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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enish'에 대해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하셨네요.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게시판을 다채롭게 해 주신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건강에도 신경을 쓰시고 항상 평안하십시오.
2015-04-28 11:28:27 | 김대용
우리가 쓰는 언어 습관을 보더라도 참 당연한 이야기를 다르게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셔 형제님이 시간을 많이 들이셨네요. 하지만, 명쾌하게 잘 정리해 주시고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리된 것 같습니다. replenish 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논쟁이 불필요 할 것 같습니다.
2015-04-28 11:13:02 | 홍승대
알기 쉬우면서도 논리적인 설명이네요. 히브리어에 없는 것을 집어넣는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콩 심은 데서 왜 팥이 나옵니까? 언어의 차이로 말의 흐름상 부득이하게 없는 단어를 넣을 때는 이탤릭체로 했는데 그런 장치도 없이 그들이 새로운 뜻을 추가해 번역했다니 말도 안 됩니다. 게다가 replenish는 특정 부분을 이탤릭체로 표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한 단어지요.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한다면서 그 권위를 이렇게 실추시키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전 역본들을 참조해 부지런히 번역'했어도 이전 역본에 재창조로 번역한 사례가 없고, 아예 이 단어에 재창조의 뜻 자체가 없던 시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믿음은 자유겠지만 없는 단어로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면 안 됩니다. 솔직히 이것은 '이역'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의미의 '재창조'입니다. 이것은 정말 난센스입니다. 재창조를 지지하더라도 최소한 이 단어는 재창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선언해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심적인 것입니다. 그 후에 다른 근거로 재창조를 증명해야 합니다. 최상만 형제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십시오~.
2015-04-28 09:10:57 | 김재욱
안녕하세요? 이런 방식으로 replenish를 연구한 사례는 저도 처음 봅니다. 성경 전체의 replenish를 요약/정리해 주셨네요. 친절하게도 심지어 재창조를 믿는 분들을 위해 셋째 가능성도 열어 두시고 끝에 가서 용례상 그런 가능성은 없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런 가능성 자체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재창조는 성경에 없기 때문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678 여하튼 논리적으로 모든 구절을 연구하여 귀한 진리를 도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4-27 22:30:11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하나님이 재앙을 창조했으니 입다의 딸을 인신제물로 바치라고 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 논리로 입다의 딸이 번제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기적과 같은 경우 비논리적으로 우리에게 보입니다. 그러나 기적이 아니라 섭리의 경우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상식에 맞게 일을 이루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입다의 딸은 결코 인신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입다의 딸은 처녀로 평생을 지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4-27 22:08:40 | 관리자
영어표현상 단순히 동일한 단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표현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단어의 사용규칙이 존재했네요, 형제님의 분석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성경을 더 깊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4-27 22:03:57 | 조양교
안녕하세요? 제가 주말에 전주/광주 지역에 다녀오는 사이에 이렇게 귀중한 글이 올라와 대단히 기쁩니다. 번역의 모든 과정을 일일이 알리지는 못합니다. 다만 최대한 우리말 문법 및 용례에 맞게 번역하였습니다. 무언가 특정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교묘히 무언가를 바꾸었다면 제가 그 일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회계보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 양심에는 그런 단어/시제/구절 등이 없습니다. 주의 두려움을 알면서도 그런 악한 일을 할 정도의 강심장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말답게 번역하려고 노력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말 용례에 대한 귀한 글이 여행 내내 저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4-27 22:00:51 | 관리자
평가 및 반론: (1)   성경 내장 사전은 어떤 단어가 성경에 처음 나온 곳의 의미가 그 단어의 뜻을 정의하는 것인데, 나중의 창 9:1에서 뜻을 정의 내지 확신하고 그것을 창1:28에 거꾸로 가져와서 그 곳의 뜻을 풀이하는 것은 역적용하는 원칙 위반이지 않은가요? 그 논거는 제척됩니다. (2)   흠정역에서는 ‘replenish’의 사전적 의미 중에서 ‘채우다’가 적절한 번역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채택했는데, 위의 논거에서는 다른 의미 ‘다시 채우다’를 적절한 번역이라고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가 다수의 의미를 가지는 ‘다의성’은 어떤 언어에서나 다 있지만, 이 경우처럼 동일한 의미 ‘채우다’에 ‘다시’라는 반복 개념만을 추가해서 다른 의미의 단어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단어를 사용할 때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입니다. 다의성이란 서로 다른 의미가 한 단어 안에 다수 있는 것이고, 의미가 같은 경우에도 사용처가 다른 경우에라야 혼란이 초래되지 않습니다. 같은 의미로 같은 사용처에 동일한 단어를 반복성만 추가해서 쓰는 다의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래 예화를 보기 바랍니다.   [식당에서] (손님): 야, 웨이터. 물 한 잔 블라블라. (웨이터): 네. (종이컵에 물 한 잔 채워서 가져다 줍니다.) (손님):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종이컵을 테이블에 놓았는데, 물 컵에 그만 파리가 한 마리 빠져버렸습니다. 에잇! 하며 테이블 아래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야, 웨이터 물 한 잔 블라블라. (웨이터): 갔다 드렸잖아요. (손님):   물 한 잔 다시 블라블라란 뜻이야 임마. (웨이터): 그럼 애초에 물 한 잔 다시 블라블라라고 하셨어야죠. 사람 헷갈리게. (손님):   이 자식이 뭐? 블라블라는 다시 블라블라란 뜻도 있잖아. (웨이터): 그건 그렇지만, 그냥 블라블라라는 뜻도 있잖아요. 같은 단어를 쓸 거면          다시 블라블라라고 하셨으면 오해가 없죠. (손님):   뭐야 임마? 꼬박꼬박 말 대답이야? 네가 오해할 거라고 내가 어떻게 알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어야지! (네, 결국 자기가 개떡같이 말했다고 스스로 자인하고 말았습니다.)   위의 예화에서는 블라블라란 단어가 가져와입니다. 가져와란 단어가 그냥 가져와란 뜻도 있고 다시 가져와란 뜻도 있어서 같은 상황에서 그 단어를 쓴다면 저런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replenish’의 사전적 의미에는 ‘채우다’도 있고 ‘다시 채우다’도 있는데 전자는 ‘사람이나 동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fill’은 그런 제한이 없습니다. 수정안으로 제시하는 후자의 의미는 전자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어떤 장소에 사람이나 동물이 가득 차는 것은 단시일 내에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격이 아닙니다. 일회성이죠. 특히 창세기 1장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반면에, ‘다시 채우다’가 하나의 단어로 쓰이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반복이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fill again’처럼 두 단어로 길게 말하지 않으려고 단어 하나에 반복 개념을 포함시켜 간편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replenish’가 ‘다시 채우다’로 사용되는 경우란, 컵에 물을 다시 채운다든지, 바구니에 사과를 다시 채운다든지처럼 손쉽게 단시간 내에 반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의미라야 합니다. 창 1:28에서처럼 온 땅을 사람이 다산하고 번성하여 채우는 것과 같은 장기간이 소요되는 상황에는 쓸 수 없는 단어입니다. 혹시라도 재창조를 전제로 하고 사람이 온 땅을 다시 채우라고 표현하려면 ‘replenish again’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3)   위의 ‘1. 주어가 달라서 다른 동사를 쓴 것일 수 있다.’에서 ‘replenish’의 ‘다시 채우다’란 의미를 땅을 채우는 것에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설사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또다른 불합리가 드러납니다. 다음 예화를 보십시오.    [다시 식당] (손님):   야, 웨이터. 물 한 잔 가져와. (웨이터): 네 (손님):   (조금 있다가 다른 웨이터에게) 야, 웨이터 물 한 잔 다시 가져와. (웨이터): 네? 제가 언제 갖다 드렸던가요? (손님):   아까 다른 웨이터가 가져와서 한 잔 마셨단 말이야, 임마. (웨이터): 에이 그럼 다시란 말을 하지 마셔야죠. 사람 헷갈리게. (손님):   뭐야 임마? 내가 다시 먹는 거니까 그렇게 말했지. 그런 것도 짐작 못해?          군소리 말고 물이나 가져와! (웨이터):  (혼잣말로) 에이, 자기가 잘못 말해 놓고 괜히 나한테 뭐라고 그래. ** 아마도 웨이터는 기분 좋게 물을 갖다 주지는 않을 겁니다.   재창조를 전제로 하고 ‘다시 채우다’라는 뜻으로 읽어 보면, 비록 하나님께서는 다시 채우게 하시는 것일지라도, 아담과 이브는 처음 채우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채우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바른 화법이 아닙니다.    결론: ‘replenish’는 ‘다시 채우다’란 의미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채우다’란 의미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22절에는 ‘fill’을 쓰고 28절에는 ‘replenish’를 사용하신 이유를 밝히기 위해 세 가지 단서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검토를 하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그 문장의 주어가 사람 또는 하나님이면 ‘replenish’를 사용하시고, 주어가 동물이면 ‘fill’을 사용하셨다는 것과, 그 때의 ‘replenish’의 의미는 ‘채우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5-04-27 20:14:20 | 최상만
그래서 창 1:22과 1:28절을 다시 찾아서 읽어 봅니다.   (1:22)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let fowl multiply in the earth.    (1:28)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th upon the earth.   22절에서는 동물들에게 바다를 채우라고만 하시고 별 다른 추가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28절은 땅을 채우라고 하신 다음 추가로 더 말씀하신 내용이 있네요. -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그러고 보니, 땅을 채우는 사람은 앞서 창조하신 생물들에 대한 정복자요 지배자네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사람을 지으실 때 애초부터 그렇게 하시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26절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1:26) ¶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그러니까,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이고, 그래서 다른 창조물들을 정복하고 지배하게 하셨구나, 마치 하나님께서 그리 하시는 것처럼”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특별한 백성’이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사람은 다른 창조물과는 다른 특별한 창조물로 보시는 것이네요. 그래서, 사전에서는 사람과 동물을 한데 묶어 ‘replenish’로 사용하는 것으로 표시해 두었지만, 그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이 채우는 것은 ‘replenish’, 동물이 채우는 것은 ‘fill’로 구별하기를 원하셨네요. 딤후 2:15에서 성경 기록을 바르게 나누라고 하신 말씀이 여기에도 적용되어야 하나 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성경의 내장 사전에 ‘replenish’의 의미를 “사람이 채우다”라고 정의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성경 기록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어 있는데, 이 정의대로  해석하면 될까요?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9:1) And God blessed Noah and his sons, an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9:1)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창 9:1에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땅을 채우라고 하시는 상황이니까 ‘replenish’로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받는 대상은 동물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앞의 내장 사전 정의가 여기에서도 바르게 적용된다는 것이 확인이 됩니다.   성경의 다른 용례들도 모두 확인해 보겠습니다.   KJB 흠정역 성경 replenish (창 1:28, KJV)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th upon the earth.』 (1: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주어가 사람 (주어 + 동사 + 목적어) (창 9:1, KJV) 『And God blessed Noah and his sons, an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9:1)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주어가 사람 (주어 + 동사 + 목적어) (사 2:6, KJV) 『Therefore thou hast forsaken thy people the house of Jacob, because they be replenished from the east, and are soothsayers like the Philistines, and they please themselves in the children of strangers.』 (2:6) ¶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백성 곧 야곱의 집을 버리셨나이다. 그들에게는 동쪽에서 온 것들이 가득하며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쟁이가 되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 가운데서 자신을 기쁘게 하나이다. 주어가 사람(주의 백성) 수동태 (주어 + 동사) (사 23:2, KJV) 『Be still, ye inhabitants of the isle; thou whom the merchants of Zidon, that pass over the sea, have replenished.』 (23:2) 섬의 거주민들아, 너희는 잠잠할지어다. 바다를 넘나드는 시돈의 상인들이 너를 가득히 채웠도다. 주어가 사람 (주어 + 동사 + 목적어) (렘 31:25, KJV) 『For I have satiated the weary soul, and I have replenished every sorrowful soul.』 (31:25)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 주어가 하나님 (주어 + 동사 + 목적어) (겔 26:2, KJV) 『Son of man, because that Tyrus hath said against Jerusalem, Aha, she is broken that was the gates of the people: she is turned unto me: I shall be replenished, now she is laid waste:』 (26:2)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살렘을 대적하며 말하기를, 아하, 백성들의 문이던 그녀가 부서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 주어가 사람(두로-나라) 수동태(주어 + 동사) (겔 27:25, KJV) 『The ships of Tarshish did sing of thee in thy market: and thou wast replenished, and made very glorious in the midst of the seas.』 (27:25) 다시스의 배들이 네 시장에서 너에 대하여 노래하였으며 너는 충만히 채워져서 바다들의 한가운데서 심히 영화롭게 되었도다. 주어가 사람(두로-나라) 수동태(주어 + 동사)   위에서 살펴본 바로는, ‘replenish’가 사람 또는 하나님이 주어인 문장에서 사용되었고, 동물이 주어인 용례는 없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정의한 ‘사람이 채우다’란 뜻에 배치되는 용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어로 사용된 것은 예외적인 사례이지만, 개념상으로는 배치되지 않습니다.   ** 참고: 사전에서는 ‘replenish’의 사용 예로서 “사람이 ~으로(사람 또는 동물로) 어디를 ‘채우다’”라는 형식으로 해서, 채우는 대상을 ‘with + (동물 또는 사람)’의 부사구 형태로 사용한 예가 나와 있기도 합니다. (예: I have replenysshed my pastours with catall, and my pondes with fysshe.) 그러나, 성경의 용례는 이처럼 부사를 동반하여 ‘채우다’를 표현한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모두 부사구의 목적어가 주어가 된 형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어는 복수입니다. 수동태의 경우는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다수의 그 무엇이 주어를 ‘채우는’ 것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경우도 주어는 사람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목적어가 달라서 다른 동사를 쓸 수 있다.   (22절) 다산하고 번성하여 바다의 물들을 채우고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28절)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22절은 목적어가 바다의 물들(the waters in the seas)이고, 28절은 땅(the earth)입니다. 바다를 채운다는 것은 바다 속을 채운다는 것이고, 땅을 채운다는 것은 지면 위를 채운다는 것이니까, 두 가지의 채우는 용기가 서로 다른 형태인 것은 사실이나, 채우는 동물이나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기들이 채우는 곳이 자기가 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고, 또 이 목적어가 달라짐으로 인해 ‘채우다’의 의미로 달리 사용되는 동사를 찾을 수 없으므로, 이것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겠습니다.   3.     의미가 달라서 다른 동사를 쓴 것일 수 있다.   논거:  흠정역 번역에서는 22 절의 ‘fill’을 ‘채우다’로 번역하고, 28 절의 ‘replenish’도 동일하게 ‘채우다’로 번역하였는데, 동사의 단어를 다르게 쓴 이유가 있으므로 동일하게 번역하지 말고 ‘replenish’의 여러 의미 중에서 다른 뜻을 채택하는 것이 두 동사를 다른 단어로 번역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성경 기록들의 다른 구절들을 참조해 볼 때 세상은 재창조되었으며, 옛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기 때문에, 이번에 창조된 사람이 땅을 채우는 것은 다시 채우는 것이다. 창 9:1에서도 노아의 홍수로 땅의 동물들을 쓸어버리신 후 하나님께서 똑같이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라고 하신 것을 보면, 성경 내장 사전에서 ‘replenish’는 ‘다시 채우다’는 의미임이 분명하다. ‘replenish’의 여러가지 뜻 중에서도 이에 부합하는 뜻(다시 채우다)이 있다.   수정안: ‘채우다’로 해서는 안 되고, 당연히 ‘다시 채우다’로 번역해야 한다.   평가 및 반론: (1)   성경 내장 사전은 어떤 단어가 성경에 처음 나온 곳의 의미가 그 단어의 뜻을 정의하는 것인데, 나중의 창 9:1에서 뜻을 정의 내지 확신하고 그것을 창1:28에 거꾸로 가져와서 그 곳의 뜻을 풀이하는 것은 역적용하는 원칙 위반이지 않은가요? 그 논거는 제척됩니다. (2)   흠정역에서는 ‘replenish’의 사전적 의미 중에서 ‘채우다’가 적절한 번역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채택했는데, 위의 논거에서는 다른 의미 ‘다시 채우다’를 적절한 번역이라고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가 다수의 의미를 가지는 ‘다의성’은 어떤 언어에서나 다 있지만, 이 경우처럼 동일한 의미 ‘채우다’에 ‘다시’라는 반복 개념만을 추가해서 다른 의미의 단어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단어를 사용할 때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입니다. 다의성이란 서로 다른 의미가 한 단어 안에 다수 있는 것이고, 의미가 같은 경우에도 사용처가 다른 경우에라야 혼란이 초래되지 않습니다. 같은 의미로 같은 사용처에 동일한 단어를 반복성만 추가해서 쓰는 다의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래 예화를 보기 바랍니다.  
2015-04-27 20:12:10 | 최상만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     창세기 1장 28절의 ‘땅을 채우라’의 영어 단어 ‘replenish’를 달리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어서 이 영어단어의 뜻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22절) 다산하고 번성하여 바다의 물들을 채우고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28절)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두 절을 비교해 보면 우리말 번역은 둘 다 ‘채우다’라는 뜻인데, 영어로는 ‘fill’과 ‘replenish’로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fill’도 ‘채우다’, ‘replenish’도 ‘채우다’니까 그렇게 번역했겠고, 또 히브리어 원문에도 두 곳에 동일하게 같은 단어 ‘말레’가 사용되어 있으니까 표면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말레’를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번역하면서 한 곳은 ‘fill’, 다른 곳은 ‘replenish’로 다른 단어를 사용해서 번역을 했고, 흠정역 성경이 원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했기 때문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다른 단어를 썼는데 왜 같은 우리말 단어로 번역했느냐고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최종 권위로 믿는데 그 성경에서 다른 단어를 사용한 취지에 따라 다르게 번역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어는 행동 또는 동작 중심의 단어가 발달하고, 한국은 감정이나 느낌 중심의 단어가 발달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늘이 파랗다고 해도, 영어로는 blue, 퍼렇다고 하는 말도 blue, 푸르스럼하다고 하면 뭐라고 영어로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반면에 영어로는 “get on, ride, take, drive, board” 등등 다양한 단어들을 우리는 모두 ‘타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맙니다. 그래서 영어를 번역할 때 다양한 행동을 달리 표현하는 영어 단어들을 우리말로는 일일이 구분해서 번역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제가 기행문을 쓰면서 집을 나서서부터 목적지까지 가는데 “처음에는 택시 타고 버스터미널 가서, 거기서 버스 타고 페리 터미널까지 가서, 거기서 배 타고 제주도 가서, 거기서 버스 타고 한라산 기슭까지 가서, 거기서 자전거 빌려 타고 한라산 관광 코스를 돌아다녔다.”라고 썼다면,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get on, ride, take, drive, board” 중에서 상황에 맞는 단어들을 골라서 쓰겠죠? 그런데, 이렇게 번역된 영어 문장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다고 합시다. 서로 다른 이 단어들을 모두 ‘타다’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죠?   창 1:28의 ‘replenish’는 히브리어 ‘말레’를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창 1:22의 ‘fill’도 같은 히브리어 ‘말레’를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을 읽는 사람이 히브리어 성경과 대조하면서 그 곳을 읽다 보니 한 곳은 ‘fill’로, 다른 곳은 ‘replenish’로 쓰여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말레’로 동일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히브리 사람(이스라엘 사람)에게 단어가 다르면 뜻이 다른데 왜 ‘말레’라고 똑같이 썼느냐고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마찬가지 이유로 영어로는 다른 단어를 썼더라도 우리말로는 같은 단어 ‘채우다’로 쓸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나 우리나 “너희는 구분해서 써라. 우리는 구분 안하고 쓴다. 우리 말로는 같은 단어라서 구분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언어가 발달하기 때문에 원문에는 구분되어 있지 않은 단어라 할지라도 후대에 와서 그것을 구분해서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였다면,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구분해서 표현하기를 원하셨다면, 어떻게든 구분해서 그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말레’란 말로 표현할 당시에는 개념상으로는 달리 생각하지만 용어가 ‘말레’라는 단어만 있어서 그 다른 개념들을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겠지만, 그것을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영어로 옮길 때 다른 개념을 명확히 드러내도록 표현할 수 있어서 그렇게 했다면, 우리말 성경을 번역할 때에도 그것을 우리말이 수용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정확하게 번역해야 하겠습니다. 단, 개념 자체가 정말로 다른 개념이라서 다른 단어로 구분해서 표현했는지는 먼저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이면 성경의 첫 장입니다. 거기서 ‘fill’이라는 단어가 22절에서 처음 나오고, ‘replenish’라는 단어가 28절에서 처음 나옵니다. 우리가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보통은 사전을 참고합니다만, 성경의 단어는 성경이 스스로 사전의 역할을 하는 ‘내장 사전’ 기능을 중시합니다. 세상 사전이 알려주는 뜻을 참고로 하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는 단어는 하나님의 글(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의미로 그 단어를 쓰셨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세상에 태어난 어린 아기가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과 행동과 표정들을 통해 말을 배우고, 하나 하나 단어의 뜻을 감으로 느껴서 체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말을 배우기 위해 사전을 참고하면서 부모가 하는 말의 의미를 해석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른이 사전을 보아 가면서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습득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사항을 가지고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파악하면서 하나님께서 쓰신 단어들의 뜻을 알아가게 됩니다. 어린 아기의 언어 습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인데, 그런 중에도 곳곳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단어나 표현 이 있으므로, 그러한 상황이 최초로 나올 때부터 세심히 주의해서 하나님께서 그 단어나 표현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를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다섯째 날에 하나님께서 큰 고래들과 물들이 낸 창조물과 날개 달린 날짐승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22)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let fowl multiply in the earth.   여섯째 날에 하나님께서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창조하시고, 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28)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th upon the earth.)   위의 22절과 28절에서 다같이 ‘채우다’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두 군데에서 다른 단어를 쓰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파란색 단어들입니다). 이럴 때 “왜지?”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그렇게 하셨는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전에 뒷 부분에 나오는 성경 기록의 용례를 먼저 참고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순서대로 보아야 나중의 용례로 인한 영향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 두 문장을 자세히 비교해 보겠습니다.   (비교표)   (1)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2)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동사 fill replenish 주어 큰 고래들과 물들이 낸 창조물과 날개 달린 날짐승 (동물) 남자와 여자 (사람) 목적어 the waters in the seas the earth   위의 비교표를 보면서 다른 단어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주어가 달라서 다른 동사를 쓴 것일 수 있다. 2.     목적어가 달라서 다른 동사를 쓴 것일 수 있다. 3.     의미가 달라서 다른 동사를 쓴 것일 수 있다.   위의 단서들을 하나씩 검토해 봅니다.   1.     주어가 달라서 다른 동사를 쓴 것일 수 있다.   위 비교표를 보면 문장 (1)은 주어가 동물이다. 문장 (2)는 주어가 사람이다.   ** 이 비교를 통해 “동물이 채울 때는 ‘fill’, 사람이 채울 때는 ‘replenish’로 구분해서 사용하는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제 사전을 참고해 봅니다.   1. To make full of, to fill, to stock or store abundantly with, persons or animals [사람 또는 동물로 채우다]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Ladies and gentlemen, please replenish the hall tonight.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밤 홀을 채워 주십시오.   2. To fill up again; to restore to the former amount or condition. [다시 채우다] Susan was always ready‥to replenish the wallets. 수전은 지갑들을 다시 채우기 위해 항상 대기 상태였다.   사전의 의미 ‘1’을 보면 [사람 또는 동물로 채우다]라고 사용 제한이 보입니다. 즉, 사람 또는 동물이 아닌 것이면 ‘채우다’라는 의미로 ‘replenish’를 쓰는 것은 잘못된 사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황 비교표의 문장 (2)는 사람이니까 ‘replenish’를 쓰면 바른 사용법이고, 그 뜻은 ‘채우다’가 되는군요.   그런데, 상황 비교표의 문장 (1)은 동물이니까 사전에 따르면 역시 ‘replenish’라도 되는데 ‘fill’이 사용되었네요. 처음에 이 단어들을 검토할 때에는 ‘fill’은 별 문제없이 넘어가고 왜 ‘replenish’가 사용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지금 보니 사람이나 동물이면 ‘relenish’를 쓴다는 것 때문에 문장 (2)는 당연한 사용법이고, 오히려 왜 문장 (1)에서는 ‘replenish’가 아니고 ‘fill’이 사용되었는지가 궁금해집니다.      
2015-04-27 20:07:23 | 최상만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형제님의 글을 읽고나서 창세기를 읽어보니 하나님의 창조세상이 더욱 웅장하고 감동스럽습니다. 정말 우리말은 영어가 따라올 수 없는 오묘함이 많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2015-04-27 17:33:37 | 김영익
최상만 형제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 유의지와 자유 분방한 창의적 사고의 관점에서 성경 번역의 '오류'와 성경 번역의 '차이'를 명쾌하게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한 시간 할애해서 모두에게 유익한 좋은 글을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내용 중) "교리가 달라서 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히 그렇다고 하고 공연한 번역 시비를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2015-04-27 14:35:57 | 한원규
최상만 형제님, 영어의 실 생활권인 호주 현지에서 느꼈던 영어와 한국말의 시제의 차이를 매우 정교한 비교 분석으로써 풀이해 주시니 쉽게 이해가 가며 나아가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번역자의 고심 또한 이해가 갑니다. (내용 중) "과거의 사실 속에 현재형 시제를 섞어서 쓸 수가 있으며, 이것이 오히려 글의 재미나 몰입도를 높여 줍니다. 그래서, 어법상으로 이런 것을 틀렸다고 하지 않고 수사 기법 또는 표현 기법이라고합니다.수사기법, 또는 표현기법 이라고 합니다." 좋은 내용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5-04-27 11:28:24 | 한원규
1.불필요한 반복은 피한다 2.정확성이 훼손되지 않은 범위내에서 읽힘성을 최대한 살린다 3.문체는 의미전달에 적합한 형태를 취한다 는 원칙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유익한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4-27 00:05:39 | 박선규
성경에 대한 권위를 유지해가는 것도 우리의 믿음의 선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것을 형제님의 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감사해요~~^^
2015-04-27 00:03:33 | 김상진
형제님의 선한 열정이 담뿍 담긴 글을 저는 이제야 귀가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 먼저 형제님! 여러 가지로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시간을 내고 노력을 더 하여 글을 잘 정리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흠정역 성경이 어느 특정인의 산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그럴듯한 대의명분으로 포장해도 결국 바로 그 생각 때문에 소모적인 논란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에 의해 번역된 성경이라 해도 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한국인이 모국어로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입니다. 그 증거로 흠정역 성경은 가장 신실하고 정확하며 건전한 번역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안다면 설혹 부족함과 아쉬움이 보여도 서로 힘을 합하여 보완하고 더 온전하게 만들어가면 마지막 때 우리는 이 은혜의 열매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사색당파의 싸움이 끝내 조선을 침몰시켰듯이 끊임없는 소모적 논쟁의 길로 나아가느냐 사람을 살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광스러운 길로 나아가느냐는 오로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최상만 형제님의 지혜와 용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염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앞으로도 귀한 글 기대합니다.
2015-04-26 23:57:06 | 김대용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우리 말로 바르게 번역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 처럼 성경을 바르게 변호하는 신실한 성경 지킴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최상만 형제님! 앞으로도 좋은 글을 계속 써 주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5-04-26 20:41:22 | 차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