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광무 형제님 감사합니다. ^^
2013-04-12 21:29:48 | 김명수
김문수 형제님께 질문합니다. ^^
특강자료 5페이즈를 보시면
사람이 죽으면,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감
혼은 낙원이나 지옥에 들어감
몸은 흙으로 돌아감
그렇다면, 불신자가 죽었을 때
그의 영은 하나님께로 가고, 혼은 지옥으로 가고, 몸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영이 하나님께로 가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불신자의 영과 혼이 독립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같습니다. ^^;
부탁합니다.
2013-04-12 21:11:22 | 김명수
아~ 정말 제가 keepbible.com에서 성도님들과 함께 교제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감사 감사 ^^
2013-04-12 12:49:22 | 김명수
영, 혼, 몸에 대한 특강 자료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149
2013-04-11 17:13:46 | 김문수
링크를 참조 하세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98
2013-04-11 14:37:11 | 허광무
혼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280
영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2395
영, 혼, 몸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과 성경비교분석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315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319
2013-04-11 14:13:34 | 허광무
아래 글을 참고 하시지요.
왠만한건 찾으면 거의 다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170
2013-04-11 14:03:10 | 허광무
다시 성경 관련 질문을 드립니다.
이 내용도 금일 성경을 읽으면서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 19절
킹제임스 흠정역 경우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에 있는 자기들의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자기 아내 한나를 알매 {주}께서 그녀를 기억하시니라."
개역개정의 경우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성경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동침하는 것을 "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에서는 그냥 동침한다라고 표현을 하면 될텐데
굳이 "안다"라고 표현했어야 했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시 부탁합니다. ^^
이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단어와 문맥을 킹제임스 흠정역으로 바꾼 이후로 짚어보게 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11 16:38: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11 12:45:45 | 김명수
오늘 사무엘상 1장을 읽으면서 "영"과 "혼"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성도님들께 문의합니다.
어떤 말씀이냐면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영이 슬픈 여자이니이다.
내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다만 내 혼을 쏟아 놓았을 뿐이오니"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영, 혼, 육으로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한 문장에서 "영"과 "혼"이 나왔을 때에
솔직히 명확하게 의미가 구분이 되지가 않습니다.
문맥상으로는 그냥 혼용해서 써도 될 것같기도 하구요
성도님들의 도움 부탁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11 16:38: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11 12:37:48 | 김명수
안녕하세요?말씀하신 어둠이 꼭 창세기 1장의 어둠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밤을 만드셨으므로 당연히 어둠을 창조했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재창조/간극 이론/갭 이론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시기 바랍니다.http://keepbible.com/BQNA01/View/4G9 재창조를 주장하는 분들 중에는 아주 독실한 형제님들이 많습니다. 또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자료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저는 보통 그런 분들에게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보여 줍니다.마가복음 10장 6-8절을 보기 바랍니다.6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7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8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그런즉 이와 같이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하나님께서는 재창조가 아니라 창조의 시작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아담과 이브는 재창조 사역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 사역의 산물입니다.저는 이렇게 믿고 가르칩니다.하지만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므로 더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참조하시기 바랍니다.샬롬(*) 앞으로는 질문하기 전에 우측 상단의 게시글 검색에서 먼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꼭 부탁드립니다.(**) 특히 십일조/헌금, 재창조 등은 성경 신자들 간에도 의견이 다른 주제입니다.가능한 한 이 사이트에서는 이런 글로 논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목사이고 저희 교회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므로 저와 저의 교회가 믿는 바를 기술하였을 뿐입니다.
2013-04-09 14:48: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 경우도 아주 특이한 상황이며 따라서 이것은 보편적인 사례가 될 수 없습니다.
현재 영매들이 누군가를 불러낸다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마귀들의 장난입니다.
소위 귀신을 쫓는다는 목사들이 할아버지 귀신, 처녀 귀신을 쫓는다고 하면서 축사하면 상대방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마치 할아버지나 처녀 목소리를 내는데 이것은 목사와 성도들이 한 방에 마귀들의 농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귀신은 없습니다. 다만 마귀 들린 목사/영매들을 마귀들이 농간하는 것이고 이로써 애꿎은 성도들만 걸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사실은 영매가 사무엘을 불러낸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눈에는 영매가 무엇을 한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단 한 번 직접 이런 일에 개입하셔서
사울에게 또 다시 마지막 경고를 주고 회개하라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런 특별 사례를 들어 보편적인 교리를 세우면 매우 위험하지요.
발람의 나귀가 영이 있어서 하나님이 하라고 할 때 단 한 번 말을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추구하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늘 기적을 베풀지 않고 보편적인 섭리로 인도하시면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모두가 원하는 대로 기적이 일어나면 - 즉 누구나 영매를 통해 지하 세계에서 원하는 사람을 막 불러올리면 - 지구는 금세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일에서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히11:6).
믿음은 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고후5:7).
이 믿음은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항상 100% 말씀을 들음을 통해 옵니다.
찬송이나 음악을 통해서는 절대 사람이 구원받거나 성화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이런 기사를 통해 영매/강신술 등에 심취하면 마귀에게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사실 늘 마귀(귀신) 마귀(귀신) 하며 쫓아내야 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마귀가 잘 달라붙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기원합니다.
2013-04-09 14:35:45 | 관리자
'사울왕이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한 성실하신 답변에 감사 드리며,
사울왕과 관련된 사건에 대하여 질문 드립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초조해진 사울왕은 영매를 찾아서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삼상 28장)
이 부분에 대하여 여러가지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의문가는 부분이 무당이나 영매가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올 수 있는냐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실제 영을 불러왔다면, 지금도 무당들이 죽은 사람의 영( 지옥에 있거나 천국에 있는)을 불러 올 수 있고,
그들과 대화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상황이 됩니다.
영매가 불러냈다고 하나님이 금지하신 영매의 요청에 사무엘의 영이 이에 순응하여 나타났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무당이 천국이나 지옥에 있는 영을 불러내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요?
감사합니다.
* 추신 : 성경QA에서는 글쓰기 권한이 없어서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09 14:50:4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09 13:05:45 | 최병철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04&cate_name=%EC%B0%BD%EC%84%B8%EA%B8%B0
성경 Q/A에 있는 위의 글, 창1:2에 등장하는 어둠에 관련된 사항인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두가지 질문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바쁘시지만 답변해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도 이걸 많이 고민하다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어둠을
창조하셨다는 관련구절을 얼마전에 찾게 되었습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사45:7)
위 구절을 근거로 볼때 하나님께서 1절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때
어둠도 같이 창조하셨다고 봐도 되는지요?
왜냐면 1절에서 물들을 창조하셨다는 언급은 없는데 2절에 보면
물들이 등장하는 걸로 봐서 어둠도 같은 케이스로 위의 사45:7절에
근거하여 1절에서 창조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재창조설을 (간극이론 - Gap Theory) 반박하는 내용으로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and' 라는 접속사가 있으므로 계속적인
연속선상의 사건들이며 2절에서 'the earth' 라는 정관사가 붙은 땅이
언급되는데 이것은 1절의 땅을 2절에서 언급할때 정관사의 용법 즉,
1절에 언급된 earth를 계속해서 동일하게 언급할때
그 다음부터는 the earth (그 땅)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1절과 2절의 땅은 동일한 것이다
제가 이런식으로 간극론자들과 대화할때 그 주장을 반박을 하는데요
제 주장이 맞는 건가요? 간극론자의 특징은 늘 그러하듯이 킹제임스성경의
번역부터 오역이라고 무시한뒤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할수 있는 몇가지
단어들을 원어로 이야기하면서 이상하게 파자하고 해석하고..뭐 이런식으로 합니다만,
위의 반박이 옳은지 잘못되었는지 한번 검증 부탁드립니다
(제가 영어실력이 완전 바닥이여서요, 이렇게 봐도 되는지 늘 궁금했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09 14:50:4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09 07:35:25 | 이성일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어느 분이 여기에 나오는 어둠은 어둠이 언제 생겼는지 몰라서
너무 너무 고민이 된다고 하기에 간단하게 글을 씁니다.
하나님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만 만든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하늘과 땅과 빛을 만드셨습니다(1-5절).
1절의 하늘은 2장 1절에서 보듯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망라하는 유대인들의 우주 공간을 나타내는 하늘입니다.하나님은 첫째 날에 우주 공간과 지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날 만들어진 우주 공간과 지구는 2절에 있듯이 ‘아직 형태가 없고 비어 있고 어둠에 가득 덮여 있었습니다.’
간혹 어떤 분들이 주장하듯이 원래의 창조 세상이 있었고 거기에 Pre-Adamic race(아담 이전의 어떤 종족)가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 무슨 변고 - 대개 루시퍼의 반역이라고 함 - 가 일어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고 그 결과 땅이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의 어둠은 아직 3-4절에서 하나님이 빛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그때 생긴 것입니다.
즉 첫째 날의 첫 부분에는 땅과 온 우주 공간이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빛을 만들자 땅과 우주 공간에 빛과 어둠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절은 그 날에 저녁(어둠이 있는 시간의 시작)과 아침(빛이 있는 시간의 시작)이 있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렇게 첫째 날이 끝난 뒤에 하나님은 나머지 5일을 사용하셔서
첫째 날에 이미 창조하신 땅과 온 우주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셨고 이로써 ‘형태가 없고 비어 있던’ 우주 공간과 지구를 원하시는 대로 단장하셨습니다.
이렇게 단장하는 일이 총 6일간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 창조’라고 합니다.
이렇게 24시간의 하루를 6일 동안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단장한 지구는
불신자나 진화론자들이 보았을 때 수백억 년이 된 것처럼 보이는 지구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 주스로 만드신 것과 비슷합니다.
그분은 순식간에 포도 주스를 만들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그 주스가 적어도 1년의 성장 과정을 거쳐 포도즙 틀에서 나온 포도즙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일이 믿기지 않습니다.
바닷가의 이끼가 묻은 저 바위들, 그랜드캐니언의 계곡들을 보면서
이들은 수십억 년의 생성 과정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아담의 창조 이후로 6,000년,
노아의 홍수 이후로 단지 4,300년 정도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고전1:18-3118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을 쓸모없게 만들리라, 하였으니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24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31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제안을 드립니다.
앞으로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대로
문자 그대로 문맥을 보면서 단순하게 읽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 년을 집어넣지 마세요.
또 그때의 하루는 수십억 년이라고 믿지 마세요.
그냥 단순하게 읽어보세요.
처음 성경을 접하는 사람이 국어 시간에 배운 방식으로 단순한 역사책을 읽을 때의 심정으로 읽으면
누구나 다 동일한 결론에 다다를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간단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창세기 1장의 어둠은 첫째 날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 자연히 존재한 것입니다.
아, 타이핑을 잘 치면 얼마나 좋을까요!
샬롬
2013-04-08 18:26:02 | 관리자
간단하게 답을 드립니다.
저는 성경에 따라 사울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리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삼상28에 있습니다.
사무엘이 땅에서 올라와 19절에서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또한 {주}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주}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라, 하매”
즉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죽어서 사무엘이 있는 곳에 갔습니다.
그곳은 어디일까요?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죽으면 땅 속의 지하세계(넓은 의미의 지옥)로 갔습니다.
의인들은 지하세계의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고 악인들은 불구덩이(좁은 의미의 지옥)로 갔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보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비유가 아니라 실화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싸움에 져서 그의 아들들과 함께 구원받은 사무엘이 있던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입니다.
그는 땅 속에서 올라옵니다.
죽은 뒤 그의 거처가 땅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살했습니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자살하면 구원을 잃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한번 구원을 받으면 신약이나 구약이나 영원히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와 다릅니다.
그에게는 꼭 가야 할 처소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가 이 사역과 사도직을 맡게 하옵소서.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려고 죄를 지음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 하고”(행1:25)
유다는 마귀의 아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를 보기 바랍니다.
다윗이 하프를 켜서 악령을 내쫓았다는 것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단 음악이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침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록 이나 랩 음악 같은 음악은 마귀의 음악으로 사람을 쓰러뜨립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그런 음악을 하면 안 됩니다.
은사운동 하면서 사람을 쓰러뜨리는 데는 다 마귀의 음악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대적할 때 마귀의 영향에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나니야와 삽비라처럼 성령님을 속이다가 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처럼 주의 만찬을 업신여기다가 심지어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사울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실 사울의 경우는 여전히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회개하라고 징계를 주시며 심지어 다윗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가 떠나기도 합니다. 신약시대와 다릅니다.
삼손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히11:32).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거역하자 그분께서 그를 떠나셨습니다(삿16:20). 그리고 그가 간절히 기도하자 다시 그분께서 그와 함께하셨습니다(삿16:28).
다윗도 간음과 살인죄를 지은 이후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지 말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나를 주의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이런 구절을 가지고 복음 성가를 만들어 노래하면 안 됩니다.
신약시대에는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사울에게 임한 악한 영은 하나님에 의해 내쫓겼으며 다윗의 음악 자체가 내쫓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음악 없이도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일은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 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교리에서 우리는 항상 성경 전체를 보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이 사례를 빼고는 성경 어디에도 음악으로 악령을 내쫓은 일이 없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일을 가지고 비약해서 교리를 만들면 안 됩니다.
민수기에 보면 발람의 나귀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 이전이나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런 사례와 비슷합니다.
성경을 잘 나누어 보기 바랍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5)
구원을 잃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고 이로 인해 고민하는 분들이 많기에 짧게 적었습니다.
구원을 잃는다고 믿는 분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며 특히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한번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면(born) 무슨 죄를 지어도 그 사람은 영원히 그 어머니의 자식입니다. 사람의 출생도 이런데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서(born again) 그분의 아들이 되는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로마서 8장 31-39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31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33 누가 무슨 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아니라. 이 모든 것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이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끝으로 지구와 온 우주 공간에는 귀신이 없습니다.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마귀들만 있습니다.
귀신은 샤머니즘에서 상상의 세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샬롬
2013-04-08 17:48:53 | 관리자
정동수 목사님의 구원론을 들었습니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구원받은 자의 자유와 죄에서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 의문점은 '사울왕도 구원받았다'라는 부분입니다.
사울왕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방황하며 고통을 겪다가 비참하게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귀신들려서 많은 고생을 하였고, 다윗이 음악을 연주할 때 귀신이 물러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4절에 보면, 주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 대신 악한 영이 그를 괴롭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악령에게 사로잡혀서 고통받을 수 있는지가 의문이 갑니다. 구원받은 자가 끝까지
주님께 돌아오지 않고 자살을 택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 생깁니다.
가롯 유다도 에수님의 제자로 택함 받고 예수님과 동행하다가 악한 영이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결국에는
회개하지 않고 번민하며 괴로와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패턴이 사울과 너무 유사해서 사울왕의 구원에
의문이 들어갑니다.
이와 연관하여 추가질문 드리면,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이 음악으로 악령을 떠나게 하는 상황이 나오는데(삼상 16장 23
절), 이를 논리적으로 발전시키면 찬송으로도 악령을 떠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병철 배상[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08 17:5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07 12:49:17 | 최병철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하여
요즘 저희 사이트를 찾는 분이 많습니다.교회를 방문하는 분도 많습니다.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우리의 가르침 중에서 어떤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지 물어보았습니다.그랬더니 여러 성도님들이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이 문제로 도발성 이메일을 제게 보내오곤 합니다. 내용은 “목사님의 해석은 우리 교회의 믿음과 전통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비틀어서 해석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결합하여 거인을 생산해 낼 수 있느냐?”
여러 사람들이 이로 인해 의문을 제기하기에 오늘은 간단하게 답을 올리려고 합니다.
“천사와 UFO 바로 알기” 책에서 레이시 목사님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뒤져가며 이 문제에 대해 깨끗하게 정리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못 믿겠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이미 마음속에서 그렇게 믿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교단의 가르침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역 성경의 여러 부분이 애매하게 번역되어 참 뜻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6장은 구약시대 유대인들이 1차 수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모세오경)에 관한 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믿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물론 구약성경이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지만 유대인 역사가들이나 성경 이외의 그들의 작품이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때로 필요합니다.
유대인 역사가 중에서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아마 요세푸스일 것입니다. 신학교에 가면 누구라도 요세푸스에 대해 조금은 배울 것입니다.
위키 백과사전은 요세푸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틴어: Flavius Josephus 플라위우스 요세푸스, 고대 그리스어: Φλάβιος Ιώσηπος 플라비오스 이오세포스, 기원후 37년 경 ~ 100년 경)는 1세기 제정(帝政) 로마 시대의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다. 기원후 66년에 발발한 유다이아 전쟁에서 유대군을 지휘하여 로마군에 맞섰으나,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투항하여 정보를 제공해 주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 시민이 되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는 이름은 새로 로마 시민이 된 이들에게 적용되는 관례에 따라 보호자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가문을 이름을 따 '플라비우스'를 가문이름(nomen)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티투스의 막료로서 예루살렘 함락의 순간을 모두 지켜보았으며, 훗날 이 전말을 《유대 전쟁사》라는 책으로 남겼다.
위키 백과:http://ko.wikipedia.org/wiki/%ED%94%8C%EB%9D%BC%EB%B9%84%EC%9A%B0%EC%8A%A4_%EC%9A%94%EC%84%B8%ED%91%B8%EC%8A%A4
요세푸스의 글은 구약 시대의 역사를 보여 주는 데 매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늘 참고하는 고전입니다. 유대인들의 문화 등에 대해서는 에더샤임이라는 랍비의 글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것은 한 마디로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기술해 놓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창조부터 시작해서 구약 시대의 중요 사건들이 다 언급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통파 유대인들이 이런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의 견해가 다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과거를 담은 구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이런 글을 통해 살펴볼 수 있으니 참조하면 좋습니다.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기사는 “유대고대사”의 1권 3장에 나옵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Antiquities of the JewsTranslated by William WhistonBOOK I-------------------------CHAPTER 3.CONCERNING THE FLOOD; AND AFTER WHAT MANNER NOAH WAS SAVED IN AN ARK, WITH HIS KINDRED, AND AFTERWARDS DWELT IN THE PLAIN OF SHINAR,1. NOW this posterity of Seth continued to esteem God as the Lord of the universe, and to have an entire regard to virtue, for seven generations; but in process of time they were perverted, and forsook the practices of their forefathers; and did neither pay those honors to God which were appointed them, nor had they any concern to do justice towards men. But for what degree of zeal they had formerly shown for virtue, they now showed by their actions a double degree of wickedness, whereby they made God to be their enemy. For many angels11 of God accompanied with women, and begat sons that proved unjust, and despisers of all that was good, on account of the confidence they had in their own strength; for the tradition is, that these men did what resembled the acts of those whom the Grecians call giants. But Noah was very uneasy at what they did; and being displeased at their conduct, persuaded them to change their dispositions and their acts for the better: but seeing they did not yield to him, but were slaves to their wicked pleasures, he was afraid they would kill him, together with his wife and children, and those they had married; so he departed out of that land.
밑줄 친 부분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천사들이 여자들과 함께하며 불의한 아들들 곧 선한 것을 멸시하는 자들을 낳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들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에 따르면 이 남자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거인이라고 부른 자들의 행위와 비슷한 일을 행하였다.”
각주 11. This notion, that the fallen angels were, in some sense, the fathers of the old giants, was the constant opinion of antiquity.
각주 11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이 어느 면에서 과거의 거인들이었다는 개념은 고대로부터 꾸준히 내려온 의견이었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는 이미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하였는데 내용이 방대하여 여러 권으로 나왔습니다. 다음을 보시면 창세기 6장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유대고대사 1).
요세푸스 1 유대고대사, 생명의 말씀사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5740
책 소개: 이 책은 그리스도 탄생 전후 유대인 역사를 알려주는 유일한 역사서로 예수님 탄생 이전 시대와 기독교 1세기 동안 일어났던 팔레스틴과 디아스포라를 설명해 주는 한편 요세푸스의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이 실려있다. 1권은 유대 고대사(창세기부터 고레스 원년까지), 2권 유대 고대사(고레스부터 로마총독 플로루스까지의 기록), 3권 유대 전쟁사(예루살렘 함락사), 4권 요세푸스의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으로 엮여 있다.
유대인들의 이런 증언들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는 것을 확고히 지지해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 과한 역사적 사실들은 Bryan Huie가 지은 다음의 글에서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http://www.herealittletherealittle.net/index.cfm?page_name=Genesis-6-Sons-of-God
그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 당시의 역사였던 요세푸스가 정통파 유대인들이 거인 종족을 믿었음을 보여 준다.2. 역시 1세기 유대인 역사가인 필로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3. 에녹서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4. ‘주빌리의 책’(Book of Jubilees)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5. 주후 2세기에 살았던 저스틴 마터(순교자 저스틴)도 Second Apology 5장에서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6. 주후 240년경에 살았던 북아프리카의 주교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7. 베드로후서 2장 4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8.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는 모든 구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창6; 신32:8; 욥1:6; 2:1; 38:4; 시29:1; 89:5). 9. 유명한 성경학자인 벌링거(Bullinger) 역시 그의 Companion Bible에서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10. 유다서 6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11. 야세르의 책의 4:18은 심지어 짐승들도 혼합되어 하이브리드 종류가 나온 것을 보여 준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짐승을 모두 물로 심판하셨다(창6:7).12.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1장 7절 역시 이를 지지한다.
이런 증언을 통해 우리는 구약시대 유대인들과 주후 300년 이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들’이라는 견해를 초지일관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언제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이에 대한 연구는 참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 줍니다.
연구를 위해 구글에서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이라는 검색어로 문서들을 찾아보니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 The older view, held nearly unanimously by ancient writers prior to Augustine of Hippo, is that the Nephilim were a hybrid race between certain fallen angels, called the Benei Ha'Elohim ("Sons of God") or The Watchers in extra-Biblical traditions, and human women.
해석: 어거스틴 이전에 고대 작가들이 만장일치로 지지하던 견해는 창세기 6장의 네피림(거인)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는 타락한 천사들 - 외경에서는 이들을 순찰자라고 부름 -과 사람들의 여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 종족이라는 것이다.
(2) Early Christianity Conservative interpretations of the "sons of God" view them as descendants of Seth. Saint Augustine subscribed to this view, based on the orations of Julius Africanus, in his book City of God which refer to the "sons of God" as being descendants of Seth (or Sethites), the pure line of Adam. The "daughters of men" are viewed as the descendants of Cain (or Cainites).
해석: 초기 - 여기의 초기는 어거스틴 당시로 주후 350년 이후를 뜻함 -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후손으로 보았다. 어거스틴은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의 연설에 의거하여 자신의 책 ‘하나님의 도시’(신국)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순수한 혈통을 가진 셋의 후손들로, 사람들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으로 정의하였다.
역사는 매우 분명하게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에서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바꾼 장본인이 바로 어거스틴임을 보여 줍니다. 잘 알다시피 어거스틴은 성경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천주교회를 위해 연옥 교리를 만들고 영혼의 자유를 지키려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며 교회가 곧 왕국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인물입니다. 그는 구약의 이스라엘(유대인)을 신약의 교회가 대체함으로써 천년왕국 같은 실제적인 왕국은 이 땅에 없다고 주장하는 무천년주의를 도입하고 확립한 인물입니다. 비록 그가 천주교회의 성인의 반열에 올라 ‘성 어거스틴’이라 불리지만 성경 신자들은 천주교회의 성인들이란 한결같이 ‘믿음+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므로 성경적으로는 ‘다른 복음, 저주받은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요.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에 힘입어 천주교회는 그 뒤로 무려 1000년 이상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유대인과 성경 신자 말살 정책을 펴나갔습니다. 이것을 역사는 ‘반셈족주의’(Anti-Semitism)라고 부릅니다. 천주교회는 유대인 자체를 말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도 말살하려 했고 바로 이런 시도 중의 하나가 자신들의 왕국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의 개념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에 이르기까지 1000년 이상 유대인과 성경 신자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카톨릭 주의의 무지와 미신에 갇혀 살게 되었고 이에 역사는 이 시기를 중세 암흑시기라고 부릅니다. 천주교회는 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고 이에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십자군 전쟁도 일으켰습니다. 이런 비성경적 카톨릭 주의와 반셈족주의의 기반을 놓아 준 인물이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이러다가 1517년에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1535년경부터 프랑스 출신의 칼빈(칼뱅)이라는 또 다른 어거스틴 주의자가 일어나 스위스 제네바에 신정정치국가를 세우면서 장로교라는 교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장로교회의 칼빈주의는 그 원천이 어거스틴에게서 나왔으므로 엄밀하게는 어거스틴주의라고 불려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장로교회들은 불신자였던 어거스틴을 매우 신봉합니다. 따라서 장로교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 역시 유대인 말살과 성경 신자 배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칼빈도 어거스틴처럼 자기의 믿음을 반대하던 자들을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숙청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자들은 당연히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후손’이라는 가르침을 전파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세 청교도들과 경건한 주석을 지은 매튜 헨리, 반즈, 미국의 대각성을 이끈 조나단 에드워드 등의 구약성경 관련 글을 읽으면 내용이 한결같이 이스라엘 대체 혹은 배격 신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글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제나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되고 맙니다. 이들의 근원은 어거스틴이므로 이들의 글은 언제나 거기서 멈추고 결코 성경 자체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사실 천주교회와 동일하게 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주장하며 무천년주의를 펴는 칼빈주의는 1948년 5월에 가나안 땅에 저 이스라엘이 세워짐으로써 이미 종말을 고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장로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칼빈이나 어거스틴 같은 사람들의 전통과 가르침을 더 중히 여기는 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개혁 신학이라는 미명 하에 사람의 철학과 속임수로 많은 사람을 진리에서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철저한 칼빈주의자라고 한다면 그는 결국 ‘믿음 + 행위’ 구원(Lordship salvation)을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뿌리가 그렇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감리교 등과 같이 천주교회에서 나온 다른 개신교(Protestants)들도 천주교회 교리들의 대부분을 그대로 안고 나왔으므로 어쩔 수 없이 천주교회처럼 유대인들의 귀환과 천년왕국의 확립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언과 관련된 성경을 거의 다 영해(靈解)합니다. 그 결과 창세기 6장도 이런 차원에서 영해가 되어 타락한 천사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둔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어떤 견해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이요. 교회는 교회이지 이 둘이 혼합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동에 있는 저 이스라엘이 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영원토록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할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재림하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의 때가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주님의 재림의 때는 다니엘서 2장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다니엘은 예수님의 재림 바로 전에 있을 넷째 왕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0 넷째 왕국은 쇠같이 강하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산산조각 내며 정복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부수는 쇠같이 그 왕국이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고 상하게 하리이다. 41 왕께서 그 두 발과 발가락들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이 나누일 것이로되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에 쇠의 강함이 있으리이다. 42 그 두 발의 발가락들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 것 같이 그 왕국도 얼마는 강하되 얼마는 부서질 것이며 43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터이나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43절에 보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문맥을 따라 읽으면 그들은 자연히 사람들의 씨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나 롯의 때에 자기를 사람들의 씨와 섞으려 했던 존재들이 누구일까요? 성경이 답을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개역성경은 여기서도 전혀 다른 번역으로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개역성경 43절: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헨리 모리스는 20세기에 미국에서 창조 과학을 확립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공학 박사입니다. 창조 문제에 관한 한, 창세기에 관한 한 이분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리스는 생전에 “창세기 기록”이라는 매우 두꺼운 창세기 주석을 썼습니다.거기에서 그는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헨리 모리스의 창세기 기록In The Genesis Record, Henry Morris states:
The only obvious and natural meaning without such clarification is that these beings were sons of God, rather than of men, because they had been created, not born. Such a description, of course, would apply only to Adam (Luke 3:38) and to the angels, whom God had directly created (Psalm 148:2, 5; Psalm 104:4; Colossians 1:16). The actual phrase bene elohim is used three other times, all in the very ancient book of Job (1:6; 2:1; 38:7). There is no doubt at all that, in these passages, the meaning applies exclusively to the angels. A very similar form (bar elohim) is used in Daniel 3:25, and also refers either to an angel or to a theophany. The term sons of the mighty (bene elim) is used in Psalm 29:1 and also Psalm 89:6, and again refers to angels. Thus, there seems no reasonable doubt that, in so far as the language itself is concerned, the intent of the writer was to convey the thought of angels - fallen angels, no doubt, since they were acting in opposition to God's will.
해석: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조에 의해(created) 존재한 자들이며 사람에게서 태어난(born) 자들이 아니다. ‘강력한 자의 아들들’ 같은 표현도 역시 천사들을 가리킨다. 창세기 기자의 의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한 타락한 천사들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성경의 명백한 진리를 순리적으로 분명하게 보여 줘도 이미 믿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굳게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득 노력이 아무 효과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과 칼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장로교는 장자 교단이다!” 하고 콧노래를 부르는데 여기에 무슨 진리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유혹되어 넘어가는 순진한 성도들만 불쌍하지요.
우리는 단호하게 이런 사람들의 헛된 전통과 교리를 부인합니다.
오직 우리는 성경이 평범하게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완전한 성경이 우리 손에 있음과 그 성경을 성경으로 풀 때 하나님의 진리가 단순하게 우리에게 전달됨을 믿을 뿐입니다.
이렇게 보존된 성경으로 성경을 풀 때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반드시 타락한 천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성경 신자들이 확신할 수 있는 온전한 해석입니다.
샬롬
2013-03-26 14:57:29 | 관리자
구원받으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얼마 전부터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는 한 자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다닌 교회에서는 사람이 구원 받으면 그 순간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나와 최근에 다른 교회에 갔더니 거기서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고 가르칩니다. 즉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다 생명이 있는 존재이므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가 죽을 때까지 믿지 않은 사람의 경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 좋은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배경을 살펴보면 재미있습니다.
일단 ‘생명책’과 관계가 있는 구절을 다 살펴보겠습니다. (1)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2) 출애굽기 32:33,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3) 시69:28, 그들(악한 자들)을 산 자들의 책에서 지우사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하지 마소서.
(4) 빌립보서 4:3, 또한 참된 멍에 동료인 네게도 간절히 권하노니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고 또 클레멘트와 나의 다른 동료 일꾼들과 함께 수고한 저 여자들을 도우라.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5)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요한계시록 13:8,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7)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로부터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리라.
(8)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9)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10) 요한계시록 21:27,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11) 요한계시록 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제가 간단히 살펴본 바로는 ‘생명과 관계된 책’은 위의 11구절에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먼저 자매님의 질문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구절들이 바로 (1), (2), (3), (5), (11)입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그들의 주장대로 한 사람이 구원받는 순간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가 구원을 잃으면 이름이 지워지는 것으로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상 이런 일은 생길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마귀의 자녀로 지내다가 구원받은 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가 심각한 죄를 지으면 다시 마귀의 자녀가 되었다가 다시 회개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가 또 심각한 죄를 지으면 다시 마귀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일단 말이 안 되지요. 이것은 일단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명백한 구절은 이런 주장이 틀렸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이 문제는 자매님이 새로이 제시한 관점에서 보면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시편의 ‘산 자들의 책’은 ‘book of the living’입니다. 생명책은 ‘book of the life’입니다. life와 live는 같은 말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life가 있으면 live합니다. 즉 생명이 있으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땅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산 자들의 책’ 즉 ‘하나님의 책’ 곧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이름은 그 책에서 지워집니다. 이름이 지워지는 시기는 하나님이 아십니다. 다만 (7)번 사례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이미 창세 전부터 누구의 이름이 그 책에서 지워져서 거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지 확실히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들을 통해 그 자매님이 지적하신 대로 믿는 것이 기존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성경적으로 잘 맞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을 때에 그 사람의 이름이 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전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명하신 독자들께서 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저는 이런 해석이 성경적으로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며 과거에 계시록 강해에서도 그렇게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01-25 13:39:14 | 관리자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레위기 16장)
출애굽기 28장에는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이 명시되어 있습니다.이 의복은 총 8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그는 일 년 내내 이 의복을 입습니다. 4: 그들이 만들 의복들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수놓은 속옷과 관과 허리띠니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의복들을 만들어 그가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라.
대제사장의 옷에는 금방울이 달려 있어서 소리를 냈습니다.
33 ¶ 너는 그 옷의 단 밑으로 단의 주위로 돌아가며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로 석류들을 만들고 또 그 단을 돌아가며 석류들 사이에 금방울을 달되 34 그 겉옷의 단 주위로 돌아가며 금방울 하나 석류 하나, 금방울 하나 석류 하나를 달지니라. 35 그것은 아론이 섬기기 위하여 입을지니라. 그가 {주} 앞의 성소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에 그의 소리가 들리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가 입을 속옷에 대해서는 39-4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9 ¶ 너는 고운 아마로 속옷을 수놓아 만들고 고운 아마로 관을 만들며 바느질로 허리띠를 만들지니라. 40 ¶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고 그들을 위하여 허리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모자를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라. 41 너는 그것들을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며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그들을 거룩히 구분하고 거룩히 구별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할 것이며 42 또 그들을 위하여 아마로 반바지들을 만들고 그것들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에까지 이르게 하여 그들의 벌거벗음을 덮게 할지니라.
한편 레위기 16장에는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이 나와 있으며 이것은 4 종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절: 또 그는 거룩한 아마 속옷을 입고 살 위에 아마 반바지를 입으며 아마 허리띠를 띠고 아마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의복들이니라. 그러므로 그가 물로 자기 살을 씻고 그것들을 입을 것이며
두 가지 의복에 대해서는 현재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지기만 하면 언제라도 구약시대 제사 의식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놓은 성전 연구소(Temple Institute)의 자료를 보기 바랍니다.
http://www.templeinstitute.org/beged/priestly_garments-4.htm
이제 성전만 지으면 그들은 하나님께 구약의 짐승 희생물을 드릴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구절들의 속옷은 대제사장의 화려한 겉옷 속에 입는다는 의미의 속옷으로 지금의 의사들의 가운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기록대로 믿으면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흰 아마 옷을 입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의 옷과 속죄일의 옷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성경대로 이해가 되는데 다음과 같은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제사장이 혹시라도 지성소에서 죽을까 염려되어 그들은 그의 몸에 방울을 달고 또 죽을 경우를 대비해서 몸에 줄을 달아 그가 죽으면 그 줄로 그를 지성소에서 끄집어내려 하였다.”
저를 비롯해서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일단 이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없으니 꾸며낸 말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모든 것을 다 기록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 등에서는 위와 같은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줄은 로프(rope)로 불리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성경의 지지가 없습니다.다만 탈무드의 진술 등에 의해 이런 견해가 널리 퍼진 것은 사실입니다. http://www.neverthirsty.org/pp/corner/read2/r00806.html
http://www.jewishanswers.org/ask-the-rabbi-category/the-land-of-israel/?p=2403
http://bibleq.net/answer/1724/
http://www.gotquestions.org/high-priest-rope.html 성경에 모든 것을 다 기록할 필요는 없으므로 줄을 달았다고 해서 틀린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대제사장이 홀로 죽으면 끄집어낼 방도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이것을 성경에 있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저도 과거에 성막 강해 등을 할 때에 위에 있는 인용문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그런데 살펴보니 그것은 탈무드 등에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따라서 이 말은 성경에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했느냐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정도로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옷에 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샬롬
2013-01-25 12:09:33 | 관리자
네... 답변 감사드립니다. ^^
2012-12-28 12:05:29 | 오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