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질문의 요점을 잘 이해하였고 그래서 답을 다시 드립니다.
많은 성경학자들과 문헌들이 렘27:1의 여호야김은 오류이고 3절에 있는 시드기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NIV 등은 아예 시드기야로 본문을 바꾸고는 각주에 여호야김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이 사용한 마소라 본문은 여호야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둘 다 요시야의 아들이고(왕하23:34 등) 여호야김은 시드기야보다 11-12년 전에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바로 그때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공하여 다니엘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단1:1).
렘26장도 여호야김 시대에 주어진 대언의 말씀입니다.
렘27의 대언 즉 시드기야 왕 시대에 일어날 대언도 여호야김 시대에 26장의 대언 등과 함께 시리즈로 주어졌습니다.
비블리시스트 즉 성경 신자는 이런 구절을 그대로 두고 여호야김 시대에 주어진 대언이 시드기야 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사실 여기의 대언은 앞날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예언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게 예언의 특징 아닙니까?
요약을 하면 하나님은 여호야김 시대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시리즈로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셨고 예레미야는 시간이 흘러 그 일들이 일어날 시점에 그 예언대로 실제 행하였습니다.
샬롬
2015-05-15 17:34:06 | 관리자
안녕하세요?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21
그리고 질문을 올리기 전에 우측 상단 구글 검색에서 검색해 보세요.
이 경우 여호야김 시드기야라고 치면 나옵니다.
샬롬
패스터
2015-05-14 08:53:22 | 관리자
샬롬~
성경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을 올립니다.
예레미야서 27장 1절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주로부터 이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유다 왕이 여호야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27장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왕은 시드기야네요....
다른 분께 문의를 한 적이 있는데...
여호야김이 아니라 그냥 시드기야로 보라는 답변을 들었는데요...
또 개역개정을 보니 아래에 시드기야라고 주석이 달려 있더라고요~
27장을 쭉 읽어보면 정황상 시드기야가 맞다고 보여지는데.....
그렇게 봐도 무방한 것인가요???
조금이라도 바르게 성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 질문을 올립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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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4 00:51:33 | 배정은
2015년 5월 3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gRX77yK9o1s
2015-05-04 22:44:25 | 관리자
2015년 5월 3일 (주일 오후)
https://youtu.be/M9GMpKFXTWQ
2015-05-04 22:30:45 | 관리자
곰들이 42명을 죽인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입혔습니다.
2015-04-29 12:31:50 | 관리자
성경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 하나님께서 특별 심판을 내린 예들이 많습니다. 성막 예배가 시작되면서 나답과 아비후가 이상한 불을 드리다가 죽임을 당합니다(레10).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아간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수7).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오려 할 때 웃사가 궤에 손을 댔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신약시대에서도 교회가 형성될 때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행5). 이런 차원에서 엘리사가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던 지역의 아이들이 곰들에 의해 상처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대언자가 위엄 있게 사역을 시작하는 모습이 이렇게 기록된 것입니다. 패스터
2015-04-29 09:37:02 | 관리자
질의응답으로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성경 Q & A로 옮겼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5-04-29 09:24:37 | 관리자
질문: 열왕기하 2장 24절
어린아이들이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라고 놀렸다고 그 아이들을 저주하여 마흔두 명이나 곰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는데 이해가 안됩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놀렸다고 해서 그렇게 죽이는지...
답: 성경을 잘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돌이켜서 그들을 보고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매 숲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 그 아이들 중의 마흔두 명을 찢었더라.
곰들이 42명을 죽인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입혔습니다.
15 주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거처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자신의 사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을 보내고 늦기 전에 일어나 보내셨으나 16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들을 멸시하며 그분의 대언자들을 학대하여 마침내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해 진노하사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더라.(대하36:15~16) 구약 시대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언자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곧 감히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당시 온 이스라엘에 엘리야와 엘리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소식도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서 도시에서 나온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대언자 엘리사에게 심각한 모욕을 안깁니다. 당시 벧엘과 그 인근은 솔로몬 이후 심각한 우상숭배의 본거지요, 배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벧엘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394 엘리사에게 대한 어린아이들의 언행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이곳 사람들의 하나님과 그분의 대언자들에게 대한 반감과 멸시는 아마도 소돔과 고모라를 능가할 만했을 겁니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엘리사는 자신들의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는 최고의 적으로 여겨졌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분명히 엘리사는 자기 임의대로 저주하지 않고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습니다(24절). 이렇게 당시의 시대상과 앞뒤 문맥을 살필 때 열왕기하 2장 23절은 단순한 어린아이들의 장난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고 왜 엘리사의 저주와 그로 인한 형벌이 이들에게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상단 구글 검색을 이용하시면 다른 관련 글도 검색이 되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04-28 19:28:35 | 권장일
영어로 되어있지만, 이 주제를 잘 설명해주는 사이트가 있어서 첨부합니다.
http://creation.com/from-the-beginning
2015-04-24 08:00:18 | 홍승대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767
2015-04-23 17:10:09 | 관리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 벼룩’ 같은 것도 만드셨을까요, 아니면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실 때 처음 만드신 걸까요?
창1:1, 2:1, 출20:11, 그러나 왜 이, 벼룩, 쥐, 바퀴벌레 같은 악한 것들도 창조하셨는지 모름
유한한 사람이 무한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롬11:33-34).
다만 목적이 있어서 그리하였다.
예를 들어 사람은 타락하면 창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크게 여기고 경배한다(롬1:21-25).
하나님의 이집트 심판(출12:12), 그들의 신들: 나일 강, 개구리, 이, 파리, 메뚜기 등
사람이 타락하면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을 보여 주려면 무언가가 있어야 함
시49:12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 입증하려면 이런 것들도 존재해야 한다. ‘모든 것이 좋았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이것들도 타락하여 지금과 같은 상태로 되었다.
그래서 창조 세상도 구속을 기다린다(롬8:19-22)
하나님의 천년왕국에서도 해하거나 상하는 일이 없다(사11:6-9; 합2:14)
2015-04-23 17:09:31 | 관리자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맞나요?
/구원에 관한 기도/사람은 자유의지대로 본인이 생각하고 마음을 정해야 하는데 자꾸 하나님께 구원해달고 기도하면 될지 의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할 바를 잘 모르기도 하고 완벽하게 기도하기는 어렵겠죠. 사람 마음을 바꿔달라는 기도 자체가 의미가 없어 보이네요. 그냥 마음 자체는 하나님이 아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못된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개입하시는 걸까요?
구원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인정, 회개, 신뢰, 영접 등
그러므로 구원받게 해 달라고 하며 아무 일도 안 하면 자동 구원 불가능
다만 “대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일거나 들을 기회를 허락해 주세요.”, “들을 때에 이해하고 돌이킬 수 있게 해 주세요” 등등 의 의미
롬10:14-17, 하나님의 말씀, 들음, 믿음, 이를 위해 말씀을 들고 가는 일이 필요하다.
카톡(유튜브), 전도지, CD, 직접 설명
“선생님 구원받으셨습니까?” 죽기 전까지 40여년을 호주 시드니의 조지 스트리트에서 3줄 설교를 했다.
“선생님, 구원받으셨습니까? 오늘 밤 죽는다면 영원을 어디서 보내실 것입니까? 천국인가요, 지옥인가요?”
구원받은 이후 서약: 하루에 10명에게 전하겠다고. 죽기까지 전했으나 “당신 때문에 주님을 영접했습니다”라는 말을 듣지 못함. 40년이 지난 이후 죽기 2주 전에 영국의 목사 방문, 146,000명, 천국에서 유명한 사람, Frank Jenner, Jenner Question, 위키 백과에도 오름
우리 교회와 각 성도가 이 일을 해야 한다. 전도지, CD, 설교, 소책자, 카톡, 무엇이든
시126:5-6, 사55:10-11
2015-04-23 17:08:18 | 관리자
성경에는 결혼에 관한 규정들이 있나요? 어떤 신자들은 연상연하 결혼은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성경으로 설명이 가능한지요? 성경에는 이런 규정 없다.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잘할 수 있으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성경이 금하는 것: 간음(레20:10), 근친상간(레20:11-12), 근친결혼은 구약시대에는 OK, 지금은 유전자 변이 때문에 열성이 모여 불구 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동성결혼(레20:13), 수간(레20:15), 국제결혼 Yes(보아스와 룻)
다만 결혼은 신중히 해야 한다.
유튜브에서 ‘결혼 시리즈’ 참조
2015-04-23 17:07:28 | 관리자
성경 신자라는 이름표가 부끄러움이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요즘엔 참으로 고심이 많습니다.......
글을 써 주신 노고에 감사합니다.
2015-04-22 21:09:45 | 김대용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시간, 공간, 물질 이지요.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와 창조물인 세상은 물리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데 마귀의 타락을 세상시각에 끼워 맞추려니 무리하게 재창조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재창조는 진화론에 대항하기 위하여 나오기 시작했는데
6일 창조가 확실한 증거들로 설명되면서 퇴조된 이론 입니다.
2015-04-22 13:57:22 | 허광무
좋은 글을 잘 읽고 갑니다.
샬롭^^
2015-04-22 13:40:52 | 차대식
형제님.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간단명료하게 creation을 정리하고 설명해 주셨네요.
샬롬^^^
2015-04-22 11:53:57 | 김영익
창조의 시작부터
(1) “Creation” 단어의 뜻.
Creation(창조)은 창조하다(create)의 명사형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집니다.
(a)창조,창시,신설. (b) 발생 (c) 창작,창조물 (d) 세계,(집합적)만물
(2) 성경에서는 어디 어디에 쓰였나요?
총 6번 쓰였습니다.
(막 10:6)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막 10:6)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막 13:19) 그 날들에 고난이 있으리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세계가 시작된 때부터 이때까지 그런 고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막 13:19) 『For in those days shall be affliction, such as was no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which God created unto this time, neither shall be.』
(롬 1:20)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 『For the invisible things of him from the creation of the world are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by the things that are made, even his eternal power and Godhead; so that they are without excuse:』
(롬 8:22) 또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2) 『For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groaneth and travaileth in pain together until now.』
(벧후 3:4)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니
(벧후 3:4) 『And saying, Where is the promise of his coming? for since the fathers fell asleep, all things continue as they were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계 3:14)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계 3:14) 『And unto the angel of the church of the Laodiceans write; These things saith the Amen, the faithful and true witness,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God;』
6번의 용례를 보면,
Creation은
- “하나님의 창조세계”
- 또는 “창조물”
- 또는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
(3) 하나님의 창조가 끝났나요?
아니요. 아직도 하나님의 창조는 진행 중이십니다.
(사 65:17) 『¶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노라. 이전 것은 기억나지 아니하며 생각나지 아니하리라.』
(렘 31:22) 『¶ 오 너 타락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떠돌아다니려느냐? {주}가 새 일을 땅에 창조하였으니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둘러싸리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4) 그러면, “창조의 시작부터(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는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또는 세계 또는 하나님의 창조행위 의 시작부터 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아래 막10:6절은 무슨 뜻입니까?
(막 10:6)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막10:6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진행하고 계신 창조행위의 시작시점에 또는 창조세상의 시작 시점에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창조의 시작 시점, 즉, 6천년 전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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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2 08:46:53 | 홍승대
안녕하세요?
어떤 분들은 흠정역 성경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창세기 1, 2장에 있는 ‘And’를 꼬박꼬박 번역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1장 1절 이후의 구절들이 의미하는 재창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황당한 주장을 합니다.
‘And’가 시간상 다음 일을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보여 주기 때문에 이어지는 ‘And’는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던(?) 큰 간극의 근거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창세기 1장 2절부터 31절까지 27절을 빼고는 모든 절이 ‘And’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저런 주장이 과연 그럴듯한 이야기일까요? 일단 사전으로 가서 ‘And’의 용례를 보겠습니다.
AND [ænd] n. ① 「나란히 어·구·절을 이음」 ┅와 _, ┅ 및 _, ┅이나 _; 그리고, ┅또(한).② a) 「동시성을 나타내어」 (┅와 동시에) 또, ┅하면서. b) 「앞뒤의 관계를 보여서」 ┅하고 (나서), 그러고 나서③ [보통 ən]「하나로 된 것」 ┅와 -이(합하여 일체가 된 것).④ 「반복·중복」 ┅(한) 위에 또 -, ┅이고 (-이고), 더욱 더; 씩(짝을 지어).⑤ [강조] 더구나, 그뿐이랴.⑥ 「의외·비난」 더욱이, 더구나 ┅인데[┅한 터에], ┅한데.⑦ 「이유·결과」 그래서, 그러자.⑧ 「명령문 뒤에서」 그렇게 하면, 그러면.
그런 주장을 펴는 분들은 아마도 위에서 ②번 용례만을 염두에 두고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서술문에서 ‘And’는 ⑦번 용례 즉 결과의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니라’의 장엄한 권위체로 번역하면 역시 재창조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고도 하니 오늘은 중고등학교 수준의 번역으로 1장을 바꾸어 읽으며 ‘And’를 살려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시간이 처음 도입되는 시점에 하나님은 우주와 지구를 무에서 유로 만드셨습니다. 여기의 ‘heaven’이 하나님의 처소인 셋째 하늘일 리는 없으므로 이것은 대기권의 첫째 하늘과 천체들이 있는 둘째 하늘을 가리킵니다. 사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우주 전체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즉 시간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우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땅 곧 지구를 만드셨습니다. 이 구절은 창조 전체를 하나의 사실로 선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평범하게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를 만드신 것으로 보아도 됩니다.
2 그러자(And) 땅은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그 결과 혹은 그러고 나자(And), 지구는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습니다(상태를 나타내는 ‘was’가 사용됨). 1절의 행위 뒤에 지구가 형태가 없게 되고 비게 된 것이 아닙니다(즉 ‘became’이 아님). 1절의 행위가 있자 지구의 상태는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결코 원래의 지구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타격을 입어 그렇게 되었다는 강박적 상상력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것들이 채워질 것을 설명하기 위해 땅이 비어 있는 상태라는 것으로 단순히 받아들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습니다.
깊음의 표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욥기 등에 있는 대로 이 깊음을 셋째 하늘 초입의 수정 같은 유리 바다의 깊음으로 이해해도 되고 지구의 바다 속의 깊음으로 보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둠이 바다 속부터 셋째 하늘에 이르기까지 온 우주 공간을 덮었다는 점입니다. 이 어둠은 심판의 어둠이 아닙니다. 5절에 있는 것처럼 첫째 날의 시작이 저녁이므로 당연히 이것은 밤의 어둠을 가리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께서는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는데 이 물들은 바로 뒤의 9절에 나오는 물들 즉 땅 덩어리를(land)을 덮고 있는 바다의 물들로 이해하면 됩니다.
3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어둠이 온 우주를 덮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은 아침이 되매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4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그 빛을 좋아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어둠을 부정적인 암시 즉 이전 세상의 반역을 뜻하기 때문에 빛만을 좋아하셨다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여기의 문맥은 그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단순히 첫째 날 밤의 어둠을 말합니다. 이 어둠은 빛이 있으려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어둠이므로 여기 나오는 어둠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 어둠 다음에 아침에 빛이 생겼습니다.
5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었다.
하나님은 어둠을 쫓아내려고 빛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빛과 어둠을 낮과 밤이라 부르셨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어둠은 무슨 심판의 결과가 아닙니다. 아직 해와 달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전 우주적인 빛과 어둠을 사용해서 저녁과 아침으로 구성된 첫째 날을 만드셨을 뿐입니다. 1절부터 5절까지의 모든 일이 첫째 날에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에 하나님이 순서대로 하신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우주 공간과 지구를 창조하셨다.b. 지구는 아직 있을 것들이 없으므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c. 아직 저녁(밤)이므로 어둠이 지구를 포함한 온 우주 공간을 채웠다.d.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되므로 1, 2절은 첫째 날의 밤 12시간이었다.e. 아침이 있어야 하루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아침에 빛을 창조하셨다. f. 어둠 속에 빛이 생기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g. 그래서 첫째 날의 밤과 낮이 생겼다.h. 그런데 아직 우주 공간과 지구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31절을 통해 있어야 할 것들을 만드시고 지구와 우주를 채워서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형태를 갖추게 하셨다.
6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셨다.7 그리고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사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8 그리고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그리고 그 저녁과 아침은 둘째 날이었다.
드디어 하나님은 천체들을 심을 공간인 궁창(firmament) 즉 엄청나게 단단한 공간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주과학자들이 ‘흑암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플랑크 스페이스(Planck space or plenum)라고도 불리며 밀도가 10의 93승(10을 93번 곱한 천문학적 숫자) 정도 되는 공간입니다. 이런 공간 안에서 지구나 태양은 전자 하나만도 못한 크기와 무게를 갖습니다.
http://www.geocentricity.com/geocentricity/ftsrc/ft4.html
하나님께서 이런 궁창은 지으셨지만 궁창에 들어갈 천체들은 아직 창조하지 않으셨으므로 이날은 ‘좋았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 말씀이 없다고 해서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좋았다’고 말할 시점이 아직 아니기에 ‘좋았다’는 말이 없을 뿐입니다.
9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 아래의 물들은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육지는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0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른 육지를 땅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것을 바다들이라 부르셨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우주 공간에 궁창을 만드셨으니 이제는 지구를 조성하셔야 합니다. 첫날 지구를 창조하실 때 땅덩어리(land)는 물들 속에 잠겨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물들을 한 군데로 모으시고 육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잘 알다시피 땅 덩어리는 노아의 홍수 이후 벨렉의 때에 나뉘면서 오대양 육대주를 형성하였습니다(창10:25).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98 그리고 11-12절에서 땅이 풀과 자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자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나무 곧 열매 속에 씨가 있는 나무를 냈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들이 좋았습니다. 그 저녁과 아침이 셋째 날이었습니다.
14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체들이 있어서 밤에서 낮을 나누고 또 그것들은 표적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해(年)들을 나타내라. 15 그리고 그것들은 하늘의 궁창에서 빛이 되어 땅 위에 빛을 주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지구의 형태를 갖추신 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만드시기 위해 16-17절처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궁창 속에 박아 놓으셨습니다. 드디어 궁창에 있을 것들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 날은 넷째 날이었습니다. 이로써 우주 공간을 채워 형태를 갖추는 일은 다 끝났고 지구만 더 채우면 창조의 일이 다 끝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순서를 보면 하늘 땅 하늘 땅의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0-3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대기권에 날짐승들을 만들고 바다의 창조물을 만들고 짐승과 가축과 기는 것 등을 만들고, 드디어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물론 매일 매일 모든 창조 작업이 자신의 뜻대로 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31절에 있는 대로 여섯째 날이 끝났습니다. 이 여섯 날을 통해 하나님은 우주와 지구에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만드시고 채우셔서 그것들이 형태를 갖추게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려고만 하시면 단숨에 우주와 지구를 완벽하게 창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인류를 위한 다른 계획이 있어서 6일 동안 하나하나 만들어 채우셨습니다.
자, 이제 2장을 보겠습니다. 지금은 1장과 2장의 구분이 있지만 원래는 없었습니다.
1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었다.
하나님은 우주 공간의 두 하늘 속의 천체들과 지구의 모든 것들을 이처럼 6일에 걸쳐 하나하나 만드시고 채우셨으며 그 결과 모든 일이 완성되었습니다(끝났습니다).
2 그리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모든 것을 끝내셨으므로 이제 하나님은 일을 떠나 쉬셨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다. 그 이유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안식일을 만드시고 그 날을 복주셨습니다. 하나님이 6일에 걸쳐 이 모든 것을 완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7이라는 숫자로 움직이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안식일, 안식년, 희년, 칠칠절, 일곱 명절 등)을 보여 주시며, 동시에 사람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야 함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막2:27-28).
이런 계획이 없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면 7로 움직이는 구약 성경의 많은 예표들과 지금의 주(week) 시스템 등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째 날 우주와 지구를 빈 채로 만드시고 바로 그날부터 6일에 걸쳐 우주와 지구에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창조해서 채워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2장 4절은 이때를 가리켜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든 때’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만들다’와 ‘창조하다’는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만드시고, 우주와 지구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한 사실을 묘사합니다. 여기에서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1, 2장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정상적이며 바른 방법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And’를 살려서 설명하였습니다. ‘And’를 ‘그리고’ 혹은 ‘그리고 나서’, ‘그 결과’라고 매번 번역하지 않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쓰면 우리말은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습니다. 또한 흠정역이나 개역처럼 권위체로 써도 결과는 동일합니다.
마음의 편견을 버리지 않는 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을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리 특정 교리를 세우고 그 교리의 안경을 통해 성경을 보면 모든 것이 그 틀에 맞게 보이고, 조금만 애매해 보여도 그 안에 자기 교리의 상상력을 가미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다음의 원칙들을 지켜야 합니다.
1. 있는 그대로 보기2. 없는 것을 가감하지 않기3. 모르는 것은 그대로 두기(억지로 풀지 않음) 재창조냐 창조냐 하는 부분은 지엽적으로 볼 수도 있는 문제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매우 기초적이고 중대한 의미를 둘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저는 개 교회의 가르침이나 사역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조 사역에 근거 없이 가감하는 것은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질문하는 많은 분들에게 일일이 따로 설명하지 않고 답변을 이처럼 공개함으로써 믿음의 자유를 가지고 각자 판단할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말씀의 자유로운 행로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과학적, 상식적, 언어 문법적, 성경적 근거를 제시했지만 아직도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재창조가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해 보라고도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에 이미 다 있고, 모르는 부분은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니 우리에게 주신 특별 계시 즉 성경과 일반 계시로 우리가 알아야 할 창조의 사실은 충분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확실히 알 수 없는 것들을 반드시 규명해 내려고 끝가지 애쓰는 것은 믿음이 아니요 집착이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이 글은 어떻게든 특정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려는 분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고, 그런 주장들의 솔깃함에 빠져 혼동을 겪고 있거나 창세기 창조 기사를 쉽게 이해하려는 분들을 위해 쓴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일이 창조(재창조가 아니라)의 시작에 있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안 믿는데 누가 그들을 설득합니까?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막10:6)
이제 우리는 상식적으로 잘 판단해야 합니다. 정말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재창조의 다양한 서적들을 구해서 깊이 연구해보는 것도 막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구하면 할수록 엄청난 모순과 더욱 꼬이는 논리 앞에서 결국 이것이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각자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하더라도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교묘한 주장은 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replenish’라는 단어가 그냥 ‘채우다’는 뜻으로 14세기에 처음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14세기 이후 1611년 당시에 이미 ‘다시 채우다’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하면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글을 올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바르게 알기 위한 선의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각자의 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고 진리로 드러나게 하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열심히 정진하는 성경 신자들이 다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샬롬.
2015-04-21 19:56:4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