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벳의 아들(삿9:26-41). 그는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으로 추정된다(창34:2-6).
그는 아비멜렉을 대적하면서 세겜 사람들과 연합하여 그들을 부추기고 싸우게 했으나 패배를 당하였다.
2009-04-22 19:08:27 | 관리자
에브라임의 작은 산. 이곳은 여호수아의 무덤이 있던 곳이며 이곳의 북쪽에 딤낫세라가 있었다(수24:30). 가아스의 시내 혹은 계곡은 이 산의 기슭에 있었을 것이다(삼하23:30; 대상11:32).
2009-04-22 19:06:22 | 관리자
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하나.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그는 예레미야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처음 공격하기 바로 전인 주전 610년경에 대언하였다(왕하24:1).
2009-04-22 19:03:12 | 관리자
세겜의 아버지. 레위와 시므온은 세겜이 자기 누이 디나를 겁탈하자 그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창34:2-26).
야곱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땅을 사서 거기에 제단을 쌓았고(창33:19) 후에 요셉은 그 땅에 묻혔다(수24:32).
2009-04-22 19:02:39 | 관리자
곡과 그의 사악한 군대가 멸망하는 골짜기(겔39:11, 15).
2009-04-22 19:02:06 | 관리자
시리아의 유명한 도시. 하맛은 예루살렘과 다마스커스처럼 고대로부터 중요한 도시였다.
이곳은 창10:18에서 가나안 족속들의 거처로 나오며 그 이후에도 넓은 의미에서 가나안의 북방 경계로 자주 언급된다(민13:21; 수13:5; 삿3:3). 다윗의 시대에 하맛의 도이 왕은 그의 동맹자였다(삼하8:9-10).
2009-04-22 19:01:39 | 관리자
페르시아 왕의 총애를 받던 인물.
그는 유대인 모르드개에게 복수하기 위해 왕국에서 유대인들을 멸절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그의 계획은 에스더에 의해 저지를 당하고 그는 왕의 진노를 받아 교수대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아각 사람이라 불리는데 아각이 아말렉 왕들의 흔한 이름이므로 유대인들은 그가 미디안 족속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그가 유대인들을 미워한 이유는 명백해진다. 그의 이야기는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것을 인도하며 그분의 백성은 위험 중에서도 안전하고 그분의 원수들은 반드시 멸망당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말렉, 아각 참조.
2009-04-22 19:01:07 | 관리자
성경에서 하룻길은 약 32킬로미터 정도이다(출3:18; 신1:2; 왕하3:9; 욘3:3).
2009-04-22 19:00:31 | 관리자
예스르엘과 길보아 산 근처의 샘(삿7:1; 삼하23:25).
2009-04-22 19:00:04 | 관리자
가나안 북부의 도시. 이곳은 이방인들의 하로셋으로 불리며 시스라가 여기 살았다(삿4:2; 13, 16).
2009-04-22 18:59:33 | 관리자
I. 데라의 맏아들.
그는 아브라함의 형제이며 롯과 밀가와 이스가의 아버지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창11:26-31).
II. 메소포타미아의 북서쪽에 있던 고대 도시.
신약성경은 이곳을 Charran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의 이동 지도 참조(13). 아브라함은 갈대아의 우르를 떠난 뒤 자기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여기에 거하였고 야곱은 에서를 피해 여기로 도망하였다(창11:31-32; 12:5; 24:1-67; 27:43; 28:10; 29:4). 히스기야 시대에 하란은 아시리아 사람들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왕하19:12; 사37:12).
2009-04-22 18:58:53 | 관리자
메대의 북부에 있던 산악 지대(대상5:26).
2009-04-22 18:55:03 | 관리자
소바와 그 주변 지역을 다스리고 유프라테스에까지 힘을 쓴 시리아의 강력한 왕(왕상11:23).
그는 세 번이나 패하고 결국 다윗에 의해 권력을 잃었다(삼하8:3-4; 10:6-14, 16-19; 대상18:3; 19:6).
2009-04-22 18:54:21 | 관리자
에스더의 유다 식 이름(에2:7).
2009-04-22 18:53:49 | 관리자
I. 모압의 평야에서 미디안 사람들을 격파한 에돔의 통치자(창36:35; 대상1:30).
II. 대상1:51에 나오는 에돔의 두 번째 통치자.
III. 다윗이 에돔을 정복하자 이집트로 도망한 에돔의 왕족(삼하8:14). 그는 거기에서 파라오의 영접을 받고 왕비의 여동생과 결혼하였으며 다윗과 요압이 죽은 뒤에 에돔에 돌아와 솔로몬의 멍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다(왕상11:14-22).
2009-04-22 18:53:21 | 관리자
므깃도 골짜기의 한 장소.
여기에서 선한 요시야 왕은 파라오느고와의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돌아와서 죽었으며(왕하23:29; 대하35:20-25) 이로 인한 애곡이 굉장히 컸다(슥12:11).
2009-04-22 18:52:45 | 관리자
신구약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왕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이며(엡1:6; 12; 14)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국에 대한 개념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이 “유대인들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으며(마2:2) 그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다(마4:17). 또 그분께서 돌아가실 때 십자가 위의 명패에도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 예수’라는 글이 붙었다(마27:37). 교회와 왕국 선도 참조(85).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의 왕으로 즉 그들의 메시아로 오셔서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아 왕국을 그들에게 제시하셨으나 배척당하시고 결국 그들의 왕으로 돌아가시면서 새로운 언약 즉 신약을 여셨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국을 잘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역의 시작부터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였으며(막1:1, 14)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이런 구절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바실레이아’는 왕국이며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땅에 임하게 하사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왕국 즉 ‘하늘의 왕국’을 제시하셨다(마4:17).
하늘의 왕국은 대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된 왕국으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세우시는 왕국이다.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시리니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단2:44). 예수님은 바로 이 왕국을 유대인들에게 제시하시고 침례자 요한의 사역과 각종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 주셨으나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거부했고(마23:37-39)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전달되었다(롬11:30-31).
한편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선포될 복음도 천국 복음이 아니고 왕국의 복음이다(마24:14).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3-14). 복음 참조. 여기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목숨을 내걸고 주님께 헌신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이 끝나는 때까지 견디는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1차적으로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으로 7년 환난기를 통과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들은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른 뒤에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성취될 때에 구원받는 자들이다(롬11:26). 그래서 7년 환난기에는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왕국의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고 그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신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신실한 성도들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랐고(눅2:30-34; 38) 그래서 처음부터 그들에게는 왕국의 도래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구속이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실망에 잠겼으나(눅24:21) 그분의 부활 소식을 듣고는 그분이 승천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왕국의 회복에 대해 물었다.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행1:6) 이때에 그분께서는 왕국의 회복이 하나님의 권능 안에 있으므로 그들은 나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셨고(행1:7) 이에 그들은 왕국의 회복을 바라며 복음을 선포하였고 특히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강하게 권면했다(행3:19-26). 복음의 초기에는 이렇게 왕국의 회복과 관련해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이 선포되었으며 이방인들의 구원은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서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이루어졌다. 스데반의 순교는 유대인들의 회개가 거의 불가능함을 보여 준 사건이며 유대인 중심의 복음 사역에서 이방인 중심의 사역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고 결국 유대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주후 70-71년에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훼파시키고 유대인들을 추방하여 왕국의 회복은 이방인들 중심의 교회 시대 이후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물론 구약의 대언자들이 말하고 예수님이 초림 때에 세우려 했던 하늘의 왕국은 그분의 재림 이후에 천년왕국에서 문자 그대로 위엄 있게 이루어질 것이다. 천년왕국 참조.
기존의 우리말 성경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모든 성경에서 왕국으로 번역된 kingdom은 성경에 342회 나오며 이것은 원래 왕권(kingship)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주로 왕이 다스리는 통치 체제 즉 왕국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중요한 단어를 ‘나라’나 ‘천국’ 등으로 일관성 없게 번역하면 성경의 핵심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인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악용하여 천국이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주장한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개역성경 눅17:20). 문맥을 볼 때 “너희 안에 있다.”의 ‘너희’는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하신 바리새인들이다. 예수님은 결코 바리새인들 안에 천국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기존의 우리말 성경의 ‘나라’는 원래 왕국이다. 왕국이 성립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왕이 있어야 하며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질문을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왕으로 너희 가운데 와서 거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결론적으로 ‘왕국’을 ‘천국’ 혹은 ‘나라’로 바꾸는 것은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를 완전히 가려 성도들의 성경 이해를 가로막는 심각한 폐해를 낳으며 그 결과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이스라엘 대체신학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하나님의 왕국 참조.
끝으로 역사를 통한 세상 왕국의 변천은 다니엘서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방인들의 때 참조.
2009-04-22 18:52:13 | 관리자
히브리 사람들이 섬기던 이방 여신의 호칭(렘7:18; 44:17-18). 어미 여신과 아기 이야기는 고대 바빌론에 널리 알려졌으며 체계가 잡힌 숭배 사상으로 발전되어 갔다. 바빌론의 많은 기념비는 어미 여신 세미라미스가 자기 아들 담무스를 팔에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담무스 참조. 바빌론 사람들은 세상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거룩한 어미와 아기 숭배도 함께 가져갔다. 이러한 숭배가 퍼져나간 많은 국가들에서 어미와 아기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의 언어가 바벨탑 사건을 계기로 혼잡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어미 여신을 ‘싱무’(성모) 즉 ‘거룩한 어머니’라 부르는데 성모는 아기를 팔에 앉은 채 머리 둘레에 영광의 광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고대 독일 사람들은 팔로 아기를 안고 있는 처녀 헤르타를 숭배했고 영국의 드루이드 교도들은 ‘비르고-파티투라’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했다. 한편 인도에서는 그녀가 인드라니로, 그리스에서는 아포디테 또는 케레스로, 고대 로마에서는 비너스나 포투나로 알려졌으며 그녀의 아기는 주피터로 알려졌다. 그녀의 이름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그녀는 바알의 아내였으며 하늘의 여왕이요 처녀로서 수태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낳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배도했을 때 그들 역시 어미 여신 숭배로 말미암아 매우 더럽혀졌다. “그들이 주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니라.”(삿2:13)는 말씀에 나오는 아스다롯 혹은 아스도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 알려진 어미 여신의 이름이다. 바알과 아스다롯 참조. 그들은 반복해서 이러한 가증한 행위를 계속했으며(삿10:6; 삼상7:3-4; 12:10; 왕상11:5; 왕하23:13) 그들이 알고 있던 그 여신의 칭호 중 하나가 바로 ‘하늘의 여왕’이었다.
“우리가 행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으리라…또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여왕에게 음료 헌물을 부을 때에 우리 남자들의 허락도 없이 그 여왕에게 납작한 빵을 만들어서 그녀에게 경배하고 음료 헌물을 부었으리요?”(렘44:17-19)
한편 에베소에서 이 위대한 어미 여신은 다이아나로 알려졌으며 그 도시에 세워져서 그녀에게 봉헌된 신전은 고대 세계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다이아나 참조. 에베소뿐만 아니라 전 아시아와 세계를 통해 이 여신은 큰 숭배를 받았고(행19:27) 바빌론으로부터 많은 나라로 여러 가지 다른 이름과 형태로 확산된 거짓 우상숭배는 결국 로마 제국 전역에서 하나의 종교 체제로 확립되었다.
어미 여신 숭배가 최고조에 달했던 바로 그 시대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신약 교회를 설립하셨다. 기독교 초기에 이 교회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교회였지만 3, 4세기경의 ‘교회’는 여러 면에서 초대 교회의 믿음을 떠나 사도들이 경고했던 배교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러한 배교가 일어나면서 이교도들의 이교주의와 기독교가 혼합하게 되었다. 그 결과 회심하지도 않은 이교도들이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교회 안으로 들어왔으며 많은 경우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그들 고유의 이교 의식과 행습을 계속해서 행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많은 이교도가 개종해서 기독교로 들어왔을 때 그들의 어미 여신 숭배 사상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그들은 어미 여신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에 그 당시 세상과 타협한 교회 지도자들은 이교주의의 위대한 어미 여신을 마리아로 대체하였고 이로써 이교도들의 어미 여신 숭배는 조금씩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러나 마리아 숭배는 결코 원래의 크리스천 믿음이 아니었다. 마리아가 구원자 예수님을 수태하는 일에 선택되었다는 점을 볼 때 그녀가 훌륭하고 헌신적이며 경건한 여인이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나 그분의 사도 중 어느 누구도 마리아 숭배에 대한 암시를 주지 않았다. 마리아 참조.
주후 4세기 초 콘스탄틴 황제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마리아를 여신으로 보기 시작했고 마리아 숭배는 배교한 교회에서 너그럽게 수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후 431년에 열린 에베소 공회에서는 천주교회의 공식 교리로 채택되었다. 마리아 숭배가 에베소에서 교회의 공식 교리로 채택된 데는 그곳의 다이아나 숭배가 크게 작용하였다. 다이아나 참조.
바울 사도는 복음 선포 초기에 에베소에 이르러 말씀을 선포하며 이교주의와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았다. 이에 그곳 사람들은 진실로 회개하였고 그 어미 여신의 우상을 파괴시켜 버렸다(행19:24-27). 그런데 그로부터 수세기 후에 에베소 교회가 타협을 시도하여 어미 여신 숭배를 채택했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밖에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딤전2:5). 그렇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도 중보자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기도드리는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천주교의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으로 불리지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결코 하늘의 여왕이 아니다. ‘하늘의 여왕’은 마리아가 태어나기 수세기 전 이교도들이 숭배한 어미 여신의 칭호였다. 대언자 예레미야 시대에도 유대 백성은 하늘의 여왕을 숭배했고 그녀를 위해 구별된 의식들을 행했다(렘7:17-20).
2009-04-22 18:51:19 | 관리자
성경은 세 개의 하늘이 있음을 보여 준다. 성경의 하늘들 선도 참조(80).
I. 첫째 하늘 - 새들과 구름이 거하는 곳.
“내가 본즉, 보라, 사람이 없으며 하늘들의 새들이 다 도망갔고”(렘4:25; 단4:12; 마6:26; 8:20 비교). 첫째 하늘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는 아니다.
II. 둘째 하늘 - 해와 달과 별이 있는 곳.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창22:17, 시19:1 비교).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처음으로 첫째 하늘을 가로질러 둘째 하늘로 가는 우주선을 만들었다. 비록 둘째 하늘이 광대하고 아름답다 해도 첫째 하늘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원히 거하는 처소는 아니다.
III. 셋째 하늘 -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12:2, 왕상8:27, 30 비교). 바로 이곳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실제의 셋째 하늘이다. 수 천 년의 노력 끝에 사람들은 첫째 하늘에서 둘째 하늘로 갈 수 있었지만 아무리 우주 공학이 발달해도 둘째 하늘에서 셋째 하늘로 사람을 데려다 줄 우주 왕복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여행은 ‘뇌’에 의해 가능하지 않고 오직 ‘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이런 하늘에 들어갈 수 없고 심지어 볼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하늘은 셋째 하늘, 하늘의 하늘, 가장 높은 하늘 등으로 불리며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이 여기에 거한다(마6: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하늘에 가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며 자신의 백성이 와서 영원히 거하게 될 처소를 준비하고 계신다(엡4:10; 히8:1; 9:24-28). 한편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은 모두 죽는 순간 바로 이 셋째 하늘에 간다.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8; 빌1:23). 여기서 ‘몸을 떠난다는 것’은 육체적 죽음을 가리키며 우리 성도들은 죽으면 곧바로 주님과 함께 셋째 하늘에 있게 된다. 중간 대기소나 연옥 같은 장소로 간다는 것은 성경과는 동떨어진 미신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이 셋째 하늘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거할 도시가 있으며 신구약 성도들은 바로 이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히11:10; 참조 시46:4; 87:3; 요14:2-3). 그런데 이 도시 즉 새 예루살렘은 영원히 셋째 하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류 구속 계획이 끝나면 하늘에서 새 땅으로 내려온다(계21:2). 바로 이 도시 새 예루살렘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천국이다. 새 예루살렘 참조. 만물의 회복 선도 참조(94).
2009-04-22 18:50:22 | 관리자
암몬 족속의 왕.
그의 아버지 나하스는 다윗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의 친구가 되었고 그래서 나하스가 죽자 다윗은 그의 아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조문단을 보내었다. 그러나 하눈은 그들을 경멸하였고 그 결과 암몬 족속에게 수치스런 파멸을 가져왔다(삼하10:1-19; 대상19:1-19).
2009-04-22 18:49:2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