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명기 4장 2절)
위클리프 성경은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성경전서이다. 14세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신학자 존 위클리프의 뜻에 따라 그와 동료 학자들이 당시의 중세 영어로 번역하였다. 첫 번역은 1380년대 초에 완성되었으며, 이후 1390년대에 보다 자연스러운 영어로 다듬은 판이 나왔다.
이 성경은 활자로 인쇄된 책이 아니다. 유럽에 인쇄술이 등장하기 약 70년 전이었으므로, 양피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를 모두 손으로 직접 필사하여 제작되었다. 성경 한 권을 필사하는 데 몇 달이 걸리기도 했으며, 일부 사본에는 채색 장식과 세밀한 문양이 더해져 있다. 오늘날까지 250부가 넘는 사본이 전해지고, 그 가운데 20부 정도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담은 성경전서이다. 이처럼 많은 사본은 당시 사람들이 이 성경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정성껏 필사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당시 영국에서 성경은 라틴어로만 읽을 수 있었다. 라틴어를 아는 사람은 성직자와 학자 등 소수에 불과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없었다. 위클리프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신앙과 삶의 가장 높은 기준이며, 누구나 자기 나라 말로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농부와 상인 등 평범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영어로 성경을 옮겼다. 위클리프는 이러한 번역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언어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우게 해 준다고 말하였다.
위클리프 성경은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가 아니라 제롬의 라틴어 벌게이트라는 잘못된 번역 대본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완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성경 말씀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에는 충분했다.
한편,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은 롤라드파(Lollards)라고 불렸다. 이들은 손으로 필사한 성경을 품에 안고 영국 곳곳을 다니며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교회는 허가받지 않은 성경 번역을 금지하고, 롤라드파를 이단으로 몰아 박해했다. 위클리프가 세상을 떠난 뒤인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는 그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1428년에는 로마 카톨릭교회가 그의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불태우고, 그 재를 루터워스 근처의 스위프트 강에 뿌리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도 말씀을 향한 사람들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비밀리에 성경을 필사하고 함께 모여 읽었다. 어떤 농부는 사도들의 서신 몇 장을 얻기 위해 수레 한가득의 건초를 기꺼이 내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만큼 모국어로 기록된 성경은 귀한 보물이었다.
훗날 한 영국 역사가는 이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강물에 뿌려진 위클리프의 재가 바다로 흘러가 온 세상에 퍼진 것처럼, 그의 가르침도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클리프는 오늘날 종교 개혁의 새벽별이라고 불린다. 그가 뿌린 씨앗은 약 150년 뒤 틴데일과 루터 같은 인물들을 통해 큰 열매를 맺게 된다. 여기 전시된 위클리프 성경은, 모든 사람이 모국어로 성경을 읽게 하자는 소망이 영어로 처음 결실을 맺은 모습이다.
참고 문헌 • Mary Dove, The First English Bible: The Text and Context of the Wycliffite Versi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 John Foxe, Acts and Monuments (1563) • Thomas Fuller, The Church-History of Britain (1655) • John Bale, 16세기 저작('종교 개혁의 새벽별' 칭호를 처음 쓴 것으로 알려짐) • Encyclopaedia Britannica, "John Wycliffe" • Encyclopaedia Britannica 및 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의 인물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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