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두번째 뵙네요^^ 평안하시지요??
저는 관점을 좀 달리 하여...
신비(the mystery)에 의미를 잘 이해 하시면 질문하신 내용도 어느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성경에는 신비(개역성경에서는 비밀로 번역함)에 대해서 대략10가지 정도 언급합니다.
그중에 질문하신 골로새서2:2 말씀은 바로 앞에 있는 골로새서1장27절과 함께 교회의 신비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은밀히 간직되어 왔으나(롬16:25)...이제는 자신의 자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이 신비를 계시하셨습니다.(엡3:5)
이 신비는 곧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 (엡3:6)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골1:18) 모든 성도들이 그분의 몸 =지체가 되며(고전12:12-13) 지체들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엡3:6; 골1:26-27; 엡2:14-15)
2. 그러면 질문하신 골2:2를 앞뒤 문맥을 살펴보며 자세히 읽어보겠습니다.
골2:1에 보면 사도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를
알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 이 당시 골로새는 부루기아의 평범한 도시였는데 에바브라가 이곳에서 목회사역을 하면서 골로새 교회 평판이 좋았습니다.(골1:1-8) 그런데 그 교회내에 잘못된 가르침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잘못된 교리들(이를 테면, 철학,할례, 신비주의, 천사숭배, 금욕구원 등등)과 싸움을 하고 있는 심정을 가지고 바울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특별히 골2장은 그런 잘못된 가르침을 말하는 자들을 주의 할 것을 경고하는 메세지가 강합니다.
-골2:2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좀 알았으면 하고 바랬던 내용은) 복음으로 마음의 참 위로를 받고+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함께 결합하고+ 그런 복음의 위로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일을 통해 오는 충만한 확신을 갖는데 이르며+...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신비를 인지하는데 까지 이르기게 하려고 바울이 이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3. 영어문장 구조 상 병렬 구조로 본다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우리의 참 아버지가 누구 이신지?(요17:3)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신비로 주신 것이 무엇인지?(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시는 몸된 교회이죠^^)를 깨닫고 그 길로 나아가길 원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4. 굳이 병렬구조로 안본다면...
물론 이 구절을 굳이 병렬구조로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아버지=예수 그리스도 모두 동일하신 한 하나님이시니까요^^
서두에 말씀 드렸다 싶이 교회는 하나님(=아버지=예수 그리스도=성령님)께서 세상의 창건 이후로 신비속에 감춰 주셨다가 하나님의 시간표 상에서 아름다운 때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결론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그분의 신비속에 살아가게 하시고
온전하게 보존해 주신 말씀을 통해서 참된 교회를 이뤄가게 하신 영광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부족한 답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09-07 01:51:33 | 오광일
성경은 삼위일체의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참고]
(엡 4:6)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 우리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골 3:11) (거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바바리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시느니라.)
→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전 6:19)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참고]
(롬 8:9)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① [하나님]의 [영] → 아버지 하나님
② 성령 → 성령 하나님
③ 그리스도의 [영] → 예수님
이와 같이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2013-09-07 01:28:05 | 김규태
of God(하나님-성령님), and of the Father(아버지-여호와), and of Christ(그리스도-예수님)
삼위일체의 신비(mystery)는 성도들이 인지해야 하는 진리의 지식입니다.
★ 결론
①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는 주 예수님을 시인(인정)하자.
② 그리스도 예수님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으므로 우리가 찾고 공부해서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알자.
2013-09-07 01:09:41 | 김규태
구약은 아직 없습니다. 차차 제작할 계획입니다.
현재 있는 신약도 400주년 기념판은 아니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09-06 22:41:51 | 관리자
진리를 말하고 바르게 가지 않는 것을 바른 길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 정말로 사랑하는 거라는 걸 요즘 연습하고 있습니다.
상대방, 가족과 소원해지는 걸 감수하면서라도 옳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족한 점은 다 봐줄테니) 좁은 길로 함께 할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린다는 따뜻한 눈길을 더 많이 보냅니다. 그리고 저는.. 말씀으로 위로받습니다.
2013-09-06 20:16:53 | 목영주
한때는 저도 QT는 비판할 것이 없는 하면 유익하고 못하면 반성해야 하는 것으로 알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치 명상을 하듯이 조용히 말씀을 읽고 자신의 마음에 부담이 안 되는 한도 내에서 임의대로 의미를 찾아서
접붙이는 QT가 별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인간의 문명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오늘날도 여전히 진리의 말씀은 죄인을 각성시켜 구원으로 인도하고
지쳐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권능을 말씀임을 증명하는 바른 설교자와 전도자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2013-09-06 19:41:20 | 김대용
다음을 참고해서 웹하드에 로그인하셔서 '성경오디오' 압축파일을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구약성경 오디오 파일은 잠언 외에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98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샬롬~!
2013-09-06 19:09:47 | 김대용
아쉽게도 제 안드로이드 폰에서는 동영상이 안 되네요. ㅎㅎ
2013-09-06 18:13:57 | 김철수
샬룜! 킹제임스 흠정역 신구약 성경 음성파일을 다운 받고 싶은데 어디에서 가능한지요?
여기에서는 각 장을 열어 하나씩만 다운로드 되는 것 같은데 한 번에 다 받을 수는 없는지요?
MP3로 다운받아 스마트 폰이나 노트 북에서 듣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하십시오.
2013-09-06 17:44:09 | 김철수
평안을 기원합니다.
이제 흠정역을 읽으면서 이해가 잘 안가는 구절을 살펴보다 이제 하나하나 글을 올려봅니다.
하나하나 배우고자 하오니 지도 편달을 바라면서 다음의 구절 중에 아래의 부분을 부탁드립니다.
골 2:2 ... 하나님과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
여기서 하나님과 아버지는 ???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샬롬
2013-09-06 17:19:59 | 김철수
1
QT는 Quiet Time, 즉 조용히 묵상하며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경건의 시간'으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실천해오고 있다. 성경을 읽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발견하여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므로, 이런 시간은 어쩌면 크리스천에게 필수적인 시간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간은 유익이 많을까, 잃는 것이 많을까... 내 생각엔 안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말씀 그대로를 읽는 것이 아닌, 거기서 자꾸 다른 뜻을 유추해내고 어떻게든 감동과 적용점을 찾으려 하는 그런 QT를 지칭하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 기업에 다닐 때는 아침마다 조를 짜서 QT를 했다. 그날 주어진 성경의 한 부분을 읽고 서로 나누는 것이다. 같은 말씀이지만 저마다 적용이 다르고 실생활에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나누며 공감도 하고 서로 배우기도 한다.
이런 것은 미국 등지에서 많이 하던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이십여 년 전부터 유행처럼 퍼져나갔었다. 당시 미국의 열방대학 등에 연수를 다녀온 직원들은 세계에서 모인 이들과 QT를 나누면서 그들의 '영성'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들이 작은 화분 하나를 보고도 거기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성경 한 구절에서도 자기만의 진지한 적용과 철학을 발견하는 것에 놀라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묵상을 하다 보면,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점점 자기만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개발해 사람들에게 들려주려는 쪽으로 방향이 기울게 된다. 한마디로 사람을 위한 생각, 남을 감동시키기 위한 생각을 개발하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QT의 파트너가 바뀌면 나눌 내용이나 수위나 코드 자체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통해 나눔을 잘하는 사람만 부각되거나, 신앙보다는 느낌과 감동에 치중하는 모임이 되곤 한다.
2
종교인들은 감동을 원하고 신앙인들은 깨달음을 원한다. 그런데 교회에는 종교인이 더 많다. 그래서 마음에 감동을 주는 달달한 이야기를, 성경 강해나 영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질책보다 선호한다.
언젠가 좋은 메시지를 전하기로 유명하다는 한 교수이자 목사가 우리 교회에 온 적 있는데, 명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메시지는 심각할 정도로 부실했다. 그에게는 성경이나 성경적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큰 박수를 받았다. 그의 이야기는 인도의 구루 오쇼 라즈니쉬 정도에게 들을 수 있는, 재미있으면서도 깨달음(?)을 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이야기꾼이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입술 위 인중 부분의 패인 골은 태어나면서 하나님이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야" 하시면서 입을 다물도록 꾹 눌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국이 생긴 것이고, 아기는 그 비밀을 발설하면 안 되기 때문에 어려서는 말을 못하는 것이고, 자라면서 그 약속을 잊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고, 듣는 사람들도 그렇게 듣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야기에는 심각한 교리적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범죄와 피의 부패 이후로는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그가 자기 신분을 바꾸지 않으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인중의 유래(?)에 관한 이 이야기를 실제로 믿는다면, 이미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로 태어나 그 사실을 서서히 잊어버리기는 해도 어차피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은 사람의 생각에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인간의 희망사항은 중요하지 않다. 종교다원주의는 어차피 우리가 무엇을 믿든지 같은 절대자를 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심지어 배교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몰라도 구원받는다 하니, 이런 듣기 좋은 이야기와 무척 비슷하지 않은가.
3
어떤 이는 천동설이 정설이었다가 지동설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지동설이 정설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또 미술에서 주된 피사체를 배치할 때 정 중앙에 놓기보다는 화면의 약간 옆에 배치할 때 더 구성미가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나님이 지구를 중심이 아닌 약간 옆에 놓으셨나 보다'면서, 굳이 지구가 중심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런 것은 큐티는 아니고 작은 깨달음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귀납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나 설교자 등이 범하기 쉬운 실수이다. 남들이 하지 않은 독창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사람은 새로운 논리를 창작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자꾸만 생각의 반경을 넓히다 보니 열린 자세로 세상을 보게 된다. 까다로운 진리나 타협과 양보가 없이는 풍부한 예를 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논할 여지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자기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고, 점점 더 빠져나올 수 없는 비논리와 두루뭉술함 속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참된 진리가 없고 바른 분별력이 없으면 파워풀한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의 좁은 길로 가면 모든 것이 닫히고 답답할 것 같지만 그 안에 참 자유가 있고 더 넓은 세상이 있다. 반대로 넓은 길은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는 불안감과 많은 행인들 사이에서의 혼동, 그리고 건질 것 없는 비진리의 홍수 속에서 참된 자유를 잃는 일이다.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 사실은 논란이 많고 대다수 크리스천들도 지동설을 과학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느 누구도 상대적 운동을 하는 우주를 비교 대상으로 하지 않는 상태에서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 오히려 천동설의 증거가 더 많다. 무엇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지구가 모든 것의 중심이며 전혀 흔들리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다. 세상의 이치로 성경의 진리를 입증하는 일은 보조수단이 되어야 하며, 신중해야 하는데, 말씀을 믿지 않고 과학을 믿으면 틀린 것을 옹호하기 위해 엉뚱한 묵상을 하게 된다.
4
QT의 폐해 사례를 만들어내는 이런 실수는 논리적인 사람보다 감상적인 사람들이 자주 하는 것 같다. 성경과 기독교는 명확한 논리를 기본으로 하고, 그 이후에 은혜와 감동과 스토리가 있는 것인데, 명확함은 간과하고 감상적인 묵상만을 좇는 습관은 성경을 이해할 때도 그대로 드러나 제1의 의미를 알기도 전에 부수적인 것만 찾아 느끼려 하고, 누구에게 준 말씀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무작정 자기 것으로 소화하려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는 제대로 된 깨달음이나 개념 파악이 어렵다. 많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지식이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첫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느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자꾸 느끼려 하면, 어떤 날은 한없이 자비롭다가도 어떤 날은 무섭고, 무관심하며, 심지어 어떤 날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분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내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고 계시된 것을 이해하면서 먼저 알게 되고, 그 후에 서로 알게 되며, 관계를 맺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 없는 것을 자꾸 찾으려 하면 세상 논리와 학문이 동원되면서 궤변을 말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물론 성경 안에서만 말할 수 없을 때도 있고, 그러다 보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바른 전제를 통해 말해야 한다는 생각과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신학자는 참신한 자기만의 해석을 시도하고,
목사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구하며,
크리스천은 주변에 함께 나눌 감동을 찾는다.
이 모두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본질과 목적에 집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보다 스스로가 드러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이런 일을 지속하다 보면 진리에서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 교회를 망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한 가지가 QT이다. 성경은 읽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초신자 때부터 혼자 묵상하며 자기만의 하나님을 찾다 보니 절대적인 기준과 절대자 하나님의 속성은 사라지고, 각자 느끼는 기준과 개인적인 모습의 하나님만 남아, 기독교는 그때그때 다른 '상대주의적' 종교가 된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이런 방식의 접근이 계속되면, 교리는 교훈이 되고, 좁은 길은 넓은 길이 되며,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요령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묵상이 가능하려면 먼저 말씀을 읽고 언어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하나님의 최소한의 경륜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는 된 다음에 하는 것이 좋다. 어설픈 QT는 초보운전자가 고속도로에 나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과 같지 아니하며 내 길들은 너희 길들과 같지 아니하니라. {주}가 말하노라. (사 55:8)
2013-09-06 17:05:55 | 김재욱
http://youtu.be/5hS2lPc8BAA
-요한계시록 바로알기-
혹시 모르는 분이 계실것 같아서 링크 달았습니다.
2013-09-05 17:08:44 | 최호준
복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듣게 되어서 기쁩니다. 링크 페이스북에 걸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복신앙, 은사주의, 오순절, 샤마니즘등 이교도들의 풍습을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09-05 14:53:21 | 최호준
대단해 보이지만 핵심을 겉도는 독단적인 신학자는 추종자들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기보다는 그 사람에게만 배우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하고
무조건 따르다 보니, 어느새 그 사람은 잘못 전한 것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위치가 되지요.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 대단한 사람의 말과 지식에서 배우려 하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으면서 많은 지식을 얻으려 하면 그런 오류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2013-09-05 10:41:16 | 김재욱
위에 목사님의 귀한 답변처럼 사실상 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며 대세가 되어있는
개혁주의(칼빈주의) 진영은 요한계시록의 문자적 해석과 경륜주의(세대주의) 신학을 철저하게 배격합니다.
저도 한때는 개혁주의 신학교를 다녔지만, 개혁주의 신학을 따라가면 요한계시록과 구약의 예언서들은
성도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모호한 상징들의 집합체가 될 뿐입니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유학하며 요한계시록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요한계시록 전문가라 소문난 이필찬 교수라는
사람이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요한계시록에 대해 강의한다고 합니다. 이분의 책은 저도 읽어보았지만
그의 의견을 따라가면 요한계시록은 반드시 있을 역사의 마지막을 예언한 책이 아니라 이미 수명이 다한
안 읽어도 그만인 교양서적이 될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알자고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의 노력은
사실상 요한계시록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잊히게 하는데 일조할 뿐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잘못된 점을 담대히 비판하려 해도 교활하게도 기독교의 대세인 개혁주의를 비판해
이득을 얻으려는 영적 돌연변이 신천지 등과 한 묶음 취급을 받을 수 있음에 또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 유명한 햄릿의 절체절명의 외침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보다 천만 배 엄중한 아래의 질문에 담대히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대세를 따를 것인가 옳은 길을 갈 것인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이가 적으니라.(마7:13~14)
2013-09-04 12:53:56 | 김대용
안녕하세요?
이번에 신학원 조직 신학 02를 강의하면서 처음 두 시간에 "하나님의 특별 창조"에 대해 강의하였습니다.
이 주제는 아이로부터 시작해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므로
성도님들이 꼭 아이들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볼 수 있는 자료도 그 안에 모두 편집되어 들어 있고 또 PDF 파일도 있습니다.
특히 교사들은 반드시 보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샬롬
DSJ
특별창조 01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88
특별창조 02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89
2013-09-04 11:24:31 | 관리자
눈이 먼 분이니 그냥 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분으로 인해 덩달아 소경이 되는 수많은 신학생과 목사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로교 신학생들은 그분이 지은 요한계시록을 교과서로 해서 계시록을 배웁니다.
큰 걱정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일이 남아 있어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신약시대의 도래를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현시대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칼빈주의라는 베일이 남아 있어 성경이 ‘닫힌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대주의는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처럼 매우 분명한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에 걸려들면 희미하게 뿌연 철학적 말만 내뿜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2-18절
12 그런즉 우리에게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우리가 매우 분명한 말을 사용하고
13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미 사라진 것의 마지막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려고 모세가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것 같이 하지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가려졌으니 이는 이 날까지도 옛 상속 언약의 말씀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베일이 벗겨지지 아니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라. 그 베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졌으나
15 이 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베일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도다.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17 이제 [주]께서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거기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한국 교회에 눈 뜬 목사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DSJ
2013-09-04 10:56:24 | 관리자
다음의 두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번역에 대한 질문은 webmaster@KeepBible.com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333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538
다음부터는 창12:1이라고 치고 사이트 우측 상단의 구글 검색하세요.
2013-09-04 10:51:08 | 관리자
여기 노우호 목사님의 세대주의를 비판하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말씀 강해에 있어서 유명하신 분이
일방적인 편견을 가지시고 세대주의가 마치 이단인듯 말씀하시니
참 답답하네요.
http://www.youtube.com/watch?v=8cvCwhaY3bQ
2013-09-04 01:39:16 | 정승훈
위의 성경 말씀으로 위로 받고
지혜롭게 주 안에서 교제하며 기도하며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힘내시길 바랍니다.
2013-09-04 01:04:20 | 채희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