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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음악에 부쳐조회수 : 11264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17시 19분 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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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에 부쳐

    글·김희섭_동국대 일산병원 소아과. 서울제일침례교회. E-mail:kimhesp@yahoo.co.kr

    최근 어떤 가수가 몸매를 자랑하며 노래를 한다고 하여 선정성 논란이 있었다. 원래 음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주신 것으로 신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이지만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는 음악을 자신을 나타내는 도구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바하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음악에 관하여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어떠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

    흔히들 바하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한다. 왜냐하면 바하 이후의 음악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데 필자는 특히 바하가 영을 움직이는 수단으로 작곡을 하였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어느 음악가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을 한다.

    필자는 20년 전쯤에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하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샀던 적이 있었다. 파블로 카잘스는 자신이 이 곡을 악보점에서 발견한 후 수년간 연습을 하고 발표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연주는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지금까지 최고의 연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음반을 산 후 며칠간 듣지 않다가 잠이 오지 않아 밤중에 일어나 우연히 이 음악을 듣게 되었다.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이 우주의 신비함과 역동성에 대한 영혼의 깊은 느낌을 바하는 어쩌면 이토록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며 너무도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을 때(박봉에 오디오도 집에 없을 때) 차를 몰고 저녁 늦게 야외에 나가 별을 보며 이 무반주 조곡을 듣곤 하였다.

    바하의 음악은 현대와 같이 악기의 성능이 좋지 않았던 시대의 곡임에도 내적인 영혼의 표현력에서는 어느 음악가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브란덴부르그 협주곡, 하프시코드 협주곡에서의 인간이 가지는 내면의 힘은 어쩌면 더 이상의 악기가 필요 없어 보일 정도이다. 실제 무반주 첼로조곡과 무반주 바이올린 곡은 한 악기로 자신의 내면을 충분히 심도 있게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악기 종류와 수가 많아지고 기능이 향상이 되었어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의 상태이다(잠4:23). 따라서 영에 호소하는 음악을 작곡한 바하가 아직도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베토벤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한 작곡가이다. 난청과 가난 그리고 사회적 냉대를 인간의 의지로 극복한 베토벤은 음악을 통해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잘 알려진 운명 교향곡은 바로 그런 면을 나타내주는 베토벤의 대표적 음악이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도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는 걸작이다. 그런 반면 교향곡 6번은 인간의 내면적 평화를 찾는, 즉 괴로운 이 세상에서 안식과 평안을 구하는 음악이다. 말년의 베토벤은 그의 마지막 작곡인 현악 사중주에서 그의 내적 편지를 썼고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평화를 추구하기까지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베토벤을 나타내는 결정적 음악은 9번 교향곡 합창의 3악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베토벤이 생각하는) 천국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이 다다르고 싶고, 얻고 싶은 그 어떤 곳을 나타내주고 있다. 아마도 베토벤의 말년의 모습을 여기서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4악장에서는 인류애를 표현했는데 그가 사용한 시는 인본주의 시인 쉴레의 시로서 도입부는 앞 악장들에서와 달리 좀 더 기쁨의 노래를 하자고 하면서 합창이 시작된다.

    바하가 영에 호소하는 음악을 작곡하였다면 베토벤은 인간의 혼을 울리는 곡을 만들었다. 바하의 음악은 별을 보면서 들을 수 있지만 베토벤의 음악은 그러기에는 영의 깊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두 작곡가 모두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바하에게는 영의 고향, 베토벤에게는 인간의 궁극적인 안식과 평화)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요, 또 우리 모두가 바라보아야 할 본향은 구약의 하나님의 사람들과 신약의 예수님의 사람들이 동일하게 바라보았던 본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히11:14).

    두 위대한 작곡가는 그 본향을 바랬으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인본주의 시각으로 접근을 하여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바하와 베토벤에게 인간의 원초적 문제를 다루는 수단은 음악이었다. 비단 이들과 같은 음악의 거성들뿐 아니라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나름대로 영적인 감흥을 얻어왔기 때문에 음악이 꾸준히 사랑을 받고 또 음악 자체가 하나의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게도 되는 것이리라.

    이후 음악은 그 수준이 더 내려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락을 하고 만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의미를 붙여 낭만주의라고 부르게 된다. 슈만, 쇼팽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럽 상류사회의 살롱문화에 의해 차이코프스키 같은 작곡가도 나온다. 이때쯤 되어서는 더 이상 영과 혼에 호소하는 음악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만다.

    20세기에 와서는 재즈가 나오고 급기야는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대중가수가 나오며 우리의 육에 직접 호소하는 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거기에 더해 인간의 생각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갖가지 락 음악이 나오게 된다. 현재에는 이것에 더해 자기 몸을 사용한 음악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고 있다. 단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모든 것이 사용되고 있는 오늘날, 음악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사탄은 음악을 영에서 혼 그리고 육으로 끌어내려 사람이 더 이상 영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작곡가만 그러한가? 필자는 10여 년 전에 요요마가 연주한 바하의 무반주 첼로조곡 판을 사서 연주를 들어보았다. 듣는 순간 어떻게 이 곡을 감각에만 호소하게 연주할 수 있을까 하며 너무 실망을 한 나머지 언젠가 요요마를 만나면 판을 산 돈을 물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나중에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바로 요요마가 뉴에이지 음악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필자는 실제 그가 그렇게 불리어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뉴에이져임에 틀림이 없다고 확신한다. 비단 요요마뿐 아니라 현재 많은 젊은 음악가들이 뉴에이져이기 때문에 필자는 1980년 전의 연주가의 음악을 주로 듣는다.

    그러면 연주자만 그러한가? 필자는 약 25년 전에 선배로부터 매우 싼 가격에 구입한 오디오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앰프는 영국제 쿼드이고 스피커는 같은 영국제 탄노이다. 기본적으로 현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음질이다. 앰프가 오래되어 수리를 자주 하게 되는데 수리할 때마다 전문가에게 신형 오디오는 어떠한지 물어보면 신형은 음이 강하고 현대적이나 깊은 맛이 없고 쉽게 피곤해지니 바꾸지 말라는 권유를 받는다.

    최근의 오디오는 주로 외적이고 감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음반도 LP에서 CD, 그리고 요즈음은 MP3 등 모두 디지털로 옮아간 지가 오래된다. 그러나 음반은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옮아가면서 그 질이 많이 떨어졌다. 실제 음이 좋은 음반은 1960년대 것이 많다. 필자는 주로 LP를 듣는데 인간적인 따사로운 맛은 역시 아날로그에 있다고 느껴진다. 언젠가는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고 싶으나 시간과 자금이 지금은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코앞에 둔 마지막(digital)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탄도 할 수만 있으면 선택 받은 자마저 미혹케 하려고 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에 보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 혼, 육과 함께 음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또한 주신 것들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도 함께 주셨다.

    음악을 통해서 무엇을 추구하여야 할까 하는 결정도 우리 각자의 몫이다. 몸을 사용하여 노래하는 가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이 세상에서부터 하나님을 찬양하는 멋진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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