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각 전치사가 사용된 문맥을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36절)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를 향해 입을 여셨을진대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신 아버지 입다를 만나자마자, 딸은 참담한 마음으로 탄식하시는 아버지를 봅니다.
- 35절과 36절 사이에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즉, 탄식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딸은 영문을 몰라 그 이유를 묻습니다. 입다는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해 줍니다. 아버지가 하나님께 서원하고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는데 그만 네가 나왔구나. 아버지는 너를 ‘{주}를 위하여 드린 자’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 비로소 영문을 알게 된 딸은 먼저 ‘내 아버지여’라고 아버지를 부르고는 말을 잇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서원을 들으시고 암몬 족속들에게 원수를 갚아 주셨으니까 서원을 제게 행하셔요라고 동의하고 권해 드립니다. 이때 딸이 아버지에게 즉답으로 한 말은 단순히 내게(to me)입니다.
-
(37절)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 입다는 이제 자기에게 생긴 커다란 운명의 변화를 생각합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위해 ‘{주}를 위하여 드린 자’가 되는구나. 내가 원해서 택하는 삶은 아니지만 ‘{주}를 위하여 드린 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나도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지. 다만, 처녀로 평생을 살면서 여자로 태어나 메시야를 수태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너무 애통한 일이구나.”
- -그래서, 딸은 아버지에게 그 애통함을 풀기 위해 아버지에게 두 달간의 말미를 구합니다. “내게(for me) 이 일을 행하시되”라고. 하나님께서 이 단어를 쓰심으로써 우리는 입다의 딸의 마음이 어떠함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for me)’라는 것이 딸의 마음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 이때까지는 입다의 마음이 자기 실수로 인한 비참함과 괴로움에서 벗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39절)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 두 달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딸은 친구들과 함께 산에서 실컷 애곡하고 마음의 정리와 준비를 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헌신의 마음으로 아버지께 돌아 왔습니다.
- 입다도 처음에는 예기치 못하게 딸을 하나님께 드려 헌신하게 될 줄 몰라서 참담한 심정이었으나, 두 달의 기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겠습니다.
-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께서 내 딸을 거룩히 구별해서 받으시겠다고 딸이 그때 집 문에서 나를 맞이하게 하셨겠지.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딸에게 선하게 해 주심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자. 딸에게도 이것이 더 나은 일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 그래서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with her)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단어를 쓰심으로써, 우리는 입다가 딸과 함께(with her) 마음을 합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제사장 앞에서 아버지는 딸을, 딸은 자신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주}를 위하여 드린 자’로 드리는 의식을 행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 가지 다른 전치사가 동일한 문맥에서 사용된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중의법을 사용하여 입다의 딸의 마음과 입다의 마음을 각각 37절과 39절에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중의법이라는 수사법이 황진이도 알고 춘향전 작가도 알고 또 저까지도 알고 있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수천 년동안 말씀해오신 하나님께서 그런 걸 모르고 그냥 아니면 어휘 자랑하시려고 그렇게 다른 전치사들을 동원하셨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기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짐짓 그렇게 다른 단어로 우리에게 성경 기록을 주신 뜻이 무엇일까 하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여 보았고,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뒷풀이)
히브리서에서 바울은 입다를 포함한 믿음의 본이 되는 장로들에 대해 이야기를 다 하려면 자기에게 시간이 부족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할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와 또 다윗과 사무엘과 대언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라.
그런데, 과연 우리는 입다에 대해 믿음의 본이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개역(개정) 성경을 쓰는 한국 교계에서는 입다의 딸이 번제 헌물로 죽었다고 버젓이 죽은 사실을 추가해서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게 믿고, 따라서 ‘입다’와 ‘믿음의 본이 되는 장로’를 연결시켜 생각하기에 심히 곤란을 느낍니다. 단지 서원해서 전쟁 승리하고 돌아온 것 하나죠. 거기다 잘못된 서원으로 딸을 번제 헌물로 바친 비운의 사나이 정도. 인터넷에서 입다란 검색어로 찾아보면, 내용 소개는 나와 있어도 어느 한 사람 제대로 입다를 본받을 믿음의 사람으로 실질적인 내용을 소상하게 거론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목회자 분은 솔직히 입다가 믿음의 본으로 히브리서에 올라 있지만 자기는 별로 찾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작고하신 박윤선 목사의 주석에는 입다의 딸이 죽지 않고 처녀로 살아서 성전에서 봉사하는 나실인처럼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입다가 동생들에 의해 집을 쫒겨나서 돕 지방에 거하는 동안 허영심 많은 자들이 찾아와서 나다녔다는 기록을 통해 입다의 마음 속에 이복 동생들에 대한 미움의 골이 깊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쫒겨나기 전까지는 길르앗 지방의 머리인 아버지 길르앗의 슬하에서 교육도 잘 받고, 아버지의 유업을 이을 장남으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지만, 아마도 아버지 별세 후에 집을 쫒겨나서 바깥으로 나다니면서 자신의 믿음과는 반하는 방황하는 세월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입다가 장남이라고 쓴 것은 단지 저의 추정이며, 몇째 아들인지는 성경 기록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딸을 사랑하였고 집안에서는 바깥에서처럼 행동하지 않았나 봅니다. 입다의 딸이 한 말을 볼 때, 1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그 나이에 딸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잘 교육된 순종하는 자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을 고려하여 자신의 운명을 주저하지 않고 바꾸겠다고 작정하었습니다. 39절을 읽으면서 저는 산에서 애곡하고 돌아온 딸과 함께 서원 의식을 행하는 입다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애달프고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저렇게 딸을 훌륭하게 믿음으로 키웠을까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입다가 믿음의 본이 되는 장로 중에 한 사람으로 등재된 것은,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전쟁에서 승리하게 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미움의 골이 패인 동생들에 대해서 자기가 길르앗의 머리가 된 후에도 아무런 복수를 하였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처럼 자신만 믿음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외동딸까지 믿음의 선한 교육을 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판을 후세에서까지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입다가 승리하고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입다의 딸이 나오게 하심으로써, 이전에 이방신들을 섬기다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간구하는 이스라엘을 돌아보셔서, 입다가 비천한 삶을 살다가 전쟁 승리로 일약 길르앗의 머리가 됨으로써 교만하여지고 이스라엘에게 사사로서 올바로 행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이런 일들이 생기도록 하셨을 것으로도 저는 생각합니다.
(또 뒷풀이 예고)
이 글을 읽으시고 전혀 감흥이 없으시거나, 아직도 딸이 번제 헌물로 불태워졌다고 믿으시기 때문에 마음이 열리지 않으시는 분들을 위해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에 대한 문법적 설명을 추가로 올리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선하신 우리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생활을 해 나가도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15-05-02 21:17:29 | 최상만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히 1: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은 정말 다양합니다.
처음에는 말(말씀)으로만 하셨습니다. (“……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네가 어디 있느냐?”)
환상으로도 꿈으로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는 입에서 입으로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천둥소리, 비, 우박,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와 고멜을 사용하여 시청각 교육을 통한 말씀으로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신 후에는 하늘로부터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보다 더 놀라운 방식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기록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성경 기록은 또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해 주십니까?
율법서로, 역사서로, 잠언, 시가, 서신, 예언서로……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을 구사하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다양한 방식 중 제가 착안하게 된 또 하나의 방식을 소개드립니다. 다만, 하나님을 선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으로 믿으시는 분들은 동의하실 수 있으나, 하나님을 악하다고 믿으시는 분들은 결코 이해되지 않을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황진이의 시입니다.
이 시의 내용 자체로는 “숲이 우거진 아무도 없는 산 위에 높이 떠 온통 산을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과, 그 아래 계곡을 따라 맑고 푸른 물이 거침없이 흘러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쉬임없이 흘러 가는 우리 인생은 다시금 되돌이켜 살 수 없음을 알고 여유를 내어 잠시 인생을 즐겨 보라.”는 뜻을 담은 시이며, 수학학에서는 “중의법”의 예로 자주 등장합니다.
이 시에서 벽계수는 계곡을 타고 흘러 내리는 맑고 푸른 물이지만, 이 시를 듣는 사람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또 명월은 밝은 달이지만 이 시(시조)를 지어서 들려주는 기생의 이름(기명)이기도 합니다. 한 단어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맑고 푸른 시냇물과 밝은 달로 시의 내용을 이어가는 것이지만, 속으로 정작 나타내고자 하는 말은 벽계수와 명월이란 사람 이름들입니다.
제가 보기로, 하나님께서도 이런 중의법을 사용했다고 생각되는 성경 기록이 있습니다. 사사기 11장입니다.
(11:30) 입다가 {주}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암몬 자손을 틀림없이 내 손에 넘겨주시면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떠나 평안히 돌아올 때에 무엇이든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맞이하는 것은 확실히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
(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11:35) 그가 그녀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네가 나를 심히 참담하게 하였으며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도다. 내가 {주}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매
(11:3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를 향해 입을 여셨을진대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11: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11: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11: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위의 글을 읽어 보시면, 어디에 그런 것이 있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번역의 특성상 우리말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해당 구절들을 뽑아 보았습니다.
(11:36) And she said unto him, My father, if thou hast opened thy mouth unto the LORD, do to me according to that which hath proceeded out of thy mouth; …………………
내게 행하소서
(11:37) And she said unto her father, Let this thing be done for me: ………………
내게 행하시되
(11:39)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o months, that she returned unto her father, who did with her according to his vow which he had vowed: and she knew no man.
그녀에게 행하니
우리말로는 모두 ‘내게’, ’내게’, ’그녀에게’로 번역된 말들이 영어로는 ’to me’, ’for me’, ’with me’로 각각 다르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to’, ’for’, ’with’ 모두 ‘~에게’란 의미가 있으며, 우리말 번역처럼 ‘~에게’로 읽어서 자연스럽게 의미가 통합니다.
다만, 왜 동사가 동일한 ‘do’인데, 하나님께서는 세 개의 다른 전치사들을 사용하셨느냐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의법을 사용하셔서 숨은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각 전치사의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
to
전치사
1. (이동 방향을 나타내어) …로[에], …쪽으로
8. 어떤 행동의 영향을 받는 대상을 나타냄
What have you done to your hair?
for
전치사
2. (…을 돕기) 위해
What can I do for you?
3. …에 대해
They are anxious for her safety.
with
전치사
1. …와 함께
3. …로, …을 써서[이용하여]
Cut it with a knife.
6. …에 대해, …에(게)
With these students it's pronunciation that's the problem. 이들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발음이
문제이다.
위에서 보듯이 세 가지 다른 전치사가 모두 우리말로 ‘~에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for와 with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또한 중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for는 ‘~을 위하여’, with는 ‘~와 함께’라는 뜻도 가지고 있죠.
2015-05-02 21:15:25 | 최상만
네~ 그렇습니다.
3 이들이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고 명령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사 진리를 믿고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게 하셨느니라.
4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선하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나니
5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히 구별되었느니라.(딤전4:3~5)
디모데전서 4장에 하나님의 창조물로 만들어진 음식 중에 감사함으로 받아서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짐승의 피를 유독 특별하게 생각하시는데 여러 나라에서 피 또한 하나의 음식이 된 지 오래입니다.
우리도 선지와 순대 등을 먹습니다.
다음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 영상을 시청해 보세요.
*기독교의 권리장전 (행 15:1~31)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write_id=330
설교 영상이 시작되고 33분 정도 지난 후에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참조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5-05-02 20:55:02 | 김대용
답변 갑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음식에 관하여는 이견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따르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피는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피에 대한 것도 음식과 똑같이 적용해도 될까요?
2015-05-02 19:08:34 | 송성규
송성규 형제님 안녕하세요^^
문의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신약 시대 음식에 관한 바른 기준은 무엇입니까?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om&write_id=4592
지혜가 부족한 사람의 답변이나마 도움을 얻으시기 원하며
진리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05-02 18:59:50 | 김대용
안녕하세요
성경공부를 하다가 의문이 생겨서 물어보려고 합니다.
창(9:7), 레(7:26-27) 등에서 하나님께서 무슨 피든지 먹는 것이 죄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은혜 아래있고 이런 명령은 율법아래있는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 입니다.
그런데 행(15:28-29) 에 보면 우상에게 바친 음식, 피와 목매어 죽인것 등을 금하고 있는데
비록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않지만, 아직 까지도 피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규제를 받고 있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요?
답변을 하실 수 있는 성도님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5-05-02 18:15:10 | 송성규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마태복음 5장 10에 보면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란 말씀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음으로 인하여 또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을 성경에서는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오용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제가 이전에 장로교회에 어떤 여 집사님을 알고 있는데 그는 자주 교회에 와서 자신이 가족들에 의하여 핍박을 받고 있는 다고 하면서 교인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고 울면서 기도를 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한번은 눈 덩이가 시커멓게 멍이 들어가지고 교회에 와서 남편에게 맞았다면서 기도 부탁을 하면서 우는 것을 보았다.
그 여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집사님의 가정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인데 봄에 모를 심는 시기라서 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바쁘게 보내는 때였었다.
그런데 그 시골 장로교회에서 하필이면 그 바쁜 모심는 계절에 일주일 동안 부흥집회를 하고 있는데 그 여 집사님이 가족들이 모를 심는데도 함께 도와주지 않고 밥도 제대로 안 해주고 교회당에만 가서 있으니 남편이 하도 화가 나서 참다못해 아내를 나무람 했는데 아내는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남편에게 대들다가 그날 맞은 것이다.
내가 그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맞을 짓을 했고 오히려 하나님이 남편을 통해 그를 징계를 한다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여 집사님은 자신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고 회개를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요 며칠 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하여 한국에서 [구원파]라고 하는 (기쁜소식선교회)라고 하는 곳의 박옥수 목사가 주식 사기를 쳐서 252억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제2 심판이 5월 달에 열린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면서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더욱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것은 그 교회에 교인들이 우리 목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있다면서 기도모임을 하고 금식을 하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박옥수 목사가 지금 하나님 앞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금식하면서 회개를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물론 나는 박옥수 목사가 정말 주식 사기를 쳐서 그 많은 돈을 챙겨 먹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그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고 해야 하는 것이 훨씬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박옥수 목사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바른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으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옳은데 지금 박옥수 목사의 죄명은 주식 사기요 252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챙긴 혐의이다.
그것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신고를 한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교파의 사람들이 신고를 한 것이 아니라 한 교회 안에서 집사로 일하던 사람들이 또한 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같이 하던 사람들이 신고를 해서 법적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라는 사람이 얼마나 돈에 대해서 명확한 선이 없었으면 돈을 뜯어먹고 사기를 쳤다는 그런 일로 법정 나들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한탄하고 통탄하면서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해야 하고 목회를 할 자격이 없는 목회를 그만 두고 교인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성경에 어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식 사기를 치먹고 돈을 뜯어 먹어서 법정 놀음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사도 바울이 그랬는가? 사도 베드로가 그랬는가? 아니면 디모데가 그랬는가? ........
있다면 헌금 통에 있는 돈을 몰래 훔쳐 먹는 가룟 유다밖에 없다.
그런데 박옥수 목사는 자신이 죄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교회에 많은 교인들은 우리 목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성경에 대하여 무식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써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이나 방법과 이익을 꺾어 버리고 순종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을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회개하라.
2015-05-02 17:39:19 | 시님사람
성경에 단 한번도 기록되지 않은 단어 recreate를 얄팍한 사람의 지식으로
비틀고 꼬아서 억지로 꿰어 맞춥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거론되지 않은 단어 Recreate를 생산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엔 그것을 진리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참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6일 창조 이전 곧 아담 이전에 대해 계시하신 내용이 극히 제한적이므로
사람의 영역과 관련된 창조말고 하나님 영역의 다른 창조(천사 등)는
결코 논쟁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없는 내용을 가지고 지체들을 분열시키며 혼란스럽게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상적인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상만 형제님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에 공감을 하며
바쁘신 가운데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5-05-01 09:38:53 | 김영익
최 상만 형제님 아주 재미있게 전개를 하셔서 웃으며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2015-05-01 07:05:42 | 이정순
(내용 추가 2015년 5월 1일)
재창조론에서 주장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막 10:6의 ‘창조의 시작부터’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은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 시작부터(from the beginning)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6). 창세기 1:1절부터가 아니라 창세기 1:27절에서 사람을 만드신 날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스스로 이 구절이 하늘과 땅의 창조가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그 대상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
………………………..
수정. 2015년 4월20일(내용 보충)
쉽고 단순한 진리!
그러나, 제 글에서 기술한 바처럼 이 주장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땅의 흙으로 아담만 지으셨지 처음부터 아담과 이브를 흙으로 만들어 두시고 남자와 여자로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쉽고도 단순하고 바른 진리입니다.
이처럼 명백한 오류를 인터넷 웹사이트 첫 페이지의 상단에 커다랗게 올려서 광고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추가 글을 게재하는 것을 염려하시는 성도님들도 계실 것입니다만, 더 이상 비진리가 판치고 진리를 혼탁하게 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추가 글을 게재합니다.
목회자도 아니요 아무 것도 아닌 작은 한 사람인 제가 부탁드립니다. 비록 목회자라 할지라도 정확하게 성경 말씀을 해석하여 바르게 성도들을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며,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는 일에는 목회자 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협력하고, 또 누구든지 진리의 목소리가 들리면 자신을 돌아보고 겸허히 그것을 수용하여 하루속히 시정조치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진리를 쉽고 단순한 진리로 포장하는 것은 그냥 보고만 있기가 대단히 민망스럽습니다. 제 글이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찌 되었든 사람은 모두 많든 적든 실수가 있고, 일시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는 고치고 나면 되고, 그때부터는 모두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모자라는 한 사람의 진심에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2015-05-01 04:07:48 | 최상만
the1
검색결과
(정관사)
1.
(1) (이미 나온 명사를 다시 언급할 때) 그, 저
I saw a dog. The dog had a piece of meat in his mouth.
(2) (이미 나온 사람·사물에 관련된 것, 또는 그 부분을 언급할 때) 그
There was a large tree there. The leaves were also large.
거기에는 큰 나무가 있었다. 그 잎도 역시 컸다.
(3) (이미 나온 것이 아닐지라도 그 장소의 상황·일상 생활에서 지시 대상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알 수 있는 명사에 붙여서) (※「그」 등으로 해석하면 부적당한 경우가 많음)
I've just been to the post office.
우체국에 갔다가 오는 참이다
(4) (한정어구를 수반하는 명사에 붙여서)
the book you gave me
당신으로부터 받은 책
2.
(1) (고유 명사나 그에 준하는 것에 붙여서)
the Atlantic대서양
‘the’는 학교에서 영어 배울 때 거의 처음에 알게 되는 단어이니까 다들 알고 계실 텐데, 어쨌든 문제를 풀자니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
사전의 정의를 보면, 재창조론 입장에서 쓴 위의 초록색 문장에서 ‘the creation’의 ‘the’는 (1) (이미 나온 명사를 다시 언급할 때) 사용하는 ‘그’란 뜻입니다.
But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즉, 사람들)의 창조를 시작하실 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창조론 입장에서는 부사구가 앞에 있는 그대로 파란색 문장인데, 그 때의 ‘the’의 뜻은 사전의 의미 중 (3) (이미 나온 것이 아닐지라도 그 장소의 상황•일상 생활에서 지시 대상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알 수 있는 명사에 붙여서) (※「그」 등으로 해석하면 부적당한 경우가 많음) 사용하는 ‘the’로서 ‘그’를 붙이면 부적당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이 문장에서는 ‘the’가 사전의 의미 (1) (이미 나온 명사를 다시 언급할 때) 사용하는 ‘그’란 뜻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창조하실 때의 남자와 여자가 위의 예수님 말씀에서 ‘이미 나온 명사로서 다시 언급하는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온 게 아니라 뒤에 나오죠.
그러니까, 부사구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가 뒤로 가면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로 되면서 위치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the’의 사전적 의미가 다른 것이 적용되게 되는군요.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성경 기록이 문장의 일부가 기록된 순서를 바꾸면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앞에 기록된 단어들을 뒤로 돌리는 것은 성경 변개가 되겠네요. 뜻을 변경시키게 되니까요.
그러면, 뒤로 돌리지 말고 앞에 있는 그대로가 옳은 것이죠. 변개되지 않은 그대로가 말입니다. 원래의 위치대로 둔 상태에서의 뜻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가 아니라 그냥 창조입니다. 사전의 의미 (3)을 보면 이 경우 ‘그’라고 해석하면 부적당한 경우가 많답니다. 우리말의 ‘그’도 앞에서 언급한 내용이 있어야 ‘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니까 앞에 언급하지 않은 창조를 ‘그’라고 붙여서 해석하면 안 되겠죠. 흠정역 성경에서는 ‘그’를 붙이지 않고 잘 번역하였네요. (창조의 시작부터)라고요.
여기서 일단, '창조의 시작부터'라고 번역된 것은 올바른 번역이다. 사람 창조의 시작부터라고 하는 것은 성경 변개에 해당된다.'는 결론을 내겠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시작부터라고 말씀하시려고 했다면 과연 어떻게 영작문을 하셨을까요?
저는 이렇게 하셨을 것 같습니다.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man(또는 me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또는
But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from the beginning of their creation.
이렇게 표현된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영어이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부사구를 뒤로 배치하지도 않으셨고, creation 뒤에 ‘man(또는 men)’을 쓰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고 이의를 달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기록된 대로 ‘창조의 시작부터’입니다. 부사구를 뒤로 옮긴다든지 없는 수식어를 마음 속으로 creation 뒤에 붙여서 읽는다든지 하면 안 됩니다.
2015-04-30 20:54:52 | 최상만
이제 [문제]로 돌아 갑니다.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문제]
위의 창조의 시작부터가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아십니까?
다음 셋 중에서 하나 고르시요.
(1) 6일 창조의 시작부터
(2) 사람 창조의 시작부터
(3)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부터
[틀린 답] (2)번
그러면, 정답은 (1), (3) 중에 있습니다. 재창조론의 답은 틀렸네요.
(1) 6일 창조의 시작부터가 답일까요?
일단 그렇다고 치고, 검토해 봅시다.
6일 창조의 시작은 언제죠?
- 첫째 날이요.
아담과 이브는 몇째 날에 창조되었다고요?
- 여섯째 날이요.
그러면 (1)번은?
- 틀렸어요.
네, (1)번도 정답이 아니네요.
그럼 정답은?
- (3)번이요.
네. 학생들이 (3)번이 정답이랍니다.
왜 (3)번이 정답인지는 홍승대 형제의 게시판 글 698번 (창조의 시작부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계 3:14)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And unto the angel of the church of the Laodiceans write; These things saith the Amen, the faithful and true witness,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God;
바리새인들이 이혼해도 되는지 질문한 것이 대해, 막 10:6에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은,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구별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특별히 사람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기 때문에 이혼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동물들도 암수로 구별해서 지으셨지만 사람처럼 짝지어 주신 것이 아니고, 그냥 자기들끼리 짝짓는 것이라는 뜻도 알게 되고요. 아담과 이브만 그렇게 짝지어 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들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잠이 깨어 자기 눈으로 보고 맘에 들어서 OK 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하고,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남자에게 여자를 짝으로 데려다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행하신 짝지어주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남편된 남자들은 하나님께서 데려다 주신 여자, 자기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면서 백년해로할진저!
[뒷풀이]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But from the beginni (1)hngt e creation (2) m(5) th(3)m male (4) female.
딤후 3:16에 의해 요소별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1)
창조의 시작부터:
부사구(시간적 언급)
(2)
[하나님]께서는:
주어
(3)
그들을:
목적어 (사람들)
(4)
남성과 여성으로:
목적보어
(5)
만드셨으니:
동사
재창조론자들의 주장:
강조를 하기 위해 부사구 “(1) 창조의 시작부터”가 문두에 있지만, 마지막으로 보내서 비강조 문장으로 고쳐 써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But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But (2) m(5) th(3)m male (4) female. from the beginni (1)hngt e creation
해석: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즉, 사람들)의 창조를 시작하실 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재창조론자들이 고쳐 쓴 성경 기록에서 ‘the’를 주목합니다.
But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먼저 영어 단어 ‘the’를 사전에서 찾아 보겠습니다.
2015-04-30 20:50:59 | 최상만
창조의 시작부터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창세기 1장
(1:26) ¶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1:27)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2장
(2: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2:8) ¶ {주}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에덴에 동산을 세우시고 자신이 지은 남자를 거기 두셨으며
(2:15) {주} [하나님]께서 남자를 데려다가 에덴의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셨더라.
(2:16)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18) ¶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
(2:19) {주} [하나님]께서 땅으로부터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을 지으시고 아담이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을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것이 그것의 이름이 되었더라.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날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그러나 아담을 위해서는 그를 위한 합당한 조력자를 찾지 못하였더라.
(2:21)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분께서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 살로 채우시며
(2:22)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24)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마가복음 10장 6절을 보겠습니다.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문제]
위의 창조의 시작부터가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아십니까?
다음 셋 중에서 하나 고르시요.
(1) 6일 창조의 시작부터
(2) 사람 창조의 시작부터
(3)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부터
이것이 대수롭지 않은 출제 문제인 것 같아도 창조론, 재창조론의 운명이 갈릴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1)번이 맞으면 안 되고, (2)번이 맞으면 재창조론이 무사하고, (3)번이 맞으면 재창조론이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것이 정답이면 좋겠습니까?
사전에 정답을 선호하시면 진리를 왜곡하게 됩니다. 그러지 마시고 성경 기록에 따라 답을 찾아야 합니다.
(벧후 1:19) 또한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이제 답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풀이]
막 10:6-9
(10:6)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10:7)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10:8)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그런즉 이와 같이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10:9) 그러므로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라.
위의 9절을 보면, ‘그러므로’가 힌트입니다. 즉,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므로, (7-8절: 둘이 결혼하되),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아님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므로, (7-절: 둘이 결혼하되),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맞음
어디가 다릅니까?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입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나누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이 나누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죠. 이혼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떻게 짝지어 주셨나요?
(1) 언제: 창세기 1장 여섯째 날에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심)
-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창 1:27)
(2) 어떻게: 창 2:19-23
어떻게 짝지어 주셨는지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창세기 2장
코멘트
(2:18) ¶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남자의 짝을 만드실 작정을 하셨습니다.
(2:19) {주} [하나님]께서 땅으로부터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을 지으시고 아담이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을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것이 그것의 이름이 되었더라.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날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그러나 아담을 위해서는 그를 위한 합당한 조력자를 찾지 못하였더라.
이브를 만들기 전에
들짐승과 날짐승을 한 번 더 지으셨습니다(아마도 암컷?). 아담한테 선 보여 주시려고.
그리고 아담에게로 데려 가셨습니다. (데리고 가시기 전에 얘들아, 아담한테 잘 보여라. 너희들 자태를 맘껏 뽐내어 봐라.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
그런데 아담은 그들을 이성으로 보지 않고 이름만 지어 주었습니다.
그 이름들 중에는 그 어느 것도 ‘여자’란 이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네 짝을 못 찾았구나.”하시고 가축, 날짐승, 들짐승들을 다 물리셨습니다.
(2:21)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분께서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 살로 채우시며
(2:22)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지금까지 아담이 헛수고만 잔뜩 했습니다.
그러나 소득이 있었죠. 저런 놈들에게 한눈 팔아 봤댔자 아무 소용 없어. 피곤하기만 하네. 잠이나 자자.
하나님께서 곤히 자는 아담에게 잘 자라고 부채질을 하셔서(?) 아담이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담이 잠든 틈에 아담 몰래 갈비뼈를 하나 취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아담이 자다가 깨어서 볼까 봐 안 보이는 곳으로 가셔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다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나 봐요.
드디어 아담이 기분 좋게 자고서 잠에서 깨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자를 다 만들어 놓으셨지만, 아담을 깨우지 않으시고 잠이 깰 때까지 기다려셨습니다. 혹시라도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여자를 데려가면 초면인데도 성질 낼지도 모르니까요.
자, 아담이 여자를 보고 어떻게 나올까요? 바야흐로 맞선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다른 말은 다 패스.
아담이 이름을 또 짓네요. 무슨 들짐승이나 날짐승한테 하듯이 말입니다.
아, 그런데 그 이름이 ‘여자’
드디어 짝을 만났습니다.
* 위의 코멘트에는 비성경적인 행위(하나님의 말씀에 추가)가 곳곳에 가해져 있으니 새겨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나요?
- 아니요. 처음에는 남자만 만드셨어요.
그럼, 그런 다음 곧바로 여자를 만드셨나요?
- 아니요. 들짐승도 만들고 날짐승도 만드셨어요. 가축도요.
그런 다음 여자도 만드셨나요?
- 아니요. 가축하고 들짐승하고 날짐승하고 만나서 선보고 이름 짓고 했어요.
아, 그러면 처음에 남자 만들고, 여러 번 단계를 거쳐서 제일 나중에 여자를 만드셨네요. 시간도 꽤 걸렸겠습니다.
- 네에.
2015-04-30 20:47:46 | 최상만
'replenish'를 정말' 바르게 나누어 연구'하셨네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논쟁에 있어 (적어도 킵바이블에서는)
질서있게 예를 갖추고 했다는 점이라 들고 싶습니다.
보통 한국사람들이 매우 감정적이라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논쟁하지 못한다는 통념을 어느 정도는 상쇄할만한 대처들을 해 주셨고,
그것이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의 성화되고 성숙한 성령님의 열매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글에 대응하는 또 다른 어떤 반응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논쟁이 있겠으나
적어도 이 킵바이블에서만큼은 진리를 추구하고 탐구하는 것과 아울러
질서있고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가 견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과 흠정역 성경이 지경을 넓혀가는 한 가지 경로가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바른 성경신자의 모습을 보여주신 많은 형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샬롬~
2015-04-30 06:26:56 | 정진철
자매님, 호주의 소식을 사진과 함께 전해주시니 너무도 반갑습니다
최성진 어르신께서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싶으셔서 열의를 갖으시고 애쓰시던 모습이
광주에있는 지체들에게도 큰 감동이었습니다.
호주 교회에서도 어르신 한 분을 위하여 언어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단 한사람을 위해" 라는 글구가 가슴 찡하게 다가옵니다
멀리서 귀한 소식 전해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2015-04-29 21:23:23 | 한재석
허광무 형제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성경신자를 '근본주의자' 라는 편협한 사고의 위험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넓은 길을 선호하는 나머지 교회들에게, '우리는 '진리' 라는 좁은 길을 사모한다' 라고 소리쳐서 외쳐야 하겠습니다. '진리'는 아무도 변궤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절대적인 존재 그 자체이니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4-29 15:35:31 | 한원규
최보승 자매님, 멀리 호주 시드니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셔서 저희 역시 큰 힘이 됩니다. 호주 멜버른의 최상만 형제님과도 연락하시어 같은 교민이자 침례성도간에 서로 힘이 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가 계속 되어지길 기원합니다. ^^
2015-04-29 15:01:17 | 한원규
자매님!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아버님께서 광주은혜침례교회에 출석하시면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확신하게 되셨다는 이야기가
더욱 각별하게 반가운 소식이네요.
부디 호주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을
깨닫는 분들이 갈수록 늘어나길 소망합니다.
2015-04-29 10:36:52 | 김대용
안녕하세요?
귀한 소식 감사드립니다.
호주에서도 귀한 모임들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4-29 09:39:25 | 관리자
먼 곳에서 온 정말 반가운 소식이네요.
글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느낌입니다.
우리말 흠정역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런 기쁨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2015-04-29 09:15:21 | 김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