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상황을 서로 다른 기록자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기록했다고 보면 됩니다.
삼하 10:18과 대상 19:18을 비교해 보면 보병과 기병이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만명이 말을 탄 상태에서 계수하면 기병이라고 부르고(사무엘기 기록자의 관점), 말에서 내린 상태에서 계수하면 보병으로 계수됩니다(역대기 기록자의 관점). 보병과 기병은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기병도 보병과 같은 무기를 가지고 훈련받고 땅에서는 보병처럼 싸우기 때문에 전체적인 범주에서는 보병으로 간주됩니다.
2011-10-08 13:26:12 | 김문수
이것 저것 자료들을 나름 살펴본 후 저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혹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우선 먼저 삼하 8:4 말씀이나 대상 18:4 말씀 모두 정확한 숫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단단위까지 정확한 숫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어림잡아 대강 정확한 숫자를 기록한 것이죠. 물론 이렇게 하는 것도 전적으로 합당한 것입니다.
이렇게 어림잡아 숫자를 기록했다는 것은 기록자의 주관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사람은 실제로는 120 명을 놓고 100 명이라고 기록하고 다른 사람은 150 명이라고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만큼 기록자의 주관에 따라서 달리 기록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둘 다 - 100 명이라고 기록하든 150 명이라고 기록하든 - 맞다고 인정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여러가지 주석들을 살펴보니, 일단 사본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주석들도 있네요. 권위 있는 주석들 중에서도 사본의 오류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는 게 좀 놀랍기도 하네요. 그러나 저는 정경으로 확정된 말씀에 대해서는 무오성을 확신하므로 이런 주석들은 패스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주석에서는 기병 700 명이란 기병들 중에 지휘관들의 숫자 아니면 기병 소대의 숫자일 것이라는 주석도 있고요. 그런데 이 경우에는 그러면 왜 보병들은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들어서 좀 납득하기가 어렵지요.
그러면 결국 700 과 7000 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데요, 웬만큼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무려 10 배의 차이가 나므로 쉽게 설명하기를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선 이미 말씀드린대로 각 숫자들이 모두 어림잡아 기록한 숫자들이라는 점에서 기록자의 주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실제로 전쟁에서는 병거가 1,000 승, 군인이 20,000 명 그리고 기병용 말이 700 필이 획득되었는데 군인들은 기병이 7,000 명 그리고 나머지가 보병 및 병거병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어느 군대에서처럼 기병과 보병과 병거병들은 군복이나 어떤 표식으로 식별을 하였을 것이므로 이처럼 구별이 가능했을 것이고요. 그리고 700 과 7,000 숫자가 10 배 차이가 나는 것은 어림잡은 숫자이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 예를 들어, 658 과 7214 등등 - 서로 어떤 상관 관계가 없는 숫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서 기록자는 기병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기병용 말을 중심으로 해서 기록하였기에 700 이라고 하였고, 역대기 기록자는 기병 군인을 중심으로 기록하였기에 7,000 이라고 하여 서로 숫자가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2011-10-08 12:59:55 | 이재연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수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때문입니다. 만약에 오류가 있다면 인간은 오류를 믿는것밖에는 안되는것입니다. 사탄은 늘 하나님말씀을 의심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이유는 하나님과 인간을 떼어놓으려는 속셈이지요. 창세기 3장 1절(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하시더냐? )이사야 55장 8~9절말씀처럼 우리생각은 하나님생각과 견줄수없기에 아직 잘알지못하는것뿐입니다.김** 형제님께서 올려주신 영어파일의 내용이 설명해주는것 같은데요,전성실님께서 답답해하는 구절뿐아니라 그런 의문의 구절은 왕상 4:26, 대하 9:25, 삼하 10:18, 대상 19:18 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그 당시 성경기록자가 한 병거당 10명의 team으로 이루어진 병거 수, 그 10명을 이끌었던 팀장 수와 그냥 팀원 전체 사람 수를 기록한것의 차이일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수는 모두 다 같습니다.
2011-10-08 12:58:46 | 최제식
그 당시에 보병, 포병, 기갑, 공병, 통신과 같은 병과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horsemen은 병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싸우면 기병이 되고, 전투 중 말을 잃거나 말에서 내려서 싸우면 보병이 됩니다.
2011-10-08 10:43:45 | 김문수
김문수형제님의 말씀처럼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일단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전제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힘들고 오류처럼 보이는 구절을 만났을 때에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가 아직 이 말씀을 깨닫는 분량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성경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고 올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벧전5:5).
저도 두 구절이 약간 어렵긴 합니다만, 제가 살펴본 바로는...
기병 칠백 명(삼하8:4): '유프라테스 강에서' 다윗이 하닷에셀로부터 빼앗은 기병 수를 기록
기병 칠천 명(대상18:4):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하맛까지에서' 다윗이 하닷에셀로부터 빼앗은 기병 수를 기록
'...다윗이 그를 쳐서 하맛에까지 이르렀으며 그에게서 병거....'
(기병 칠천 명에는 유프라테스 강에서 빼앗은 칠백 명도 포함)
즉, 대상18:4은 삼하8:4보다 기병을 빼앗은 지역이 더 넓음
이렇게 보이는데 다른 분들의 견해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 설령, 제가 살펴본 바가 틀렸다할지라도 본 두 구절은 사본 상의 오류가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전혀 없습니다. 아멘. #
2011-10-08 09:23:40 | 김형식
저도 정말 답답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라는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을 믿으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흠없이 보존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면, "사본 상의 오류"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연구의 첫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다"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본상 오류의 가능성, 하나님이 거짓말하셨을 가능성 등을 거론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성경 말씀을 읽다가 이런 차이를 발견하셨다면 주의력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성경의 권위에 도전을 하는 질문을 던졌는데(안티예수 사이트에 단골 메뉴로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지요), 그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할 부담을 안고 있는데 "설명할 수가 없다"라는 상황이라면, 그런 질문들에는 일일이 답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변을 드리면, 이것은 사본 상의 오류가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혀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2011-10-08 03:42:29 | 김문수
한달전부터 여러번 읽어도 도무지 설명할수가 없습니다. 정말 사본상의 오류인가요?
1)사무엘하 8장 3~4절과 역대상 18장 3~4절입니다.
사무엘하 8장 3~4절.....그에게서 병거 천대와 기병 칠백명과 보병 이만명을 빼앗고 모든 병거의 말은 다리의 힘줄을 끊되 다만 그것들 중에서 백대의 병거에 쓸것만 남겼더라
역대상 18장 3~4절.....그에게서 병거 천대와 기병 칠천명과 보병 이만명을 빼앗고 또 모든 병거의 말은 다리의 힘줄을 끊되 다만 그것들 중에서 백대만 남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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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8 01:21:37 | 전성실
성경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항상 기본적인 것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질문하신 내용은,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시고서는 왜 그에게 분노를 나타내시고, 그를 대적하시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의문(question)같지만 이런 질문은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나 공의로우심에 대한 의심(doubt)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누구나가 인정할만한 전제조건을 확실히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2.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므로 서로 모순되는 구절이 없다.
3.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따라서 죄에 대해서는 공의로 심판하신다.
4. 하나님은 까닭없이 진노하시거나 변덕을 부리시는 분이 아니다.
우선 이와 같은 전제들에 대해 동의하고, 이 전제들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나머지 부분들을 이에 맞추어서 이해하면 됩니다. 민수기 20:12-22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2절: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지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 받은 자들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13절: 그래서 발람은 처음에는 그들과 같이 가기를 거절했습니다.
15-17절: 모압 왕 발락이 더 존귀한 자들을 보내어 존귀하게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18절: 발람은 자기가 난색을 표하고 거절할수록 자기 몸값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한 밑천 잡을 생각을 합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발락에게서 "은금으로 가득 찬 집"을 받고 싶지만(이것은 발락이 제안한 것이 아니라 발람의 마음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제일 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서 ~할 수 없노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불의의 삯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저버리고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며 길을 잃었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으나(벧후2:15)
19절: "주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
여기서 "더(more)"에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12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혹시라도 예외 조항이 있다거나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 외에 뭔가 "더해서" 하나님이 기존 말씀을 취소하거나 번복해주신다면 하고 바라는 겁니다. 물론 발람은 "하나님은 한번 하신 말씀을 취소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나 성품에 대해서 그 정도도 모른다면 대언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일구이언을 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 장에 나오는 23장 19절에서 그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민23:19)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이미 확실하게 선포되었지만, 발람은 재물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기존에 하신 말씀에 뭔가 "더해서" 다시 말씀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는 혹시라도 기존에 주신 성경 말씀에 뭔가를 "더해서"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변개된 성경 말씀이 없을까 하고 찾는 중입니다.
20절: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오거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라. 그러나 너는 오직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발람은 하나님의 장난감 로봇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느 쪽에 순종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가라"는 하나님께서 발람이 그들과 함께 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직접적으로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과 같이 가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발람은 재물 때문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택권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그 자신이 져야 합니다. 로마서 1:20-28도 같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창조물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계시해 주셨으나(20절),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았고, 그분께서 보여주신 진리를 거부했습니다(21-23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어버려두셨습니다(24,26,28절 참고).
오 청년이여, 네 젊은 때를 기뻐하라. 네 젊은 시절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로 걸으며 네 눈이 보는 대로 걸으라. 그러나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데려가실 줄 너는 알라(전11:9)
전도서 11장 9절 말씀은 청년들에게 눈에 보이는대로 마음대로 인생을 즐기면서 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살아봐라.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시험 답안을 백지로 내거나 엉망으로 쓰는 것은 학생의 자유지만, 그것을 평가하고 채점하는 것은 선생님의 재량입니다.
22절: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어기고 길을 떠나는 발람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주의 천사가 그를 대적합니다. 이것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죄를 미워하고 대적하시며 공의에 따라 죄인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12절)과 재물에 대한 욕심(18절)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는 발람의 자유지만, 그에 대해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권리요, 하나님의 자유입니다.
32절: 발람의 길은 주 앞에서 비뚤어진 것입니다. 주의 천사는 그를 죽여서 그가 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귀가 세 번이나 피하는 바람에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35절: 그는 주께서 기뻐하지 않으면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주의 사자는 그가 가도록 합니다. 그가 가는 것은 허락하되 주께서 그에게 주시는 말만 하도록 했습니다. 주께서는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는 것을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신23:4-5, 수24:9-10, 느13:2)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들을 따라가라고 시켜놓고서는 막상 발람이 그들을 따라 가니까 하나님이 변덕을 부려서 그에게 분노하시며 그를 죽이려고 하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번째 말씀(12절)과 그 말씀에 대한 발람의 반응(18절-탐욕, 19절-혹시 하나님의 말씀이 달라질수 있다면 하는 기대)을 잘 살펴보고 전후 문맥을 파악한 다음에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2011-09-28 12:22:30 | 김문수
한가지 가능한 설명은 20절 말씀과 21절 말씀의 차이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발람을 부르러 오거든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들이 부르러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이 부르면 그때에야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21절에 보면 발람이 그들이 부르러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분노의 원인입니다. 발람의 마음은 이미 그들에게 가 있었기에 발람이 먼저 움직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려고 - 드러내시려고 - 발람에게 명령하시기를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이고요.
그래서 35절로 가면, 발람이 그들과 가는 것 자체는 여전히 허락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2011-09-28 11:45:10 | 이재연
민수기 22장 20절 질문(민22:20)
항상 이 사이트를 통하여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자유게시판에 수준높은 글이 항상 올라와서 이렇게 질적으로 떨어지는 질문의 글로 공간을 채우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알고자하여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민수기 22:20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오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하시니
21절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얹고 모압의 통지자들과 함께 가니라
민수기 22절 그가 간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불같이 타올라 주의 천사가 대적이 되어 그를 치려고 길에 서니라..
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일어나 함께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는데
왜 22절을 보면 그가 간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타올랐을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과 가지말라는 말씀을 12절에 하셨습니다
12절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지니 이는 그들이 복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왜 20절에 다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분노가 타올랐을까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50:08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1-09-28 00:33:10 | 이탁재
이미 있는 줄 몰랐었네요. 감사합니다. ^^
2011-09-15 10:31:01 | 조두현
여호야긴은 몇 살부터 통치하기 시작했을까요?
답: 다음 자료를 보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22&page=&cate_name=&sfl=&stx=&sst=&sod=&spt=&page=
2011-09-13 12:08:30 | 관리자
유다 왕 여호야긴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언제부터 통치하기 시작했습니까?
열왕기하 24장 8절에는 그가 18세때 부터 통치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역대기하 36장 9절에는 그가 8세때 부터 통치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답: 여호야긴은 자기 아버지가 쫓겨난 뒤에 여덟 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대하36:9).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왕비로서 그를 대신해서 그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통치했습니다(왕하24:8). 그리고 세 달 뒤에 왕인 그와 그의 어머니 역시 추방을 당했습니다(왕하24:12).
이런 연대기 문제는 다음을 참조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69&page=&cate_name=%EC%97%B4%EC%99%95%EA%B8%B0%ED%95%98&sfl=&stx=&sst=&sod=&spt=&page=
2011-09-13 12:06:28 | 관리자
이것은 아하시야의 나이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69&cate_name=%EC%97%B4%EC%99%95%EA%B8%B0%ED%95%98
2011-09-13 11:50:57 | 관리자
이미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 자료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아래 게시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69
2011-09-12 12:57:03 | 김문수
아는 동생이 제게 역대하 22장 2절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대하 22:2) -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 역시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더라.
대하 22장 2절에서는 아사시야가 통치할 때의 나이가 사십이 세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대하 21장 20절을 보면 여호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하 21장:20) - 여호람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다가 원하는 자가 없이 떠났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들의 돌무덤에 두지는 아니하였더라.
그런데 여호람은 아하시야의 아버지입니다.
(대하 22:1) -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여호람을 대신하여 그의 막내아들 아하시야를 왕으로 삼았더라.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이른 사람들의 무리가 그보다 나이가 많은 자들을 다 죽였더라. 이처럼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통치하니라.
한마디로, 여호람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는 나이가 삼십이 세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그럼 사십 세일 때 통치를 그만뒀겠군요.
그런데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그의 뒤를 이어받았는데 그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의 나이는 사십이 세였습니다. 여호람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여호람보다 두 살이 많습니다.(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열왕기하 8장에도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에 대해 나옵니다.
(왕하 8:25-26)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이십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하니라.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
의 어머니의 이름은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더라.
왕하 8장 25-26절은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의 나이가 이십이 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여호람의 아들이고요.
대하 22장 1-2절에 보면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은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목사님께 여쭤보니
'하나님이 성경을 완전하게 주셨는데 사람들이 옮겨 적으면서 실수가 있어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만으로 온 세상과 땅과 하늘, 바다를 지으시고 온갖 동식물을 만드신 분께서, 빛과 어두움과 모든 것을 만드신 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할 능력이 없으시다는 건 전 믿지 못하겠습니다.
(시 12:6-7)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게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마 24:35)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5: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
(창 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저는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혼이 구원받고 그 안에 성령님이 항상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셨고, 그 보존된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는 분이시니까요.
아는 동생이 이것때문에 고민에 빠졌는데,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안타깝네요. 공부 좀 할걸 하고 요즘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 성경 실력으로는 이 구절이 왜 이렇게 나와 있는지, 그 연유를 알기 어려웠습니다.
혹시 대하 22:2와 왕하 8장 26절이 왜 차이가 나는지 아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주 왔던것도 아니고 가끔 와서 이렇게 질문하니 죄송스럽네요. 한 줄도 좋고 양이 많아도 좋으니, 이것에 대해 아는 분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알려주세요. 그 동생 신앙이 흔들렸었다고 하네요. 도와주고 싶은데 저는 능력이 안 돼서···. 전 읽어도 이게 왜 이렇게 적혀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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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2 12:15:01 | 조두현
여기의 천사는 하늘에 있는 천사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유대인들의 회당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회당은 원래 집회를 뜻하지만 교회와 비슷하게 후에는 유대인들이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 집회를 갖는 장소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회당은 대개 높은 곳에 지었으며 건물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서쪽 편은 율법서가 담긴 궤가 있으므로 신전이라 불렸고 동쪽 편은 사람이 모이므로 회당의 몸이라 불렸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앉았고 장로들은 사람들을 마주 보고 반대편에 앉았습니다. 장로들이 앉는 곳은 좀 더 귀한 곳으로 생각되어 회당의 높은 자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마23:6). 여인들은 격자창 등으로 구분된 발코니에 앉았습니다.
모든 회당에는 직분을 가진 열 사람이 있었고 그 중에서 회당의 치리자는 모든 것을 주관하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회당의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회중의 사역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기도와 말씀 선포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목사들은 이런 연유로 천사로 불린 것으로 보입니다(계2:3).
2011-09-05 14:08:06 | 관리자
킹제임스성경에 큰 관심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바이블 빌리버(Bible Biliver)에게 성경을 바꾼다는 것만큼 중요하고 힘든일이 있을까요? 큰 혼동이 있을 줄 압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시길 기도드립니다.
객관적으로 살펴주시고 주님 앞에서 판단하시어 최복립형제님의 교회에도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을 사용하시는 기쁜 날이 오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
2011-09-05 07:32:35 | 윤범용
그리고 대한성서공회의 번역의 두 저본이 무엇인지는 모르겟습니다만 알란드의 UBS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저본에서는 첫째에게 가고, 그 다음에는 다른 아들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어디서 대한성서공회의 번역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헬라어 성경은 스테파누스의 성경이던가 아니면 알란드의 UBS일텐데 말입니다.
2011-09-02 09:53:00 | 이형준
그 두가지 사본이 모두 네슬 알란드 3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번역이 중간 어느 때인가 바뀌어져 버린 것입니다.
1887년 예수셩교젼셔 마태복음 21:28 이하에서도 개역, 개정과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올바로 붙이기가 안되어 있으나 신경쓰셔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8 ᄒᆞᆫ 사ᄅᆞᆷ이 두 아달이 잇ᄂᆞᆫᄃᆡ 그 맛아달의게 가 갈오ᄃᆡ 포도원
가셔 오날 일 ᄒᆞ라 하니
29 ᄃᆡ답하여 갈오되 안이가갓나이다 하고 후에 누이처 가고
30 둘ᄌᆡ 아달의게 가 ᄯᅩ 이갓치 말하니 ᄃᆡ답하여 갈오되 가갓나이
다 하고 후에 가지 안아ᄉᆞ니
31 너희 ᄯᅳᆺ에 어ᄂᆡ 거시 아밤의 ᄯᅳᆺᄋᆞᆯ 좃ᄂᆞ냐 갈오ᄃᆡ 맛아달이라 예
수 갈오샤ᄃᆡ ᄂᆡ 실노 너희게 일오나니 셰관과 챵기가 너희보담
만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문
32 요안ᄂᆡ가 올은 도로 너희게 나아가ᄆᆡ 너희ᄂᆞᆫ 밋지 ᄋᆞᆫ아ᄉᆞ되 셰
관과 챵기ᄂᆞᆫ 밋엇고 너희 ᄯᅩ 이거슬 보고도 후에 누이처써 밋지
ᄋᆞᆫ으미라
28 한 사람이 두 아달이 있는데 그 맏아달의게 가 갈오되 포도원에 가셔 오날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갈오되 안이 가갓나이다 하고 후에 누이쳐(뉘우쳐) 가고
30 둘째 아달의게 가 또 이갓지 말하니 대답하여 갈오되 가갓나이다 하고 후에 가지 안아스니
2011-09-02 09:12:33 | 이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