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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신지요? 이미 듣고 계신 성경 오디오는 흠정역 성경으로 제작된 MP3 성경 오디오로 신약 성경 및 잠언만이 있습니다. 물론 400주년 기념판 출간 이전에 제작되어 400주년 기념판의 성경 오디오는 아닙니다. *MP3 성경 오디오(오디오 성경), 지도와 선도, 에스라 성경 사전, 박사 성경 웹하드 탑재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98 현재로써는 새롭게 신구약 성경 오디오를 녹음할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조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2015-04-15 14:19:36 | 김대용
안녕하세요.   흠정역 성경으로부터 주의 크신 긍휼을 얻은 형제입니다. 흠정역을 읽기 시작한 지는 올해로 11년 정도 되었습니다.   여쭙고 싶은 것은, 흠정역 신약 MP3파일도 메일 출퇴근 길에 듣고 있긴 합니다만,   성경을 읽지 못하는 노약자, 병인, 장애인 등을 위해서도 흠정역 구약 음성 MP3가 제작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앞으로 제작 계획이나 제작 일정이 있으신지 알고 싶습니다.
2015-04-15 13:40:01 | 최형준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2주 동안 사이트에서 전혀 뜻하지 않게 형제들 간에 논쟁이 일어나 의아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어 배경을 잠시 설명하고자 합니다.   현재 저희 교회에는 자발적으로 성경 암송반이 형성되어 주일 오전에 모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의 성도들이 제게 와서, 요즘 저와 뜻하지 않게 논쟁을 벌이는 형제님의 책(성경 암송, 기도 관련)을 두세 권 제본해서 제게 주면서 읽어도 좋으냐고 문의하기에 굳이 내게 묻지 않아도 되니 자율적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외부의 몇몇 형제님들이, ‘재창조’를 주장하는 분들이 세를 모으면서 재창조가 되게 성경을 다시 내야 한다고 주장하니 이에 대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언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단 아무 반응을 하지 않기로 하고 그저 잠잠히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 신문 기사와 자료 검색 등의 용도 외에는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다른 교회, 다른 사람의 사이트, 블러그 등을 볼 시간의 여유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국에 계시는 어떤 분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주장의 연결 링크 하나를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처음으로 이 일을 강하게 추진하는 분이 바로 성경 암송 반에서 만들어 보고 있는 책의 저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2014년 말에 그분에게 이메일을 써서 그런 일이 있다고 하니 자제해 주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부탁하였는데 그때 그분은 분명하게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안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한 외부 성도들이, 심지어 우리 교회에도 그분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알려주어 그때야 비로소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 주장이 널리 퍼져나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어쨌든 흠정역 성경으로 사역하는 형제들 가운데 한 분이기에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면 반응을 자제하고 잠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중요 교리에서 흠정역 성경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반복해서 지적하고 가르치니 저로서는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곤혹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반박하는 글을 쓰게 되었고 결국 그 형제님과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원치 않는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2주간 제가 사이트에 올린 글들은 구체적으로 어느 누군가를 지목해 반박하는 글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재창조와 간극 이론 자체를 반박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리를 믿는 분들 중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며 많은 분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그 형제님이기에 저절로 논란이 조금 커졌습니다.   사실 저는 그 형제님을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며, 다만 말씀보존학회에 있으면서 럭크맨의 영향을 받아 재창조를 주장한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물론 본인은 누군가의 영향이 아니라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그대로 본 결과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 형제님이 10여 년 전쯤에는 제게 ‘1913년 웹스터 사전’을 보여 주며 ‘다시 채우다’가 맞는다고 주장하기에 제가 ‘1828년 웹스터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을 보여 주며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별 무리가 없이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논쟁이 진행되자 그분께서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며 자신의 의견에 찬동하는 분들과 함께 저를 가리켜 ‘문맹자’, ‘속임수를 쓰는 사람’, ‘의도적으로 성경을 변개하는 사람’ ‘사악한....’ 등으로 부르며 과격한 인신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입다에 관한 논란에서는 반드시 저를 지칭한 것은 아니겠지만 반대 입장에 있는 이들을 배교자라고도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어떤 형제님이 그런 악의적 표현이 들어 있는 그 형제와 동조하는 형제들의 글을 캡처하여 보내주었습니다. 그 캡처 자료를 보내 준 형제는 다른 의도는 없고 다만 사안이 이 정도니 일단 당사자인 제가 꼭 알아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가 보내 준 자료의 내용은 저로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더는 그분과 교제할 수 없겠다는 취지의 간단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에서는 그 형제님에게 지난 몇 년간 소액의 선교 헌금을 매달 보내드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교제 중단을 요청한 가장 큰 이유는 저희 교회 성도들이 이런 상황을 알게 되면 어떻게 이런 반대 입장에 있는 분을 계속 지원할 수 있는가에 대해 도저히 해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 형제님을 평소에 뒷조사한 적이 없으며 그저 그런 자료가 왔기에 증거를 제시한 것이고 그것도 제가 받은 원본 그대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자료를 받은 그분은 재반박하는 글에서 정작 본인이 저를 모욕한 부분은 다 빼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집해서 올렸다고 합니다. 제가 보낸 증거자료에는 그분과 교제하는 분들이 흠정역 성경의 주 번역자인 저를 두고 ‘사악한 변개자’, ‘문맹자’ 등으로 표현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어쩔 수 없이 교제 중단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교제 중단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낸 이후 제가 보낸 메일에 대해 그분은 아래와 같이 심한 모욕을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무려 열 살 가까이 어린 형제로부터 이런 이메일을 받고 저와 제 아내는 큰 충격과 당혹감에 빠졌고 특히 제 아이들을 생각하며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매우 힘들었습니다.   “형제님이 성경 번역을 했다는 한 가지 일 빼고는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아셔야 합니다. 아울러 독한 시기심, 쓴 뿌리, 질투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어리고 신앙 연륜도 없는 분이 성경 번역이란 큰일을 하셔서 늘 안쓰러웠습니다.형제님이 많이 성장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최소한 형제님이 정죄하는 말보회의 이** 형제보다는 낫도록 말입니다.”   이런 내용과 함께 그분은 심지어 저를 교황에까지 비유했습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렇게까지 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악하게 비쳐진 것에 대해 일단 반성을 하고 앞으로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저는 이번 사안이 단순히 그 형제님과 저 둘만의 일이 아니며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는 모든 성도들이 연관된 일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일을 공적인 현안으로 판단하고 대응하는 글을 킵바이블 사이트에 올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번 논쟁을 갈무리하는 이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몇 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혹여 이 글로 인해 또 어떤 반박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사건의 전개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고 제가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반성할 것을 반성하며 바르게 처신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올립니다.   끝으로 제 주변에는 비록 저와 다르게 재창조를 믿지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통해 진리를 전하는 귀한 목사님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사실 그분들이 지금까지 흠정역 사역을 지지해 주시고 함께해 주셨음을 저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개 그분들은 재창조를 하나의 다른 견해로 보고 각자의 교회 성도들에게 온유하게 설명해 주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흠정역 성경 1판이 나온 이래로 지난 15년 동안 이 문제로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교제를 중단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소망합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지만, 이번 논쟁은 목회 사역자인 저 자신에 대한 공격을 한참이나 넘어서 흠정역 성경이 오역된 성경이라는 치명적인 주장을 공개적으로 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대응하게 된 일입니다. 가뜩이나 성경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심약한 지체들이 검증되지도 않은 글에 노출되어 불안해하는 것을 도저히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기에 이처럼 대응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흠정역 성경이 출간된 이후에 맺은 선한 열매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흠정역 성경은 출간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으로서는 이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압도적으로 판매되고 많이 읽히는 성경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흠정역 성경이 오역 논란으로 신인도가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면 그것은 적어도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 자체의 권위와 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비롯한 킹제임스 성경으로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며 목회 사역을 감당해 온 많은 국내외 선량한 목사님들은 결코 이런 결과를 원치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며칠 전 킵바이블 사이트에 제가 올린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글은 말씀보존학회 자체를 공격하거나 과거에 그곳과 잠깐이라도 관계를 맺었던 분들 그리고 피터 럭크맨을 좋은 성경 교사로 인정하고 따르는 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위함이 절대 아닙니다. 말씀보존학회도 나름대로 킹제임스 성경 확산에 일조하였고 그 안에는 언행이 과격하지 않은 선한 분들도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럭크맨 일변도의 급격한 세대주의 교리 확산과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비난/비방 등이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성도들의 표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 ‘믿음+행위’로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럭크맨의 교리는 이단 교리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672   럭크맨은 희대의 천재요 대단히 훌륭한 성경 교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격하고 급진적인 점까지 과거처럼 본받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진리가 전파되는 사역에까지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부득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점 또한 부디 너그럽게 헤아려 주십시오.   끝으로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이나 교회에 영향을 미쳐 그들의 해석/믿음의 자유를 꺾은 적이 없습니다(사실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저희 교회는 지금까지 몇몇 교회를 지원했고 지원하고 있지만 한 번도 그분들 교회에 사소한 것이라도 영향을 미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도 어떤 저자의 무슨 책이든 자유롭게 판단하여 읽어도 된다고 해 왔고, 도서관에 300여 권의 책을 사다 놓고 읽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럭크맨, 낙스, 라킨, 위어스비, 존 맥아더, 핑크 외에도 여러 개신교 목사님들의 저서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영혼의 자유입니다. 저는 같은 교제권에 있는 두 교회가 출간하는 낙스의 책들도 거의 대부분 출간되는 즉시 수십 권(어떤 경우 수백 권)씩 가져다가 성도들이 구매해서 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 제가 다른 사람의 영혼의 자유를 가로막은 것으로 비쳐진 점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저도 한 지역 교회의 목사이므로 제가 믿고 옳다고 확신하는 바를 저희 교회에서는 담대하게 가르칠 수 있지 않습니까? 또한 흠정역 성경이 재창조 등을 수용하지 않아 틀렸다고 하는 분들이 있기에 그 성경을 출간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거기에 반박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저의 가르침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것은 성도 개개인의 몫이지 제 몫은 아닙니다.   앞으로 저는 늘 해오고 있듯이 책들을 정비해서 출간하고 설교 및 강해 등을 준비하며 한 지역 교회의 목회자로 지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흠정역 성경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흠정역 성경을 변호하는 글을 쓸 것입니다. 또한 ‘입다의 딸’ 등에 관한 성경 해석의 경우 어떤 분의 해석이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해석이 우리 교회 성도들을 혼동 속으로 밀어 넣는 것으로 드러나면 어쩔 수 없이 제 공간에서 목사로서 저의 견해를 밝힐 것입니다.   이번의 논쟁을 통해 어찌 되었든지 저 자신의 무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저 자신을 살피고 혹시라도 무언가 합당치 않은 교리를 고집하고 가르쳐서 저희 교회 및 교회 밖의 성도들의 영혼의 자유를 가로막은 점이 있다면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관한 여러 징조가 더욱 뚜렷해질수록 앞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영적 싸움 또한 갈수록 치열해 질 겁니다. 이러한 때에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들이 우리 모두의 선한 언행을 통해 널리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성경 신자요 동시에 한국 사람인 우리 모두가 영적 전쟁터의 최전방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성도답게 처신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을 전하고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힘을 합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거룩한 일 즉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신실하게 감당하게 되기만을 간절히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패스터 정동수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정상적으로 창세기 1장과 2장 읽기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892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672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www.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2015-04-15 13:35:52 | 관리자
나의 처녀 됨으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 입다의 딸 ) 자기의 처녀 됨으로 인하여 애곡하고. ( 상대편 )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 제 3자 ) 문맥이 강조하는 바가 처녀로 살다 죽은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굳이 사람을 짐승의 번재처럼 각을 뜨고 불을 살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해석하는건 도져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번제의 방법 헌제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나아온다. 헌제자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한다. 헌제자가 제물을 잡아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린다. 헌제자가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 제사장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 그리고 물로 씻은 내장과 정강이를 단 위에서 불 사른다. 이러한 방법은 양과 염소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비둘기의 경우는 달라서 제사장 혼자서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며 피는 단 곁에 흘리고 멱통과 창자 등은 재 버리는 곳에 버리고 몸은 쪼개어 단 위에서 불살랐다. 각을 뜬다는 것은 도살한 네발짐승의 목에서 대가리, 네 다리 등을 따로따로 잘라내다. 한마디로 육시를 한다는 것. 자기 외동 딸을 이렇게?
2015-04-15 10:25:01 | 허광무
전체적인 흐름과 정확한 의미를 무시한 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단어에 집착하다 보면 자칫 하나님의 성품까지도 오해할 수 있는 불경을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명쾌한 글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5-04-15 08:56:36 | 김영식
홍승대 형제님,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성경 기록을 바꾸든가, 우리의 생각을 바꾸든가." 말씀에 아멘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해 주신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성경신자로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겠지요. 그리고 잘못된 성경해석이 미치는 폐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홍승대형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4-15 08:55:38 | 한원규
(삿11:29 그때에 {주}의 [영]께서 입다에게 임하셨으므로) 상식적으로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몰렉의 가증한 인신제사를 서원하고 행한다는 것은 어느누구라도 상상할수 없는 일일것입니다. 명료하게 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경기록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려가면 문제될것이 없지요.
2015-04-14 23:13:08 | 김영익
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성경은 전체 문맥을 넓게 보며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힘써야 함과 더불어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시공간만 다를 뿐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함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중요한 논점에 관한 귀한 깨달음을 나누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04-14 19:48:38 | 김대용
오늘은 성경 기록대로 입다의 딸에 관련된 사사기 11장을 읽어 볼까 합니다.   이미 킵바이블에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허락하신 대로 부족하지만 소박한 제 의견을 여러분과 나누어 보려 합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801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94    (삿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떠나 평안히 돌아올 때에 무엇이든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맞이하는 것은 확실히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삿 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삿 11: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삿 11: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삿 11: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삿 11: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위의 성경 기록을 다시 한 번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입다는 무엇이든지 자신을 맞이하는 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2) 그런데, 그를 맞이한 것은 그의 무남독녀입니다.   (3) 딸은 아버지에게 서원한 것을 자신에게 행하라고 합니다.   (4) 그런데 이때 뜬금없이 입다의 딸은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하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지금 자신의 배를 가르고 각을 떠서 태워 죽이겠다고, 즉 번제 헌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는데 자신이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본인은 시집가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 애곡합니다. 대단히 이상하죠? 저 같으면, 그동안 못 먹어 본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는다든가, 여행을 실컷 한다든가, 아니면 정말로 죽기 전에 가서 남자를 안다든가 등등을 하겠습니다.   자~! 성경 기록대로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한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virginity에 즉 ‘처녀로 지내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5) 그녀는 두 달 뒤에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를 알지 아니 하였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삿 11:38) And he said, Go.              And he sent her away for two months:              and she went with her companions,              and bewailed her virginity upon the mountains. (삿 11:39)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o months, that she returned unto her father, who did with her according to his vow which he had vowed:             and she knew no man.             And it was a custom in Israel, (삿 11:40) That the daughters of Israel went yearly to lament the daughter of Jephthah the Gileadite four days in a year.   누군가는(?) And는 시간 순서를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모든 것이 And에 맞추어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실제로 38절, 39절에 보면 모든 것이 일의 순서대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입다가 딸에게 자신의 서원을 실행했고, 그 결과 그 딸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뒤에 입다의 딸이 애곡한 것처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이스라엘 딸들이 매년 나흘씩 애곡합니다.   일의 순서를 다시 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1절 첫째로 입다는 자신을 맞이하는 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34절 그의 딸이 입다를 맞이했습니다. 38절 그의 딸이 산에 올라가 자신의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했습니다. 39절 입다가 딸에게 자신의 서원을 실행했습니다. 39절 딸이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39절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풍습이 되었습니다.   분명 입다는 자신의 서원(번제 헌물로 드리는 것)을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그의 딸이 재가 된 것도 아니고, 죽었다는 기록도 성경에 나오지 않고, 단지 딸이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입다의 딸이 처녀였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처녀인 것은 단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의 상태를 나타내지만,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행위의 주체가 적극적으로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즉, 이 말은 입다의 딸이 처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음, 즉 남자와 동침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죽은 사람은 처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knew’를(즉 동침을) 할 수는 없습니다. ‘Knew’는 동사입니다. 상태의 ‘was’가 아닙니다.   만약에 입다의 딸이 처녀로서 죽었음을 표시하려면, “그녀는 처녀였다(she was virgin)” 또는 “그녀는 처녀였었다(she had been virgin.)”라고 표현하는 것이 전체 문맥상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형보다 한 단계 앞선 과거완료형을 써서 죽기 전의 입다의 딸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맞습니다. 이러면, 논란의 소지도 없이 입다가 자기 딸을 짐승처럼 불태워 죽였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she knew no man)”고 말합니다.   바로 이 기록이 입다의 딸이 결코 죽지 않았음을 명백히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는 위의 성경 기록이 우리의 상식과 모순됨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번제 헌물로 드리면, 당연히 죽여서 태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성경 기록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였음을 우리에게 더없이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성경 기록을 바꾸든가, 우리의 생각을 바꾸든가 말입니다. 사람을 번제 헌물로(조금 더 정확하게는 ‘번제 헌물을 대신하여’, for burnt offering, ‘as burnt offering’이 아님), 바친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을 죽여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태워 오직 주님께 바치는 번제 헌물처럼 (2) 사람의 전 생애를 주님께 바치는 것이며 (3) 여자인 경우는 남자를 알지 않고 처녀로 주님이 정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사사기 11장을 성경 기록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성경이 읽히나요? 앞 문장인 ‘번제 헌물로’에 너무 집착하시지 말고, 39절 뒤 문장도 같이 읽어 주세요. 37절에서 39절까지 전체문맥이 계속해서 viginity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보통 난해 구절로 분류하는 성경 기록일수록 앞뒤 문맥을 넓게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지식과 지능이 없어도 편견 없이 차분하게 성경을 읽으면 누구라도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를 능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의 소박한 나눔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015-04-14 18:28:34 | 홍승대
안녕하세요? 질문 전에 늘 우측 상단의 구글 검색으로 찾아보시면 거의 다 답이 있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781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132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263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달리 믿는 것은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04-14 17:23:23 | 관리자
샬롬..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킵바이블을 통해 큰 유익을 얻고 있는 형제입니다..   다른 주석을 찾아봐도 마땅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기에 부득불 아시는 분들이 계실까 하고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다가 불현듯 의문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자들에게 그리할지니라.   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1. 디모데전서는 말그대로 1차적으로는 디모데에게 쓴 서신이고, 2. 디모데가 편지를 수신할 당시에는 아마도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을 것입니다.. 3. 그런데 감독인 디모데에게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존경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에베소 교회에는   감독인 디모데 이외에 다수의 장로들과 특히 이 장로들 중에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장로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현재 장로교 체계 (목사, 다수의 장로, 집사) 가 오히려 성경에 나와있는 교회의 직분체계와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감사합니다..
2015-04-14 15:37:55 | 유해용
안녕하세요?   어제 저는 솔로몬의 배은망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지혜와 능력이 많아도 자신을 의지하면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성경은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성경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다 안다고 하면서 호언장담하고 남을 무시하면 결국 패망에 이릅니다. 이번 주에는 왕상1-11장을 읽으면서 솔로몬을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인터넷은 참으로 좋은 도구입니다. 그런데 잘못 이용하면 패망에 이르기 쉽습니다. 지식의 교만을 드러내며 남을 비하하고 쓸데없는 논쟁을 일삼는 사이트에 들어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좋은 사이트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신문, 검색을 빼고는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1주일에 한두 번 ‘이 세대가 가기 전에’라는 블러그에 들어가 세상의 변화를 보는 것입니다.   http://blog.naver.com/esedae/   이 블러그는 일반 교회 목사님이 운영하는 것인데 전 세계의 마귀 숭배 추세를 매우 잘 보여 줍니다. 어떤 때는 너무 과한 면도 있지만 성도들이 거를 것은 거르고 가끔씩 보면 좋은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세상 욕심이 불현듯 일어나거나 교만한 맘이 생기거나 남을 비하하려는 맘이 생기면 거기의 뉴스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재림의 징조를 보면 그런 악들을 버리고 제대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 것입니다. 저도 어제 지난주의 글들을 보고는 더욱더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귀한 정보를 매주 업데이트 해 주는 블러그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 푹 빠져 매일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이야기만 하고 다닐까 봐 내심 큰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현명한 킵바이블 독자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없을 줄로 믿고 소개하니 가끔씩 보면서 경각심을 갖기 바랍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5-04-13 16:57:30 | 관리자
안녕 하세요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시고 영감 주셨으며 보존해주신 성경이 킹제임스 영어성경임을 믿으며, 또한 우리말로는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읽기 쉽고 바르게 번역한 성경임을 믿는 사람들이 진주지역에서 6가정 8명의 형제자매가 아래와 같이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가까운 지역에 살고 계신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 예 배 : 매주 주일 11:00 ○ 주일 오후모임 : 매주 13:30 ○ 성경공부 : 매주 수요일 20시(5월 6일부터) ○ 장소 : 진주시 칠암동 293-2 건물3층(가칭; 진주소망침례교회) ○ 연락처 :               손형오 010 2586 6484,    정구만 010 8972 5878  
2015-04-13 10:10:22 | 정구만
안녕하세요?   저는 1992년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에 럭크맨(Peter Ruckman)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분의 주석서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는 내용이 많아서 반가웠습니다. 더구나 그분은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성경의 감추어진 보화들을 명석한 두뇌와 포기할 줄 모르는 강철 같은 소신으로 캐내어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니 절로 럭크맨의 책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안타깝게도 그분의 책의 3분의 1 정도는 자신의 생각과 성경 해석 및 교리가 다른 이들을 헐뜯고 비방하는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도 빠짐없이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저에게 영적 양식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독이 됨을 깨닫고 그 후로는 그런 부분이 나오면 통째로 뛰어넘어 읽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저는 럭크맨의 좋은 점은 닮지 않고 독선과 독설 그리고 비방에 심취하여 결국 믿음 생활에서 크게 실족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삶의 추이를 자연스럽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귀국하면서 저는 또한 럭크맨이 지원하는 말씀보존학회(이하 말보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안면이 없던 말보회 대표로부터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스럽고 거친 욕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제가 미국에서 럭크맨을 직접 만나 말보회가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라 그리스어 공인본문으로 성경을 번역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은 제가 꾸며낸 것이 아니라 말보회에서 펴낸 성경의 앞부분에 이미 그렇게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지 한국말을 모르는 럭크맨을 만날 기회가 있어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그 뒤 저와 함께 성경을 공부하던 학생들도 무심코 책을 구매하러 그곳에 갔다가 역시 비슷한 욕설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어떻게 저러한 분이 성경을, 그것도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목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며 안타까움과 함께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도 럭크맨이라는 불굴의 의지(혹은 고집)를 가진 천재로부터 시작된 독물이 가득한 옹달샘은 그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고 대해를 건너와 현재까지 말보회에 몸담고 있거나 혹은 과거 한때 몸담았던 여러 사람에게 흘러들어가 대단히 악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랜 세월을 두고 관찰한바 그들은 모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람을 안하무인의 자세로 대한다는 겁니다. 이들은 자신 혹은 자신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만이 성경을 가장 잘 이해하고 해석하며 그 외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에 동조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서슴없이 인신공격과 함께 거친 말을 쏟아냅니다.   “이러한 언행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과연 성화되는 성도일까?”“도대체 왜 말보회에 연루되기만 하면 이런 악한 현상이 반복되고 확산될까?”   지난 20년 동안 제 안에는 이런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을 지켜보며 긴 시간이 지난 뒤 결국 이 모든 악한 현상의 뿌리는 극단적 세대주의(Hyper dispensationalism)라는 지식의 교만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럭크맨과 그의 추종자들은 한 마디로 ‘극단적 세대주의’를 가르칩니다. 물론 럭크맨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국내외 많은 선량한 성경 신자들이 그렇게 평가합니다. 또한 럭크맨 추종자들은 대개 그런 지식을 럭크맨에게서 직접 배우지 않고 오직 킹제임스 성경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의 극단적 주장이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처럼 혹은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앵무새처럼 하나같이 동일하며 결국엔 럭크맨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럭크맨의 책을 읽을 때는 정신을 차리고 조심해서 악한 양식은 걸러내며 읽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럭크맨의 좋은 점뿐만 아니라 그의 거칠고 공격적이며 독선적인 인품까지 절로 독자의 내면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책, 특히 어떤 경건 서적을 읽느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저를 비롯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하려는 세대주의자들은 다음의 말씀을 애용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여기의 ‘나누다’는 ‘divide’입니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쪼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쪼개는 일에 도가 지나쳐서 더는 쪼개지 말아야 할 부분을 쪼개기 시작하면 바로 그것이 ‘극단적 세대주의자’가 되는 길입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저는 말씀 강해를 준비할 때 가능한 한 여러 사람의 주석을 봅니다. 그것은 혹시라도 편향된 것을 가르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저보다 뛰어난 분들의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멀리 바라보듯이 좋은 목사와 성경 교사는 겸손한 자세로 치우침 없이 여러 믿음의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경우 럭크맨의 주석서도 참조합니다.   http://www.cbck.org/ExpositoryBible1-9/View/23c   지난주부터 저는 야고보서를 강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럭크맨은 수신자 부분을 다루면서 약1:1만 인용하며 특별 강조를 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하노라(약1:1).   강조의 내용은 야고보서의 수신자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즉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유대인들 특히 환난기에 들어가는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지 지금의 교회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 외에는 아무도 성경에서 이런 부분을 가르쳐주지 못했다며 은근히 자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바로 이런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럭크맨의 이 가르침은 맞지 않습니다.야고보서는 교회 시대의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글입니다.   야고보서 2장 1절이 무어라 말합니까?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고서 사람들의 외모를 중시하지 말라.   물론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에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유대인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형제요 모든 신약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야보고서의 내용은 교회 시대 전체에 두루 적용되는 실생활 교리를 가르쳐주는 대단히 중요한 책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없이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특히 3장에 있는 대로 자신의 혀를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1-12절을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9 그것(혀)으로 우리가 [하나님] 곧 [아버지]를 찬송하며 또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사람들을 저주하느니라. 10 같은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거니와, 내 형제들아, 이런 것들이 결코 그래서는 아니 되느니라. 11 샘이 같은 곳에서 단물과 쓴물을 내느냐?   어떤 분처럼 거룩한 성경 말씀을 전하는 입으로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고 자기를 섬기다가 잘못된 점과 부패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등을 돌리고 나가면 서슴없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다.”라고 정죄하며 악담을 퍼붓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따르고 섬기면 구원받은 사람이고 섬기다가 나가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니, 그것은 곧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은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럭크맨은 야고보서뿐만 아니라 히브리서도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므로 교회와는 교리적으로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아닙니다.   히브리서 12장 18-24절은 분명히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교회라고 이야기합니다.   18 너희[히브리서 수신자들]는 만질 수 있는 산과 불이 붙은 산에 이르지 아니하였고 캄캄함과 어둠과 폭풍과(즉 그들은 구약 언약하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22 그러나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와 23 총회와 하늘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교회와 …24 뿌리는 피에 이르렀느니라.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구약 성도들이 아니고 신약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럭크맨과 같은 희대의 천재가 아닐지라도 성경을 맑은 정신으로 단순하게 읽으면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현시대의 성경 신자들은 럭크맨만을 추종하며 앵무새처럼 그분의 말을 흉내 내는 사람들을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은 럭크맨의 교리뿐만 아니라 럭크맨의 거친 말까지 본받아 성도의 품행에 결코 합당하지 않은 말을 쏟아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면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분들의 온라인 공간 등에 들어가거든 가장 먼저 그들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래서 만약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즉각 상대가 누구든지 상관없이 ‘문맹자’, ‘속임수를 쓰는 사람’ 등의 과격한 인신공격을 하거든 그의 가르침에 전염되기 전에 속히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런 말의 독은 마치 영적 전염병처럼 옮아서 어느새 독자도 모르는 사이에 독자를 똑같은 사람으로 변질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또한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성경의 단어를 쪼개는 데도 명수입니다. 이들에게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즉 간극들이 잘 보입니다.   요즘 저는 어쩔 수 없이 필요에 의해 ‘창조인가, 재창조인가?’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http://keepbible.com/BQNA01/View/4Nz   http://keepbible.com/BQNA01/View/4O2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19:4,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at the beginning)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막10:6, 창조의 시작부터(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독자께서는 여기의 ‘창조’, ‘시작’, ‘처음’이 무어라고 믿으십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말이 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시작되어 2장 1절에 요약된 창조요, 시작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창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성경에는 재창조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단 한 번의 창조만 아시며 그 창조가 시작되던 때에 좀 더 구체적으로는 여섯째 날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의 창조를 둘로 쪼개어 나눕니다.먼저 그들은 마19:4와 막10:6 등의 창조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 창조’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처음’ 혹은 ‘시작’은 ‘원 창조’ 이후 재창조 때의 여섯째 날이 됩니다.이들의 눈에만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보입니다.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또한 ‘재창조’가 아니라 ‘창조’로 되어 있으므로 누가 창조라고 이야기하면 창조라는 말에 위압을 느끼고는 여기의 요점은 창조/재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중성체 등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 만든 것을 뜻한다고 교묘하게 합리화를 합니다. 자기의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혹은 그 이론에 얽매여서 성경을 상식적으로 보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극단적 세대주의의 가장 무서운 독입니다.   이에 대해 한 독자가 글을 보냈습니다.   “이런 분들은 전체적인 문맥을 보지 않고 ‘처음에’, ‘입다’, ‘간극이론’ 등 아리송한 이슈들로 마치 추리소설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설교해야 할 사역자가 참 안 됐습니다.”   성경 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추리소설처럼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자세가 아닙니다.사람이 계속해서 이런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지식으로 성경을 재단하면 진리는 멀어지고 결국 판타지 소설 같은 교리에만 중독되게 됩니다.   같은 창조를 두고 마19:4, 막10:6의 창조는 ‘사람의 창조’만 가리킨다고 하면 과연 어느 누가 이에 동의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극단적 세대주의입니다. 나누면 안 되는 것까지 무리하게 나누면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그 두 구절의 창조는 세상의 창조이며 거기의 ‘시작’(beginning) 혹은 ‘처음’ 역시 창1:1의 ‘처음’입니다.   이렇게 무리한 해석을 하기 위해 그들은 창2:5의 ‘세대들’과 히1:2; 11:3의 ‘세상들’이 두 번 창조를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맥을 따라 성경을 보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편견을 마음대로 성경의 줄과 줄 사이에, 단수와 복수 사이에 넣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황당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더 나아가 우리말 성경이 창세기 1장 1절 다음의 2절에 나오는 첫 글자 ‘And’를 번역하지 않아서 재창조의 교리가 성립이 안 된다고 억지 주장합니다. 창세기 1장 3-31절까지 27절을 제외하면 모두 ‘And’로 시작하는데 그러면 이 모든 구절이 재창조를 이야기합니까? 그러면 도대체 재창조가 몇 번이나 있었다는 말입니까? 히브리 학자/성도, 그리스 학자/성도, 영어 학자/성도, 한국어 학자/성도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왜 이들의 눈에만 보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바로 극단적 세대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누지 말아야 할 것을 극단적으로 나누면, 오히려 성경을 제대로 나누지 않아 교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이상의 폐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분들은 자기들만 아는 지식으로 우쭐해져서 대개 안하무인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성경은 그 안에 ‘내장 사전’(a built-in dictionary)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문맥에서 쓰인 단어들을 조사하여 비교해 보면 한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내장 사전을 가지고 성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막상 내장 사전이 자기들이 추구하는 뜻과 반대가 되면 교묘하게도 슬그머니 못 본 척하거나 함구합니다.   그러면 창세기 1장 22절과 28절을 비교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바다의 물들을 채우고(fill) 날짐승은 땅에서 번성하라, 하시니라(창1:22).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let fowl multiply in the earth.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창1:28).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이 두 구절은 같은 문맥에서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or replenish)…”라는 동일한 구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22절은 ‘fill’이니까 창조이고 28절은 ‘replenish’이니까 재창조라고 말할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똑같은 문맥이며 심지어 히브리어도 두 구절이 동일합니다. 이 같은 성경의 ‘내장 사전’을 통해서도 우리는 28절의 ‘replenish’가 22절의 ‘fill’과 같음을 성경으로 더없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럭크맨 추종자들이 그토록 즐겨 주장하는, 킹제임스 성경만이 주는 ‘내장 사전’(Built-in dictionary) 기능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 내장 사전이 자신들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으면 이들은 어쩐 일인지 일언반구도 없이 조용합니다.   그동안 극단적 세대주의자를 파급시킨 말보회는 몇 가지 치명적인 악한 씨앗을 뿌렸습니다.   1. 한글킹제임스 성경이 최종 권위이다.   그들은 심지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보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인가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고 그들이 출간한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여러 차례 개정되었는데 그러면 최종 권위가 그렇게 자주 바뀝니까? 또한 이들은 실제로는 그리스어 공인본문을 번역해 놓고서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말하며 명칭까지 킹제임스로 하는 바람에 많은 오해를 불러왔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3절을 보겠습니다.   흠정역: 이는 그들이 사람들의 칭찬을 [하나님]의 칭찬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더라.개역: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한글킹: 이는 그들이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음이더라.KJB: For they loved the praise of men more than the praise of God.NIV: for they loved praise from men more than praise from God.ASV: for they loved the glory (that is) of men more than the glory (that is) of God.   영어는 분명히 ‘칭찬’(praise)이라 말하는데 개역과 한글킹제임스는 ‘영광’(glory)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NIV도 칭찬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12절을 보겠습니다.   흠정역: 우리가 세상에서 생활할 때에 단순함과 하나님께 속한 진실함으로 하였고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며 또 너희를 향하여는 더욱더 그리하였노니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요 또 우리의 양심이 증언하는 바라.개역: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한글킹: 우리의 자랑이 이것이니KJB: For our rejoicing is this, the testimony of our conscience, that in simplicity and godly sincerity, not with fleshly wisdom, but by the grace of God, we have had our conversation in the world, and more abundantly to you-ward. NIV: Now this is our boast:   바울은 절대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개역, 한글킹제임스, NIV는 바울이 자랑(boast 혹은 glory)한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2절 다음에 나오는 고후1:14에서는 ‘rejoicing’을 기쁨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외에도 고전15:31, 갈6:4, 빌2:19에서 ‘rejoicing’을 자랑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1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흠정역: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개역: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한글킹: 내가 너희를 고아로 남겨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KJV:  I will not leave you comfortless: I will come to you.   킹제임스 성경이라면 반드시 이 구절이 ‘위로 없이’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위로자 성령님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요14:16)   ‘고아’로 번역한 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아닙니다(참고로 제가 본 것은 2011년 3월에 나온 한글 킹제임스 한영대역 성경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을 정직하게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구약 시대와 환난기에는 ‘믿음 + 행위’로 구원받는다. 이것은 럭크맨의 가르침으로서 저주받을 이단 교리입니다(갈1:8-9). 어느 시대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 자기 행위를 내세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가 럭크맨같이 성경을 필요 이상으로 쪼개고 나누려는 천재(?)에게는 실족하게 하는 돌이 되고 맙니다. 자기 행위를 자랑하고 내세우는 자는 어느 시대의 어느 누구든지 결코 하나님 앞에 바른 모습으로 설 수 없습니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극단적 세대주의 교리입니다.   3.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다.   이것 역시 몇몇 성경 교사들을 거쳐 럭크맨이 강조하는 교리입니다. 성경에는 재창조라는 말이나 개념이 없습니다. 처음에(시작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4.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로서 합당한 거룩하고 품위 있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들과 조금만 다르면 럭크맨을 따라 성도에게 결코 합당치 않은 거친 말을 쏟아 붓습니다.   너희 말을 소금으로 간 맞추어 항상 은혜롭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마땅히 대답해야 할지 알게 되리라(골4:6).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신앙심이 있어 보이되 자기 혀를 제어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신앙 행위는 헛것이니라(약1:26).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오래전부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말보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누르고 킹제임스 성경 독자들의 주류 성경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자 급기야 저들은 저에 대한 인신공격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흠정역 정동수 목사에 대해 아십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E03_jKFst-8   이런 비디오를 만든 분은 시작부터 바이블 빌리버(성경 신자) 운운하며 자기 말을 합리화하려 합니다. 지금도 이분은 구약시대에는 ‘믿음+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극단적 세대주의 가르침을 공공연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간이 있는 분들은 한번 동영상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분의 주장을 듣고 그쪽으로 기울어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면 핵심을 집어서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할만한 정확한 증거를 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 분별이 너무 없는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 이분의 동영상은 뜻밖에 역화(backfire) 작용을 일으켜 오히려 이것을 보고는 흠정역 성경으로 돌아오는 분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동영상 클릭 수가 늘면 늘수록 흠정역 성경 판매가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말씀사 판매 기록을 보시면 알지만 실제 출판 시장은 이분들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돌아갑니다. 말보회 성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흠정역 성경이 가장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동영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짝퉁성경에 속지말라] 흠xx에 속지말라https://www.youtube.com/watch?v=ccSnKKfEyGQ   누가 보기에도 이분의 언행은 비신사적이며 어두침침하여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진리를 찾을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터넷이든 책이든 그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말고 마음대로 가서 찾아보고 진리를 분별하며 탐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단 한 번도 이런 자유를 구속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를 포함해서 그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신약 성도들에게 주신 이 영혼의 자유를 구속하려 하거든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영혼의 자유를 따라 마음대로 하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책이나 사이트에서 오가는 대화가 지저분하고 고상하지 않으며 또 저자나 운영자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최종 심판자로 앉아서 보통 사람들의 판단에도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을 펴면 속히 그런 데서 나와야 합니다. 럭크맨 같은 분들을 통해 그런 분들에게 전달된 ‘극단적 세대주의’의 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곧장 독자에게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라킨(Clarence Larkin), 럭크맨(Peter Ruckman), 낙스(James Knox)의 잘못된 부분을 집요하게 관철하기 위해 성경을 인위적으로 비틀고 왜곡하는 분의 글이나 말에 속아 넘어가면 결국 그런 분을 추종하는 독자들만 골탕을 먹고 실족하게 됩니다.   명백하고 단순한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 생각이 성경과 대조해서 맞지 않으면 추호도 미련을 두거나 주저하지 않고 과감하게 내다 버리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성경 신자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맑은 정신과 바른 지각이 확고하게 뿌리내리기만을 간절히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너희 가운데 있는 각 사람에게 내가 말하노니 각 사람은 자기가 마땅히 생각할 것보다 더 높이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나누어 주신대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라(롬12:3).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www.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2015-04-11 14:13:5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