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lenish 설명
replenish (ed) - (7x) – 간단히 말해서 이 단어는 어떤 것을 처음 받은 수준대로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의 시작 부분에 있는 ‘re’는 ‘re’라는 접두어를 가진 대부분의 영어 단어들처럼 ‘다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단어의 뿌리는 중세 영어 ‘replenisshen’에서 나오고 이것은 중세 불어인 ‘repleniss’에서 나온다. 이 불어 단어는 ‘replenir’의 가지에서 나왔으며 단순히 “채우다; 사람이나 짐승으로 채우다; 저장하다”를 뜻한다. 이것은 어근 ‘re’와 ‘plenus’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든 라틴어에서 나온 게 아니다.
예레미야 31장 25절에서 replenish는 ‘흡족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satiate’라는 단어와 평행 단어로 쓰였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반복 용례로서 ‘satiate’와 ‘replenish’가 같은 뜻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렘31:25).For I have satiated the weary soul, and I have replenished every sorrowful soul.
한편 에스겔서 26장 2절에서는 ‘replenish’는 ‘피폐하게 되었다’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이것 역시 두 단어의 대조를 보여 주는 히브리어의 용례이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겔26;2). I shall be replenished, [now] she is laid waste:
창세기 1장 28절은 자원들을 사용해서 - 정복하고 복종시켜서 - 처음에 받은 수준으로 땅을 가득 채우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부분이 그분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물 중 어떤 것도 멸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시19; 롬1). 1.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아담과 이브는 많은 아이의 출생을 통해서 스스로 번성해야만 하였다(하나님의 명령이었으니까). 그런데 땅의 경우 그들은 땅의 자원들을 사용하거나 복종시켜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상태로 땅을 가득 채워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동물과 식물의 수를 임의대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다(시19:1-4; 롬1:20). 어떤 생물 종을 없애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도록 하는 것을 -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증거를 - 없애는 것이다.
2. 창세기 9장 1절-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노아는 모든 동물과 식물의 종들을 지켜야 했다. 홍수 이후에는 많은 동물들이 이제 2마리만 남았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이 쉽게 없어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노아는 어떤 종도 사라지지 않도록 채우고 지켜야 했다. 3. 이사야 2장 5-7절- 오 야곱의 집이여,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걷자.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백성 곧 야곱의 집을 버리셨나이다. 그들에게는 동쪽에서 온 것들이 가득하며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쟁이가 되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 가운데서 자신을 기쁘게 하나이다. 그들의 땅에는 또한 은과 금이 가득하여 그들의 보물은 끝이 없고 그들의 땅에는 또한 말이 가득하여 그들의 병거가 끝이 없으며
여기서 이사야는 야곱의 집을 불러 주의 빛 안에서 걸을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에게서가 난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온 것들을 생계 유지 수단으로 받아들였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을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스스로 기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공급하셨고, 히브리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했으나 그들은 낯선 자들의 자손들에 의해 가득 채워졌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가 난 것이 아니라 낯선 자들로부터 난 것들을 가지고 이전처럼 동일한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하였다. 4. 이사야 23장 2절- 섬의 거주민들아, 너희는 잠잠할지어다. 바다를 넘나드는 시돈의 상인들이 너를 가득히 채웠도다.
섬의 거주민들은 그들이 매일 필요로 한 것을 시돈 상인들로부터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생계를 매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려 했다. 5. 예레미야 31장25절-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
여기서 replenish는 ‘충분히 만족시키다’(satiate)와 평행을 이루는 단어로서 그 의미는 혼을 흡족하게 하여 한때 그 혼이 피곤하지 않았던 그 지점으로 완전히 되돌린다는 것(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시편23편...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restoreth) 6. 에스겔 26장 2절-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살렘을 대적하며 말하기를, 아하, 백성들의 문이던 그녀가 부서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 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
여기서 ‘replenish’는 ‘피폐하게 되었다’(laid waste) - 완전히 텅 빈 상태 - 와 대조를 이룬다. 두로는 예루살렘에서 두로 지역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통해 예루살렘의 부의 손실이 이제 자신의 것이 될 것을 자랑하고 있다. 즉 예루살렘의 손실은 두로의 이득이 되어 두로가 원래의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 에스겔 27장 25절- 다시스의 배들이 네 시장에서 너에 대하여 노래하였으며 너는 충만히 채워져서 바다들의 한 가운데서 심히 영화롭게 되었도다.
에스겔은 계속해서 두로에 대한 대언을 한다. 두로는 다시스의 배들을 통해서 자기들의 매일의 필요를 충분히 공급받고 있다고 선언한다.
결론 1) 사람은 스스로 수를 늘려 번성해야 했지만 땅의 식물과 동물들은 처음 받은 상태로 가득 채워야 했다. 이것은 신명기 22장 7절 말씀을 설명한다. 신22:7- 어미 새는 반드시 놓아주고 새끼를 취할지니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네 날들을 길게 하리라. 만약 히브리 사람들이 어미와 새끼를 모두 죽였다면 그 종들은 곧 멸종했을 것이다.
2) 켄달(이 글의 저자, Dr. Bob Kendall)의 식품 저장 방의 예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예가 있다. 나는 3개월 동안 출장 갈 예정이어서 당신에게 우리 집에 와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사용하면 아주 편하게 지낼 것을 요청한다. 내가 식품 저장 방을 열자 거기에는 땅콩버터가 담긴 5개의 병이 있기에 즉시 물어본다. “땅콩버터가 왜 이리 많아요? 혹시 세일했나요? 어째서 당신은 5병이나 가지고 있나요?”
나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건 그냥 켄달 가족의 것이에요. 모두 다 켄달의 것이지요. 내 남동생들(Mr. Kendalls), 내 어머니(Mrs. Kendall), 사촌들(Mr and Mrs. Kendalls)은 식품 저장 방에 5개의 땅콩버터 병을 보관하고 있어요. 그것은 우리 가족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심지어 땅콩버터를 다 먹어도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돌아왔을 때 5개의 땅콩버터 병이 있으면 좋겠어요. 식탁에 이전 수준으로 가득 채워서요. 그래야 내 식품 저장 방이 계속해서 켄달 네 집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또 다른 예시만약 내가 당신을 불러 내 냉장고를 replenish 하라고 부탁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만 할까요? 처음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처음에 냉장고 안에 얼마만큼의 우유가 있었고 몇 개의 버터 조각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결코 냉장고를 replenish 할 수 없습니다. 4) ‘replenish’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기 훨씬 이전에 원래 지구가 있었고 그 안에 동물과 식물이 살았다고 주장하는 이론 - ‘재창조 이론’ 혹은 ‘갭 이론’ - 이 잘못된 가르침임을 보여 줍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가정(재창조이론)이 사실이라 해도 아담과 이브가 이전의 지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땅을 다시 채울 수(re-fill)있겠습니까?
5) 간단히 말해서, ‘replenish’는 당신이 ‘어떤 것을 발견한 수준으로 그것을 충만히 채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과 영어 사전의 용례가 이것을 지지합니다.
(*) 17세기 초 KJB가 기록된 때에 ‘replenish’라는 단어는 현대 사전의 용례처럼 ‘다시 채우다’의 의미로 결코 쓰이지 않았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1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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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15:14:31 | 오광일
샬롬 샬롬.
자세하게 답변해주신 형제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2013-09-10 15:27:30 | 조형래
평안하신지요?
김규태 형제님과 오광일 형제님의 귀한 답변에 조금 덧붙여 보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미 죽어있는 성도들의 영화로운 부활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독하시고
다음의 설교를 들으시면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부활의 모든 것- 정동수 목사님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write_id=401
휴거의 나팔이 울리면 먼저 예수님 안에서 죽었던 성도들이 썩지 아니할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고 당시 살아있는 성도들도 순식간에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됩니다.(고전15:51~54) 즉, 지금 셋째 하늘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혼이 순식간에 살아있을 때 입고 있던 몸이 영화롭게 변화된
부활의 몸을 입게 되고 살아있는 우리의 몸도 순식간에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사망이 승리 가운데 삼켜졌도다.(사25:8, 고전15:54)”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서 죽어 땅에 묻힌 성도들 중 불행한 사고, 전쟁, 화장 등으로
살아 있을 때 입고 있던 몸이 먼지가 되어 흩어진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온 우주 공간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원소들을
녹이시는(벧후3:10)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들의 몸의 흩어진
각각의 원소들을 모으시고 명령하셔서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해서 우리가 입게 될 영화로운 몸에 대해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엠마오 길의 두 제자 앞에 나타나셨다가 홀연히 사라진 사건(눅24:31),
문이 닫힌 다락방의 제자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신 사건(요20:19; 눅24:36-48),
올리브 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눈앞에 승천하신 일 등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대한
성경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제자들이
만질 수 있는 몸(요20:27~28)이었지만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몸이었습니다.
다음의 글들을 읽어 보시는 것도 성도의 부활과 휴거에 대해 이해하시는 것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몸이 있는가(혹은 몸을 입고 있는가)?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63
*부활 개념 정리
https://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904
*마지막 나팔 소리- 레날드 샤우어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412&page=4
*몸의 부활이 있는가, 없는가? (욥 19:25-26)- 김문수 목사님
https://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30&page=11
요즘 답변해 주시는 신실한 형제님들이 함께 있어 성경지킴이가 더욱 훈훈해 졌습니다.
성경지킴이를 오가는 모든 분께 영적 결실이 풍성한
복된 가을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09-10 12:44:17 | 김대용
샬롬! 평안하시지요?
휴거에 대한 참고 자료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027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486
고전15장52절에 보면 "나팔소리(하나님의 나팔소리임- 계시록에 7번째 나팔소리와 다름)가 나매 죽은자들이(몸은 땅에 묻혀있고 영혼은 천국, 즉 셋째 하늘에 있음)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살아 있어서 영혼육을 다 가지고 있는 상태)가 변화 되리니"
썩지 않는 몸= 영에 속한 몸/ 썩는 몸= 본성에 속한 몸(고전15:42-44)
정리해보면,,
그리스도 안에 잠자는 자들은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일어남
그리스도 안에 살아 있는 자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됨
형제님의 질문은 죽은 몸이 어떻게 일어나서 휴거가 되나? 이 부분이 궁금하신거 같은데요.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주님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돌아가신후 몸은 무덤에 있었지만, 혼은 낙원(과거의 낙원은 땅속에 있었음)으로 내려가셨잖아요.
그렇지만 정해진 때에(3일 밤낮후) 순식간(아마 눈깜짝할 사이겠지요)에 혼과 몸이 만나 몸도 영화로운 몸으로 변하시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것을 복음서를 통해 우리가 알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그리스도안에 잠자고 있는 성도들도 순식간에(눈깜짝할 사이에) 영혼과 무덤에 있던 썩은 몸이 영화로운 몸(썩지 아니하는 몸=영에 속한 몸) 으로 변해서 그 셋이 만나서 다시 공중으로 올라올 것입니다. (이 모든일이 정말 순식간에 이뤄질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으로 이해하려면 어려움이 있을것 같네요.
왜냐면 한번 눈을 깜짝 해보세요. 그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아실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공중재림은 비밀리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 답변이 부족했다면..
다른 분들이 추가적으로 잘 설명해 주실 거에요.
평안하세요!
2013-09-10 12:14:31 | 오광일
감사합니다. 흠정역이 바른 진리라고 주님께서 마음에 확신을 주셨기에 흠정역의 참고 자료들은 모두 보고 듣고 연구하고 싶은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여러 형제님들 정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평안을 기원합니다.
2013-09-10 11:55:54 | 김철수
여러 형제님들의 좋은 말씀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한 발 한 발 더 나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지혜가 더욱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3-09-10 11:39:42 | 김철수
[참고]
☛ 부활이란 '죽은 몸, 죽었던 몸, 무덤에 묻힌 몸'이 일어나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 무덤에 묻힌 몸은 그대로 있고 죽은 성도의 영과 혼에 새 몸을 입혀 버린다면 그것은 부활이 아니라 '환생'입니다.
☛ 지금의 우리 몸이 죽은 후 그 죽은 몸, 무덤에 묻혀 있는 그 몸이 부활의 몸이 됩니다.
2013-09-10 09:57:37 | 김규태
샬롬.사이트 자료나 정동수 목사님 강의를 통해 주님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어 너무나 감사드립니다.문득 궁금해 지더라구요.휴거가 일어날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주안에서 산 자들이 일어나잖아요.근데 예수 안에서 죽은 자는천국(지금 주님 계신 곳)에 있고 육은 땅에(무덤) 있는데, 휴거가 일어날 때주 안에서 죽은 이들이 먼저 일어날 때는 어떻게 휴거가 일어나나요?천국에 있는 자들이 새로운 몸으로 휴거를 받는 건가요?질문이 두서 없어 죄송합니다.평안한 밤 되세요.
2013-09-10 04:19:28 | 조형래
임 자매님,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런 열악한 곳에 자매님 부부와 같이 젊고 열정있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지요.
모두 모이면 우리는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바른 성경을 접할 일은 적어지겠지요.
그런 현장의 안타까움을 열정으로 바꾸어 더 힘있게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니 낙심하지 마시고요~.
2013-09-08 00:54:10 | 김재욱
성경 보존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식이 아닌 믿음의 문제이듯이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믿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기 때문에
돌이키는 것은 절대 지식의 전달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완강한 상대와의
토론은 서로 간에 피로감만 느끼게 합니다.
체언과 용언에 속하는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등은 물론이요
수식언과 관계언에 속하는 부사와 조사 등이 바뀌어도 중대한 교리가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힐 수 있는 책이 성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역본을 비교해 가며 자기에게 최선의 것으로 선택하면 된다.'는
말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하는 초등학생조차 설득시키지 못할 비이성적인 주장입니다.
김규태 형제님의 담대한 다음의 글도 이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133&page=2
부디 마음에 평안을 가지시고 들을 귀가 준비된 많은 사람에게
배우고 확신한바 진리를 전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시길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2013-09-07 20:49:51 | 김대용
위에 잘 설명해 놓으셨네요...
차근차근 읽어보시면 문장구조가 이해 되실겁니다...
굳이 후반절을 풀어서 쓰자면 하나님의 신비, 아버지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를 인지하는데 이르게 하려함이라...
2013-09-07 20:45:51 | 유해용
어제 시중에 나온 모 큐티집으로 큐티모임을 인도하시는 분께 킹제임스성경을 전하다가 오랜 논쟁끝에 평행선만 긋고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지금 현제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은 없기 때문에 여러 역본을 비교해 가며 자신에게 최선의 것으로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하시고 또 그렇게 해 오고 계세요.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보다는
그 뜻이 통하면 된다, 말씀 한 구절을 읽어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는 각 사람이 다 다르므로
내가 어떻게 그것을 적용하고 실천하는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네. 말씀 묵상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 각사람에게 다 딴말씀을 하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좋은대로 해석하고 적용해도 되는 걸까요?
요즘 교회 내에 흔히 유행처럼 번져있는 큐티의 형태(큐티집이 참고서)는 문제가 있습니다.
큐티집 해설부분이나 적용부분을 보면 성경적이지 않은 내용들도 많이 보이고요.
온전히 보존된 성경은 없다고 이미 확신하고 계신 분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형제님 글 크게 공감하며 잘 보았습니다.
2013-09-07 19:10:46 | 임미정
안녕하세요?
조직신학 02 노트도 조직신학 01 노트 PDF 파일에 같이 연속해서 들어 있습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286
참조하세요.
샬롬
2013-09-07 16:14:35 | 관리자
QT 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기본자세에 대해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다뤄주는 사람이 없어서 많은 분들이 혼란을 겪는 거 같습니다.
주변에 알려지기를 ...
2013-09-07 09:46:26 | 오혜미
오광일 형제님 친절한 답변에 저 또한 감사합니다.
더욱 세심한 답변이라 여겨져 제 답은 삭제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자주 좋은 답변으로 성경지킴이와 사랑침례교회 홈피에서 뵙기 원합니다.
샬롬!
2013-09-07 03:23:14 | 김대용
샬롬! 두번째 뵙네요^^ 평안하시지요??
저는 관점을 좀 달리 하여...
신비(the mystery)에 의미를 잘 이해 하시면 질문하신 내용도 어느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성경에는 신비(개역성경에서는 비밀로 번역함)에 대해서 대략10가지 정도 언급합니다.
그중에 질문하신 골로새서2:2 말씀은 바로 앞에 있는 골로새서1장27절과 함께 교회의 신비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은밀히 간직되어 왔으나(롬16:25)...이제는 자신의 자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이 신비를 계시하셨습니다.(엡3:5)
이 신비는 곧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 (엡3:6)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골1:18) 모든 성도들이 그분의 몸 =지체가 되며(고전12:12-13) 지체들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엡3:6; 골1:26-27; 엡2:14-15)
2. 그러면 질문하신 골2:2를 앞뒤 문맥을 살펴보며 자세히 읽어보겠습니다.
골2:1에 보면 사도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를
알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 이 당시 골로새는 부루기아의 평범한 도시였는데 에바브라가 이곳에서 목회사역을 하면서 골로새 교회 평판이 좋았습니다.(골1:1-8) 그런데 그 교회내에 잘못된 가르침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잘못된 교리들(이를 테면, 철학,할례, 신비주의, 천사숭배, 금욕구원 등등)과 싸움을 하고 있는 심정을 가지고 바울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특별히 골2장은 그런 잘못된 가르침을 말하는 자들을 주의 할 것을 경고하는 메세지가 강합니다.
-골2:2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좀 알았으면 하고 바랬던 내용은) 복음으로 마음의 참 위로를 받고+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함께 결합하고+ 그런 복음의 위로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일을 통해 오는 충만한 확신을 갖는데 이르며+...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신비를 인지하는데 까지 이르기게 하려고 바울이 이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3. 영어문장 구조 상 병렬 구조로 본다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우리의 참 아버지가 누구 이신지?(요17:3)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신비로 주신 것이 무엇인지?(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시는 몸된 교회이죠^^)를 깨닫고 그 길로 나아가길 원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4. 굳이 병렬구조로 안본다면...
물론 이 구절을 굳이 병렬구조로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아버지=예수 그리스도 모두 동일하신 한 하나님이시니까요^^
서두에 말씀 드렸다 싶이 교회는 하나님(=아버지=예수 그리스도=성령님)께서 세상의 창건 이후로 신비속에 감춰 주셨다가 하나님의 시간표 상에서 아름다운 때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결론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그분의 신비속에 살아가게 하시고
온전하게 보존해 주신 말씀을 통해서 참된 교회를 이뤄가게 하신 영광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부족한 답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09-07 01:51:33 | 오광일
성경은 삼위일체의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참고]
(엡 4:6)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 우리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골 3:11) (거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바바리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시느니라.)
→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전 6:19)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참고]
(롬 8:9)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① [하나님]의 [영] → 아버지 하나님
② 성령 → 성령 하나님
③ 그리스도의 [영] → 예수님
이와 같이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2013-09-07 01:28:05 | 김규태
of God(하나님-성령님), and of the Father(아버지-여호와), and of Christ(그리스도-예수님)
삼위일체의 신비(mystery)는 성도들이 인지해야 하는 진리의 지식입니다.
★ 결론
①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는 주 예수님을 시인(인정)하자.
② 그리스도 예수님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으므로 우리가 찾고 공부해서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알자.
2013-09-07 01:09:41 | 김규태
구약은 아직 없습니다. 차차 제작할 계획입니다.
현재 있는 신약도 400주년 기념판은 아니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09-06 22:41:51 | 관리자
진리를 말하고 바르게 가지 않는 것을 바른 길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 정말로 사랑하는 거라는 걸 요즘 연습하고 있습니다.
상대방, 가족과 소원해지는 걸 감수하면서라도 옳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족한 점은 다 봐줄테니) 좁은 길로 함께 할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린다는 따뜻한 눈길을 더 많이 보냅니다. 그리고 저는.. 말씀으로 위로받습니다.
2013-09-06 20:16:53 | 목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