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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신랑이 오신다조회수 : 7796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5시 0분 17초
  • 신랑이 오신다

    (레날드 샤우어스 지음, 정동수 역)

    드디어 운명의 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함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이제 몇 시간이 지나면 그분께서는 십자가에서 처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대해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에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의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21세기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약속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결혼 풍습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들어서 자신의 약속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이해해야만 예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에서 첫 단계는 보통 정혼이라 불리며 정혼은 결혼 계약을 확립하는 단계입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결혼 계약은 신랑 될 사람이 주도해서 시작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랑이 될 사람은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서 신부가 될 사람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신부의 아버지와 협상을 벌여 얼마의 지참금을 주고 신부를 살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돈을 내고 신부를 사야만 했습니다. 신랑이 동의하고 지참금을 지불하면 결혼 계약이 확립되고 이제 처녀와 총각은 아내와 남편으로 간주됩니다. 또한 그 순간부터 처녀는 자기의 남편만을 위해 구분된 존재가 됩니다. 어느 누구도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결혼 계약이 확립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신랑과 신부는 잔에 담긴 포도즙을 함께 마십니다.

    이와 같이 결혼 계약이 확립되면 신랑은 신부의 집을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신부와 떨어져서 약 1년 정도를 지냅니다. 이 기간에 신부는 결혼 생활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며 신랑은 신부를 자기 아버지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기 위해 아버지 집에 붙여서 자기들이 거할 처소를 마련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에 ‘거할 곳’으로 번역된 맨션이 바로 이런 처소입니다.

    신부와 떨어져서 약 1년 정도를 보낸 뒤 드디어 신랑은 자기와 함께 살기 위해 신부를 데려와야 합니다. 대개 신부를 데려오는 일은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신랑과 신랑의 들러리와 또 다른 동행자들은 신랑의 집을 떠나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 신부의 집으로 갑니다. 이들은 가면서 “보라, 신랑이 임한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이 소식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거리에서 거리로 신부에게 곧 전달됩니다. 신부는 자기 남편이 온다는 것을 늘 기대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언제 정확히 올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신랑이 도착하기 전에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신부는 곧바로 자기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자기 친구들에게도 같이 가기 위해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신랑과 그의 동행자들이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을 만난 이후에 이들은 다 같이 신랑의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갑니다. 거기에는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들이 이미 모여서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도착하자마자 결혼식 준비 위원들은 신부 방이라 불리는 방으로 이들을 데려갑니다. 이 방에 들어가기까지 신부는 베일로 얼굴을 가려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신랑의 친구들과 신부의 친구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신랑과 신부는 단 둘이 그 방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그들은 처음으로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면서 약 1 년 전에 결혼 계약으로 확립한 결혼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결혼이 완성된 후에 신랑은 신부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결혼식 준비 위원들에게 자기들의 결혼이 완성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러면 이들은 신랑과 신부가 드디어 한 몸이 되었다는 소식을 하객들에게 알리고 이 소식을 접한 하객들은 7일 동안 연회를 베풀며 기뻐합니다. 이렇게 7일 간 연회가 열리는 동안 신부는 신부 방에 머무르며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7일이 다 끝나면 드디어 신랑이 신부 방에서 신부를 데리고 나와 그녀의 얼굴에서 베일을 벗겨 모든 사람이 신부를 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입니다.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을 설명했으므로 이제부터는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풍습을 이해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해 주시려 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에베소서 5장에서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 예수님의 신부라 부릅니다(엡5:22-33). 유대인 신랑이 결혼을 하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 신부의 집까지 여행을 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주도적으로 약 2000년 전에 하늘에 있는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 자기의 신부가 될 사람들이 있는 이 땅까지 내려왔습니다.

    유대인 신랑이 신부의 집에 와서 결혼 계약을 확립함으로 신부를 얻은 것 같이 우리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계약 즉 언약을 확립함으로 교회를 자신의 신부로 얻고자 했습니다. 이 언약이 무엇입니까?요한복음 14장에서 “내가 아버지께로 갔다가 다시 온다.”는 약속을 하던 바로 그 밤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유월절을 바꾸어 주의 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포도즙이 담긴 잔을 집고 감사를 드리신 뒤 그들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이것은 곧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자기의 신부인 교회와 새로운 결혼 언약을 세우려 하는 것을 뜻합니다.

    유대인 신랑은 자기의 신부를 얻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께서도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분께서 지불하신 결혼 지참금은 자신의 생명이 담긴 보배로운 피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서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결혼 언약이 확립되면 유대인 신부가 오직 자기의 신랑만을 위해 구별되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었듯이 주님의 신부인 교회 역시 새 언약을 통해 구분되어 오직 주님만을 위한 존재가 되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엡5:25-27; 고전1:2; 6:11; 히10:10; 13:12). 유대인 신랑이 결혼 계약을 맺은 뒤 계약이 확립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잔을 취해 신부와 함께 포도즙을 마신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들도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확립하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주의 만찬의 잔을 취해 포도즙을 마십니다.

    유대인 신랑이 결혼 계약을 확립한 뒤 신부의 집을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예수님도 자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을 확립하시고 부활하신 뒤 신부가 사는 땅을 뒤로하고 자기의 아버지가 계신 하늘로 되돌아가셨습니다(요6:62; 20:17). 유대인 신랑과 신부 사이에 결혼 계약이 확립된 이후에 서로 일정 기간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도 지난 2000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지금 이 시간 이렇게 신랑과 떨어져서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동안 유대인 신랑이 자기의 신부를 데려다가 자기 아버지 집에서 함께 살기 처소를 마련해야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신부인 교회와 떨어져 있는 동안 하늘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집에서 신부와 함께 거할 처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요14:2). 이렇게 떨어져 사는 기간이 다 지난 뒤 유대인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려고 자기 집을 떠나 다시 신부에게 간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신부인 교회와 따로 거하는 기간이 다 차게 되면 교회에게로 다시 와서 자기가 마련한 하늘의 처소로 교회를 데려갈 것입니다(요14:3).

    유대인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서 신부의 집에 갈 때에 신랑과 동행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주님께서 교회를 데려가기 위해 하늘에 있는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 땅에 오실 때에도 천사들이 그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살전4:16). 유대인 신부가 자기 신랑이 언제 올지 몰랐던 것처럼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 역시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시는지 모릅니다. 유대인 신부에게 언제라도 신랑이 임할 수 있었듯이 우리 예수님도 언제든지 교회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랑을 생각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 신랑과 함께 오는 사람들이 “보라, 신랑이 임한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도 “보라, 신랑이 임한다.”라는 천사장의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살전4:16). 유대인 신부가 신랑을 만난 뒤 자기 집을 떠나 신랑의 아버지 집으로 간 것처럼 교회 역시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만나기 위해 휴거를 받은 뒤 그분과 함께 그분의 아버지 집으로 갈 것입니다(살전4:17; 요14:2-3). 신랑과 신부와 그들의 일행이 신랑의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하객들이 이미 거기 모여 있었던 것 같이 그리스도와 휴거 받은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도착하면 이미 구약 시대 성도들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거기서 그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유대인 신랑과 신부가 신랑의 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어 이미 오래 전에 확립했던 결혼 계약을 완성한 것 같이 그리스도와 교회도 신랑의 아버지 집이 있는 하늘에 도착해서 영적으로 한 몸이 되어 이미 오래 전에 그리스도께서 확립하신 새 언약에 근거한 특별 관계를 완성할 것입니다.

    유대인 신부가 신랑의 아버지 집에 도착한 뒤 7일 동안 신부 방에서 자기 자신을 숨기고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역시 신랑의 아버지 집에 도착한 뒤 7년 동안 자기 자신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 7년 동안 땅에서는 창세 이후로 없었던 극심한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에 교회는 하늘에 숨겨져 있습니다.

    유대인 신랑이 7일이 지난 뒤 신부를 신부 방에서 데리고 나와 그녀의 얼굴에서 베일을 벗기고 모두에게 그녀를 공개한 것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7년 환난기가 지나면 자신의 신부를 하늘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땅에 강림해서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부를 공개할 것입니다(골3:4).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에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약속의 말씀을 주시면서 근심에 잠긴 제자들에게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로 여기 모인 분들 가운데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분들에게 오늘 우리가 살펴본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는 큰 의미를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이런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서 자신의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매번 복음이 선포될 때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게 결혼을 하자고 프로포즈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자신과 함께 이 특별한 관계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복음을 통해 그것을 프로포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결혼 서약을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결혼 서약을 하고 싶어합니다.

    나 예수는 죄인인 당신을 내 신부로 맞이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사랑 많고 신뢰할 수 있는 구원자와 신랑이 될 것을 서약합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궁핍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든지 영원토록 당신의 신랑이 될 것을 서약합니다.

    유대인 신부가 신랑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고 거절할 수도 있었듯이 여러분도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이 땅에 살면서 그분의 프로포즈를 거부한다면 영원토록 그분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유황불이 타는 지옥 불못에 들어갈 것입니다(계20:11-15).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모든 죄가 용서되고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특별한 관계에 들어가 그분의 신부인 교회의 일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하늘로 데려가실 때에 그분과 함께 하늘 아버지 집에 가서 영원토록 복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예수님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께서 이 땅에 와서 여러분의 죄로 인해 피를 흘려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서 다음과 같이 서약하면 됩니다.

    나 죄인은 당신 예수를 내 구원자로 맞이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사랑 많고 신뢰할 수 있는 신부가 될 것을 서약합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궁핍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든지 영원토록 당신의 신부가 될 것을 서약합니다.

    둘째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도 오늘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결혼 계약이 확립된 이후에 신랑이 자기의 신부를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올 때까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유대인 신부는 자기 자신을 다른 남자에게 내어 주고 간음을 범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신자들도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신부인 교회를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시기 전에 이 땅에 살면서 그분을 대적하고 간음을 범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에서 이러한 염려를 분명히 표출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것은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켜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고자 함이라. 그러나 뱀이 그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야고보 역시 야고보서 4장 4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야고보는 영적 간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점점 세상에 동화되고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일보다 그분을 슬프게 하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되면 곧 영적으로 간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의 신랑 되신 예수님께 얼마나 내 자신이 신실한가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처음 구원받고 그분을 신랑으로 맞이했던 때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그분을 사랑합니까? 여러분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신 그분이 정말로 여러분 삶의 중심입니까? 여러분의 태도와 행동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그분께 대한 충성과 헌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사랑하고 그 안의 것들을 추구하며 영적 간음을 범하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신랑 예수 그리스도께 신실하지 못했다면 즉시 그 죄를 고백하기 바랍니다. 비록 저와 여러분이 신실하지 못해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

    부디 이 말씀을 믿으시고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언제라도 나타나실 신랑 예수님을 고대하며 신실하게 이 땅에 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을 통해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하늘에서 다시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쳐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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