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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론   지난 7월 10일. 바쁜 중에도 모임에 함께해 주신 청년 및 여러 교회 지체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강사를 섭외하고 여러 외부 청년들을 불러모아 주신 분, 자리를 세팅하고 다과를 준비해 주신 분, 회비만으로 부족하던 식사비용을 크게 보충해 주신 분 등, 여러 보이지 않는 분들의 수고와 준비가 이번 모임을 성공적으로 진행되게 했습니다.     교제와 강의 중 어디에 비중을 더 두고 모임의 성격은 어떤 방향으로 할지, 참석자의 주요 연령대는 어느 정도 될지, 분위기가 쉽게 화기애애해질 수 있겠는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불확실하고 정보가 부족하고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독립 침례 교회 청년들끼리 유익한 강의를 들으면서 친목을 다지고 교제한 아주 즐겁고 훈훈한 시간이었습니다. 차후 모임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잘 된 점: 부족한 홍보와 비교적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원이 오셨습니다. 저희가 예상했던 인원에다가 여유분을 감안하여 자리, 다과, 식사 등을 준비했는데 거기에 맞춰서 꽉 찼습니다.예정되었던 스케줄이 심하게 지연되거나 취소된 게 없으며, 하드웨어적인 준비에 차질이 생겨서 모임 진행이 원활하게 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고,오신 분들을 썰렁(?)하게 한다거나 멀뚱멀뚱 기다리게 하는 일이 없이 일정이 쏜살같이 잘 진행됐다는 점에서 저의 최소한의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   아쉬운 점: 시간을 가장 무난하게 보일 수 있는 강의 위주로 일정을 편성하다 보니, 청년 지체들끼리 교제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고요. 제가 모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초기에 사랑 교회 청년부와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못한 점이라든가 홍보 부족으로 인해 이번 모임의 성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발생한 몇몇 오해 같은 게..다음에 이런 모임을 추진할 일이 있을 때 적극 반영할 개선 사항입니다. 역시 실제로 뭔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당초 머릿속에서 계획할 때보다 시간이 훨씬 더 잘 간다는 걸 느낍니다. 다음 모임은 참석 연령대를 지금보다 더욱 좁히고 본격적으로 친교 엠티 위주로.. 장소도 팀 수양관처럼 교회가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각 사람별로 간증과 자기만의 비화를 나눌 시간도 10분 이상씩 듬뿍 주면서 충분히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컨셉으로 추진해 보겠습니다.   ※ 강의 요약   김문수 형제님의 강의는 공지되었던 대로 그리스도인의 "결혼 준비" / "시간 관리" 이렇게 두 세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해당 개념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정의,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용례들을 다루고, 뒷부분에서는 생활에서 우리가 실제로 적용하는 방법을 논했습니다. 김문수 형제님을 그것도 유학을 얼마 앞두고 진리 교회에 초청하는 자리여서 더욱 뜻 깊었습니다.     ※ 강의 1   - 인류에게 시간상으로 가장 먼저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은 창세기 1장의 "생육하고 번성하라"가 아니라, 2장의 "동산의 다른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더라도 선악과는 먹지 말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전자는 아담과 이브가 모두 있을 때 하신 말씀이지만 후자는 아직 이브가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 그만큼, "결혼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수하기" 이다. 연애를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결혼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수하는 과정의 일종으로서 해야 한다.그렇지 않고 번식(?)만 하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동물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 개념은 뒷부분 시간 관리 강의에서도 다시 등장함)   - 결혼은 예레미야처럼 일부 극소수 예외적으로 열외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심신 건강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구현하길 원하신다. 그런 차원에서 결혼을 받아들여야 한다. 반대로 마귀는 꼭 가정을 공격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 제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파괴한다. (동성애, 동거, 종교를 빌미로 한 독신 제도 등등..)   - 아담은 죄를 지어서 에덴동산 시절의 여러 권한을 빼앗겼지만, 아내만은 빼앗기지 않았다. 욥은 고난에 대한 보상으로 모든 재물을 두 배로 물려받았지만, 자녀는 이미 죽은 자녀가 영원히 이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10명만 다시 새로 얻었지 또 두 배로 받지는 않았다. 또한 새장가를 가지도 않았다!   - 언제 결혼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결혼하느냐이다. 성경 시절에도 노총각 만혼이 나오며, 노아 역시 장가가기가 무진장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500세 나이대에 득남..). 보아스는 룻보고 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룻 3:10). 저런 과거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의 배우자 문제에도 지금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다.   - 성경은 일부일처를 지지한다. 물론 그 당시 시대 정황상... 다윗의 아내 중 하나인 아비가일처럼, 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부다처가 필요한 것도 있긴 했다. 그러나 일부다처는 당장은 여러 마누라 거느리니까 좋을지(?) 몰라도 아내들 사이의 갈등, 자식 편애라든가 이복형제들 사이의 불화 같은 온갖 가정 문제의 원인이 된다. (야곱과 다윗이 대표적인 예)   - 중매결혼과 연애결혼은 제각기 장단점이 있다. 요셉의 경우 파라오의 중매로 아예 이집트 이방신 제사장의 딸과 결혼한 것은 가정의 영적 상태에 문제를 초래했다. 이삭의 결혼도 좀 일방적인 편이었는데, 이것이 남편 따로 아내 따로 '샤바샤바' 같은 의사소통 부재의 발단이 된 걸지도 모른다. 모세는 할례 때문에 아내와 다툼이 있었고 나중에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가는 동안은 아예 한동안 별거를 했을 정도로 불화가 심했다. 십보라가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과 같이 기뻐하는 걸로 설정된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는 허구라는 뜻이다.   - 사도행전에는 반대로 짝짜꿍이 잘 맞았던 부부도 나온다. 18장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좋은 쪽으로 잘 맞았던 반면, 5장의 아나니야와 삽비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성경에는 살후 5:16-18 같은 범용적이고 보편적인 계명과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지 특정 개인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뜻 같은 건 없다. 성경을 점책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의지대로 배우자를 선택하되 그 전부터 내게 맞는 배우자를 위해 '구체적인 조건까지 제시하면서' 기도하고, 나도 그 배우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단장하고 준비해야 한다.   - 외모에 치우치지 말고 마음 속중심을 봐야 한다. 그러나 믿음만  좋고 성질 더러운 배우자는 조심할 것. 그런 사람이 제일 무서운 부류이므로. ㅎㄷㄷㄷ 그리고 결혼 후에는 철저하게 부모로부터 독립할 것.   - 권장 사항: 데이트 하는 동안은 주 1회 이상은 만날 것. 둘밖에 없는 은밀한 장소는 피할 것.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면 교회 같은 곳에서 공개도 하고 교제할 것. (그 외에 김문수 형제님의 개인적인 연애 노하우 다수 ^^)   - 혼전순결은 두말할 나위도 없음. 내가 당신과 결혼하기까지 다른 어떤 이성도 알지(성경이 말하는 의미의) 않았다는 보증이야말로 배우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고 가장 큰 신뢰이다. 결혼 전에 먼저 접촉 수위가 올라가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충족되고 나면 싫증도 아주 금방 찾아온다. 삼하 13:15에서 압살롬의 행동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은 정말로 가장 귀중한 순간에 써야 한다.   강의 후, 질문이 들어와서 정동수 목사님께서 첨언을 해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 갖추고 나서 결혼하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군대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가능한 한 빨리 하고 애도 빨리 낳는 게 좋다는 요지였고요. ^^;;   부모가 억만장자가 아닌 이상, 신혼부부가 집 장만하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느라 빚을 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니, 그런 건 성경이 말하는 '사랑 외에 피차 빚지지 말라'(롬 13:8)와도 문맥상 아무 관계가 없으며 걱정 말라는 말씀...;; 사실 로마서 말씀은 서로 원한과 쓴 뿌리를 지우고 갚는 관계를 만들지 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 강의 2   - 시간이란 과거, 현재, 미래로 이뤄져 있고 어느 요소 하나라도 없다면 시간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삼위일체라는 특성을 설명할 때도 자주 쓰이는 예이기도 하다.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말 짧고 특히 청년들이 가진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귀하다. 하루에도 낮과 밤이 있듯 우리가 언제까지나 청년 시절만치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은 아낄 수 없으며, 그저 한없이 흘러가기만 할 뿐이다.   - 구원받은 우리는 죽어서 하늘에서 영원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내 일생의 시간을 무엇에다 할애했는지 회계보고를 할 날이 온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은 한정돼 있다. (욥 7:1, 시 90:10) 그러니 시 90:12가 우리의 기도가 돼야 한다.   - 다른 모든 역본들은 엡 5:16가 시간을 단순히 아끼라고(make the most of)만 되어 있으나, KJV는 사서 되찾으라(redeem)이라고 되어 있다. redeem은 인질을 몸값 치르고 구출할 때도 쓰는 단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도 다른 걸 희생하는 기회비용을 치름으로써 '사서 되찾는' 것만이 가능하다.   -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뭔가 가치 있는 행적을 못 남기고, 마치 창세기 5장처럼 그저 번식만 하고 죽었다는 평가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특히 사사기에는 민족의 지도자들이 유난히도 처자식이 많았는데, 야일(아들 30), 압돈(아들 40) 같은 사람이 있다. 당신의 인생은 어떠한가?(그래도 기드온은 나름 영웅 행적도 남겼고 자식도 무려 70명!)   2006년 연합 수련회 때 김재근 목사님의 설교가.. 창세기 5장을 배경으로, 하나님께서 그저 '태어나고 낳고 죽었다'는 평가만 받은 인생은 동물의 왕국 인생이라는 요지였는데.. 그게 생각이 났습니다.   - 다음으로 청년들에게 주는 권면으로는... 단순 숫자놀음만으로 수면(당신은 인생의 1/3.. 무려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잠으로 때운다), 재충전, 교제 시간을 무리하게 줄이면서까지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하지 말라. 그건 장기적으로 당신에게 결코 이익이 되지 못한다. 업무 지향적이기보다는 인간 지향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라.   - 솔로몬은 세상을 분석하고 따지기를 좋아한 학구파 타입이요, 나라를 현실적으로 다스리는 문제를 생각하고 국부를 창출하고 싶어했던 현실파 업무 지향형 인물이었다. 그러나 선왕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압살롬에게 쫓기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맛을 알았던 사람이다. (그건 시간 낭비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재롱부리고 낮아지고 싶어했으며,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벌을 받을 때도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길 원했다. 시간 우선순위 분배에도 이런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경계나 당직 근무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성경은 일관되게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게 원칙이라고 말한다. 심야 문화가 발달하는 것은 영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 어렵더라도 중요한 일부터 먼저 시작하라. 할 일을 메모로 정리하라. 상술했듯이 무리하게 시간을 벌려 애쓰지는 않더라도, 전철 안에서라든가 버스를 기다리면서 자투리 시간만은 헛되이 보내지 말아라.   저는 개인적으로 좀 워커홀릭 기질이 있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조금이라도 기다리는 걸 못 참고 조금이라도 짬이 생기는 곳에는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지냈습니다. 앞으로 대학원에 가면 학업과 부업까지 병행하려면 더욱 시간이 빡빡해지고 힘들 것 같아 걱정이 앞섭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게 맨날 시간을 짜내면서 살아도 시간은 늘 부족하고 효율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아서 고민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 때문에 이번 강의 주제는 제게 특히 유익했습니다.   ※ 식사하며 교제   청년 자매 중에는 미국에서 지내다 방학을 맞이해 온 분도 계시고,또 기성 교회 출석 중인데 청지기 카페 회원인 어머니(오홋 아주 열성적!!)의 권유로 혼자 나오신 분도 있었는데다들 성격이 밝고 여기 다른 청년들과도 무척 잘 어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간 것 같아 우려를 한숨 놓을 수 있었고 기뻤습니다.   저는 변함없이 철도 얘기 많이 했고... 믿거나 말거나, 오신 형제님 중에 또 나도 철도 매니아라고 커밍아웃을 한 분이 있었습니다. 철도를 알면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보는 눈이 바뀐다는 것에 공감하더군요. 할렐루야! 나중에는 자매 중에도 그런 분이 나오리라 믿습니다.   날이 저물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작별했지만, 다음날 진리 교회에서는 그 날 온 사랑 교회 청년들이 어땠고 누구하고 누가 사귀면 어떻냐는 농담(?)도 오고 가면서 청년들끼리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습니다.본격적인 MT 같은 걸 분기 단위로 정도 계속 추진되면 어떨까 싶고, 그 전에 이번엔 사랑 교회에서 진리 교회를 초청해서 교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모임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 날 정말 반가웠습니다. ^^
2010-07-11 23:55:26 | 김용묵
내게 옛날 중국어성경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모리슨역(신구약), 하나는 1885년 미국장로교선교부에서 출판한 성경(영중대역신약) -- 둘 다 거의 킹제임스성경입니다. 문제는 번체라는 것이죠. 지식층이 아니고는 번체 못 읽습니다.
2010-07-09 07:31:09 | 김재근
중국어 성경에 대해서 이전에도 질문하신 분이 있었지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916 중국어 성경 번역에 대해서는 아래 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bskorea.or.kr/about/worldtrans/chnbib/%EC%A4%91%EA%B5%AD%EC%96%B4%EC%84%B1%EC%84%9C%EB%B2%88%EC%97%AD%EC%82%AC.hwp
2010-07-08 22:25:47 | 김문수
지난번 사랑침레교회의 한 형제분과 이야기 나누다가 그분이 저한테 물었습니다. "중국어 성경도 킹제임스 영어성경으로부터 번역되었다고 들었는데요." 그때 저는 잘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냥 엉겁결에 "네, 아마 그럴겁니다." 하고 얼버무려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왜 우리 한글 성경만이 부패된 원문으로부터 번역되었을까? 참으로 한민족은 유별난 민족이긴 한 모양이야."라고 낙담하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실 중국어 성경에 관한 진실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후로 집에 돌아와 중국어 성경하고 킹제임스 성경하고 한글개역성경하고 비교해 보았습니다. 중국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교회안에서 사용했던 중국어 성경의 권위에 대해 저는 의심한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삼자교회 교인이든 지하교회 교인이든 2억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중국교인들이 사용하는 성경은 단 하나의 버전(中文简体和合本)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이나 영어권 나라에서처럼 수많은 버전의 성경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해보고 또 인터넷으로 중국어성경 번역과정에 관한 기록들과 자료들을 찾아 모아봤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였고 중국어성경번역의 근간도 역시 Revised Version 영문성경이라는걸 알았습니다. 아마 한글 개역성경도 여기서 번역된 중국어성경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적어봅니다.   현재 거의 모든 중국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Chinese Union Version in GB Encoding(中文简体和合本)입니다. 개역한글성경에서 신약에 13곳의 성경말씀이 지워지고 대신 (없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마17:21, 마18:11, 마23:14, 막9:44, 막9:46, 막11:26, 막15:28, 눅17:36, 눅23:17, 행8:37, 행15:34, 행28:29, 롬16:24)   중국어 성경에서 이 부분을 비교해 보면 13곳중에 4곳이 한글 개역성경처럼 빠져있습니다. 나머지 8곳은 모두 킹제임스 성경대로 보존하고 있지만 "어떤 고대사본에는 이 구절이 있음" 이라고 괄호를 치고 주석을 달아놓고 있습니다. 오로지 마17:21 만이 그대로 완전히 쓰여져 있네요. 재미있는 것은 중국어 성경구절에서 "없음"이라는 단어는 행15:34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3곳은 모두 말씀을 조절하여 나누거나 빈 자리를 메꿔서 채웠습니다.   (마18:11) 有古卷在此有:人子來,为要拯救失丧的人 (마 23:14) 有古卷在此有:你们这仮冒为善的文士和法利赛人有祸了!因为你们侵吞寡妇的家产,仮意作很长的祷告,所以要受更重的刑罚 (막 9:44) 아래 위 구절로 메꿨음 (막 9:46) 아래 위 구절로 메꿨음 (막 11:26) 你们若不饶恕人,你们在天上的父也不饶恕你们的过犯。(有古卷无此节) (막 15:28) 有古卷在此有:这就应了经上的话说:他被列在罪犯之中 (눅 17:36) 有古卷在此有:两个人在田裏,要取去一个,撇下一个 (눅 23:17) 有古卷在此有:每逢这节期,巡抚必须释放一个囚犯给他们 (행 8:37) 有古卷在此有: 腓利说,你若是一心相信就可以,他回答说,我信耶稣基督是神的儿子 (행 15:34) 无 (행 28:29) 有古卷在此有: 保罗说了这话犹太人议论纷纷的就走了 (롬 16:24) 아래 위 구절로 메꿨음   여기서만 보아도 중국어 성경도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100% 일치되게 번역 된 버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신시켜주는 요한1서 5장 7절과 같은 중요한 구절이 중국어성경에도 없습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그리고 중국어 성경에서도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여호와 (耶和华)라고 음역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킹제임스 성경과 현대역본, 개역한글 성경을 비교하면서 많은 구절들이 차이점이 있다는 걸 지적했습니다. 제가 이런 구절들을 비교하면서 중국어성경을 볼때 느끼는 점은 중국어성경이 킹제임스 성경보다는 한글개역성경이나 NIV쪽으로 더욱 매칭이 되고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최초의 중국어 성경역본은 현존하는 기록에 의하면 7세기경 서쪽유목민족들의 인구이동으로 인하여 기독교 경전이 번역되어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중국인들은 기독교를 경교(景教)라고 불렀죠. 하지만 이때의 성경역본들은 전하여 내려오지 못하고 유실되어 사라졌습니다.   19세기 로마카톨릭이 중국대륙에 전파되면서 완전한 중국어 성경역본이 있게 되었고 1822년 출판된 성경은 인도에서 영국 침례교인인 Joshua Marshman 박사와 Joannes Lassar가 합작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장로교 출신인 영국인 Robert Morrison 이 중국 광주에서 1823년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전서를 냈습니다.   이 두 버전의 중국어성경은 그때 당시에 중국성도들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뒤로 중국에서 선교활동하는 서양선교사들이 증가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Morrison 선교사가 번역했던 역본을 수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4명의 멤버가 다시 번역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들은 Medhurst, Gutzlaff, Bridgeman, J. R. Morrison 입니다. 1837년에 『新遗诏书』 라는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출판되었고 이어지는 12년동안 중국인 기독교도들은 이 성경을 주요역본으로 사용했습니다.   1842년 영국-청나라 전쟁이 일어난 후 홍콩에 있는 영국-미국 연합선교조직에서 12명의 위원들을 선발하여 중국어 성경을 다시 번역하게 했습니다. 1854년에 "대표역본" 이라는 번역본이 나왔고 처음으로 王韬 라는 중국인이 번역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이 번역본에는 수많은 중국토속신앙과 전통잡신숭배문화적 요소가 다분히 섞여 있었으므로 성경의 순수한 하나님 말씀이라 하기에는 모자라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1890년 상해에서 선교사회의를 열고 중국어성경 최종역본을 결정하려 했는데 이때의 구호가: One Bible in Three Versions 였습니다. 즉 그때 당시에 상류층이나 평민층에서 유행하던 문법을 3가지로 나누어 3가지 형태의 언어로 모두 번역한다는 것입니다. 이 중국어 최종역본들은 1885년 출판된 Revised Version(RV) 영어성경을 근본으로 하였습니다. Griffith John목사와 Samuel L. Schereschewsky주교가 번역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중국어 성경역본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게 되자 중국교회 지도자들과 외국선교사들은 모여서 "연합 수정 역본"을 만들자고 계획하고 1919년 『国语和合译本』성경을 출판합니다. 이 성경이 바로 오늘날 중국교회가 수용하고 사용하는 Chinese Union Version in GB Encoding(中文简体和合本)입니다.   이후로도 일부 중국신도들이 번역본을 만들려고 시도했습니다. 이중에 비교적 영향력이 있었던 것은 吕振中 목사가 30년동안 시간 들여 1946년에 출판한 성경이었습니다. 이 성경원문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Souter 이 편집한 Alexander Souter's Text 를 근간으로 만든 것이었고 1952년 개정판은 Wurtemberg Stuttgart와 D.Eberbard Nestle 제 17판을 근거로 만들어졌습니다.   1979년 출판된 "현대 중국어 성경"은 TEV, NEB, JB, RSV를 근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결론은 중국어 성경은 킹제임스성경에 기반을 두고 번역된 성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지난번 중국인 자매분을 만나서 이야기 하다가 들었는데 요즘에 중국교회내에서 "현대어 역본"이 또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중국판 개역개정이라 이해해도 됩니다. 지금 약간 걱정됩니다. 혹시 참 하나님의 말씀하고 더 거리가 멀어지고 달라진 버전일가봐... 제가 한국에 유학 온 뒤로는 중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접할 기회가 없었죠.. 만약 어느날인가 중국에도 영문 KJV에 매칭하는 권위역 번역본이 나온다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나같은 사람도 써주시겠죠 ^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10:4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7-08 22:17:18 | 이광희
TR원어에는 고전 6:9 이 이렇게 되어있지 않죠. 그런데 "한편으로 신약 성경에서 로마서 1장과 더불어 성 문란 행위에 일침을 가하는 구절은 단연 고전 6:9이다. 그런데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가 언급되는 이 구절이 킹 제임스 성경만치 확실하고 단호하게 번역되어 있는 성경 역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단어를 풀이하여 성경을 번역한 것이군요.. 이것을 정확한 성경이라 맹신하지 말아야 됩니다. " 원어성경 TR에는 알세노코모이스 인데 뜻은 1. 남색하는 자. 2.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욕되게 하는 자인데 개역성경이 1로 번역해놓으면 그 의미가 뚜렷해지지 않는단 것입니까? 그런 비판은 근거가 없습니다.
2010-07-07 13:06:55 | 이용원
김 형제님의 발랄함과 신랄함에 공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너무 젊을 때는 그런 강한 표현이나 특정 세대의 용어 등이 입이나 글에서 잘 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개성을 잃는 것 같아서 될 수 있는 한 놓고 싶지 않았지요. 지금은, 많은 독자들의 연령과 기준의 편차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넓고 크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한층 더 자제해야 어느 정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는 곳마다 글의 특성이나 수위를 달리 할 필요는 없지만 사이트의 특성과 함께 나누는 이들도 배려해야겠지요. 몇몇 기독 까페 기독교인들의 지나친 비판 글들을 접할 때면 안티 기독인들의 필치가 연상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 (벧전 3:15) 이런 말씀이 있는 이유가 분명 있다고 생각됩니다. 옳지 않은 세력을 공격하거나 할 경우에도 정제된 용어를 사용할 때 더 힘이 있고 역공의 빌미를 주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김 형제님이 큰 재목이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만 보신 분들은 이미 이 분이 50대 목사이거나 한 자리(?) 하는 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ㅋㅋ (노영기 형제님도 간증 때 만나서 깜짝 놀랐다나요...) 아무튼 앞으로도 좋은 글로 뵙기를 원합니다. 이번 청년 모임도 합력하여 잘 치르시기를...^^
2010-07-07 10:11:55 | 김재욱
대학입학이라는 것이 원하는 성적이 나와서 원하는 학교에 합격을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입학 현실은 점수로 인해서 입학이 간절한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처음 대학에 지원을 할 때에는 학교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우선 합격만 시켜주신다면' 뭐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합격해서 학교에 다니다보면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채플이 힘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010-07-06 22:20:06 | 박신웅
저에게도 자폐증을 앓는 조카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왔던 것은 그 부모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구원은 커녕, 교회에도 나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악을 분별할 힘이 없는 그 아이가 저러다 죽어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울 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 또한 정동수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지적 장애인들은 죄과여부를 막론하고 죽어 천국에 간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에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말할 수 없이 기뻤었지요. 자매님의 마음.. 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0-07-06 14:30:51 | 이은희
형제님의 젊은 필체는 지나가는 세대들에게는 좀 생소합니다. (사실 읽기에 불편한 면도 있습니다 ) 그러나 그 단호한 태도는 높이 사지요. 앞으로 좀 더 부드럽고 온유한 믿음의 글을 기대합니다.
2010-07-06 13:17:41 | 정혜미
정말 박수를 치며 축하드리고 싶은 아름답고 따뜻한 간증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합리성은 사람에게 참 자유와 위로와 평안을 주지요. 저도 얼마 전에 주변 분들과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하는데, 아직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있는 아이 엄마가 유심히 듣더군요. 그래서 그분한테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지금 당장 휴거가 일어나길 바라실 수 있나요?" 우물쭈물 하시더군요. 이 문제가 정리가 안 되면 세상의 모든 아기 엄마들은 아이가 빨리 커서 정신 차리고 스스로 믿어 구원받을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원리를 설명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 염려 말고 휴거를 소망하세요. 하나님 그런 분 아니십니다^^." ㅠㅠ 그래도 미심쩍은 눈길... 우리 목사님이 맞는 거야, 저 사람 말이 맞는 거야... 하는 표정. 그 마음을 눈치 채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성경이 맞는 겁니다~."
2010-07-06 10:05:14 | 김재욱
몇년전 20대중반 지적2급장애인아들을 둔 엄마가 자신이 죽기전에 아들이 구원받았으면 해서 교회선생님을 집에 초대해 몇달을 성경공부를 시켰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도무지 알수 가 없다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불안해 했었습니다. 제 아들준혁이도 뇌병변 1급장애아인데 나도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 되었는데, 교회선생님께서 수련회후 준혁이가 예수님을 영접했슴이 확실하다고 하셨지만, 무언가 석연치가 않았습니다 인지능력이 12개월정도박에 안되는데 어떻게 영접할 수 있고 그걸 또 선생님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구원에 대한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더해져갔습니다. 그러던중, 얼마전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중에 위의 글과 같은 말씀을 듣고 안도할수 있었습니다 짓누르던 무거운 돌을가슴에서 내려놓는 심정이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2010-07-05 14:59:12 | 박경애
안녕하세요?   마태복음 강해 자료는 KeepBible 사이트의 상단 메뉴 경건의 삶의 성경강해에서 마태복음 강해로 들어와 마태복음 강해 01을 보시면 첨부 파일로 들어 있습니다.   매주 강해를 한 뒤 이 파일을 업데이트합니다. 그러므로 02, 03, 04...을 들으시더라도 강해 노트는 언제나 01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주일 오후에 강해를 한 뒤 일단 강해 동영상과 음성 파일을 먼저 올리고 월요일에 노트를 올립니다. 이 점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7-05 11:23:44 | 관리자
* 지난번 사랑 침례교회에서 간증으로도 잠시 언급했던 내용을 글로 풀이한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구원받은 자, 구원받지 못한 자”라든가, “유대인, 교회, 이방인” 같은 방법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잣대를 적용하기에 앞서서 “선과 악을 스스로 분간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라는 필터링이 먼저 이루어진다.   이 웹사이트의 글을 읽을 정도의 지적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자에 속한 사람이다. 늘 선하게만 사는 건 아니지만(그건 이 글을 쓰는 본인도 마찬가지), 최소한 선과 악을 분별하여 죄가 죄라는 것과 죄의 결과가 나쁘다는 것,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는 사람이다. 후자는 그럼 어느 부류에 속하냐고? 그런 걸 인지 못 하는 아주 초등학생나 그 이하 나이급의 철없는 어린애들과 아기, 아니면 두뇌 성장이 멈춰 버린 지적 장애인/장애아들이다.   이 죄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어른들의 잘못이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그런 후자에 속하는 어린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죽는 일이 엄청 많다. 소말리아 급의 막장 국가에서 굶어죽는 어린애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낙태로 죽는 애들을 생각해 봐라. 그들은 죽어서 어떻게 될까? 이것은 사형 제도에 대한 견해만큼이나, 하나님의 성품 내지 구원 계획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특히 기독교는 환생이나 윤회 같은 것도 단호히 부정하므로, 이런 게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구원받는다. 죽어서 무조건 하늘로 간다.단,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걔들이 티없이 순수하고 맑고 착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에게는 신학 용어로 흔히 원죄라고 불리는 죄성이 당연히 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 못 하는 어린아이와 지적 장애아에게는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스스로 영접하지도, 스스로 거부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기본 구원 계획이 그대로 적용되어 바로 하늘 행.   세속 법조차도 너무 어린 애새끼들은 죄를 지어도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못한다). 그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바로, 그런 지적 장애아도 창조하고 심지어 죄의 여파로 인해 어린아이의 죽음까지 일단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보이는 일말의 배려이다.모든 인간은 불가항적이고 선천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나지만, 하나님 역시 불가항적이고 선천적인 이유만으로 죄인을 지옥에 보내지도 않는다!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전부 자발적으로 제 발로 지옥에 간 것이다.   어린애들이 죽으면 예수 안 믿었기 때문에 지옥 간다고 말하는 목사, 신학자가 주변에 꽤 있어서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잘못 전하고 성경의 하나님을 완전 캐잔인한 새디스트로 왜곡하고 있다.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떡실신시키는 본인의 비장의 무기를 공개하겠다. “그럼,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예수님이 태어난 덕분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한 동년배기 두 살 이하 아기들은 다 지옥으로 떨어졌겠군요?”   성경은, 어린아이에게 어떤 권리가 없는 대신 어떤 의무도 없는지를 논리적으로 명백하게 규정해 준다. 아울러, 어린아이의 구원에 대한 이 교리가 추가로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아 세례는 정말 비성경적이고 잘못되고 불필요하고 악한 교리이다. 유아는 예수님을 영접할 능력이 없으며, 죄에 대해서도 저렇게 면책 사유가 저절로 인정된다. 유아의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걱정할 필요 없으며, 오히려 그 점으로 인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유아 세례를 받아야만 뭐가 어떻게 되고 교회 소속이 되고 구원길이 열리고... 이건 사람의 혼을 담보로 죄질이 굉장히 나쁜 종교적 사기 행위이다. 제정신 박힌 그리스도인이라면, 과장 좀 보태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까지 분개해야 하지 않을까? “난 어렸을 때 유아 세례 받았으니 괜찮겠지” 이러다 죽어서 지옥 간 사람이 모르긴 몰라도 엄청 많다.스스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자란 사람이, 자기 스스로 구원을 간증하고 고백할 때 침례를 주는 것만이 성경적이다. 변개된 성경에서 행 8:37이 괜히 삭제된 게 아니다.   둘째, 아직 선과 악을 분간 못 하는 어린아이가 아예 죽어 버렸을 때의 구원만큼은, 즉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신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그 아이의 교육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가히 절대적인 권위를 위임하신다. 잠언에 애새끼 줘 패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그것도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지 모른다. 시쳇말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놔서라도, 머리 굵어지기 전에 죄와 벌에 대한 관념을 각인시켜 놓고 애를 의로 양육하라는 소리이다. 부모가 그럴 자격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성경의 명령이다. (물론 감정적인 폭행은 금물. 히 12:10 참고)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천자문 줄줄 외우고 미적분 문제를 푸는 ‘지적 영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엄마가 매를 들고 키우지 않아도 저절로 남을 먼저 생각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믿음을 고백하는 ‘영적 영재’가 있다는 말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본인은 못 들었다. 성경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성경은...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결혼과 출산이 바보짓이라고는 절대 안 그런다. 성 문란, 음행과 간음을 ‘천하의 개쌍놈짓’(i)으로 규정하는 만큼이나, 반대로 결혼한 부부끼리의 사생활이라든가 자녀 계획 같은 건 뭘 어떻게 하든지간에 하나님도 절대로 간섭 안 하신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만큼이나 그걸 존중(히 13:4; honourable)해 주신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래도 처자식이 딸린 것보다는 홀몸이 대환란 때 도피하고 생존하는 데 더 유리하겠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게 아니라, 대환란 따위를 버틸 믿음이 있다면 반대로 그 믿음으로 믿음의 후세를 많이 양성하고 휴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본인은 이런 걸 보면서 성경 교리라는 게 정말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건전하고 체계적’이라는 걸 느꼈다. 딱딱 맞아떨어진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뭐랄까, 인간이 처한 환경이 인간의 구원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하나님 역시 인간에게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도 허락하고, 죄의 여파가 의인에게 미치는 것까지 일시적으로 허락하시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적으로도 남한과 북한 같은 극단이 존재하거니와, 시간적으로도 크리스천들이 콜로세움에서 인간 횃불이 되어 순교하던 시절과 오늘날 인터넷과 megachurch가 존재하는 시절도 양 극단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 의인이 구원받고 하늘로 가는 건 맞는데, 그 의의 기준이란 게 인간이 언뜻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게 꽤 차이가 날 뿐이다. 또한 반대로 지옥에도 미친놈, 변태, 흉악범(구원받지 못하고 죽은)만 있는 게 아니라 너무 착해서 구원도 못 받은 성인군자도 많고, 무엇보다도 비참하고 불쌍하게 살다 죽은 사람도 엄청 많이 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적 싸움은 “똑같이 힘들다.” 우리가 초대 교회 내지 일제 강점기의 순교 사화 같은 걸 듣고서 놀라워하는 만큼이나, 그 선배들도 21세기 오늘날의 이 절망적인 라오디게아 시대, 영적 불모지를 보고서는 까무러칠 것이다. 성경을 꼭꼭 숨기고 도망 다니느라 바빴던 그 사람들이 성경 역본 논쟁을 경험했겠는가, 여자 목사· 동성애자 목사를 봤겠는가, 창조· 진화 논쟁을 해 봤겠는가(불신자조차도 생명 자연 발생설 따위는 믿지 않던 시절! ㅋㅋ), 에큐메니컬 운동이란 걸 알았겠는가? 자기네들 목숨이 당장 위태롭던 시절인데 사형제도 폐지가 잘못됐다고 비판할 일이 있었겠는가?   우리는 마지막 시대여서 그 어느 시대보다도 지식과 정보와 성경 계시를 많이 얻었다. 실탄을 많이 지급받은 만큼 옛날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이상한 시대에 듣보잡(ii) 적군들과 영적 전투 중이다. 우리도 하늘나라 가서 먼저 가 있는 선배들에게 해 줄 재미있는 무용담이 잔뜩 있다. 영적 사육신까지는 못 돼도 생육신은 충분히 될 수 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갖고 살자. ^^   * * * * * *i) 2005년 여름엔 인디 밴드 카우치가 생방송 도중에 성기 노출 방송사고를 저질렀다. 이를 빗대어 어느 네티즌이, 북한에서 “남조선 소식”이랍시고 “천하의 개쌍놈들”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카우치를 까는 상황을 “가정”한 뉴스 화면을 합성해서 올렸다. 이게 히트 쳐서 인터넷 유행어가 되었다. 합성 그림은 http://humor.openblog.com/dongam/frmView.aspx?id=3193 에서 볼 수 있다. ii) 듣도 보도 못한 잡것/잡스러운[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8: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7-05 10:54:05 | 김용묵
대불대학교.. 저도 몰랐네요.ㅎㅎ 서강대와 제수이트의 관계도 정수영 목사님 강의 때 처음 알게 됐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앞세워 시위를 했던 강우석인가 하는 친구 생각이 나네요. 군대 폐지를 주장하며 알몸시위까지 했던... 스스로 지혜로운 척 해도 그런 생각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지요. 오늘도 형제님의 발랄한(?) 글에 감사드립니다~.
2010-07-04 14:02:13 | 김재욱
대불은 목포에 있는 지명입니다. 이 대통령 당선자가 "목포 대불공단의 전봇대 때문에 트럭이 커브를 돌기 어려운데 현장성 없는 탁상행정으로는 전봇대 하나 못 뽑는다"고 언급한 곳이 바로 저 곳이지요. (그 전봇대가 어느 전봇대를 말하는지는 현장 관계자들도 모른다고 합니다만...)
2010-07-03 15:29:33 |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