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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진화론의 붕괴 18조회수 : 551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7월 17일 14시 19분 30초
  • 진화론의 붕괴 18

    ● 스콧 휴즈

    지금까지 우리는 약 1년 반에 걸쳐 무신론적 진화론이나 균일론보다는 성경적 창조론이나 대격변론이 과학적 사실들을 훨씬 더 잘 설명해주는 것을 보았다. 우주의 무한한 변화, 복잡성, 그리고 질서는 놀라우신 설계자/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명확히 보여 주고 있으며 그분의 존재를 입증해 주고 있다. 참된 과학은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을 지지하며 확증하고 있고 생물체 진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신론적 진화론 사상과 관련된 성경적 사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크리스천들조차도 온 세상에 넓게 퍼져있는 진화론 사상에 의해 협박을 당하고 있으며 또 이에 현혹되어 자기들의 크리스천 믿음과 진화론을 타협하고 비성경적인 사상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인 성경을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창조에 대한 성경적 설명과 진화론 사이에는 현저한 모순이 매우 많다는 것을 인식한 채, 하나님께 헌신한 성경 신자들은 진화론 사상을 완전히 거부할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개념은 서로 호환될 수 없으며 서로 완전히 배타적이다. 다음의 표는 성경의 창조와 진화론이 서로 타협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명확히 보여 주고 있다.

     

     

    성경적 창조론

    인본주의적 진화론

    1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다(창1).

    자연적이며 우연한 선택 과정이 모든 것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2

    세상은 지금부터 6,000년 전에 문자 그대로 6일 간에 창조되었다(창1).

    세상은 매우 긴 시간(약 40 ~100억 년)에 걸쳐 진화되었다.

    3

    창조는 완전히 이루어졌으며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창2:3).

    창조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4

    바다가 땅보다 먼저 창조되었다(창1:2).

    땅이 바다보다 먼저 창조되었다.

     

    5

    두 수권들(hydrospheres) 사이에 대기가 있었다(창1:7).

    대기와 수권이 접해 있었다.

     

    6

    최초의 생명체는 땅에 있었다(창 1:11).

    생명체는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7

    최초의 생물은 육상 식물이었다(창1:11).

    수생 유기체가 처음으로 진화되었다.

    8

    지구가 태양과 별들보다 먼저 창조되었다(창1:14~19).

    태양과 별들이 지구보다 먼저 있었다.

    9

    과수(果樹)가 물고기보다 먼저 창조되었다(창1:11, 20-21).

    물고기가 과수보다 먼저 있었다.

    10

    모든 별이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창1:16).

    별들은 각각 다른 시대에 진화되었다.

    11

    새들과 물고기들은 다섯째 날에 창조되었다(창1:20~21).

    물고기는 새가 나타나기 수백만 년 전에 진화되었다.

    12

    새들이 곤충보다 먼저 있었다(창1:20-31; 레11장).

    곤충이 새보다 먼저 진화되었다.

     

     

    성경적 창조론

    인본주의적 진화론

    13

    고래가 파충류보다 먼저 창조되었다(창1:20-31).

    파충류가 고래보다 먼저 진화되었다.

    14

    조류 다음에 파충류가 있었다(창1:20-31).

    파충류 다음에 조류가 있었다.

    15

    사람이 창조된 후에 비가 내렸다(창2:5).

    비가 사람보다 먼저 있었다.

    16

    남자 다음에 여자가 창조되었다(창2:21~22).

    유전학에 따르자면, 여자 다음에 남자가 생겼다.

    17

    빛이 창조되고 그 뒤에 태양이 만들어졌다(창1:3~19).

    태양이 만들어진 후 빛이 나왔다.

    18

    식물이 창조된 후 태양이 창조되었다(창1:11~19).

    태양이 형성된 후 식물이 나타났다.

    19

    풍부하고 다양한 수생식물이 일시에 모두 창조되었다(창1:20~21).

    수생물체는 초기의 단일 유기체로부터 점차로 진화되었다.

    20

    사람의 몸이 땅의 흙으로부터 창조되었다(창2:9).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

    21

    사람에게는 모든 생명체를 다스리는 권리가 있다(창1:28).

    대부분의 생명체는 인간이 진화되기 이전에 멸종되었다.

    22

    인간의 식성은 본래 초식이었다(창1:29).

    인간의 식성은 본래 육식이었다.

    23

    완전히 결정되어 구별되는 종류들이 있었다(창1:11-12, 21, 24-25; 고전 15:38~39).

    생명체의 형태는 계속해서 변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24

    인간의 원죄는 죽음을 가져왔다(롬5:12).

    투쟁과 죽음은 인간이 진화되기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이 같이 직접적으로 모순이 되는 것들 외에도, 무신론적 진화론과 성경적 기독교 사이에는 일반적 원리에 있어서도 확실한 차이점들이 있다.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썩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마7:18).

    진화론의 열매는 마귀가 주관하는 이 세상 시스템에서 여러 가지 믿음과 행위로 나타났다. 진화론은 히틀러의 나치즘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지적/철학적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암처럼 널리 퍼져있는 상대주의윤리를 위한 기초를 확립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배도, 무신론, 세속적 인본주의, 그리고 성도덕상의 자유주의를 촉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로 인류의 일반적 복지와 정신문화는 이러한 자연주의/인본주의 철학이 생산한 결과로 인해 큰 피해를 받아 왔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책임 있는 창조물이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동기에 대하여 창조주 앞에서 답변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아무런 목적도 없는 진화 과정에 의해 생긴 생산물로 간주하게 되면 사람은 모든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면제받게 되며, 이 경우에 사람은 단순히 자연에서 우연히 생겨난 한 생산물이 되며 기껏 해 봐야 지적 동물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악한 행동이, 그가 예전에 동물이었으며 아직도 그 속성이 조금 남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온 인류가 계속해서 이러한 논리로 치닫는다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그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제어할 수 있는 능력 곧 그 자신만이 소유한 유일한 능력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참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도덕적 개혁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람의 본성은 사람이 만든 어떤 외부적인 것에 의해 바뀔 수 없으며, 오직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바로잡아 줄 내면의 변화가 있어야만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나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요3:3-7)

    진화론은 특히 윤리와 도덕이라는 영역에서 사람의 마음을 타락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삶에서 잘 드러난 성경적 윤리는 틀림없이 모든 윤리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 그러나 우연함/무질서의 진화 과정이 우리의 창조주라면 윤리의 절대성에 대해 전 우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시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신윤리(新倫理), 좀 더 정확하게 이름을 붙이자면 ‘윤리 부재’는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무신론적 사상/철학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현대 윤리의 타락이 진화론 사상의 출현과 때를 같이하여 발생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오늘날 온 세상에 널리 파급되고 있는 윤리 붕괴 현상은 모든 윤리 기준을 휩쓸어버리고 있는 체계, 즉 진화론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같이 한탄할 수밖에 없는 악한 추세를 해결할 수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순수와 회개와 성경적 표준과 원리로 되돌아가려는 진정한 마음 자세를 갖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진화론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많은 난제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깊이 생각해 본 문제들만으로도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모든 형태의 진화론적 사고방식을 거절해야만 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데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무신론적 진화론과 타협하고자 하여 개발된 유신론적 진화론은 결코 성경적 기독교와 화해할 수도 없으며 화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최종 결론

    생명의 기원에 관하여는 모든 생물체가 우연의 과정 속에서 진화했다는 관점과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한 설계에 의해 종류마다 독특하게 창조되었다는 관점이 있으며 이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철학적/신학적 개념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생명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관찰이나 실험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진화론과 성경적 창조론은 둘 다 과학적 실험에 의해서 그 사실 여부를 증명할 수 없는 그런 개념들이다. 이 두 개념은 한결 같이 믿음의 문제이지 결코 과학의 문제가 아니며 종의 기원에 대한 종교적 철학이며, 따라서 믿음을 요구한다. 사실 진화론의 경우에는 ‘믿음’이라는 말보다 ‘쉽사리 믿는 성질’(경신, 輕信)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와이송 박사가 관찰한 바와 같이, 이 같은 정의는 특별히 진화론에 더 적합하다.

    실로 진화론은 많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우연에 의해 무엇인가가 형성될 수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타파해 버리는 L-단백질이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믿음,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내버려두었더라면 대혼란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고야 말았을 DNA 암호들이 진화에 유리하게 형성되었다는 믿음, 진화론자들이 모든 생명체의 화학적 조상으로 여기고 있는 아미노산 등을 마구잡이로 파괴시키고 말았을 초기의 불리한 지구 환경이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믿음, 자연적으로 생물이 발생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열역학의 법칙들을 포함한 대자연계의 법칙들이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믿음, 실제로 진화론자들에게 항상 더 많은 문제만 가져다주는 과학의 진보들이 이제는 진화에 유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무자비하게도 오직 두 개의 이야기, 곧 멸망할 수밖에 없는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확신시켜주는 이야기만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확률이 이번에는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 고정된 종류들이 시간에 따라 변해서 진화론을 확증해 줄 것이라는 믿음, 진화론자들에게 이중의 부정 효과를 가져다주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이번에는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 시대를 통해 동식물의 종류들이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음을 잘 보여 주며 또한 과도기 중간연결고리를 전혀 보여 주지 않고 오직 전 세계적 대홍수가 있었음을 잘 증언하고 있는 화석들이 언젠가는 진화에 대해 유리한 증언을 하리라는 믿음, 언제나 파멸과 붕괴만을 가져오는 시간이라는 인자가 언젠가는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믿음 등.

    중고등학교 교과서 등에서 과학적이며 확고히 정립된 사실로 묘사되어 온 것과는 달리, 실제로 진화론은 비이성적이며 셀 수 없이 많은 과학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가설이다. 반면에 성경적 창조론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과학적 사실들과 일치하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성경적 기독교에 대한 지적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인상적이고도 확실한 과학적 증거는 참으로 많다.

    진화론은 최근 몇 해 동안 우리 사회에 큰 문젯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도덕적 타락과 실로 깊은 관련이 있다. 무신론적 진화론을 추종하는 믿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창조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거부했으며 또한 성경 자체의 메시지에 순종하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 여기에 바로 사탄의 속임수라는 아주 심각한 위협이 놓여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구원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주의적 진화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구상에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불필요한 존재임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전혀 소망 없는 미래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잠16:25)

    그러나 성경이 전해주는 소식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된 소식이다. 바로 이 복음 안에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우리의 삶에 대한 목적과 의미, 그리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확실한 영생의 약속들이 들어 있다(요3:6).

    이제 진화론의 붕괴는 엄연한 사실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크리스천들의 연구 조사를 통해 과학적인 것으로 입증된 성경적 사실들은 마침내 생명체의 진화라는 마귀의 피상적 속임수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이 시점에서 사실에 입각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성경적 기독교의 타당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 올바른 변명 거리가 되지 못한다. 성경적 창조와 대격변론을 지지하는 증거는 너무나 풍부하다. 따라서 이런 사실들을 거부하는 것은 잘 알지 못해서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를 따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실로 많은 이들이 “나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믿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다. 성경적 기독교에 여러 가지 지적 난제들이 많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항하려 하는 그들의 도덕적 반항을 감추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글을 맺기 전에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려 한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그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지적하려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 경쟁을 해가면서 그 재단사가 임금님의 옷을 참으로 훌륭하게 만들었다고 격찬만 했다. 그러나 한 순진한 어린아이는 “임금님은 벌거벗고 있어요.”라고 단순하게 사실을 말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임금님이 바로 진화론과 비슷하지 않은가! 다시 말해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 격찬을 늘어놓지만 실제로 진화론은 아무 것도 없이 벌거벗은 채 우리 눈앞에 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사람들이 진화론의 붕괴를 알리지 않으면 짐승들이 이를 알릴 것이다.

    그러나 이제 짐승들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너를 가르치리라. 공중의 날짐승들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일러주리라. 혹은 땅에게 말하라. 땅이 너를 가르치리라. 바다의 물고기들도 네게 밝히 알려주리라. 이 모든 것 중에 어느 것이 의 손이 이 일을 이루신 줄을 알지 못하랴?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간의 호흡이 그분의 손에 있느니라(욥12:7-10)

    이 글을 끝내면서, 파스칼의 ‘유명한 내기’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수학자요, 물리학자였던 파스칼은 하나님께서 존재하든지 혹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만일 당신이 이 내기에서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쪽에 당신의 삶 전체를 건다면, 그리고 당신이 옳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혹시라도 당신이 틀린다 해도 당신은 결코 아무 것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즉, 밑져야 본전인 셈이다. 한편 당신이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만일 당신이 옳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더욱이 당신이 옳지 않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즉, 이 경우는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손해인 경우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지금도 당신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잃고자 하는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기 바란다.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실수투성이 개념들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안개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바로 오늘 이 시간에 독자께서 시간과 그 외의 모든 것을 초월하시며 변치 아니하시는 여러분의 창조주/구원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자로 맞아들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다(히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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