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정역 번역을 기준으로 삼으시면 되고,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또는 구원을 받으셨다면) 우리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의 영과 계시의 영(=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이해할 지혜를 주시고 비밀을 깨달아 알게(계시)하시는 것은 성령님의 여러가지 사역 중 일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일이 있기를 기도한다는 말씁입니다.
2011-11-29 19:53:50 | 류인선
하나님 아버지께서 유다를 예수님께로 올 수 없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유다가 '마귀'이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6:70-71).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시는 기간동안 유다가 예수님께로 올 수 있는 기회들을 여러 번 주셨지만 그는 목매어 자살할지언정 예수님께로 '오지' 않았습니다.
2011-11-25 18:45:50 | 김형식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요6:64).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자기를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과거 일, 현재 일, 장래에 있을 일들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미리 아심이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기를 세 번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은 그의 의지적 선택이었지 하나님이 장난감 인형 다루듯이 베드로의 마음을 원격 조종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인격체이지 로봇이 아닙니다.
만약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부인하게 될 것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것이니 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 그냥 당해봐라." 라고 하셨을 겁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미래 일을 아는 것은 그것을 모두 결정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예정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가 예정해 놓은 것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제한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지(미리 아심)를 예정(미리 정함)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아담의 범죄,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다윗의 간음, 만화책 읽다가 터진 아이의 웃음, 오늘 여러분이 걸으면서 밟은 발자국의 위치, 여러분이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도, 이 글을 쓰는 동안 발생한 오탈자까지도 모두 하나님이 미리 결정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림으로써 그는 하나님을 모든 범죄의 근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유다가 주님을 부인한 것은 그의 선택이었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정해두거나 시킨 것이 아닙니다. 만약 유다의 범죄나 사람들의 범죄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예정하신 하나님이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하나님이 죄인들에 대해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칼빈주의 예정론은 마니교에서 나온 운명론적 세계관을 믿던 어거스틴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2011-11-25 08:33:59 | 김문수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니시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
65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 하였노라.하시니라.
요한복음을 읽다가... 오병이어 사건후에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만 남게 될때 배반할 자가 있다고 말씀셨는데,
그 배반할 자는 가롯유다를 가르키는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65절의 말씀에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이 말씀이 가롯유다를
생각에 두고 하신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유다를 예수님을 팔자로 만든것, 예수님을 믿지 않게 한것이 아버지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인가요?
하나님 아버지가 유다에게는 예수님께로 올 수 없도록 만들은 것인가요?
질문이 이상하다면, 부드러운 충고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4: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25 07:46:24 | 나창주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은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축도할 때 목사님들이 늘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고후13:14).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개역성경에서는 끝부분을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성경도 가능하면 기존 틀을 유지하려고 4판까지는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말 사전은 'ㄹ지어다;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ㄹ지어다‘이다’의 어간, 받침 없는 용언의 어간, ‘ㄹ’ 받침인 용언의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예스러운 표현으로) 해라할 자리에 쓰여, ‘마땅히 그렇게 하여라’의 뜻을 나타내는 명령형 종결 어미. 장엄한 어감을 띤다.
즉 'ㄹ지어다'는 명령형 종결 어미입니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면 목사들이 하나님에게 은혜를 내리라고 명령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즉 "있을지어다"를 쓰면 마치 목사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은혜를 내려 줄 수 있다는 뉴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그러나 원어와 영어는 단순한 기원문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May God be with you!
May God bless you!
이것을 짧게 하면 God bless you!입니다.
이런 구문은 기원문입니다.
May의 용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후13:14도 앞에 기원문의 May가 생략된 것으로 보면 단순해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지 명령해서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들이 이런 것을 오용/남용해서 마치 자신들의 축복 기도를 통해 무언가가 될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 5판(400주년 기념판)에서는 이런 기원문을 모두 '하기를 원하노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것은 대개 바울의 서신서의 첫부분과 끝부분에서 발견됩니다(고후1:2 등 참조).
"있을지어다'로 안 하면 성경을 변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 변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한편 비슷한 축복 문이라도 구약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부분에서는 "있을지어다"가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이르되,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복이 있을지어다(창14:19).
이런 경우는 높은 자 - 예수님의 예표인 멜기세덱 - 가 낮은 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이고
blessed be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있기를 원하노라"를 쓰면 오히려 문장을 망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런 몇 부분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말이 복잡하여 어미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순 현상이니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1-11-21 11:30:03 | 관리자
가나안 족속들의 경계는 시돔에서부터 네가 그랄에 이를 때에 만나는 가자까지며 또 네가 가면서 만나는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까지 곧 라사까지였더라(창10:19_.
And the border of the Canaanites was from Sidon, as thou comest to Gerar, unto Gaza; as thou goest, unto Sodom, and Gomorrah, and Admah, and Zeboim, even unto Lasha.
이런 구절에는 as thou comest와 as thou goest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부분 전체를 빼거나 thou만을 빼서 매끄럽게 처리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의 as thou comest와 as thou goest 같은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에 있으며 따라서 영어 성경은 그것을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의 thou(너)는 누구일까요?
여기의 thou는 창세기가 기록되었을 당시에 창세기를 읽는 히브리 독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말로 하면 '너도 알다시피 지금도 거기로 가면 그게 나오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말이나 영어나 심지어 히브리말에서도 이런 표현은 조금 어색합니다.
갑자기 너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기에 저희는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읽으시면서 이런 부분이 나오면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샬롬.
2011-11-21 11:04:08 | 관리자
"내 혼이 아직도 찾고 있으나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곧 내가 천 명 가운데서
한 남자를 찾았으나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느니라."(전7:28)
솔로몬은 여기서 우리 사람들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고 있는데 남자들 가운데서는 1000명 가운데서 하나 정도가 나올 정도로 그런 사람은 희박하다고 이야기하며 여자들 가운데서는 심지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결코 여자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의 교육과 문화 등이 남자 중심이었으므로 남자들 가운데서도 찾기 어려운데 심지어 여자들 가운데서는 어떠하겠느냐는 뜻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특히 1000명이라는 것은 솔로몬의 아내와 첩의 수입니다(왕상11:3). 즉 그가 그렇게 많은 여인들을 상대해 봤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로 지혜로운 여인은 찾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이것은 26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이유는 29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사람이 잔머리를 써서 여러 가지 비뚤어진 것들을 만들어 내어 이렇게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알지만 좋은 것이라고 사람이 발명한 것들이 후에는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이 구절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데 대부분의 주석들은 제가 말씀드린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이 꼭 100%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참조만 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6 16:47:21 | 관리자
본글에서 영어 that이 빠진 것을 고쳤습니다.
2011-11-14 16:52:21 | 관리자
정성스런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4 10:10:03 | 나창주
고전 12:9 의 믿음은 구원받는데 필요한 믿음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gift)로서의 믿읍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 우리가 맺게 되는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기 위해서 주신(이것은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것임) 성령의 선물(gift)인 믿음과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믿음(엡4:5)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똑같은 믿음을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대상이 한 분이며(엡4:5), 우리가 믿는 내용이 같기 때문입니다.
2011-11-14 05:04:41 | 김문수
나창주님께서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네요. 앞에 여러 분들께서 설명해 주셨지만 저도 나름대로 도움이 될까 하여 올려봅니다.
나창주님께서 올려주신 엡 2:8 영문에는 사실 단어가 하나 빠져 있네요. that 이 빠져 있거든요. 전체를 다시 올리면 이렇습니다: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그런데 이 말씀에서 it is 는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는 it is 는 원문에는 없는데 번역자가 원문을 영문으로 번역하기 위해 영문법 상 필요해서 보충해 넣은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흠정역처럼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처럼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it 이 무엇을 가르키는가가 아니라 that 이 무엇을 가르키는가 입니다. 이것을 생각함에 있어서 우선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문맥이 아니라 문법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문맥에 가장 적합한가가 먼저가 아니라 먼저 문법적으로 가능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that 은 지시대명사이므로 앞 문장을 살펴보면 후보자가 셋이 있습니다: 은혜(grace), 믿음(faith), 그리고 앞 문장 전체. 여기에서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흠정역에는 "구원을 받았나니"로 되어 있어서 마치 "구원"도 명사이고 후보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문이나 영문이나 모두 동일하게 이것은 동사입니다. "구원을 받았나니" 보다는 "구원되었나니" 이지요. 그래서 "구원"은 that 이 가리키는 단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은혜"는 사실 이 단어 자체에 이미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새삼 다시 강조해서 써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럴 만큼 특별한 이유가 본문 상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that 이 "은혜"를 가리킨다는 것은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믿음"은 어떨까요? 우선 먼저 일반적으로 말씀드려서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는 "무조건적으로 (강제로) 수여되는 의미에서의 선물"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물이 될 수가 없지요. 모든 좋은 선물과 완전한 선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약 1:17). 믿음은 아닐까요? 또한 고전 12:9 말씀에도 성령님의 선물인 믿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믿음과 엡 2:8 말씀의 믿음은 조금 다릅니다만 고전 12:9 말씀의 믿음은 선물인데 엡 2:8 말씀의 믿음은 선물이 아닐까요? 그러면 어떻게 모든 성도들에게 한 믿음(엡 4:5)이 가능할까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의 이 말씀에는 칼빈주의처럼 "무조건적이고 강제적인" 의미에서의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또한 아르미니우스주의처럼 사람에게는 태생적으로 믿음(faith)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식의 의미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가 믿어야 - believe 또는 receive 해야만 -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본문에서 일단 믿음은 that 이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앞 문장 전체인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되었다" 또는 좀 줄여서 "saved through faith (믿음을 통해 구원됨)"이 바로 that 이 가리키는 것일까요? 저는 이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체 문맥에도 더 잘 어울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말씀이 곧 "너희가 어떻게 하든지 믿음을 만들어내기만 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구원해 주겠다"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야만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사람이 태생적으로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셨습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은 믿음(faith)을 가질 수조차 없는 상태에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은혜로 주시는 믿음을 수납함으로써 - receive 함으로써 - 은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 믿음을 수납하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은 은혜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요.
이 믿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며 우리는 이 믿음에 순종함(롬 1:5)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임을 밝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엡 2:8 말씀에서 that 이 가리키는 것은 믿음이라고 해도 좋고 "믿음을 통해 구원받음"이라고 해도 좋다고 봅니다. 다만 여기서 믿음이란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이고 강제적으로 특정인에게 주시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믿음이지만 우리가 수납해야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이 되는 그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2011-11-13 12:00:27 | 이재연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에서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인지, 아니면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인지를 물으셨네요.
먼저 전체 문맥을 알아보기 위해 1-7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내용이 우리의 믿음에 대한 것인지,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것인지 살펴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체 문맥은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이 구원이 어떻게 주어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난 것이냐 하는 것이 2장 8,9절의 결론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아무 공로가 없어도 거저 주시는데, 누구든지 믿음을 통해서(우리의 책임)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원격 조종하여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에 대한 우리의 자발적인 응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믿어서, 내가 여러 종교 중에서 잘 선택해서, 내가 현명하게 잘 선택해서"라고 자랑을 할 수는 없습니다. "by grace through faith"에 유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베풀어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보내주지 않으면 우리는 제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을 게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선물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by grace),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려면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through faith)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주신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saving faith)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 성령의 열매로 맺게 되는 믿음을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갈5:22). 어떤 분은 갈5:22을 내세워서 믿음이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구원받는 믿음 자체가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은 믿기도 전에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먼저 성령부터 받고 구원을 받은 후, 그 다음에 믿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글에서 다룬 바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믿게 되는가, 믿어서 은혜에 들어가는가?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331
2011-11-13 05:09:40 | 김문수
믿음을 통해서 거져 받게 되는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있읍니다.
2011-11-13 00:43:26 | 양동현
나창주 님, 반갑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선물을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시는지요..(롬4:3a)
...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롬6:23)
맞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한 생명, 곧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된 구원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영어 성경 해당 구절만 살펴보면, 영어 문장 내의 대명사는 특별한 설명이 없는 한 대명사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명사들 중 가장 문맥에 맞는 명사를 대입하면 실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장 평범한 원칙을 따르시면 됩니다. 우선 이 엡2장의 문맥은 그 전 구절인 3~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나간 때에는 ...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엡2:3~5)
이렇게 보시면 가장 쉽게 답을 얻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아는 데까지 알려드렸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1-11-12 23:00:04 | 소범준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For by grace are ya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이 구절의 그것은 구원을 가리키는 것인지 믿음을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해서 질문해 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11: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12 22:17:11 | 나창주
아래 게시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8388
2011-11-08 05:10:20 | 김문수
안녕하세요?
너무 막연해서 뭘 도와달라고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런 구절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할 부분이 없고요, 다른 번역본들은 가톨릭 학자들이 본문에 수정을 가해서 생긴 일이거나 각 역본이 다르게 해석, 또는 이해 부재로 생긴 일인데 당연히 킹제임스 흠정역이 제대로 된 것이고요, 그 과정 등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들을 통해 공부하시면 되겠습니다.
2011-11-07 18:31:04 | 김재욱
안녕하십니까?
다른버전에서는 :" 자기를 아는 지식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엡 1:17)
라고 되어있고
흠정역에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라고 되어있습니다.
두 버젼의 번역차이가 현저함을 느낍니다.
이해해보려고 여러가지로 노력했으나 저의 어학실력의 부재로 난관에 처해있습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9: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7 18:17:49 | 김형렬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느냐, 사람의 생각과 이론에 맞추어 해석하느냐의 문제 같습니다.
성경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설명을 해주어도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믿기지는 않지만, 믿고싶다고 바라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믿겨지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고,
어떻게든 수많은 사람들을 쓰셔서 증거를 보여주심에도, 굳은 마음을 가지고 증거들을 부인하며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갈 길로 갈 겁니다.
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것은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적인 이론을 통해 성경을 이해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믿기면 믿어지는 것이고, 안믿기면 안믿는 것이겠지요.
굳이 김인수 님께서 이해가 안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시려고 노력하지 않으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왜냐면 김인수 님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잘못된 설명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김인수 님께서 이해하신 한도내에서만 설명하시고, 잘 모르는 부분은 나도 아직 이해는 되지않는다고 솔직히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한 것만 가지고도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이 믿어진다고 말씀하시면 어떨까요?
그런 솔직한 모습을 볼때 다른 사람도 성경에 무언가가 있구나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설명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이론적으로 토론하여 성경이 논리적이지 않음(인간의 이해로는 해석안되는 것임)을 반박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거기에 휘말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제가 이해 못한 부분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만 제가 확실히 아는 부분에 대해서만 확신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좀더 성경을 읽고 또 이야기나눈 상대와 같이 의견을 나누며 이해하고 싶다고도 말합니다.
인간의 논리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아닐까 싶네요..
2011-10-19 13:09:19 | 김태현
우리 주님 안에서 함께 나누어 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많은 분들이 생각하기를, 창세기 1장의 "하루"는 현재의 하루와 다를 것이다 하고 지레 짐작으로 확증하시더군요. 더욱이 창조의 기록을 살펴보면 태양이 만들어지는 것은 제 4 일째이니 우리의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는 태양 없는 하루란 말이 안 된다고 느껴지기에 더욱 그렇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루"가 한 시대 - 수 억년이나 되는 아주 긴 시대라고도 하고 - 이것은 역시나 우리의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 보면 참 그럴 듯 합니다 - 또 다른 사람들은 우주가 한번 멸망했다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창세기 1장의 기록을 살펴보면 한가지 더 이상한 점이 있지요... 바로 식물은 제 3 일째에 창조되었다는 점입니다. 태양 없이 식물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요? 저는 바로 여기에 "하루"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힌트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먼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과학적 사고에 따르면(?) "하루"는 한 시대라고 하는 것이 참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시는 데 있어서 뭐 하나 만드시고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실 필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1, 2년 정도도 아니고 수 억년이나 기다려야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진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서 말씀만으로 창조하시는 분이신데 하나씩 구별해서 창조하시기에 하루면 충분하고도 남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제 식물과 태양의 관계를 생각하면 하루를 한 시대라고 하기엔 불가능하지요. 과학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식물이 태양없이 수 억년을 생존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나님께서 식물들을 태양없이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생존하도록 하셨다고 믿는 것보다는 차라리 온 우주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이 더 타당하겠지요.
하나님께서 맨처음에 온 우주의 시공간을 창조하시고 지구를 딱 하나 만드신 후에 곧바로 빛을 만드셨습니다. 이 빛에 의해서 "하루"는 정해지는 것입니다. 현재의 하루와 같은 하루로 정해진 것이지요. 그것을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것이고요. 그리고 바로 이 빛 때문에 식물이 태양없이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것이고요. 만일 태양만을 유일한 식물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면, 식물이 태양이 없어서 광합성을 하지 않고 하루를 버틸 수는 있겠지만 너무 추워서 다 얼어 죽었겠지요. 처음부터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빛이 계시록 21, 22장에 다시 나타난다고 봅니다.
처음에 어둠이 있었으나 빛을 만드셨고, 이것을 저녁과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이미 어둠과 빛의 경과를 따라 하루가 지났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맨 첫날부터 이미 "하루"는 현재의 하루와 같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입니다. 사실 그 "하루"를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 태양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2. 예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이미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셔야 했습니다 (계 13:8).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이루시기 위해 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리셔야 했고 (갈 4:4), 마침내 다 이루셨습니다.
여기에는 그 어떠한 다른 가정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할 가능성은 이미 0 % 였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셨다가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다니엘의 70 이레 중에서 마지막 1 이레만은 왜 따로 떨어져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다니엘서 9:24~27 말씀을 자세히 하나씩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70 이레를 정하신 이유를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즉, 70 이레가 지난 후에는 "범법이 그치고 ~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한 메시아가 끊어지는 것, 즉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69 이레 이후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70 이레가 69 이레 후에 연속해서 이루어졌다면 24절에 기록된 70 이레를 정하신 이유들이 다 이루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다 이루어졌나요?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마지막 1 이레는 언제 이루어질까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일이지요. 따라서 마지막 1 이레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로 미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2011-10-19 10:38:13 | 이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