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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동성애가 복음에 미치는 영향조회수 : 643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5시 35분 1초
  • 1. 들머리

    요즈음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늘어가면서 사회적 리더십 또는 대중매체 등에 의해 동성애에 대한 인본주의적 인식이 점차 그 세를 넓혀가고 있다. 아울러 기독교계 안에서도 이러한 조류에 편승하여 동성애에 대한 접근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게 목격되고 있다.

    이제 동성애란 토픽은 단순한 흥밋거리이거나 수많은 인생사의 지엽말단적인 논제의 범주에 더 이상 속하지 않는 인본주의의 최첨단 아이템으로 그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소위 진보적 성향이 있는 교계의 인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민단체(?) 등과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같이 하여 오고 있고, 이와 반대로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림(儒林)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동성애에 대해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표방함으로써 자연히 동성애 이슈는 이러한 시너지 효과에 의해 그 본질적 의미가 점차 가려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태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성애란 문제가 중요한 것인가? 동성애도 성경에 언급된 수많은 죄악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속에는 거대한 영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분별력을 갖고 살펴보아야 할 당위성이 존재하게 된다. 즉 동성애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사조를 읽게 된다면 이 동성애가 얼마나 복음에 치명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하나님의 복음(롬1:1-6, 고전15:1-5)을 위하여 구별된 성도들에게 뿐 아니라 아직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복음(福音; gospel)의 내용전개 순서에 따라 동성애가 복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진화론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창1:1). 창조 시작 엿새째 되던 날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클라이막스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또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다(창1:27).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다산(多産)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창1:28). 그리고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매우 좋았다(it was very good)’고 말씀하셨다(창1:31).

    진정 거듭 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와 같은 창조 기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 복음의 첫 단계는 창조주를 알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 실존적 근원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좋은 소식(good news; gospel)은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다는 선포가 복음의 대전제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宗敎)는 한결같이 인내천(人乃天)으로 인간(人)이 주어이지만 복음(福音)은 창조주(天)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의 개입과 시동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복음이 될 수 없다. 단지 복음의 대적자가 될 뿐이다.

    동성애자들이나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배격한다. 그들은 하나님(God)이라는 단어를 적절히 인용하기도 하지만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고 하신 창조주를 궁극적으로도 부인하고 있다. 이 같은 우주관은 1998년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조앤 러프가든(Joan Roughgarden) 박사의 주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생태학자 중의 한 명인 그녀(?)는 '진화의 무지개'란 저서에서 생물학자들이 무지개의 색깔처럼 다양한 자연계의 현상들을 너무 단순히 시대에 뒤떨어진 암수 짝짓기 모델에 끼워 맞추려고 헛된 노력을 계속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그녀(?)는 동성간의 교미가 자연계에 너무나 널리 퍼져 있으므로 동성애 행동이 진화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며 동성애에 대한 과학적(?)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어찌 이 프린스턴대학 교수 한 사람뿐이겠는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식자들 중 과연 누가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고백을 하며 겸손히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준비를 하고 있단 말인가! 결단코 창조론은 동성애의 토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열역학 법칙이나 모든 자연계의 질서와 조금도 부합되지 못하는 진화론이 이제 동성애란 테마를 통해 우리의 지각을 마비시키려 하고 있다. 재생산성(reproducibility)이 전혀 없는데도 버젓이 과학(science)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진화론의 우산 속에서 자라가고 있는 것이 바로 동성애인 것이다.

    “오 디모데야, 속되고 헛된 말장난과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의 반론들을 피하며 네게 맡긴 것들을 지키라.”(딤전6:20, 이하 흠정역)

    3. 죄(罪)와 부정(否定)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하여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게 하셨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창2:16,17상). 아울러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2:17하). 그런데 뱀(Satan)이 이브에게 다가와 그것을 먹으면 결코 죽지 아니하며, 눈이 열리고,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속삭였다(창3:4,5). 이브가 본즉 그 나무가 먹음직도 하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으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이므로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같이 먹게 하였다(창3:6).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죄(罪)가 들어오게 된 시발점이다. 그 이후 아담의 후손들은 죄로 부패된 아담의 형상을 따라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게 되었다(창5:3).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으며 또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다(롬5:12).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롬3:10,23).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다(마5:28). 요한일서에는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한 것이라고 씌어 있다(3:15). 즉 마음으로 짓는 죄도 죄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울러 동성애란 행동에 대해서도 신구약 성경은 끊임없이 가증스런 죄악임을 강조하고 있다(레18:22; 20:13; 왕상14:24; 롬1:26,27; 고전6:9; 딤전1:10; 유다1:7).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어느 누구도 동성애가 죄라는 명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교계의 리더십 가운데도 이와 같은 태도를 지닌 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교인들이 주로 게이와 레즈비언으로 이루어진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의 부목사 캐롤린 모블리(Carolyn Mobley)나 또 게이와 레즈비언의 성직 수임식과 동성간의 관계를 축복해 주는 대표적인 감독파 주교 존 셀비 스퐁(John Shelby Spong) 등은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죄가 될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죄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동성애를 제외한 다른 죄들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이 죄인이란 고백을 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죄 문제를 해결 받을 필요가 없다면 영원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죄가 있어야 할 곳인 지옥·불못에 갈 수밖에 없게 된다(롬3:23; 계21:8).

    “그런즉 너희는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새롭게 하는 때가 주의 눈앞으로부터 이를 때면 너희 죄들이 말소(抹消)될 것이요,”(행3:19)

    “만일 우리가 죄 없다 말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느니라.”(요일1:8)

    4. 다원주의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곧바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한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창3:15). 가인이 태어나기도 전에 선포된 원형복음(protoevangelium) 곧 여자의 씨(the woman's seed)를 구원자로 보내주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후에도 계속 대언자들을 통해 선포되었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그 약속의 말씀은 성취되었다(마5:17).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무죄(無罪)한 피를 흘려 돌아가셨다(마1:21; 27:4; 눅23:33,46; 요19:34; 요일1:7). 그리고 정확히 삼일 만에 예수님께서는 사망과 지옥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눅24:1-12).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만 있게 되면 누구든지 부활하여 영생의 복을 받게 된다(고전15:12-22). 즉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롬10:9).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왜 예수님만이 구원자가 될 수 있느냐고 한다. 석가나 마호메트나 공자나 하다못해 자기 스스로도 구원자가 될 수 있지 않느냐 하며 어느 종교나 신앙에서도 다 구원의 길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즉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진리이지 유일주의나 절대주의는 진리일 수 없다는 사고가 일반인들에게는 물론 교계 내에서도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동성애도 마찬가지이다. 성적 취향이나 성 정체성은 다양할 수 있다며 기존의 양성 구조로 이해하고 있었던 성의 기본틀을 왜곡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적 가치관은 동성애자들의 기본 세계관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미국에서 가장 동성애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를 꼽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터인데 이곳에서는 미국내 그 어떤 곳보다도 기독교, 힌두교, 요가, 초월명상 등이 뒤섞인 아난다교 같은 혼합교 신봉자가 많이 살고 있다.

    또 동성애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교계 내 인사들을 보아도 종교다원주의는 거의 기본적인 신앙고백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마12:3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5. 종말론의 소멸과 성취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주 예수님과 만나리라는 복된 소망을 가지며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요1:12; 엡5:22-33; 딛2:13). 즉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두 주인공 중 하나인 교회는 신부로서, 아내로서 자신을 예비하며 신랑 되신 어린양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계19:7,8; 22:20). 이것이 진정한 성경적 종말론이다. 따라서 이러한 종말론적 신앙을 소유한 성도들은 더욱 성결의 삶을 살아가려고 할 것이고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를 매순간 확인하며 남성과 여성의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생활하려고 한다.

    그런데 동성애자들은 어떠한가? 수도 없이 많은 섹스 파트너를 갖는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있다. 따라서 동성애자로서 성경적 종말론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設)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나님의 왕국이 어느 때에 임하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때에 대해 말씀하셨다.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 마찬가지로 롯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과도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건축하되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바로 그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내려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같으리라.”(눅17:26-30)

    비록 동성애의 삶은 종말론적인 성결의 삶이 아니지만 우리는 동성애가 더욱 휴머니즘의 척도로 자리매김을 하며 확산되는 오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곧 자신의 신부를 2,000년 가까이 기다려온 신랑을 위해 하늘에서는 다음과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이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계19:7)

    6. 성경 훼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의 타락과 죄성에 대해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고 영생과 영벌에 대해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복음이 전파되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 말씀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성경 말씀이 씌어 있는 그대로 읽혀지고 해석되고 선포되어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게 된다.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그렇다. 우리는 성경으로써만 구원의 교리 곧 복음을 제시할 수 있으며, 또한 성경 말씀으로만 동성애 등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문제를 파악하여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동성애자들은 한결같이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캐롤린 모블리 목사의 말을 들어 보자. “로마서에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고 동성애자를 반대한 바울조차도 나처럼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따라서 바울도 잘못되었으며 그의 잘못은 시대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울이 채택했던 것들은 부정확했으며 따라서 재해석의 도전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처럼 성경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에 권위를 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양식이다. 곧 자신이 하나님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에릭 마커스(Eric Marcus)는 자신의 저서 ‘커밍아웃’에서 하버드대학 기독교윤리학 교수인 피터 곰스(Peter Gomes)의 글을 인용하면서 성경의 아홉 절이 동성애에 관계된다며 각 구절들을 설명하고 반증하려 하였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구절인 유다서 1장 6절과 7절은 리스트에서조차 빼버리고 말았다.

    “또한 자기의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 도시들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음행에 내어주고 낯선 육체를 추구하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되었느니라.”(유1:6,7)

    성경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문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아예 제거해 버리는 이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시리라.”(계22:18,19)

    7. 마무리

    동성애를 통한 사탄의 전략은 뉴에이지 운동의 여러 다른 부류에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또한 그 추구하는 바도 한 가지일 뿐이다. ‘미혹하라.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라. 복음을 희석시켜라. 복음을 변질시켜라.’ 그리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마25:41)에 들어가도록 만들라.’

    동성애냐 아니냐에 앞서 우리는 선택하여야 한다.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실로 영원한 시간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잠16:25)

    “형제들아, 너희 중에 진리를 떠나 잘못하는 자가 있는데 누가 그를 돌아서게 하면 그 죄인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인즉 그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 할지니라.”(약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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