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사야서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새 하늘과 새 땅은 계시록 21-22장과는 조금 다르지요.
여기의 것은 분명히 천년왕국의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가장 큰 원칙 중 하나는 확실한 것을 설정한 뒤 미세한 것들은 그 기준에 따라 살펴보는 것입니다. 억지로 맞추려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벧후3:15-17).
하나님의 계시는 진보합니다. 그런데 아직 이사야에게는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가 충만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사도 바울과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AD90년경에 요한의 계시록을 통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계시록 19-22장을 통해서 우리는 7년 환난기, 1000년 왕국,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하는 것을 확실히 봅니다. 이것은 곧 시대 면에서 확실한 좌표입니다. 이것을 바꾸려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 틀에서 시대에 관한 성경의 모든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consult&write_id=58&cate_name=%EC%98%88%EC%96%B8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사야가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계시록이 이야기하는 영원한 세상과 조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에게는 창세기의 창조 시대로 모든 것이 복원되고 하늘과 땅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서 1000년 왕국을 이루는 것까지만 계시되었고 그는 그것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사실 1000년 왕국부터 어떤 의미에서 영원한 일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65, 66장은 천년왕국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보시면 됩니다. 65, 66장을 읽어보면 당연히 그때가 영원한 세상은 아님을 알 수 있지요. 이사야 당시 하나님은 거기까지만 그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샬롬
2012-12-28 10:29: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질문 드릴게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년왕국 이후 영원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으로 이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65:17절 이후를 읽어 보면 묘사하고 있는 내용은 천년왕국으로 이해되어지는데
특히, 100세된 사람을 어린아이라고 하며 죽음까지도 있는 것을 보면 거의 확실히 천년왕국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 본문의 시작인 65장 17절을 보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시점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요?
제가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 65:17, 킹흠정)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노라. 이전 것은 기억나지 아니하며 생각나지 아니하리라.(사 65:18, 킹흠정) 오직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이 되도록 창조하며 그녀의 백성을 기쁨이 되도록 창조하고(사 65:19, 킹흠정) 내가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내 백성을 기뻐하리니 슬피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그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사 65:20, 킹흠정)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 아기나 자기의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거기에 없으리니 아이가 백 세에 죽으리라. 그러나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사 65:21, 킹흠정) 그들이 집을 지어 거기에 거주하고 포도원을 세워 그것의 열매를 먹으리라.(사 65:22, 킹흠정) 그들이 짓되 다른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심되 다른 사람이 먹지 아니하리니 내 백성의 날수는 나무의 날수와 같으며 나의 선택한 자는 자기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리리라.(사 65:23, 킹흠정) 그들이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받으려고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주에게 복 받은 자의 씨요, 그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후손도 그와 같으리라.(사 65:24, 킹흠정) 그때에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하는 도중에 내가 들으리라.(사 65:25, 킹흠정)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되리니 나의 거룩한 모든 산에서 그것들이 해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2-28 10:31:0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12-27 12:31:27 | 오창재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다는 표현을 이해하는 것이 여기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했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을 뜻합니다.
신자의 경우에도 영어로 보면 ‘hath suffered’로 되어 있어 이미 성도가 육체 안에서 고난당하는 것이 끝났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성도들이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옛사람을 처리하여 죽었음을 말합니다(갈2;20).
따라서 이렇게 옛사람을 죽은 것으로 처리한 사람의 경우, 새사람은 결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롬6:7; 요일3:6, 9).
그 다음 구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죄를 지음을 보여 주며 성령의 충만으로 새사람의 소욕을 따라 살아야 함을 보여 줍니다.
여러 주석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제가 보기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샬롬
2012-11-23 17:57:58 | 관리자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 보면 육체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는 이미 죄를 그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를 그쳤다는 표현은 예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며, 육신을 입은 인간들이
죄를 그치는 것이 가능한지?
이것으로 어떤 이단부류의 사람들은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여러분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1-23 09:23:31 | 최병철
나중에 다른 분들도 쉽게 찾도록 성경 Q&A로 옮깁니다.
2012-11-02 12:30:14 | 관리자
우선 바쁘신 중에도 제 글에 관심을 가지시고 자세하면서도 친절한 답변 올려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날'과 요엘서 전체를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궁금한 점들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1-01 17:01:55 | 김세배
제가 오해를 막기 위해 끝부분이라는 것을 3군데 추가하였습니다.
2012-10-30 15:27:24 | 관리자
좋은 분석 감사합니다.
요엘서는 7년 환난기와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1-2장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1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닥칠 것을 보여 주고 3장은 주님께서 천년왕국에 들어갈 이방인들을 구분하고 그들과 및 환난기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거주민으로 삼으시고 친히 예루살렘에 거하시면서 다스리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질문의 요점은 2장 말씀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대환난에 들어간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yes와 no입니다.
사실 2장의 요점은 대환난에 들어가느냐, 아니냐가 아니고 그 환난(특히 끝부분)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받을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현대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은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 부분은 스가랴서 12-13장에 있는 대로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을 가진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수는 매우 작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대환난에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적한 대로 맞지 않게 보입니다. 이런 차원에서는 대답이 no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장 다음에 3장이 나오면서 천년왕국이 나오므로 이미 주님의 무서운 진노의 날이 끝나고 평화의 날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주의 날은 7년 환난기부터 1000년 왕국 그리고 그 이후의 새 하늘과 새 땅을 포괄적으로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문맥을 잘 보고 주의 날이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크고 무서운 주의 날은 유대인들의 경우 후반부 3년 반의 대환난기(특히 끝부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환난기가 시작되기 전에 주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을 가진 자들을 구출시킬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록 7장의 14만 4천명의 유대인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대환난기 중에서도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생깁니다. 이들은 끝까지 견디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을 가지고 남은 유대인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갑니다.
중요한 점은 14만 4천이든 누구든 휴거받지 못하고 환난기에 들어가 환난기에서 구출받은 유대인들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2장을 가지고 유대인들 가운데 얼마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그들은 구출을 받지만 불속에서 받듯이 받습니다(슥13:8-9).
3장에서 천년왕국이 임하는 것을 보면 이미 2장에서는 주의 날의 진노의 환난이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끝나는 내용이 없이 3장으로 넘어가 곧바로 천년왕국이 임하므로 문맥상 2장에서 주의 무서운 날(특히 끝부분)이 이미 끝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차원에서는 문맥적으로 2장이 이스라엘의 대환난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늘의 변화가 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곧 유대인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의 대답은 당연히 yes입니다.
그러므로 2장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대환난에 들어간다고 해도 문제가 없고 그 전에 구원을 받는 유대인들이 있다고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1-2장에서 유대인들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3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1-3장이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요엘서 인용도 당연히 유대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부분을 이방인들에게 적용하기에 오늘날 방언 등의 오순절 은사운동 같은 비성경적인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샬롬
정동수
2012-10-30 11:43:46 | 관리자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라는 글을 읽고 덧글을 통해 이미 간단하게 질문을 드렸듯이, 박참하 목사님의 글을 다운받아 여러 번 읽어보는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해서 반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자, 다 같이 요엘서 2:31-32를 보십시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니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욜 2:31,32).
대환란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입니다. 대환란은 주의 날로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에게 “크고 두려운 날”이 분명합니다.“
위 내용은 박목사님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제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과연 요엘서 2:31-32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겪게된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얼핏 보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라는 말이 등장하기에 근거구절이 되는 것 같지만 저의 판단으로는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우선 본문(31-31절) 자체에는 결코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겪는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엘서 2장 전체를 읽어봐도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요엘서 2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내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내어 이 땅의 모든 거주민들로 하여금 떨게 할지니 이는 주의 날이 이르기 때문이니라. 그 날이 매우 가까우니”(1절)
“....주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려우니 누가 그 날을 견디어 내리요?”(11절 하반절)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슬피 울고 애곡하며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나니”(12절)
요엘서 2장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2장의 요점은, 앞으로 올 주의 날에 대해 경고 하며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결코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통과하며 겪는 고통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31,32절로 돌아가서, 그 구절들을 2장 전체의 흐름의 문맥에 놓고 보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집니다.
31절의 시작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성경은 분명히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2절의 시작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어지는 32절의 내용은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또 주께서 부르실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
31절과 32절은 2장 전체의 결론으로서, 2장 전체의 내용과 아주 잘 부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올 것을 경고하여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그 전에 회개하고 돌아오길 촉구하셨습니다. 또한 분명하게 31절과 32절을 통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돌아 올 것을 미리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
2장 전체뿐 아니라 31절과 32절의 중심 내용은 이스라엘이 7년 대환란을 겪는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두 구절에는 대환란을 통과하는 중에 구원을 받는 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대환란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글이 앞으로 이 땅에 7년 대환란이 있을 때, 그 당시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요엘서 2장 31절과 32절을 제시하며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한 근거 구절로 설명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왜냐면 본문자체가 그러한 설명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구절을 근거로 성경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은 옳지만, 그에 앞서 그 구절 자체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1-02 12:28: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10-29 23:44:45 | 김세배
아멘!
2012-10-23 00:35:57 | 김재근
딱정벌레 이야기
구약성경에서 ‘딱정벌레’라는 말은 레위기 11장 22절에 단 한번 나옵니다.
곧 그 중에서 이것들 즉 메뚜기 종류와 흰머리 메뚜기 종류와 딱정벌레 종류와 베짱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레11:22)
[Even] these of them ye may eat; the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ald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eetle after his kind, and the grasshopper after his kind.
이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사람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이들은 딱정벌레(히브리어 하르골, 스트롱 번호 2728)가 틀리고, 대신 ‘귀뚜라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물론 개역성경은 이들의 주장대로 귀뚜라미라고 번역함). 또한 이들은 몇몇 주석을 들먹이면서 유대인들은 딱정벌레를 먹지 않고 세상의 어떤 사람들도 안 먹는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딱정벌레는 한자로 갑충(甲蟲)입니다. 즉 껍데기가 있는 벌레면 다 딱정벌레입니다.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가서 딱정벌레 항목을 보면 지구의 전체 곤충의 40%가 딱정벌레목(目)에 속하며 구체적으로는 약 35만-40만 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과 관련해서는 인류의 80%가 벌레를 음식으로 먹으며 벌레 중에서 사람의 음식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딱정벌레라고 나와 있고, 현재 344종이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를 식용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레위기 11장의 딱정벌레, 즉 beetle은 생물 분류법에서 장수풍뎅이 같은 한 종(種)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목(目)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목(目)에는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Beetle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하르골을 바르게 딱정벌레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이 단어는 성경에 단 한번 나오므로 다른 용례를 보고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1900년대 중반의 세계적인 석학인 에드워드 힐즈 박사는 자신의 책 <킹제임스 성경 변호>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 보존에 관한 교리를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2
1611년 이래로 온 세상에 Holy Bible로 자리 잡으며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 준 성경은 유일하게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성경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로마 카톨릭 소수사본에서 나왔습니다, 그 수많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히브리어 하르골을 딱정벌레라고 번역해 주셨고 이들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역사를 통해 그 단어가 딱정벌레라고 믿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신다는 것은 1차적으로 그분의 입에서 나온 원어의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처럼 원어 하르골 자체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에 단 한번 나오므로 아무도 그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히브리어 사전 자체도 어떤 사람이 기록했느냐에 따라 다른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 우리는 단순하게 약 50명의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바르게 인도를 받아 그 히브리어를 딱정벌레로 바르게 번역했다고 믿습니다.
이런 것은 다음의 유명한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전도서 1장 14절, 2장 11, 17, 26절, 4장 4, 6절, 6장 9절(7회)에는 다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은 뒷부분을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번역하였고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이 세상의 다른 역본들은 (심지어 뉴킹제임스 역본까지) 다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스트롱 번호 7306)와 ‘레우트’(스트롱 번호 7460)입니다. 잘 알다시피 루아흐는 영도 되고 바람도 되고 숨도 됩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처럼 영으로 번역해도 되고 개역성경처럼 바람으로 번역해도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레우트에 있습니다. 레우트라는 말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여기 전도서에만, 위에서 언급한 7구절에만 나옵니다, 그러므로 다른 용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처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믿든지 다른 성경들처럼 ‘바람을 잡는 것’으로 믿든지 둘 중 하나를 믿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 보존 역사를 믿음으로 신뢰하고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이것을 영적인 문제로 보았고 다른 번역자들은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철학적 문제로 보았습니다. 저자인 솔로몬이 과연 어떤 관점에서 이 단어들을 썼을지 여러분이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헛된 수고는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인가?” 아니면 불교나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생이란 바람을 잡는 것처럼 공허하다는 뜻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성경 사역에 복을 주신 것을 기억하며 천주교 사본을 지지하는 현대 역본들과 번역자들을 결코 신뢰할 수 없으므로 (물론 그들이 만든 사전들도 신뢰할 수 없으므로) 단순하게 그분의 말씀대로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믿습니다.
이 두 예를 통해 보셨겠지만 원어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위의 말씀은 주님께서 분명히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실 것을 확증하신 말씀입니다. 자, 그러면 주님의 보존 약속은 어디까지 미칠까요? 원본의 단어들에까지만 미칠까요? 아니면 번역본의 단어들에까지 미칠까요?
저는 분명히 말씀 보존의 약속이 일차적으로 원어에 있음을 믿습니다.그러나 여기서 끝이 나면 그 약속은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유효하지 않습니다.원본의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바른 단어들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이 번역본에까지 이른다고 믿습니다. 이런 약속에 따라 온 세상의 성경들을 살펴보니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역본들이 한결같이 천주교 사본을 사용하여 삭제와 첨가 등이 일치하고 교리적으로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다 배제하고 하나님께서 보편적으로 보존해 주신 사본들에 근거한, 전 세계 만인의 말인 영어로 기록된 킹제임스 성경이 이 시간까지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최종적인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저의 믿음입니다.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원본주의자들이 늘 인용하는 웨이트 박사님(Dr. D. A. Waite)도 자신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성도들의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적이고도 유일한 권위가 됩니다. 사실 성도들에게는 삶 자체가 믿음과 여기서 나오는 실행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 권위라고 말하는 것은 곧 인생과 온 우주 공간의 모든 문제에서 이 성경이 최종 권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떻게 역본이 최종 권위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최종 권위이고 킹제임스 성경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최종 권위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100% 킹제임스 성경 안에 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따라서 최종 권위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11장 22절은 껍질이 있는 딱정벌레가 맞고 전도서의 일곱 구절은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린 번역입니다. 이 구절들에 관한 한 그런 성경은 보존되지 않은 성경이요, 따라서 최종 권위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원어의 단어들의 보존을 믿습니다. 또한 그 원어의 단어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100% 보존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향상시켰음을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 보존된 원어의 단어들을 만민이 알아듣게 최종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해서 전달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들은 얼마든지 그렇게 믿어도 됩니다. 다만 저는 말씀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실제 데이터들의 분석과 하나님의 속성을 통해 지금 이 시간에 우리에게 100% 보존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믿으며 누가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면 서슴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가져갈 것입니다. 원어는 못 가져갑니다.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성경이 온 세상 모든 것의 최종 권위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지금 이 시간까지 최대한 우리말답게 일대 일로 대응이 되게 번역해 놓은 순전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확실한 성경입니다.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참고: 웨이트 박사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14쪽, 도서출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page=2
D. 영어로 이루어진 성경 보존과 킹제임스 성경과의 관계
1. 관계 개요나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영어 안에서 성경 보존을 이루셨다고 믿는다. 이것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성경 보존이 곧 영어 역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올바른 히브리어,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라는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믿는 데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가 있다.
a. 첫째, 킹제임스 성경 원어 본문의 우수성 때문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우수성을 말한다.b. 둘째,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당대에나 오늘날에 있는 어떤 사람들보다 탁월했다. 오늘날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에 비하면 소인국 난쟁이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다.c. 셋째, 킹제임스 성경 번역 기법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른 역본들과 차이가 있다. 다른 역본의 번역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을 쓰지 않았다.d. 넷째, 킹제임스 성경 신학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9
2012-10-22 17:52:16 | 관리자
감사합니다. 구원이 아니라 보상에 대한 말씀이군요
많은 분들이 잘못된 구원관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흠정역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죠
안타까운 것은 주님에 대해 더욱 알고자 하는 이들이 행위구원론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들에게 바른 진리가 선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2-08-22 13:18:15 | 김춘섭
질문 전에 늘 우측 상단의 전체게시글 검색을 통해 글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답변
https://keepbible.com/Study5/View/3Lg
감사합니다.
2012-08-22 11:18:5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은혜로운 설교와 자료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 말씀하시는 "마지막 나팔"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갑자기 마지막 나팔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어떤 순서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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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2 10:28:26 | 윤택준
또한, 성경을 보실때에 문맥을 잘 보셔야 합니다.
고전 9:27을 예로 들면, 이 구절은 지금 구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 9:24-27를 아래와 같이 묶어서 읽어보세요.
(고전 9:24, 킹흠정) 경주할 때에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한 사람이 상을 받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고전 9:25, 킹흠정) 이기려고 애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서 절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을 관을 얻고자 그 일을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하느니라.
(고전 9:26, 킹흠정)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정해진 것이 없는 것처럼 하지 아니하고 또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하지 아니하며
(고전 9:27, 킹흠정)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들은 구원받은 이후의 하늘의 상급,보상에 대한 얘기입니다. 여기의 27절에서 "버림받는지 않겠다"는 표현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잃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없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을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문맥을 잘 살피셔야 합니다.
샬롬.^^
2012-08-22 10:13:02 | 김학준
그런 분들은 설득으로 해결이 잘 안 됩니다. 말씀을 잘 쪼개고 나누어 봐야 하는데 그런 방식을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국어를 잘 이해하는 것은 성경 이해의 기본입니다. 오른쪽 추천서비스에 국립국어원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개별적인 단어나 표현들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이 일단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고 일회적이며 흔들리지 않는다는 더 크고 기본적인 교리를 확고히 알고 나머지를 해석해야 하는데,
부수적인 구절들로 더 뿌리가 되는 교리들을 흔들려 하는 접근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분들은 위 구절들에 대한 해석도 주의 깊게 보지 않습니다.
고후 13:7 경우 버림받은 자같이 '될지라도' 등의 표현이 가정을 전제로 강조하는 것이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718
같은 책을 잘 읽어 보시면 다 나옵니다.
또한 시대와 수신자 등을 잘 구분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 24:13) 이런 구절도 나름 세심히 보고,
끝까지 못 견디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이니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환난 때 남은 자들이 받는 고난을 말씀하신 것이며 여기서의 구원도 육체적 죽음에서 육체가 구원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교회 시대의 신약 성도들의 영혼 구원 문제에 적용하면 안 됩니다.
그밖에 살아 있는 자들을 기록한 생명책에서 지우는 이야기를 오해하기도 하고,
어린양의 생명책과 혼동하는 등의 문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개역성경의 오역과 부실함으로 빚어지는 오해도 많습니다. 한 예로 엡 2:22 말씀을 보십시오.
킹흠정역 :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과거형)
개역개정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진행형)
이미 끝난 일을 아직도 마무리가 안 된 것처럼 보이게 해놓았습니다.
이건 번역자들의 생각이 담긴 것이지, 영어를 몰라서 이렇게 해놓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구절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주의깊게 볼수록 더 헤매게 되겠지요.
구원의 오해 문제를 짚으려면 책을 한 권 써야 할 것입니다.
책이나 강의, 또 이 사이트의 설교와 성경공부에 여러 번 등장하니 차근차근 알아 보시기 바랍니다.
2012-08-22 09:54:16 | 김재욱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고린도전서 말씀으로 바울도 버림을 받지 않으려 했다는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구원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버림이라는 단어로 검색하여 다른 구절들을 참고해봐도 명확하게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린도전서와 디도서에 나오는 버림받는다는 구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 : 27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3 : 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린도후서 13 : 7 또 너희가 아무 악도 행하지 아니하기를 내가 이제 [하나님]께 기도하노니 그 목적은 우리가 인정받은 자로 나타나고자 함이 아니요, 우리는 버림받은 자같이 될지라도 너희만은 정직한 것을 행하게 하려 함이라.디도서 1 : 16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그들은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대해 버림받은 자들이니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8-31 11:03: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8-22 01:38:47 | 김춘섭
포도주와 포도즙
오래 전부터 한 분이 포도주와 포도즙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흠정역 성경이 wine을 잘못 번역했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말씀보존학회 사람들의 글을 통해 이것이야 말로 확실히 흠정역의 실수라고 확신하며 여러 번 이메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정을 보느라 바빴고 또 너무 뻔한 이야기라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그분이 또 이 문제로 이메일을 보내와서 오늘은 간단히 글을 씁니다.
잘 아시다시피 영어의 wine은 동형이의어입니다. 그래서 문맥에 맞게 포도즙 혹은 포도주로 구분해서 번역해야 합니다. 개역성경이나 말씀보존학회 성경처럼 모두 포도주로 번역하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
이분이 인용하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신29:6과 신32:14를 근거로 합니다.
먼저 문맥을 살펴보기 위해 신명기 29장 1-9절을 보겠습니다.
1 {주}께서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맺으신 언약 외에 그분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맺으신 언약의 말씀들이 이러하니라. 2 ¶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집트 땅에서 너희 눈앞에서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 곧 큰 시험들과 표적들과 그 큰 기적들을 네 눈이 보았느니라.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이 날까지 {주}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5 내가 사십 년 간 광야에서 너희를 인도하였거니와 너희가 입은 옷이 낡지 아니하고 너희 발의 신이 낡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가 빵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즙이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은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 7 너희가 이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를 치려고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 그들의 땅을 취하여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었나니 9 그런즉 이 언약의 말씀들을 지키고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서 너희가 형통하리라.
한편 신명기 32장 10-14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0 그분께서 그를 사막에서와 황폐함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찾아내시고 인도하시며 가르치시고 자신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 위에 너풀거리고 자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으며 자기 날개 위에 그것들을 업는 것 같이 12 {주}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분과 함께한 이방 신이 없었도다. 13 그분께서 그로 하여금 땅의 높은 곳들에서 타고 다니게 하사 밭의 소출을 먹게 하시고 반석에서 꿀을 빨게 하시며 또 부싯돌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고 14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
말씀보존학회의 주장
흠정역: 너희가 빵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즙이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은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신29:6).
흠정역: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신32:14).
여기서 흠정역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거나 아니면 포도의 순수한 피가 포도주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다.
바로 몇 장 뒤에 있는 신명기 32장 14절을 보자.
흠정역: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신32:14).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이 포도의 순수한 피(즉 포도즙 혹은 주스)를 마셨다고 말씀하신다.그런데 흠정역은 신29:6에서 그들이 포도즙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든지 아니면 포도의 순수한 피가 포도즙이 아닌 포도주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흠정역은 오역이다.
따라서 신29:6은 말씀보존학회의 성경과 같이 포도주로 번역되어야 한다.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 너희가 빵도 먹지 않았으며 너희가 포도주나 독주도 마시지 않았으니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인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는 것이니라.
말씀보존학회의 이런 주장이 과연 맞을까요?
성경은 항상 문맥을 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29:5-6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이스라엘이 밀을 재배하지 못하고 포도원을 경작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의 주식인 빵과 포도즙을 먹지 못한 것을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신29:6의 wine은 반드시 포도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포도주라고 하면 그들이 포도즙은 먹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9장의 문맥은 그들이 경작할 땅이 없어서 빵과 포도 주스를 먹지 못한 것을 기록합니다.
한편 32장으로 와서 13-14절을 문맥에 맞게 살펴봅시다.
13 그분께서 그로 하여금 땅의 높은 곳들에서 타고 다니게 하사 밭의 소출을 먹게 하시고 반석에서 꿀을 빨게 하시며 또 부싯돌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고 14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
13절은 이스라엘이 암소의 버터와 바산 품종의 숫양과 기름진 밀을 먹었다고 합니다. 자, 이스라엘이 과연 광야에서 기름진 밀을 먹은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40년간의 유랑 생활 중 광야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어떻게 기름진 밀을 먹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바산 품종의 숫양을 먹을 수 있습니까?
이 일은 광야에서의 유랑 생활이 거의 끝날 무렵에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오른쪽의 바산과 헤스본 땅을 차지하면서 생긴 것입니다. 위에 있는 신명기 29장 7-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광야 생활이 끝난 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바산과 헤스본에서 밭에서 자란 밀과 포도원에서 자란 포도의 순수한 피 즉 포도즙 혹은 포도 주스를 마셨습니다.
문맥에서 보듯이 신명기 29장과 32장은 전혀 다른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wine을 용례에 맞게 번역한 흠정역을 두고 자꾸 오역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말씀을 보존하겠다고 했으면 제발 이름에 걸맞게 그리하면 좋겠습니다.쓸데없이 이런 것으로 사람들을 혼동 속으로 집어넣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심지어 신약성경에서 주의 만찬을 다루는 데서도 wine을 포도주라고 번역하여 주님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은 구약 시대의 유월절을 바꾸어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지키게 하신 규례입니다. 유월절은 무교절과 함께 나오며 그때에는 반드시 누룩을 치워야만 합니다. 누룩은 부패하게 하는 물질로서 죄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누룩이 들지 않은 포도 주스를 가지고 그분의 살과 피를 상징하게 하면서 그분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천주교의 교리에 따라 누룩이 들어가 부패된 포도주를 사용합니다. 개역성경 등이 wine을 포도주로 번역하였기에 이런 참담한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보존하려는 단체는 제발 이런 것에서부터 바르게 하기 바랍니다, 많은 성도들이 무고하게 넘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wine을 구분하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주식으로 빵과 함께 나올 때는 빵과 포도즙으로 보면 됩니다. 술을 주식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등에서 사람이 복을 많이 받은 경우 그의 집에는 방과 포도즙이 풍성하게 됩니다.
창14:18에서 멜기세덱이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위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옵니다.
여기서 wine을 포도주로 하면 예수님을 가리키는 멜기세덱이 술을 퍼 주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앞뒤 문맥이 술 취하는 현상과 관계 있을 때에는 포도주로 보면됩니다.
포도를 짜는 틀인 포도즙 틀(wine press)과 함께 나올 때는 포도즙으로 보면 됩니다.
이런 경우 포도주 틀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땅에다 만든 틀에 사람들이 들어가 발로 포도를 밟으면 포도즙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포도즙 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해서는 신학적으로 그분께서 술을 만들어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분이 아니므로
포도즙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그분은 물을 최상의 포도즙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바른 성경입니다.
혹시 흠정역 성경이 잘못 번역한 것으로 보이면 언제든지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주신 의견이 맞으면 모았다가 나중에 정정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2-07-14 22:37:52 | 관리자
사사기 3장 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흠정역: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출자를 일으키사 그들을 건져 내게 하셨으니 곧 갈렙의 동생이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더라.
KJV: And when the children of Israel cried unto the LORD, the LORD raised up a deliverer to the children of Israel, who delivered them, [even] Othniel the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
개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그 구츨자는 갈렙의 동생이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입니다.
영어를 보시면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과 갈렙의 동생이 동격임을 금세 알 수 잇습니다.
그런데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본문대로 번역하지 않고
그 구출자를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라고 하여
갈렙이 그나스의 형이고 옷니엘의 삼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에 변화를 가져온 자들의 소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영어 성경 자체가 이런 번역이 오역임을 명백히 보여 줍니다.
분명하게 히브리어 마소라 성경은 갈렙과 옷니엘이 형제임을 보여 줍니다.
대부분의 영어 사전들도 바르게 보여 줍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계보를 보시면 역대상과 사사기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수15:17, 삿1:13, 삿3:11에서도 동일합니다.
특히 삿3:11은 분명하게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개역성경도 그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보존하겠다는 단체가 보존된 말씀을 바르게 번역하지는 않고
오히려 바르게 번역된 부분을 틀렸다고 하여 많은 이들을 혼동 속에 넣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바른 성경입니다.
확신을 가져도 됩니다.
샬롬
2012-07-14 18:37:55 | 관리자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를 사교 클럽으로 오해하거나, 살아 있는 말씀을 상관 없는 법률 조문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날마다 삶에 적용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2012-07-14 08:12:43 | 송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