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총장 말고...
자기가 대학총장의 아들이라면서 초라한 행색으로 나타나서, 그런 말을 했다면
학생들은 더 믿지 않았겠지요.
2011-03-02 09:43:29 | 곽연우
예수님도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사람들의 '믿지 않음'에 많은 탄식을 하셨습니다. (막 16:14, 요 5:38)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나
입학하기 어려운 어느 일류 대학총장이 대학설명회에서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우리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사람은 지금 손들면 내가 보내주겠다
라고 한다면
대부분 믿지 못하기에 손들지 않을 것입니다.
한 명이 손들었다면, 그 사람은 그 대학총장의 은혜로 대학에 그냥 합격할 수 있겠지요
대학 총장이 그 사람을 믿게 만들어서 했다기 보단,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히 그 학생이
그 대학총장의 말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 김문수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2011-03-02 09:26:05 | 곽연우
그런 논리는 성경의 진리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문제가 있는 주장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님의 주장에 의하면 그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선물로 주어야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믿음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결국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지 않아서이기 때문에 그가 지옥에 가는 것은 믿지 않은 그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이라는 것이 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나중에 심판을 하실 때 "그분께서 은혜를 안 줘서 믿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너는 왜 믿지 않았느냐고 책망하며 심판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에 비추어볼 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까?
마태복음 3장과 7장이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것인지,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이 같은 것인지 성경을 읽으면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1-03-02 04:01:32 | 김문수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이끌어주고 싶은 그런 삶을 어른들이 특히 부모가 살아내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가정예배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이 아니라, 어른의 행동을 보고서 배웁니다.
가정에서 할 일은 형식을 갖춘 예배의식 보다는, 교회에서 배운 말씀대로 살아가는 어른의 모습입니다.
[내 얘기가 아니라, 매우 훌륭한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옮긴 것입니다]
2011-03-02 00:08:07 | 김재근
안녕하세요.
그동안 이곳의 많은 글들을 읽고 신앙에 많은 유익을 얻었는데 이것에 대해 우선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 글은 쓰게 된 것은 김문수형제님이 오래 전에 쓰신
은혜로 믿게 되는가, 믿어서 은혜에 들어가는가? (엡2:8, 김문수)라는
글의 주장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그 글에서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는데,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원을 받는 믿음 또한 은혜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2:8,9)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엡 2:8,9를 보면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는데, 갈 5:22,23을 보면 믿음이 성령의 열매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이 생겼고, 이 믿음으로 인해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구원에 필요한 믿음과 구원을 받은 후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필요한 믿음이 서로 다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성령의 열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이 생긴다.
는 주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내던져지느니라."
(마태복음 3:8~10)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은 회개하고 믿는 사람입니다.
순종 없는 믿음을 가지겠다는 말은 회개 없는 믿음을 가지겠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오직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라는 자라야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행함으로 증명되는 믿음이 자신의 마음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착각에 빠진 사람일뿐입니다.
순종에 필요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이런 사람이 구원받은 후
성령의 열매로 행함있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구원에 필요한 믿음과 순종에 필요한 믿음이 서로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 즉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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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1 23:06:00 | 김양규
요즘 아이들을 보며
큰 걱정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도 같은 걱정을 하게 됩니다.
가정예배를 통해 바른 신앙으로 이끌어 주려는데
지혜가 부족하여 쉽지가 않습니다.
혹시 가정에서 어떤 형식이나 방법으로 가정예배를 드리시는지
본문선택이나 시간 등등...
조언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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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1 11:43:44 | 박종철
야곱이 라헬에게도 들어가니라. 그가 또한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또 다른 칠 년을 여전히 그와 함께하며 섬기니라(창29:30)
And he went in also unto Rachel, and he loved also Rachel more than Leah, and served with him yet seven other years.
위 구절은 more than 이 들어가는 최초의 성경 구절이며, 상황 역시 love A more than B 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more than 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상적인 문법을 따라 읽으면, 야곱이 "라헬과 레아 둘 중에서" (레아에 비하여) 라헬을 더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문법을 무시하는 사람은 "레아가 라헬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야곱이 라헬을 더 많이 사랑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 구절도 똑같은 형식의 love A more than B 형식입니다.
그의 형제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그의 모든 형제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평안하게 말도 할 수 없었더라(창37:4)
And when his brethren saw that their father loved him more than all his brethren, they hated him, and could not speak peaceably unto him.
their father loved him more than all his brethren.
요셉(A)과 요셉의 형제들(B)이 있는데, 야곱이 그 둘 중에서 요셉(A)을 더 사랑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야곱이 요셉을 사랑했고, 그 형제들도 요셉을 사랑했는데, "요셉에 대한 그 형제들의 사랑"에 비하여 "야곱이 요셉을 사랑하는 정도"가 더 컸다는 뜻입니까?
내가 그분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들을 더 귀히 여겼도다(욥23:12)
Neither have I gone back from the commandment of his lips; I have esteemed the words of his mouth more than my necessary food.
"주의 말씀과 음식" 이 두 가지 중에서 욥이 말씀을 더 귀히 여겼다는 뜻입니다. "음식이 말씀을 귀히 여기는 것"에 비해서(?), 욥이 말씀을 귀히 여기는 정도가 더 크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편 69편 31절에서 ox or bullock와 비교가 되는 것은 그 앞에 있는 30절의 감사와 찬양입니다. 문맥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사람이 수소나 황소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요한복음 21장의 문맥은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에 비해 베드로의 사랑이 특별히 더 지극하기를 바라는 질문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이 나(예수님)를 사랑하는 것보다, 베드로 네가 나를 더 많이 사랑하느냐?" 그래서 베드로가 "예, 제가 딴 사람들보다는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면 그것을 듣고 좋아하실 예수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의 사랑이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비해) 좀 미지근하고, 못 미치는 것을 주님이 바라신다는 뜻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로 인하여 실족할지라도 나는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마26:33)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 때문에 다 실족해도, 나는 안 그럴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배신하고 베드로만 주님을 끝까지 따르면(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베드로의 사랑이 다른 제자들의 사랑보다 더 뛰어나니) 예수님께서 좋아하셨을까요? 이렇게 호언장담하다가 진짜 실족한 사람이 누군데 주님께서 또 다시 베드로에게 그런 어리석은 비교와 자신감을 요구하실까요?
베드로: "주여, 이 사람은 무엇을 하리이까?"
예수님: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요21:21,22)
베드로는 자기와 요한을 비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의 사랑과 헌신이 요한의 사랑과 헌신보다는 더 뛰어나야 내가 기뻐할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문맥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이지, 베드로의 사랑과 제자들의 사랑을 비교하려고 하는 맥락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숯불 이야기를 가지고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감동적인 묵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게 흔히 말하는 Q.T.의 묘미지요.
날이 추우므로 종들과 관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거기 서서 몸을 녹이니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몸을 녹이더라(요18:18).
그들이 땅에 올라와 곧바로 숯불이 거기 있음을 보았는데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더라(요21:9).
그래서 베드로로 하여금 그가 주님을 부인할 때의 그 숯불을 생각나게 하려고 예수님이 숯불을 피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옛날에 이런 식의 감동적인 Q.T.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숯불은 그냥 숯불입니다. 그 때는 종들이 추워서 숯불 피운 거고, 이번에는 예수님이 물고기 구우려고 숯불을 피우신 겁니다. 전기오븐이나 가스렌지가 없는데 당연히 숯불 피워야지요. 숯불이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에 무슨 신비한 심리학적인 의미나 영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열심히 생각해봤자 숯불은 그냥 숯불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그분의 진리를 찾기 쉽게 기록해 놓으셨지, 보물 찾기 하라고 꽁꽁 숨겨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준오님이나 혹은 다른 어떤 분들이 어떤 해석을 취하건 저는 별로 상관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제 해석을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며, 성경의 단어와 용법은 성경의 정의와 용례를 따른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저는 문자적(문법적), 역사적(historical), 문맥적(contextual) 해석을 따릅니다.
이준오님의 견해에 동의하는 많은 설교가들이나 신학자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선 축하를 드립니다다. 그러나 스펄전이 뭐라고 했건, 매튜가 뭐라고 썼건 그게 제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주석이나 해설들은 성경 말씀과 같은 절대적이고 신성한 권위가 없기에, 저는 그것을 교회 역사 상 성경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발견한 하나의 의견으로 간주할 뿐 그들의 글이나 해석에 절대적인 권위를 두지 않습니다.
2011-03-01 04:19:26 | 김문수
형제님!
킹제임스 성경의 문법은 오늘날 현대의 문법과 약간 다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그것이 번역된 그리스 원문의 문법체계를 최대한 따라 번역되었습니다. 그 점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면 위의 영어 답문에 fish가 나와있는데 킹제임스 성경의 fish는 단수 혹은 대표의 성격을 갖습니다. 복수는 항상 fishes를 써왔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여러종류가 아니더라도 복수면 항상 fishes로 옵니다. 오늘날의 문법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말할 때에도 five loaves and two fishes입니다.
또한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 본문의 문법을 최대한 따랐기 때문에 than 다음에 비교의 대상만 나오고 동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콘코던스로 than을 찾아보아 확인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편 69:31을 보면
Psa 69:31 This also shall please the LORD better than an ox or bullock that hath horns and hoofs.
현대의 문법에 따라, "이것이 또한 수소나 굽이 있는 황소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주를 더 기쁘게 하리로다" 라고 해석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것이 또한, 수소나 굽이 있는 황소가 주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더 주를 기쁘게 하리로다."라고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흠정역은 "이것이 또한 수소나 뿔과 굽이 있는 황소보다 주를 더 기쁘게 하리로다."라고 되어 있지만 문맥상 두번째 의미로 모두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요 21:15의 more than these의 해석의 논란은 형제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합니다. 적어도 200년 이상되어 온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던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 부분을 해석해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more than these?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 왔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lovest thou me more than these love me?" 즉,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너는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런 식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석한 사람들을 적어보자면, St Augustine부터 시작해서 제가 확인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Spurgeon, Warren Wiersbe, Albert Barnes, Adam Clarke, John Darby, John Gill, Matthew Poole, John Wesley, Arthur Pink.
동일하게 말하는 주석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Combined Bible commentary, The Greate Biblical Commentary of Cornelius, Daily Study Bible, People's New Testament, Jamiesson & Fausset & Brown Commentary, Robertson's Word Pictures, Treasury Scriptural Knowledge, Vincent's Word Studies.
여기서 DSB(Daily Study Bible)는 두가지 견해 즉, 물고기와 그물과 배 즉 어부의 삶의 견해와 다른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견해 모두 제시합니다.
반면 Guzik은 "fish and a fishermans's life"이라고 제시했고 Fourfold gospel(1914, J.W. McGarvey, Philip Pendleton) 역시 "fishes and this fishing business"이라고 해석했습니다.
Matthew Henry는 세가지 의견을 모두 언급했습니다: 물고기와 배와 그물, 다른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문맥상 잘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부를 때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눅 22:31을 생각나게 합니다.
눅 22:31~32 또 주께서 이르시되,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 32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쇠하지 않도록 기도하였은즉 너는 돌이킨 뒤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 하시니
주님은 또한 추위에 떨 제자들을 위해 숯불을 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숯불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주님은 또한 베드로에게 세번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지극히 베드로 개인과 연관이 있는 질문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주님이 물고기와 어부의 삶을 두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베드로 뿐 아니라 세베대의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에게도 물으셔야 할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베드로를 따라 고기를 잡으러 배에 올라탔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이 견해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기 때문에 "이들"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이 되면 오직 한 견해만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영어 성경처럼 스스로 판단하도록 여지를 둘 수 있게 "이들"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2011-03-01 02:01:11 | 이준오
킹제임스 성경 세미나 사랑침례교회에서는 박참하 목사님과 박선규 형제님을 모시고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킹제임스 성경 세미나를 엽니다. 일시: 2011년 3월 13일(일), 오후 2시부터(50분씩 2시간)
내용: 킹제임스 성경을 믿게 된 경위와 최종 권위로 믿는 이유 강사: 박참하 목사님(2시부터)
박선규 형제님(3시부터)
박참하 목사님은 인천 간석동의 말씀침례교회를 담임하고 계십니다. 장로교 목사님으로 지내다가 성경의 진리를 알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바른 믿음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박선규 형제님은 약 20년전부터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및 교정에 참여하신 분입니다. 현재 인천 한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두 분이 오셔서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된 경위, 최종 권위로 믿는 이유 등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런 분들의 기도와 수고로 인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흠정역 성경이 나오고 보급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형제들을 위해, 그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1-02-28 11:18:33 | 관리자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more than these?
만약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베드로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는 뜻이라면, 비교의 대상은 예수님과 이것들 (둘 다 love의 목적어)이 아니라, "베드로가 사랑하는 정도" 對 "다른 사람들이 사랑하는 정도"가 됩니다. 이 경우 than 뒤에 나오는 these는 목적격이 아니라 주격이 되어야 하며, 문법적으로 ... lovest thou me more than these do(love) 가 되어야 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these 다음에 동사나 대동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these는 주격이 아니라 목적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사도 요한과 비교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 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21:22)
15절 이후에 바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는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나(주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제자들 중에서 누가누가 더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라는 문제로 경쟁을 붙이실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11-02-28 06:02:01 | 김문수
듣고 보니 또 그렇군요ㅎ
분명한건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음을 믿습니다.
대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뜻대로 살지않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설때 책망과 부끄러움과 보상의 손실을 당할것입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믿음에도 다 같은 믿음이 아닌 "헛되이 믿는 믿음"이 있음을 알수있는데-
(고전 15: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고전 15:2) 『By which also ye are saved, if ye keep in memory what I preached unto you, unless ye have believed in vain.』
보시다시피- 이구절에서 키포인트 핵심 단어는 "헛되이" 입니다.
이 "in vain"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말이 안되므로 엄청나게 중요한 단어임을 볼수있습니다.
즉, 믿음에도 헛되이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지요.
헛되이 믿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왜냐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11-02-28 01:12:54 | 최홍진
저는 다른 의견입니다. these는 남성 복수명사라면 두 가지 모두 가능합니다. 첫번째 물고기들과 배와 그물들 즉 예전의 어부의 삶을 의미할 수 있고 두번째는 그들 즉 베드로와 함께 했던 사람들 둘다 지칭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물고기들을 의미하는가? 과연 주님이 베드로가 물고기보다 즉 예전 어부의 삶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셨나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입니다. 제가 볼 때에 these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겠습니까? 베드로야, 네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것일까요? 이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 이미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베드로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저는 이 질문이 답이라고 여깁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실언에 대한 것입니다.
마 26:33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로 인하여 실족할지라도 나는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적절한 번역은 "이들"로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것들은 사물만 의미하나 이들은 둘다 가능합니다.
2011-02-27 21:52:55 | 이준오
본문에서 걸리는 부분들이 있는데요,
제가 아는 지식과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본문에 보면
'지옥은 “불 호수”(Lake of Fire)입니다!(계 20:10-15)' 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지옥은 임시처소이고 불호수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0 : 14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그리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옥에 떨어진 부자는 오늘 날로 적용하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님을 믿었으면서도 죽어서 지옥에 간 사람입니다(마7:21-23)! 그는 교회는 다녔지만 “바른 진리”를 무시하고 불법적인 믿음 생활을 고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가 오늘 우리에게 지옥에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마귀는 많은 사람에게 교회를 다니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고, 선교도 하게하지만 구원만은 받지 못하게 유혹하고 있음을 엄중한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부분인데요, 누가복음의 16장의 부자를, ''지옥에 떨어진 부자는 오늘 날로 적용하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님을 믿었으면서도 죽어서 지옥에 간 사람입니다.'라고 주장 할 수 있는 근거가 성경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마음 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 아닌가요?
본문 내용은,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지옥에 갈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행위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지, (누군가가 의롭게 되어 구원받았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 아닌가요? '예수님을 믿었으면서도 죽어서 지옥에 간 사람이 있다'(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면 성경 교리와 다른 것 아닌가요?
또한, '부자'가 지옥에서 편지를 보낸 것이라는 주장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적인 표현이라 할지라도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됩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이 편지를 보낸다니 어디서 그런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요? 성경과는 거리가 먼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02-27 03:55:15 | 장우석
오늘 처음으로 들어왔고 회원 가입했는데요...
위에 소개한 베들레헴 성경을 제 PC에 깔려고 하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요?
2011-02-26 14:22:38 | 심재준
감사합니다. 위의 편지를 전도용으로 사용해도 되겠읍니까?
2011-02-26 01:28:37 | 양동현
감사합니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호소해도 듣지 않고, 귓등으로 듣는 사람들도 많으며 교회 다니는 이들조차 심각함이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성경의 경고를 믿지 않는 이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 전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2011-02-25 10:24:49 | 김재욱
귀한글 감사합니다. 전도용 소책자로 발행해도 좋겠습니다. ^^
2011-02-24 22:14:28 | 송재근
감사합니다. 꼭 필요한 경고를, 성경적으로, 차분하고 설득력있게 잘 정리해주셨군요.
2011-02-24 17:44:19 | 류인선
글내용이 성경적이고 유익하고 좋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지옥설교 좋아합니다. 저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심판주되시는 우리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충만하게 나타나기때문이죠-
근데 제목이 좀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것같네요-
일본에서 예언미신사이트로 한때 인터넷을 달구었던 검색어였거든요-
2011-02-24 09:51:52 | 최홍진
지옥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글은 깊은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서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엄중한 부담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부디 마음 문을 여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어 주기 바랍니다.
이 글이 당신의 생(生)과 사(死)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곧 삶이냐 죽음이냐, 하늘(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과 함께 영원을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지옥은 실재(實在)하는 장소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불타는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이 지옥의 온도를 단 일 도(度)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지옥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천국(하늘)에 관해서 보다 지옥에 관해 더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만도 지옥에 대해 경고하는 구절이 160개 이상이 됩니다.
이중에 70개 구절 이상이 주 예수님께서 친히 경고하신 구절입니다. 지옥에 관한 구절 가운데 한 구절이 누가복음 16:19-31 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구절을 비유가 아닌 실제의 사실로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지내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하는 어떤 거지는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하더니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더라. (22)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지고 그 부자도 죽어 묻히게 되었더라. (23)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너는 너의 평생에 너의 좋은 것들 것 받았고 그와 같이 나사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교통을 받느니라. (26)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하는 자들이 할 수 없고 거기서 오려 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하니 (27) 이에 그가 이르되, 그러므로 아버지여, 간구하건대 아버지께서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소서, (28) 내게 다섯 형제가 있사오니 그가 그들에게 증언하여 그들 또한 이 고통 받는 장소로 오지 않게 하소서, 하거늘 (29) 그가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대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저들의 말을 들을 것이니라, 하매 (30) 그가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너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 하니 (31)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이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지라도 그들이 설득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6:19-31)
여기서 주 예수님께서는 성경이 지옥에 관해 말씀하는 바를 믿지 않는 자는 심지어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기적을 볼지라도 지옥을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욱이 지옥을 믿고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당신의 영혼이 그곳으로 가는 것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회개하고 예수님을 당신의 주님(Lord)과 구주(Savior)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시110:1, 마16:16).
당신이 이전에 불에 데었던 경험이 있다면 그 고통이 어떠한지를 잘 알 것입니다. 불에 아주 조금만 데어도 그 고통은 매우 큽니다. 당신은 온 몸이 몇 분, 혹은 몇 시간, 혹은 몇 날, 혹은 몇 년, 혹은 수 세기, 혹은 영원히 불에 탈 때 그 고통이 어떠할지를 상상해 보셨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이 미친 소리로 들리십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만약 내가 잘못 판단 하였다면 어찌될 것인가? 실제로 지옥이 있다면 어찌될 것인가?” 당신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고 또 다른 사람들은 불에서 끄집어내어 두려움을 가지고 구원하되-”(유다서 22,23) 누군가는 했어야만 했기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서라도 그들을 지옥에서 끄집어내려고 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일초에 3 명씩, 매일 175,000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단지 저와 당신이 지금 죽음의 명단에 들지 않은 것뿐이며 언제 죽음의 명단에 들어 갈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마 7:13-14) 어떤 이는 “나는 지옥을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당신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지옥에 관해 말씀하셨기 때문에 지옥을 믿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대부분의 사람이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말씀으로 경고하셨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많은” 쪽입니까 아니면 “적은” 쪽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무조건 지옥에 보내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결코 죄를 짓기 때문에 지옥에 보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믿지 않음으로 지옥을 자신이 선택하는 것뿐입니다. 성경은, 그분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지옥에 가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행4:12)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술사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그러므로 이 구절은 어떤 이가 아무리 자신을 선(善)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는 히틀러나 김일성이나 그 밖의 모든 살인자들이나 거짓말하는 자들과 동일하게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글이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해도 인내 하십시요. 저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안에 있는 진리를 가감 없이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들도 믿고 떨기 때문입니다(약 2:19). 어떻게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당신은 반드시 그분이 주님 이심을 믿어야 할 뿐 아니라, 그분께서 당신의 주님이 되셔야만 합니다. 단지 지옥을 믿고 지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당신의 영혼을 지옥으로 가는 것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회개해야 하며, 예수님이 당신의 주님과 구주가 되셔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 복종하고자 합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주님과 구주로 받아드리고자 합니까?
만약 그분이 당신의 주님이 아니시라면, 당신은 불신자이며, 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죽어서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씀에 따라서냐고요? 예수님께서 지옥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지옥은 “불 호수”(Lake of Fire)입니다!(계 20:10-15)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
지옥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결코 죽지 않으며, 불이 결코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막 9:43-48) 지옥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마 8:12, 24:51, 25:30) 지옥은 죄인들과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마시는 곳입니다!(계 14:10) 지옥은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는 곳입니다!(계 14:11) 지옥은 성경에 있습니다. 부디, 이러한 구절들을 읽으십시오.
당신은 지옥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지옥은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에게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마 25:41).
부디 주님으로부터 이러한 말씀들을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지옥과 비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악몽도 지옥에 비교할만한 고통을 만들 수 없습니다. 어떠한 공포 영화도 지옥의 무서움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범죄 장면도 감히 지옥의 무서움에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그곳에 가게 되면, 부자가 간 지옥을 볼 것이며, 지옥의 냄새를 맡을 것이며, 지옥을 숨쉴 것이며, 지옥의 비명 소리를 들을 것이며, 지옥 불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지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곳입니다!
당신은 혹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을 그러한 끔찍한 장소에는 결코 보내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분명히 죄인들과 그리스도를 배척한 자들이 영원을 보낼 장소도 틀림없이 마련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도 알다시피 천국에는 어떠한 죄도 허용되지 않으며, 어떠한 죄인도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죄를 벌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피할 길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사랑하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엡 1:7)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 (롬5:8-9)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당신은 혹 “지옥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선하기 때문에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으로 보내려고 하지 않으실 꺼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분이여,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라고 말씀하십니다(롬 3:12,23). 우리는 당신의 선함에 대해 논쟁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당신은 매우 선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죽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의 무게를 재실 것이며, 선한 행위가 악한 행위보다 더 무겁기 때문에 저울의 눈금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리킬 것이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한 행위는 악한 행위보다 더 무겁지 않습니다. 저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얼마나 선한 행위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죄 때문에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쫓아 내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창3:22-23). 이것은 단 한 가지 “죄” 때문이었습니다. 단 한 가지인,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수 되었으며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한 루시퍼와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얼마나 선한 행위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한 가지 죄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 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사14:12-15). 단지 한 가지, “죄”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이 자신을 선하고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신이 지금 천국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갈 수 있다면, 곧 당신이 선함으로 인해 천국에 가기에 충분할 만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헛되이 죽으셨습니다.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도다.”(롬3:12)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많은 죄가 당신을 천국에 가지 못하게 할까요? 단지 한 가지,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당신은 반드시 당신이 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아서 그분 보시기에 우리의 의(선함)는 다 더러운 누더기 같다고 말씀합니다(사 64:6). 당신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선함”을 보시지 않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선함과 그분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행하신 것을 보십니다.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당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당신의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죄인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선한 사람도 구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온전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니라. 내가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왔노라.” (막 2:17)
당신은 “선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죄인”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글쎄요, 나중에 믿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이것이 어떠한 도박인가요? 그렇다면, 이것은 당신이 하게 될 도박 중에 가장 큰 도박입니다! 당신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나 사건이 될 영원의 문제에 도박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보십시오. 그러나 만약 성경이 옳고 당신이 틀렸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수 백 만년이 지난 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지옥의 불길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탈출구도, 위로도, 희망도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얼마나 큰 도박을 하고 있는 지요!
매일 밤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날 때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만일 내가 틀렸다면 나는 어찌될까? 정말로 지옥이 있다면 나는 어찌될까?” 사랑하는 여러분! 답을 얻기 위해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당신이 이미 정죄를 받았고 지옥에 가도록 판결이 내려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요 3: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구원은 당신의 교회나, 교단이나, 선행이나, 선한 삶이나, 당신이 받은 침례나, 방언이나, 종교적인 삶이나,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오지 못하느니라.”(요 14:6)
당신은 “글세, 나도 이러한 것들이 사실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지금 즉시 구원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적당한 때에 받겠습니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한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고 위험한 것입니다. 만약 성령님께서 지금 그러한 사실들이 옳으며, 당신이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하셨는데도, 당신이 “아니요, 지금은 아니고 다음에 받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성령님께서는 결코 당신을 다시 깨닫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정말로 당신이 구원 받기를 원할 그 때는 이미 늦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받도록 부르실 때만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필요할 때만 기다리며 항상 대기하시는 “5분대기조"가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길을 지나가실 때에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 때가 당신이 구원을 받아야 할 기회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시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도다.,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1-2)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지금 이 말씀을 깨닫는다면, 지금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회가 나중에 주어질 수도 있지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지금 쉽게 하나님을 거절한다면, 다음에 기회가 주어질 때, 그 때는 더 쉽게 거절 할 것입니다. 당신이 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발 밑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래 참고 계시지만, 당신이 진리를 알고도 응하려 하지 않는다면, 간청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죄 가운데 죽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지옥으로 가도록 내버려두실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이미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만이 나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라고 믿습니다.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한 경고도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믿음을 확인해 보셨습니까? 구원받은 확신이 있습니까?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13:5)
하나님께서는 만약 당신이 구원을 받았다면 그분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가족과 친구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그들을 지옥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위해 진심으로 긍휼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복음을 전해 보셨습니까? “인생의 복음”이 아닌 “영생의 복음”을 전해 보셨습니까?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에 관해 경고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경고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피가 당신의 손에 있을 것입니다(겔3:18-19)! 그들이 어떻게 지옥을 피할 수 있는가를 알면서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들의 운명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분명히 자신이 받은 구원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진 부자는 오늘 날로 적용하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님을 믿었으면서도 죽어서 지옥에 간 사람입니다(마7:21-23)! 그는 교회는 다녔지만 “바른 진리”를 무시하고 불법적인 믿음 생활을 고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가 오늘 우리에게 지옥에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마귀는 많은 사람에게 교회를 다니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고, 선교도 하게하지만 구원만은 받지 못하게 유혹하고 있음을 엄중한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지옥의 저주에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당신의 “혼”이 영원히 사는 것을 믿으십니까? 당신은 진심으로 당신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감격의 삶을 드리고 있습니까? 당신이 받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의 믿음의 여정을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보십시요. 그리고 확인히십시요.
천국 환송 예배를 통해 죽은 부자가 지금 그 동안 믿음에 속은 것에 대하여 후회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 다섯 형제들을 위해 지옥에서 이 땅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미 돌아가신 우리와 함께 믿음 생활하신 분의 편지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오늘 날 교회에 “부름 받은 사람은 많아도 택함 받은 사람은 적다”(마22:14)는 말씀을 믿습니까? 당신이 혹시 죽은 후에 부자가 간 지옥에 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이 말씀이 진심으로 두렵지 않으십니까?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구원을 받지 못하였으면서도 자신의 구원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감히 파수꾼의 두려운 마음으로 선포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교회생활 오래 하신 분들, 특히 목사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구원을 받기 위한 “회개”는 낙타가 바늘 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회개”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누구든지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 문제 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사악한 자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사악한 자가 돌이켜 자기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는 돌이키라. 너희는 돌이켜 너희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라. 어찌하여 너희가 죽고자 하느냐? 하라.” (겔33:11)
이 글을 읽는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글은 제가 여러분 보다 믿음이 좋아서 드리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진심으로 부족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저의 믿음을 긍휼히 여기셔서 저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뿐 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진심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으셨다면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분명히 당신 안에서 좋은 길로 인도 하리라 확신합니다. 아멘.
다시 한번 눈물로 호소합니다. 당신은 절대로 영원한 고통의 장소인 부자가 간 지옥에는 가면 안됩니다! 당신이 죽은 후에는 영원한 삶(Eternal life)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소망인지요! 이 글을 읽는 당신과 함께 소망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복음은 결코 당신이 우리 교회를 다녀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녀서 십일조를 하고 충성하고 섬김의 생활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성경적인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면 지금도, 어디서나 쉽게 은혜로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후에 말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이며, 이러한 교회의 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족한 저희 교회 웹 사이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으셔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지옥에서 온편지[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23: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2-24 06:09:27 | 최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