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존하는 지옥 형벌
어떤 이들은 지옥의 불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진짜 불 즉 이 세상에서 우리가 뜨겁게 느끼는 그런 불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불 즉 상징적인 불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자신의 창조물을 진짜 불 속에 영원토록 던져 넣는 잔인한 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eternal’이다. 이 말은 원래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을 나타낼 때 혹은 천상의 것의 우수함이나 고매함 등을 지상의 것과 비교할 때 즉 질적 비교를 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개역: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eternal fire)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
반면에 영어에서 양을 강조하면서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을 나타낼 때는 ‘영존하는’이란 의미의 ‘everlasting’을 사용한다.
흠정역: 그러므로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들을 찍어 네게서 내버리라. 네가 절뚝거리거나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존하는 불(everlasting fire)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라.
이렇게 ‘영존하다’(everlasting)를 사용하면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안식교인들의 ‘영혼 멸절설’ 같은 이단 교리가 발붙일 수 없다. 영원토록 계속해서 불 속에서 고통을 받는데 어떻게 영혼이 멸절될 수 있는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은 질적으로 우수한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이기도 하며 동시에 양적으로도 영원토록 계속되는 ‘영존하는 생명’(everlasting life)이기도 한다. 즉 질적으로 양적으로 영원무궁한 생명인 것이다.
흠정역: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everlasting life)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5-16).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치밀하게 자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의 의도를 바르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래서 믿는 자들의 최종 권위가 된다.
2009-05-13 14:54:54 | 관리자
지옥인가, 음부인가?
마귀는 지옥을 숨기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 믿지 않으면 음부에 갑니다.” 혹은 “스올에 갑니다.”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있겠는가?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죽어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과 지옥으로 갔으며(눅16:19-31) - 이 구절의 음부도 음부가 아니고 지옥임 -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낙원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 즉 천국으로 옮겨졌으나(엡4:8-10; 고후5:8; 12:2-4; 히11:40) 지옥은 여전히 지옥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죽은 사람은 곧장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지옥은 성경에 54회 나오는데 개역성경은 이 중에 구약에 나오는 31번의 지옥을 모두 스올로 번역했고 신약에서도 13번만 지옥으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음부로 번역했다. 그렇다면 스올 혹은 음부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말 큰 사전은 음부는 저승인데 저승은 ‘죽은 혼령이 가서 사는 세상으로 구천, 유명’이라고 말한다. 즉 개역성경은 번역자들의 샤머니즘으로 인해 불교 용어와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개역: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잠15:11)
개역: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잠27:20)
이런 이교도 사상이 개역성경에 그대로 반영되어 교리와 신학에 참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 흠정역성경은 정확하게 ‘지옥과 멸망’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은 이에서 그치지 않고 지옥의 본질을 성경에서 제거해 버렸다.
개역: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5)
흠정역: 만일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절뚝거리며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지옥은 결코 불이 꺼지지 않는 무서운 곳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흠정역: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44, 46, 48).
너무나 중요한 진리이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44, 46, 48절에서 연거푸 이 사실을 강조하신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44, 46절은 생략했다. 단 한 번만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예수님은 중요한 것을 강조하실 때는 늘 반복을 하셨다.
흠정역: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또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구원받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우리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라고 강조하셨다. 마찬가지로 지옥에 빠지는 것 역시 치명적이므로 그분께서는 연거푸 세 번이나 지옥의 실상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거기에 가지 말 것을 촉구하신다. 그러므로 44, 46절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참고로 영어의 지옥 즉 ‘hell’은 ‘감추다’ 또는 ‘덮다’를 뜻하는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1차적으로는 ‘죽은 사람들이 가는 지하 세계’를 뜻하고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 지하 세계에서 악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곳’을 뜻한다.
hell: The abode of the dead; the place of departed spirits; the infernal regions or lower world regarded as a place of existence after death(옥스퍼드영어사전)
그러므로 한자의 ‘지옥’(地獄) 즉 ‘땅의 감옥’이란 표현은 아주 적절하다.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말 성경에 아주 근사한 용어를 허락해 주셨다. 지옥이 땅의 중심부에 있음을 성경이 말하지만 현대판 사두개인들은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이것을 믿지 않는다.
흠정역: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마12:39-40).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중심부에 가셔서 고난을 당하셨다.
흠정역: (다윗이)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더니(행2:31)
그러나 개역성경은 여기서도 지옥을 음부라고 하여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개역: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음은 우리나라 성도들이 자주 외우는 사도신경에도 들어 있다. 한영 성경이나 한영 찬송가의 표지 안에 들어 있는 영어 사도신경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H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원래 사도신경에는 “그분께서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구절이 있으나 번역자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고의로 이 구절을 삭제하였다. 우리는 결코 주문 외우듯이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으며 사실 신조 자체를 외울 필요도 없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천주교나 불교처럼 기록된 말씀 이외의 다른 것에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는 지옥에 대해 바른 개념을 갖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 주기 위해 사도신경을 예로 들어 설명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예수 믿지 않은 악인들이 영원토록 살 곳은 성경에서 불 호수라 하는 곳 즉 불로 가득한 호수이며 이곳의 위치는 성경이 언급하고 있지 않다(계19:20; 20:14).
2009-05-13 14:52:55 | 관리자
공동번역
1968년에 대한성서공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카톨릭 교회의 연합 작품인 공동번역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것은 사실 1960년대에 이루어진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종교일치 운동(Ecumenism)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1962년에 미국성서공회와 영국성서공회의 니다(E. A. Nida)와 브래드녹(W. J. Bradnock)이 한국을 방문해서 새로운 번역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형식적 일치’보다는 ‘동적 일치’ 번역을 해야 하다고 주장했으며 공동번역 위원회는 이런 원칙을 수용했다. 공동번역의 구약은 1937년도에 발행된 키텔의 Biblia Hebraica에서 번역되었으며 신약은 연합성서공회가 1966년에 발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1판에서 번역되었다. 이렇게 출간된 공동번역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교회가 연합해서 만든 성경 중 두 번째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한국에서 발행된 최초의 의역 성경(Paraphrased Bible)이며 프로테스탄트 판과 카톨릭 판이 출간되었는데 카톨릭 판에는 외경도 정경으로 들어가 있다.
2009-05-13 14:50:21 | 관리자
표준새번역
개역성경이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는 동안 대한성서공회는 새로운 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번역의 필요를 느꼈다. 또 동시에 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한국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번역이 있어서 외국인 선교사들의 힘으로 거의 이루어진 개역성경을 대체시켜야겠다는 생각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에 대한성서공회는 외국에서 공부한 국내 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고 1983년에 번역 작업을 시작하여 표준새번역이라는 새 역본을 발간하였다. 표준새번역은 연합성서공회가 1983년에 발행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3판과 키텔(R. Kittel)이 수정한 ‘히브리어 구약성경’(Biblia Hebraica)과 거의 유사한 ‘슈투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1967/1977, BHS)를 번역의 원전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표준새번역 역시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그리스어 본문과 히브리어 본문을 사용했으므로 문체만 다를 뿐 그 내용은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05-13 14:49:02 | 관리자
우리말 성경 분석
우리말 성경의 역사는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언더우드(H. R. Underwood)와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가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첫 선교사들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에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연합장로교회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된 로스(John Ross)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어 성경을 들고 1874년과 1876년에 한중 국경 지대에 와서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한국어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한 지 11년 뒤인 1887년에 신약성경을 우리말로 출간하였다. 로스가 스코틀랜드에 보낸 선교 보고에 따르면 우리말 성경 번역을 위해 그가 사용한 본문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서 나온 영국의 영어개역성경(ERV)과 중국어 성경이었다. 그는 또한 번역을 위해 형식적, 문자적 일치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뜻만 통하면 된다는 동적 일치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사실은 그가 1877년에 만주에서 한국어로 성경을 출간하기 위해 발간한 「조선어 문법」(Corean Primer)이라는 소책자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한국인 번역자가 중국의 한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다.
(2) 그 원고를 그리스어 신약성경 및 영어성경과 대조해서 수정한다.
(3) 그리스어 성구사전과 주석을 참조하여 어휘의 통일을 기한다.
(4) 문자 그대로의 축자적 번역보다는 의미에 유의하고 조선어의 관용구를 그대로 살린다.
한편 1882년에 이수정은 일본에서 역시 중국어 성경을 사용하여 신약성경의 일부를 번역하였으며 한국 프로테스탄트교의 첫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인천에 상륙하면서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들어왔다.
개역성경
국내에서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들어온 지 8년 뒤인 1893년에 미국성경협회의 지원을 받아 주로 장로교인들과 감리교인들로 구성된 성경실행위원회와 성경번역자회가 설립되었고 이 두 기구의 주도 하에 1906년에 구약성경이 출간되었으며 신구약을 다 담고 있는 한국어 성경(구역)은 1911년 3월에 신구약 3권으로 출간되었다. 두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국의 교계 지도자들이 함께 번역한 이 성경은 최초의 공식적인 한글 성경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 구역 성경 역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 그리스어 본문에 근거한 네슬레의 25판과 영국의 영국개역성경(ERV)과 미국의 미국표준역(American Standard Bible, ASV)을 본문으로 채택하였다.
구역 성경의 구약은 영어개역성경의 미국 판인 미국표준역을 가장 중요한 원전 중 하나로 사용하였으며 특별히 미국표준역의 영향을 받아 히브리어 사자음 문자 ‘YHWH’를 ‘주’(LORD)로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여 ‘여호와’로 표기했다. 사실 미국표준역과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는 신세계역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성경은 이 신성한 ‘사자음 문자’를 ‘주’ 즉 ‘LORD’로 번역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한편 1938년에는 구역 성경을 개정한 성경 개역판이 출간되었다. 케이블(E. M. Cable), 스토크스(M. B. Stokes) 등의 미국 사람들과 남궁혁, 김인준 등의 한국 사람들이 개정에 참가하였으나 이번에도 여전히 오리겐의 70인역, 네슬레 25판, 영국개역성경, 미국표준역 등을 중심으로 개정이 이루어졌고 필요한 경우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 등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이 성경은 철자 수정과 얼마간의 본문 수정을 거쳐 1961년도에 ‘성경전서 한글개역판’으로 고정되었고 바로 이 성경이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가장 많이 애독하고 애용하며 대부분의 성도들이 단 하나의 오류도 없다고 믿고 있는 개역성경인 것이다.
간단하게 개역성경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개역성경이 중국어 성경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는 점과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영향을 받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전통 그리스어 공인본문’이 아닌 ‘수정 그리스어 본문’ 혹은 ‘비평본문’(Critical text)을 중심으로 하고 거기서 파생된 영국개역성경과 미국표준역을 번역의 대본으로 삼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나채운은 자신의 저서에서 중국 역본들도 킹제임스 성경이 아닌 영국개역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밝힌다.
개역성경은 문장이 간결하고 우아하고 웅장하여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마치 영어권의 킹제임스 성경 같이 한국의 독보적인 성경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는 달리 개역성경 문장의 간결성 등은 본문의 정확성을 무시하고 한자 숙어나 한국어 용례 등을 사용하고 많은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자체에 한계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본문 선택과 번역자들의 사상에 기초한 용어 선택을 살펴보면 개역성경이 기독교 교리와 신학 및 믿음의 실행 등에 큰 폐해를 끼쳤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든지 개역성경은 보통 사람들의 감정과 문화를 잘 반영하였으며 아름다운 문체와 운율 등을 통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회심하고 구원의 감격을 맛보았으므로 이 성경이 우리 민족에게 남긴 자취는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2009-05-13 14:47:28 | 관리자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인가?
마태복음 1장에는 우리 주 예수님이 마리아의 맏아들임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흠정역: (요셉이) 그녀(마리아)가 그녀의 맏아들을 낳기까지 그녀를 알지 아니하다가 낳으매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1:25).
성령님께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하여 평생 동정녀라 부를 자들이 생길 것을 미리 아시고 마태복음에 예수님이 그녀의 ‘맏아들’(firstborn son)이라고 분명히 기록해 놓았다. 잘 알다시피 마리아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자녀들을 낳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다 그분의 사촌이라고 주장하며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이후에 평생토록 동정녀로 지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들은 서기관들을 동원하여 ‘맏아들’의 ‘맏’을 삭제해 버렸다.
개역: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2009-05-13 14:45:20 | 관리자
복음의 핵심 부인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개역성경처럼 그냥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것인가?
개역: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3)
이것은 결코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단지 죄인들을 부르러 오시지 않았다.
흠정역: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회개’이다. 이것이 빠지면 예수님의 메시지가 아무 효력도 갖지 못한다.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개역성경은 자꾸 삭제한다.
개역: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눅9:55-56).
흠정역: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아니하고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이 다른 마을로 가니라.
2009-05-13 14:43:38 | 관리자
하늘들인가, 하늘인가?
우리말에서는 하늘의 복수형인 ‘하늘들’ 같은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복수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개역: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2:1)
흠정역: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개역성경은 참으로 간결해 보이지만 많은 면에서 내용은 부실하다. 이런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 복수를 쓰셨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을 보면 성경에는 최소한 첫째, 둘째 셋째 하늘이 있으며 다른 영어 역본들도 이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흠정역: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노니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12:2).
그러나 개역성경은 이런 신학을 무시한 채 대부분의 중요 복수 단어를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많은 경우 개역성경의 간결성은 성경의 정확성을 희생하면서 얻은 결과이다. 성경이 이처럼 부실하니 그 부실한 기초 위에서 부실한 기독교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2009-05-13 14:41:41 | 관리자
순교하고 약속도 받지 못하는가?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믿음의 전당에 들어간 사람들은 순교하고 아무 약속도 받지 못하였는가?
개역: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히11:13)
믿음을 따라 죽는 것이 순교가 아닌가? 그런데 아무 약속도 받지 못했단 말인가? 여기서도 개역성경은 오역을 했다(히11:39 참조).
흠정역: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받아들였고…
2009-05-13 14:38:15 | 관리자
십일조를 삼 일만에 바치는가?
개역성경은 NASB 등과 같이 십일조를 삼 일만에 바치라고 요구한다.
개역: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암4:4)
과연 성경에 십일조를 삼 일마다 드렸다는 기록이 있는가? 신명기 14장 28절과 26장 12절 등은 분명히 삼 년마다 드리는 십일조가 있다고 말한다.
흠정역: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그 해 소출의 십일조를 다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신14:28)
그러므로 아모스 4장 4절은 킹제임스 성경처럼 되어야 한다.
흠정역: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서 범죄를 크게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물을, 삼 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2009-05-13 14:36:39 | 관리자
정반대를 기록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대적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인해 눌림을 당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개역성경은 다른 현대 역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들을 누른다고 기록한다. 앞뒤 문맥을 보면 너무 이해하기 쉬운 일 아닌가?
흠정역: 12 그러나 너희가 나사르 사람들에게 포도즙을 주어 마시게 하고 대언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대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눌림같이 내가 너희 밑에서 눌렸나니 14 그러므로 빠른 자도 도주하지 못하고 강한 자도 자기 힘을 강하게 하지 못하며 힘센 자도 자신을 건지지 못하고(암2:12-14)
개역: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암2:13)
아무 뜻도 없는 번역
개역: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암5:20)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이 있는가? 뜻을 모르고 번역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흠정역: 주의 날은 어둠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빛이 아니니라. 심지어 너무 어두우므로 그 날에는 밝음이 없지 아니하겠느냐?
다음은 신약성경에서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절 중 하나이다.
개역: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1:3)
여기서 ‘신기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divine’이며 이는 ‘하나님의 신성을 띠다’를 뜻한다. ‘영광과 덕으로써’는 어떤 수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영광과 덕에 이르도록’을 뜻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음과 같다.
흠정역: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도다.
2009-05-13 14:35:04 | 관리자
아멘을 무시함
아멘이란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기도한 뒤 ‘아멘’ 한다. 성경에는 아멘이 총 78회 나오는데 개역성경은 이 중에서 20회 이상을 삭제하고 50여 회만 적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멘이 아니란 말인가?
흠정역: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계1:18).
개역: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흠정역: 어린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하라. 아멘(요일5:21).
개역: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2009-05-13 14:32:56 | 관리자
여인들을 무시함
성경은 남녀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평등함을 보여 준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NIV 같은 현대 역본들과 마찬가지로 여인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워 준다.
개역: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딤전5:16)
흠정역: 만일 어떤 믿는 남자나 여자에게 과부들이 있거든 그들이 그들을 구제하게 하고 교회에게 짐을 지우지 말라. 이것은 교회가 참 과부인 자들을 구제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여인들에게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남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려 한다.
개역: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약4:4)
흠정역: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아버지 없는 아이와 고아
하나님은 인자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특별히 명령하셨다.
개역: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22:22)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런 구절에서도 번역을 잘못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가리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고아’를 가리켜 ‘부모를 여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아 몸 붙일 곳이 없는 아이’로 정의하고 있다. 즉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아이만이 고아인 것이다. 개역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없는 아이에게만 긍휼을 베풀라고 하신 것처럼 기록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이와 다르다.
흠정역: 너는 과부나 아버지 없는 아이를 괴롭히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버지가 없는 아이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말씀하신다. ‘고아’와 ‘아버지 없는 아이’는 완전히 다르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긍휼이 개역성경에 드러난 긍휼보다 더 큼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킹제임스 성경은 부모가 아니라 아버지만 없어도 긍휼의 손길을 베풀라고 하므로 약자를 더 많이 위로하는 성경이다. 이렇게 ‘아버지 없는 자’를 ‘고아’로 표현된 구절은 자그마치 50 여 군데나 된다.
이 모든 부패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서 나왔으므로 NIV나 NASB 그리고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 같은 현대 역본도 내용이 동일하다.
2009-05-13 14:31:26 | 관리자
하나님의 진노는 누구를 향한 것인가?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진노하시는가? 개역성경은 이 점이 명확하지 않다.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5-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것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흠정역: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느니라.
이것은 사실 에베소서 5장 6절과 짝을 이루는 말씀이다.
흠정역: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나니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해서 개역성경은 또 다시 오류를 범한다.
개역: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히3:16)
개역성경은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흠정역: 이는 어떤 자들이 듣고 격노하게 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모세로 말미암아 이집트에서 나온 자가 다 그리하지는 아니하였느니라.
민수기 14장 29-32절을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과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어린것들은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지 않았으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개역성경은 거짓을 진술하고 있다.
2009-05-13 14:29:14 | 관리자
보편적 구원을 가르침
새 예루살렘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개역성경은 어떤 민족이나 누구든지 들어간다고 기록한다.
개역: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계21:24)
개역성경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이단 교리 즉 ‘보편적 구원’(Universal salvation)을 가르치지만 킹제임스 성경은 구원받은 자들만이 거기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흠정역: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시의 빛 가운데서 다니겠고 땅의 왕들이 자기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과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류가 넘치도록 원본 성경을 주셨을까? 아니다. 마귀의 사주를 받은 서기관들이 자기 뜻대로 이 모든 것을 변개한 것이다. 하나님은 오류가 전혀 없는 한 성경만을 쓰셨다.
2009-05-13 14:27:20 | 관리자
그리스도는 창조된 신인가?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분을 제대로 알 때에야 비로소 올바로 구원받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개역: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1:18)
흠정역: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자
여기서 ‘독생하다’는 말은 영어로 ‘only begotten’이며 이는 ‘유일하게 낳은’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개역성경은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유일하게 낳은 하나님’임을 보여 주며 이로써 또 다시 ‘예수님은 창조된 하나님’이라는 여호와의 증인들 교리를 지지한다.
성경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하는데(요일2:22) 그렇다면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아들’(Son)을 제거해 버린 개역성경과 다른 현대 역본들은 성경의 증거에 따라 다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실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같이 영존하시는 분임을 믿고 있다.
그리스도와 관련된 ‘나신’(begotten)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흠정역: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KJV: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요한복음 1장 18절은 원래의 문맥에서 변개되어 지나간 역사 속에서 이리들의 밥이 되고 말았다. 가장 먼저 이 일을 시작한 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종교와 윤리학 사전은 요한복음을 가리켜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대항하는 근본적인 반론’이라고 칭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역사는 발렌티누스라는 이집트의 영지주의자가 요한복음의 ‘독생하신 즉 유일하게 나신 아들’ 즉 ‘독생자’를 ‘유일하게 나신(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변개시킴으로써 요한의 일격을 봉쇄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 발렌티누스는 파피루스 72와 66 같은 것에도 영향을 주어 자신이 주장하는 ‘독생하신 하나님’의 개념을 사람들이 수용하게 했다.
이러한 투쟁은 4세기까지 지속되어 오리겐의 학생인 아리우스에게 전해 내려왔고 그는 ‘유일하게 나신 아들’ 즉 독생자를 신조로 삼는 아타나시우스 등과 싸워 예수님을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 사실 아리우스는 예수님을 ‘하나의 신’으로, ‘창세 전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자’로 여겼다. 이러한 아리우스 주의가 대중에게 지지를 얻자 아리우스 주의를 내심 추종하던 유세비우스는 주후 325년에 ‘예수가 모든 시대 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나사 모든 창조물 중 처음이 되신 분’이라고 콘스탄틴의 교회 칙령에다 첨가했다.
아리우스 주의의 영향이 점점 더 강성해짐에 따라 주후 330년에 콘스탄틴은 소극적 아리우스 주의자였던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를 아리우스 주의 신봉자인 니코데미아의 유세비우스로 대치시켰다. 그는 또한 주후 335년에 아타나시우스를 추방시켰는데 그 이유는 그가 ‘유일하게 나신 아들’을 강력하게 옹호했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틴이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을 만들도록 명령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요한복음 1장 19절을 ‘유일하게 나신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분명히 정치적 목적을 띤 것이었다.
사실 ‘독생자’ 즉 ‘유일하게 나신 아들’이라는 용어는 대다수의 사본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 1장 18절에 대해 현존하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인 주후 180년의 터툴리안의 기록도 이 용어를 증거하고 있다. 심지어 연합성서공회(UBS)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편집자인 위크렌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유일하게 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많으며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전통 안에서 발견되는 초보적인 실수로 필사 시에 이루어진 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연합성서공회가 발행하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비평 장치는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클레멘트, 오리겐, 아리우스 등을 동원해 가면서 비록 이 증거들이 교리적으로 비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유일하게 나신 하나님’이 옳다고 말한다.
이런 것을 통해 예상할 수 있듯이 이처럼 ‘창조된 하나님’은 개역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의 여러 구절에서 발견된다.
흠정역: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중에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니 그의 나아감은(whose goings forth)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미5:2).
개역: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whose origins) 상고에, 태초에니라
우리 주 예수님에게는 기원이 없다. 오직 창조물에게만 근본이 있으며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근본이 없다.
2009-05-13 14:19:21 | 관리자
개역성경에서 하나님을 삭제한 구절들
개역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을 삭제했다. 다음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삭제한 몇 예를 보여 준다.
(a) 흠정역: 그들이 꿈에 하나님으로부터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마2:12)
개역: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b) 흠정역: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마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c) 흠정역: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마21:12)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d)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4: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e) 흠정역: 이들은 다 풍족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헌물로 넣었거니와 그 과부는 빈궁한 가운데서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21:4).
개역: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f) 흠정역: 능력 있는 표적들과 이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의 권능으로 이루신 그 일들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리라. 이로써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다니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만히 선포하였노라(롬15:19).
개역: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g) 흠정역: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구별하시고 자신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갈1:15)
개역: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h) 흠정역: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딤전3:16)
개역: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i) 흠정역: 그들의 입에서 교활함을 찾을 수 없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왕좌 앞에서 잘못이 없도다(계14:5)
개역: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j) 흠정역: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계21:4).
개역: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d)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개역성경은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삭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번역의 근간이 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이 사람들의 전통을 교리로 삼으려는 자들에 의해 변개되었기 때문이다.
(h) 용례에서 우리는 개역성경이 ‘하나님’(God)께서 육체 안에 오셨음을 보여 주는 성육신 교리마저 부인하려 함을 볼 수 있다(딤전3:16).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강하게 증명하는 구절로 디모데전서 3장 16절 말씀을 인용한다. 도대체 개역성경의 ‘그’(he)는 누구란 말인가?
디모데전서 3장 16절을 포함하고 있는 300여 개의 그리스어 사본 중에서 오직 다섯 개의 사본 - 9, 12, 13세기의 후대 사본 - 만이 ‘하나님’(God)을 삭제하고 있다. 시내 사본 등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God’으로 혹은 ‘who’로 추측할 수 있도록 변개되었다. 한편 주후 265년경의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등과 같은 초기의 증인들도 이 구절에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음을 지지한다. 이와 더불어 주후 110년의 이그나티우스 등도 이 구절에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주후 400년 이전에는 배교자요 이단인 오리겐만이 여기서 ‘하나님’을 삭제했다.
한편 이탈리아의 디오다티 성경, 스페인의 발레라 성경, 포르투갈의 알메이다 성경, 루터의 독일어 성경 등 세계 전역에서 사용되어온 역본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개역성경에서 ‘하나님’이 빠진 것은 1881년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 그리스어 본문 - 이것은 연합성서공회가 발행하는 그리스어 본문의 근간이 되는 본문이다 - 에서 이 단어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삭제는 압도적인 사본들의 증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881년 영국 성경 개정 위원회의 교리적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위원회에는 스미스(V. Smith)와 쎄이어(J. H. Thayer)라는 이름의 유니테리언 교도 두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의 영향으로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삭제되었다. 다음은 이들의 증언이다.
성경 개정자들은 - 스미쓰와 쎄이어 - 고대 사본들 중에서 이 구절에 ‘하나님’이라고 기록된 사본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단지 겸손한 선생에 불과하던 예수를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으로 바라보려 했던 초기 기독교 시대의 경향이 확대됨에 따라 자연스레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단 교리를 수용한 쎄이어는 지금도 대부분의 신학 대학에서 그리스어 시간에 참고 문헌으로 많이 사용하는 「쎄이어의 그리스어 어휘사전」(Thayer's Greek Lexicon)의 저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런 이단 교도가 지은 사전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런 유니테리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심지어 성경 개정 위원회와 성서 교회에도 이들이 침입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는 일이 발생하자 더 이상 이것을 방관할 수 없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뜻있는 사람들이 트리니테리언 성경공회를 조직하여 유니테리언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킹제임스 성경을 보급하고 있다. 이 정도로 이단의 활동은 무섭고 집요하다. 유명세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면 속기 쉽다. 그의 사상이 어떠한가를 먼저 살펴보고 그가 이단 사상을 지녔으면 사도 요한의 가르침처럼 단호히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 교리를 가지지 아니한 채 너희에게 오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지니 그에게 축복 인사를 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위들에 참여하는 자니라(요이10-11).
2009-05-13 14:14:50 | 관리자
그리스도의 신성 경시
다음에서 개역성경은 아주 교묘하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리고 있다.
개역: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아들에 관하여는(about the Son)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히1:5, 8)
흠정역: 그분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가운데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아들에게는 이르시기를(unto the Son he saith), 오 하나님이여, 주의 왕좌는 영원무궁하오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의 홀이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면 어떻게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오 하나님이여!” 하고 말 할 수 있겠는가? 개역성경은 NIV 같은 현대 역본들과 보조를 같이하며 ‘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아들에 관한 것’으로 바꾸어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고 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빌립보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흠정역: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마음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빌2:5-6)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位格)이므로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사실을 -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므로 - 도둑질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다시 말해 그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함을 당연히 여기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것을 얼버무려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게 만들었으며 잘못 보면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게 만들었다.
개역: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무소부재’ 즉 어느 곳에나 계신다는 것이다. 사람 중에서 무소부재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무소부재하시며 그래서 과감하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흠정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요3:13).
그러나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무난하게 번역하고 있다.
개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 핵심 구절은 ‘하늘에 있는’이며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의 무소부재를 증명해 주는 단서가 된다. 이 모든 변개의 원인은 불신이다. 믿지 못하면 삭제하는 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을 필사한 서기관들의 관습이었다.
2009-05-13 14:00:06 | 관리자
그리스도를 격하시킴
마태복음 4장 10절은 경배의 대상이 오직 한 하나님뿐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흠정역: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여기서 물러가라.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10).
이런 이유 때문에 베드로는 고넬료가 자기에게 경배하려 하자 단호히 거절했고 바울 역시 이교도들이 자기에게 경배하려 하자 즉각 거절했으며 천사도 요한이 경배하려 하자 단호히 거절했다.
흠정역: 그때에 그(천사)가 내(요한)게 이르기를, 나는 네 동료 종이요, 대언자들인 네 형제들과 이 책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들 가운데 속한 자니 너는 주의하여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계22:9).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언제든지 사람들에게서 경배를 받으셨다.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흠정역: 그런데, 보라, 한 나병 환자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매(마8:2)
그런데 개역성경은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대신 절하게 한다.
개역: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이곳 외에도 예수님께 경배한다는 구절이 나오면 개역성경은 대개 다 절하는 것으로 바꾸었다(마9:18; 14:33; 15:25; 18:26; 20:20 등). 그런데 흥미 있게 계시록 13장 4절에서 개역성경은 동일한 그리스어를 ‘경배하다’로 바르게 번역하고 있다.
개역: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13:4)
예수님께는 절하게 하고 짐승에게는 경배하게 하는 번역이 과연 논리적으로 옳은가? 이것이 바로 성경 부패 뒤에 숨겨진 알렉산드리아 철학의 핵심 내용인 것이다.
2009-05-13 13:58:12 | 관리자
그리스도의 성육신 부인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라고 말했다(요일4:3).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은 참으로 적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위한 중요한 시금석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개역: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개역성경은 ‘그리스도’와 ‘육신 안에 오셨다’는 구절을 삭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도 요한이 말한 ‘적그리스도의 영’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속이는 자들에게 동조하는 자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속임수로 인해 고통을 자초할 것이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나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런 자가 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 이로써 우리가 이룬 그것들을 우리가 잃지 아니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교리를 가지지 아니한 채 너희에게 오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지니 그에게 축복 인사를 하는 자는 그의 악한 행위들에 참여하는 자니라(요이7-11).
지금까지 우리는 개역성경이 무려 12번 이상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지워 버린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제 개역성경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육체에 오신 것’도 삭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부인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창조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분의 신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마저도 공격한다.
개역: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눅2:33)
흠정역: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는 그가 아이에 관하여 말한 그것들로 인해 놀라워하더라.
요셉은 결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가 예수님의 아버지라면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의 피를 받고 태어난 죄인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의 신성 부인
또한 마귀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려고 무척이나 애쓴다.
개역: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마5:22)
흠정역: 누구든지 아무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서기관들에게 노하셨는데 만일 이런 구절에서 ‘아무 까닭 없이’가 빠진다면 과연 예수님은 어떻게 될까?
그리스도의 피 부인
또한 개역성경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예수님의 피를 무시한다.
개역: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4)
흠정역: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2009-05-13 13:55:2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