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가리켜 이단이라고 말하는 무지한 목사들이 매우 많다. 지금 자기들이 가르치는 교리와 신학교에서 배운 성경 지식의 대부분이 킹제임스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모르고 성도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무조건 간단하게 킹제임스 성경은 이단 혹은 이단 성경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순진한 성도들은 이단이라고 하면 더 이상 탐구해 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물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주장해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객관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기에 더 추가하거나 거기서 더 뺄 것이 없다. 온전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은 소설가이자 영국 독립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The South Bank Show를 진행하며 700명이 넘는 예술가를 소개한 멜빈 브래그가 책을 향한 애정을 담아 집필한 책이다. 이것은 해외에서는 많은 호응을 얻어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4주간 방영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킹제임스 성경이 이 중 하나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은 단순히 명저 12권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닌, 책을 둘러싼 역사의 풍경을 담는다. 현대 민주주의의 시발점 <마그나 카르타>, 신 중심의 세계관을 무너뜨린 <종의 기원>,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를 알린 <국부론> 등 한 권의 책이 제시한 새로운 사상이 고정관념과 충돌하고, 그에 자극받은 이들이 또 다른 발상을 해내는 연쇄작용을 거쳐, 마침내 오늘날 우리의 삶을 형성하게 되는 역사적인 흐름을 제시하고 있다.
지은이는 12권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원본을 고증했고, 각 책의 지은이들의 생가를 직접 방문해 당시의 시대상을 최대한 생생하게 되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각 분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다채로운 사진 및 삽화 또한 수록되어 있어 책과 시대가 어떠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왔는지를 보다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내용
머리말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1687) 아이작 뉴턴결혼 후의 사랑(1918) 마리 스톱스마그나 카르타(1215) 영국 지배층 귀족들
하나의 문서, 하나의 법전으로서 <마그나 카르타>에는 선례를 찾기 힘든 심오한 울림이 있다. <마그나 카르타>는 성프란키스쿠스와 성 도미니쿠스의 헌신적인 탁발수도회가 탄생하던 시기에 작성디었지만,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인성과 종교적 근본주의로 얼룩진 십자군 원정 시기와도 맞물렸다. 또한 여러 도시들이 좀 더 화려한 문명의 중심지가 되려고 영토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던 때이자, 그리스의 걸작들을 자기 나라 말로 옮겨 새롭게 바라보는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에 러니미드에 모인 사람들이 이끌어낸 문서는 중세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고 계속되는 야만적 행위에 맞서는 가장 고귀한 무기가 되었다.-p122-123 중에서
축구협회 규정집(1863) 영국 사립학교 관계자들종의 기원(1859) 찰스 다윈노예무역 폐지에 관하여(1789) 여러 형태로 출간된 윌리엄 윌버포스의 의회 연설여성의 권리 옹호(1792)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전기에 관한 실험 연구(전3권, 1839,1844,1855) 마이클 패러데이아크라이트 방적기 특허 신청서(1769) 리처드 아크라이트
킹 제임스 성경(1611) 윌리엄 틴들과 국왕이 지명한 54명의 학자들
<킹 제임스 성경>은 영어를 신대륙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언어로 거듭나도록 만들었다. 또한 이 성경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국민 모두가 주님의 말씀에 지극히 충실하며, 매일 기도로 하루를 여는 백악관에서는 현 미국 대통령이 세례명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주님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는 뻔뻔스러운 소시를 늘어놓을 정도이다.-p340 중에서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1776) 애덤 스미스제1작품집(1623) 윌리엄 셰익스피어
감사의 말옮긴이의 말찾아보기
윌리엄 틴들과 6개의 번역회 ≪킹 제임스 성경≫ 수세기 동안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인 ≪킹 제임스 성경≫은, 새로운 성경을 만들라 지시했던 제임스 6세와 열정을 다한 6개의 번역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윌리엄 틴들이 번역한 ≪틴들 성경≫ 덕분에 완성되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비롯하여 성경의 명구들은 지금도 유명인들의 연설에 종종 인용되곤 한다.
교보문고의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
2009-07-02 17:57:00 | 관리자
번역은 번역자들의 자질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번역자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번역하는가가 최종 번역물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김욱동 교수가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논하면서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 글입니다. 특별히 성경 번역과 상관없는 자연인의 객관적인 글이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내 책을 말한다] ‘번역인가 반역인가’ 번역 없인 르네상스도 없었다 우리말 속담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남의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처럼 이 속담이 가슴에 와 닿는 때도 없다. 가령 토씨 하나를 달리 옮겨놓아도 그 함축적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일찍이 서양에서는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나는 그동안 번역보다는 단행본 저서를 집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돌이켜보면 전공 분야인 영문학에 얽매이지 않고 무모하다 싶을 만큼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둔 듯하다.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서구 문예 사조에서 탈춤 같은 민속 문학, 문학 연구 방법론, 수사학을 거쳐 최근에서는 문학 생태학의 복음을 전하는 ‘환경 전도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단행본 저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번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유럽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운 르네상스는 번역이라는 비옥한 밑거름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독일어는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라틴어 성경 번역을 계기로 한 단계 올라섰다. 그런가 하면 일본어는 네덜란드어를 발판 삼아 서양의 저서들을 번역하면서 ‘고쿠고(國語)’를 형성하였다. 이렇듯 번역은 문학의 자궁이요 문화의 요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킹 제임스 흠정역 성서’의 서문을 읽던 중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번역, 그것은 창문을 열어젖히고 빛을 들어오게 하는 것이요, 껍질을 깨고 알맹이를 먹게 하는 것이요, 장막을 걷고 가장 성스러운 곳을 보게 하는 것이요, 우물 뚜껑을 열고 물을 얻게 하는 것이다.”하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나도 번역을 통하여 우리 문학과 문화를 살찌우는 데 일익을 맡고 싶었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해도 막상 번역을 하다 보니 어려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칫 하다가는 오역의 수렁에 빠지기 쉬울 뿐더러, 비록 오역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원문의 맛과 향기를 잃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번역‘과 ‘반역’ 사이를 오갈 때가 생각 밖으로 많았다.‘번역인가 반역인가’는 바로 번역가로서의 체험을 기록한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모두 20여 개 항목에 걸쳐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이러한 경우는 이렇게, 저러한 경우는 저렇게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목청을 높였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물고기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옮길 때에는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쓴다.”고 하거나, 좀 속되게 표현할 때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라고 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번역 방법론에 관한 저서다. 이 책에는 번역 실무자로서 저자가 그동안 느낀 고뇌가 짙게 배어 있다. 번역이라는 험난한 산에 오르려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안내자의 구실을 할 것이다.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 명예교수
2009-06-27 22:00:38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최신 화일 입니다.
2009-06-19 11:16:12 | 허광무
안녕하세요?
2009년 6월 12일부터 베들레헴 성경 소프트웨어에 우리 성경의 가장 최근 판 파일이 실렸습니다. 소프트웨어로 파일을 보기 원하는 분들은 베들레헴 성경을이나 The Word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 바랍니다. 자유게시판에 베들레헴 성경에 대해 몇 건의 글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베들레헴 홈피: http://www.cyworld.com/wait4him
다음은 베들레헴 성경 소프트웨어에 대해 어느 성도님이 자유 게시판에 올려 놓은 글입니다. 참조하기 바랍니다.
1. 공개용 프로그램 베들레헴 성경을 소개합니다.
컴퓨터에 설치하여 온라인 없이 사용할 수 있고 한글 영어등 12개 정도의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검색, 성경간 비교등 각종 편의 기능도 있구요.
전체 용량이 27메가정도가 되어 첨부가 되지 않네요.
첨부 화일은 도움말 화일 입니다.
추가로 실행화일과 성경데이타(흠정역한글, 영어흠정영, 개역개정판)를 올렸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최신판의 파일도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베들레헴 도움말
베들레헴은 한글윈도우용 성경 검색 프로그램이다. 성구와 성경절을 편리하게 찾을 수 있고, 성경을 장별로 읽거나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으며 작성하는 문서에 쉽게 끼워넣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베들레헴은 완전 무료 프로그램이며 공개되어 있으므로 마음대로 사용하고 복사하고 배포할 수 있다.
베들레헴의 기능
1. 찾고자하는 낱말이 포함되어 있는 성경절을 찾아서 출력창에 보여 주든지, 찾은 내용을 직접 아래아 한글이나 MS Word에 보낼 수 있다. 또한 출력창에 먼저 출력한 후에 보낼 내용만 선택하여 아래아 한글이나 MS Word에 보낼 수도 있다.
2. 원하는 낱말을 찾을 때, 성경전체, 구약전체, 신약전체, 범위선택과 같이 원하는 범위를 지정하여 찾을 수 있으며, 'AND 검색', 'OR 검색' 을 지원하고 한번에 3 낱말까지 포함된 성경절을 검색할 수 있다.
3. 성경절 찾기기능을 지원한다. 원하는 성경절을 직접 타자하여 입력하거나 성경책명 콤보박스와 장절 콤보박스에서 선택하여 입력하여 찾을 수도 있다. 또한 한 절 뿐만 아니라 이어서 몇 절까지 함께 찾아 볼 수도 있다. 사용자가 성경 번역판을 여러 개 선택하고 성경절찾기를 하면 선택한 모든 번역판의 성경절을 한꺼번에 찾아 나열해 주고 찾은 성경절의 앞뒤절이나 앞뒤장, 책으로 쉽게 이동하면서 비교 연구할 수 있다.
4. 성경 보기 기능을 지원하여 마우스 또는 키보드만 사용하여 성경을 장별로 읽거나 볼 수 있으며, 프리젠테이션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창을 동시에 띄워놓고 각 창에 서로 다른 번역판을 나오게하여 번역판을 비교하면서 편리하게 공부할 수 있다. 각 창의 성경 장절은 서로 연동되어 장절에 맞추어 따라 움직이게 된다. 연동하여 움직이는 것은 설정 또는 해제할 수 있다.
5. 지원하는 성경은 개역한글판, 개역국한문, 개역개정판(4판), 새번역(표준새번역개정판), 우리말성경, 쉬운성경, 공동번역(개정판), 한글킹제임스, 킹제임스흠정역, 현대인의성경, 현대어성경, 영문 KJV, NKJV, NIV, NRSV, NASB, NLT, MSG 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필요한 번역판만 받아서 사용하면 된다
6.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였을 때 빠른 메뉴가 나타나서 베들레헴의 대부분의 기능을 빠른 메뉴에서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기능을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고 단축키 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7. 각 창의 크기와 위치를 기억하였다가 다음 실행시 기억된 위치와 크기로 실행되므로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와 크기로 설정하여 사용할 수 있다.
8. 성경절 출력 형식을 다양한 모양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다. 성경절 본문에 좌우에 붙일 따옴표와 장절에 붙일 부호를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으며, 장절을 앞에 또는 뒤에 붙일 수 있다. 또한 번역판 이름도 장절과 함께 나오게 할 수도 있다.
개발자 E-mail : wait4him@paran.com개발자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wait4him
2. 공개용 영어성경프로그램 The Word를 소개합니다.
제작자 홈페이지( http://www.theword.gr )
공개용으로 막강한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으로는 e-Sword가 널리 알려졌는데, The Word는 그것 못지 않은,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뛰어난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입니다.
e-Sword는 천여 개가 넘는 User 모듈이 있어 선호되고 있는데, The Word는 그것들을 자체적으로 변환시켜 불러들여 사용할 수 있고, e-Sword 프로그램의 단점으로 지적된 모듈 내 검색 기능을 강화시키고 모듈의 분류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3년 이상 e-Sword를 사용했으나 근래에 The Word를 접하고 나서는 주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작자 홈페이지에서 메인 프로그램, 변환프로그램, 성경, 사전 등 일부 모듈을 다운 받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여기 첨부한 흠정역 모듈은 제가 만든 것으로 프로그램이 설치된 폴더의 하위 폴더인 Bibles에 넣어 사용하면 됩니다.
참고로 e-Sword 홈페이지 http://www.e-sword.net
e-Sword User modules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주소 http://www.e-sword-user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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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17:17:06 | 관리자
6월 18일에 가장 최근에 나온 킹제임스 성경 파일로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보기 바랍니다.
2009-06-18 17:14:4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5월 23일, 토) 지도/선도에 50여 개를 올렸고 사진 자료에 20여 개를 올렸습니다. 앞으로 시간을 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공개해서 나눌 것입니다. 마음대로 쓰시기 바랍니다.
사이트가 영과 혼에 시원한 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D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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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3 15:38:46 | 관리자
왕국인가, 천국인가?
한 국가의 통치 제도는 누가 그 권력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된다. 다시 말해 백성들 개개인이 통치 권력을 행사하면 민주국이 되고 왕이 홀로 통치하면 왕국이 된다. 그러면 성경 속의 하나님의 통치 체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들처럼 여러 사람의 뜻을 물어 민주적으로 통치하실까? 아니면 홀로 주권을 행사하시며 자신의 뜻대로 통치 하실까?
신구약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왕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이다(엡1:6; 12; 14).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개념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도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이 “유대인들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으며(마2:2) 그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신 것이다(마4:17). 그래서 그분께서 돌아가실 때에 십자가 위의 명패에도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 예수라는 글이 붙은 것이다(마27:37).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왕으로 즉 그들의 메시아로 오셔서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아 왕국을 그들에게 제시하셨으나 배척을 당하시고 결국 유대인들의 왕으로 돌아가시면서 새로운 언약 즉 신약을 여신 것이다. 그러므로 왕국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마가복음 같은 경우 그 시작이 이렇게 되어 있다.
흠정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이제 요한이 감옥에 갇힌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여(막1:1, 14)
유대인들에게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런 것을 무시하며 진실을 가리고 있다.
개역: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막1:14)
이렇게 왕국이 중요하므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구절을 개역성경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번역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인데 과연 그 당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제 너희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가 되었다고 선포하신 것일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흠정역: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개역: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사실 개역성경으로는 이 구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개역성경이 ‘나라’로 번역한 그리스어 ‘바실레이아’는 왕국이며 여기서 예수님이 의도하신 왕국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땅에 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왕국 즉 ‘하늘의 왕국’인 것이다(마4:17). 이 하늘의 왕국은 대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된 왕국으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세우시는 왕국이다.
흠정역: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시리니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하며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단2:44).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왕국을 유대인들에게 제시하셨으며 결코 우리 성도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왕국을 의도적으로 거부했고(마23:37-39) 이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전해지게 되었다(롬11:30-31).
한편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선포될 복음도 천국 복음이 아니고 바로 왕국의 이 복음이다(마24:14).
흠정역: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가 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3-14).
위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목숨을 내걸고 주님께 헌신하는 자가 아니고 세상의 끝까지 견디는 자를 말한다. 즉 1차적으로는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으로 7년 환난기를 통과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들은 로마서 11장 26절 말씀 즉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른 뒤에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성취될 때에 구원받는 자들이다.
그래서 7년 환난기에는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왕국의 이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고 그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땅에 강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신다. 그러므로 선교단체나 교회 등이 마태복음 24장을 문맥에 상관없이 취해 선교사들을 많이 보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 이것은 후천년주의에서 나온 발상이며 성경은 이런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선교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문맥에 맞지 않는 구절을 취해 내 목적에 맞도록 바꾸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처음부터 이 왕국의 도래가 가장 큰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도 그분께 가장 먼저 왕국의 회복에 대해 물었다.
흠정역: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하매(행1:6)
개역: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또 다시 오역하여 그 의미를 완전히 가려 버렸다. 이런 번역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의도를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한국 성도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늘의 왕국의 설립과 특히 천년왕국의 도래 등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학자들로부터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어려서부터 잘못 번역된 성경을 읽고 그것으로 말씀을 공부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참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성경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성도들이 대부분의 구절을 ‘영적으로 비유로’ 해석한다. 성경을 - 특히 구약성경을 - 읽으면서 그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하나님의 치리가 이루어지는 사실로 대하지 않고 다 나하고 상관이 있는 ‘영적 QT 재료’로만 사용하기에 우리 한국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심오한 관이 형성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왕국을 세우시고자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무엇보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원대한 계획안에 사람의 구속(救贖)이 들어 있고 마귀의 파멸이 들어 있다. 결코 사람의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존 한글 성경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경에서 왕국으로 번역된 ‘kingdom’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모두 342회 나오며 이것은 원래 왕권(kingship)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주로 왕이 다스리는 통치 체제 즉 왕국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중요한 단어를 ‘나라’나 ‘천국’ 등으로 일관성 없게 번역했으므로 개역성경으로는 성경의 핵심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핵심 주제를 보여 주는 이 단어는 단지 여호와의 증인들의 전용 용어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한편 왕국의 이해가 부족하므로 인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악용하여 천국이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주장하며 인본주의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개역: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그런데 여기의 너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한 바리새인들이 아닌가? 그러면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까지 하신 바리새인들 안에 - 혹은 그들의 마음 속에 - 하나님의 나라가 있단 말인가? 여기 나오는 나라 역시 왕국이다. 이것을 왕국으로 번역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결과 자연적으로 문맥에 전혀 맞지 않는 영적 해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왕국이 성립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왕이 있어야 한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질문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왕으로 너희 가운데 와서 거하므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그들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왕국’(kingdom)을 ‘천국’(heaven) 혹은 ‘나라’(country)로 바꾸는 것은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를 완전히 가려 성도들의 성경 이해를 가로막는 심각한 폐해를 낳는다.
2009-05-21 11:57:13 | 관리자
하나님의 영인가, 하나님의 신인가?
구약시대에는 성령님께서 무엇을 하셨을까?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혹은 ‘주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등에 있는 성령님(the Spirit)은 구약성경에 28회나 나오지만 개역성경은 이것을 다 ‘신’(god)으로 번역하여 구약에서 성령님을 제거했다.
개역: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1:2)
흠정역: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하나님의 신을 다시 영어로 번역하면 ‘god of God’이 되는데 사실 이런 식으로 번역된 성경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아마 유니테리언 교도들만이 이런 번역을 취할 것이다. 구약의 ‘the Spirit’이 바로 신약의 ‘the Spirit’ 즉 동일한 성령님이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이 기독교를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자기들 속에서 형성된 그 당시의 보편적 사고 체계에 따라 소위 신이 내린다는 강신(降神)의 무속신앙 개념으로 성경의 ‘성령님’을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개역: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삼상10:10)
개역: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삿6:34)
따라서 과거에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던 ‘성신’은 틀리며 ‘성령’이 맞는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개역성경은 성령에 관한 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개역: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개역: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1:19)
이런 구절은 다 ‘the Spirit of Christ’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이런 번역자들을 향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흠정역: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느니라(마22:29).
2009-05-21 11:51:37 | 관리자
한 하나님인가, 한 분 하나님인가?
삼위일체야말로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특이한 것이며 사실 이 교리로 인해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마땅히 삼위일체를 가르쳐야 할 성경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을 가르친다면 그 결과가 어떨 것인가?
개역: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역번역: God is one person. 딤전2:5)
흠정역: 한 하나님이 계시느니라(영어 KJV: There is one God).
개역성경처럼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여호와의 증인들 주장대로 하나님은 한 분 즉 아버지 하나님만 있게 된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한 분이 아니며 아버지, 아들, 성령의 뚜렷한 세 분으로 존재하시되 이 세 분이 하나인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야말로 너무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의 근간이 무너지게 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한 말씀을 주셨다.
흠정역: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그런데 개역성경은 알렉산드리아 철학을 따라 요한일서 5장 7절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다.
개역: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2009-05-21 11:49:28 | 관리자
베들레헴에서 사용하는 새번역(표준새번역개정판) 데이터 입니다.
압축을 풀어 베들레헴 실행파일이 있는 폴더에 복사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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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21:04:00 | 허광무
베들레헴에서 사용하는 킹제임스 영어 데이터 입니다.
압축을 풀어 베들레헴 실행파일이 있는 폴더에 복사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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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21:01:45 | 허광무
베들레헴에서 사용하는 한글 킹제임스 흠정역 데이터 입니다.
압축을 풀어 베들레헴 실행파일이 있는 폴더에 복사하시면 됩니다
최신 버전으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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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21:00:09 | 허광무
베들레헴 성경 실행화일 입니다.
앞축을 풀면 실행화일이 있는 폴더가 생성되고
이후 실행화일과 같은 폴더에 성경화일을(앞축을 풀어) 복사해 놓으면 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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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20:57:22 | 허광무
일천 번제인가, 천 개의 번제 헌물인가?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에 지혜와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고 해서(왕상3:4, 13) 요즘 한국 교회에서는 일천 번제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골자는 천일 동안 매일 일정한 액수의 돈을 바치고 기도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성경에 근거한 것일까? 과거에 다니엘이 21일 동안 금식했다고 해서(단10:2-3) 지금 교회마다 ‘다니엘 작정 21일 새벽기도’를 하고 있고 또 부흥회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예수님이 40일 금식했으므로 자기도 40일 동안 금식해서 능력을 받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선 적이 있는데 이제 또 여러 무지한 목사들이 무지한 양떼를 ‘일천 번제’로 끌고 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로몬은 결코 천일 동안 번제를 드리지 않았다.
개역: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왕상3:4)
흠정역: 왕이 기브온에서 희생물을 드리려고 거기로 갔더니 그것은 큰 산당이더라. 솔로몬이 그 제단 위에 번제 헌물 천 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리니라.
솔로몬이 기브온으로 간 이유는 그 당시 그곳의 산당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곳의 산당만이 유일하게 천 개의 번제 헌물을 일시에 수용할 수 있었다. 천일 동안 매일같이 번제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성경과도 맞지 않고 이치에도 맞지 않다. 어떻게 왕이 왕좌를 버리고 떠나서 근 3년 동안 번제만 드릴 수 있었겠는가?
솔로몬의 기사를 가지고 천 번 번제를 드렸다고 해석하게 된 데는 무엇보다도 개역성경의 공헌이 지대하다. 개역성경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각종 헌물을 제사로 처리해서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여기 나오는 ‘burnt offering’은 원래 ‘태우는 헌물’이다. 하나님께는 ‘태우는 헌물’ 즉 ‘번제 헌물’을 드리지 ‘번제’ 즉 ‘태우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경우 ‘burnt offering’ 대신 ‘burnt sacrifice’라는 말이 사용되곤 했는데(레1:3, 9, 10, 13, 14, 17 등 18 곳) 이것은 곧 ‘태우는 희생물’을 뜻한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것을 다 번제라고 번역했고 그래서 개역성경으로는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린다는 개념을 찾기 어렵다. 그 결과 솔로몬의 기사에서도 태우는 희생물 천 개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천 번 드린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이런 희생 헌물에 대해 아주 쉽고 명쾌한 답을 준다. 죄를 지으면 ‘죄 헌물’(sin offering)을 드리고 법을 어겼으면 ‘범법 헌물’(trespass offering)을 드리며 하나님과 화평하기를 원하면 ‘화평 헌물’(peace offering)을, 자원해서 드리기 원하면 ‘자원 헌물’(freewill offering)을, 음식을 드리고자 하면 ‘음식 헌물’(meat offering)을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개역성경은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낙헌 예물’, ‘소제’ 등으로 어렵게 만들었으며 또한 ‘자원 헌물’을 빼고는 모두 ‘헌물’이라는 말을 없애고 전체를 뭉뚱그려 제사로 바꾸어서 원래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속건제의 ‘건’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원 헌물’의 경우 개역성경은 레위기 22장 21절과 23절에서 ‘자의로 드리는 예물’ 혹은 ‘낙헌 예물’이라고 해서 헌물의 개념을 살렸는데 사실 다른 모든 경우에도 이렇게 했어야만 했다. 영어 성경의 경우에는 NIV, NASB 등 부패된 역본들도 모두 ‘헌물’(offering)을 살리고 있다. 아마도 이 사례 역시 중국 성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offering’을 제사로 번역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게 되며 그래서 제사장 계급이 일천 번제를 드리라고 강요해서 무지한 성도들의 돈을 착취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서 4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흠정역: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부하여 네가 나를 위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은즉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
한국 교회가 다시 한 번 회개하고 성경을 알아야 이런 무지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중세 천주교의 암흑시대가 우리에게 닥칠 것이다.
2009-05-20 17:55:41 | 관리자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인가?
삼위일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으로 한국에서도 이로 인해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으며 심지어 복음적인 교단의 목사나 지도자들도 이런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가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요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성도들에게는 목사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이 곧 양태론이다. 또는 “물은 얼음도 되고 액체도 되고 수증기도 된다.”는 주장 역시 양태론에 근접한 진술이다. 이렇듯 양태론의 핵심은 한 하나님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고 성령님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분명하게 이단 교리라고 말한다. 한국에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이고 성령님의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하며 그래서 침례를 줄 때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으로 준다.”고 한다. 이런 이론이 생기게 된 것은 전적으로 개역성경 때문이다. 이들은 요한복음 17장 11절을 근거로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하는 것이다.
개역: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개역성경에는 분명하게 예수라는 이름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들이 성경대로 그렇게 믿는다고 주장해도 도저히 반박할 수 없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이와 전혀 다르다.
흠정역: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흠정역 성경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로 되어 있다. 즉 개역성경에는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들을 주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성경이 다르면 교리가 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역성경의 근간이 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이 변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NIV 등도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임을 보여 주며 그 결과 예수 유일주의 같은 이단 교리가 발붙일 틈을 주고 있다.
NIV: I will remain in the world no longer, but they are still in the world, and I am coming to you. Holy Father, protect them by the power of your name--the name you gave me--so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
이제 성경적 삼위일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뚜렷이 구분되는 서로 다른 세 인격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한 하나님으로서 이 세 인격체 중 하나가 없으면 한 하나님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간을 생각해 보자. 시간은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며 각각이 다 시간이고 이 셋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시간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공간을 차지하면서 반드시 길이(x), 너비(y), 높이(z)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물체가 아니다. 아무리 얇은 것도, 작은 것도 반드시 x, y, z 세 방향의 크기를 가지며 이로써 그 물질이(혹은 공간이) 구성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증거들을 우주에 많이 만들어 두셨다.
2009-05-20 17:53:56 | 관리자
베들레헴 성경을 소개합니다.
컴퓨터에 설치하여 온라인 없이 사용할 수 있고 한글 영어등 12개 정도의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검색, 성경간 비교등 각종 편의 기능도 있구요.
전체 용량이 27메가정도가 되어 첨부가 되지 않네요.
첨부 화일은 도움말 화일 입니다.
추가로 실행화일과 성경데이타(흠정역한글, 영어흠정영, 개역개정판)를 올렸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최신판의 파일도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베들레헴 도움말
베들레헴은 한글윈도우용 성경 검색 프로그램이다. 성구와 성경절을 편리하게 찾을 수 있고, 성경을 장별로 읽거나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으며 작성하는 문서에 쉽게 끼워넣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베들레헴은 완전 무료 프로그램이며 공개되어 있으므로 마음대로 사용하고 복사하고 배포할 수 있다.
베들레헴의 기능
1. 찾고자하는 낱말이 포함되어 있는 성경절을 찾아서 출력창에 보여 주든지, 찾은 내용을 직접 아래아 한글이나 MS Word에 보낼 수 있다. 또한 출력창에 먼저 출력한 후에 보낼 내용만 선택하여 아래아 한글이나 MS Word에 보낼 수도 있다.
2. 원하는 낱말을 찾을 때, 성경전체, 구약전체, 신약전체, 범위선택과 같이 원하는 범위를 지정하여 찾을 수 있으며, 'AND 검색', 'OR 검색' 을 지원하고 한번에 3 낱말까지 포함된 성경절을 검색할 수 있다.
3. 성경절 찾기기능을 지원한다. 원하는 성경절을 직접 타자하여 입력하거나 성경책명 콤보박스와 장절 콤보박스에서 선택하여 입력하여 찾을 수도 있다. 또한 한 절 뿐만 아니라 이어서 몇 절까지 함께 찾아 볼 수도 있다. 사용자가 성경 번역판을 여러 개 선택하고 성경절찾기를 하면 선택한 모든 번역판의 성경절을 한꺼번에 찾아 나열해 주고 찾은 성경절의 앞뒤절이나 앞뒤장, 책으로 쉽게 이동하면서 비교 연구할 수 있다.
4. 성경 보기 기능을 지원하여 마우스 또는 키보드만 사용하여 성경을 장별로 읽거나 볼 수 있으며, 프리젠테이션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창을 동시에 띄워놓고 각 창에 서로 다른 번역판을 나오게하여 번역판을 비교하면서 편리하게 공부할 수 있다. 각 창의 성경 장절은 서로 연동되어 장절에 맞추어 따라 움직이게 된다. 연동하여 움직이는 것은 설정 또는 해제할 수 있다.
5. 지원하는 성경은 개역한글판, 개역국한문, 개역개정판(4판), 새번역(표준새번역개정판), 우리말성경, 쉬운성경, 공동번역(개정판), 한글킹제임스, 킹제임스흠정역, 현대인의성경, 현대어성경, 영문 KJV, NKJV, NIV, NRSV, NASB, NLT, MSG 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필요한 번역판만 받아서 사용하면 된다
6.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였을 때 빠른 메뉴가 나타나서 베들레헴의 대부분의 기능을 빠른 메뉴에서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기능을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고 단축키 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7. 각 창의 크기와 위치를 기억하였다가 다음 실행시 기억된 위치와 크기로 실행되므로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와 크기로 설정하여 사용할 수 있다.
8. 성경절 출력 형식을 다양한 모양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다. 성경절 본문에 좌우에 붙일 따옴표와 장절에 붙일 부호를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으며, 장절을 앞에 또는 뒤에 붙일 수 있다. 또한 번역판 이름도 장절과 함께 나오게 할 수도 있다.
개발자 E-mail : wait4him@paran.com개발자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wait4him
베들레헴 성경 용 400주년 판은 다음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68
2009-05-20 17:29:43 | 허광무
내 몸을 쳐야 하는가?
고대로부터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은 자기 몸을 혹사시키거나 참기 어려운 고행을 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집트의 이시스, 로마의 키벨레, 그리고 에베소의 다이아나같이 피에 굶주린 여신들을 위해 사람들이 피의 제전을 열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천주교회의 수도사들 가운데는 자기 몸을 극도로 상하게 한 사람들이 많았고 루터 같은 경우도 이런 일을 하려고 애쓰다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되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영적으로 높은 상태에 다다르기 위해 고행이 필요하다는 이교도들의 교리를 지지한다.
개역: 내가 내 몸을 쳐(I beat my body)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7)
한국 성도들에게 보상 심리를 허용하면서 많은 은혜를 끼친 이 구절은 실제로 나를 때리라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에는 ‘치다’(beat)라는 뜻을 갖는 그리스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는 ‘후포피아조’(hupopiazo)이며 실제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흠정역: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에서 바울 사도는 육체의 정욕들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하였으며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자기를 치는 행위’ 즉 자학 행위는 특히 왕상18:28에서 잘 드러나는데 거기서 바알의 대언자들은 자기들의 방식에 따라 자기 몸을 자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결코 성경의 개념이 아니다.
흠정역: 참으로 이런 것들은 의지대로 경배하고 자기를 낮추며 몸을 경시하는 데는 지혜가 있는 것같이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가치가 없느니라(골2:23).
2009-05-13 15:02:25 | 관리자
거세해야 하는가?
자기 학대로 만족하지 못한 자들이 이제는 신체의 일부를 잘라 내는 거세(去勢)를 행하려 하며 개역성경은 이것을 지지하고 있다.
개역: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갈5:12)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지방의 신자들을 유혹하던 거짓 대언자들이 그곳의 신자들과 교제하는 것에서 끊어지기를 원했으며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흠정역: 나는 너희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아예 잘려 나가기를 원하노라.
이 구절에서 분명히 바울 사도는 그곳 성도들이 아니라 ‘그들을 어지럽히는 자들’이 잘려 나가기를 즉 교제에서 단절되기를 원하였다. 누군가가 자기 몸을 자해하기를 원하는 것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도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뉴에이지와 고대 신비주의 관습이다.
개역성경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고 번역한 부분을 NIV와 NASB 등은 ‘emasculate’(거세하다)와 ‘mutilate’(신체를 절단하다)라고 번역하여 그 의미가 거세임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결국 동일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서 나온 현대 역본들은 고행을 통한 구원이라는 자기들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이런 두려운 일을 시도한 것이다. 이런 거세 풍습은 사도 바울의 갈라디아서의 기독교와 무관하며 신비 종교들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하고도 무서운 관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비적인 가르침들로 인해 현대 역본들의 기반이 된 ‘부패된 그리스어 신약 사본’을 편집한 장본인인 오리겐은 스스로 자기의 몸을 잘라 내는 거세를 행했다.
2009-05-13 15:00:53 | 관리자
‘없음’이 없는 성경이 있습니다.
한글 「개역성경」을 읽다가 신약의 13 구절에 ‘없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전체 절이 삭제된 것을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한 성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구절들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왜 절 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까? 사실은 성경을 믿지 못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서기관들이 자기들의 뜻과 맞지 않으므로 이런 구절을 다 삭제한 것이며 루터, 칼빈, 무디 등이 사용한 성경의 대본이 된 99%의 「다수 사본」들이 이런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고 단지 천주교에서 후원하는 1%의 「소수 사본」에만 이런 구절들이 삭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단 하나의 성경’ 즉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보존하셨으며 이 성경은 단 한 번의 변화도 없이 꿋꿋이 역사 속에서 그 위용을 떨치며 수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다. 반면에 사탄은 예로부터 ‘수많은 성경들’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속여 왔다. 세계 동향을 주시할 때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이제 과연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성경 보존 문제에 관한 오랜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깨어나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말씀을 보존하고 그 말씀을 선포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009-05-13 14:59:05 | 관리자
믿음인가, 행위인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의 일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개역성경은 그들이 순종하지 않아서 못 들어갔다고 기록한다.
개역: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4:6)
개역성경은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근본 문제에 초점을 맞추신다.
흠정역: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반드시 그 안식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남아 있는 줄을 알거니와 먼저 복음 선포를 받은 그들은 믿지 아니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이것을 믿음의 문제로 보시지 행위의 문제로 보시지 않는다. 바른 믿음이 있으면 바른 행위가 나온다. 이런 예는 로마서 11장 32절, 로마서 15장 31절, 히브리서 3장 18절, 히브리서 4장 11절 등에서 반복되고 있다.
개역성경의 행위 신학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잘 드러난다.
개역: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요3:36)
흠정역: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행위를 강조하다 보디 개역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흠정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롬11:6).
개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삭제하였는가?
하나님의 선물 즉 구원은 거저 받는 것인가, 값을 치르고 받는 것인가?
흠정역: 그러나 거저 주시는 이 선물(the free gift)은 또한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롬5:15)
개역: 그러나 이 은사(the gift)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선물을 ‘거저’ 주신다고 기록하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 근거한 개역성경은 NIV 등과 마찬가지로 ‘거저’(free)라는 가장 중요한 단어를 삭제했다(롬5:16; 5:18에서도 마찬가지임). 이 단어가 이 구절의 핵심이 아닌가?
개역성경은 조상들의 은덕으로 자손들이 천대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개역: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니니라(출20:6 참조)
흠정역: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
수천 세대라는 것은 원문에도 없고 알렉산드리아 서기관들이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첨가한 것이다. 앞 뒤 문맥과 성경의 구원 및 은혜관이 무엇을 지지하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2009-05-13 14:57:1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