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성경 서문
‘박사 성경’이라는 특이한 제목으로 인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박사 성경은 영국의 웨스트코트(B. F. Westcott)와 호르트(F. J. H. Hort)라는 유명한 그리스어 박사들이 행한 일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881년에 이 두 사람은 영국개역성경(English Revised Version, ERV 혹은 RV)을 출간하면서 신약성경의 본문을 수천 군데 변개시켰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 전에도 영어 성경을 개정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그 모든 작업은 이미 번역된 영어 성경의 본문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었지 번역의 대본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소수 본문인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을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1800년 동안 전통적으로 사용해 오던 다수 공인본문을 변개시켰습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사본들이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을 전혀 지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1881년의 영국개역성경에 수천 군데의 변개된 단어들을 집어넣었습니다.
물론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이 오래된 사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 둘은 내용 면에서 부패하여 박물관에 보관될 가치밖에 없는 사본들입니다. 이것은 사본들의 증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본문 수용을 통해 명백히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뢰할 만한 사본에서 계속해서 사본을 만들어서 전 세계에 배포했으며 그 결과 신뢰할 만한 사본은 곧 닳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래 된 사본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항상 신뢰할 수 있는 사본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 같은 부패한 사본은 바티칸 도서관이나 시내 산 수도원에 파묻혀 몇몇 사제나 수도승의 눈길을 끈 것 외에는 결코 교회 성도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습니다. 만일 이것들이 신뢰할 만한 사본이었다면 하나님의 영이 있는 성도들이 금방 진가를 알아보고 여기서 수없이 필사를 해서 곧 닳아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본은 필사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서기관들에 의해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바티칸 사본(B)은 원래의 기록자 외에 두 명의 서기관들이 난외에 혹은 줄과 줄 사이에 글자들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다른 서기관이 후대에 흐릿해진 글자를 잘 보이게 하려고 다시 덮어 쓰는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덮어 쓰는 작업을 했기에 원래의 글자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시내 사본(א) 역시 주후 4-12세기에 걸쳐 적어도 10명의 서기관들이 수정 작업을 했습니다. 이 사본이 정말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좋은 사본’이라면 10명이 넘는 서기관들이 후대에 거기에 수정을 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가 언제 어떻게 수정을 했는지 알 수가 없는 사본들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심지어 호르트 박사도 시내 사본(א)을 필사한 사람이 부정확하고 부주의하게 필사를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또한 그는 시내 사본(א)이 모든 면에서 바티칸 사본(B)보다 열등하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발언은 실제로 이 사본들의 신뢰성을 변호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티칸 사본(B)이나 시내 사본(א)의 여러 가지 다른 본문들이 99%의 다른 사본들에 의해 지지를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호르트 박사가 거기서 서기관들의 실수와 참 본문을 구분할 수 있었겠습니까?
버건(J. W. Burgon)은 이 두 사본이 지금까지 존재한 사본들 중에서 가장 열등한 사본임을 밝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개정을 개정한다’(Revision Revised)에서 바티칸 사본(B)의 복음서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용해 온 공인본문을 비교하면서 복음서에서만 바티칸 사본(B)이 2,877개 이상의 단어를 삭제하고 536 단어를 첨가하며 935 단어를 바꾸고 2,098 단어의 위치를 바꾸고 1,132 단어를 수정하여 총 7,578 단어의 변화를 가져왔음을 보였습니다. 버건은 또한 시내 사본(א)도 비교했는데 이것은 3,455개 이상의 단어를 삭제하고 839 단어를 첨가하며 1,114 단어를 바꾸고 2,299 단어의 위치를 바꾸고 1,265 단어를 수정하여 총 8,972 단어의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이 흠모하는 이 두 개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좋은 사본들’은 공인본문과 이처럼 많이 다를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매우 많이 다릅니다. 버건은 이 둘을 서로 비교하였고 “이 두 개의 사본에서 연속되는 두 줄이 서로 같은 것을 찾기보다는 서로 다른 것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호스키어(H. Hoskier)는 ‘바티칸 사본과 그것을 지지하는 사본들’(Codex B and its Allies)라는 책에서 “복음서에서만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3,000 군데 이상에서 서로 다르다.”고 보고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서에서의 차이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비율로 사도행전 이후부터 계시록까지의 모든 변화를 고려한다면 바티칸 사본(B)은 전체 신약성경에서 15,156 군데에서 공인본문과 다르고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은 6,000 군데에서 서로 다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누군가가 분명히 죄를 범한 경우 그를 재판정에 데리고 가서 유죄 판결을 받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증거가 있어야 하겠습니까? 아마 두세 증인의 증거만 있으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은 적어도 15,000 군데 이상 공인본문과 다른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독자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을 신뢰했다는 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역사의 증거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전적으로 신뢰하며 사용해 오던 전통 공인본문에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의 여러 가지 다른 본문을 섞었습니다. ‘박사 성경’의 저술 목적은 이처럼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바꾸어 놓은 부분들을 누구나 쉽게 우리말로 보고 원래의 공인본문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 ‘박사 성경’에서 표기된 잘못된 부분들의 원래 출처는 스크리브너의 ‘주석이 달린 그리스어 신약성경’(Annotated Greek New Testament)입니다. 스크리브너 역시 영국개역성경 위원회의 일원으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와 함께 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신약성경이 출간된 1881년도에 킹제임스 성경과 정확히 일치하는 자신의 공인본문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하였고 여기서 영어개역성경의 잘못된 부분을 모두 각주로 표기하였습니다. 이것을 근거로 전체 신약 성경을 살펴보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비평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은 5,604 군데가 그리스어 공인본문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2003년도에 웨이트(D. A. Waite, Jr.)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스크리브너가 찾아 놓은 부분들을 모두 표기해서 변개된 부분들은 영어로 쉽게 볼 수 있게 ‘박사신약성경’(The Doctored New Testament)을 출간하였습니다.
우리말 박사 성경 역시 동일한 필요에 의해 출간되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우리말 성경은 부실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1986년에 송종섭은 이 같이 안타까운 국내 형편을 직시하고 ‘헬 ․ 한대조 신약성경’을 출간하면서 한국 교회에 바른 성경이 없어서 성경의 올바른 이해와 성경적인 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년 동안 개역성경과 전통 그리스어 공인본문을 비교하여 개역성경에서 빠지거나 잘못된 부분들을 많이 정리하여 책에 표시하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자료들과 또 여러 목사님들이 목회하는 가운데 발견한 것들을 정리하여 전통 그리스어 본문에서 번역된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본문에 표시하였습니다. 개역성경을 구절 구절 비교하면 틀리거나 차이가 나는 부분이 워낙 많으므로 그것들을 일일이 적을 수는 없고 다만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과 교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만을 표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교리의 정립을 위해 성도들에게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딤후3:16).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사탄과 마귀들, 사람의 구원과 멸망, 천국과 지옥, 올바른 교회 등 크리스천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성경 안에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크리스천들의 믿음과 실행을 지도할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이같이 중요한 크리스천의 표준이 시간에 따라 바뀌며 그 안의 내용이 편집하는 사람에 의해 삭제되고 변개된다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장로교인들이 존중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나 침례교인들의 런던 신앙 고백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영감을 통해 성경을 기적적으로 우리에게 주셨으며 그 이후에도 섭리를 통해 지금 이 시간까지 성경을 보존해 주심을 믿는다고 선언합니다. 즉 지금 이 시간에도 변개되지 않아 절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다고 이 고백들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나온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이라는 거짓 과학을 통해 자연주의적/인본주의적 시각으로 성경을 대해야 하며 성경도 다른 고대 문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 속에 원래 것이 소멸되었으므로 학자들의 손을 빌려 원래의 성경을 회복해야 한다고 사람들을 속여 왔습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먼저 독일의 이성주의 신학자들을 사용했고 결국 영국에서 1881년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라는 불신자 학자들의 손을 통해 ‘수정된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습니다. 이렇게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한 마귀의 프로테스탄트 침투 작전이 대성공을 거둔 이래로 현대 성경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을 보존해 주셨음을 믿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원본을 복구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미로를 헤매고 있습니다.
성경 문제에 관한 한 한국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독보적 성경으로 자리를 굳힌 개역성경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신약성경 본문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많은 구절이 삭제되고 변개되어 있습니다. 혹시 독자께서는 개역성경을 읽으면서 ‘없음’이라는 단어로 인해 의아해 본 적이 없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4:4). 여기의 모든 말씀은 ‘every word’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숨을 불어넣어 주신 모든 단어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만을 보존하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모든 말씀들을 보존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을 보존하시려 하는 것만큼이나 마귀도 자신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자기 뜻에 맞게 성경을 변개하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 역사를 살펴보면 사도 바울의 안디옥 교회에서 나온 성경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해 준 ‘프로테스탄트 성경’이 있고 알렉산드리아의 인본주의 철학에 따라 성경을 비유로 해석하며 성경 신자들을 핍박한 사람들이 만든 ‘로마 카톨릭 성경’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경학자들과 신학자들은 학교에서 세뇌를 당해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바티칸 사본(B)과 시내 사본(א)을 추앙하며 믿음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해 준 다수 사본 즉 종교 개혁을 일으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신을 타파하고 킹제임스 성경의 모체가 된 사본들을 배격하고 있습니다.
박사 성경의 부록에서는 성경 번역을 위한 대본 선정과 번역자들의 사상이 어떻게 개역성경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자세히 비교하여 객관적인 사실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는 개역성경을 비교하고 분석하였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와 우수성을 제시하였습니다.
성경 문제,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해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개역성경의 문제점만을 분석했지만 사실 개역성경이나 개역 개정판,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NIV, NASB, Living Bible 등이 한결같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로마 카톨릭 사본에서 나왔으므로 이 책자의 분석 내용은 모든 현대 역본에 적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디 마음을 열고 하나 하나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성도들이 별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개역성경을 애용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교리의 정립과 신약교회의 설립과 운영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는 대안 성경이 나왔으므로 한 번 마음을 열고 비교해 볼 것을 권합니다. 진리의 영께서 저자의 속 중심과 그 안의 무거운 부담을 아시기에 이 책을 대하는 독자가 바른 길로 들어서게 해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늘의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 책을 통해서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길 원합니다.
2009-05-09 15:59:30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출간하면서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인간의 생사화복과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그분과 그분의 계획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계시(啓示)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리를 사람에게 전달하시는 것을 뜻하며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반 계시는 모든 사람을 향한 것으로서 사람의 양심이나 해, 달, 별 등과 같은 자연 만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시19:1-6; 롬1:18-32). 사람이 일반 계시를 통해 창조자 하나님께서 계심을 알 수 있지만 이런 계시는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특별 계시에는 하나님의 말씀, 기적, 우림과 둠밈, 천사, 예수 그리스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객관적인 형태로 하나님을 계시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으며 그 외의 것은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과 그분의 크고 온전하신 뜻을 이해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온 과정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주전(主前) 1500년부터 주후(主後) 100년까지 약 1,600년의 기간에 40여 명의 거룩한 사람들을 예비하셨으며 이 과정 속에는 왕, 정치가, 제사장, 세리, 어부, 의사, 목자, 사도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손 밑에서 완전한 성경을 기록하였으며 우리는 이를 ‘예비’(豫備)의 단계라 부릅니다.
이처럼 기록자들을 예비하신 뒤에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시기에 ‘영감’(靈感)이라는 단계를 통해 이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3:16)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감이란 말은 ‘숨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대해 성경은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에 의해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다”(벧후1:21)고 확실하게 정의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한 단어 한 단어에 숨을 불어넣으신 책이며 우리는 이것을 ‘총체적 축자 영감’(Verbal plenary inspiration)이라 부릅니다. 이렇게 해서 소위 자필 원본(自筆 原本)이라 불리는 최초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으로 주어졌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보존’(保存)이라는 단계를 통해 자신의 말씀을 순수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단어마다 친히 숨을 불어넣으셔서 완전하게 만드시고는 그 말씀을 전체적으로 완전하게 보존하지 않으신다면 영감의 단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완전한 보존’이 없는 ‘완전한 영감’이란 의미가 없으며 하나님의 속성 역시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감이라는 기적을 통해 기록된 말씀을 자신의 섭리에 따라 보존하셨습니다.
말씀의 보존에 대하여 성경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사40:8)고 확언하며 예수님께서도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고 말씀하심으로써 말씀의 보존을 확증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사용하셔서 대부분의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로 기록하고 보존하게 하셨으며,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셔서 신약 성경 전체를 그 당시 세계의 공통어이던 그리스어로 기록하고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보존의 단계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완전한 일을 행하셨고 바로 이 단계를 통해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까지 성경이 전달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온 경로에서 그다음 단계는 ‘번역’(飜譯)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후 100년 이후에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 나라의 말로 번역할 필요가 생겼고 그 결과 수많은 역본(譯本)이 출현하였습니다. 성경의 영감과 보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번역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이 넓은 세상 곳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기록된 자필 원본 성경이 아니라 각 나라의 말로 번역된 성경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번역의 단계 역시 영감이나 보존의 단계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번역을 위한 대본(臺本)입니다. 자필 원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필사(筆寫)한 사본(寫本)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것도 신구약 성경 전체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사본들을 정리하여 번역을 위한 대본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렇게 정리된 대본을 우리는 본문(本文)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큰 틀에서 볼 때 성경 번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번역을 위한 본문이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라는 점입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든지 그것을 찍어 내는 틀이 어떠하냐에 따라 생산되는 제품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 역본 역시 본문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내용이 필연적으로 달라집니다.
구약 성경의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소명 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이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벤 카임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이라 하는 ‘전통 마소라 본문’을 보존하였기 때문에 20세기 초까지 이 본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KJV)의 구약은 바로 이 본문에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1906년에 키텔(Rudolph Kittel)은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을 사용하여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Kittel, BHK)라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편찬하면서 비평 장치라 불리는 각주들을 이용해 ‘전통 마소라 본문’을 페이지마다 15~20 군데씩 수정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각주들은 신실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Ben Asher Masoretic Text)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1929년에 키텔이 죽은 뒤 칼레(Paul. E. Kahle)는 키텔의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본문을 전격적으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으로 바꾸고는 키텔의 이름을 붙여서 1937년에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을 출간하였습니다. 키텔의 작품이 아님에도 보통 키텔의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K) 3판으로 불리는 이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마침내 1967/1977년판 「슈투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BHS)로 개정 출간되었습니다. 이 같은 본문 교체는 구약 성경에서 약 20,000 군데가 수정된 것을 뜻합니다. 또한 ‘신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NIV)과 ‘신미국표준역’(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ASB) 등 거의 모든 현대 역본들의 구약 성경 본문이 「BHS」이기 때문에 이러한 본문 교체 영향이 그 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즉 마소라 본문이라 해도 다 동일하지 않으므로 어느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구약 성경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 성경의 경우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본문은 그리스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인데 이 본문의 특징은 신약 교회가 거의 1,900년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이며 그 내용이 전혀 변화가 없이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다수 사본에 근거했기에 ‘다수 본문’이라고도 하고, 가장 널리 사용되었기에 ‘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하며,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서방 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 (혹은 동방) 본문’이라고 하고, 루터와 칼빈 등 종교 개혁자들이 하나같이 이 본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개혁 본문’이라고도 합니다.
프로테스탄트들과 침례교인들이 한결같이 ‘공인 본문’만을 사용해 온 것과는 달리 로마 카톨릭 교회는 처음부터 ‘소수 본문’만을 고집해 오고 있습니다. ‘소수 본문’이라는 호칭이 의미하듯이 이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은 소수이며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및 신성, 대신 속죄, 삼위일체 등에 대한 오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본들 중 가장 유명한 것들로는 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보존되어 온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수도원에서 발견된 ‘시내 사본’이 있습니다. 이 두 사본에 근거해서 1881년에 영국의 웨스트코트(Brooke F. Westcott)와 호르트(Fenton J. Hort)는 ‘공인 본문’을 5,604 군데나 수정하여 ‘비평 본문’(Critical text)을 만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 본문’에서 삭제하거나 추가하거나 바꾼 단어는 9,970개이며 이것은 신약 성경 본문에 나오는 140,521개 그리스 단어의 7%에 해당합니다.
1898년에 독일의 네슬레(Eberhard Nestle)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티센도르프(Constantin von Tischendorf) 그리고 위마우스(Richard F. Weymouth)의 그리스어 본문을 조합하여 「네슬레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을 출간하였습니다. 그 뒤 네슬레의 본문은 27회 개정을 거쳐 현재는 「네슬레/알란드 그리스어 신약 성경」(28판, 2012년)으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한편 독일의 알란드(K. Aland)는 1952년부터 네슬레의 본문(21판)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1975년에 연합 성서 공회(United Bible Society)는 알란드가 제출한 네슬레의 본문을 「그리스어 신약 성경」(3판)으로 채택하였으며 2014년에는 5판을 출간하였습니다. 대다수 현대 역본들의 신약 성경은 예외 없이 천주교 소수 본문에서 나온 네슬레의 그리스어 본문에 근거하여 번역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킹제임스 성경’과 현대 역본들은 번역의 대본인 본문이 상이하기 때문에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새로운 역본으로 인한 새로운 기독교와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수백 가지 역본이 출현하면서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고르듯 자기 뜻에 맞는 역본을 선정하고 여러 역본을 비치한 뒤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이 구절은 이 역본이 좋고 저 구절은 저 역본이 좋다고 판단합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자신의 말씀의 보존과 전파를 위해 공통 언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현시대의 특성을 들 수 있습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군에 의해 무참히 패배를 당한 뒤 보잘것없던 섬나라 영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두 국가를 통해 두 가지 일 즉 자신의 선민인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일과 자신의 말씀을 세상에 전파하는 일을 수행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영국을 통해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합쳐진 성경전서가 출간되었고,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 지배하의 암흑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복음의 빛이 나오게 되었으며, 산업 혁명 등을 통해 인류의 복지 증진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영어 중심의 세계 판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확대되어 이제는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셔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거저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난 400년간, 세계 공통어가 된 영어를 사용하여 전 세계에 말씀을 전파해 오셨고 이를 위해 영어로 기록된 ‘킹제임스 성경’을 말씀의 표준 척도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여러 개의 영어 성경이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이 읽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해 주신 ‘권위역’(Authorized Version, AV)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킹제임스 성경만이 영미권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수많은 민족들이 사용하는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18, 19세기 미국 및 영국의 부흥과 세계 복음 전파에 독점적으로 사용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으며 모든 책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성경’(The Holy Bible)이라 하면 ‘킹제임스 성경’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에 대해 「톰슨대역 한영성경」 편찬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성경의 내용 번역은 물론 신학 용어 번역에 있어 만인이 수긍할 수 있는 기본 역본이 없다면 상당한 혼돈과 분파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킹제임스 역본'이라는 걸출한 역본이 있어서 1611년 이래 수백 년 동안 성경 역본과 신학의 기본 용어를 제공하며 만인이 수긍하고 공인하는 기본 자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는바 이 점에 있어서 '킹제임스 역본'의 공헌은 잊히지 아니할 것이다. 상술하면 '킹제임스 역본'은 영어는 물론 세계 각 나라 언어로 성경이 번역될 때 참고가 되는 제1의 통일 자료로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어의 세계적 발흥과 아울러 '킹제임스 역본'의 내적 우수성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다(톰슨대역 한영성경, 기독지혜사, 부록 1, 4쪽, 1989).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으며 누구든지 그분을 믿기만 하면 행위와 무관하게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서 살게 된다고 믿을 터인데 사실 이 같은 믿음의 근거는 단 하나 즉 ‘기록된 성경 말씀’밖에 없습니다. 이 ‘기록된 말씀’ 곧 성경이야말로 우리의 영과 육에 속한 모든 활동의 표준 척도이며 따라서 이런 표준 척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참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라는 논쟁이 크리스천들 간에 뜨겁게 진행되고 있으며 수백 종이 넘는 책들이 ‘성경’이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1993년 말에 미국성서공회는 「새 시대를 위한 좋은 소식」(Good News For A New Age)이라는 뉴에이지 성경마저 출판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상대적 윤리와 철학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에 지난 400년 이상 한 번의 개정도 없이 성도들의 믿음과 실행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와 거룩함 그리고 사랑을 널리 알려야 할 당위성이 대두되었습니다.
본 성경의 초판 번역에는 총 8년이 소요되었고 목사, 신학자, 경영인, 영어 교사, 국어 교사, 의사, 엔지니어, 변호사, 과학자, 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번역과 교정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아낌없는 형제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조언하였습니다. 이런 성도들의 값진 노고가 없었다면 본 성경의 출간이 불가능했을 것이며 이에 대하여 영광의 주님께서 하늘의 보상으로 충만히 갚아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또한 성경의 출간을 위해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형제자매들에게도 주님께서 동일한 은혜로 채워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 성경을 통해 우리 민족 가운데 아직도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들이 구원을 받기 원하며 특히 70년 이상 복음이 가려진 북녘땅에도 복음의 불길이 타오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울러 이미 믿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더욱 담대하게 이 세상을 이기며 죽어 가는 자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긴 작업 과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히 허락하신 모든 긍휼의 아버지와 친히 십자가의 모진 고초를 당하시고 피를 흘려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영원히 성도들 안에 거하시면서 지혜와 판단으로 모든 일을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 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권능과 위엄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합니다.
(*) ‘마제스티 에디션’은 초판 발행 이후 21년 동안 세밀한 교정 작업을 거쳐 출간되었음
2009-05-09 14:31:53 | 관리자
전도자를 위한 신약성경을 출간하면서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선언과 함께 자신의 지상 사역 기간에 구약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기체 즉 교회라는 유기체를 만드셨습니다(마16:18). 그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사 귀중한 피를 흘리시고 무덤에 묻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뒤 40일 간을 이 세상에 계시면서 절대 확실한 증거로 자신의 부활을 확증해 주신 뒤 승천하시면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대위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막16:15)
이런 대위임을 맡은 제자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산 증인이 된 그들은 담대하게 “예수 구원하신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들고 전 삶을 주를 위해 바치면서 심지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이들의 수고를 통해 복음이 온 세상을 한 바퀴 돌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도 이르게 되었으며 이 복음을 통해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고전15:1-2).
교회의 존립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Soul winning) 즉 구령이며 따라서 구령/전도가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친히 물으시면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마16:26; 9:13). 또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의 눈앞에서 기쁨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눅15:10). 구령/전도의 산 증인인 바울 사도도 죽기 전에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간곡한 부탁을 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딤후4:2)
구약성경 또한 영혼을 얻는 일이 매우 값진 것임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혜의 대왕 솔로몬은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라고 기록했으며(잠11:30)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던 대언자 다니엘도 많은 사람들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단12:3).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죄인들을 구원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긴급한 일입니다. 특별히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시점에서는 영혼 구령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을 요하는 사안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구령/전도자(Soul winner)가 늘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라도 필요할 때에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 신약성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런 신약성경의 부록에 ‘영혼 구령 가이드’를 수록하여 구령/전도 때에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질문들을 성경으로 답변하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미국 크리스천들이 이런 종류의 신약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때가 되면 한국 크리스천들을 위해서도 이런 신약성경을 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출간하는 「전도자를 위한 신약성경」은 바로 이런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는 사람과 죄와 사망의 기원을 보여 주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기초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특히 진화론이 득세하는 이 세대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자주 읽고 이 모든 것을 확고하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줄로 생각하여 창세기를 넣었습니다. 한편 시편, 잠언, 전도서는 구령/전도하다가 지치거나 지혜를 필요로 할 때에 묵상하면서 위로를 얻을 수 있도록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록의 ‘구령/전도 가이드’는 여러 책자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식으로 구령/전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느낀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것을 참조하셔서 독자 스스로 자신의 방법을 개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도의 대상이 다양하고 그들의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구령/전도에는 왕도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결합될 때 비록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십니다.
이 세상 물고기를 낚는 데도 기술과 장비와 노력이 필요하듯이 사람을 낚는 데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평생토록 쓸 수 있는 ‘영혼구원기술’을 몸으로 터득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번에 출간하는 「전도자를 위한 신약성경」이 우리 한국 성도들의 구령/전도 사역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신약성경을 사용하여 열매를 얻으신 분은 출판사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에게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호소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우리 모두 담대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싸움터로 나갑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영혼 구원/전도의 싸움터로 나가는 형제/자매님에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용기와 지혜와 위로와 승리를 허락해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샬롬.
2009-05-09 14:18:29 | 관리자
킹제임스 스터디 바이블을 출간하면서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면 어떤 창조물도 그분과 그분의 계획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양심과 자연 세계라는 일반 계시를 주셨고(시19:1-6; 롬1:18-32) 자신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객관적인 형태로 말을 사용하여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이라는 과정을 통해 성경의 모든 단어에 숨을 불어넣어 주셨으므로 성경은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3:16). 자필 원본을 주신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지금까지 자신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해 주셨습니다(시12:6-7; 사40:8; 마24:35).
주후 100년 이후에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 나라 말로 번역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그 결과 역본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이 세상 곳곳에 사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기록된 자필 원본/사본이 아니고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역본들입니다.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번역을 위한 대본입니다. 처음부터 신약 교회는 유대인들이 순수하게 보존한 히브리어 ‘전통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과 신약 성도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한 그리스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을 각각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대본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14세기 이후로 영어 시대가 열리면서 1382년경에 최초로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 하나로 묶인 위클리프 성경이 출간되었고 그 뒤 230년이 지나서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400여 년 동안 ‘킹제임스 성경’은 단 한 번의 개정도 없이 온 세상에 창조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밝히 드러내는 횃불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로 로마 카톨릭 소수 본문에 근거한 NIV, NASB, Living Bible 등의 현대 역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프로테스탄트/침례 성도들의 종교 개혁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말씀의 단맛을 아는 성도들에 의해 세상 풍조나 철학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강력하게 복음의 위력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8년간의 번역 과정을 거쳐 2000년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출간되었고 그 이후 20년간의 세밀한 교정 작업을 통해 2021년에는 좀 더 원문에 가깝고 낭독하기에 좋으며 우리말 문법에 맞는 ‘마제스티 에디션’이 출간되었습니다.
편집자는 35년 전에 ‘킹제임스 성경’을 처음 접한 이후로 영미권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연구를 위해 ‘용어 색인 사전’, ‘낱말 풀이 사전’, 각종 관주/주석 성경 등을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도구들을 통해 성도들의 믿음이 강하게 뿌리를 내려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도 여러 종류의 참조/관주 성경들이 나왔지만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보통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책은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편집자는 성경 번역 이후에 성경을 알고자 하는 평범한 성도들의 선한 욕구를 채워 줄 성경을 제작할 것을 결심하였고 그 결과 성경의 매 페이지 중간에 세로로 관주를 넣고 뒷부분에 성경 사전과 컬러 지도와 선도를 넣은 본 성경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주석 성경과 달리 본 성경 본문에는 문단이나 장의 제목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주석을 넣지 않았고 대신 부록으로 사전을 넣어 성도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편집자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선도와 지도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으므로 본 성경에서는 성경을 공부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연대기, 지도, 지형 선도, 교리 이해 선도 등을 제작/첨부하였습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 생기면(암8:11) 그분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됩니다(호4:6; 6:6).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은 죽은 책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해서 몇 가지 예가 나옵니다. 느헤미야기에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서 레위 사람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책의 말씀들을 명료하게 낭독하고 의미를 알려 주어 백성이 그 낭독한 것을 이해하게 하니라”(느8:8). ‘킹제임스 스터디 바이블’이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본 성경을 읽는 이들이 스스로 읽은 것을 이해하여 삶에 적용하는 것이 본 성경 출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난 빌립은 그에게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그대가 읽는 것을 이해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시는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이해할 수 있느냐?”라고 응답했습니다(행8:30-31). 본 성경의 관주와 사전은 빌립과 같은 안내자의 역할을 하여 독자께서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성경을 풀어 주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예로 남겨 주셨습니다. 비록 그분의 제자들이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주님께서 그것들을 정리하여 풀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눅24:32).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원하는 성도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일꾼의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떤 일을 감당하든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이해하고 진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이 많아도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의 계획과 일에 방해물이 될 수 있습니다(롬10:2-3). 바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때에 바른 구원과 교리와 실행이 나오고 바른 교회가 설립됩니다. 본 성경의 바른 본문과 성경 공부 도구들을 통해 독자들께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귀한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본 성경이 나오기까지 성경을 대조해서 읽고 관주와 사전을 일일이 검토하며 지도와 선도를 만들어 준 모든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긴 작업 과정 속에서1)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히 허락하신 모든 긍휼의 아버지 하나님과 친히 십자가의 모진 고초를 당하시고 피를 흘려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영원히 성도들 안에 거하시면서 지혜와 판단으로 모든 일을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 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권능과 위엄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랍니다.
(*) ‘마제스티 에디션’은 초판 발행 이후 21년 동안 세밀한 교정 작업을 거쳐 출간되었음
2009-05-09 14:17:02 | 관리자
킹제임스 스터디 바이블을 출간하면서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면 어떤 피조물도 그분과 그분의 계획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양심과 자연 만물이라는 일반 계시를 주셨고(시19:1-6; 롬1:18-32) 자신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객관적인 형태로 말을 사용하여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를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영감이라는 과정을 통해 성경의 모든 단어에 자신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으므로 모든 성경 기록은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3:16). 자필 원본을 주신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지금까지 자신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해 주셨습니다(사40:8; 마24:35).
주후 100년 이후에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 나라 말로 번역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그 결과 역본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이 세상 곳곳에 사는 많은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기록된 자필 원본/사본이 아니고 각 나라 말로 번역된 역본들입니다.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번역을 위한 대본입니다. 처음부터 신약 교회는 유대인들이 순수하게 보존한 히브리어 「전통 마소라 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과 신약 성도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한 그리스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을 각각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대본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14-15세기 이후로 영어 시대가 열리면서 최초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하나로 묶인 영어 성경전서가 출간되기 시작했고 1382년도에 위클리프 성경이 출간된 이후에 약 230년이 지나서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400여년 동안 「킹제임스 성경」은 단 한 번의 개정도 없이 온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밝히 드러내는 횃불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로 로마 카톨릭 소수 본문에 근거한 NIV, NASB, Living Bible 등의 현대 역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프로테스탄트/침례 성도들의 종교 개혁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말씀의 단 맛을 아는 성도들에 의해 세상 풍조나 철학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력하게 복음의 위력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도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완역/출간되었고 그 이후 약 6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2006년도에는 좀 더 원문에 가깝고 낭독하기에 좋으며 우리말 문법에 맞는 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는 20년 전에 「킹제임스 성경」을 처음 접한 이후로 영미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는 ‘용어 색인 사전’, ‘낱말 풀이 사전’, 각종 관주/주석 성경 등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도구들을 통해 성도들의 믿음이 강하게 뿌리를 내려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국내에도 여러 종류의 참조/관주 성경들이 나왔지만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보통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책은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번역한 이후에 평범한 성도들의 성경을 알고자 하는 선한 욕구를 채워 줄 성경을 제작할 것을 결심하였고 그 결과 성경의 매 페이지 중간에 세로로 관주를 넣고 뒤 부분에 성경 사전과 컬러 지도와 선도를 넣은 본 성경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주석 성경과 달리 본 성경의 본문에는 문단이나 장의 제목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주석을 넣지 않았고 대신 부록으로 사전을 넣어 성도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편집자 본인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선도와 지도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으므로 본 성경에서는 성경을 공부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연대기, 지도, 지형 선도, 교리 이해 선도 등을 제작/첨부하였습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 생기면(암8:11) 그분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됩니다(호4:6; 6:6).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은 죽은 책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해서 몇 가지 예가 나옵니다. 느헤미야기에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서 레위 사람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책에서 명료하게 낭독하고 의미를 알려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니라”(느8:8). 킹제임스 스터디 바이블이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본 성경을 읽는 이들이 그 의미를 알고 읽는 것을 깨달아 삶에 적용하는 것이 본 성경 출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난 빌립은 그에게로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그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시는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라고 응답했습니다(행8:30-31). 본 성경의 관주와 사전은 빌립과 같은 안내자의 역할을 하여 독자가 읽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성경을 풀어 주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예로 남겨 주셨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이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주님께서 그것들을 정리하여 풀어 주실 때에 비로소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눅24:32).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원하는 성도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일꾼의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떤 일을 감당하든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이해하고 진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이 많아도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의 계획과 일의 방해물이 될 수 있습니다(롬10:2-3). 바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때에 바른 구원과 교리와 실행이 나오고 바른 교회가 설립됩니다. 부디 본 성경의 바른 본문과 성경 공부 도구들을 통해 독자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본 성경이 나오기까지 성경을 대조해서 읽고 관주와 사전을 일일이 검토하며 지도와 선도를 만들어 준 모든 성도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며 긴 작업 과정 속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히 허락하신 모든 긍휼의 아버지 하나님과 친히 십자가의 모진 고초를 당하시고 피를 흘려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영원히 성도들 안에 거하시면서 지혜와 판단으로 모든 일을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 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랍니다.
2009-05-09 14:14:30 | 관리자
질문 : 전치사 in에 대한 번역이 「킹제임스 흠정역」과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변 : 「킹제임스 흠정역」은 관용구를 정확하게 번역했으나 말씀보존학회의 성경은 오역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 갔다가 한 분이 어떤 이상한 교리를 말하면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인용하기에 그 부분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기본 영어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영어 성경을 접하는 분들이 쉽게 실수할 수 있는 것이므로 오늘은 간단하게 영어 'in'의 용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눅3:22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몸의 형태로 그분 위에 내려오시고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킹제임스 흠정역).
And the Holy Ghost descended in a bodily shape like a dove upon him,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which said, Thou art my beloved Son; in thee I am well pleased.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pleased in"입니다. 개역 성경이나 기타 다른 모든 성경 - 전 세계 모든 성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 - 이 다 '너를 기뻐한다'로 번역한 반면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유독 다음과 같이 멋있게 번역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네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라"(한글킹제임스).
이런 번역상의 차이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영어 성경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런 것에서 미끄러지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또 잘 모르는 분들은 후자가 맞는 줄로 오해합니다.
영어에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동사/형용사는 'delight', 'rejoice', 'joy', 'pleased', 'joyful', 'glad' 등이 있으며 여러분이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문법 시간에 배웠듯이 이런 동사/형용사는 목적어를 취하면서 대개 'in'을 수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7장 22절을 봅시다. 영어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For I delight in the law of God after the inward man:
이 경우의 'in'을 '안에서'로 번역하면 오역이 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흠정역)
'joyful'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35편 9절을 봅시다.
And my soul shall be joyful in the LORD: it shall rejoice in his salvation.
이런 경우 "내 혼이 주 안에서 기뻐하고"로 하면 오역이며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맞습니다.
그러면 내 혼이 주를 기뻐하고 그분의 구원을 즐거워하리이다(흠정역).
'rejoice'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위의 시편35:9에'rejoice'가 있는데 여기서 '내 혼이 그분의 구원 안에서 즐거워하되'로 하면 오역입니다.
'glad'와 'rejoice'가 같이 나오는 아가서 1:4를 보시기 바랍니다.
Draw me, we will run after thee: the king hath brought me into his chambers: we will be glad and rejoice in thee, we will remember thy love more than wine: the upright love thee.
여기도 "우리가 당신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로 해야지 "당신 안에서"로 하면 우스운 번역이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This is the day" 복음 찬송도 보시기 바랍니다(시118:24).
This is the day which the LORD hath made; we will rejoice and be glad in it.
여기도 우리가 이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지 '그 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joy'를 보기 바랍니다(사9:17).
Therefore the Lord shall have no joy in their young men, neither shall have mercy on their fatherless and widows:
여기도 "주께서는 그들의 젊은이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고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기쁘다', '즐거워하다'는 의미의 단어는 대개 목적어를 취하면서 'in을 수반합니다.
그러면 'pleased'는 어떠할까요? 'pleased'가 'in'과 붙어서 나오는 용례는 신약 성경에서 몇 군데 발견됩니다(마3:17, 마12:18, 막1:11, 눅3:22, 벧후1:17 등).
이런 부분에서 'in'을 '....안에서'로 번역하면 아주 졸작이 되고 맙니다. 전 세계 모든 성경이 다 '..을 기뻐하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영어의 관용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2장 18절을 봅시다.
Behold my servant, whom I have chosen; my beloved, in whom my soul is well pleased(KJV)
"Behold, My Servant whom I have chosen; My Beloved in whom My soul is well-pleased; (NASB)
"Here is my servant whom I have chosen, the one I love, in whom I delight; (NIV)
"Look at my Servant. See my Chosen One. He is my Beloved, in whom my soul delights.(TLB)
보수적으로 번역한 KJV와 NASB는 'pleased in'을 썼으며 좀더 현대체로 쓴 NIV와 TLB는 'delight in'을 썼습니다. 영어에서는 'pleased in'과 'delight in'의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우리말에서는 그런 차이를 둘 수 없으므로 그냥 '...를 기뻐하다'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혼이 매우 기뻐하는 자'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제 말이 의심스러우면 여러분의 한영 사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으로 1828년도 Webster 사전을 보시면 정확하게 마태복음 3장 17절의 'pleased in'의 용례가 나와 있습니다.
To be pleased in or with, to approve; to have complacency in. Matt.3.
이것은 곧 즉 '그를 기뻐하며 승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안에서 기뻐한다'는 결코 맞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글개역성경은 너무 멋있게 번역을 했습니다. 즉 우리말의 용례와 우리 정서에 맞게 잘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내가 그 안에서 기뻐한다"고 번역하는 것은 졸역이며 심지어 오역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glory'도 목적어를 취할 때 'in'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레미야 9:23-24를 보기 바랍니다.
Thus saith the LORD, Let not the wise man glory in his wisdom, neither let the mighty man glory in his might, let not the rich man glory in his riches: But let him that glorieth glory in this, that he understandeth and knoweth me,
이런 경우의 'glory in'도 다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등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지혜 안에서'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6장 13도 마찬가지입니다.
For neither they themselves who are circumcised keep the law; but desire to have you circumcised, that they may glory in your flesh.
여기도 육신을 자랑한다고 번역해야 합니다.
2009-05-09 14:12:06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 역시 ‘최고’
미주중앙일보, 뉴욕중앙일보. May. 24 2001, 07:14 EST
미국인 가정 54% 보유…다음은 새국제역
갤럽,성서공회 공동조사
미국 가정의 93%가 성경을 소지하고 있으며 미국인 과반수가 킹 제임스 역 성경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갤럽연구소와 미국성서공회의 공동조사에 의하면, 성경은 미국인들이 정기적으로 가장 자주 읽는 도서중 하나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중하는 영역본은 킹 제임스 원역(1611년). 미국 가정의 54%는 킹 제임스역을 보유하고 있다. 킹 제임스는 지난 1950년대까지 개신교인들이 사용하던 유일한 번역판이었으나 그 후 다양한 현대 번역판들이 선을 보였다.
그러나 성경이 보다 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돼야 한다는 미국인의 불만은 여전하다. 킹제임스 이외의 현대역들 중 가장 선호되는 번역판은 NIV(새국제역). 그러나 정작 NIV 보유자는 평균 15%에 그쳐 KJV 선호도를 훨씬 밑돌고 있다. 그밖에 뉴킹제임스판(NKJ), 새미국표준역(NASB), 가톨릭 역본(NAB)들, 신개정표준역(NRS) 등도 모두 킹제임스에 비해서는 월등히 낮은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킹 제임스 원역판(KJV, 1611년)이 내겐 우수도서 중에서도 최고다!" 이것은 목회자의 말이 아니라 ‘보스턴글로브’에 실린 알렉스 빔씨의 말이다. 그의 이 말은 단지 취향을 뜻한 것일 뿐 성경의 권위를 말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미국인들의 고전적 킹제임스 편애성은 이유가 없지 않다. 칼럼니스트 앤디 크라우치(크리스차니티투데이)는 “라이프 스타일 지향의 최신 성경 번역판들은 원어 원문을 게재했더라도 평소 읽기 지루하고 답답한 부분들을 더욱 매력 없이 만들어 놓고 있다"고 지적. 크라우치는 나아가 “읽기 쉬운 부분들만 요란한 학습노트와 참고 힌트, 생생하고 컬러풀한 그래픽으로 장식해놨다”고 개탄했다. 빔은 한술 더 떠 구체적인 지적까지 했다. 즉 새국제역(NIV)을 펴낸 존더밴 출판사가 인터넷매거진 ‘유스스페셜티’와 ‘캠퍼스라이프’지와 공동발행한 청소년 큐티용 성경(TYB)은 본문 곁에 ‘무대뒷길’, ‘급진신앙’, ‘여기 새로운 게 있다면?’식의 현대식 주해를 달아 오히려 본문 흐름을 막고 있다는 것.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울 왕이 하루는 다윗을 오케이 가이로 생각했다가 그 다음날은 창을 던져 시시커밥(꼬치요리)을 만들려 했다.” "아담은 한동안 ‘나홀로’ 신사였지만(드럼 울려주세요) 하나님이 완벽한 짝패를 만들어주셨다.”
이와 관련, 빔 씨는 월간 ‘하퍼즈’를 통해서도 TYB가 “10대를 위한 ‘브리트니 스피어즈 바이블’로 놀림감이 됐다”고 말하기도. 더욱이 빔은 존더밴사의 사주가 ‘언론군주’의 하나인 루퍼트 머독 임을 들어 시대조류에 더 맞다고 빗대기도.
존더밴사의 존 소여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이러한 킹 제임스 선호 성향에 관해 “현대신학조류가 현대 성서 번역자들에게 영향을 끼쳐 성경메시지를 현대문화에 맞게 변경하는 시도가 입맛에 안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KJV는 이미 고전도서여서 판권이 없는 데다 값이 싸 발행 및 구매가 용이한 점도 선호원인으로 꼽힌다. 서점가 일각에서는 킹제임스 신약성서 1권이 불과 2달러 이하에 팔리며 읽기 쉬운 대형 글자판도 20달러 안팎에 구입이 가능하다.
아울러 인터넷상에 흔한 성경구절 탐색기도 KJV는 저작권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무한정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으므로 선호도가 높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7869
2009-05-09 14:07:42 | 관리자
현대인의 문제
마틴 로이드 존스
사람들이 자기들의 믿음을 어떤 특별한 방식에 고착시키고 있는 태도를 보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이 방식 중 하나가 새로운 번역 성경이 나오는 것을 아주 대단한 일로 여기며 흥분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교회 밖에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흠정역(Authorized Version)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행동입니다.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의 언어 즉 칭의나 성화같은 전문적인 용어를 현대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이 현대인에겐 아무런 의미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현대인이 원하는 것은 현대어로 된 성경, 현대의 속어나 현대의 관용구로 된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것이며 그리고 나면 사람들은 "이것이 기독교로구나!"하고 말하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새로 번역된 성경들이 앞 다투어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누구나 다 그 성경들을 삽니다. 그들의 주장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단지 최근의 언어로 된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이 아닙니까?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것 - 흠정역 성경 - 때문입니까? 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칭의나 성화에 대해서 무엇인가 더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그 말들이 천 년 전에 평상적으로 쓰였던 언어들이었읍니까? 그것이 문제의 핵심입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 사람 속에 있는 악이문제입니다. 언어의 문제나 용어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우리의 믿음을 귀착시킵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현대어로 된 번역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도만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도 말입니다. 흠정역 성경을 보완시키려면 한참 걸릴 것입니다.
현대 번역 성경들에 대해서 극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오도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현대 번역 성경들이 가치가 있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난제 - 여기서는 영적 부흥 문제 - 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 마틴 로이즈 존스의 부흥(Revival)에서 발췌. (생명의 말씀사, 28쪽, 서문 강 옮김,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2009-05-09 14:05:04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한 어느 신자의 글
풀러 박사 (Dr. David Otis Fuller)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구원받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오직 하나님만은 그 중심을 아십니다. 한 부류는 열심이 있고 정직한 무리로서 진리의 편에 서려 하고 또 진리에 대해 지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하여 중요한 논제들에 대한 사실을 알기를 열망합니다. 또 다른 부류는 다수의 크리스천들로서, 이들은 대개 사실을 보고서도 이같은 사실로 인해 자신들이나 혹은 자신들이 속한 교파나 교회가 지켜오던 전통들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사실 자체를 외면하려 합니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근본주의자' 혹은 '보수주의자'로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공산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인 레닌이 "사실이란 참으로 다루기 힘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평생에 보기 드물게 진리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권위역 킹제임스 성경]"(Authorized King James Bible)이 "자필 원본"에 가장 가까우며,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다른 모든 현대 역본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지닌 성경임을 증명하는 매우 명백한 사실들이 많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제시했을 때 진정으로 거듭나고 예수님의 피로 사신 바 되었다고 주장하는 크리스천들이 크게 화를 내고 조소하며, 그 사실들로 인해 자신이 지켜오던 것들이 무너지거나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을 보고 저는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수수께끼 중의 수수께끼"가 아닐까요?
만약 사랑하는 독자께서 후자에 속한다면, 저는 당신에게 더 이상 이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라고 충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성경 역본에 관한 모든 문제를 명확한 초점 아래 모아 객관적으로 제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입증할 수 있는 사실들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런 사실들에는 "회색(중간) 지대"란 있을 수 없으며, 흑 아니면 백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수행하면서 저도 한번은 금방 출간된 어떤 현대 역본을 들고 강단에 서서 "이것은 원본에 가장 가깝고, 읽기도 쉽고, 삭제해야 할 고어들로 가득한 어려운 구절들을 명백히 해주어 그 뜻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하면서, 그 새 역본을 칭찬하고 읽고 추천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곧 내게 이 죄를 깨닫게 해 주셨고 저는 그분의 용서를 구했으며, 그분께서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옛 뱀 마귀가 "그래,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냐?"라는 그 불경스런 말을 내뱉은 이래로, 지구라는 유성에서는 매우 사악하게 하나님의 말씀, 이름, 성품 등을 중상 모략하는 일들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이같은 거짓말들에 직면하고 있음을 저는 항상 기억하고 있으며, 가능한 한 다른 이들에게도 이 사실을 상기시켜 주려고 무척이나 애를 씁니다.
저는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여러 모임에서 많은 이들에게 말씀을 전해 왔으며, 그 때마다 이것이 믿는 이들의 생사의 문제임을 명백히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만약 현재 우리에게 수세기 전에 영원히 사라진 "자필 원본"(Original autographs)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순전하며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있지 않다면, "내일은 죽어 지옥에 갈 것이기에 지금 먹고, 마시고, 결혼하자."라는 단 한 가지 대안만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독자께서 이 책을 보시고 [권위역 킹제임스 성경]을 당신의 절대적인 최종 권위요, 하나님의 진정한 거룩한 말씀으로 부끄럼 없이 받아들이고 당신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다면, 많은 친구들을 잃게 되고 적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저는 친구로서 미리 경고를 해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성경책으로 인해 알게 된 새 친구들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귀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이미 영원히 잃어버린 옛 친구들과 이 진리들을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50여년 전에 처음으로 복음사역을 시작했던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저는 사탄의 덫이 사방을 둘러싼 '인생이라 불리는 이 어두운 터널' 속에서 저를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절대적인 최종 권위가 제게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 때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했다면, 저는 결코 복음 사역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진실하고 무오한 말씀이 없었다면, 그리고 은혜로 나를 구원해주시고 나를 위해 많은 일을 해주셨으며 지금도 그리하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실 "육체 안에 드러나신 영원한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저 "에이번의 시인" 세익스피어가 그의 극 중 하나에서 인생을 정의한 것이 절대적으로 옳을 것입니다.
"삶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단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바보가 내뱉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2009-05-09 14:02:43 | 관리자
성경의 영감과 번역
래키(Bruce Lackey) 저 / 임재영 역
전제 : 어떤 성경 역본이 만일 부패하지 않은 사본으로부터 '바르게 번역된 역본'이라면 그 역본을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1. 디모데후서 3:15-17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소유한 성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성경이 '영감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2. 디모데는 자필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단지 필사본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어쩌면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역본을 가졌을 가능성도 꽤 크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고 그는 더베 및/또는 루스드라에 살았기 때문인데, 그 지역은 분명히 그리스어가 통용되던 곳이었다. 신약 성경에 인용된 인용 구절들은 모두 히브리어 자필원본의 사본이나 또는 그리스어 역본을 가리킨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자필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3. 디모데가 소유했던 성경은 "거룩한 것"이라 불렸다. '거룩한'이라는 단어는 '다른', '구별된' 등을 뜻한다. 그 성경은 하나님께서 시편 12:6-7, 시편 100:5 및 기타 다른 여러 곳에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영감 받고 보존되었다'는 의미에서 '구별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다른 고대 문서도 그와 같은 주장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문서도 "거룩한" 것이라 할 수 없다.
4. 히브리서 1:8과 10:5는 매우 권위 있게 그리스어 역본 구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다.
5. 히브리서 3:7은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 구절은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였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말씀을 '70인역'(Septuagint)에서 인용하였든지 혹은 자신이 번역하였든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구절을 그리스어로 기록하면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담대하게 단언했다는 사실이다. 왜 거기에 히브리어를 삽입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번역본도 정확하게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즉 성경)으로 일컬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히브리서 9:8, 10:15도 이와 동일하다.
6. 단지 자필원본만 영감을 받았다면, 아무도 영감 받은 성경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마태복음 4:4의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을 순종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자필원본을 가진 자만이 이 구절에 순종할 수 있게 하셨던가? 혹은 히브리말이나 그리스말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 구절에 순종하게 하셨을까? 지각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에 대한 답변이 명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만드셨을 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을 되풀이하여 말씀하셨을 때 과연 그분께서 성경이 여러 번 필사되고 번역될 것을 모르셨겠는가? 만일 자필원본만 영감을 받았다면, 우리가 디모데후서 4:2의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며, 계시록 22:18-19 말씀 즉 성경에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에 관한 경고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 또한 가르침을 받아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는" 유익을 얻을 수 없다(딤후 3:16-17).
7. 부패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우리에게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베드로전서 1:23-25는 "우리가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났다"고 가르치며 또 "복음으로 너희에게 전한 말씀이 이것이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들었던 바 "말씀이 이것이니라"(THIS IS THE WORD.)라는 구절에 유의하기 바란다. 그들은 아마도 자필원본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복사본이거나 번역본에서 들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썩지 아니할 말씀'으로 다시 났다고 말했다.
8. 부패하지 않은 원본에서 번역된 것이라면, 그리고 정확하게 번역되었다면 어떠한 성경도, 어떠한 번역본도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바티칸 사본에 있는 많은 구절들도 TR에 있는 구절들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런 경우에 그것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부분은 다름이 아니고 성경이 변개된 곳이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1은 KJV와 NASV가 정확하게 같다. 우리는 단순히 어떤 구절이 발견된 책이나 또는 사본에 기초해서 그 구절을 정죄할 수 없다. 문제는 그 구절이 정확한가 아닌가이다.
반대 의견에 대한 답변
반대 1 : 이탤릭체 단어도 영감을 받았는가?
답변 1 : KJV 만이 이탤릭체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번역본은 아니다. 몇몇 다른 역본도 KJV과 같이 이탤릭체를 사용한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단어 대 단어의 번역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이탤릭체로 된) 단어를 삽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어는 자주 동사를 생략하지만 그리스어 문법의 법칙에 따르면 이는 완전하고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이렇게 하면 어색한 문장이 될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이해하는데 매우 방해가 될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디모데후서 3:16의 "is"는 이탤릭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필요하지 않은가?
이탤릭체 단어를 일치하게 만든 역본은 없다. 예를 들자면, 디모데후서에서 KJV은 "is"를 이탤릭체로 사용한다. 왜냐하면 "is"에 대한 그리스어 동의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given by"에 대한 그리스어 동의어도 없다. NASV는 베드로전서 2:8에서 "doom"을 이탤릭체 단어로 사용하지만 "because"는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삽입하는 단어가 정확하다면 단어의 삽입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위하여 필요하다.
마태복음 4:4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구약의 신명기 8:3의 그리스어 역본을 인용하셨다.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KJV는 "word"를 이탤릭체로 보여주는데 이는 번역자가 첨가하였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같이 첨가하는 일에서도 완전하고 정확했다. 왜냐하면 이 단어를 첨가하지 않고서는 영어에서 명확하게 의미가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자도 "word"를 추가했다(그리스어로 로고스). 그리스도께서 인용하심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그들도 역시 정확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의심할 바 없이 바른 역본과 그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하셨다!. 따라서 이탤릭체에 대한 반대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반대 2 : 번역자들은 일관되지 않았다. 그들은 한 그리스어 단어를 여러 개의 영어 단어로 번역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답변 2 : 우리는 반드시 번역자의 선택과 번역자의 오류를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로마서 7:7-8에서 그리스어 명사 '에피튜미아'와 이에 해당하는 동사 에피튜메오는 '탐욕'(lust), '탐내다'(covet), '욕정'(concupiscence) 등 세 가지 영어 단어로 번역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구절들에서 번역자들이 오류를 범했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 시대에 이 세 단어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정관사를 번역하는데 있어서도 동일하다. 모든 번역자들이 정관사를 번역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KJV도 NASV도 관사를 항상 번역하지 않았다.
우리가 번역자들의 단어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반드시 오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어 단어 story, fast, tie, post, watch 등은 다 적어도 2개나 3개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어떠한 언어에도 존재한다. 동의어의 경우를 보면 어떤 때에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나, 다른 때에는 미미한 의미의 차이를 갖는다. 예를 들면, 'car'와 'automobile'은 동일한 것을 가리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열차(railroad car)와 자동차(automobile) 사이를 구별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반드시 문맥에 의해 옳고 그름을 결정해야한다.
반대 3 : 번역이 영감을 받았다면 난외(欄外) 주(註)가 있거나 다른 대체 단어를 제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답변 3 : 단어나 구절에서 다른 번역을 제시하는 경우에도 번역자가 성경기록을 교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은 과거 300년 이상의 기간에 영어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널리 퍼져 있으나 1611 년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거짓 교리가 많은 사람들의 이해하는 바를 혼동시켜왔다. 따라서 그러한 오해를 없애기 위하여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하며,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간혹 구약 성경기록을 알기 쉽게 부연하여 설명했다.
예 : 마 12:17-21 (이사야 42:1-3에서), 롬 3:10-18 (시 14:1-3; 시 5:9; 시 140:3; 시 10:7; 시 59:7-8; 시 36:1)
따라서 같은 진리를 가르치는데 다른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부패하지 않은 원문에서 번역된 영어 번역은 동일한 원문에서 번역된 스페인어 번역과 똑같이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비록 다른 단어를 사용하였을지라도, 동일한 사실을 말하는 두 개의 영어 번역도 일치하는 성경 부분에서는 똑같이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반드시 취사선택을 해야 하는 부분은 다른 가르침이나 또는 삭제된 부분이다.
KJV의 최초 원본 서문을 보면 난외(欄外) 주(註)에 관한 지혜의 글이 나온다.
"논쟁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불확실한 것이 나타나 성경에 대한 권위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을 염려하여, 어떤 이들은 난외 주에 여러 가지 해석을 다는 것을 원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에는 단 한번만 나오는 단어들이 많이 있으며 따라서 이런 경우에 비슷한 구절들을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새와 동물과 보석 등에 관한 희귀한 이름이 많으며 그 이름들에 대해서는 히브리인들조차도 서로 견해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딘 가에서 성(聖) 제롬이 70인역에 관하여 말했던 것 같이, 자기들이 말하는 바를 확신하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것저것으로 정의를 내렸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우 난외 주가 있어서 읽는 이가 좀더 찾아보도록 권고하는 것이 더 좋으며, 조사도 하지 않고 이것저것을 결론 내리거나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는가?"
결론
1. KJV 역본의 근간이 된 TR은 시12:6-7, 시100:5, 벧전1:23-25에 있는 약속에 따른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말씀'이다. 만약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 P46, P66, P75 등이 부패하지 않은 성경이라면 그것들이 분실되었을 때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을 갖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2. 사본과 역본에 관한 어떤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에 의한 방법이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에 의해 TR이 TR이며, 네슬레의 각주 자체는 정확하며, 오늘날의 KJV이 최초 인쇄본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모든 사람에게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한다(롬10:17). 따라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학자나 또는 학자 단체의 신뢰성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 보존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과 일치하게 믿어야 한다.
4. 나는 KJV이 부패하지 않은 히브리어 사본과 그리스어 사본에서 번역된 정확한 번역본이며,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음을 믿는다.
사람들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바, 하나님의 말씀 사본에 대한 믿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본문 비평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섭리적 보존에 관한 분명한 교리를 믿는 나의 믿음이 그런 것을 무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이와 동일한 상황이 창조론과 창조를 부인하는 것으로 보이는 과학자들의 발견 사이에 존재한다.
명백한 약속에 근거한 믿음은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제기되는 반대보다 강하다.
하나님께서 모든 세대 동안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또한 KJV에 의해 표현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이 모든 세대가 소유했던 성경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KJV 성경에서 선포된 진리를 그처럼 두드러지게 사용하셨기 때문에, 나는 필히 이 성경(KJV)을 따르고 다른 성경을 배척하는 바이다. (99.2.4)
(*) 이 글의 저자인 래키 박사님은 예수님 당시에 "70인역"이라는 그리스어 역본이 존재한 것으로 믿으나, 본 사이트의 webmaster는 그렇게 믿지 않음을 밝히는 바이다. 다만 이 분이 주장하는 대로, 바티칸 사본에서도 '부패되지 않은 부분'은 '하나님의 영감 받은 성경기록'이라는데 100% 동의한다. 한글개역성경의 경우도 마차가지다. 비록 알렉산드리아 본문에서 번역되었지만, 올바른 본문과 일치하는 부분 - 적어도 85% 이상 - 은 '하나님의 영감 받은 기록'임에 확실하며 그 말씀은, 어떤 KJV 과격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사탄의 저주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다. 따라서 한국어로 번역된 '올바른 KJV 성경'이 없는 한 개역성경을 꾸준히 읽어야 하며, 영어를 하는 경우에는 비교해 가며 읽는 것이 좋다. 부디 일반 독자들에게 '개역성경'에 대한 믿음을 버리라고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안에서 '변개되지 않은 부분'과 '올바로 번역된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부디 KJV의 정확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이성과 지각이 없이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시키는 일에 앞장서서는 안될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일을 좋아하겠는가? 마귀가 아니겠는가?
2009-05-09 14:00:20 | 관리자
말씀의 보존(Preservation of the Words)
임재영 형제 번역
* 성경의 보존 :하나님께서 시대를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순결하게 보존하셨다는 교리
성경기록에 완전하게 영감을 주신 하나님께서 또한 성경을 완전하게 - 성경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 말씀들도 -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만약 영감은 전체적으로 완전하나 보존은 대부분 완전하다고 한다면 이 문제 전체에 토론의 여지가 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영감 받은 성경'(역자주:자필 원본)에 관하여 논쟁하는 것은 사실 헛된 말다툼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완전하게 영감 받았다고 주장하는 그 성경이 또한 완전하게 보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상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하나님께서 완전한 성경을 주셨다면 그분은 그 성경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사리에 맞다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것이다.
복음적이고 심지어 근본주의적인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보존에 관하여 말하는 바를 정의하고 방어하는 책들을 쓰지만, 이상하게도 그 동일한 성경이 직접적으로 보존에 관하여 말하는 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들은 영감에 관해서는 믿음의 입장을 취하지만 보존에 관해서는 회의론의 입장으로 물러난다. 잭 무어맨(Jack Moorman)은, 그의 뛰어난 책 「Forever Settled」 에서 명확하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준다: "훨씬 더 나은 원칙이 로마서 14:23에 주어져 있다....."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한 것은 죄니라". 만약 내가 믿음으로 내 손에 성경을 쥐고 이것이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죄인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얻게 되었는가에 관한 연구를 믿음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의 보존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바를 믿을 수 없다면, 그분께서 말씀의 영감에 관해 말씀하시는 바 또한 믿을 수 없다..... 이런 모든 것은 죄다."
성경의 보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다. 성경기록의 보존에 관한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keep)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preserve)."(시12:6-7)
"주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stand) 그분의 마음의 생각들은 모든 세대에게 이르리로다."(시33:11)
"주는 선하시도다. 그분의 긍휼은 영존하며 그분의 진리는 모든 세대에게 지속되는도다(endure)."(시100:5)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들은 진실과 공의요, 그분의 모든 명령들은 확실하니 그것들은 영원무궁토록 굳게 서며 진실함과 곧바름 속에서 이루어졌도다."(시111:7-8)
"우리에게 베푸시는바 긍휼이 풍성하신 그분의 친절이 크고 주의 진리가 영원히 지속되는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시117:2)
"오 주여, 주의 밀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으며"(시119:89)
"주의 증언들로 말하건대 주께서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셨음을 내가 엣적부터 알았나이다."(시119:152)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진실하오니 주의 의로우신 판단들은 모두 영원히 지속되나이다."(시119:160)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사40:8)
"나로 말하건대 이것이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이니라. 주가 말하노라. 곧 네 위에 있는 내 내가 영과 네 입에 둔 내 말들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입과 네 씨의 입과 네 씨의 씨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사59:21)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마5:18)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한 말씀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5)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이 구절들이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각 세대에 걸쳐 상세히 보존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직 이것만이, 말씀의 보존에 관한 성경적 교리인 것이다. 학자들은 이 입장을 비웃고 냉소하며, 그것에 "이차적 영감"(secondary inspiration)이라는 경멸하는 듯한 용어를 단다. 그러나 나는 성경이 초자연적인 영감과 초자연적인 보존을 가르친다고 확신한다.
시편 12:6-7은 성경 보존에 관한 교리를 요약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이 (단지 사상 또는 일반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각 세대에 걸쳐 보존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보존된 말씀이다. 단지 교리가 아니다. 단지 역사적 사실들이 아니다. 말씀이다! 이것이 "축어적 보존"(verbal preservation)이다. 이것이 성경이 분명하게 약속하는 바이다.
시편 33:11은 하나님의 생각이 잃어버린 바 되지 않고 모든 세대에 걸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고린도전서 2:12-13과 같은 구절로부터 이 신성한 생각이 신성하게 선택된 말씀을 통하여 표현되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고전2:12-13)".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편 33편의 약속도 또한 성경기록의 축어적 보존의 약속이라는 것을 안다.
시편 100:5, 111:7-8, 117:2은 하나님의 진리가 영원히 서 있고 모든 세대에 걸쳐 지속될(endure)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은 보존에 관하여 자연주의적 견해를 취하는 자들이 논쟁하는 것 같이, 건전한 교리가 보편적으로 보존될 것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가 사람에게 단지 보편적인 교리적 용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진리는 신성하게 선택된 말씀으로 표현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17:17). 그분은 또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4:4). 사람이 성경기록의 바로 그 말씀들을 가졌다는 사실은 중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단지 진리의 모형(pattern)을 주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성경기록에 있는 진리의 바로 그 형태(form)를 주셨다. 구약이 약속하고 있는 바가 보존될 것이라는 것이야말로 축어적으로 영감받은 진리인 것이다.
시편 119:160은 하나님의 말씀의 맨 처음 부분인 창세기와 다른 모세의 글조차도 보존될 것이라는 증거를 덧붙인다. 시편 100:5는 성경 보존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에 연결시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책을 주신 것은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100:5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성경기록에 영감을 주도록 동기를 부여한 동일한 사랑이 그분으로 하여금 그 성경기록들을 지키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대언자 이사야는 이 보존의 교리에 그의 "아멘" 을 덧붙인다. 이사야서 59:21에 따르면 보존되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기록의 보존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에서 더욱 명확하게 이 사실을 보여주신다. 마태복음 5:18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점 일획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확실히 축어적 보존이다.
베드로 사도는 절대적인 권위로 하나님의 말씀이 영구히 보존된다고 말했는데 이는 복음의 기록들(gospel writings) 중에서 우리에게 선포된 말씀을 포함한다. 복음의 기록들에 의해 우리는 베드로가 신약 성경 전체를 의미한 것이지 단지 처음의 4 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2:3은 복음이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이요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교리에 관한 성경기록의 짧은 개관을 마무리 짓는 것이 계시록의 증거이다. 계시록의 마지막 장에는 그 책의 내용을 함부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무서운 경고가 주어진다. 분명히 이 경고는 계시록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이 경고는 반드시 계시록을 마지막 장으로 두고 있는 전체 성경 기록에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을 생각하라. 만약 사람이 한 책의 내용을 삭제하거나 첨가하는 것을 금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세부 항목에서 그 책을 보존하실 의도를 가지셨음이 분명하다. 사람이 함부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 바로 그 말씀들(WORDS)인 것을 주지하라.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그 말씀이다! 만약 사람이 성경의 어떠한 말씀도 함부로 변경하는 것을 금하셨다면, 분명히 그분께서는 이 말씀들을 보존하셔서 이 말씀이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 되게 하려고 하셨음에 틀림이 없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계시록 22:18-19의 경고는 무의미한 것이다.
요약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세한 상세 부분(점과 획, 말씀)을 포함하여 그분의 말씀을 순결한 형태로 보존하실 것이라는 것과, 이는 전(全) 성경기록, 곧 구약과 신약을 포함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오직 축어적 완전 영감(verbal, plenary inspiration) 교리의 빛 안에서만 합당한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기록으로부터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시편 12:6-7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가?
시편 12:6-7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는 것임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이 핵심 구절이 오히려 시편 12:1-5에서 언급된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존하실 것임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는 1983년에 발행된 "성경적 복음주의자"(The Biblical Evangelist)의 한 기사에서 쿠틸렉(Doug Kutilek)이 제기 한 것이다. 쿠틸렉은 7절의 "그들"(them)이 남성형인 반면에 6절의 "말씀들"(words)은 여성형이기 때문에, 7절이 6절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1984년 초, 나는 래키(Bruce Lackey) 박사에게 이 문제에 관하여 편지를 썼다. 래키 박사는 1998년 12월 1일에 서거했는데, 그는 테네시 주(州) 채타누가(Chaltanooga)에 소재한 테네시 템플 대학에서 19년 동안 가르쳤으며 성경학부의 학장을 지낸 바 있고, 또 20년 동안 교회의 목사로서 사역을 감당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성경 협의회 강사로 여행하면서 몇 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는 뛰어난 음악가요, 높이 평가받는 성경교사였으며, 그리스어에 능숙하였다. 그는 그리스어 "공인 본문" 혹은 "수용본문"(Received Text)을 부지런히 공부한 학생이었다. 다음은 1984년 2월에 받은 회신이다.
나는 시편 12:6-7이 성경기록의 보존을 가르친다는 확신으로부터 물러나지 않는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히브리 성경에서는 성(性)과 수(數)의 일치의 원칙에 간혹 예외가 있다."(Gesenius' 「Hebrew Grammer」 135p 참조)고 쿠틸렉이 스스로 인정했다는 사실은 시편 12편 7절의 "them"이 말씀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기계적으로나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가능한 것임을 즉시로 보여준다. 다소 유사한 경우가 요한복음 15:6에 존재한다. 여기서 "그것들은"(them)은 그리스어에서 중성 복수이고, "그것들을 사르느니라"(they are burned)는 단수 동사이다. 도나(Dona) 와 맨티(Mantey)가 저술한 「그리스어 신약문법」( p. 165)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구문론 원칙에 대한 외관상의 예외는 중성 복수 주어가 규칙적으로 단수 동사를 취한다는 사실이다(요 9:3)." 그러므로, 성(性)과 수(數)의 논증을 사용하여 견해를 입증하거나 또는 반증을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언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외가 있음을 알고 있다.
2. "지키다"(keep)와 "보존하다"(preserve)라는 단어가 사람에 관하여 쓰인 시편의 여러 구절을 나열하여 논증하는 것은 전혀 유력한 것이 못된다. 시편 12:6-7은 모든 책 중에서 이 단어들을 사람보다는 사물을 가리키는데 사용한 유일한 곳임에 틀림이 없으며, 이것이 이 입장을 무의미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시편 110:4 은 구약에서 주 예수님의 멜기세덱 제사장(성직자) 직분을 가리키는 유일한 구절이며, 히브리서 4:7은 그것을 더욱 중요시한다.
3. 논쟁은 전후 문맥상 정연하지도 않다. 그는 말하기를 "시편 12편 메시지의 기본 핵심은 명확하다: 시편 기자는 올바른 자들의 죽음과 사악한 자들의 증대되는 힘을 한탄한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7절이 말씀의 보존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적합치 않음을 보이려고 애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6절도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전후 문맥은 말씀의 보존이라는 해석에 알맞다.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5절에 주어졌다. 6절과 7절은 5절의 하나님의 약속이 결코 파기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삽입된 것이다.
4. 마지막 단락에서 쿠틸렉은 이 구절을 성경 보존의 교리에 적용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만적이고 부정직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치 않은 것으로 다루는 죄를 범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전에 그는 존 웨슬리, 헨리 마틴, G. 켐벨 몰간, 키드너(Kidner) 등과 같은 뛰어난 성경 해석가들이 그 구절을 말씀의 보존으로 해석하는데 동의했다고 인정했다. 이는 마치 쥐가 코끼리를 공격하는 것 같다! 그들이 어떤 점에서 틀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속이거나 부정직하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모든 세대에 걸쳐서 보존하실 것이라고 가르치는 다른 구절들로는 시편 33:11, 119:152, 160, 이사야 59:21, 마태복음 24:35, 베드로전서 1:25 등이 있다. 또한 마태복음 28:20과 요한복음 14:23을 비교해 보면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킬 때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은 반드시 믿는 이들에게 지금 이 시간에 있어야만 한다.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느니라, 아멘"
시편 12:7 에 있는 "그것들"(them)의 선행사가 6절의 "은"(silver)을 가리킬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견해는 1993년 판 「The Baptist Watchman」에서 피트만 목사(David Pitman)가 다음과 같이 제기한 것이다. "7절에서 첫 번째 "그것들"(them)은 남성 복수이다. 두 번째 "그것들(them)은 남성 단수이다; 6절에서 "말씀"은 매번 여성 복수이다...."은" 이라는 단어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은"은 남성 단수이다. 이는 성과 수의 일치를 고려한 것이며 말씀의 보존 약속이 하나님의 말씀들(words of God : 복수)과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 단수)에 주어졌는가를 설명할지도 모른다. 남성 단수와 남성 복수 사이의 상호 교환은 (특별히 단수에 의해 집합 복수가 제시되는 상황은) 구약에서 흔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존하셨음을 믿는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의 각 말씀을 보존하셨음을 믿는다.... 시편 12 편에서 끌어낸 큰 대조는 악한 자들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있다. 사악한 자들은 왜곡되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순결하게 말씀하신다. 악한 자의 말은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벧전 1:25, 눅 21:33) 나는 시편 12:7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성한 보존의 약속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그것은 문맥상으로, 문법적으로, 신학적으로 옳은 것이다. 이 견해는 부정직하지 않으며 무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이 견해에 반대하는 자는 이에 대한 그들의 평가에 보다 정직해야 할 것이다."
2009-05-09 13:55:57 | 관리자
이 글은 구영재 선교사님의 News Letter 2000년 여름호에 실린 기사를 편집한 것입니다.
▶ NIV 성경의 판권주인「머독」(Rupert Murdoch, 위 그림의 오른쪽)은 천주교의 '기사' 작위를 가지고 있는 천주교인으로서, 최근에는 로스안젤레스의 천주교 성당 건립에 10억 불을 기증한 자이다. 그는 Fox Television, 20th Century Fox Films, London Times, New York Post, Harper Collins, Zondervan Publisher. 등 외에도 수많은 음란잡지 총판책도 가지고 있는데, 작년에는 30년 넘게 살아온 처자를 버리고 젊은 중국계 여자와 재혼한 간음자이기도 하다 그는 죤더반 출판사를 인수한 이후 1996년에 이미 77판을 기록한 유명한 할레이 박사의 성경 핸드북「Halley's Bible Handbook」을 전면 개조했다. 그는 이 책의 본문의 모든 성구를 NIV 로 대체했으며, 이 책의 부록인 '기독교회사'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할레이 박사가 쓴 '기독교회사'는 천주교회가 저질러온 만행들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책이다. 한편, 빌리 그래함은 할레이 박사의 미망인의 반대를 무시하고 이 교회사 부분이 삭제된 할레이 성경 핸드북을 오랫동안 보급해왔다. 그 후 머독은 할레이 박사가 쓰지도 아니한 완전히 다른 책을 만들어 소위 「개정판 할레이 성경 핸드북」이라는 것을 시중에 내어놓았다.
▶ 신앙의 법칙을 무시한 자들이 편찬한 성경들 - NIV 성경의 구약 편집장 우드스트라 박사는 '호모'운동 지지자이며, 신약 편집위원인 몰렌코트 박사는 자신이 '레즈비안'임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자이다. 수석 편집위원인 영블라드 박사는 '성경은 사람의 말이다' 라고 가르치며, 필라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인 편집장 에드윈 팰머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자이다("The Holy Spirit did not beget the Son"). NIV는 '경배한다'(worship - proskuno)라는 단어를 번역하면서 예수님에게는 이 '경배한다'는 단어를 고의적으로 모두 삭제하고는 '사탄', '짐승들', '우상', '마귀들'에게는 '경배한다'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가장 '사탄적인' 성경이기도 하다.
▶ NIV 성경의 핵심 편집진 혹은 추천자 12명 중 8명이 필라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이며, 4명이 역시 필라의 Dropsie 대학 출신이다. Westminster(NIV), BJU(NASV), Princeton(NRSV) 의 성경들이 '천주교/여호와의 증인' 성경과의 대조를 통해 같은 성경들임이 쉽게 식별 가능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비평' 운운하면서 1902년 이후로 평균 매 3.5년마다 개정에 또 개정, 무려 27번 이상 '개정'을 거듭해오고 있으나 사실 이들 자신들도 대 혼란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죄성으로 추해진 인간들이 개발해 낸 '본문비평'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기술을 통해서 저들 자신들의 힘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학자들의 생각은 그 근본부터가 비성경적이며 오만한 발상이다. '본문비평'이라는 자기도취에 빠져 이 기술이 있기 전에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존재하지 아니한 것처럼 자신들에게 권위를 돌리는 이들은 생계를 위해 경건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이며, '진실 그 자체보다는 학위, 지위, 명성'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명성 유지를 위해서는 허위도 불사하는 저들의 타락한 속성을 보아왔다.
▶ 1884년, 뉴에이지 신봉자이자 로마 교황 추종자였던 스위스인 필립 샤프는 필라델피아에 정착한 후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시사한 챨스 하지 (Charles Hodge, 1797-1878, "The Roman Catholic Church teaches truth enough to save the soul of men,"「Life of Charles Hodge」by A.A. Hodge, p.342)를 포섭하였고, A.A. Hodge, B.B. Warfield, G. Machen 의 '보수' 프린스톤 신학과 A.T. Robertson을 통해 남침례교 신학까지 오염시켰다. 변질되고 있던 프린스톤 신학에 낙담한 메첸이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를 세우면서 가지고 나간 '프린스톤의 누룩'은 여전히 오늘날의 '천주교/여호와의 증인' 성경의 텍스트로 이집트 사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웨스트코트/호르트의 악령이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교가 '로마 교황 신봉자들'이었던 웨스트코트/호르트가 ' 바티칸 사본'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완전히 다시 편집한 헬라어 텍스트에서 번역한 '천주교/여호와의 증인' 성경의 누룩에 취해있다.
웨스트코트는 마리아에 몰두, 프랑스의 '마리아의 현현' 장소를 순례한 후 온 세상의 여자 이름은 마리아로 고쳐야 한다면서 자기 아내 사라의 이름에다 마리아를 첨가한 후에 '마리아'로 불렀으며, 노년에는 '알콜중독자'로 술 광고에까지 실렸으며, 아일랜드계인 호르트 역시 마리아 숭배자로 '마리아 숭배와 예수 숭배를 동격에 두는 망발'("..that 'Mary-worship' and 'Jesus-worship' have very much in common in their causes and results")을 서슴치 않았던 자로서 캠브리지 대학을 갓 졸업한 나이 23세때 이미 킹제임스 성경을 일컬어 "악랄한"(villainous), "천한, 수치스러운"(vile) "TR" 이라고 불렀던 자이다. 로버트슨의 제자 William T. Bruner 박사는 노년에 이 사실을 깨달았고, Nestle 은 임종 전에 쓴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바티칸사본'에 대한 웨스트코트/호르트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들이 친 로마계 수상이었던 글래드스톤의 권력의 지원을 입고 다시 만든 성경은 '제목부터가 거짓말'인 REVISED(개정된) VERSION 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개정된'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다른 성경이었으며, 오늘날의 그 많은 'NEW'로 시작되는 성경들의 뿌리가 바로 이 웨스트코트/호르트가 만든 성경이었음이 그 열매로 증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원본' 운운하면서 죽은 '사해사본/70인역'의 허상을 붙들고 있다.
2009-05-09 13:51:30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는 이유
저는 분명히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Authorized King James Version)이 우리 믿음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 권위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잘못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먼저 글을 올립니다.
(1) 원어 성경 및 번역의 문제
제 말은 결코 올바른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나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원어로 된 필사본이 있었기에 [킹제임스 성경]이 나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이며, 따라서 원어를 무시한다는 것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어로 된 필사본이나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지 않고, 영어로 된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습니다. 물론 이 글을 처음 대하는 독자께서는 이같은 진술에 대해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간단하게 몇 가지 예를 들어가며 우리가 말하는 바 최종 권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대개 중학교에서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다 아시는 일이지만 사실 영어 사전을 펴보면 어떤 단어든지 한 개의 의미만 있지 않고 뜻이 보통 대 여섯 개, 많은 경우는 열 개가 넘는 때도 있습니다. 원어 역시 마찬가지로 한 단어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원어 단어가 주어졌을 때 그 단어의 여러 가지 뜻 가운데서 과연 어느 것이 그 문장에 맞는지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결코 원어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특정한 원어 단어를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저희가 말하려는 바 최종 권위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한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학이 달라지고 심지어 이단 교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알렉산드리아 본문이 전적으로 부패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입증되면서, [그리스어 공인본문](TR)을 최종 권위로 삼으려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우리는 이렇게 믿는 분들을 "TR 주의자"라고 부릅니다. "TR 주의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올바른 본문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가장 좋은 영어 성경이라고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들은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본이므로 결코 최종 권위가 될 수 없으며, [TR]만이 최종 권위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주장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타협적인 입장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이같은 입장을 취하게 되면 성경 말씀이 성도들의 최종 권위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어 학자들이 최종 권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공인본문] 즉 'TR' 안에 있다면, 도대체 누가 어떤 특정한 그리스어 단어를 무엇으로 번역할지를 결정한단 말입니까? 예를 들어, 그리스어 '하데스'(Hades)라는 단어를 살펴봅시다. 이 단어는 "죽은 자가 가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죽은 자의 몸이 가는 곳을 의미할 때는 '무덤'(Grave)으로, 믿지 않고 죽은 자의 혼이 가는 곳을 의미할 때는 '지옥'(Hell)으로 번역됩니다. 이 특정한 단어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에서 모두 11번 쓰였으며, [킹제임스 성경]은 그 중 10번을 '지옥'(Hell)으로 그리고 나머지 1번은 '무덤'(Grave)으로 번역했습니다.
어떤 이가 "TR 주의자"라면(혹은 그리스어 학자라면),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하데스'를 번역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람 자신이 성경의 최종 권위가 되어 그 중 6번은 '지옥'으로 5번은 '무덤'으로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을 때는, 이미 '하데스'라는 단어를 하나님께서 10번은 '지옥'으로, 그리고 나머지 1번은 '무덤'으로 확정해 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하데스'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믿는 믿음의 전부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분명히 원어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필사본의 중요성을 인정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올바른 그리스어 및 히브리 본문을 사용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번역 작업 속에서 원어 성경 외에도 '라틴 역본', '시리아 역본', 그리고 이전의 영어 역본 등도 부지런히 비교하고 검토했습니다. 만일 독자께서 여러 종류의 [TR]들간에 서로 차이나는 부분들을 다 모은다면, 그 양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TR]을 완전한 성경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TR]이 단지 신약성경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성경 번역자가 특정한 원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는가에 따라 그 내용이 매우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한번 원어 성경이 우리의 최종 권위가 될 수 없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의 유명한 전도서 구절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1:14, [한글개역성경])
이 구절 외에도 전도서에는 '바람을 잡는다'는 표현이 9번이나 더 나옵니다(전1:17, 2:11, 2:17, 2:22, 2:26, 4:4, 4:6, 4:16, 6:9). 이 구절의 '바람'에 해당하는 원어는 '루아흐'로서, 이 단어는 '바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 사람의 '영', 사람의 '호흡' 등을 표현하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즉 이 단어는 '바람'으로도 해석이 되고 '영(spirit)'으로도 해석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이 위의 전도서 구절을 다 '바람을 잡는 것'으로 표현했지만,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은 이 구절을 '영(spirit)을 괴롭게 하는 것'(영의 괴로움이 아님)이라고 번역했다는 사실입니다.
원어는 동일하므로 이같은 차이가 생긴데 대해 원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예를 통해 다만 저는 성경 번역자가 같은 단어를 문맥에 따라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자 그렇다면 전도서의 문맥상 어느 번역이 맞을까요? 저희는 전도서 기자가 말하려는 요점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한 대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어 우리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려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도서 기자는 끝장인 12장 13절에서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즉, 이 모든 것이 영의 문제지 결코 바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이런 번역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번역이라고 믿으며, 이런 의미에서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의 최종 권위라고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어떤 이들은 번역에는 하나님이 영감을 주시지 않는다고 애써 주장하려 할 것입니다. 물론 저희도 [킹제임스 성경]이 영감 받은 성경이라고 주장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번역에도 영감을 주실 수 있음을 간략하게 보여 드리고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려는 때에 마귀가 와서 그분을 시험했습니다.
"그 시험하는 자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이 빵이 되게 하라, 하거늘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3,4)
위의 말씀은 분명히 성도 마태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그리스어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4절 말씀의 밑줄친 부분은 구약성경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주어진 것을 마태가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을진대, 그 안의 구약성경 인용구절들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셨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번역에도 영감을 주십니다.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원어에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이 결코 영감 받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으로, 우리의 믿음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 권위가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부디 독자께서는 하나님께서 영어로 보존하신 [킹제임스 성경]을 독자의 최종 권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확신을 가지십시오.
(2) 한글개역성경에 관련하여
대부분의 한국 성도들께서는 "성경의 한 구절도 틀린 곳이 없다."고 배워 왔고 또 대부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같은 진술 속에 담긴 '성경'이 과연 어떤 성경을 말합니까? 가끔 이런 분들과 대화를 하다가 [한글개역성경]의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면 많은 분들이 화를 내며 우리를 이단으로 몰아붙입니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저는 [한글개역성경]에 대한 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려 합니다.
여러 가지 한글 성경이 있지만 참으로 [한글개역성경]만큼 많은 성도들을 감동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한 성경은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과 제 부모가 이 성경을 통해 구원을 받았으며, 저 역시 이 성경을 통해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한글개역성경]의 간결한 문체와 문장 구조는 매우 수려하여 마치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주는 감동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개역성경]의 본문은 천주교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틀리고 변개되고 삭제된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다시 말해 마틴 루터나 요한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한 [개혁본문]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한 모든 성경이 다 같습니다. 아주 간단한 예로, [한글개역성경]을 펴고 '없음'이라는 구절이 얼마나 많은가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구절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이 전달되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과 맞지 않기 때문에 고의로 삭제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에는 단 한 구절도 빠진 곳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한글개역성경]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전체가 다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부분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점에 대해서 부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일 독자께서 성경학자가 아닌 평범한 신자라면,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원어를 공부하기 위해 애를 쓰기보다는, 현재 전 세계의 공통어가 된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뢰할 만한 [한국어 킹제임스 성경]이 출간되기 전까지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남겨준 훌륭한 유산인 [한글개역성경]을 부지런히 읽되,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영어 시대에 우리에게 최종 권위로 주신 [영어킹제임스성경]과 병행하여 읽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영어로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이 영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최종 권위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고 자신들이 최종 권위가 되려는 사람들에게서 분리하여 이 말씀을 믿고, 읽고, 지키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 노력하시는 형제 자매님의 노력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상해 주시리라 믿고, 신실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2009-05-09 13:46:47 | 관리자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와 말씀보존학회에 드리는 공개 질의서(4차)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께서는 「한글킹제임스성경」보다 더 좋은 성경이 나온다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2000년 8월 5일 순수하게 「영어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된 성경인 「성경전서 흠정역」이 출판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8년 여에 거쳐 「영어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것이며 이 성경의 작업에는 목사, 교수, 국문학자, 신학자, 엔지니어, 변호사, 직장인, 일반 성도들 같은 여러 직업의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였기에 「한글킹제임스성경」처럼 심각한 번역의 오류가 없습니다.
위의 구절들만 비교해 보셔도 「성경전서 흠정역」은 「한글킹제임스성경」보다 더 좋은 성경임이 분명합니다.
이제 번역자께서는 「한글킹제임스성경」보다 더 좋은 성경이 나온다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겠다"고 하신 말씀을 실천하시겠습니까?
주후 2000년 8월 8일
포천 성경침례교회
담임목회자 홍성율 올림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의 양심에 질문을 드립니다.
첫째 : 이단 교리를 세운 것에 대하여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잘못된 번역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리를 어떻게 입증해 주고 있는지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딤전2:5과 약2:19에 "There is one God."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There is one God."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를 다시 영역하면 "God is one person."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한 분" 즉 "아버지 하나님만 있다."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리를 증명해 주는 번역입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심지어 NIV도)이 보여 주는 것은 "한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분"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구절들의 요지는 "뚜렷한 세 분"(혹은 세 인격체)가 "한 하나님"이라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이 한 분"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10:30에서 예수님께서도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I and my Father are one)라고 말씀하시면서 "한 분" 즉" one person"이 아니라 "하나"(one)로서 삼위일체의 표현을 분명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위의 구절들 같이 교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에서 「킹제임스성경」의 "one"을 "한 분"으로 번역하는 것이 과연 "영감으로 기록"된 양심적인 번역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 다른 사람의 책을 도용한 것에 대하여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께서는 「한글개역성경」이 사14:12에서 "루시퍼"를 "새벽별"로 오역한 것을 지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사탄을 앉힌 것이라고 분개하셨습니다. 그런데 1998년 이전에 출판한 모든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시59:9에는 "적그리스도" 즉 "사탄"을 지칭하는 "그"(his)가 "주"(lord)로 오역되어 있습니다. 본의가 아닐지라도 이런 오역은 "적그리스도" 즉 사탄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힌 중대한 오역입니다. 시59:9절의 오역 하나만으로도 1998년 이전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모두 회수하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1998년 6월 횃불회관에서 이미 수많은 곳을 고쳤기 때문에 당연히 폐기시켜야 할 1994년 초판 성경을 헐값에 팔았습니다. 초판 성경의 경우 이미 수많은 구절을 고쳤기에 당연히 폐기시켜야 한다는 것은 번역자 자신도 잘 아실 것입니다.
바른 성경을 보급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정직한 성경 번역자께서는 마땅히 회수하여 폐기시켜야 할 초판 성경을 오히려 헐값에 파는 것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께서는 자신이 저술하지 않은 책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기도 하셨습니다.
1) 「영적 전쟁을 대비하라」(1997년 3월 5일 출판)
이 책은 「The three Battlegrounds」(Francis Frangipane 저)과 차례 및 내용도 동일할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저자는 은사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또 이 책은 1992년 한글로 번역되어 「영적전투의 세 영역」(이재인 옮김, 포도원출판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기도 합니다.
2」 「열린 성경 닫힌 마음」(1995년 2월 15일 출판)
이 책은 1993년 성경핵심강연회에서 미국의 브라이언 도노반 목사의 강연 테이프를 이동형 형제가 글로 정리한 것인데 번역자께서는 이를 "이송오 지음"으로 출판하셨습니다. 이 일로 한 형제가 실족하기도 하였습니다.
회수해야 마땅할 초판 성경을 헐값에 팔아 넘기고 남의 책을 자신이 지은 책으로 출판하는 이런 일들에 대해 바른 성경을 보급하려 한다는 성경 번역자의 정직한 양심은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셋째 : 「한글킹제임스성경」의 향후 입장에 대하여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께서는 대한성서공회의 「표준새번역성경」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런 성경을 확산시키는 일은 곧 '죽음의 말씀'을 확산시키는 것임을 유념하고 즉시 판매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대한성서공회가 배포한 「표준 새번역」을 즉시 수거하여 폐기시키고 폐기된 숫자와 그 실적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1994년 7월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서)
분명히 번역자께서는 오류가 드러난 성경을 판매하는 것은 곧 "죽음의 말씀"을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대한성서공회를 향해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순수하게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된 「성경전서 흠정역」이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성경은 8년 여에 걸쳐 번역되었으며 번역과 교열에는 일반 성도들, 목사, 교수, 국문학자, 신학자, 엔지니어, 변호사, 의사, 직장인 등 여러 직업의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공개 질의한 구절들만 비교해 보더라도 「성경전서 흠정역」이 「한글킹제임스성경」보다 더 좋은 성경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께서는 「한글킹제임스성경」보다 더 좋은 성경이 나온다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글킹제임스성경」보다 더 좋은 번역 성경이 나왔습니다.
또한 번역자께서는 오류가 드러난 성경을 판매하는 것은 곧 "죽음의 말씀"을 확산시키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오류는 입증되었고 「한글킹제임스성경」보다 더 나은 번역 성경이 출판된 지금 번역자께서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후 2000년 8월 24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기지리 884
포천 성경침례교회
담임목회자 홍성율 올림
기타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문제
(1) Kingdom 문제 무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두 개를 들라고 하면 왕국(바실래아)과 교회(에클레시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는 다른 곳은 다 왕국으로 처리하되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 즉 성경의 왕국 중 가장 중요한 왕국을 '천국' 즉 '성도가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heaven)와 '하나님의 나라'로 번역해서 성경에서 왕국의 개념을 심각하게 희석시켰습니다. 왕국은 결코 여호와의 증인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성경의 개념이며 영어로 출간된 성경 관련 모든 책이 다 '왕국'(kingdom)을 왕국으로 번역하여 천년왕국에 대한 성경의 개념을 이해하게 했으나 유독 우리 나라 성경에서는 왕국이 '나라' 등으로 번역되어 본문에서 사라졌고 그 결과 교회가 이스라엘이라는 로마 카톨릭 신학이 득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왕국을 그토록 강조하는 말씀보존학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왕국 즉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모두 「한글개역성경」처럼 처리하여 진리의 빛을 가로 막았습니다.
(2) 자의적 번역
말씀보존학회는 영어 단어를 조금만 알아도 금방 그 뜻을 알 수 있는 단어들조차 자의적으로 번역하여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심각하게 실추시켰습니다. 그 예로 요12:43의 'praise of men'과 'praise of God'을 들 수 있습니다. 말씀보존학회는 이를 'glory of men', 'glory of God'으로 바꾸어 원어 실력을 자랑하였으며 「한글개역성경」이나 「NIV」를 따라갔습니다. 이런 예는 한 두 개가 아니며 이러한 오역을 통해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는 말할 수 없이 실추되었습니다.
(3) 이교도 용어 수용
신약 성경은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장소가 천국과 지옥 두 군데뿐이 없음을 명백히 보여 줍니다. 즉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음부(이것은 카톨릭의 연옥과 비슷함) 같은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말씀보존학회는 고전 15:55의 무덤을 음부로, 아8:6의 무덤도 음부로 바꾸어 이교도들의 신학 개념을 수용했고 이런 번역을 통해 역시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실추시켰습니다.
(4) 조상의 은덕 교리 전파
하나님의 긍휼은 조상들의 선행이나 은덕으로 인해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를 보십시오. 이런 면에서 「킹제임스성경」은 출20:6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번역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And shewing mercy unto thousands of them that love me, and keep my commandments."
그런데 「한글킹제임스성경」은 「한글개역성경」과 「NIV」 등과 보조를 맞추어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에게는 수천대까지 자비를 베푸느니라."
「한글킹제임스성경」이나 「한글개역성경」 등의 '수천 세대'는 원문에도 없는 것으로 조상의 덕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엉뚱한 교리를 창출하는 근거가 됩니다. 어떤 미국인이라도 이런 구절을 보고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며 한국에 나와 있는 침례교 선교사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들의 대답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임의로 무엇인가를 첨가하여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확립하는 것은 바른 번역이라 할 수 없습니다.
(5) 주의 만찬 문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wine을 포도주와 포도즙으로 구분하지 않아 주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wine은 'homograph' 즉 '동형이의어'로 문맥에 따라 포도주나 포도즙으로 구별해서 번역해야 하며 특히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wine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마찬가지로 '누룩이 들지 않은 포도 주스'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알고 있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버젓이 성경 자체에는 포도주라 번역하여 썩는 누룩이 들지 않은 '예수님의 순수한 피'를 욕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6) 여자 목사 문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교리적으로 중요한 곳에서 남자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아 교리적 실행의 문제를 가져 왔습니다. 예를 들어 딤전3:1은 반드시 "남자(a man)가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것을 「한글개역성경」이나 「한글킹제임스성경」처럼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로 하면 여자도 감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이 분명히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하므로 이런 구절은 반드시 남자로 해야 합니다.
2009-05-09 13:42:55 | 관리자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와 말씀보존학회에 드리는 공개 질의서(3차)
셋째 질의 : 「한글킹제임스성경」이 「NIV」와 똑같이 번역한 구절들에 대하여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 「영어킹제임스성경」과 전혀 다르게 번역된 단어들을 살펴보면 번역자께서 직접 "배교의 결정판"이라 부른 「NIV」의 단어들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NIV는 "배교의 결정판"이라고 하시면서 왜 「킹제임스성경」의 단어를 외면하시고 「NIV」와 똑같은 단어로 번역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어 본문 단어의 의미에는 「영어킹제임스성경」의 의미와 「NIV」의 의미가 모두 있을 수 있으며 사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신약은 그리스어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을 번역하셨으므로 번역자께서 "영감"을 받아 NIV 단어를 선택하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은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하셨다고 하시면서 왜 "배교의 결정판"인 「NIV」를 따르셨는지요?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께서는 "우리 성경이 절대로 맞소!"라고 하셨으며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성경이라고 광고도 하셨는데 과연 번역자께서는 성경을 번역하시면서 "영감을 받아 기록" 하셨습니까? 번역자의 말씀대로 "영감으로 기록"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절대로 맞는다면" 아래의 구절들은 NIV가 옳고 KJV는 오역을 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묻지만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절대로 맞는 것이 확실합니까?
다음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영어킹제임스성경」을 배격하고 NIV의 단어를 선택한 구절들입니다. 번역자의 말씀대로 "영감으로 기록"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절대로 맞는다면" 다음의 구절들은 NIV가 절대로 옳고 KJV는 오역을 한 것이 확실합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절대로 맞는 것이 확실합니까?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영감으로 기록"하신 분의 명백하고 확실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주후 2000년 8월 8일
포천 성경침례교회
담임목회자 홍성율 올림
2009-05-09 13:32:36 | 관리자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와 말씀보존학회에 드리는 공개 질의서(2차)
둘째 질의 : 「한글킹제임스성경」만 달리 번역한 구절들에 대하여
여러 성경 중에서 유독 「한글킹제임스성경」만 다른 성경들과 전혀 달리 번역을 한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아래의 구절들은 최근에 출간된 「성경전서 흠정역」, 「한글개역성경」, 또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께서 "배교의 결정판"이라고 부른 「NIV」까지도 한결같이 「영어킹제임스성경」과 똑같습니다. 즉 「한글킹제임스성경」만 특별하게 다른 모든 성경 특히 「영어킹제임스성경」과 전혀 달리 번역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절대로 맞는 것인지요? 「영어킹제임스성경」을 비롯한 「성경전서 흠정역」, 「한글개역성경」, 「NIV」(신국제역본)가 모두 틀린 것인지요?
다음은 「한글킹제임스성경」만 특별히 달리 번역한 구절들을 담고 있는 비교 표이며 이 표에는 먼저 최근에 번역된 「성경전서 흠정역」, 「영어킹제임스성경」, 「한글킹제임스성경」, 「한글개역성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교의 결정판"이라 불린 「NIV」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 표에 사용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2000년 1월 31일에 발행된 최신판 한영 대역입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에 왜 이런 단어들이 사용되어야 하는지 아시는 분들께서 정직하고 명쾌한 답변을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가르치며 성경대로 행하시는 분들이시니 주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가운데서 정직하게 오직 성경으로 바르게 인도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주후 2000년 8월 8일
포천 성경침례교회
담임목회자 홍성율 올림
2009-05-09 13:29:27 | 관리자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와 말씀보존학회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1차)
홍성율 목사 (포천 성경침례교회)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가르치며 성경대로 실행하는 것을 표어로 내 걸고 있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와 말씀보존학회에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질의를 드렸으나 답변을 하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분명한 답변을 기대하며 공개적으로 질의를 드립니다.
번역자께서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성경이라고 선전하면서 또 "무오한 최종권위"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보존학회에 소속된 어느 누구도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오역에 대해서는 말도 꺼낼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한글킹제임스성경」에 오역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 "최종권위도 없는 자"로 매도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한글킹제임스성경」에 오역이 있다고 하면 오역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영어킹제임스주의자", "배교자", "교회 파괴자", "간음자", "최종권위가 없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욕설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오역이라고 지적한 구절에 대해서는 "우리 성경이 절대로 맞소!"라고 대답하고는 나중에 살며시 고칩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 역시 사람에 지나지 않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는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초판 출간 이후 매쇄 발행시 수도 없이 계속해서 고치고 있습니다. 매쇄 발행시 많은 곳을 고치는 것 자체가 오역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자와 말씀보존학회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무오한 최종권위"라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으며 사실 이런 잘못된 거짓 가르침을 맹종하는 사람들로 인해 한국 교회 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옳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신뢰하고 추종하는 광신적인 사람들의 맹종과 충성으로 인해 한국 교회 내에 「킹제임스성경」의 인상이 매우 나쁘게 새겨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올바른 성경인 「킹제임스성경」조차 거부당하는 상황이 초래되고 말았습니다. 현재의 이런 상황을 바르게 알리고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와 말씀보존학회가 자기 도취에서 깨어나 올바른 자세로 주님의 사역에 임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개적으로 몇 가지 질의를 드립니다.
첫째 질의 :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 원문에 대하여
(1) 「새성경」 서문(1990년 1월 15일)
"첫째 「새성경」은 그리스어 「표준원문」(Textus Receptus)에서 번역하였고......"
(2) 「한영판」 서문(1991년 6월 30일)
"「새성경」은 「표준원문」을 번역한 것이지 「킹제임스성경」(King James Version)을 번역한 것이 아니다."
(3) 「한영판」의 일러두기 제3항
"3. 본 성경은 「영어킹제임스성경」(King James Version)을 참조본으로 사용하였다."
(4) 「교정판」(1992년 9월 15일)
"그리스어 「표준원문」(Textus Receptus)에서 번역된 「새성경」은 초판이 출간된 이래 꾸준히 교정을 보아 왔다."
"처음에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을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는 - - -중략 - - - 원문보존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는 「킹제임스성경」보다 「표준원문」이 더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5) 「한글킹제임스성경」 서문(1994년 3월 1일)
"구약의 번역은 처음부터 히브리어 「마소라 원문」을 영어로 가장 잘 전수한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하였고 신약은 처음에 그리스어 「표준원문」에서 직역했으며......"
위의 글들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께서 직접 서문에 기록하신 글들입니다.
번역자께서는 분명히 「영어킹제임스역본」은 참조본이었으며 처음에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을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가 원문보존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킹제임스성경」보다 「표준원문」이 더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런 이유로 구약은 처음부터 히브리어 「마소라 원문」을 영어로 가장 잘 전수한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은 「영어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하고 신약은 그리스어 「표준원문」에서 번역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왜 구약은 벤카임(Ben Chayyim)의 「마소라 전통 본문」(Masoretic Traditional Hebrew Text)을 제쳐 두고 「킹제임스성경」을 택하셨는지요? 또한 어떤 이유에서 신약은 「킹제임스성경」보다 그리스어 「표준원문」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명쾌하게 답변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주후 2000년 8월 8일
포천 성경침례교회
담임목회자 홍성율 올림
2009-05-09 13:26:18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무오한 말씀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62>
대답: 믿음대로 행하십시오.
참으로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무오하고 완전한 말씀임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먼저 그것을 읽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될 만한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왜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역본들과 모든 주석서, 여러분의 ‘연구를 돕는’ 모든 책을 일단 뒷전으로 치우고 단순히 하나님의 책을 읽으십시오. 그 책의 저자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셔서(고전6:19-20) 여러분이 그 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실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요한복음부터 읽기 시작해서 신약의 끝까지 읽으십시오. 적어도 하루에 10페이지는 읽으십시오. 이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에 성경을 주시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기기 위해 약간의 곤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까지 읽기를 마친 뒤에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요한복음까지 또 읽으십시오. 자, 한 번을 읽으셨습니까? 자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까지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 쉬지 말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경계하십시오! 성경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역대상의 처음 아홉 장과 같이 그 본문이 ‘무미건조한’것으로 여겨지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독히 바쁜 날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락 전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들 가운데 어떤 것도 성경 읽기를 중단할 타당한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만약 위에서 언급된 상황 속에서도 매일 10페이지씩 읽기를 계속한다면 여러분은 우리 사람에게 알려진 인격 테스트 중 가장 큰 것 하나를 통과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무미건조한 날들 외에도 그 책이 여러분의 심령에 부드럽게 다가오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새로운 진리들을 깨닫는 날을 맞이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매우 개인적인 방법으로 여러분의 하나님과 구원자를 알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은 킹제임스 성경을 믿지 않는 여러분의 친구들과 교사들 혹은 설교자들을 적대시하거나 그들에 대해 지나치게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그들이 제기하는 대부분의 비난들에 대해 은혜 안에서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이 책 말고 또 신뢰할 만한 다른 책을 찾아내길 원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을 그들이 최종적으로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여부는 그들이 혹은 여러분이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책을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힘든 결정임에 틀림이 없으며 사실상 누구를 위해 충성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기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들의 친구와 모교인가?
여러분이 만약 설교자라면 완전하지 않은 그리스어 본문으로부터 소위 ‘금 덩어리’라고 불리는 것들을 제거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양떼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줄 수 있으며 성경을 읽도록 격려하는 것이 여러분과 그들 모두에게 풍성한 만족을 주는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 안에’ 거하고 성경을 읽는 무리들은 ‘성경 안에’ 거하며 그것을 읽는 목회자에게 절대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랑하고 너무도 존경하는 친구가 다른 역본을 사용하는 교수나 목회자라면 계속해서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책을 공격하거나 ‘고치려’ 한다면 그들의 메시지로부터 단지 그 부분만을 가려내십시오. 혹자는 여러분을 거부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어떤 이는 여러분에게 압력을 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오래 동안 내가 잘못을 범했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끝까지 그 성경을 거부한다면 그들은 결국 여러분까지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계속해서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더럽히도록 허락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보다도 그분 곧 하나님에게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자, 완전한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십시오!
2009-05-08 20:32:28 | 관리자
질문: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 발행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과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안에’와 말씀보존학회는 어떤 관계입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63>
대답: 두 성경의 차이점에 대해 알기를 원하면 본 사이트에 들어 있는 공개질의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추후에 ‘한글 킹제임스 성경 분석’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와 말씀보존학회가 아무 관계가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본서의 역자는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1986년경에 처음으로 미국의 Chick 출판사(www.chick.com)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뒤 1992년 2월에 귀국해서 킹제임스 성경을 알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무렵에 말씀보존학회라는 단체가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단체의 설립자인 이송오씨가 매우 과격한 사람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 번은 저와 영어성경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원서 몇 권을 구입하러 말씀보존학회에 갔다가 판매하는 직원에게 저와 함께 영어성경공부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이송오씨가 나오더니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책상 위로 내던지면서 너희가 영어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으면 이 구절을 한 번 해석해 보라고 하며 화를 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 다 있구나!” 생각하고 그때는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럭크맨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킹제임스 성경 문제를 의논하였고 또 그분은 자기의 모든 책을 번역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송오씨가 럭크맨과 접촉하면서 자기가 철저히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하기에 럭크맨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에 학회 참석차 갔다가 하루 시간을 내서 펜사콜라를 방문해서 럭크맨을 만났습니다. 그때에 이송오씨가 만든 「새 성경」을 보여 주고 거기 있는 한국 여자 분에게 「새 성경」 표지 안에 적혀 있는 대로 그 성경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공인 본문’ - 말씀보존학회는 이를 「그리스어 표준 원문」이라 부름 - 에서 번역되었음을 보여 주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단순히 그 사실만을 지적했으며 다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눌 만한 시간도 거의 없었고 그 날 저녁에 그의 교회로 가서 펜사콜라 성경학교(Pensacola Bible Institue, PBI) 강의를 두 시간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럭크맨의 성경학교 즉 PBI는 말씀보존학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단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 갔다 온 사람들이 저녁 때 모여 성경을 배우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한국의 여러 교회에서 밤에 운영하는 무인가 신학교 같은 곳이었습니다. 저는 결코 인가 받은 신학교를 다녀야 훌륭한 목사나 전도자가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만 있으면 누구든지 목회 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훌륭한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때에 저는 PBI의 많은 학생들이 - 제가 갔을 때는 150명 정도였음 - 어려운 가운데 낮에는 일하며 밤에는 주의 말씀을 공부하고 사랑하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했으며 그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치 PBI가 엄청난 학교인 것처럼 말씀보존학회가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방문 이후에 하루는 사무실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다짜고짜 쌍욕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 너 혼 좀 나 볼래, 니네 학교 이사장이 조○○이지. 한 번 가서 너를 쫓아내라고 이야기할까?” 등등 이송오씨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하도 기가 막혀 개(?)가 짖나보다 하고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기가 출간하는 월간지에 제 이름을 올려 마치 제가 엄청난 이단인 것 같은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 뒤에도 이송오씨는 너무나 많은 형제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더러운 말을 구사하여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그래도 저희에게는 대안이 없었으므로 마음속으로 ”대안이 나올 때까지 굳게 참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 8월 저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출간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잡지 등을 통해 저나 다른 사람들 - 대개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더 이상 말씀보존학회에 남아 있을 수 없어 그곳을 떠난 용기 있고 훌륭한 형제들 - 을 비판하거나 욕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비판하면 오히려 역작용이 나서 자기 잡지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돌아서지 않을까 염려한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지 대안이 나온 이후에 더 이상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글이나 상소리를 접하지 않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이것이 말씀보존학회와 저와의 모든 관계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보존학회의 언행을 종합하자면 성경의 유명한 구절을 바꾸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보존학회는 오래 참지 아니하며 친절하지 아니하며 말씀보존학회는 시기하며 말씀보존학회는 자랑하며 우쭐대며 무례히 행동하며 자기 것을 추구하며 쉽게 성내며…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그 동안 여러 차례 개정되었습니다(아마 여섯 차례가 넘는 것으로 기억됨). 그들의 주장대로 그 성경이 최종 권위라면 이미 지난 10년 사이에 최종 권위가 여섯 차례나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최종’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무엇을 출간하고 자기들이 그것을 최종 권위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희극 아닙니까? 그런 억지 주장을 편 뒤 그 최종 권위를 막 뜯어고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최종 권위는 언제나 최종이 될는지 참으로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끝으로 그들은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바른 대본인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기초로 번역되었다고 주장하는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성경도 우리에게 주어진 바른 성경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독자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추후에 바른 성경에 대한 정의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진신을 알리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이 글이 부담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종류로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냥 부담 갖지 말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2009-05-08 20:30:28 | 관리자
질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몇 구절에 나오는 사랑과 마귀는 진한 명조체로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킹제임스 성경 답변서 질문 64>대답: ‘love’와 ‘charity’ 그리고 ‘the devil’과 ‘devils’를 구분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이 모두 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의 사랑은 ‘charity’를 번역한 것으로 보통 다른 곳에서 사랑으로 번역된 ‘love’와는 다릅니다. 심지어 「옥스퍼드 영어 사전」조차도 ‘charity’를 크리스천의 사랑으로 분명하게 못 박고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이것이 구분가능하나 우리말에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으므로 그냥 표기할 때 진한 명조로 하여 차이가 있음을 보인 것입니다. 한편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마귀 역시 진한 명조체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유일한 사탄 마귀를 ‘the devil’로 표현했으며 이에 상응하는 그리스말은 ‘디아볼로스’입니다. 한편 사탄 마귀 수하의 ‘devils’가 있는데 이에 상응하는 그리스말은 ‘다이모니온’입니다. 그리스말은 다르지만 영어에서 같은 단어로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일한 하나님’(God)이 있듯이 ‘많은 신들’(gods)이 있습니다. 이 신들은 속성이 ‘God’과 비슷하지만 ‘God’보다는 못합니다. 마귀들도 ‘유일한 마귀’(the devil)와 비슷하지만 ‘the devil’보다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또 그리스말의 ‘다이모니온’은 우리말의 귀신같은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고대 중국이나 그리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사후 영이 ‘다이모니온’이 된다는 개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성경은 이것을 이단 교리로 확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국의 공통 성경으로 삼으신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런 개념이 들어 있는 단어가 쓰일 수 없었고 그래서 ‘다이모니온’을 ‘devil’로 표현해서 이교도들의 미신을 제거해 버렸습니다.「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가서 ‘demon’의 용례를 찾아보면 실제로 1706년 전에는 현대 역본에서 ‘demons’로 나오는 존재들이 성경 용어로 쓰인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간혹 ‘demon’이라는 단어가 쓰였지만 그것은 항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사람들 사이의 중간 존재를 나타냈습니다. 사실 이것이 ‘demon’의 1차적 용례입니다. 그러므로 1611년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올 때에 분명히 ‘demon’이라는 단어가 있었지만 성경 역자들은 ‘다이모니온’을 ‘demon’이라 하지 않고 ‘devil’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성경의 ‘devils’를 그리스 시대의 불신자의 사후(死後) 영 - 국내의 베뢰아 이단과 같이 - 이나 신화적 존재로 생각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우리말 성경에서는 이것이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유일한 마귀 즉 그리스말로 ‘디아볼로스’로 표현된 곳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서 진한 명조체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아마도 대안으로는 ‘마귀’(the devil)와 ‘악귀들’(devils)로 나누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왜 같은 단어를 통일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쏟아질 것이므로 현재는 진한 명조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2009-05-08 20:28:1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