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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약6827개
  아이 서쪽의 도시. 이곳은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었으며(창12:8; 28:10-22) 야곱은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가 여기서 꿈을 꾸고 루스라는 이름 대신 이곳을 벧엘이라 불렀고(삿1:23)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다시 그곳에 장막을 쳤다(창35:1-15). 여호수아가 이곳을 점령해서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으나(수12:9; 18:22) 에브라임 사람들이 여기서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냈다(삿1:22-26). 여기에 언약궤와(또 성막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며(삿20:27; 삼상10:3) 사무엘은 여기서 순회 재판을 열었다(삼상7:16). 그러나 솔로몬 이후에 이곳은 심각한 우상숭배 본거지가 되었다. 여로보암은 이곳이 예전에 거룩한 곳이었으므로 이곳에 금송아지 두 마리 중 하나를 놓았고(왕상12:29) 그래서 대언자들은 벧엘을 대적하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했으며(왕상13:1-2; 렘48:13; 암3:14; 7:10) 요시야 때에 이런 대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왕하23:13). 또 그 후에 벧엘의 황폐로 인해 다른 말씀들도 성취되었으며 그 결과 거기에는 폐허만 남게 되었다.    
2009-07-05 00:55:10 | 관리자
  벧엘 동쪽에 위치한 사막이나 장소(수7:2; 18:12; 삼상13:5; 14:23). 벧아웬에 금송아지들이 세워졌기 때문에 이곳은 벧엘을 대신해서 수치스런 용도로 거명되었는데(호4:15; 10:5)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뜻하고 벧아웬은 ‘죄 혹은 우상의 집’을 뜻한다.    
2009-07-05 00:54:39 | 관리자
  한 곳은 갈릴리 바다의 남동쪽 40킬로미터에 있었고 다른 곳은 갈릴리의 막달라 근방에 있었는데 여기에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요새로 된 굴들이 있었다(호10:14).    
2009-07-05 00:54:09 | 관리자
  므낫세에게 주어진 도시. 이곳은 요르단의 서부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예스르엘 골짜기의 끝부분에 위치했으며 이스라엘은 한 번도 이곳을 정복하지 못했다(수17:11, 16; 삿1:27). 사울 왕의 죽은 몸이 이곳의 성벽에 묶여 있었다(삼상31:10, 12; 삼하21:12; 왕상4:12).    
2009-07-05 00:53:42 | 관리자
  헤브론 근처에 있던 유다의 산간 도시(수15:58). 르호보암은 이곳을 강화하였고(대하11:7) 느헤미야 시대에 이곳의 치리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을 도왔다 (느3:16).  
2009-07-05 00:53:05 | 관리자
  I. 제사장들에게 준 유다의 도시(수21:16; 삼상6:15; 대상6:59).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단과 블레셋 족속의 경계 근처에 있었다(수15:10; 삼상6:12). 아마도 수19:41의 이르세메스와 이곳은 같은 곳일 것이다. 이곳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싸워서 아마샤가 패한 것으로 유명하며(왕하14:12-14) 또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하나님의 궤가 돌아온 장소로, 그 궤를 더럽게 한 사람들이 벌을 받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삼상6:1-21). 분단 왕국 지도 참조(31).  II. 이집트의 유명한 도시(렘43:13).    
2009-07-05 00:52:34 | 관리자
  재판관 입다의 시절에 있었던 암몬 자손의 마을(삿11:33). 이곳은 헤스본에서 북동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두로의 시장에 좋은 밀을 제공하였다(겔27:17).    
2009-07-05 00:51:03 | 관리자
  사울의 작은딸. 그녀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나 사울은 마지못해서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그녀를 그에게 내주었다(삼상14:49; 18:20-29).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보낸 암살자들의 손에서 자기 남편을 구하고 그가 탈출할 수 있는 계략을 베풀었다(삼상19:14-15). 그 후에 그녀의 아버지 사울은 그녀를 발디에게 주었으나(삼상25:44) 다윗은 몇 년 뒤에 그녀를 되찾았다(삼하3:12-21).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그녀는 그가 매우 기쁘게 뛰노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그 결과 왕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삼하6:16-23). 신앙심 측면에서 자기 눈에 멋지지 못하게 열심을 보인 것을 미워한 그녀의 감정은 자기 남편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강했고 그 결과 그녀는 화를 자초하여 자식 없이 죽었다.    
2009-07-05 00:50:00 | 관리자
  I. 아합이 여호사밧과 함께 시리아 사람들을 치려 할 때에 여호사밧의 요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자문을 구한 대언자. 그는 충성스럽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아합에게 대언하였고 그 결과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후에 그는 감옥에서 나왔고 아합은 그의 예언대로 싸움터에서 죽었다(왕상22:8-38). 이 일에서 아합이 드러낸 어리석음은 말씀의 빛을 거부하는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 준다. II. 유다의 통치자. 그는 유다의 백성을 개혁하고 그들을 깨우치려는 여호사밧의 노력을 인정하고 동의하였다(대하17:7-9).    
2009-07-05 00:48:23 | 관리자
  I. 유다의 서쪽에 있던 모레사 출신의 대언자. 그는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일곱 번째 인물이며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50년 동안 대언하였다. 그는 대언자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그의 표현과 비슷한 표현이 그의 글에서도 발견된다(사2:2와 미4:1, 사41:15와 미4:13 등 비교). 그가 담대하게 주님을 섬긴 것은 그로부터 1세기 후에 나타난 대언자 예레미야의 방패가 되었다(렘26:18-19; 미3:12). 그는 고상하게 또 격렬하게 글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글에는 여러 번의 장면 전환도 나온다. 그의 대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과 심판,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는 것, 그들의 원수들이 심판 받는 것 등과 관련이 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오심이야말로 그가 묘사하는 영광스런 장래의 모든 소망의 기초임을 보여 주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한 여인의 아들로 태어날 것을 정확히 대언하였고(미5:2-3) 유대인들은 그것이 메시아 출생에 관한 것으로 이해했다(마2:6; 요7:41-42). II. 재판관 시대에 살던 에브라임 사람. 그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의 재판관 시대에 자기 어머니에게서 1,100세겔을 훔쳤다가 그것을 되돌려 주었으며 자기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그 돈으로 개인의 성스러운 장소를 만들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형상을 세우며 또 복을 받기 위해 레위 사람을 자신의 제사장으로 고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우상숭배를 멸시하시고 단 족속의 군대를 보내어 그의 제사장 요나단과 그의 우상숭배 기물을 강탈하게 하였다(삿17:13).    
2009-07-05 00:47:23 | 관리자
  요나단의 아들. 그는 므립바알이라고도 불렸다(대상8:34). 므비보셋은 그의 아버지가 길보아 전투에서 죽을 때에 아주 어렸으며(삼하4:4)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그의 유모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떠나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그는 평생 동안 자리를 절었다. 다윗은 평화롭게 왕국을 다스릴 때에 자기와 요나단 사이의 우정을 생각하고 사울의 집에서 남은 자들을 찾아 친절을 베풀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므비보셋에게 그의 할아버지 사울의 재산을 주었으나 후에 그는 그의 종 시바의 속임수로 인해 그 중 일부를 잃게 되었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 때에 다윗을 생각하며 충성스럽게 지냈으나 시바의 모함과 다윗의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재산의 일부를 잃게 되었다(삼하9:1-13; 16:1-4; 19:24-30). 그 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 사울 집에 속한 사람들을 내어줄 때에 그를 불쌍히 여겨 살려 주었고(삼하21:1-14) 이로 인해 사울의 또 다른 아들인 므비보셋이 죽게 되었다(삼하21:8).    
2009-07-05 00:46:44 | 관리자
  I. 홍해와 시내 산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 여기서 그들은 주님을 향해 불평하였는데 이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바위에서 샘이 나오게 하였다(출17:1-7). 이곳은 시험이라는 뜻을 가진 맛사라고도 불렸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거기서 하나님을 시험하였기 때문이다(신33:8; 히3:8). II. 가데스 근처의 신 광야에 있던 또 다른 기적의 샘(민20:13-14). 이곳은 모세와 아론이 죄를 범한 곳이며 이 죄로 인하여 그들은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곳은 므리바의 물이라 불리기도 하며(신33:8; 시81:7; 106:32) 므리바가데스라 불리기도 한다(민27:14; 신32:51; 겔47:19).    
2009-07-05 00:46:02 | 관리자
  고대 바빌론 사람들의 우상. 이것은 화성의 신으로 추정된다(렘50:2). 바빌론 왕들의 이름에도 이 말이 첨가되어 에빌므로닥, 므로닥발라단 등의 이름이 생겼는데(왕하25:27; 사39:1) 후자는 브로닥발라단이라고도 불린다(왕하20:12).  
2009-07-05 00:45:24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마리아 : 천지의 여왕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가 죽을 때 주님께서 그녀를 하늘로 끌어올리시고 그녀에게 ‘천지의 모후’ 혹은 ‘만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마리아)는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제1편 p. 366 #966]. 여기서 다시 한 번 카톨릭 교리와 하나님의 말씀은 정면 충돌을 일으킵니다. 성경 말씀은 전혀 그런 교리를 가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가르침을 책망합니다. 예레미야서 44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배도하여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으로 알려진 거짓 여신에게 예배하는 행습을 보게 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불러일으켰음을 알게 됩니다. 너는 그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보지 못하느냐? 자녀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여인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과자를 만들어 하늘의 여왕에게 바치고 다른 신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음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키느니라(렘7:17-18). 어째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여왕이라 불리는 거짓 여신에게 예배했을까요?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 전해 내려온 사람들의 전통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 입에서 나간 것을 반드시 이행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행하던 대로 곧 우리와 우리 조상들과 우리 왕들과 우리 통치자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행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으리라. 이는 그때에는 우리에게 양식이 풍부하고 넉넉하여 아무 재난도 보지 아니하였으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 붓는 일을 그만 둔 뒤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으로 진멸을 당하였음이니라, 하며 또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을 때에 어찌 우리 남자들의 허락도 없이 그 여왕에게 과자를 만들어 경배하고 음료 헌물을 부었으리요? 하니라(렘 44:17-19). 카톨릭 주의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이교도들의 그 동일한 종교 의식을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방 종교 본서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호기심 있는 카톨릭 교인들은 ‘하늘의 여왕’을 섬기는 많은 거짓 종교들을 연구함으로써 카톨릭 주의와 그것들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 사실에 매혹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여신들을 지칭하는 데 그토록 자주 사용되었던 이름을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주셨다고 말하는 카톨릭 주의의 주장은 참으로 놀랄 만한 것입니다. 누가 높임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카톨릭 주의는 마리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높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하늘들 위로 높임을 받으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보다 위에 있기를 원하나이다(시57:5). 주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어다(시18:46). 주여, 주의 능력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이와 같이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양하리이다(시21:13).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을 알지어다. 내가 이교도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땅에서 높임을 받으리로다(시46:10). 땅의 방패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백성의 통치자들이 함께 모였으니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라. 그분께서 크게 높임을 받으시리로다(시47:9). 주는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높은 곳에 거하시며 공의와 의로 시온을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이라(사33: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라는 이름은 943회 나오며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533회 그리고 주 예수라는 이름은 115회 나옵니다.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기록하고 있고 신약의 나머지 책들도 그분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저 손에 꼽을 정도로 등장하며 결코 어떤 것의 여왕으로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빌2:9-10).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 하더라(계5:12). 누가 모든 영광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전4: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예수님)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행5:31). 무슨 일이 반복되는지 아시겠지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려고 힘쓰는 반면 카톨릭 주의는 예수님을 끌어내리고 마리아를 높이려고 애씁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찌해서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한 여자에 의해 대치되고 무시당하는 것입니까? 결    론 카톨릭 주의는 주님께서 마리아를 ‘천지의 여왕’(Queen of all things)의 반열로 드높이셨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격노케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신뢰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의 전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하여금 다 예수라는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또 모든 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2009-07-03 14:08:5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