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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 16절)

  • 예수님이 곧 오실 징조들 - 이슬람 세력의 부상조회수 : 818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8월 12일 12시 1분 26초
  • 예수님이 곧 오실 징조들
     
    지금으로부터 꼭 1천년전인 1009년,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이슬람권을 지배하고 있던 파티마 왕조의 괴짜 왕(칼리프) 알 하킴은 느닷없이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er)와 그 부속 건물들의 파괴를 명한다. 성묘교회는 그로부터 30년 후 복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훗날 약 2백년간 지속된 십자군 원정의 빌미가 된다.
     
    지난 6월 12일 이란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가히 부정선거의 백미였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이 선거 아닌 선거의 후폭풍으로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의 곳곳에서는 수백만의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가 연일 시위를 벌였고, 극심한 유혈사태로까지 치달았다. 1979년, 친미 절대군주였던 팔레비를 쫓아내고 백발의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최고지도자로 옹립했던 이슬람 혁명 이래 최대의 민중봉기였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지난 30년간 지구 위에 가져온 변화는 돌이켜보면 정말 커다란 것이었다. 무슬림들은 모하메드 사망 직후부터 거의 천년 동안이나 유럽을 압도하는 세계적인 패권과 찬란한 문화를 누렸던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는 서구의 식민통치 아래서 기를 펴지 못한 채 지내왔다. 그 결과로 오늘날 많은 비이슬람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슬람의 이미지는 ‘미개한 아랍 유목민들의 종교’ 정도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런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미국을 몰아내고 수백년 만에 외세의 도움이 없이 순수한 이슬람만의 이름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어떤 영향을 미쳤겠는가? 아마도 전 세계 10억 무슬림들에게 신선한 충격 그 자체이자, 집단 카타르시스 이상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이란에서 일어났던 그 해 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소련군 역시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이라는 이슬람 전사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다가 결국은 10년 만에 피눈물을 머금고 철수를 하였고, 이는 간접적으로 구소련의 붕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후 아프가니스탄에도 이란의 신정체제 못지않은 이슬람 근본주의 정부인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에 의해 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던 소련군이 쫓겨나고 급기야는 무신론을 신봉하던 소련제국이 통째로 무너지는 계기가 된 이 사건은 앞서 이란의 이슬람 혁명보다 더 큰 반향을 전 세계 무슬림들의 영혼 속에 불러왔다. 우리가 잘 아는 알 카에다나 오사마 빈라덴은 바로 이 사건이 빚어낸 부산물들이다.
    결국 이 두 사건을 축으로 하여 지난 30년간 세계는 미·소간의 냉전체제에서 기독교 혹은 서구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의 충돌로 패러다임이 바뀌어버렸다. 지난 수백년간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이슬람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오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을 전 세계적으로 뿌리며 수없이 많은 마드라사 신학교를 세계 방방곡곡의 가난한 무슬림 지역에 지어주고 있다. 이 마드라사 신학교에서는 일반 교양과정은 거의 가르치지 않고, 대신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교리 가운데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을 어릴 적부터 집중적으로 주입시킨다. 이러한 추세는 그 추구하는 이상으로 볼 때 와하비즘의 행동부대라고 할 수 있는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의 등장으로 지난 20년간 더욱 가속화되어왔다.
     
    그 덕에 오늘날 이슬람은 외형적으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일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가장 강력하게 결속되고 있는 집단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성숙도마저 무르익어 이슬람 혁명 후에 태어난 30세 이하 인구가 70퍼센트에 달한다는 이란에서는 그 이슬람 신정체제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많은 자유를 갈망하는 욕구가 하루에 2백만이나 되는 인파를 테헤란 거리로 내보내게까지 된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성급한 서방 언론에서는 풀뿌리 차원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보다 더 현실적인 시각은 아마도 이슬람 혁명 30년 만에 보수와 개혁으로 분리된 두 대표 세력 간의 내부투쟁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는 ‘이란 이슬람 혁명의 제2 단계론’일 것이다.
     
    어떤 시각이 더 정확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 사건으로 분명해진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동안 보수·강경화 일변도로만 치닫던 이슬람 문명의 확장 가도에 앞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이번에 이란의 젊은 무슬림들이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와하비즘과 알 카에다로 상징되는 폭력적, 퇴행성 이슬람주의에 맞서 이슬람 안에서도 폭넓은 자유와 공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진취적인 기운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서구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거의 무지한 것에 비하면 오늘날 중동의 많은 젊은이들은 할리우드에 푹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구지향적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중동판 베이비부머라고 할 수 있는 30세 혹은 25세 이하의 젊은 층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상 때문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강퍅해진 사람들의 마음 밭을 갈아 옥토로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한 이슬람 신앙심마저 퇴색해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간의 충돌이 오늘날의 역사현실을 대변해 주는 화두라면 이슬람을 아는 일이야말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당면한 숙제 중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막상 이슬람에 대해 너무도 아는 바가 없다. 이슬람과 기독교 간에 다른 점들을 열거하기에 앞서 공통된 부분들을 먼저 열거해보면 이슬람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와 가까운 영적 집단이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이슬람을 기독교의 이단 교파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우선 그들은 아브라함(이브라힘―이하 괄호 안은 기독교 용어의 코란식 표기)을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으며, 아담(아담), 이브(하와), 노아(누후), 욥(아윱), 야곱(야쿱), 모세(무사), 아론(하룬), 다윗(다웃), 솔로몬(술레이만), 요나(유누스), 엘리야(일리야스), 엘리사(알야사), 스가랴(자카라), 에스겔(둘키플), 세례요한(야히야), 예수(이사) 등 모든 신·구약 인물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된 5가지 거룩한 책을 인정하는데 유실된 아브라함서, 구약(토우라), 시편(자불), 신약(인질), 그리고 천사 가브리엘(지브릴)을 통해 하나님이 모하메드에게 암송하도록 명한 코란이 그것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유대교, 기독교와 더불어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는 하나님, 즉 God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히브리어의 엘, 엘로힘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가 메시야(마식)이자 하나님의 말씀이셨음, 동정녀 탄생, 복음서의 기적들, 승천하셨음과 지금은 하나님 곁에 계심을 믿는다.
     
    그러나 물론 이슬람에는 기독교와 크게 다른 점들이 있다. 철저한 유일신 신앙인 이슬람이 기독교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하는 부분은 삼위일체론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신격화하게 되면 유일신 신앙을 저버리는 결과가 된다는 논리에서이다. 이를 두고 어떤 기독교 학자들은 모하메드가 살아있을 당시 존재했던 ‘성부, 성모, 성자의 삼위일체론’에서 유래된 이단의 오류가 코란에 반영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과 마리아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어 태어난 아들로 보는 관점이 삼위일체론으로 오해된 채 이슬람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독교 학자들의 주장이지 이슬람권에서도 인정받는 이론은 아니다. 그러나 코란에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이시자,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라고는 한다.
     
    또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은 코란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그런 것처럼 보인 것일 뿐이며, 실제로는 결코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시지 않았다고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셨고 하나님 가까이에 계시다가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고 되어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슬람이 인간의 원죄와 죄사함의 필요성을 교리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음과 일맥상통한다. 이슬람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하늘나라의 낙원에서 사탄(이블리스)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짓고 난 후 하나님께 자복하고 용서를 받은 다음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 땅 위에 보내심을 받아 내려왔다고 믿는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에 절대 복종함으로써 평화를 누리고, 사탄을 따라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날 인류 전체에 대한 심판이 있을 때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이슬람의 구원론이다.
     
    여기에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함께 믿고 기다리는바 궁극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슬람에서도 마지막 날 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 때에 예수님이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을 굳게 믿는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난 2~3년간 예수님이 곧 오실 징조들이 부쩍 많이 눈에 띄고 있다. 유대인들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애통해 할 것으로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이 신약성경의 완성 이후에 생겨난 종교인만큼 무슬림들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 과연 무슬림들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가질까? 그때 우리는 그 무슬림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하기로는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무슬림과 우리들을 각각 어떻게 보실까? 곧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다. 
     
    (필자는 최근 방글라데시에 다녀왔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무슬림에게 보내심을 받고 이슬람권으로 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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