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형제님이 천주교와 관련해서 알베르토 시리즈 만화를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천주교와 은사주의 관련 글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3655
혹시 위의 사이트에 연결이 안 되면 다음 주소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yuxuria.blog.me/50154003307
저는 개인적으로 알베르토 시리즈가 다 진실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 안에는 역사의 비밀이 많이 들어 있고
유용한 정보가 매우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어권에서는 매우 많이 읽히는 자료입니다.
http://www.chick.com/catalog/comiclist.asp
간단한 영어로 되어 있으므로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폰이나 아이폰 태블릿이 있으면 i-Tunes에서 영어 코믹북을 살 수 있습니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2-11-07 13:20:57 | 관리자
나중에 다른 분들도 쉽게 찾도록 성경 Q&A로 옮깁니다.
2012-11-02 12:30:14 | 관리자
우선 바쁘신 중에도 제 글에 관심을 가지시고 자세하면서도 친절한 답변 올려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날'과 요엘서 전체를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궁금한 점들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1-01 17:01:55 | 김세배
왜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는 이단에 빠져들까요?
기존의 교회들이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번역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흥종교로 떠오르고 있는 신천지의 실상을 잠시 시간을 내서 살펴보기 바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Y6bAp5xc8ME&feature=player_detailpage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 모두 회개하고 바른 복음, 바른 예수님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왜 이 민족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샬롬
2012-10-31 12:25:28 | 관리자
어느 자매님의 간증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잘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기독교와 회심은 가짜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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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없는 구원의 위험이 글을 꼭 쓰고 싶었는데,,거처하는 곳에 PC가 없어 핸드폰으로만 보다가 남의 집에 와서 몇 자 적습니다.
저는 현재 주거지가 외국입니다.
박옥수 목사의 기쁜소식선교회(기소선)의 비리나 썩어빠진 교리 등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나의 연약함만 탓하다가
'기쁜소식선교회를 나온 사람들'이라는 네이버 카페와 쉼터의 자료실을 통해 상당한 사실들을 알았습니다,
그 후 정말 믿기지 않는 이런 비리들의 원인이 뭘까 많이 생각했고올라오는 말씀을 보며킹제임스 성경이란 생소한 성경을 알게 되었고,그 성경을 10여 년에 걸쳐 번역하고 흠정역으로 펴내신 목사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그분의 성경 지식과 교사로서의 간결함그리고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 우리에게 오로지 성경만을 가르쳐주는 그 말씀들을 들으며내 마음에 말씀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는 믿음으로 바뀌며기소선에서 연약함으로 치부되었던 나의 믿음이이제 말씀 안에서 회개와 믿음 그리고 진정한 구원의 의미그리고 그 구원이 주는 성화의 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이 카페에서 기소선의 비리를 보며 내 구원을 의심했습니다..뿌리가 저러 할진대 그 열매인 나는 어떠한가 하고요.
수리공식적인 구원의 방법, 즉 "예수님 죽음 +죄 없다 = 의인"이것은 깨달았지만성경 말씀을 통해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회개, 그 회개에서 나오는 믿음, 그 믿음의 결과는 구원그 구원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 가며,, 구원을 일로(행위로) 드러내는 성화의 과정이 나에게는 없었고그냥 “죄 없다” “의인이다”라는 주문 같은 구원만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자 기소선의 비리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구원 바로 알기" 시리즈 말씀을 일주일을 넘게 반복해서 들으며내 상태를 점검했고그 목사님 말씀처럼 178도, 179도가 아니라세상에서 180도 돌이키는 회개내 마음에 찌꺼기가 남지 않는 회개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끄집어내려도내 마음에 세상 것에 대한 아까움이 없고 내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셔서나를 인도하고, 지키고, 나를 변화시키시며절제를 주시고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기소선은 박옥수 목사가 어느 날 새벽에 스스로 깨달아 얻은 "깨달음의 구원" "죄 없다 구원"만 존재할 뿐 하나님 앞에 근본적인 회개가 빠진 구원을 가르칩니다.
그러다가 "회개와 믿음" 책을 발간할 때 한동안 유행처럼 "회개"를 외쳤지만전후로도 이미 "죄 없다 구원"은 "회개와 믿음"을 이겨 버리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어설픈 구원을 지키기 위해내 죄가 없어졌다는 그 하나의 사실만을 가지고온갖 명세표를 가진 "복음을 위하여"의 세금을 걷어 들이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구원은 절대 완벽하지 않습니다.깨달아 알게 된 구원은, 처음엔 기쁠지 몰라도 부작용이 많습니다.혼의 자유가 없이 구원이란 것에 얽매이게 됩니다.그 구원을 깨닫게 해 준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그리고 그 단체의 노예가 되고 자유의지가 사라지고 그리고 좀비가 됩니다.
그들은 살짝 변질된 말씀을 가지고 구원을 설계했고(안수복음)한번 잘못된 설계도는 아직도 수정되지 않았습니다.그 구원은 성령을 상실했고때문에 “성령의 열매는 사치스럽고 육신적이다. 우리는 연약하여 할 수 없으니 생각을 버리고, 생각을 꺾자”로 성령을 대신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갈라디아서를 통해 "육신의 행위들은(5장 18~21)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하였고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부드러움, 선함, 믿음, 온유, 절제인데 이 열매를 대적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5장 22~23절).
구원받은 자에게 한번 들어온 성령님은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습니다.항상 나를 지키고 내 양심을 선하게 하고그래서 나를 세상을 향해 절제시키고 통제하셔서온유한 맘을 품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자기감정, 형편을 간증하는 그 찌질한 간증하고는 차원이 다른오로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줍니다.
그러한 것이 성화의 과정이고 (성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열매를 맺는도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고" (골1:6, 10)
그런데 기소선의 현실은 절대로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모두 "박옥수 열매"가 주렁주렁 합니다.
그들의 삶에 "성령의 절제"는 없습니다. “박옥수의 통제"만 있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절제하게 만듭니다.그래서 구원받은 자의 삶은 육신의 절제와 함께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그 고요한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어지게 하고오로지 교회와 함께 행사를 하며 몸으로 처참하게 체험하는 미련한 신앙은 곧 바알을 섬기는 것과 흡사하며
그들이 말하는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흐르는 종(목사)의 말은 위에서 아래로까지 역병과 같이 죄와 사악함과 욕설과, 난폭함과 매정함을 통해성령을 훼방하고 영혼을 죽게 합니다.
차라리 비리만 있다면 좋겠습니다,그 안에서 구원도 아닌 구원을 움켜쥐고 고생 끝에 지옥가면 어쩌겠습니까?정말 무서운 현실입니다.
그 선자자 같은 종의 흐름의 결과가 또별(기소선에서 암, 에이즈 치료제로 선전하는)인 것 같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4777
제가 지금 잠깐 한국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기소선 교회 자매가 간암 초기였는데 4개월 전 또별 먹고 다 나았다고 간증했습니다.근데 4개월 후인 지금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이제는 듣는 것도 희미해져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간암 초기에 수술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어보니 또별 먹으면 나을 거란 믿음으로,,
믿음으로 낫겠다는 욕망, 또별을 믿는 마음, 이미 이 마음을 하나님이 저주하신 것 같습니다.
어느 말씀인가분별없이 악을 같이 따라가는 자에게도 하나님이 악을 행하는 자와 똑같이 벌하신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온 교회에 또별로 인해 목사들이나 성도들이 죽어 감을 보여 줘도그들의 악함은 도를 넘어오히려 죽는 자의 믿음을 탓하며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이런 악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우리들그리고 이제 탈출하여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우리들,,그곳에서 아직도 옳고 그른 것을 구별 못하며 오로지 "종"을 위하는 마음이 믿음이라고 믿고 있는 불쌍한 성도들우리는 그들을 위해바른 말씀을 올리고 사실들을 부지런히 전하여그들의 눈을 뜨게 할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기소선 나오신 분들도 킹제임스 성경을 보시면서 말씀을 듣고고요하게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성화의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외국에 거하는 한 자매
2012-10-31 11:49:48 | 관리자
제가 오해를 막기 위해 끝부분이라는 것을 3군데 추가하였습니다.
2012-10-30 15:27:24 | 관리자
좋은 분석 감사합니다.
요엘서는 7년 환난기와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1-2장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1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닥칠 것을 보여 주고 3장은 주님께서 천년왕국에 들어갈 이방인들을 구분하고 그들과 및 환난기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거주민으로 삼으시고 친히 예루살렘에 거하시면서 다스리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질문의 요점은 2장 말씀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대환난에 들어간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yes와 no입니다.
사실 2장의 요점은 대환난에 들어가느냐, 아니냐가 아니고 그 환난(특히 끝부분)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받을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현대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은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 부분은 스가랴서 12-13장에 있는 대로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을 가진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수는 매우 작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대환난에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적한 대로 맞지 않게 보입니다. 이런 차원에서는 대답이 no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장 다음에 3장이 나오면서 천년왕국이 나오므로 이미 주님의 무서운 진노의 날이 끝나고 평화의 날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주의 날은 7년 환난기부터 1000년 왕국 그리고 그 이후의 새 하늘과 새 땅을 포괄적으로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문맥을 잘 보고 주의 날이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크고 무서운 주의 날은 유대인들의 경우 후반부 3년 반의 대환난기(특히 끝부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환난기가 시작되기 전에 주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을 가진 자들을 구출시킬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록 7장의 14만 4천명의 유대인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대환난기 중에서도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생깁니다. 이들은 끝까지 견디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을 가지고 남은 유대인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갑니다.
중요한 점은 14만 4천이든 누구든 휴거받지 못하고 환난기에 들어가 환난기에서 구출받은 유대인들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2장을 가지고 유대인들 가운데 얼마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그들은 구출을 받지만 불속에서 받듯이 받습니다(슥13:8-9).
3장에서 천년왕국이 임하는 것을 보면 이미 2장에서는 주의 날의 진노의 환난이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끝나는 내용이 없이 3장으로 넘어가 곧바로 천년왕국이 임하므로 문맥상 2장에서 주의 무서운 날(특히 끝부분)이 이미 끝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차원에서는 문맥적으로 2장이 이스라엘의 대환난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늘의 변화가 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곧 유대인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의 대답은 당연히 yes입니다.
그러므로 2장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대환난에 들어간다고 해도 문제가 없고 그 전에 구원을 받는 유대인들이 있다고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1-2장에서 유대인들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3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1-3장이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요엘서 인용도 당연히 유대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부분을 이방인들에게 적용하기에 오늘날 방언 등의 오순절 은사운동 같은 비성경적인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샬롬
정동수
2012-10-30 11:43:46 | 관리자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라는 글을 읽고 덧글을 통해 이미 간단하게 질문을 드렸듯이, 박참하 목사님의 글을 다운받아 여러 번 읽어보는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해서 반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자, 다 같이 요엘서 2:31-32를 보십시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니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욜 2:31,32).
대환란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입니다. 대환란은 주의 날로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에게 “크고 두려운 날”이 분명합니다.“
위 내용은 박목사님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제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과연 요엘서 2:31-32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겪게된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얼핏 보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라는 말이 등장하기에 근거구절이 되는 것 같지만 저의 판단으로는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우선 본문(31-31절) 자체에는 결코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겪는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엘서 2장 전체를 읽어봐도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요엘서 2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내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내어 이 땅의 모든 거주민들로 하여금 떨게 할지니 이는 주의 날이 이르기 때문이니라. 그 날이 매우 가까우니”(1절)
“....주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려우니 누가 그 날을 견디어 내리요?”(11절 하반절)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슬피 울고 애곡하며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나니”(12절)
요엘서 2장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2장의 요점은, 앞으로 올 주의 날에 대해 경고 하며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결코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통과하며 겪는 고통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31,32절로 돌아가서, 그 구절들을 2장 전체의 흐름의 문맥에 놓고 보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집니다.
31절의 시작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성경은 분명히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2절의 시작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어지는 32절의 내용은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또 주께서 부르실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
31절과 32절은 2장 전체의 결론으로서, 2장 전체의 내용과 아주 잘 부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올 것을 경고하여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그 전에 회개하고 돌아오길 촉구하셨습니다. 또한 분명하게 31절과 32절을 통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돌아 올 것을 미리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
2장 전체뿐 아니라 31절과 32절의 중심 내용은 이스라엘이 7년 대환란을 겪는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두 구절에는 대환란을 통과하는 중에 구원을 받는 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대환란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글이 앞으로 이 땅에 7년 대환란이 있을 때, 그 당시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요엘서 2장 31절과 32절을 제시하며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한 근거 구절로 설명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왜냐면 본문자체가 그러한 설명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구절을 근거로 성경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은 옳지만, 그에 앞서 그 구절 자체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1-02 12:28: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10-29 23:44:45 | 김세배
종말론에 관심이 있어서 목사님의 글을 다운받아 읽다가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해서 반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자, 다 같이 요엘서 2:31-32를 보십시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니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욜 2:31,32).
대환란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입니다. 대환란은 주의 날로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에게 “크고 두려운 날”이 분명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상을 보십시오.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라고 말합니다.
자 그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입니다.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통해 이방인들 중에서도 구원받을 자들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계7:9)."
위 내용은 목사님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제가 바르게 이해했다면,목사님의 설명의 요점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은 바로 '대환란'(7년 대환란)인데 그 진노를 받는 대상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라는 것과 이어지는 내용에서 계시록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대환란을 통과하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목사님께서 인용하신 욜2:31,32절에서는, 유대인들과 남은 자들(저도 이방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의 구원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이루어 진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환란 전에(before)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기록(욜2:31)은 분명히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before)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이부분에 있어서는 성경기록과 목사님의 주장이 서로 맞지 않다고 여겨지기에 이렇게 질문을 드려봅니다.
물론 이 말씀의 대상이 구원받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012-10-27 22:54:19 | 김세배
아멘!
2012-10-23 00:35:57 | 김재근
딱정벌레 이야기
구약성경에서 ‘딱정벌레’라는 말은 레위기 11장 22절에 단 한번 나옵니다.
곧 그 중에서 이것들 즉 메뚜기 종류와 흰머리 메뚜기 종류와 딱정벌레 종류와 베짱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레11:22)
[Even] these of them ye may eat; the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ald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eetle after his kind, and the grasshopper after his kind.
이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사람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이들은 딱정벌레(히브리어 하르골, 스트롱 번호 2728)가 틀리고, 대신 ‘귀뚜라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물론 개역성경은 이들의 주장대로 귀뚜라미라고 번역함). 또한 이들은 몇몇 주석을 들먹이면서 유대인들은 딱정벌레를 먹지 않고 세상의 어떤 사람들도 안 먹는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딱정벌레는 한자로 갑충(甲蟲)입니다. 즉 껍데기가 있는 벌레면 다 딱정벌레입니다.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가서 딱정벌레 항목을 보면 지구의 전체 곤충의 40%가 딱정벌레목(目)에 속하며 구체적으로는 약 35만-40만 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과 관련해서는 인류의 80%가 벌레를 음식으로 먹으며 벌레 중에서 사람의 음식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딱정벌레라고 나와 있고, 현재 344종이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를 식용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레위기 11장의 딱정벌레, 즉 beetle은 생물 분류법에서 장수풍뎅이 같은 한 종(種)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목(目)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목(目)에는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Beetle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하르골을 바르게 딱정벌레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이 단어는 성경에 단 한번 나오므로 다른 용례를 보고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1900년대 중반의 세계적인 석학인 에드워드 힐즈 박사는 자신의 책 <킹제임스 성경 변호>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 보존에 관한 교리를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2
1611년 이래로 온 세상에 Holy Bible로 자리 잡으며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 준 성경은 유일하게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성경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로마 카톨릭 소수사본에서 나왔습니다, 그 수많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히브리어 하르골을 딱정벌레라고 번역해 주셨고 이들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역사를 통해 그 단어가 딱정벌레라고 믿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신다는 것은 1차적으로 그분의 입에서 나온 원어의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처럼 원어 하르골 자체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에 단 한번 나오므로 아무도 그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히브리어 사전 자체도 어떤 사람이 기록했느냐에 따라 다른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 우리는 단순하게 약 50명의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바르게 인도를 받아 그 히브리어를 딱정벌레로 바르게 번역했다고 믿습니다.
이런 것은 다음의 유명한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전도서 1장 14절, 2장 11, 17, 26절, 4장 4, 6절, 6장 9절(7회)에는 다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은 뒷부분을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번역하였고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이 세상의 다른 역본들은 (심지어 뉴킹제임스 역본까지) 다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스트롱 번호 7306)와 ‘레우트’(스트롱 번호 7460)입니다. 잘 알다시피 루아흐는 영도 되고 바람도 되고 숨도 됩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처럼 영으로 번역해도 되고 개역성경처럼 바람으로 번역해도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레우트에 있습니다. 레우트라는 말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여기 전도서에만, 위에서 언급한 7구절에만 나옵니다, 그러므로 다른 용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처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믿든지 다른 성경들처럼 ‘바람을 잡는 것’으로 믿든지 둘 중 하나를 믿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 보존 역사를 믿음으로 신뢰하고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이것을 영적인 문제로 보았고 다른 번역자들은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철학적 문제로 보았습니다. 저자인 솔로몬이 과연 어떤 관점에서 이 단어들을 썼을지 여러분이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헛된 수고는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인가?” 아니면 불교나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생이란 바람을 잡는 것처럼 공허하다는 뜻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성경 사역에 복을 주신 것을 기억하며 천주교 사본을 지지하는 현대 역본들과 번역자들을 결코 신뢰할 수 없으므로 (물론 그들이 만든 사전들도 신뢰할 수 없으므로) 단순하게 그분의 말씀대로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믿습니다.
이 두 예를 통해 보셨겠지만 원어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위의 말씀은 주님께서 분명히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실 것을 확증하신 말씀입니다. 자, 그러면 주님의 보존 약속은 어디까지 미칠까요? 원본의 단어들에까지만 미칠까요? 아니면 번역본의 단어들에까지 미칠까요?
저는 분명히 말씀 보존의 약속이 일차적으로 원어에 있음을 믿습니다.그러나 여기서 끝이 나면 그 약속은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유효하지 않습니다.원본의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바른 단어들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이 번역본에까지 이른다고 믿습니다. 이런 약속에 따라 온 세상의 성경들을 살펴보니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역본들이 한결같이 천주교 사본을 사용하여 삭제와 첨가 등이 일치하고 교리적으로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다 배제하고 하나님께서 보편적으로 보존해 주신 사본들에 근거한, 전 세계 만인의 말인 영어로 기록된 킹제임스 성경이 이 시간까지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최종적인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저의 믿음입니다.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원본주의자들이 늘 인용하는 웨이트 박사님(Dr. D. A. Waite)도 자신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성도들의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적이고도 유일한 권위가 됩니다. 사실 성도들에게는 삶 자체가 믿음과 여기서 나오는 실행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 권위라고 말하는 것은 곧 인생과 온 우주 공간의 모든 문제에서 이 성경이 최종 권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떻게 역본이 최종 권위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최종 권위이고 킹제임스 성경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최종 권위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100% 킹제임스 성경 안에 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따라서 최종 권위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11장 22절은 껍질이 있는 딱정벌레가 맞고 전도서의 일곱 구절은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린 번역입니다. 이 구절들에 관한 한 그런 성경은 보존되지 않은 성경이요, 따라서 최종 권위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원어의 단어들의 보존을 믿습니다. 또한 그 원어의 단어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100% 보존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향상시켰음을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 보존된 원어의 단어들을 만민이 알아듣게 최종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해서 전달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들은 얼마든지 그렇게 믿어도 됩니다. 다만 저는 말씀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실제 데이터들의 분석과 하나님의 속성을 통해 지금 이 시간에 우리에게 100% 보존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믿으며 누가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면 서슴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가져갈 것입니다. 원어는 못 가져갑니다.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성경이 온 세상 모든 것의 최종 권위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지금 이 시간까지 최대한 우리말답게 일대 일로 대응이 되게 번역해 놓은 순전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확실한 성경입니다.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참고: 웨이트 박사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14쪽, 도서출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page=2
D. 영어로 이루어진 성경 보존과 킹제임스 성경과의 관계
1. 관계 개요나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영어 안에서 성경 보존을 이루셨다고 믿는다. 이것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성경 보존이 곧 영어 역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올바른 히브리어,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라는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믿는 데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가 있다.
a. 첫째, 킹제임스 성경 원어 본문의 우수성 때문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우수성을 말한다.b. 둘째,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당대에나 오늘날에 있는 어떤 사람들보다 탁월했다. 오늘날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에 비하면 소인국 난쟁이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다.c. 셋째, 킹제임스 성경 번역 기법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른 역본들과 차이가 있다. 다른 역본의 번역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을 쓰지 않았다.d. 넷째, 킹제임스 성경 신학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9
2012-10-22 17:52:16 | 관리자
어제 오늘은 사도행전을 읽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을 다시 읽으면서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 어떤 것인지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기 전에 좋은 기사가 있어서 읽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1/2012092101518.html?news_top
김성근 야구 감독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잘 모릅니다.
다만 자나 깨나 야구만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댓글 난에 보니 그분이 젊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면 좋은 목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은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 특히 목사가 많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야구에도 미치는데 우리의 구원자에게 미치는 것은 얼마나 복될까요?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서 그리스도에게 미치는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그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니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고후5:13-14)
샬롬
2012-09-22 15:42:3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아침에 '가스총과 용역 직원까지 등장한 개신교 최대 교단 총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될까요?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지금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긍휼을 입기 원합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19/2012091902950.html
2012-09-20 16:07:49 | 관리자
특별히 부언으로 적어 주신 파란색의 글은 너무도 절절하게 다가오는 고귀한 교훈들입니다.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 같은 글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2-09-07 15:57:52 | 김대용
가정과 교회: 부부로 함께 사는 것
요즘 지인들과 대중 매체를 통해 어떤 교회(선교회)의 비리들을 접하고 있습니다.그중의 하나는 교회와 목사가 부부 사이를 갈라놓아 이혼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그 교회(목사)의 부정과 비리를 알게 되어 도저히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교회(목사)가 남편이 이상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아내에게 남편과 이혼할 것을 권유/강요합니다.
물론 교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주장하지요.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남편을 택할 것인가?”를 두고 압박을 받다가 결국 아내가 남편과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같은 문제를 두고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요.
교회나 목사가 교회를 유지하려고 멀쩡한 부부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까요?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가정입니까? 교회입니까?
이단의 특징은 가정을 붕괴시키면서까지 교회에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부부가 이혼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사람입니다.그런데 목사가 하나님의 일을 빌미로 이혼을 부추기면 될까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어떻게 해서라도 아들딸이 결혼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 이혼을 부추기거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결혼 생활하면서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따로 떼어 놓으면 좋은 사람들인데 둘이 함께하면 웬일인지 화합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이혼하면 어떻게 온전한 가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우리가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하였습니다.그 서약을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결혼 서약문을 썼습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보다 어렵고,두 외길이 한 길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고통과 아픔이 따름을 알면서도내가 이 길을 선택함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당신을 만난 것을 내 인생 최고의선물이라 감사히 여기며 한 평생 당신을 사랑하고,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빚어지는 작은 다툼으로 인해큰 상처 받지 않도록 항상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변치 않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또한 당신이 힘들거나 지칠 때, 당신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소박한 이 땅에서의 인연이 천국까지 이어지도록 사랑하겠습니다.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저와 제 아내도 혹은 제 딸과 사위도 앞으로 살면서 결혼의 어려움을 당하면 극단적으로 이런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저는 제 자신과 아내와 딸과 사위에게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고 참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저는 “예수님의 답답한 심정에 비하면 내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는 심정으로 좀 더 참고 인내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주변에 타격을 받을 연약한 사람들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을 같이 하도록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모두가 그분 앞에 설 것이 확실할진대 이 땅에서의 우리의 결정을 신중하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목사로서 간곡히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평강을 기원합니다.
샬롬
정동수
(*) 부부 중 한 사람은 우리 교회를 나오기 원하고 다른 사람은 다른 교회를 나가기 원해 문제가 생기는 가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가정의 경우 저는 우리 교회를 나오기 원하는 분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할 때 oo님께서 배우자가 원하는 교회로 가셔서 한 가정이 마음을 합쳐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의 화목입니다. 그러므로 oo님께서 가정의 일치를 위해 온 가족이 같이 섬길 수 있는 교회로 나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나중에 온 가족이 마음이 바뀌어 저희 교회로 오시면 또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가정의 평안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시고 두 분이 다시 잘 의논해서 교회 문제를 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혼이 정말로 불가피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쓰든지 설교를 하겠습니다.
2012-09-07 14:22:06 | 관리자
사랑침례신학원에 등록한 형제님들 중에는 나중에 설교자가 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이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교에 대한 글을 적습니다.
다음은 “Preaching the Word” Commentary 편집자인 휴즈(R. Kent Hughes) 목사님의 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자의 특성
예배 시 설교에서 설교자와 회중이 성령님에 의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설교자에게 있어야 한다.
1. 로고스(Logos)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우리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회중 앞에 섰을 때 설교자들은 일단 우리의 숙제를 한 것이다. 우리는 본문 구절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보며 문맥 안에서 그 안의 단어들의 뜻을 찾아내고 그 단어들이 회중에게 바르게 전달되도록 올바른 해석 방법에 의해 본문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로고스 그 자체를 선포한다. 이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의 핵심이다.
2. 에토스(Ethos)
둘째는 에토스인데 이것은 곧 설교자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설교를 할 때 아주 치명적인 병이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것들을 다룬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손과 마음을 마비시켜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는 이것을 열차 안내원 비유를 통해 잘 보여 준다. 안내원은 다음 역에 도착하기 전에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자기가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을 알려주었기에 지금 자기와 승객들이 그 역에 도착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브룩스는 설교는 반드시 인격체를 통해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우리가 전하는 진리를 우리가 다 구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그것에 복종하려 하고 그것을 갈구하며 그것이 우리의 에토스(정신세계)의 일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청교도인 에임스(William Ames)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설교가 효력을 발휘하려 할 때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꾸밈없이 설교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에토스이다.” 설교자의 에토스가 그가 전하는 로고스를 뒷받침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설교를 이룰 수 있다.
3. 파토스(Pathos)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열정과 확신이다. 한번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불신자인 흄(David Hume)이 조지 윗필드(George Whitefield)의 설교를 들으러 가는데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은 복음을 믿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아는데요.” 그러자 흄이 대답하였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설교자가 자기가 설교하는 것을 믿을 때에는 열정이 생기게 되어 있다.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필수적인 열정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설교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설교 시 하나님의 기쁨은 로고스(말씀)와 에토스(설교자)와 파토스(설교자의 열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신도 이 셋을 갖추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할 수 있고 그때에 회중 가운데 임하는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휴즈(R. Kent Hughes)
“Preaching the Word” Commentary 편집자
부언:
저도 지금까지 짧은 세월이지만 설교를 해 왔고 다른 이들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이 짧은 기간을 통해 제가 몸으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교자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논리적으로 진리를 제시해도 회중에게 감화를 주는 설교는 하지 못할 수 있다. 설교자가 행동도 반듯하고 가정생활도 바르게 하며 모든 면에서 원리와 원칙을 잘 지키는데도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의해 큰 감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그가 설교단에 나오면 성도들은 의례히 “오늘도 바르게 살라고 이야기하겠지.”하고는 타성에 젖어 설교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설교자가 로고스 중심으로 설교한다고 하면서 에토스와 파토스가 없는 설교를 하기 때문이다.로고스만으로는 하나님과 회중의 기쁨을 이룰 수 없다.
이 경우 설교는 대개 성경 공부 스타일의 훈계/설명 설교가 되고 만다.이런 식으로는 성도들의 감화를 이끌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에토스와 파토스는 설교자가 자기와 회중이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공유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설교자들은 스스로 고고한 세상에 살면서 이 어둡고 부조리한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삶이 어떤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경우 설교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허공을 치게 된다. “이 설교는 일차적으로 내게 하는 것이며 바로 내 자신이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라는 에토스가 들어가야 설교가 살아나고 그러면 자연히 몸에서 퍼져 나오는 열정을 성도들이 느낄 수 있다.
이때에 하나님의 기쁨이 생기면서 회중은 말씀에 비추어 나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를 외치는 좋은 설교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샬롬 정동수
2012-09-07 14:12:1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에 어떤 분을 통해 참으로 의미심장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글을 토대로 한국에 만연한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조목 조목 분석해 놓았는데
내용이 참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거짓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잘 파악해서 그들을 구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링크를 겁니다.
참고로 이 카페의 다른 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http://blog.naver.com/sanyaro46?Redirect=Log&logNo=100145460119
위의 링크를 눌러서 내용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 이유(간단 요약)
1. 악랄한 거짓말2. 사랑 폭격3. 고립화 기법4. 비난 기법5. 고백 기법6. 언어 조작7. 실존의 마약8. 종말론9. 심리적 협박10. 최면과 세뇌(하이라이트):
복잡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이건 쉽다. 집회 혹은 찬양을 할 때 신도들 모르게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최면 - 일단 집단 최면은 몇 사람이 강한 믿음을 갖고 열성적인 종교 예식을 할 경우 특유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자신도 그런 행동과 체험을 하게 된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음악, 낮게 깔리는 목소리, 강한 신뢰감, 주위의 분위기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암시를 받기 쉬운 상태가 된다. 최면이란 생리학적으로 대뇌는 현재 의식을 관장하는 신피질의 일부분을 남기고 휴식한 상태이며 그것으로 인해 잠재의식으로 형성된 구피질과의 연락통로가 열린 상태이다.
약간 몽롱한 상태라고 봐도 좋고 의식이 있으나 멍한 상태이다. 몸과 마음이 매우 편하다. 때 받는 암시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며 이로 인해 어떤 강한 신념을 갖는 동기가 된다. 인간심리에 관한한 해박한 지식이 있다면 더욱 다양하게 구사 할 수 있다.
최면과 세뇌는 기성 종교에서도 비의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세뇌 - 세뇌의 3대 원칙 - 반복, 지속, 속도
TV의 광고도 세뇌의 일종으로 계속되는 반복이 뇌에 잔상으로 남아 선택관 판별의 기준에 영향을 준다. 종교 집회에 지나치게 자주 나오라고 하는 것도 반복과 각인을 위해서이다.
2012-09-07 11:34:00 | 관리자
진리의 등대인 keepBible
2012-09-07 10:19:30 | 지미 곽
안녕하세요?
지난 4년간 여러 가지를 가르쳤지만 천사들의 창조와 사탄의 타락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에 저희 교회에 오시는 분들 가운데 이것에 대해 알기 원하는 분들이 있어서
오늘은 천사 창조와 사탄의 타락 시점에 대해 글을 올립니다.
(*) 참고로 이 글은 Middletown Bible Church - 오른쪽 녹색 배너 중간의 성경공부를 누르면 이 교회로 감 - 의 Zeller라는 분의 글을 대부분 분역하고 제가 의견을 더한 것입니다. 원문도 같이 올립니다.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
천사 창조와 사탄의 타락 시점
성경에는 사람이나 짐승 외에 천사(Angel)라 불리는 영적 존재들이 나옵니다. 천사는 ‘임무를 수행하는 자’라는 뜻이며 히브리말이나 그리스말 모두 일차적으로 사자(使者)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천사는 능력이나 지혜에서 사람보다 고등한 인격체 즉 하나님 주변에 둘러 서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역자로 사용하여 세상사를 집행하시기도 하고 개인이나 국가의 혹은 전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킵니다(마1:20; 22:30; 행7:30 등). 그들은 순수한 영으로 혹은 영적인 몸을 가진 존재로 존재하며 특별한 경우에는 완전한 남자의 모습으로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게 나타납니다(히13:2). 성경은 천사를 언급하면서 언제나 남성 단수 대명사 he를 사용하며 이로써 천사들이 남성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여자 천사나 아기 천사 혹은 날개 달린 천사는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천사의 수가 매우 많음과(단7:10; 마26:53; 눅2:13; 히12:22-23) 그들의 힘이 매우 강력함을 보여 주고(시103:20; 벧후2:11; 계5:2; 18:21; 19:17) 또 그들의 일을 보여 줍니다(삿13:20; 단9:21-23; 마13:49; 26:53; 행27:23; 계8:13). 천상에는 천사들과는 다른 종류인 그룹, 스랍 등이 있습니다(사6:2-6; 겔10:1). 천사들 가운데는 천사장이 있고 왕좌, 통치, 권능, 정사 등은 천상에 존재하는 여러 등급의 존재들을 가리킵니다(골1:16; 계12:7).
천사들은 성경의 여러 사건에서 언급되는데 그들은 한 마디로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한 섬기는 영들입니다(시91:11; 103:20; 히1:14).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신뢰하거나 그들에게 경배하거나 그들의 이름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계19:10; 22:8-9). 성경은 개인에게 보호 천사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지는 않지만 천사들이 크리스천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마18:10; 눅16:22; 히1:14). 특별히 천사들은 사람의 구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눅2:10-12; 15:7, 10; 벧전1:12) 성도들과 더불어 영원토록 하늘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히12:22).
사람의 창조 전에 천사들의 일부가 루시퍼와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고 타락하여 사탄의 천사들 즉 마귀들이 되었습니다(마25:41; 계12:9). 한편 창세기 6장에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들이 여자들과 성적으로 결합하여 거인들을 출생시켜 하나님의 진노가 노아의 홍수를 통해 이 땅에 내리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으며 유6와 벧후2:4는 그들을 가리켜 ‘자기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거처를 떠나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에 묶여 어둠 밑에 예비된 자들’이라 부릅니다.
자, 그러면 천사들은 언제 창조되었을까요? 또 루시퍼는 언제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을까요?
성경은 천사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창조되었는지 또 마귀가 언제 타락하였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천사들의 창조에 대해서는 크게 창세기 1장 이전에 즉 사람과 우주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천사들이 창조되었다는 주장과 천사들도 창세기 1장에 기록된 6일 창조 시기에 창조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한 사탄의 타락 시점과 관련해서 사탄의 타락이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다는 주장과 사탄의 타락이 창세기 1장 이전에 있었다는 주장으로 나뉩니다.
여기서는 사탄의 타락 시점에 대한 세 가지 견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사탄의 타락이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다는 주장
이것은 보통 간극 이론(gap theory)을 믿는 분들의 주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원래 하늘들과 땅을 - 즉 우주를 - 창조하셨고(창1:1) 이 안에는 천사들과 또 어떤 분들이 주장하는 아담 이전의 어떤 종족들(Pre-Adamic races)과 공룡들과 같은 짐승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또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긴 시간의 간극이 있었고 바로 그 시기에 사탄의 타락과 지구(땅)의 심판, 공룡의 멸망 등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약 100년 전에 진화론이 온 세상을 휘저을 때에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지질학적인 긴 시간 - 몇 십 억년 - 을 창세기 연대와 맞추려는 시도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을 믿는 분들은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과 땅은 ‘원 창조’(Original creation)이고 2절은 사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 주며 3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재창조(Recreation)하신 것을 보여 준다고 믿습니다. 과거에 창조의 증거를 대기가 어려운 시대에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이 진화론에 대적하기 위해 이 주장을 믿었으며 스코필드, 라킨, 럭크맨 등이 이런 주장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주장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재창조라는 말이 없으며 우리 예수님은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창조의 시작부터(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막10:6-8).
이것은 분명히 창세기 1, 2장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창조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창조의 시작부터’ 남녀가 결혼하여 한 육체가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재창조의 시작부터가 아닙니다. 재창조에 대해서는 KeepBible 사이트에 관련 자료들이 있으므로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2. 사탄의 타락이 창세기 2장과 3장 사이에 있었다는 주장
이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온 것으로 주로 창조 과학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주장입니다. 이분들은 대개 문자 그대로의 6일 창조와 6000년의 지구 역사를 믿습니다(저 역시 그렇게 믿습니다). 이들은 출애굽기 20장 11절에 근거하여 천사들과 사탄이 6일 창조의 첫째 날에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으므로 하늘에 속한 천사들과 루시퍼(사탄)도 그 6일 창조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들은 골로새서 1장 16절을 또 다른 근거로 듭니다.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골1;16).
여기 나오는 왕좌, 통치, 정사, 권능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창세기 1장 31절을 인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창1:31).
그들은, 창세기 1장 이전에 천사들이 창조되고 그중의 일부가 루시퍼와 함께 타락했으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고 “매우 좋았다”고 하실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좋으려면 이 시점까지는 천사들의 타락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사탄의 타락 시점을 알려면 언제 그가 창조되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어떤 이가 6000년 창조의 프레임 안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천사들과 루시퍼의 창조를 6일 창조 시기 안에 넣으면 사탄의 타락은 창세기 1장 및 2장 이후에 즉 아담과 이브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이 경우 사탄의 타락과 아담의 타락은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즉 사탄과 천사들의 타락이 있은 뒤 곧바로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아담과 이브의 타락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 주장은 명백히 틀렸다고 할 수 없으나 성경 전체의 그림으로 봐서 그럴 것 같지 않다고 저는 믿습니다.
3. 사탄의 타락이 창세기 1장 이전에 있었다는 주장
이것은 천사들의 창조와 사탄의 타락이 창세기 1장 1절 이전에 즉 우주가 생성되기 전에 있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1) 창세기 1장은 6일 창조 기간에 각각의 날에 어떤 것들이 창조되었는지 상세하게 보여 줍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천사들의 창조에 대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2) 출애굽기 20장 11절은, 거기에서 언급된 ‘하늘’이 첫째 하늘 즉 새들이 나는 대기권의 하늘과 둘째 하늘 즉 우주 공간과 셋째 하늘 즉 하나님이 계신 공간을 포함하는 경우에만 천사들의 창조가 6일 창조 안에 포함됨을 보여 줍니다.
(3) 출애굽기 20장 11절과 느헤미야기 9장 6절을 비교하면 도움이 됩니다. 느헤미야기 9장 6절은 천사들의 창조를 언급합니다.
주 곧 주는 홀로 {주}시니 주께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와 땅과 그 안의 모든 것과 바다들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다 보존하시오매 하늘의 군대가 주께 경배하나이다(느9:6).
여기에 나오는 ‘하늘들의 하늘’은 곧 셋째 하늘을 말합니다(신10:14; 왕상8:27; 대하 2:6; 6:18; 느9:6; 시68:33; 148:4 등).
시편 148편 1-5절은 느헤미야 9장처럼 그분의 모든 군대를 이야기합니다(2절 참조).
출애굽기 20장 11절과 창세기 1장은 셋째 하늘을 언급하지 않으며 또한 천사들의 창조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6일 창조의 프레임 안에 두려는 생각을 버리고 보통 사람이 평이하게 이 부분을 읽었을 때에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 즉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4)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과 땅’이라는 말은 히브리말에서 우주(universe)를 뜻합니다. 우주에는 땅과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셋째 하늘은, 은하수를 포함하는 둘째 하늘 너머에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창세기 2장 1절은 창세기 1장 1절을 다시 표현한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창2:1).
창세기 2장 1절은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the heaven)이 곧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임을 보여 줍니다.
(5) 출애굽기 20장 11절과 창세기 1장 1절, 창세기 2장 1절은 하나님께서 지금과 동일한 24시간의 하루를 육일 동안 쓰셔서 우주 공간을 만들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구절들은 셋째 하늘에서 이루어진 영적인 것들의 창조를 다루지 않습니다. 에스겔서 28장은 타락 이전의 루시퍼를 보여 주는데 거기에는 실제의 땅(지구)과 관련된 내용이 없습니다. 즉 에스겔서 28장은 셋째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합니다.
(6) 셋째 하늘과 천사들의 창조를 동시에 언급하는 구절들(골1:16, 느9:6)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의 창조자심을 보여 주려는 것이 그것들의 창조 시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시점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7) 6일 창조라는 프레임 안에서 천사들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의 창조를 다루려는 것은 일관성 있게 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창세기 1장 1절 이전에 영적인 존재들의 창조가 있었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욥기 38장 4-7절을 살펴보면 그것이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4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5 누가 그것의 치수들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것 위에 줄을 팽팽히 쳤느냐? 6 그것의 기초들을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혹은 그것의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하나님은 여기서 욥에게 자신이 땅 즉 지구를 창조할 때에 욥이 어디 있었는지 묻고 있습니다. 땅의 기초를 놓은 일은 창세기 1장 1절에 있습니다. 즉 창세기 1장 1절은 첫째 날에 땅(지구)이 창조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욥기 38장 7절의 새벽별과 하나님의 아들들은 물론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평이하게 욥기 38장 4-8절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실 때에 이미 천사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첫째 날의 첫 시간에 천사들이 창조되었다면 바로 그 뒤에 있던 땅의 창조 때에 이들이 노래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것도 가능하지만 창세기 1장 1절의 문맥은 창조의 첫 날에 하나님께서 처음 하신 일이 땅의 창조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창세기 1장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8) 창세기 1장 31절에서 하나님이 ‘매우 좋았다’고 하신 것은 문맥에서 볼 때 우주 창조(물질 세상)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적 존재들의 타락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우주 공간의 모든 물질적 창조물을 보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땅과 우주 만물의 쇠퇴를 가져온 것은 사탄의 반역이나 죄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9-23절은 우주 공간의 모든 창조물이 헛된 것에 굴복하게 되어 신음하는 것은 아담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땅과 사람은 루시퍼의 타락으로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고 아담의 타락으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9) 성경을 개관해서 볼 때 셋째 하늘에서 사탄의 반역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영적인 존재들에게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보여 주시기 위해 6일 창조를 통해 우주 공간과 땅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을 만드셔서 그 존재들에게 시청각 교육을 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일이 지금 우리가 ‘시간’(time)이라고 알고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것은 에베소서 3장에서 교회를 통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려 하심이라. 그 목적은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과 권능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엡3:9-10).
사람의 창조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셋째 하늘의 모든 영적 존재들에게 자신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고 있습니다. 천년왕국 이후에 이 일이 다 끝나면 시간은 없어지고 다시 영원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천사들의 창조와 타락이 있은 이후에 창세기 1장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셔서 그 존재들에게 자신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 주려는 것이 성경의 역사라고 저는 믿습니다. 천사와 사람이 같은 시기에 지어졌으면 에베소서 3장 9-10절에 드러난,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결론을 드립니다.
성경은 천사의 창조와 사탄의 타락 시기에 대해 구체적인 시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잘 판단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사 창조와 루시퍼의 타락에 대해 셋째 입장임을 알립니다. 이 입장은 가장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입장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 참고로 이 글은 논쟁을 하기 위한 글이 아니고 단순히 제 견해를 밝힌 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달리 믿으시는 분들은 자유롭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성도들 간에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이 다르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서로 교제를 중단할 필요는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한 교회의 목사로서 교회 내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저희 교회에서는 셋째 입장을 가르칩니다.
감사합니다.
2012-08-31 10:46:55 | 관리자
오영환 님, 죄송합니다만 글을 처음부터 차분히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정 목사님께서는 한가지 정치 성향만이 옳다는 주장을 하신 것이 아니라
비록 어떤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항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쪽을 택하자는 의도에서 글을 쓰신 것입니다. 이런 글을 통해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2012-08-30 14:57:11 | 소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