 미스테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제가 쓰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이야기를 제시하려 합니다.   참고로 김경래 교수님은 총신대와 이스라엘 Institute of Holy Land Studies(M.A.)를 졸업하고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사본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전주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 노아 세 아들의 연령별 순서   일반적으로 노아의 세 아들은 셈, 함, 야벳의 순으로 일컬어진다(창 5:32, 6:10, 7:13, 9:18, 10:1, 대상 1:4). 대부분의 성경 독자들은 이러한 배열로 인하여 그들의 나이 역시 같은 순서대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노아에게 셈, 함, 야벳의 순서로 아들들이 태어난 것인가? 우리는 성경 본문을 통하여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어 번역본들에 나타나는 성경 오역이 바로 그것이다.   개역성경은 창세기 5장 32절을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 조그만 글자로 인쇄된 '된 후에'는 원문에 없으므로 문맥을 고려하여 번역문에 삽입한 것이다. 표준새번역 역시 이를 같은 뜻의 "노아는 오백살이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창세기 5장 32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노아가 오백 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이다.   이 문장을 통하여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노아가 오백 세 되던 해에 세쌍둥이가 태어났다. 둘째, 이들 세 아들이 노아가 오백 세 되기까지 차례대로 태어났다. 셋째, 노아가 오백 세 되던 해 첫 아들이 태어났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다른 두 아들도 태어났다. 히브리어 어법 상 앞의 두 가지보다는 세 번째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역과 표준새번역 둘 다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고찰해야 하는 구절은 창세기 10장 21절이다. 우선 우리말 번역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개역은 이를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라고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은 "야벳의 형인 셈에게서도 아들딸이 태어났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다"라고 번역함으로써, 둘 다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들 번역문은 과연 히브리어 원문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여기서 '야벳의 형'이라고 번역된 문제의 구절을 원문 및 고대 번역문인 칠십인역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이 두 가지로도 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데 충분하다고 본다.   창세기 10장 21절의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 본문은 ('악히 예펫 하가돌')이다. 마소라 학자들이 고안해낸 엑센트와 모음 부호를 무시할 경우 이 히브리어 구절은 두 가지의 직역이 가능하다. 첫째, '야벳의 큰 형제', 둘째, '큰 야벳의 형제'이다. 다시 말해서 '크다'('하가돌')라고 하는 형용사가 '야벳'과 '형제' 중 어느 것을 수식하느냐에 따라 이 문구의 해석이 달라진다. '야벳'을 수식할 경우 야벳이 형이 되고, '형제'를 수식하면 셈이 형이 된다.   마소라 학자들이 고안해낸 엑센트 부호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구두점 역할일 것이다. 마소라 성경의 엑센트는 여기서 '크다'가 '야벳'을 수식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마소라 학자들은 야벳을 셈의 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칠십인역 역시 마소라 학자들의 견해를 지지해준다. 이 구절에 대한 칠십인역의 번역문에 있어서 명사 '야벳'과 형용사 '크다'는 동일한 2격(소유격)을 취하고, '형제'는 3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큰 자'는 셈이 아니라 야벳인 것이다.   셈이 야벳보다 더 어리다는 사실은 창세기 11장 10절을 통하여서도 찾아볼 수 있다.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는 아르박삿을 낳았고"라는 이 기술에 의하면, 셈이 일백 세가 된 것은 홍수 후 이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이레 후 곧 2월 17일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40일을 내렸으며(창 7:9∼12), 노아 홍수는 햇수로 볼 때 2년이나 지속된 장기간의 대사건이었다.   '홍수 후 이년'(슈나타임 악하르 하마불')이란 히브리어 문구는 분명히 홍수 사건이 완전히 끝난 후 또 두 해가 흐른 뒤의 일임을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에게 노아 나이 육백 세와 육백일 세의 두 해는 홍수가 일어난 해로 기억되었을 것이고, 그 후 두 해(노아 나이 육백이 세와 육백삼 세)가 지나 노아의 나이가 대략 육백사 세(혹은 603)가 되던 해에 셈은 나이 백 세가 되어 아르박삿을 낳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셈은 노아가 오백사(혹은 503세)세가 되던 해에 태어난 셈이 된다. 이상 고찰한 바를 창세기 5장 32절("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과 묶어서 볼 때 셈은 결코 노아의 맏아들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노아는 분명히 500세에 맏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아가 504(혹은 503)세일 때 태어난 셈은 그의 맏아들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맞는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들의 조상이요, 연장자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창10:21) 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   이상으로 우리는 야벳이 셈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을 고찰해보았다.   그러면 사실 창5:32, 6:10, 7:13, 대상1:4에는 왜 셈이 가장 먼저 나올까요?   성경은 많은 경우 나이가 아니라 중요도 순으로 사람들을 배열합니다.   대상1:28,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이삭과 이스마엘이니라.   사실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살이나 많습니다.   또한 성경은 둘째 사람들의 책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사울과 다윗, 첫때 아담과 둘째 아담, 구약과 신약   하나님은 두 번째 사람 혹은 사건 등을 통해 중요한 일을 수행하십니다.   이런 자료를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고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입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12-14 09:19:4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