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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번역의 목적과 원칙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 체제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어떤 식으로 번역해서 내든지, 또 그것을 읽고 믿든지 안 믿든지는 다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합니다.   다만 표준 킹제임스처럼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라는 본문을 스스로 만든 뒤 – 여기까지는 큰 문제없음 - 이것 외에 다른 본문들은 오류가 많다고 주장하는 것 – 여기에 큰 문제가 있음 - 은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사기 행위이므로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우리가 번역의 저본으로 사용한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판은 족보도 실체도 없다고 하는 것 역시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그쪽에서 온갖 거짓말로 우리 흠정역 성경을 비방하고 폄하하기에 하는 수 없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어떤 사람들은 편지를 쓰고 해서 거짓말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표킹에 대응하는 이유는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만든 것을 좋아하고 사실 그대로 영어 본문을 '제조'했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이 믿고 따라가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요즘 이런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으로 숭배하려는 생각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고 해서 비둘기가 그녀가 되고 까마귀가 그 남자가 되고 부정관사 a, 접속사 and, 불콩들의 죽처럼 복수를 모두 살리고 심지어 도량형과 인명 지명도 영어처럼 하는 기괴한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요2:6을 보겠습니다. And there were set there six waterpots of stone, after the manner of the purifying of the Jews, containing two or three firkins apiece. 표준: 그리고 거기에는 유대인들 정결 예식의 방식에 따라 돌로 된 물 항아리 여섯 개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각기 이 펄킨이나 삼 펄킨을 담을 수 있었더라. 펄킨이라는 말은 현재 미국 사람들도 거의 안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나 교사가 설명을 해 주거나 용어 사전을 통해 의미를 배워야 합니다. 실제로 이것은 좋은 교육입니다. 이런 일이 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의 이중 영감설에 따른 우상 숭배의 폐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빗 대니얼스 등의 증언을 보기 바랍니다.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다시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중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며 ‘최초의 영감’이 영어 번역으로 전달된 성경이다.   대니얼스의 증언: 이중 영감은 없다   펄킨, ‘불콩들의 죽’ 같은 난센스 번역과 관련해서 오늘은 과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완벽하게 혹은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이 가능한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심히 순진한 분들이 ‘순수한 영어 본문을 영어 그대로’ 번역했다는 말을 좋아하고 그런 번역이 있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갑니다.  언제가 한번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 권위를 주장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창1:1의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earth.”에서 ‘in the beginning’을 ‘그 처음 안에서’로 번역한 것을 보고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번역을 한 번역자 역시 럭크만의 이중 영감설에 푹 빠졌고 철저한 럭크만 신봉자가 되었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번역을 시도해서 인쇄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저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 우상 숭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표준 킹제임스라는 것도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의 번역 원칙과 원리는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해서 출간하는가, 그리고 우리말 번역에서 영어나 원어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는가, 여기서 정확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성경을 번역하려 하지도 않았고 또 사실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영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과 우리말은 문법 및 구조가 완전히 다르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처럼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거의 완벽하게 일대일 대응시켜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불가능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우리는 우리말 구조와 문법의 한계 내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정확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였을 뿐입니다.  우리는 번역을 하면서 항상 영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서문에 나오는 번역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예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가장 먼저 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독일어 성경 번역이었습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물론 올바른 본문과 번역의 기술이지만 가장 크게 신경을 쓴 것은 평범한 독일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변장하고 숨어 지내면서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 중에 시시때때로 저잣거리로 나가서 당시 시장에서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썼습니다. 당시 독일에는 여러 계층과 지역의 사람들이 쓰는 다양한 형태의 독일어가 있었고 루터는 그중에서 일반 백성들이 가장 널리 쓰는 언어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루터의 성경을 읽고 깨달은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는 귀한 일이 생겼습니다. 신약 성경 코이네 그리스어 신약 성경 역시 그 당시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쓰던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구원받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가능하였습니다(당시 그리스어도 여러 종류였음). 에라스무스 라틴어 에라스무스 역시 자기 시대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라틴어 역본을 번역하였습니다. 틴데일 영어 성경 킹제임스 성경의 모체가 된 틴데일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틴데일 역시 어떻게 하면 보통 영국 사람들의 말로 성경을 번역할까 애를 썼으며 그 결과 그의 성경의 60-70%가 킹제임스 성경에 그대로 반영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히브리서 12장 2절을 번역하기 위해 여러 날을 고민하였고 그 결과 불후의 구절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히12:2, Looking un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우리 믿음의 창시자라는 말은 정말 오랜 고민 끝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author를 작가나 저자로 생각하고는 왜 ‘믿음의 저자’로 번역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author의 첫 번째 뜻은 창시자입니다. 1.1 gen. The person who originates or gives existence to anything: a.1.a An inventor, constructor, or founder. Now obs. of things material; exc. as in b.  그리스 단어들의 뜻을 이렇게 고정하면서 성경 단어들 개념의 기초를 놓아 준 사람이 바로 틴데일이었고 그는 오직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하기 위해 전 인생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번역하는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배우는 우리말 문법과 용례를 기준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맞춤법 연구를 위해 적어도, 1,000번 이상 국어연구원에 질문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의 교정 의견을 들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기존의 개역 성경(소수 사본)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교정한 킹제임스 성경(다수 사본)을 출간하는 것(본문 문제, 번역자 사상 문제, 번역 기법 문제, 맞춤법 문제, 4복음서 대조 등) 2. 딤후3:17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경을 내는 것 16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30년의 번역과 교정을 통해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우리말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어(그리스, 히브리어)를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번역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의 구조상 차이로 인해 어떤 곳은 영어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딤후3:16-17을 이루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입니다. 1. 복수 2. 수동태 능동태 3, 부탁의 말씀   우리 주 예수님의 큰 은헤가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31 15:29:11 | 관리자
영어를 조금 안다고 하는 목사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가로막는 진짜 문제다   부탁의 말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400년 전 왕정 시대에 왕에 의해 강권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일반 대중은 사실 번역이 조금 좋으냐, 좋지 않느냐를 따질 수 없었습니다. 왕이 제정하였고 또 그것이 보급되는 데도 수십 년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이것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웁니다. 그래서 영어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 번역을 읽으면서 자기 뜻대로 번역되지 않은 데가 있으면 무조건 핏대를 올리며 오역이라고 합니다. 영어를 조금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100이면 100 다 무언가 한두 군데는 자기 생각하고 다른 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구미에 맞는 킹제임스 성경 역본을 우리말로 내는 것은 이런 면에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부추기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목사들 가운데는 공공연하게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1주일 전에도 어떤 목사에게서 그런 글을 직접 받았습니다.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국 사람들만의 하나님인가요? 한국 사람들의 하나님은 아닌가요?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에게 에스겔서나 미가서를 가져다주고 즉시 읽고 해석해 보라고 하기 바랍니다. 단언하건대 영한사전 없이 즉시 번역해서 구약 성경을 쭉쭉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땅에 거의 없습니다. 한두 구절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한국말 성경 읽듯이 시원하게 쭉쭉 영어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사도행전 전체 28장을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된 흠정역 성경으로 쭉쭉 시원하게 읽는 데는 2시간이면 족합니다. 읽으면서 전체 맥락을 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읽기 시작하면 1주일이 걸려도 대다수 사람들이 읽지 못할 것이며 번역하느라 뒷부분에 가면 앞에 읽은 내용을 다 잊어버릴 것입니다. 대다수 목사들이 자기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한국말 성경은 절대로 정확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흠정역 성경을 예로 들자면 흠정역 성경이 자기 뜻대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prophet을 예언자가 아니라 대언자로, prophesy를 예언하다가 아니라 대언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replenish를 럭크만의 주장대로 ‘다시 채우다’로 하지 않고 ‘가득 채우다’로 번역했습니다.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요? 영어 성경과 옥스퍼드 영어 사전 그리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내장 사전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고 우리의 생각을 거기에 맞추어야지 내 생각대로 성경을 뜯어고치면 안 됩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여러 목사들이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고 노래하고 다닙니다.   예를 들어 prophet을 보기 바랍니다. 출7:1, And the LORD said unto Moses, See, I have made thee a god to Pharaoh: and Aaron thy brother shall be thy prophet.  흠정역: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신이 되게 하였으니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라. 심지어 개역도 대언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영어 옥스퍼드 사전은 prophet이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자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Prophet: one who speaks for God     그러니까 대언, 대언자 외의 다른 말은 성경 번역에서 수용될 수 없습니다. 결론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고 말하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성경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대다수 성도들은 영어를 읽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만들 수 없다. 다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가져다버리고 읽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지어 킹제임스 성경이 없으면 개역성경이라도 매일 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국말로는 정확한 성경을 낼 수 없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어떤 점이 딤후3:16-17을 이루지 못하는지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영한사전과 럭크만 주석(그것도 한국말로 번역된 것) 없이는 영어 성경을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여,   부디 딤후3:16-17을 이룰 수 있는 우리말 성경, 이런 성경을 대다수 성도들의 마음에서 빼앗지 말기 바랍니다. 그것은 목사가 성도들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성도들도 그런 목사들이 있으면 “한번 영어를 잘 아는 당신이 번역해 보라.”고 하기 바랍니다. 그들은 한두 구절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 전체를 번역하지는 못합니다. 끝으로 천부적 탤런트를 받아 워낙 영어에 능통하여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보여 주지 못하는 미묘한 것들(대개는 주관적인 것들, 복수, 수동태 등)로 인해 불평이 생기는 분들은 영어나 원어 성경을 보기 바랍니다. 이제 끝으로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 출간 공지>의 마지막 2항을 보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마제스티 에디션 출간 공지 2. 주 번역자인 저를 포함하여 부족한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마제스티 에디션을 출간하였지만 보는 사람마다 흡족하지 못하다고 여길 부분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 또한 이전 판들의 번역이 더 낫게 보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400주년 기념판과 마찬가지로 마제스티 에디션 역시 올바른 본문에서 최대한 우리말답게 정직하게 번역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사람과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충분한 성경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출간한 목적이고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이것을 이루어 왔다고 믿습니다.    왜 30년이나 걸렸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성경도 1380년경부터 1611년까지 230년에 걸쳐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지키는 우리가 됩시다.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말 사용 면에서 성장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믿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는 말은 때로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말 용례에 어긋나는 번역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31 15:05:35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번역 시 수동태 문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기존의 개역 성경(소수 사본)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교정한 킹제임스 성경(다수 사본)을 출간하는 것(본문 문제, 번역자 사상 문제, 번역 기법 문제, 맞춤법 문제, 4복음서 대조 등) 2. 딤후3:17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경을 내는 것 16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30년의 번역과 교정을 통해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우리말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어(그리스, 히브리어)를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의 구조상 차이로 인해 어떤 곳은 영어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딤후3:16-17을 이루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중 하나는 수동태를 능동태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수동태 번역   우리말은 수동태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글에서는 빈번히 수동태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번역을 할 때 수동태로 해도 문장이 어색하지 않은 경우는 수동태를 유지하고 수동태로 하면 말이 꼬여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는 능동태로 하되 첨가된 주어는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마6:7, But when ye pray, use not vain repetitions, as the heathen do: for they think that they shall be heard for their much speaking. 여기에는 뒤에 they shall be heard라는 수동태 구문이 있습니다. 표킹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표킹: 오히려 너희가 기도할 때면, 이교도들이 하듯이 헛된 반복들을 사용하지 말라. 이는 자신들이 많이 고하여야 그것들이 들릴 것이라고 그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라. 자신들이 많이 고하여야 ‘그것들이 들릴 것이라고’는 오역입니다. they shall be heard의 they는 기도하는 사람들이지 그들이 하는 말들이 아닙니다. 이상하지만 영어 수동태를 살린다고 억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해야 [아버지에 의해] 들어질 줄로 생각하느니라. ‘아버지에 의해’는 바로 위의 6절을 통해 아버지가 기도를 듣는 분이므로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러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공개적으로 보답해 주시리라(마6:6). 자, 영어 수동태를 살린다고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해야 [아버지에 의해] 들어질 줄로 생각하느니라.”가 되면 이것을 이해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요? 수동태에 익숙한 미국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개역, 카톨릭 성경은 모두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로 번역하였는데 이런 식이 되면 비문(非文)이 됩니다. 기도를 들어 주는 주체(주어)가 문장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 번역은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고 하면서 ‘하느님께서’를 넣어 비문이 되는 것을 피하였습니다. 이처럼 어떤 때는 수동태 문장이 우리말 번역에서는 큰 문제가 됩니다. 흠정역은 다음과 같이 능동태로 번역하였습니다. 더욱이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반복의 말을 사용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해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능동태로 번역하면서 비문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께서’를 이탤릭체로 넣어 이것이 첨가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영어 그대로 하라고 하는 말이나 영어 그대로 했다는 말이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번역을 하면 우리말 독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번역하기 어려운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해도 딤후3:16-17을 이루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히브리서 5장 7절에도 나옵니다. 히5:7, Who in the days of his flesh, when he had offered up prayers and supplications with strong crying and tears unto him that was able to save him from death, and was heard in that he feared; 여기 끝부분에는 and was heard in that he feared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He was heard라는 수동태 문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어 그대로 번역한다고 하면 “그분께서 들어지셨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말에 이런 표현은 없습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개역은 하는 수 없이 ‘그가 들으심을 얻었느니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 역시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말입니다.  카톨릭과 공동 번역은 ‘하느님께서는 그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라고 제대로 번역하였지만 자기들이 첨가한 ‘하나님께서는’을 이탤릭체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직역을 자랑하는 표킹을 보겠습니다. 표킹: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 잘 보기 바랍니다. 표킹도 분명히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하나님께서를 넣고 이탤릭체로 표기하습니다. 이유는 심히 간단합니다. 수동태로 번역하면 우리말이 안 되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입니다. 흠정역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시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분께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말을 들으셨느니라. 엄마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 때 아이가 ‘나 엄마 말 듣고 있어요’를 영어로 표현하면 ‘Mom, I hear you’가 됩니다. 이것을 ‘나는 너를 듣고 있다’로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당신(엄마)의 말을 듣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장에서도 그냥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다'로 하면 비문이 됩니다. 그래서 흠정역처럼 하나님께서 그 말(간구하는 말)을 들으셨다고 해야 적합한 번역이 됩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런 문장에서 불가피하게 수동태 문장을 능동태로 바꾼다 해도 딤후3:16-17을 이루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이렇게 해야만 우리말 구조에서는 합당한 번역이 됩니다. 이런 것은 결코 오역이 아닙니다.   하사관이 신병들에게 적지에 들어가기 전에 생존 지침을 열심히 설명한 뒤 “내 말 알아들었어?”라고 하는 것을 영어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능동태로 “Do you understand me(or what I said)?”로 번역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사관은 큰 소리로 “Am I understood?”라고 말합니다.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면 반드시 “너희들 알아들었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 의해 이해되어졌어?"라고 하면 치졸한 번역이요, 알아든지 못하는 번역이 됩니다. 유명한 구절 하나를 더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마6:33, 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여기의 후반부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역시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개역 등 대다수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역시 뒷부분에 주어가 빠져서 비문이 됩니다. 카톨릭이나 공동은 이를 피하기 위해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로 하여 하나님이 더해 주시는 것을 우리가 곁들여 받는다고 조금 의역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주어 ‘너희’를 살릴 수 있어 비문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그분께서’를 이탤릭으로 첨가하여 비문을 피하면서 원래 뜻을 정하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렇게 어떤 부분에서 불가피하게 수동태 부분을 능동태로 바꾼다 해도 딤후3:16-17을 이루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흠정역에는 수동태를 그대로 살린 데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고전3:10, According to the grace of God which is given unto me, as a wise masterbuilder, I have laid the foundation, and another buildeth thereon. But let every man take heed how he buildeth thereupon. 앞부분에는 which is given unto me라는 수동태가 있습니다. 기존 개역 성경 등은 이것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번역하였는데 이것 역시 ‘주신’이라는 동사의 주어가 없어서 비문입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100년 전에는 수동태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흠정역 성경은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내게 주어진’으로 수동태를 살려서 비문을 피하였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 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이처럼 수동태 문장의 번역은 우리말의 번역 가능 여부에 따라 번역자가 정한 규칙에 의해 결정됩니다. 다만 이때에도 딤후3:16-17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번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마6:7, 히5:7처럼 수동태로 번역하면 전혀 말이 안 되는데도 무조건 영어식으로 수동태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분이 이런 수동태 구절 하나를 이메일로 보내고는 왜 오역을 했느냐고 따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극심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말입니다.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직역만을 고집하는 표킹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수동태를 능동태로 처리한 데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는 이러면서 절대로 표킹처럼 오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킹제임스 성경도 원어에 없는 부분들을 첨가하고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런 데가 수천 군데 있는 것으로 압니다. Looking un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여기서 ‘우리의’에 해당하는 our는 첨가된 것입니다. 번역자들이 볼 때 그냥 믿음으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our를 넣어 예수님이 특별히 신약 시대 성도들(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임을 구체화하였습니다. 왜 영어 성경의 이탤릭체는 문제가 없고 우리말 번역에서 필요시 능동태로 바꾸면서 주어를 이탤릭으로 한 것은 문제가 됩니까?   번역이란 무엇인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서문에서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말 사용 면에서 성장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는 말은 때로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말 용례에 어긋나는 번역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31 14:49:30 | 관리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번역 시 단수 복수 처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기존의 개역 성경(소수 사본)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교정한 킹제임스 성경(다수 사본)을 출간하는 것(본문 문제, 번역자 사상 문제, 번역 기법 문제, 맞춤법 문제, 4복음서 대조 등) 2. 딤후3:17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경을 내는 것 16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30년의 번역과 교정을 통해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우리말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어(그리스, 히브리어)를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의 구조상 차이로 인해 어떤 곳은 영어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딤후3:16-17을 이루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중 하나는 단수 복수 문제입니다. 복수 문제 1. 창25:34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n Jacob gave Esau bread and pottage of lentiles; and he did eat and drink, and rose up, and went his way: thus Esau despised his birthright. 이에 야곱이 빵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그가 먹고 마신 뒤 일어나 자기 길로 갔더라. 이같이 에서는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 영어에는 팥죽이 pottage of lentiles로 되어 있는데 복수를 살려서 이것을 번역하면 ‘팥들의 죽’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팥죽이라고 해야지 복수를 살린다고 팥들의 죽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팥빙수도 팥들의 빙수라고 하면 안 됩니다. 팥죽과 팥빙수라는 말에 이미 여러 개의 팥이 들어가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2. 선한 행위(good works) 등 단복수 처리 딛2:14, Who gave himself for us, that he might redeem us from all iniquity, and purify unto himself a peculiar people, zealous of good works.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으니 이것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 소유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는 끝에 good works라는 복수 명사가 나오는데 우리는 이것을 선한 행위들이 아니라 선한 행위로 표현하였습니다. 자, 국방부 장관이 연설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대한민국 군대의 체질을 바꾸어 북한 적군의 침입이 있으면 지체 없이 초토화시켜야 합니다.” 이런 데 나오는 군대에는 사실 육군, 해군, 공군 등 여러 군대가 다 포함됩니다. 이럴 때 단순히 ‘대한민국 군대’라고 하면 그 군대는 대한민국의 모든 군대를 가리킵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다.”라는 말 역시 사자 한 마리가 왕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해도 우리말에서는 복수의 의미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행위들로 표현하여 각각의 행위를 나열해서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있고 복수 주어를 맞추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갈5:19-20, Now the works of the flesh are manifest, which are these; Adultery, fornication, uncleanness, lasciviousness, Idolatry, witchcraft, hatred, variance, emulations, wrath, strife, seditions, heresies, Envyings, murders, drunkenness, revellings, and such like: 한편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며 그것들은 이것들이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시기심의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니라. 이 경우 복수로 표현해야 뒤의 여러 가지 행위가 살아나고 '그것들은 이것들이니...그와 같은 것들이니라'의 복수와 매칭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복수를 살렸습니다. 3. 의인화의 단복수 히10:31, It is a fearful thing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living God.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니라. 이 경우 영어는 hands of the living God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단수 처리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손과 발과 다리 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손, 팔, 입 등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을 우리는 의인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히10:31은 이런 뜻입니다. 살다가 우리(자녀들)가 잘못해서 강한 사람(부모님)의 손에 들어가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자도 하나님에 의해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손들로 하면 우리말에 맞지 않습니다.  “내 손에 걸리기만 해. 그냥 안 두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말이지 “내 손들에 걸리기만 해. 그냥 안 두겠다.”라고 하면 어색해집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전혀 쓰지 않습니다. 더욱이 표킹처럼 하나님의 두 손이라고 하여 ‘두’를 임의로 첨가하는 일은 더욱더 유치한 일이 됩니다.  시11:4,  The LORD is in his holy temple, the LORD's throne is in heaven: his eyes behold, his eyelids try, the children of men. 주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전에 계시며 주의 왕좌는 하늘에 있도다. 그분의 눈은 사람들의 아이들을 바라보시며 그분의 눈꺼풀은 그들을 단련하시는도다. 히브리어는 같은 것을 반복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뒤에 있는 눈꺼풀은 바로 앞의 눈을 반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무슨 일을 곰곰이 생각할 때 눈꺼풀을 내립니다(눈을 반쯤 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꺼풀은 하나님이 깊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의인화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들을 단련하십니다. 이런데도 굳이 복수를 살린다고 ‘눈들’, ‘눈꺼풀들’이라고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유치한 번역이 됩니다. 참고로 개역은 이것을 안목으로 공동과 카톨릭은 눈동자로 번역했지만 이것은 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딤후3:17을 이루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번역의 정확성을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번역이란 무엇인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서문에서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다. 번역은 껍질을 까서 우리가 열매를 먹도록 해주며 휘장을 젖혀서 우리가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는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두레박이나 물길을 그릇이 없이 야곱의 그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는 아이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말 사용 면에서 성장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해야 한다는 말은 때로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말 용례에 어긋나는 번역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31 14:15:31 | 관리자
개정(Revision)이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 안녕하세요? 요즘 어떤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판’ 영어 본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제조하고 이것 외에 다른 킹제임스 영어 본문은 순수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폈지만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는 자기들이 그런 판을 만든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이미 수차례 말씀드린 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은 크게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간하는 성경에 쓰이는 본문(옥스퍼드판)이 있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출간하는 성경에 쓰이는 본문(케임브리지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둘 다 1769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만든 본문에다 그 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 철자법 등이 고정됨에 따라 미세한 부분들이 변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고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12군데 정도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칙출판사의 대니얼스를 포함한 대다수 성경 신자들이 글로 밝히고 영상으로 보여 준 대로 이 12개의 미세한 차이는 활자를 세팅할 때 생긴 식자상의 오류이지 본문에 영향을 미치는 변개 사항이 아닙니다.  영어 본문으로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 직격탄을 쏘는 대니얼스 1769년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이 12개를 통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판본에 따라 이런 미세한 차이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개정(revision)과 판(edition)에 대해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 5월에 처음 인쇄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독일체가 쓰였고 정서법이 지금과 달랐으며 또 500만 개의 활자를 수작업으로 심어야 했으므로 인쇄된 초판에는 여러 개의 명백한 오류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1611년판 킹제임스 영어 성경 교정 역사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오류들을 가지고 킹제임스 성경을 폄하하려 하지만 이것은 지금부터 400년 전의 인간의 기술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500만 개의 활자를 일일이 손으로 심는 것, 이것은 지금 하라고 해도 여전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 발간의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이전까지 무려 1,000년 이상 중세 암흑 세상을 지배하던 천주교 소수 본문 성경이 더 이상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1611년에 다수 본문에서 나온 킹제임스 성경을 세상의 모든 교리, 신조, 신학, 복음 선포의 도구로 쓰시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지난 400년 동안 역사에서 일어났고 킹제임스 성경은 적어도 십 억 권 이상 인쇄되어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이런 책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이것이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 출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고 인쇄상의 오류들은 당시 인간들의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자필 원고가 있었으므로 곧바로 대조작업을 통해 교정 작업이 철저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영어 철자법은 계속해서 변했습니다. 예를 들어 tread(밟다)의 과거 분사인 trodden은 처음에 troden으로 쓰이다가 후에 지금처럼 trodden으로 고정되었습니다. 약 15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1760년과 1762년에 케임브리지 출판사에서 교정판을 출간했고 1769년에는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교정판을 출간하였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은 이렇게 교정된 성경이 출간될 때 대개는 두 가지 용어로 이것을 표현합니다. 하나는 판(edition)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1611년에 킹제임스 성경이 처음 인쇄되었을 때 우리는 이것을 1611년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1611년에는 두 번 인쇄가 되었으므로 1611년 1판과 2판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정(revision)이라는 말입니다. 1760년대에 가장 유명한 판은 블레이니가 옥스퍼드에서 만든 옥스퍼드판(Oxford edition)입니다. 오랜 시간 뒤에 케임브리지 출판사도 이 판을 사용하고 자기들의 미세한 교정들을 더해 출간하면서 19세기 말에는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성경이나 케임브리지에서 출간하는 성경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치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판’ 영어 본문의 우수성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자기들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어떻게든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미국 이베이에서 올린 글과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1769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출간한 킹제임스 성경이 있음을 보고는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1769년판이 아닙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든 1762년판을 1769년에 인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판은 그 판이 만들어진 해에 출간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출간될 수 있는데 영어 성경에 적혀 있는 연도는 판이 처음 출간된 연도가 아니라 그 판이 인쇄된 연도입니다.  그런데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종종 1769년 판을 1769년 개정본(1769 revision)이라고 부릅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가서 영어 revise를 찾아보면 는 1.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본다, 2. 다시 보다, 3. 향상이나 교정을 위해 자세히 보거나 읽는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1 intr. To look again or repeatedly at, to look back or meditate on, something. Obs.  †2.2 trans. To see or behold, to look at, again.  3. a.3.a To look or read carefully over, with a view to improving or correcting.  그러면 1769년 개정본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먼저 1611년 판과 비교해 보면 150년의 기간 동안 영어 철자가 고정되면서 철자가 바뀌었습니다. 가장 쉽게 이것을 설명하면 과거에 우리나라는 Corea로 불리다가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는 Korea로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이것은, 첫 글자가 C에서 K로 바뀌었으니 개정된 것(revision)이 맞습니다. 그런데 두 개를 읽어 보면 동일하게 코리아로 읽히고 누구라도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1900년 초반까지는 Corea로 쓰이다가 그 이후에 Korea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쇄상에서는 분명히 개정되었으나 읽는 측면이나 내용 면에서는 전혀 개정된 것이 없습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등이 1769년판을 1769년 개정본이라고 부르는 것은 철자 등이 바뀌어서 인쇄된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철자상 변화가 있으니 개정본이리고 불러도 문제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1611년판과 1769년판의 차이입니다. 1769년판은 인쇄상으로는 분명히 변화가 되었지만 내용은 단 하나도 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캐나다의 어떤 목사가 제가 킹제임스 성경이 개정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울분을 토하며 대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체 그분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일가요? 저는 적어도 35년 이상 동안 킹제임스 성경만 들고팠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위키 백과사전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분이 대노를 표출한 것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적개심과 저에 대한 적개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킹제임스 성경도 개정된 적이 있나요?”라고 물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의도를 잘 파악해서 답을 해 주어야 합니다.‘ 단순히 인쇄상의 변화를 의미하는 개정이 있었는지를 묻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면 됩니다.      그런데 인쇄상의 변화가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변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를 공격하려 하면 “개정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묻는 사람들의 의도는 킹제임스 성경도 개정되었으니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강단에 서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라고 외칠 때는 당연히 지난 400년 동안 내용 면에서 단 하나의 변화(개정)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울분을 토하는 목사들에게 일일이 대답하는 것이 사실 불필요한 일이지만 순진한 사람들은 이런 데 빠질 수 있으므로 위에서 설명한 대로 대답해 주시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우리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샬롤   패스터  
2023-07-31 09:35:45 | 관리자
<12종 무료 책 배송 시작 공지>   안녕하세요? 이미 여러 차례 공지한 대로 저희 교회에서는 2023년 미디어 선교의 일환으로 원하시는 모든 분들(1차분 10,000세트)에게 무료로 12권의 책들을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 성경 바로 보기 448쪽 2. 천국과 지옥 바로 알기 440쪽 3. 구원의 ABC 208쪽 4. 천사들의 미스터리 184쪽 5. 성경해석법 80쪽 6. 재림과 휴거 바로 알기 100쪽 7. 복음 전도 가이드 76쪽 8. 천주교와 기독교 어떻게 다른가? 9. 오순절 은사 운동의 역사와 정체 156쪽 10. 창조와 진화 140쪽 11. 왜 안하는가? 156쪽 12. 칼빈주의 바로 알기 120쪽 이 모든 책들이 지난 2주에 걸쳐 다 제작되어 내일 교회로 들어오고 곧바로 포장되어 무료로 받기 원하는 분들에게 다음 주 초에 다 배송될 것입니다. 12만부의 책자가 내일 한 번에 들어오고 5-60% 정도가 포장되어 나가니 더운 날에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집사/지역 인도자 형제님들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에 교회에 오시면 성도님들도 1가정당 1세트씩 가져가실 수 있으니 받아서 차에 넣든지 가방 등을 가져오셔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주변의 다른 분들에게도 이것을 전달해 드리기 원하면 그분들이 직접 링크로 들어와 주소 등을 남기라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치도 않는데 그냥 가져다주는 것은 낭비가 될 뿐이라 저희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12종 무료 책 배송 안내_2023년 미디어 선교>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doctrine)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바른 교리로 바르게 믿음 생활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23-07-28 15:36:56 | 관리자
케임브리지 출판사의 공식 답변: 표준 킹제임스의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은 없다.   안녕하세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는 영어 성경 번역의 저본으로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그것만이 순수하며 한글 킹제임스나 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에 쓰인 영어 본문들은 순수하지 않다는 주장을 지난 3개월 동안 줄곧 펴 왔습니다.     집요하게 흠정역 성경을 대적하며 비방과 공격을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몇 사람이 조사를 했고 그 결과 표킹 번역자가 말하는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이 확인되었고 결국 표킹 번역자는 1769년 옥스퍼드판 영어 본문을 구하여 거기에다 자기가 마음대로 변경 작업을 하여 소위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다음과 같이 실토하였습니다.   케임브리지판은, 케임브리지는 텍스트를 잘 안 줘요. 그래 가지고 그냥 인터넷에 있는 걸 자꾸 긁어야 되는데 너무 오래 걸립니다. 삼만 천백두 구절, 삼만 번을 못하기 때문에 1769년판 텍스트는 있어요. 옥스퍼드판. 그래서 그 텍스트를 가지고 입력해서 이 케임브리지판에 맞춰서 수정할 부분을 다 수정했어요. 그런데 하나 제가 간과했던 게 어퍼스트로피 s('s)를 빼는 거였네요. 이거는 잘 찾아 주셨습니다. 3판 나올 때 빼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오류가 아니라 원래 19세기의 문법이다. 오류가 아닙니다.   위에서 보듯이 표준역 번역자는 자기가 ‘1769년 옥스퍼드판’을 구해서 그 안의 영어 단어들을 자기 마음대로 고쳤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1769년 케임브리지판’이 아닙니다. 더욱이 케임브리지 출판사는 영어 본문을 주지 않는데 무엇을 근거로 1769년 옥스퍼드판을 고칠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만들기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 1769년 케임브리지판은 없다고 이실직고, 직접 들어 보세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도 반성은커녕 계속해서 표킹 번역자와 지지자들은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이 있다고 주장하므로 몇몇 사람들이 직접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 그런 판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에서 다음과 같이 공식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   소위 'Cambridge 1769 Standard Bible' 또는 이러한 용어의 조합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다른 질문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가 그 날짜에(1769년에) 텍스트에 대한 특정 편집 작업을 수행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생성된 텍스트에 대한 주요 편집 작업은 블레이니(Benjamin Blayney)가 수행했으며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판했습니다. 케임브리지는 결국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이 텍스트 개정판(1769년 옥스퍼드판)을 채택했고 그 결과 두 출판사에서 사용된 텍스트는 19세기 후반에 가서는 어느 정도 일직선으로 정렬되었습니다(즉 19세기 말에는 두 출판사가 사용하는 본문이 거의 서로 일치하게 되었고 결국 그 차이는 12개 정도의 미미한 것들임). Other questions have also been asked about a so-called ‘Cambridge 1769 Standard Bible’ – or using a combination of those terms. Again, we can be clear that there is no record of Cambridge undertaking any particular editorial work on the text at that date: The major editorial work to the text produced at that time was done by Benjamin Blayney and published by Oxfo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eventually adopted this textual revision some considerable time later to the extent that the text used by both publishers were more or less aligned by the late 19th century.   Bible Depart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Kind regards, Shani Goldstone Customer Service Representativ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ssessment Shaftesbury Road, Cambridge, CB2 8EA   -----------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한 번도 문제 삼지 않던 영어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가지고 - 그것도 존재하지도 않는 본문으로 - 지난 3개월 동안 성도들을 괴롭히고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킨 표킹 번역자와 주변 지지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28 11:30:22 | 관리자
안녕하세요? 몇 년 전에 저는 MBC의 주진우 등이 저의 영상들을 마음대로 짜깁기하여 저를 친일파로 몰아가는 것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국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그것은 거짓이니 그 영상을 고치라고 MBC에게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좌익들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보통 ‘악마의 편집’이라고 합니다. 영상의 일부분만 자르든지 혹은 앞과 뒤를 바꾸든지 해서 마치 내가 친일파 발언을 한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표킹 번역자 역시 악마의 편집에 대단히 능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영어 본문으로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표준킹제임스 진영에 직격탄을 쏘는 대니얼스>라는 글에서 저는 대니얼스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든 어떤 영어 본문을 써도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와 정확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어 본문으로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표준킹제임스 진영에 직격탄을 쏘는 대니얼스> 대니얼스의 영상 제목은 “나의 킹제임스 성경은 얼마나 순수합니까?"(How pure is my King James Bible?)입니다.       표킹 번역자가 악마의 편집을 해서 성도들을 속이는 대목은 9분 45초 이후에 있습니다. 9분 48초 나는 할 수 있으면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I won’t use the Pure Cambridge Edition if I can help it      표킹 번역자는 딱 이 부분을 보여 주면서 대니얼스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것은 나쁜 것(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분은 이 부분만 보고는 우리가 옳지 않고 표킹 번역자가 옳다고 생각하고는 블로그에 그대로 올려놓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마의 편집입니다. 대니얼스가 이 영상을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요? 영상 제목이 의미하듯이 대니얼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흠정역 성경이 채택한)만이 가장 순수하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조심하세요: 우리 흠정역 진영에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어떤 사람들이 미국에서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한 번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대니얼스의 이 말은 즉 미국이든 한국이든 킹제임스 영어 본문의 순수성을 가지고 이슈를 삼는 사람들 - 일종의 불순분자들 - 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니얼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성경 신자들이 다음과 같은 문제로 저에게 고민에 찬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킹제임스 성경은 순수한 성경인가요? 어떤 킹제임스 성경이 순수한 성경인가요?"  어떤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가서 오직 "퓨어 케임브리지 킹제임스 성경"만 순수하다고 그들에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온 것입니다. 이에 대해 대니얼스는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한 문제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여러 본문들의 차이점 목록(대개 12가지)을 한 개 한 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미세한 것들이 신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음도 알려줍니다. 대소문자 spirit 등 총 12개   The Cambridge vs. the Oxford Fallacy!(케임브리지판과 옥스퍼드판에 대한 잘못된 생각: 12개 미세 차이)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가진 킹제임스 성경은 소위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과 실제로 똑같이 훌륭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9분 45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한 개를 제외하고 모든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합니다.    So I use every King James Bible with one exception. 그 뒤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있으면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의 이름 즉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이라는 이름이 다른 킹제임스 성경들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I won’t use the Pure Cambridge Edition if I can help it. Because by its name, it claims to be pure which implies that other King Jmaes Bibles are impure. 다시 말해 대니얼스는 판에 상관없이 킹제임스 성경의 내용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데 본문의 순수함을 자랑하려는 어떤 사람들이 ‘퓨어 케임브리지판’만 순수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깨뜨리므로 자기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 등 본문에 아무 차이가 없는데 ‘퓨어’가 붙은 것을 쓰면 오해가 생길까 봐 자기는 안 쓰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대니얼스는 퓨어 케임브리지판이 잘못되어서 안 쓴다고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처럼 악마의 편집을 하여 9분 48초만 보여 주면 대니얼스의 의도가 완전히 왜곡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으면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을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I won’t use the Pure Cambridge Edition if I can help it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런 의심과 질문에 대해 대니얼스는 정확하게 딱 잘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든 결국 총 12구절에서 서로 미세하게 다른 데가 있고 나머지는 동일하다.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한 핵심입니다. 이 영상의 맨 마지막 결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이 가진 것은 순수한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이죠. 나는 킹제임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뉴킹제임스’나 ‘킹제임스 2’, ‘킹제임스 3’, ‘현대 영어 역본’ 등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바로 이 킹제임스 성경, 이것은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입니다.”   즉 이것은 어떤 킹제임스 영어 본문이든 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든..킹제임스 성경이기만 하면 된다!      So next time somebody says to you, “You don’t have the pure King James Bible.” you can say, “Sure I do.”  I have the King James Bible, not the “New”, King James “II”, “III”, “Modern English”, “Restored Name”, Just the King James Bible, God’s preserved words in English. It’s the pure words of God.” ---   진실한 바이블 빌리버 사역자들은 변개된 성경과 싸웁니다. 하지만 거짓 사역자들은  교리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판본들 사이의 차이를 들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판끼리 싸움을 붙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순수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진리의 표준입니다. 이것이 바이블 빌리버의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흠정역이든 한킹이든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단 한 번도 우리가 사용한 영어 본문이 가장 순수하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판을 써도 실제로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6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27 09:18:4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표준킹제임스 번역자는 1769년 표준 케임브리지판 영어 본문을 썼다고 거듭 주장합니다.     그런데 한 분이 케임브리지 대학에 문의한 결과 그러한 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장을 주었습니다. 다음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1. 표준 킹제임스 성경의 허구   2. 표준킹제임스는 가짜이다.   더 놀라운 것은 표킹 번역자가 족보가 없다, 실체가 없다고 비난하는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 흠정역 성경이 사용하는 영어 본문 -이 가장 정확하다고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웹사이트가 증언해 줍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웹사이트 내용 흠정역 성경은 1611년에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그 문학적 탁월성은 잘 알려져 있으며 그 단어와 문구는 영어에 독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400년 동안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예식용 성경으로 선택됩니다. 예를 들어 킹 찰스의 대관식에서 사용된 킹 제임스 성경입니다. 1611년에 두 번의 인쇄가 있었는데, 둘 다 당시의 왕의 인쇄인인 로버트 바커가 수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두 번째 인쇄에서 수정된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두 개의 가장 초기 버전에도 많은 변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KJV 성경은 16세기와 17세기에 편집자와 인쇄업자에 의해 일부는 우연히, 일부는 의도적으로 도입된 수백 가지의 작은 변경 사항이 있는 텍스트를 사용합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 가능한 텍스트는 실제로 1611년이 아니라 1769년 개정본입니다. 1909년에 케임브리지 학자인 William Aldis Wright는 1611년에 인쇄된 두 판 사이의 변형 목록과 함께 초판의 원본을 명확하고 읽기 쉬운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Cambridge는 고전 및 이전에 절판되었던 책에 대한 디지털 재인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해당 에디션을 재발행했습니다.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 was first published in 1611. Its literary brilliance is well known and its words and phrases have had a unique influence on the English language. Four hundred years on it is still widely used, and is the version of choice for ceremionial Bibles — for example, it is the King James Bible which will be used in King Charles' Coronation ceremony. There were two printings in 1611, both carried out by Robert Barker, the King's Printer of the day. The first contained a number of errors which were corrected in the second printing, so even the two earliest editions contain many variations. Most of today's KJV Bibles use a text with hundreds of small changes introduced by editors and printers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 some accidentally, some intentionally. The text commonly available now is actually that of the 1769 revision, not that of 1611. In 1909, Cambridge scholar William Aldis Wright represented the original text of the first edition in a clear and readable form, together with a list of variations between the two 1611 printings. Cambridge has reissued that edition as part of its digital reprint programme for classic and previously out-of-print books.   두 번째 그림(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일반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으로 알려진 성경의 승인된 버전은 1611년에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400년 동안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성경 번역본인 1611년 성경은 영어의 고전이 되었으며, 그 원본의 수많은 어구가 표준 관용 영어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판본은 이후의 편집자와 인쇄인에 의해 150년 이상 도입된 철자와 구두점의 보수적인 현대화를 통합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텍스트는 1611년이 아닌 1769년 개정판입니다. 그해에 왕의 프린터인 로버트 바커가 두 번 인쇄했으며 이 두 호 사이에는 많은 변형이 있습니다. 20세기 초 케임브리지 학자 William Aldis Wright가 제작한 이 에디션은 원본 텍스트를 명확하고 읽기 쉬운 형태로 정확하고 독특하게 표현하며, 1611년의 두 인쇄본 사이의 변형 목록은 기존의 팩시밀리 에디션이 제공할 수 없는 기능입니다. The Authorised Version of the Bible, commonly known as the King James Bible, was first published in 1611. The most widely accepted rendering of the Scriptures for four hundred years, the 1611 Bible has become a classic of the English language, and countless of its original phrases have passed into standard idiomatic English. Most present-day editions incorporate conservative modernisations of spelling and punctuation introduced over a century and a half by subsequent editors and printers: the text that is commonly available is that of the 1769 revision, not that of 1611. There were two printings undertaken by Robert Barker, the King's printer in that year, and there are many variations between these two issues. This edition, produced by the Cambridge scholar William Aldis Wright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ccurately and uniquely represents the original text in a clear and readable form, together with a list of the variations between the two printings of 1611 - a feature that no conventional facsimile edition can offer.   사실 저는 이런 것을 알지도 못했고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이 가장 정확한 본문이라는 말을 듣고 조사한 뒤 2011년 400주년 기념판 때부터 본문으로 써 왔습니다. 거짓 비방을 예방하기 위해 이것이 이때에 드러나도록 예비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단 한 번도 영어 성경 본문에 대해 거론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판을 쓰든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미국의 학자들과 성경 신자들로부터 들었고 책들을 읽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도서 3장 9절이 말하듯이 영어 성경 본문 족보 이야기는 무익하며 헛된 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와 논쟁과 율법에 관한 다툼들은 피하라. 그것들은 무익하며 헛되니라.   표킹 환불 가능하다고 함 위 두 개의 동영상 제작자는 표킹 번역자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영어 본문으로 사기를 쳤으므로 환불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영문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누구라도 더 이상 표준킹제임스성경 윤 모씨와 글 또는 영상물로 논쟁 벌이는 건 스스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1769 케임브리지 스탠다드판, 그런 것 없다는 게 분명해진 이상, 바로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검찰 거쳐 형사재판을 통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받게 된다네요. 사기 혐의로 경찰에 신고만 할 것이 아니라, 표준킹제임스성경 샘플을 케임브리지 출판사로 보내(DHL 등을 이용함이 바람직할 듯) 적절한 조치(손해배상은 물론, 향후 킹제임스성경 번역 자체를 못하도록 함)를 취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에 깊은 사랑 지니고 계시는 목사, 블로거, 유튜버 분들 중 왜 이토록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조차 상황 마무리를 위한 단순 명료한 행위, 행동,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정말 너무 답답하네요. 바라보고 있는 보통의 바이블빌리버 입장에서는요. 감히 묻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아직도 논쟁이나 하고 있으라고 하실까요? 논쟁하실 시간과 열정으로 경찰 신고부터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대응(그다지 현명하다 할 것도 없는)일 것이라 생각해요.         케임브리지 출판사 이메일   표준 킹제임스 1769년 케임브리지 표준 판이 존재하는지, 1909년 퓨어 케임브리지판이 정말로 케임브리지 대학이 출간한 것인지 등을 직접 확인하기 원하시는 분은 다음 이메일 주소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directcs@cambridge.org   제가 대충 다음과 같이 이메일 샘플을 만들었습니다. 이메일 뒤에 본인 이름만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밑에 있는 그림(표준 킹 영어 본문 페이지)을 다운로드해서 이메일에 붙이면 더 좋습니다. Dear Sir/Madam: Greetings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oday, I have a few things to ask. 1. In 2023, Mr. Yoon published a Korean translation of the King James Bible. In the opening section, he specified that the English text used is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I checked the Wikipedia and other literatures but could not find such thing as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I only find 1760, 1762, and (1763) Cambridge editions by Francis Sawyer Parris and 1769 Oxford edition by  Benjamin Blayney, https://en.wikipedia.org/wiki/King_James_Version Please tell me if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exists. 2. He also told in an youtube article that he got the text of the 1769 Oxford edition and modified it according to the Cambridge Standard edition by himself and claims that ‘this self made text’ is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Please tell me if anyone can make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without knowing the changes you have made over the years. 3. He also claims “the so called pure Cambridge edition of 1909" is worse than the edition he made, "The 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Crown Copyright".  Please tell me if Cambridge ever publish "the pure Cambridge edition of 1909". Your web site cleary says you did and you said also this is an accurate text for the 1611 King James Bible. https://www.cambridge.org/bibles/bible-versions/king-james-version/text-editions/authorised-version-english-bible-1611 I am looking forward to hearing from you soon. Thanks and God bless you Sincerely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악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07-24 10:58:07 | 관리자
미국에서 30년 이상 신학 공부하고 목회하고 현재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는 분의 글 어쨌든, My Bible is inspired by (or of) God이라고 설교하거나 말할 때는 영감을 받았다는 확실한 표현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면, 원본/원서상에서 이미 영감으로 주어졌고 계시록 이후에는 더 이상 새로운 영감이 없으며, 그 "영감성과 권위"가, 정확하게 번역되었다면, 그대로 옮겨졌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존재하지 않는 원본이 사본으로 정확하게 보전되었다면 사본 자체는 원본과 같은 효력과 권위가 있으며 수용됩니다.  법적 서류를 제출할 때도 원본과 대조해 보고 관공서, 정부, 권위있는 기관에서 발행한 모든 인증서를 인정하듯이 원본과 똑같은 권위와 법적 효력을 발생합니다.   국가기록원에 있는 원본 헌법이나, 중고생에게 주어진 헌법도 똑같은 헌법입니다. 대사관에 제출할 때도 잔고증명이니, 재산세와 같은 세금 증명, 호적관계 서류 등이 공증인이나 변호사가 싸인하고 공공기관의 직인이 있으면 원본과 같습니다.    번역한 것도 번역자와 공증인의 서명이 있으면 유효하지 않습니까? 물론 정확해야지요. 하여간, 표준역자나 저들이 주장하는 것, 정말 사악합니다. 노이즈 마켓팅을 하려는 사람들이 한 둘, 아닙니다. 
2023-07-20 04:18:10 | 관리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은 허구이다: 표준 킹제임스에 직격탄을 가하는 데이빗 대니얼스 표준킹제임스 진영이 이중 영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에 오늘은 영감에 대해 다시 말씀드리려 합니다. 온 세상의 모든 성경 신자들은 웨스트민스터 고백과 런던 침례교 고백에 있는 성경론을 믿습니다.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 편’의 8항(이것은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에도 100%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음).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영감과 보존과 번역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감과 보존과 번역   우리는 이것이 성경에 대한 전 세계 모든 성경 신자들의 바른 견해라고 믿고 이것을 조금 더 설명하려 합니다. 자, 그런데 럭크만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소위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면서 소위 이중 영감(double inspiration)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중 영감이란 한 마디로 구약과 신약 자필 원본들의 말씀들이 최초로 주어질 때 한 번의 영감이 있었고, 1611년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주어졌을 때 다시 한 번 그 안의 단어들이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611년에 또 한 번 영어로 원본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등에 따라 사실 거의 모든 정상적인 성도들이 믿듯이 역사 속에서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단 한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given by inspiration of God). 처음에 자필 원본 성경기록들이 주어질 때 영어나 우리말이 아니라 히브리 말이나 그리스 말로 단어들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inspired와 given by inspiration의 차이 자, 그러면 성경론을 배우는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글(영어로 기록된)을 읽으면 다음과 같이 기록된 데가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A. 내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inspired’ 말씀입니다.     The King James Bible in my hand is the God’s inspired word.   우리는 이를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inspired) 말씀'이라고 번역합니다.    국내의 럭크만주의자들은 바로 이것을 미끼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의 inspired와 딤후3:16의 given by the inspiration은 다른 말입니다.  B.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딤후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그런데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칙 출판사의 데이빗 대니얼스, 리플링거 등 유명한 인사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inspired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니 그들 역시 이중 영감(double inspiration)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칙 출판사의 대니얼스는 “번역본도 영감을 받을 수 있는가?”(Can a translation be inspired?)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만들어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이 이런 혼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번역본도 영감을 받을 수 있는가?       즉 대니얼스는 이 영상에서 위의 두 예 곧 A와 B의 inspired와 given by inspiration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니얼스는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끝부분(10분 56초 이후)에서 정확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 만일 여러분이 정확한 번역(역본)을 갖고 있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여러분이 ‘영감을 받은 성경기록들의 정확한 번역본’(an accurate translation of the inspired scriptures)을 갖고 있다면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당신은 새로운 언어로 ‘영감받은 성경기록들’(inspired scriptures)을 갖게 된 것입니다.   2. 그러니 만약 여러분이 번역을 정확하게 했다면, 그러면 그 번역본은 ‘다시 영감을 받은 것’(재영감, re-inspired)이나 ‘이중 영감’(double inspiration)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번역본(역본)은 단순하게 그 영감(즉 자필 원본의 영감)을 새로운 언어로 전달할 뿐입니다.    If you have an accurate translation, you have lost nothing. So if you have an accurate translation of the inspired scriptures, you have also lost nothing. You now have the inspired scriptures in a new language. And if you have translated correctly, then that translation is not “re-spired” or double inspiration. It simply carries that inspiration into a new language.    3. 지금은 이것만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지금 여러분 손에 킹제임스 성경, 즉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들을 완전히 정확하게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언어로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들(the inspired words of God)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For now remember, holding in your hands the King James Bible, a fully accurate translation of God's holy words of Greek and Hebrew, you have the inspired words of God in your language.   4.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그 말씀들(단어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서 빼거나 거기에 더하지 않았으므로 그것들은 동일한 영감(즉 자필 원본의 영감)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 안에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the inspired Word of God)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They carry that same inspiration since they have not added to or taken away from what God said. I believe that I have the inspired Word of God, translated into English in my King James Bible. God bless you and have a wonderful day.   이보다 더 명쾌할 수가 있습니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1611년에 이중 영감에 의해 주어진 또 하나의 원본이 아니고 자필 원본의 영감이 그대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의미의 ‘inspired’를 ‘영감이 있다’, ‘영감이 보존되어 있다’고 말하며 그런 글을 번역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inspired words of God)이라고 말합니다.   결론 심각한 럭크만주의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데이빗 대니얼스가 말하는 것에 동의할 것입니다. 정확하게 번역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다시 영감을 받은 것’(재영감, re-inspired)이나 ‘이중 영감’(double inspiration)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역본은 단순하게 자필 원본의 영감을 영어로 전달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번역한 우리말 흠정역 성경 역시 단순하게 자필 원본의 영감을 우리말로 전달할 뿐입니다.   내가 언제 킹제임스 성경에 영감이 없다고 하였나?     이중 영감으로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변화를 받아 온전한 진리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2023-07-19 15:55:27 | 관리자
영어 본문으로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표준킹제임스 진영에 직격탄을 쏘는 대니얼스 표준킹제임스(이하 표킹) 번역자는 보통 사람들보다 영어를 조금 잘한다고 생각하고는 자기주장을 펼치기 위해 이런저런 사람들의 영상과 글을 문맥 밖에서 자기 마음대로 인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인 것 같습니다. 다음 영상은 표킹 번역자가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미국 칙 출판사의 데이빗 대니얼스(David Daniels)가 킹제임스 영어 성경 본문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칙 출판사   제목은 “나의 킹제임스 성경은 얼마나 순수합니까?"(How pure is my King James Bible?)입니다.       지금까지 흠정역이든 한킹이든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단 한 번도 우리가 사용한 영어 본문이 가장 순수하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판을 써도 실제로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니얼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흠정역 성경이 채택한)이 가장 순수하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조심하세요: 우리 흠정역 진영에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어떤 사람들이 미국에서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표킹 번역자가 1769년 케임브리지 본문이 가장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표킹 번역자가 말하는 1769년 케임브리지 본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현재 표킹 영어 본문에는 적어도 46개의 에러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표준 1769 케임브리지 에디션(Standard 1769 Cambridge Edition) 만들기 즉 미국이든 한국이든 킹제임스 영어 본문의 순수성을 가지고 이슈를 삼는 사람들 - 일종의 불순분자들 - 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니얼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가 손에 들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이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이 커져 왔습니다.    그러나 불안한 추세가 있습니다. 많은 성경 신자들이 같은 주제로 저에게 고민에 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킹제임스 성경은 순수한 성경인가요? 어떤 킹제임스 성경이 순수한 성경인가요?"    그들은 자신의 킹제임스 성경이 절망적으로 부패했으며, 오직 "퓨어 케임브리지 킹제임스 성경"만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차이점 목록(대개 12가지)을 제시하고 그것이 신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목록이 그들의 신앙을 망치는 것입니다.    The Cambridge vs. the Oxford Fallacy!(케임브리지판과 옥스퍼드판에 대한 잘못된 생각: 12개 미세 차이) 일부 선의의 사람들이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 킹 제임스 성경'(줄여서 PCE)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한 문제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새 동영상 "나의 킹제임스 성경은 얼마나 순수한가?"에서 소위 문제가 되는 부분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킹제임스 성경은 소위 "퓨어 케임브리지 에디션"과 실제로 똑같이 훌륭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 이런 의심과 질문에 대해 대니얼스는 정확하게 딱 잘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옥스퍼드든, 케임브리지든, 퓨어 케임브리지든 결국 총 12구절에서 서로 미세하게 다른 데가 있고 나머지는 동일하다.  그러면서 대니얼스는 대소문자 spirit이 다른 6구절, further냐 farther냐 등을 다루는 한 구절 등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12구절이 사실상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킹제임스 성경의 순수성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The Cambridge vs. the Oxford Fallacy!(케임브리지판과 옥스퍼드판에 대한 잘못된 생각: 12개 미세 차이) 이 영상의 맨 마지막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다음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이 가진 것은 순수한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이죠. 나는 킹제임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뉴킹제임스’나 ‘킹제임스 2’, ‘킹제임스 3’, ‘현대 영어 역본’ 등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바로 이 킹제임스 성경, 이것은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입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아닌 다른 모든 영어 성경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So next time somebody says to you, “You don’t have the pure King James Bible.” you can say, “Sure I do.”  I have the King James Bible, not the “New”, King James “II”, “III”, “Modern English”, “Restored Name”, Just the King James Bible, God’s preserved words in English. It’s the pure words of God.” Now any English Bible that’s not the King James,  that’s another thing entirely. 표킹 번역자가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리플링거도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1769년 가짜 케임브리지판으로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표준킹제임스 표준킹제임스처럼 1769년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1769년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결론   진실한 바이블 빌리버 사역자들은 변개된 성경과 싸웁니다. 하지만 거짓 사역자들은  교리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판본들 사이의 차이를 들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판끼리 싸움을 붙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순수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진리의 표준입니다.   이것이 바이블 빌리버의 믿음입니다. 대니얼스의 영상을 본 어떤 분의 덧글입니다.   표킹 번역자는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영상에서 왜 퓨어 케임브리지 본문을 경계해야 하는가로 열심히 증거를 조작하며 떠들더니 끝내는 또 꾸며낸 술수로 밝혀지네요.    이제껏 보아 온 끝의 결론은 그는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증거들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보여 주며, 돌다리도 두들겨 볼 생각없는 순진한 사람들 마음을 훔치고 선동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9 14:22:17 | 관리자
불콩들로 만든 죽과 팥죽: 어이없는 표준킹제임스의 난센스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   성경에는 lentiles라는 말이 총 4회 나옵니다. 창25:34, 삼하17:28, 삼하23:11, 겔4:9 창25:34 Then Jacob gave Esau bread and pottage of lentiles; and he did eat and drink, and rose up, and went his way: thus Esau despised his birthright. 표준: 그때 야곱이 빵과 불콩들로 만든 죽을 에서에게 주었더니, 그가 먹고 마신 다음에 일어나서 자기 길을 갔더라. 이와 같이 에서가 자기 장자권을 멸시하였더라. 혹시 여러분 가운데 불콩들로 만든 죽이 무엇인지 아는 분 있습니까? 흠정역: 이에 야곱이 빵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그가 먹고 마신 뒤 일어나 자기 길로 갔더라. 이같이 에서는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려면 개역이나 흠정역, 한킹처럼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창25:30이 말해 줍니다.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지쳤으니 원하건대 바로 그 붉은 죽을 내가 먹게 하라,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 하였더라. And Esau said to Jacob, Feed me, I pray thee, with that same red pottage; for I am faint: therefore was his name called Edom. 창세기 2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에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배경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즉 에돔 혹은 에서라는 이름이 나오면 붉은색이 연상되어야 합니다. 창25:25    처음에 나온 자(에서)는 붉고 온몸이 털옷 같아서 그들이 그의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자, 불콩들로 만든 죽을 통해 붉은색을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말 팥죽은 당연히 붉은색을 연상시킵니다. 표킹 번역자는 창세기 25장 34절에 나오는 lentiles는 콩이고 팥은 콩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설명합니다. 그럴까요? 사전으로 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팥: 콩과의 한해살이풀.  성경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lentiles는 콩과 식물이고 붉은색을 띠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콩이냐, 팥이냐가 주제가 아니라 붉은 색의 콩과 식물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팥입니다. 영어 사전에 가서 lentiles를 살펴보면 렌틸콩 혹은 렌즈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표킹 번역자는 이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렌틸콩을 한 번만이라도 검색해 보면 렌틸콩, 즉 렌즈콩은 색깔이 붉은 것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렌틸콩: lentils 렌틸콩은 색상에 따라 크게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 갈색, 검은색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생산지에 따라서 얼룩이나 반점이 생기는 등 조금씩 다른 색깔의 품종이 전해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널리 심고 있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서반구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표킹 번역자는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불콩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콩의 하나로 알려진 불콩이 붉은색을 띤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 불콩이라는 말을 여기서 처음 들어 봤을 것입니다. 히브리어 사전에 가서 팥에 해당하는 말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팥: 스트롱 5742 아다쉬 `adash {aw-dawsh'} 창 25:34 불확실한 뜻을 가진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렌즈) 콩’:렌즈콩, 팥   원문은 ‘불확실한 뜻을 가진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이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불확실한 뜻을 가진 어근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Old Latin Vulgate에는 이것이 lentis라고 옮겨져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보고 있는 수정체, 즉 '눈, 렌즈'에서 나온 어원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 있을까요? 콩이 렌즈처럼 동그랗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 라틴 벌게이트'에서 보존되어 온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lentis라는 어근을 기초로 lentiles라는 단어를 넣게 된 것입니다. 즉 렌틸콩이라서 넣은 것이 아니라 어근을 따라 영문으로 옮겨 놓은 것을, 표킹 번역자는 lentiles라는 영문만 보고 지금 시대의 그냥 불콩(렌틸콩)이라고 번역을 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창세기 25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의 색이 붉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콩 종류로 만든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의 팥이 여기에 해당하는 가장 적합한 말입니다.   여기서 표킹 번역자의 난센스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팥들로 만든 죽, 혹은 팥들로 만든 빙수라고 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나요?    다 팥죽, 팥빙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팥죽, 팥빙수에는 팥이 하나만 들어 있을까요? 그래서 굳이 불콩을 쓰려고 하면 불콩죽이라고 해야지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고 하면 이미 해설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굳이 번역자는 불콩들로 만든 죽이라고 했을까요?   영 킹제임스 성경이 lentiles라고 복수로 했기 때문입니다. 표킹 번역자는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어 그대로 복수로 해야 한다고 저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중간에 있는 만든은 영어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없지요. 번역자가 그냥 슬그머니 넣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난센스라고 부릅니다.  헛된 말장난으로 성도들을 유혹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로마서 16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9 11:58:51 | 관리자
좀과 좀 나방의 차이: 표준킹제임스의 오류 성경에는 moth라는 단어가 구약에 7회, 신약에 3회, 총 10회가 나옵니다. 단순하게 영한사전에 가서 moth를 찾으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① 나방. ② 옷좀나방(clothes ~); (the ~) 《주로 英》 좀먹음 ┈┈• get the ~ (옷이) 좀먹다. ③ 《비유적》 등불〔유혹〕에 모여드는 것〔사람〕; 경쾌한 비행기. 1번 의미로 좀 나방이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moth는 2번 용례 뒤의 ‘좀먹는다’의 의미를 가진 벌레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표준역은 이사야 50장 9절의 moth를 좀이 아니라 좀 나방으로 번역을 해야 맞는다고 합니다.  Behold, the Lord GOD will help me; who is he that shall condemn me? lo, they all shall wax old as a garment; the moth shall eat them up. 표킹: 보라,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리라. 나를 정죄할 자가 누구냐? 보라, 그들은 모두 한 의복같이 낡아지리라. 좀나방이 그들을 먹어 치우리라.   반면에 흠정역을 포함한 다른 모든 한국어 성경들은 moth를 좀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보라,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가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같이 낡아질 것이요,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무위키에서 좀(곤충)에 대한 정의를 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좀: 곤충강 좀목에 속하는 곤충으로, 지표면 위의 이끼, 낙엽층이나 인가에서 살고 있는 미소동물이다. '좀먹다'라는 표현의 어원이다. 대부분 자유 생활을 하며 동작이 기민한 편이다. Nicolettidae과 등의 몇 종은 식물 해충이며 좀과의 대부분은 인가에 살면서 종이, 풀, 직물 섬유, 전분 등을 먹고 산다. 좀 벌레에서 좀먹다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자, 지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래 구절들을 읽어 보시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욥4:19 흙집에 거하며 티끌 안에 자기 기초를 두고 좀 앞에서 무너지는 자들이야 얼마나 덜 신뢰하시겠느냐? 욥13:28 이에 그가 썩은 물건처럼, 좀먹은 옷처럼 소멸하나이다. 욥27:18 그가 좀같이 자기 집을 짓는데 그것은 파수꾼이 만드는 초막 같으니라. 시39:11 주께서 불법으로 인해 사람을 책망하여 바로잡으실 때에 그의 아름다움을 좀이 먹은 것같이 사라지게 하시니 분명히 모든 사람은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사51:8 좀이 그들을 옷같이 먹고 벌레가 그들을 양털같이 먹을 것이나 내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내 구원은 대대로 있으리라. 호5:12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같이 되며 유다 집에게는 썩게 하는 것같이 되리라. 마6:19-20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서는 좀과 녹이 부패시키며 거기서는 도둑들이 뚫고 훔치느니라. 눅12:33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 구제하며 너희 자신을 위해 낡지 않는 가방들 곧 하늘들에서 없어지지 않는 보물을 예비하라. 거기서는 도둑도 가까이 오지 못하고 좀도 부패시키지 못하느니라.   이 모든 구절에서 moth는 옷을 먹어 없애고 무언가를 썩게 하고 부패시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성경을 상식적으로 풀게 하려면 이 모든 구절에 좀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구절들에 좀 대신 좀 나방을 넣으면 문맥상 말이 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 '좀'이라면 금방 이해를 하지만, 좀 나방이라면 “이게 뭔 소린가?” 하지 않겠습니까?    ‘좀먹다’의 기원이 좀이라는 벌레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국어사전, 좀먹다: 좀이 쓸다.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허송세월하지 말기 바랍니다.   딤후2:15-17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16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17 그들의 말은 궤양처럼 파먹을 터인데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2023-07-19 11:00:16 | 관리자
히브리식 표현과 우리말 번역을 착각하는 표준킹제임스의 또 다른 표준 오류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쭉 읽다 보면 문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It came to pass’, ‘it shall come to pass’ 등의 구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It came to pass: 453회 It shall come to pass: 120회  표킹 번역자는 이것을 해설해서 첨가하고는 흠정역 성경이 무려 2,000 단어를 삭제하였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이 예로 든 것은 스가랴서 13장 2절입니다. 슥13:2 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saith the LORD of hosts, that I will cut off the names of the idols out of the land, and they shall no more be remembered: and also I will cause the prophets and the unclean spirit to pass out of the land. 흠정역: 군대들의 주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 표준: 그리고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날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들을 그 지역에서 끊겠노라. 그리하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내가 예언자들과 불결한 영을 그 지역에서 사라지게 하겠노라. 영어 문장을 보면 그것은 It shall come to pass... that...의 형태이며 이것은 that 이하의 일이 생길 것이라는 구문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표킹 번역자는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으므로, -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1611년에 영어로 원본을 또 다시 주셨다는 식으로 믿으므로 - 영어의 모든 글자를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난센스를 수도 없이 범합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표킹은 It shall come to pass를 번역하느라 ‘그날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라는 해설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고 해설인데 해설 자체도 잘못되었습니다. 표킹대로 믿으면 그날에 생기는 일은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들을 그 지역에서 끊겠노라’ 하나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다음의 일은 그날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구조가 그렇습니다.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흠정역은 그날에 세 가지가 생깁니다. 1.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2.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3.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    이렇게 되어야 정상적인 번역입니다.    어떤 문단의 it came(shall come) to pass...that...구절에서 that 이하의 일이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표킹처럼 이런 일이 있었으니 식으로 하면 that 이하의 여러 일 가운데 처음 것만 이런 일에 해당합니다. 영어 KJV 번역을 하면서 수백 번 나오는 이것을 30년 동안 성경을 번역한 번역자가 몰라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히브리식 표현을 우리말 번역에서 그대로 가져오면 이런 혼란과 부정확함이 생기기 때문에 흠정역을 포함한 모든 한글 성경들이 표킹처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It shall come to pass는 히브리 말 하야(스트롱 번호 1961) 한 단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인데 하야는 단순히 존재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킹처럼 ‘이러한 일이 있으리라'라는 단어 자체가 그 안에 없습니다.    그냥 '하야'라는 원어가 영어 번역에서 영국 사람들이 쓰는 방식대로 'And it shall come to pass'로 번역된 것입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혹은 지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영어 시간에 배우는 방식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는 일이 그날에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의 it은 that 이하의 모든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우리말답게 표현하면 흠정역처럼 “그 날에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한글 성경이 다 이러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번역입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영어의 문법 구조와 우리말의 문법 구조가 똑같습니까?  우리말 성경의 독자들은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번역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왜 영어로는 저렇게 번역되었을까요?  영어로는 저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문법에 맞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 가면 It...that...구문을 얼마나 많이 봅니까? 그런 구문은 그들의 말을 영어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it shall come to pass에서 shall은 미래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스가랴서 13장 2절의 문맥을 볼 때, 그날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라는 해설을 넣어 초등학교 수준의 글이 되도록 해야 할까요? 아니면 미래를 나타내는 말로 that 이하가 다 미래가 되게 해야 할까요? 흠정역처럼 “그 날에 내가 그 우상들의 이름을 그 땅에서 끊어 그것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며 또한 대언자들과 부정한 영을 그 땅에서 사라지게 하리라.”로 하면 It shall come to pass의 shall이 다 살아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표킹은 약 500여 군데서, 이런 일이 있으리니, 이런 일이 있었으니 등의 해설을 집어넣었습니다. 창4:14도 비슷합니다. Behold, thou hast driven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 of the earth; and from thy face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vagabond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여기의 끝에는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라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중학생들 방식으로 이것을 직역하면 ‘나를 찾는 모든 자가 나를 죽이는 일이 있으리이다'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게 하려면 흠정역처럼 되어야 하고, 그래서 한국의 모든 성경들이 이런 식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보소서, 주께서 이날 지면으로부터 나를 쫓아내셨으니 내가 주의 얼굴을 떠나 숨으리이다. 내가 땅에서 도망자와 방랑자가 되리니 나를 찾는 모든 자가 나를 죽이리이다, 하매 표킹: 보소서, 당신께서 이날에 땅의 표면에서 저를 몰아내셨나니, 저는 당신의 얼굴로부터 숨겨질 것이며, 저는 땅에서 도망자와 방랑자가 될 것이옵니다. 그리하면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저를 발견하는 모든 자마다 저를 살해할 것이옵니다. 보시다시피 표킹은 “그리하면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저를 발견하는 모든 자마다 저를 살해할 것이옵니다.”라고 하여 해설을 하면서 지저분하게 불필요한 것들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렇게 하고는 표 번역자는 교묘하게 요한복음 14장 29절의 come to pass를 언급합니다.  요14:29 And now I have told you before it come to pass, that, when it is come to pass, ye might believe. 흠정역: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금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여기를 보면 흠정역이든 무슨 역이든 한국의 모든 성경들은 it come to pass를 ‘그 일(그것)이 일어나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표킹 번역자는 이것을 보여 주면서 여기서는 come to pass를 일어나다로 번역하고 구약의 500여 군데에서는 왜 그렇게 번역을 안 했느냐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즉 자기는 영어 그대로 번역했고 다른 성경들은 500군데(약 2,000개 단어)를 삭제하였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표킹이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come to pass로 번역된 그리스어 기노마이는 신약 성경에 600여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was done(마1:22)', 'be made(마 4:3)'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어 사전을 보면 이 단어의 뜻과 용례가 다음처럼 다양하게 나와 있습니다. 기본동사의 연장형과 중간태; (‘발생하게’)‘되는 원인이 되다’, 즉 (재귀형)‘되다’(‘되기 시작하다’), (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 강조의 의미로) 아래와 같이 폭넓게 사용됨; 일어나다, 모이다, 되다, ~에 일어나다, 스스로 행하다, (지나가기 위해)가져오다, (지나가기  위해)오게 되다, 계속하다, 나누이다, 되어졌다, 끌어내다, 끝맺게 되다, 떨어지다, 끝내다, 따르다, 발견되다, 이루어지다, 하나님이 금하시다, 자라다, 일어나다, 가지다, 지키다, 만들다, 결혼하다, 되도록 정해지다, 착수하다, 지나다, 수행되다, 출판되다, 요구하다, 보이다, 보여지다, 취해지다, 변화하다, 사용하다, ~이 되다, ~일 것이다, ~할 작정이다, 쓰여졌다 <마5:45; 눅1:8; 롬3:19>. to cause to come being into; 요한복음 14장 29절에서 영어 성경 번역자들은 문맥에 맞게 'come to pass'라고 번역하였을 뿐이고 흠정역 성경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말 성경은 이것을 번역했을 때 그 뜻이 그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표킹 번역자의 말대로 구약 성경 영문과 신약 성경 영문의 원어 구조는 똑같지 않습니다. 다만 영어로 번역할 때는 그렇게 같은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이러니 표킹 번역자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 이중영감설이 얼마나 잘못된 개념입니까?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1611년에 하나님에 의해 또 하나의 향상된 계시로서, 원본으로 주어졌다는 생각에 그들은 부정관사 a, 접속사 and 하나까지 빼지 않고 다 한국어로 바꿔 놨으니 번역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다음 글들이 표준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비둘기, 나귀, 개미 등은 여자이고 등잔대, 언약궤, 까마귀 등은 남자인가? 표준역의 문제> And를 거의 다 ‘그리고’로 번역해야 한다는 표준 킹제임스의 부적절한 주장 부정관사 a를 ‘한’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하나님을 그릇되게 표현한 표준 킹제임스의 치명적 오류   표킹 번역자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모루를 치려 해도 결국 자기의 망치들만 깨지고 창피만 당할 뿐입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성경을 경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구글 번역기나 AI 번역기를 돌리는 수준으로 성경을 번역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성경을 막 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a는 다 '한'으로, and는 다 '그리고'로 번역하고, 비둘기, 개미는 그녀로 번역하고는 "하나님이 이렇게 성경을 영어로 주셨으니 우리말 번역이 조금 이상하면 어떠냐,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지 인간의 말이 이상한 것이 대체 무슨 문제냐?"라고 주장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심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영어 KJV는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사본들에서 영어로 - 영어에 맞게 - 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의 모든 구조를 그대로 살려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도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딤후2:16-17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16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17 그들의 말은 궤양처럼 파먹을 터인데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2023-07-18 15:37:35 | 관리자
여인은 옥합을 산산조각 나게 깨뜨렸을까? 표준킹제임스의 어처구니없는 추측 오류 마가복음 14장 3절에는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기사가 있습니다. And being in Bethany in the house of Simon the leper, as he sat at meat, there came a woman having an alabaster box of ointment of spikenard very precious; and she brake the box, and poured it on his head. 그분께서 베다니에 계시면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나드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려 그분의 머리에 부으매 표준킹제임스는 여기의 alabaster box를 설화석고 함으로 번역해야만 하는데 다른 성경들이 이것을 옥합으로 오역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옥합은 금강석처럼 단단하여 깰 수가 없고 석고처럼 단단하지 않아야만 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 귀중한 향유를 담는 용기는 그리스어 알라바스트론(alabastron)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이집트의 테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소아시아의 갑바도기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반투명 고급 대리석 알라바스터(alabaster)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고급 향수병이나 화장품 병 혹은 꽃병 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알라바스터는 푸석푸석한 석고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한 옥합이라고 할 때 옥은 경옥 즉 딱딱한 옥이 있고 연한 옥 즉 연옥이 있습니다. 이런 연옥은 석회석이 굳어서 만들어지는 대리석 계통의 광물이고 이런 것을 다듬으면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용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영어 KJV의 alabaster는 표킹 번역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깁스 할 때 사용하는 푸석푸석한 석고가 아니라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단단한 용기, 즉 연옥이나 부드러운 대리석 등으로 만들어진 용기입니다. 그런데 왜 표킹 번역자는 그 용기가 딱딱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마가복음 14장 3절에서 그 여인이 옥합을 깼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 맞추기 위해 그 용기가 깁스처럼 생긴 석고여야만 여인이 깰 수 있지 대리석 용기를 어떻게 여인이 깰 수 있느냐는 것이 번역자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표킹 번역자는 상자를 깨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의 초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를 위해 그 여인이 그분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박스를 깨다(break the box)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표킹 번역자의 생각대로 여인이 석고 통을 부셨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석고 통이 산산조각 나면서 그 안의 향유가 다 바닥으로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인은 황급히 걸레를 달라고 해서 바닥에 쏟아진 기름의 일부를 모읍니다. 그러고 나서는 먼지와 뒤범벅이 된(유대인들은 신발을 신고 다님) 그 지저분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기사가 이런 것을 연상하게 합니까? 이것은 아수라장이 아닙니까?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여인이 옥합을 깨고 향유를 손에 담아서 그분의 머리에 붓고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지는 것이 연상됩니까? 자, 그러면 표킹 번역자의 착각은 무엇일까요? 많은 목사들이 그 여인이 옥합이든, 석고 통이든 들어서 바닥으로 내던져 산산조각 낸 것으로 이해하고 설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 옥합의 나드 향유는 가격이 1년 치 봉급 정도가 되는 매우 비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향유가 새어 나가면(액체로든 기체로든) 안 되므로 이런 향유 병은 봉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만 향유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와인 병도 코르크 등으로 봉인되어 있듯이). 그러므로 상자를 깨다(break the box)는 상자를 들어서 바닥에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자의 봉인을 떼는 것을 말합니다. 그 여인은 옥합의 봉인을 떼고 기름의 일부를 손에 담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주석가 중 하나인 앨버트 반즈와 아담 클라크도 그렇게 말합니다.  반즈 여인이 박스를 부수었다: 이것은 그녀가 상자의 "봉인"을 부수어 부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향유 상자는 종종 밀봉되거나 왁스로 고정되어 향수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깨는 것이 불필요하고 또 초유의 비상사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상자 자체를 부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깨진 상자나 깨진 병에서 그녀는 그분의 머리에 쉽게 향유를 부을 수 없었을 것이다. [And she brake the box] This may mean no more than that she broke the "seal" of the box, so that it could be poured out. Boxes of perfumes are often sealed or made fast with wax, to prevent the perfume from escaping. It was not likely that she would break the box itself when it was unnecessary, and when the unguent, being liquid, would have been wasted; nor from a broken box or vial could she easily have "poured it" on his head. (from Barnes' Notes, Electronic Database Copyright ?1997, 2003, 2005, 2006 by Biblesoft, Inc. All rights reserved.) 클라크 오히려 그녀는 봉인을 뜯었다. - 이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번역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그 자체로 매우 귀중한 상자가 내용물을 꺼내기 위해 깨질 가능성은 없다. 2. 깨진 조각이 우리 주님의 머리와 여인의 손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일은 매우 부적절했을 것이다(파편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고려하면). 3. 부서진 조각들에서 기름을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4. 향수를 담고 있는 병을 밀랍으로 밀봉하는 것이 동방 국가들의 관습이었다. 그래서 그런 상자나 병의 내용물에 접근하기 위해 봉인을 뜯는 것 이상의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그 일을 이 여자가 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봉인을 깼을 때 그녀는 액체 연고를 자기 손에 쏟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병이나 상자를 깨뜨렸다면 그녀가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She brake the box] Rather, she broke the seal.-This is the best translation I can give of the place; and I give it for these reasons: 1. That it is not likely that a box exceedingly precious in itself should be broken to get out its contents. 2. That the broken pieces would be very inconvenient if not injurious to the head of our Lord, and to the hands of the woman. 3. That it would not be easy effectually to separate the oil from the broken pieces. And, 4. That it was a custom in the eastern countries to seal the bottles with wax that held the perfumes; so that to come at their contents no more was necessary than to break the seal, which this woman appears to have done; and when the seal was thus broken, she had no more to do than to pour out the liquid ointment, which she could not have done had she broken the bottle.  (from Adam Clarke's Commentary, Electronic Database. Copyright ?1996, 2003, 2005, 2006 by Biblesoft, Inc. All rights reserved.) 사람을 속이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여자가 에수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그분의 머리에 부어 최상의 일을 했다는 것이고 우리 주님은 이것을 칭찬하십니다.   이런 핵심은 내던져 버리고 옥합을 바닥에 던져서 산산조각 깨는 것에 주안점을 두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치한 논쟁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딤후2:15-17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16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커져서 더욱더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에 이르리라. 17 그들의 말은 궤양처럼 파먹을 터인데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2023-07-18 12:51:16 | 관리자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은 몰몬교의 대리 침례(Proxy baptism)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어떤 사람들이 고전15:29를 이용하여 흠정역 성경이 몰몬 교리를 가르친다는 거짓 주장을 편다고 하기에 간략히 글을 올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들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고전15:29 Else what shall they do which are baptized for the dead, if the dead rise not at all? why are they then baptized for the dead? 흠정역: 그렇지 아니하여 만일 죽은 자들이 결코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이유로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느냐?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 당시에 이교도들이 이미 죽은 자들을 대신해서 침례를 받는 풍습(proxy baptism)이 있었고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도 이런 풍습을 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라고 번역하지 않고 ‘죽은 자들을 위하여’ 혹은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라고 번역합니다.  대체와 대신도 모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는 흠정역이 몰몬 교리를 지지한다고 어리석은 주장을 폅니다.    이 글을 읽으면 대체하다가 얼마나 합당한 말인지 알 것입니다. ‘대신하여’ 혹은 ‘위하여’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않아 침례를 안 받았는데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 죽은 자를 위해 대신 침례를 받으면(대리 침례) 구원받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바울이 이런 이단 교리를 지지하였단 말이 됩니다. 지금 바울이 고전 15장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부활, 그것도 구원받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것인데 바울이 부활 교리를 증명하려고 이런 이교도들의 사상을 인용하고 있을까요? 현재 몰몬 교도들은 이런 이교도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여 지금도 대리 침례(proxy baptism)라는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  말일 성도 교회(몰몬)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 대리인 역할을 하며 이미 사망한 동성(남성은 남성대리인,여성은 여성대리인) 사람을 대신하여 침수 세례를 받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침례는 몰몬교 성전에서만 행해지는 교회 의식이며,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침례가 필요하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In the practice of the LDS Church, a living person, acting as proxy, is baptized by immersion on behalf of a deceased person of the same sex. Baptism for the dead is an ordinance of the church, performed only in temples, and is based on the belief that baptism is required for entry into the Kingdom of God. 우리는 결코 이런 것을 믿지 않으며 성경이나 사도 바울도 이런 것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 거의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것의 의미 자, 그러면 baptism for the dead는 무슨 뜻일까요? 어떤 사람의 주석이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문맥에 의거하여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면 의미를 알 수 있으므로 30-32절을 보겠습니다. 30 또 우리가 무슨 이유로 매시간 위험 속에 서 있느냐? 31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지고 있는 기쁨 즉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들의 방식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거든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내일 우리가 죽을 터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자. 29-32절 전체는 예수님을 믿다가 순교까지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그들이 죽기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믿을까요? 몸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9절만 따로 떼어 내어 몰몬 교리를 가르치면 안 됩니다. 29절의 이 말은 흠정역 성경이 말하듯 죽은 자들(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대체하여(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침례를 받는 자들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군대에서 순교자가 많이 나와도 그리스도의 군대는 계속해서 구원받은 새  성도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이런 순교의 길을 갈까요? 몸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for는 ‘대신하여’, ‘위하여’가 아니라 ‘대체하여’입니다.  표준킹제임스는 ‘대신하여’, ‘위하여’를 피하기 위해 억지로 ‘인하여’로 번역하였는데 여기의 ‘for’에는 ‘인하여’라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1. 스코필드 성경의 증언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신자들이 비워 둔 물리적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29절의 생각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함에 따라 그들의 자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설 준비가 된 새로운 개종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주석가는 이것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방금 살해당한 동료들을 대체하여 전투에 나서는 병사들의 대열"에 비유합니다(The Works of the Rev. P. Doddridge, Vol. 9, Leeds, 1805, p. 99).  C. I. 스코필드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없다면 왜 삶을 위험에 빠뜨리고 이 삶의 혜택을 상실합니까?” (The Scofield Study Bible III, NKJV,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 1,593). Those baptized for the dead are those who are taking the physical place left vacant by believers who have already died. The idea of 1 Corinthians 15:29 is that, as Christians are martyred, their places are continually being filled by new converts, ready to take a stand for Christ. One commentator likens this to “ranks of soldiers that advance to the combat in the room of their companions who have just been slain in their sight” (The Works of the Rev. P. Doddridge, Vol. 9, Leeds, 1805, p. 99). C. I. Scofield paraphrased the verse this way: “Of what value is it for one to trust Christ and be baptized in the ranks left vacant by the believing dead, if there is no resurrection for believers? Why place life in jeopardy and forfeit the benefits of this life, if there is no life after death?” (The Scofield Study Bible III, NKJV,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 1,593). 2. Biblical Illustrator라는 세계 최대 고전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신학 박사 P. J. Gloag, D.D.)   고린도전서 15장 29절 주석 I. 구절의 연결   이것은 20절과 연결되어 있다. 21-28절은 중간 구절이고 괄호에 해당된다. 바울은 부활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허무함에 대해 말했다(19, 20절). 그런 다음 ‘첫 열매’라는 단어가 시사하듯 부활의 순서에 대해 설명한 후에 그는 자기의 주장을 재개한다. "그렇지 아니하여"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죽은 자들을 대체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이 구절은 앞의 구절들(21-28)과 분리되어 있는 반면에 뒤따르는 구절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30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을 믿는 우리의 인내하는 고난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II. 사도의 생각 1. 그의 주요 주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파생된 것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따라서 "너희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 가운데 있다"고 증언하면서 "우리가 거짓 증인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증거요 보증이다. 2. 부활이 없다면 죽은 신자들은 멸절되었고(18절) 그들의 기독교는 고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 실존의 비참함을 증가시켰을 뿐이다(19절). 그러나 이것은 인정할 수 없는 결과이다(20절). 3. 이와 유사하게 사도는 부활이 없다면 믿는 자들의 모든 시련(고통과 고난)이 헛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관행이 아니라 에피쿠로스의 관행이 더 합리적이다(30-33절). 이제 이 29절 본문은 바로 이것에 대한 논증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을 대체하는 침례는 신자들의 고난과 연결되어야 한다. III. 따라서 29절 본문은 죽은 자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한 침례를 의미한다. 1. 사도는 다른 기독교인들을 계승하는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을 보여 준다. 죽음으로 그들의 행렬(대열)이 줄어들었을 때 다른 사람들(새로운 신자들)이 그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급히 들어왔다. 그러나 부활이 없다면 왜 그들이 그렇게 하겠는가? 왜 그들은 믿음을 위해 이와 같은 고난을 자진하여 감수하는 것인가? 이러한 해석은 다음과 잘 일치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고귀한 생각을 주는 것인가? 새로 구원받은 자들은 이전에 침례 받은 자들이 싸우다가 죽자 그들의 대열의 뚫린 틈을 메워 가며  "대열을 채우고 동료들이 쓰러진 전투에서 싸운다. 이것은 박해의 시대에 듣던 말 즉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을 중명해 준다.  2. 이 해석은 우리에게 침례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견해를 제공한다. 그것은 침례 받은 산 자들(새로 믿은 자들)과 침례 받은 뒤 죽은 자들(순교한 자들)을 연합시킨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큰 군대에 입대하는 의식이다. 그것은 교회의 영속성을 보장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지니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계승을 교회에 제공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엄숙한 헌신이며, 우리의 선조들이 수행했던 의무를 우리에게 부과하며,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보상을 우리가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얼마나 대단한 말인가?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을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   로마서 17장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Baptism for the dead: -- I. THE CONNECTION OF THE PASSAGE. It is connected with ver. 20, the intervening verses being a parenthesis. Paul has been speaking of the vanity of the Christian life apart from the resurrection (vers. 19, 20), and then after a digression on the order of the resurrection, suggested by the word "first-fruits," he resumes his argument. "Else," if Christ be not risen, "what shall they do that are baptized for the dead?" But whilst the passage is thus disconnected from what precedes, it is directly connected with what follows (ver. 30). If Christ be not risen, what is the use of our enduring sufferings for our faith in Him? II. THE APOSTLE'S TRAIN OF THOUGHT. 1. His chief argument is that derived from the resurrection of Christ. "If there be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n is not Christ risen," consequently "your faith is vain, ye are yet in your sins," and in testifying to it "we are found false witnesses." But we have the most convincing proofs, from numerous and unquestionable witnesses, of Christ's resurrection, which is a proof and pledge of ours. 2. If there be no resurrection, then dead believers are annihilated (ver. 18), and their Christianity, as it is inseparably connected with suffering, has augmented the misery of human existence (ver. 19). But this is a consequence that cannot be admitted (ver. 20). 3. And analogous to this the apostle argues that if there be no resurrection, all the trials of believers are useless; not the practice of the Christians, but that of the Epicureans, is reasonable (vers. 30-33). Now it is evident that it is to this argument that the text belongs; therefore, baptism for the dead must be connected with the sufferings of believers. III. The text therefore means BAPTISM TO FILL THE PLACE OF THE DEAD.   1. The apostle represents one set of Christians succeeding another: when their ranks were thinned by death others rushed in to supply their place. But why so if there be no resurrection? Why do they voluntarily submit to like suffering for their faith? Such an interpretation agrees well with what follows. And what a noble idea does this give of Christians. They fill up the ranks and fight in the battle in which their companions have fallen. And what a touching scene it must have been in times of persecution to see the baptized, like soldiers, occupying the breach which death had made in their ranks, thus verifying the observation that "the blood of the martyrs is the seed of the Church." 2. This interpretation gives us a striking view of the nature of baptism. It unites the baptized living with the baptized dead; it is the ceremony for our enrolment into the great army of the living God; it ensures the perpetuity of the Church, and supplies it with a constant succession of those who bear the name of Jesus; it is a solemn consecration to the service of Christ, and imposes upon us the duties which our predecessors performed, and enables us to look forward to those rewards which they now enjoy. P.J. Glagg, D.D. (from The Biblical Illustrator Copyright ?2002, 2003, 2006 Ages Software, Inc. and Biblesoft, Inc.)
2023-07-18 11:30:39 | 관리자
영어 관용구의 God을 다 하나님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난센스: 표준킹제임스의 다른 표준 오류   1. Would God   이전에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God에 대해 물었습니다. -------------   제가 잘 몰라서 한 가지 여쭈려고 합니다. 왕하5:3 And she said unto her mistress, Would God my lord were with the prophet that is in Samaria! for he would recover him of his leprosy. 흠정역: 그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대언자와 함께 계신다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분의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니 위의 영어 구절을 보면 “Would God my lord...”로 되어 있는데 왜 여기서 하나님을 번역하지 않았는지요? 즉 “내 주께서”가 아니라 “하나님 내 주께서”로 번역이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답을 드립니다. Would God 자체는 기원(祈願) 즉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비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민11:29, 14:2; 20:3, 신28:67; 삼하18:33 등에도 동일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어에서 간절히 비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 원어 성경에는 God(히브리어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원어 achalay(스트롱 번호 305)는 그냥 간절히 비는 것을 뜻하는데 그것을 영어로 옮기면서 강렬하게 소원을 비는 의미의 Would God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즉 영어식 기원의 표현입니다. 표준: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여주인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의 주를 사마리아 안에 있는 예언자와 함께 있게 하신다면 좋겠나이다!---.” 하였더라 표킹처럼 하면 치졸한 번역이 됩니다. 번역이 꼬이게 됩니다. 민수기 11장 2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Moses said unto him, Enviest thou for my sake? would God that all the LORD's people were prophets, and that the LORD would put his spirit upon them!   이중영감설에 빠진 표준역은 다음과 같이 이상하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표준: 주의 백성 모두가 예언자들이 되어 주께서 그들 위에 그분의 영을 두시기를 하나님께 바라노라! 이것은 치졸한 번역입니다. 왜냐고요? 앞에 '주(LORD)께서'라고 해 놓고 뒤에서는 또 '하나님께'(God)라고 하면 주와 하나님이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간절한 바람을 나타내는 영어식 표현입니다. 이런 데서 영어의 하나님을 번역하면 오역 내지는 졸역 혹은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말 번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이 있어야 합니다. 민20:3을 보겠습니다. And the people chode with Moses, and spake, saying, Would God that we had died when our brethren died before the LORD! 흠정역: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며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주 앞에서 죽을 때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표준: 그리고 백성이 모세를 공박하며 이같이 일러 말하였더라. “우리 형제들이 주 앞에서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도 죽게 하셨더라면 좋았으리라! 이런 구절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표킹처럼 하나님을 집어넣으면 안 됩니다. 히브리말에 하나님이 없고 우리말로는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의 의미로 번역하면 됩니다.    표킹 번역자처럼 킹제임스 성경의 이중 영감을 믿는 사람들이 주로 영어 그대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넣는데 이것은 난센스입니다.    2. God save the king   이와 관련해서 “God save the king!”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총 7회). 한 예를 들겠습니다.   삼상10:24, And Samuel said to all the people, See ye him whom the LORD hath chosen, that there is none like him among all the people? And all the people shouted, and said, God save the king.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주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온 백성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없느니라, 하니 온 백성이 외치며 이르되, 왕 만세, 하니라. 여기 역시 히브리어에 “God”이 없습니다. God Save the King은 “왕 만세”, “국왕 폐하 만세” 등을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만 영어에서는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왕을 구원해 달라는 기원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을 구원해 주시면 왕은 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리하게 하나님이 들어가게 우리말로 번역하면 번역이 아니라 해석 내지는 졸역이 됩니다. 표준: 이에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왕을 구원하시기를 바라나이다.” 하였더라.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를 살린다고 God을 넣어서 번역하면 우리말에서는 치졸한 번역이 됩니다.    3. God forbid   또한 영어 성경에는 “God forbid”라는 말이 24회 나옵니다. 롬6:1-2, What shall we say then? Shall we continue in sin, that grace may abound? God forbid. How shall we, that are dead to sin, live any longer therein?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를 향해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겠느냐?  이런데도 그리스 말에는 God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음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God forbid입니다. 즉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금하시기 원한다는 강한 기원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금하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표킹: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은혜가 풍성해지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지속적으로 거하겠느냐? 하나님께서 금하시기를 바라노라.  여기서도 표킹처럼 하나님을 넣으면 치졸한 번역이 됩니다.   4. God speed   또한 영어 성경에는 “God speed”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이1:10 If there come any unto you, and bring not this doctrine, receive him not into your house, neither bid him God speed: 11 For he that biddeth him God speed is partaker of his evil deeds. 흠정역: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오면서 이 교리를 가져오지 아니하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축복 인사를 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위들에 참여하는 자니라. 여기에도 그리스 말에는 God이 없습니다. 이것은 여행을 떠나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성공을 기원하는 인사입니다. God Speed: The wish that the outcome of someone's actions is positive for them, typically someone about to start a journey or a daring endeavor. quotations  Synonyms : farewell, goodbye, good luck Related terms : God bless you, God forbid, godsend 그래서 표킹처럼 하면 번역이 아니라 해석이 됩니다. 표킹: 만일 어떤 이가 너희에게 오면서 이 교리를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너희의 집 안으로 그를 영접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를 성공하게 해주시기를 기원하지도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성공하게 해주시기를 기원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실들에 동참자가 되기 때문이라. 결론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샬롬 패스터
2023-07-17 20:25:08 | 관리자
1769년 가짜 케임브리지판으로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표준킹제임스       한 분이 킹제임스 성경 영어 본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연구 결과를 알려 주셔서 올립니다.   -----------   킹제임스 성경 요한일서 5장 8절에서  대문자 S나 소문자 s는 둘 다 '옳다'도 '틀리다'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언어(영어)의 다양성을 통해  두 가지 모두를 허락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 G. A. 리플링거(뉴에이지 성경 역본들 저자) 킹제임스 성경의 어느 판도  1,800년 이후에 나온 어느 성경보다 우수하다 ---고 (故) 피터 럭크만 박사 (미국 펜사콜라시 성경침례교회 목사, 펜사콜라 성경신학원 학장)    진실한 바블 빌리버 사역자들은   변개된 성경과 싸웁니다. 하지만 거짓 사역자들은  교리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판본들 사이의 차이를 들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판끼리 싸움을 붙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순수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판은 진리의 표준입니다. 이것이 바이블 빌리버의 믿음입니다.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결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1611년에 인쇄된 본문, 1769년에 인쇄된 본문, 1909년에 인쇄된 본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1611년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선물의 의미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합니다. 1611년 성경 발행 이후의 본문 변화는 인간의 언어(철자법)가 변하거나 인쇄 기술이 변하면서 이것을 교정한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아포스트로피, 하이픈, 대소문자 등은 원래 원문에 없던 것들이며 이런 것들이 설사 판별로 미세하게 몇 부분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에 어떤 문제를 결코 가져오지 않습니다. G. Campbell은 400주년 기념판 성경의 뒤에 쓴 글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본문 변화 등을 다 설명한 뒤 이렇게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다른 역본들 – 이 중 어떤 것들은 정말로 좋은 역본일 수 있다 – 이 지금까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지만 킹제임스 성경은 끝까지 존속할 것이다.” "Other translations, some of them very good indeed, have come and will go, but the King James Version will endure."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건 박사가 지은 글의 끝맺는 말이 그 이유를 잘 보여 줍니다.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 – 여기다 더하면 1760년판, 1769년판, 1909년판, 케임브리지판 혹은 옥스퍼드판 - 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 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우리 손에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있다.
2023-07-17 18:50:36 | 관리자
오장육부를 굽는다는 난센스: 표준킹제임스의 또 다른 오류 표준 출애굽기 12장 9절에는 유월절 어린양을 구워서 먹는 방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출12:9  Eat not of it raw, nor sodden at all with water, but roast with fire; his head with his legs, and with the purtenance thereof. 표준: 그것을 날것으로 먹지 말고 일절 물에 삶지 말며 오직 불에 직접 구우라. 그의 머리를 그의 다리들과 함께 그리고 그것의 오장육부와 함께 구우라 . 일단 표킹은 어린양을 남자로 표현하는 난센스를 보이고 있습니다. 뒤에 보면 purtenance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도살되는 짐승의 내장을 뜻합니다.  흠정역: 그것을 날로 먹거나 결코 물에 삶지 말고 그것의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불에 구우라 오장육부란 무엇일까요? 오장육부에서 오장은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다섯 가지를 말하며 육부는 위, 큰창자, 작은창자, 쓸개, 방광, 삼초를 말합니다. 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린양의 오장육부를 다 먹었을까요? 허파와 심장과 콩팥까지?   이런 것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나요?   레위기의 제물들을 보면 반복해서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 곧 옆구리 곁에 있는 것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들과 함께 떼어 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볼 때 오장육부가 아니라 내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flesh는 혈육인가, 골육인가, 육친인가?   창37:27    표준 오라. 그런즉 우리가 이스므엘족들에게 그를 팔고 우리 손이 그의 위에 있게 하지 말자. 이는 그가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혈육(flesh)이기 때문이라.” 그러자 그의 형제들이 만족해 하였더라. 왜 혈을 더하는 것인까요? 사58:7    표준 그것은 배고픈 자들에게 너의 빵을 나누어 주며 네가 쫓겨난 가난한 자들을 너의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냐? 네가 벌거벗은 자를 볼 때 네가 그를 덮어 주는 것이요, 네가 너 자신의 골육(flesh)으로부터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냐? 왜 골을 더하는 것일까요? 롬11:14    표준 혹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육친(flesh)인 자들에게 경쟁심을 유발하여 그들 중 일부를 구원할 수 있을까 함이라. 왜 친을 더하는 것일까요? 무엇을 잡다하게 더하지 말고 이런 경우의 flesh는 살붙이로 통일하는 것이 옳습니다. 흠정역: 창37:27 오라, 우리가 그를 이스마엘 족속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 동생이요, 우리 살붙이(flesh)니라, 하니 그의 형제들이 흡족히 여기더라. 사58:7 그것은 굶주린 자에게 네 빵을 나누어 주고 내쫓긴 가난한 자들을 네가 네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냐? 네가 벌거벗은 자를 볼 때에 그를 덮어 주며 네가 네 살붙이(flesh)를 피하여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냐? 롬11:14 이것은 어찌하든지 내가 내 살붙이(flesh)인 그들을 자극하여 경쟁하게 함으로 그들 중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로마서 16장 17-18절   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18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단순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2023-07-17 17:11:5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