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편 119편 9절)
주님의 만찬은 아무렇게나 참여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 11장 29절: “합당하지 않게”를 삭제한 NIV는 무엇을 숨기려 하는가?
1. 성경은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고린도전서 11장 29절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경고를 주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KJV)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며 자기가 받을 정죄를 먹고 마시기 때문이라.” (고전 11:29, KJV)
그러나 개역성경, NIV 등 현대 역본들에서는 이 핵심 표현인 **‘합당하지 않게(unworthily)’**를 삭제하였다. 그 결과 구절의 의미가 매우 흐려지고 말았다. NIV는 단지 “[주의] 몸을 분별하지 않고 먹고 마신다”고만 기록하여, 행위의 ‘태도’와 ‘자기 점검’의 중요성을 완전히 희석시켰다.
2. 왜 “합당하지 않게”가 중요한가? KJV는 이 구절을 통해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가 먼저 스스로를 살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고전 11:28도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을 살펴보고 그 빵을 먹으며 그 잔을 마실지니…” (고전 11:28, KJV)
이와 같은 구조는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회개와 자기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성경적 원칙을 확립해 준다. 그렇지 않으면 30절에서 경고하는 것처럼 병이 들거나 죽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전 11:30).
하지만 NIV는 이러한 경고의 맥락을 삭제된 한 단어로 흐려 놓았다.
3. 로마 카톨릭의 미사 교리와의 충돌 로마 카톨릭은 미사를 구원에 이르는 필수적인 종교 행위로 가르친다. 그들은 미사를 통해 “참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야만 하나님과 합당한 관계에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즉:
죄는 고해성사로 해결되고,
미사를 통해 다시 하나님의 은총에 들어가며,
거기에 참여함으로써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와 정반대의 질서를 말한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전에(BEFORE) 회개하고 자기를 판단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서야 한다고 가르친다. 즉, 성찬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증표이며 감사의 표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 11:29에서 “합당하지 않게”라는 단어가 사라지면, 천주교 미사 교리처럼 아무 준비 없이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신자 개인의 영적 상태나 자백, 회개 없이도 성례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잘못된 교리를 성경이 뒷받침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4. 사본 증거는 무엇을 말하는가? 연합성서공회(UBS)의 주석에 따르면, “ἀναξίως(합당하지 않게)”라는 단어를 포함한 사본이 53개, 이를 삭제한 사본은 14개에 불과하다. 약 4:1의 비율로 다수 사본이 이 단어를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역본들은 소수 사본(Nestle-Aland/바티칸 계열)을 따라 이를 삭제해 버렸다.
이것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사본 문제는 결국 교리 문제로 이어진다. 삭제된 말씀 한 구절이 전체 신학 체계와 예배 관행을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주의 만찬은 아무 준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회개한 후, 겸손히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며 감사함으로 참여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합당하지 않게(unworthily)”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신자의 자세, 회개, 경건한 삶을 요구하는 거룩한 기준이다. 이 중요한 단어를 사본에서 삭제하고, 그 결과가 교리를 왜곡시키는 역본(NIV, 개역성경 등)은 결코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이 될 수 없다.
오직 킹제임스 성경(KJV)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있으며, 이 진리는 사본과 교리의 일치 속에 분명히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