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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해 한 형제님이 보조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아마 요즘 구원파 교회(이요한, 박옥수 목사)에서도 킹제임스 성경이 이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진리의 홍수는 아무도(신지어 마귀도) 막지 못하지요. 좋은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자니 그 동안 잘 못 가르친 것이 문제가 되므로 쉬쉬하는 분위기인가 봅니다. 이요한 목사를 대상으로 하는 대침바로세우기 카페에도 이 글이 올라왔나 봅니다. 이 형제님이 대답한 글이니 참조하세요. 1. 레위기 23장 40절에서 히브리어 단어 ‘페리’는 개역성경의 '열매'가 맞고 킹제임스성경의 '가지'는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영어번역본을 인용하며 히브리어 단어 ‘페리’는 ‘열매’로만 번역될 수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단어 ‘페리’를 킹제임스성경에서만 '가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아래 7종류의 영어번역본에서도 '가지'로 옮겼습니다(NASV - 잎가지). NET, NLT, LB, 21st Century KJV, Jubilee Bible 2000, The Voice, NASV 러시아어 Synadal Version 에서도 '가지'로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단어 ‘페리’는 개역성경대로 ‘열매’가 맞는다는 주장은 '히브리어 사전'을 의존하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신학자가 '열매'라고만 정의내린 히브리어 사전이 틀린 겁니다. 히브리어 단어 ‘페리’는 '열매'도 되고 '가지'도 될 수 있는데 레위기 23장 40절에서는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대로 '가지' 맞습니다. 2. 성경의 진리를 알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혹은 신문이나 인터넷으로 입증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유대인이 현재 하고 있는 종교적 행위들은 대부분 엉터리가 많습니다. 그들이 현재 초막절에 열매를 흔든다면 그들이 틀린 겁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은 성경기록에 의해서만 입증하고 연구합니다. 느헤미야 8장 15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초막절에 관한 율법을 몇 백 년 만에 찾고 보니 모두 '가지'입니다. 신문에 보도되는 유대인의 삶이 성경을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신문의 정보도 도움은 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성경과 신문을 비교하게 되면 큰 오류가 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10-25 10:57:08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이 확실히 틀린 데가 있다고 누가 주장합니다.과거 수십 년 동안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확실하다고 믿었는데 원어와 대조해 보니 확실히 틀린 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제기하는 구절이 바로 레위기 23장 40절입니다.   흠정역: 첫째 날에는 너희가 좋은 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의 버들을 취하여 {주} 너희 하나님 앞에서 이레 동안 기뻐할지니라(레23:40).   개정 개역: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KJB: And ye shall take you on the first day the boughs of goodly trees, branches of palm trees, and the boughs of thick trees, and willows of the brook; and ye shall rejoice before the LORD your God seven days.   NIV: On the first day you are to take choice fruit from the trees, and palm fronds, leafy branches and poplars, and rejoice before the LORD your God for seven days.   이 구절에서 개정 개역, NIV는 좋은 나무 혹은 아름다운 나무의 ‘실과’(fruit)를 취하라고 합니다.반면에 킹제임스 성경은 좋은 나무의 ‘가지’(boughs)를 취하라고 합니다.   이분은 좋은 나무의 ‘가지’(boughs)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다른 데서는 대개 ‘열매’(실과)로 번역되었으므로 당연히 여기도 열매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원어를 주장하는 이들은 성경을 교정하려 들다가 항상 이런 자충수에 직면합니다.   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가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스트롱 번호 6529를 가진 ‘페리’로서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트롱 번호 : 6529 발음 : {per-ee'} : 페리 어원(기원) : 6509에서 유래TWOT : 1809a품사 : 명사,남성형 파생어: 없음 뜻: '과일'(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 큰 가지, (【첫】)열매 (【-열매가 많이 열리는】), 보상 periyda'.  페리다  6514를 보라 puriym. 푸림  6332를 보라1) 열매, 소출, 자식, 자녀, 자손, (행동의)결과   사전에서 보듯이 이 단어는 1차적으로 열매, 소출을 뜻합니다.그런데 이 단어의 원래 어원을 보면 이 단어는 스트롱 번호 6509를 가진 ‘파라‘에서 나옵니다. 다음은 ‘파라’의 뜻입니다.   스트롱 번호 : 6509 발음 : {paw-raw'} : 파라 어원(기원) : 기본어근TWOT : 1809품사 :  동사 파생어: 없음 뜻: '열매를 맺다'(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 열매를 맺다, (열매)내다, 결실하다, (결실하게 되다), 결실이 풍부하다, 자라다, 증산하다1) 열매를 맺다, 열매가 많다, 갈라지다   이것을 비교해 보면 이 두 원어는 ‘자라서 갈라지다’를 뜻합니다. 그래서 큰 가지(branch)에서 자라서 갈라지면 작은 가지(bough)가 되고 작은 가지에서 자라서 갈라지면 열매(fruit)가 됩니다.   따라서 이런 단어는 앞뒤 문맥을 보고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이 단어가 있는 문맥은 무엇을 말합니까?   33-43절까지는 이스라엘의 장막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3 ¶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일곱째 달의 십오일은 이레 동안 {주}를 위한 장막절이 되리라.…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초막(booths)에 거해야 했습니다. 초막은 무엇으로 만들까요?굵은 가지와 잔가지로 만들지 않습니까?포도나 석류나 올리브로 초막을 만든 것 보았습니까?   장막절(초막절)에 대한 구약 성경의 전체 내용은 무엇입니까?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들로 엉성하게 초막을 만들어 거기 거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다시 사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막(草幕):Shelter, Booth [히] &s(sok) (시27:5), hK;s(sukkah)(욥 27:18,욘 4:5) [그] skhnh(skene) [영] Shelter, Booth 나뭇가지나 풀로 엮어 만든 간소한 가옥, 혹은 초가. 초막절 때에 지었다(레 23:39, 43, 느8:14). 이밖에 일광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인 오두막집(욘4:5)을 말하기도 한다.   초막은 가지들로 만들지 열매로 만들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페리’와 ‘파라’를 고려하여 정확하게 이 단어를 가지로 번역했고 그 외의 다른 모든 역본들은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열매로 오역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항상 옳습니다.   우리는 알량한 원어 지식을 가지고 혹세무민하는 이들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자신의 단어들을 완벽하게 보존해 주셨고 흠정역은 이것을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원어를 들먹이며 성경에 대한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영적 배후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2013-10-23 16:49:31 | 관리자
다시 보려니 게시물이 이동되어서 한참 찾았습니다. 이 분석은 우리가 성경을 번역하거나 이해할 때 단어의 문법적인 해석보다 우선적인 용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나아가서는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원어나, 원어사전(예 : 스트롱코드)을 찾아가며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용례를 잘 파악하고 번역한영어성경(KJV)을 기준으로 역시 영어의 용례를 잘 파악하여 번역한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이 원어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정확하고, 따라서 유익합니다. 영어 단어의 용례 파악에 있어 국내에 출간된 여타 다른 킹제임스성경 번역판들은 킹제임스흠정역 만큼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3-09-20 11:34:29 | 류인선
Replenish 설명   replenish (ed) - (7x) – 간단히 말해서 이 단어는 어떤 것을 처음 받은 수준대로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의 시작 부분에 있는 ‘re’는 ‘re’라는 접두어를 가진 대부분의 영어 단어들처럼 ‘다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단어의 뿌리는 중세 영어 ‘replenisshen’에서 나오고 이것은 중세 불어인 ‘repleniss’에서 나온다. 이 불어 단어는 ‘replenir’의 가지에서 나왔으며 단순히 “채우다; 사람이나 짐승으로 채우다; 저장하다”를 뜻한다. 이것은 어근 ‘re’와 ‘plenus’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든 라틴어에서 나온 게 아니다.   예레미야 31장 25절에서 replenish는 ‘흡족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satiate’라는 단어와 평행 단어로 쓰였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반복 용례로서 ‘satiate’와 ‘replenish’가 같은 뜻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렘31:25).For I have satiated the weary soul, and I have replenished every sorrowful soul.   한편 에스겔서 26장 2절에서는 ‘replenish’는 ‘피폐하게 되었다’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이것 역시 두 단어의 대조를 보여 주는 히브리어의 용례이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겔26;2). I shall be replenished, [now] she is laid waste:   창세기 1장 28절은 자원들을 사용해서 - 정복하고 복종시켜서 - 처음에 받은 수준으로 땅을 가득 채우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부분이 그분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물 중 어떤 것도 멸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시19; 롬1). 1.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아담과 이브는 많은 아이의 출생을 통해서 스스로 번성해야만 하였다(하나님의 명령이었으니까). 그런데 땅의 경우 그들은 땅의 자원들을 사용하거나 복종시켜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상태로 땅을 가득 채워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동물과 식물의 수를 임의대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다(시19:1-4; 롬1:20). 어떤 생물 종을 없애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도록 하는 것을 -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증거를 - 없애는 것이다.   2. 창세기 9장 1절-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노아는 모든 동물과 식물의 종들을 지켜야 했다. 홍수 이후에는 많은 동물들이 이제 2마리만 남았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이 쉽게 없어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노아는 어떤 종도 사라지지 않도록 채우고 지켜야 했다. 3. 이사야 2장 5-7절- 오 야곱의 집이여,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걷자.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백성 곧 야곱의 집을 버리셨나이다. 그들에게는 동쪽에서 온 것들이 가득하며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쟁이가 되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 가운데서 자신을 기쁘게 하나이다. 그들의 땅에는 또한 은과 금이 가득하여 그들의 보물은 끝이 없고 그들의 땅에는 또한 말이 가득하여 그들의 병거가 끝이 없으며   여기서 이사야는 야곱의 집을 불러 주의 빛 안에서 걸을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에게서가 난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온 것들을 생계 유지 수단으로 받아들였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을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스스로 기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공급하셨고, 히브리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했으나 그들은 낯선 자들의 자손들에 의해 가득 채워졌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가 난 것이 아니라 낯선 자들로부터 난 것들을 가지고 이전처럼 동일한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하였다. 4. 이사야 23장 2절- 섬의 거주민들아, 너희는 잠잠할지어다. 바다를 넘나드는 시돈의 상인들이 너를 가득히 채웠도다.   섬의 거주민들은 그들이 매일 필요로 한 것을 시돈 상인들로부터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생계를 매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려 했다.  5. 예레미야 31장25절-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   여기서 replenish는 ‘충분히 만족시키다’(satiate)와 평행을 이루는 단어로서 그 의미는 혼을 흡족하게 하여 한때 그 혼이 피곤하지 않았던 그 지점으로 완전히 되돌린다는 것(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시편23편...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restoreth) 6. 에스겔 26장 2절-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살렘을 대적하며 말하기를, 아하, 백성들의 문이던 그녀가 부서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 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   여기서 ‘replenish’는 ‘피폐하게 되었다’(laid waste) - 완전히 텅 빈 상태 - 와 대조를 이룬다. 두로는 예루살렘에서 두로 지역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통해 예루살렘의 부의 손실이 이제 자신의 것이 될 것을 자랑하고 있다. 즉 예루살렘의 손실은 두로의 이득이 되어 두로가 원래의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 에스겔 27장 25절- 다시스의 배들이 네 시장에서 너에 대하여 노래하였으며 너는 충만히 채워져서 바다들의 한 가운데서 심히 영화롭게 되었도다.   에스겔은 계속해서 두로에 대한 대언을 한다. 두로는 다시스의 배들을 통해서 자기들의 매일의 필요를 충분히 공급받고 있다고 선언한다.   결론 1) 사람은 스스로 수를 늘려 번성해야 했지만 땅의 식물과 동물들은 처음 받은 상태로 가득 채워야 했다. 이것은 신명기 22장 7절 말씀을 설명한다.    신22:7- 어미 새는 반드시 놓아주고 새끼를 취할지니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네 날들을 길게 하리라.    만약 히브리 사람들이 어미와 새끼를 모두 죽였다면 그 종들은 곧 멸종했을 것이다.   2) 켄달(이 글의 저자, Dr. Bob Kendall)의 식품 저장 방의 예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예가 있다. 나는 3개월 동안 출장 갈 예정이어서 당신에게 우리 집에 와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사용하면 아주 편하게 지낼 것을 요청한다. 내가 식품 저장 방을 열자 거기에는 땅콩버터가 담긴 5개의 병이 있기에 즉시 물어본다. “땅콩버터가 왜 이리 많아요? 혹시 세일했나요? 어째서 당신은 5병이나 가지고 있나요?” 나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건 그냥 켄달 가족의 것이에요. 모두 다 켄달의 것이지요. 내 남동생들(Mr. Kendalls), 내 어머니(Mrs. Kendall), 사촌들(Mr and Mrs. Kendalls)은 식품 저장 방에 5개의 땅콩버터 병을 보관하고 있어요. 그것은 우리 가족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심지어 땅콩버터를 다 먹어도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돌아왔을 때 5개의 땅콩버터 병이 있으면 좋겠어요. 식탁에 이전 수준으로 가득 채워서요. 그래야 내 식품 저장 방이 계속해서 켄달 네 집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또 다른 예시만약 내가 당신을 불러 내 냉장고를 replenish 하라고 부탁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만 할까요? 처음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처음에 냉장고 안에 얼마만큼의 우유가 있었고 몇 개의 버터 조각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결코 냉장고를 replenish 할 수 없습니다.           4) ‘replenish’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기 훨씬 이전에 원래 지구가 있었고 그 안에 동물과 식물이 살았다고 주장하는 이론 - ‘재창조 이론’ 혹은 ‘갭 이론’ - 이 잘못된 가르침임을 보여 줍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가정(재창조이론)이 사실이라 해도 아담과 이브가 이전의 지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땅을 다시 채울 수(re-fill)있겠습니까?   5) 간단히 말해서, ‘replenish’는 당신이 ‘어떤 것을 발견한 수준으로 그것을 충만히 채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과 영어 사전의 용례가 이것을 지지합니다.   (*) 17세기 초 KJB가 기록된 때에 ‘replenish’라는 단어는 현대 사전의 용례처럼 ‘다시 채우다’의 의미로 결코 쓰이지 않았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1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229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9-14 16:54:2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9-12 15:14:31 | 오광일
안녕하세요?   창세기 1장 18절의 replenish를 '다시 채우다'로 오해하는 분들이 더러 있어서 켄달 박사님이 영어로 설명해 준 글을 올립니다.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replenish의 모든 구절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replenish (ed) - (7x) – simply defined this word means to keep something at the same level as it was received.  The “re” beginning this word does not mean “again” as in most words with the “re” prefix.  It’s root is from the Middle English replenisshen, [note the spelling] which is the same as the Middle French repleniss-, from the stem of replenir, which means to fill; to fill with persons or animals; to stock.  It is not from the Latin word which is a combination of the prefix “re” and “plenus.”  [note spelling]  In Jer 31:25 replenish is paralleled to “satiate” which means also to fill completely.  It is contrasted in Ezek 26:2 with “laid waste.”  Gen 1:28 means to use the resources (subdue) and then “fill it back up” to its previous level. Don’t allow any of God’s creation to become extinct as every part of creation reveals God Himself (Ps 19; Rom 1)   Genesis 1:28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th upon the earth.     Adam and Eve were to multiply through the birth of many children.  However, they were to use the resources of the earth (subdue) and then “fill it back up” to its previous level.  God did not create an arbitrary number of each animal and plant.  All of the creation is a reflection of God Himself (Ps 19:1-4, Rom 1:20).  To erase a species is to take away a visible representation of the invisible God.   Genesis 9:1 And God blessed Noah and his sons, an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Noah was to keep all of the species of animals and plants.  There were only 2 of many animals so it would have been very easy to eliminate a reflection of God’s glory.  Noah was to make sure no species was erased.   Isaiah 2:5 O house of Jacob, come ye, and let us walk in the light of the LORD. 6 Therefore thou [God] hast forsaken thy people the house of Jacob, because they be replenished from the east, and are soothsayers like the Philistines, and they please themselves in the children of strangers. 7 Their land also is full of silver and gold, neither is there any end of their treasures; their land is also full of horses, neither is there any end of their chariots:  Isaiah calling the house of Jacob back to walk in the light of the LORD.  God hast forsaken His people because they are receiving their restored sustenance, not from Him, but from the east; they please themselves in the children of strangers.  They are not pleasing themselves in the LORD.  God provided, the Hebrews consumed it, but were replenished by the children of strangers; they were kept at the same level of sustenance, not from God, but from strangers.   Isaiah 23:2 Be still, ye inhabitants of the isle; thou whom the merchants of Zidon, that pass over the sea, have replenished.  The inhabitants of the isle are keeping their sustenance at the same level daily by receiving what they daily need from the merchants of Zidon.   Jeremiah 31:25 For I have satiated the weary soul, and I have replenished every sorrowful soul. Here replenish is paralleled to “satiate” which means also to fill completely back to the point where the soul once was, not weary.  Cf Psalm 23 “…restoreth my soul…”   Ezekiel 26:2 Son of man, because that Tyrus hath said against Jerusalem, Aha, she is  broken that was the gates of the people: she is turned unto me: I shall be  replenished, now she is laid waste:   Here replenish is contrasted in with “laid waste”, the complete state of emptiness.  Tyrus is boasting that the loss of Jerusalem’s wealth will now be hers through those fleeing from Jerusalem to her.  Jerusalem’s loss was Tyrus’ gain back to a full state.   Ezekiel 27:25 The ships of Tarshish did sing of thee in thy market: and thou wast  replenished, and made very glorious in the midst of the seas.  Ezekiel continues his prophecy against Tyrus by proclaiming that Tyrus also kept  here daily needs filled through the ships of Tarshish.   Conclusions   1) Man himself was to multiply, but he was to replenish the plants and animals.  This explains Deut 22:7.  Deuteronomy 22:7 But thou shalt in any wise let the dam go, and take the young  to thee; that it may be well with thee, and that thou mayest prolong thy days. If the Hebrews killed both the dam and the young, the species would soon be extinct. 2)  The illustration of the Kendall’s pantry   Here’s a silly made-up illustration.  I am going to be gone for 3 months and I ask you to live in my house and “make yourself at home” using all that is there for yourself.  When I open the pantry you cannot help but notice that we have 5 jars of peanut butter which prompts you to ask, “Was peanut butter on sale?  Is that why you have 5 jars?”  I reply, “No, it’s just a Kendall-thing.  All of the Kendall’s—my brothers, my mother, cousins—we all keep 5 jars of peanut butter in our pantries.  It’s a reflection of the Kendall’s.” So I tell you to eat everything you desire, even the peanut butter.  But when I return please have 5 jars of peanut butter; replenish the cupboard.  That way my pantry will continue to reflect the Kendall’s. 3) Another illustration  If I called you and asked you to replenish my refrigerator, what would you have to know?   What was in it in the first place.  You cannot replenish if you did not know how many gallons of milk, how many sticks of butter, etc first were in the refrigerator. 4)  This definition eliminates the false teaching that there was an early earth before Adam and Eve that had animals and plants upon it.  Even if this assumption is true, how could Adam and Eve re-fill the earth if they first did not know what occupied that previous earth? 5) Simply stated, replenish means to keep something at the level you found it.   이 외에 다음 글들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1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229  
2013-09-06 14:58:11 | 관리자
참고로 왜 조상들의 불법을 3-4대까지만 벌하시는가를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과거 구약시대에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3-4대가 한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그는(아브라함은) 낯선 나라에 머무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머물렀고 자기와 함께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가 된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들에 거하였으니(히11:9) 그러므로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가 자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였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조상들에게 가정교육의 큰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민족의 패망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조상들의 죄 가운데 한 사람의 죄는 유전되어 지금까지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모든 인류의 첫 조상 아담입니다. 그로 인해 육체적 죽음이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는 일은 각 사람의 죄들로 인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계속해서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만을 비교합니다. 롬5:15-19, 15그러나 거저 주시는 이 선물은 또한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이는 한 사람의 범죄를 통해 많은 사람이 죽었을진대 [하나님]의 은혜와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선물은 더욱더 많은 사람에게 넘쳤기 때문이니라. 16 또 이 선물은 죄 지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과 같지 아니하니 이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심판은 정죄에 이르렀으나 많은 범죄로 인한 이 거저 주시는 선물은 칭의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한 사람을 통하여 군림하였을진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욱더 생명 안에서 군림하리라.)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생명의 칭의에 이르렀나니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 중간에 낀 다른 조상들은 우리의 죄들과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제거하셨습니다(요1;29).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나님 편에서 그분은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계13:8).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들만 걱정하면 됩니다. 이 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만 한 번에 영원토록 완전히 제거가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죄들을 용서하셨지만 죄들을 제거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속죄는 죄들을 덮어서 가려주는 것이었습니다(출34:7).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하되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 그러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육체적으로 죽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죄들로 인해 각 사람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죄들이 다 용서됩니다. 아담과 우리 사이에 낀 우리 조상들은 죄들에 관한 한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샬롬
2013-07-10 15:36:23 | 관리자
지난 주 금요 모임이 끝난 뒤 한 젊은 형제가 잠깐 저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가족들 가운데 부산의 박O수 목사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말을 듣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문제인지 물으니 박 목사는 조상들의 죄를 반드시 회개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너무 불쌍한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박 목사가 인용하는 몇 가지 구절을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박 목사가 인용하는 개역성경 벧전1:18을 듣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런 성경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서 살펴보니 그 형제가 말한 대로 되어 있었습니다.   흠정역: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개역성경: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개역개정: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KJB: Forasmuch as ye know that ye were not redeemed with corruptible things, [as] silver and gold, from your vain conversation [received] by tradition from your fathers;   NIV: For you know that it was not with perishable things such as silver or gold that you were redeemed from the empty way of life handed down to you from your forefathers,   개역성경, 개역개정, NIV를 보면 다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유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의 유전(遺傳)은 “1. 물려받아 내려옴. 또는 그렇게 전해짐. 2.<생물>어버이의 성격, 체질, 형상 따위의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짐. 또는 그런 현상.”을 뜻합니다.   아니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피를 타고 유전으로 전해 내려온다니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를 보니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중요한 단어가 현대역본들에서는 다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즉 ‘전통으로'라는 단어가 빠지면서 이상하게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피를 타고 유전된 것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단들이 사실 성경을 유심히 봅니다. 부산의 박 목사는 이 구절을 유심히 보고는 조상들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교리를 만들어 신도들보고 그것들을 회개하라고 닦달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박 목사가 좋아하는 구절들은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을 하나님께서 자손들에게 벌하시겠다고 하신 구약의 몇 구절들입니다. 신약의 베드로전서 구절과 구약의 몇 구절을 가지고 박 목사는 이단 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먼저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야 하므로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구절들을 다 찾아보았습니다. 밑에 보시면 그 구절들이 다 나와 았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구절은 모두 구약에만 있습니다. 신약에는 한 구절도 없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신정국가로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 국가의 헌법으로 주신 십계명에서 처음 나옵니다(출20:4-5). 단순히 출20:5만 보지 말고 5절이 나오는 이유가 설명된 4절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4-5절의 핵심 내용이 우상숭배나 이교도들과의 혼합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다른 구절들도 보면 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하다가 포로가 되어 잡혀가거나 가기 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신정 정치 하의 이스라엘에게는 명백한 우상숭배나 이교도들과의 혼합 문제가 곧 질투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그 하나님은 배타적으로 그들에게서 100%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 온 민족이 당하는 심판이었습니다. 밑에 있는 구절들을 문맥과 함께 보시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들을 문맥에 상관없이 떼 내어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 개인이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음과 같이 규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들로 인하여 아버지들을 죽이지 말며 아버지들로 인하여 자녀들을 죽이지 말라.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신24:16).   보라, 모든 혼은 내 것이라. 아버지의 혼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혼도 내 것이니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죽을지니라(겔18:4).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거나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교리였으면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반드시 언급하고 가르쳤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구원은 개인의 죄들의 용서에 달려 있지 티끌만큼도 조상들의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사주팔자도 더 이상 성도들 안에서 작용하지 못합니다. 그런 일들은 과거에 우리가 마귀의 자녀였을 때 일정 부분 우리를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딸로 신분이 바뀌었으므로 세상의 신에게 속한 어떤 악한 영들도 우리의 신분과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골2;13-15, 13 또 너희의 죄들과 너희 육체의 무할례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너희의 모든 범법을 용서하시며 14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는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 15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다시는 이런 헛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구약의 신정 정치 하에서 민족적인 심판의 상황을 개인에게 적용하면 안 됩니다. 또 개역성경 같은 허술한 성경을 의지하여 교리를 만들면 안 됩니다.   성경의 ‘몇 글자’가 이단을 만듭니다. 귀신들이 아니라 마귀들인데 성경이 귀신이라고 하니 베뢰아 귀신론이 만들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왕국의 신비들을 설명하시면서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비유가 없이는’(without a parable)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13:34,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런데 이것을 개역성경처럼 ‘비유가 아니면’으로 번역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비유가 되고 맙니다. 여기서 신천지의 비유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여기에 근거해서 성경이 다 비유이며 자기들의 교주만이 그것을 알려 줄 수 있다고 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성경 문제 대단히 중요합니다.신약과 구약을 잘 구분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합니다.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과거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느라 평생을 속박 가운데 지내야 하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다음의 자료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귀에게 속아 넘어간 저들의 눈을 속히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944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46 ‘ 아버지들(조상들)의 불법’이 나오는 구절들   출20:4-5, 4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곧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34:7,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하되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   레26:39-42, 39 또 너희의 남은 자들이 너희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들의 불법 가운데서 쇠약해지며 또 자기 조상들의 불법 가운데서 그 조상들과 함께 쇠약해지리라. 40 그들이 만일 자기들의 불법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과 자기들이 나를 대적하며 범한 그 범법을 자백하고 또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걸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적하여 걸었으며 또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자백하고 자기들의 할례 받지 않은 마음을 낮추어 자기들의 불법으로 인한 형벌을 수용하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또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도 기억하며 그 땅을 기억하리라.   민14:18, {주}는 오래 참고 긍휼이 많아 불법과 범죄를 용서하나 결코 죄 있는 자들의 죄를 깨끗이 치우지 아니하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느니라, 하셨나이다.   신5:9-10,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   사14:21, 그들의 조상들의 불법으로 인하여 그의 자손들을 살육할 준비를 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일어나거나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며 또 도시들로 세상의 표면을 채우지도 못하게 하라.   렘14:19-20, 주께서 유다를 완전히 버리셨나이까? 주의 혼이 시온을 심히 싫어하셨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우리를 치시고 우리를 위해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랐으나 좋은 것이 없고 치료하시는 때를 바랐으나 고난을 보나이다! 20 오 {주}여,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우리의 사악함과 우리 조상들의 불법을 우리가 인정하나이다.  렘32:18, 주께서는 인자하심을 수천의 사람들에게 베푸시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그들 뒤에 오는 그들의 자손들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신 이, 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주}가 그분의 이름이로소이다.   ‘조상들(아버지들)의 불법들’이 나오는 구절들   레26:39-40, 또 너희의 남은 자들이 너희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들의 불법 가운데서 쇠약해지며 또 자기 조상들의 불법들 가운데서 그 조상들과 함께 쇠약해지리라. 40 그들이 만일 자기들의 불법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과 자기들이 나를 대적하며 범한 그 범법을 자백하고 또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걸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적하여 걸었으며 또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자백하고 자기들의 할례 받지 않은 마음을 낮추어 자기들의 불법으로 인한 형벌을 수용하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또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도 기억하며 그 땅을 기억하리라.   느9:2, 이스라엘의 씨가 모든 타국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일어서서 자기 죄들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들을 자백하니라.   사65:7, 너희 불법들과 너희 조상들의 불법들을 함께 보응하리니 그들이 산들 위에서 분향하고 작은 산들 위에서 나를 모독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이전 행위를 헤아리되 그들의 품속까지 헤아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선조들의 불법들, 렘11:10그들이 내 말들 듣기를 거절한 자기 선조들의 불법들로 돌아가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들을 섬겼은즉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애5:7, 우리 조상들은 죄를 짓고 없어졌으며 우리가 그들의 불법들을 담당하였나이다.   단9:16, 오 [주]여, 간청하옵나니 주의 모든 의를 따라 주의 분노와 주의 격노를 돌이키사 주의 도시 예루살렘 곧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들과 우리 조상들의 불법들로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우리의 사방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치욕거리가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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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9 16:49:47 | 관리자
앞으로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공중 강림과 지상 재림의 두 단계로 되어 있고 총 7년의 기간을 재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한 순간이 아니라 33년 반 동안에 이루어진 것처럼 재림도 7년의 기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자들이 휴거되어 영화로운 몸으로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이들은 7년 동안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혼인식을 거칩니다. 그 7년 동안 이 땅에는 창세 이후로 없었던 극심한 환난의 시간이 임합니다.   이때에 수많은 환난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합니다. 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가운데 7년 환난기의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자와 불신자가 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근방의 올리브 산에 강림하셔서 왕좌에 앉아 친히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십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 민족을 나누어 심판하는 일입니다.   이들에 대한 판단의 근거는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예수님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을 환난기에 잘 대우해 주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이 내 형제들은 양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예수님의 친 백성/형제들인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양/염소 민족의 심판 때에는 예수님 앞에 세 부류가 섭니다: 가운데에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살아남은 유대인들, 오른쪽에는 양 민족에 속한 자들, 왼쪽에는 염소 민족에 속한 자들         이런 심판을 통해 염소 민족에 속한 자들은 마25:41의 저주를 받습니다.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한편 양 민족에 속한 자들은 34절의 복을 받습니다.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창세로부터 예비된 왕국이 바로 천년왕국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채 7년 환난기를 끝까지 통과한 유대인들과 이방 민족(양)들이 육신을 입고 천년왕국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육신을 입었으므로 아기를 낳을 수 있고 또 낳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께서 1000년 동안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어두시므로 마귀가 사람을 직접 유혹하지 못합니다.  1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2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을 붙잡으니라. 그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차기까지는 그가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계20:1-3).   땅에는 유토피아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의 수명은 다시 노아의 홍수 이전처럼 1000살까지 늘어납니다. 이사야서 65장 19-25에 이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19 내가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내 백성을 기뻐하리니 슬피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그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 20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 아기나 자기의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거기에 없으리니 아이가 백 세에 죽으리라. 그러나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 21 그들이 집을 지어 거기에 거주하고 포도원을 세워 그것의 열매를 먹으리라. 22 그들이 짓되 다른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심되 다른 사람이 먹지 아니하리니 내 백성의 날수는 나무의 날수와 같으며 나의 선택한 자는 자기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리리라. 23 그들이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받으려고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주}에게 복 받은 자의 씨요, 그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후손도 그와 같으리라. 24 그때에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하는 도중에 내가 들으리라. 25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되리니 나의 거룩한 모든 산에서 그것들이 해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22절에 있듯이 사람들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과 같이 길어집니다. 20절에 있듯이 백 세에 죽는 사람을 아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때에는 25절에 있듯이 처음의 에덴동산에서처럼 모든 짐승이 초식을 하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는 상하게 하거나 해치는 일이 없습니다.    이사야서 11장 1-10절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막대기가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자랄 것이요, 2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의 두려움의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3 그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속히 깨닫게 하시리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며 4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해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이며 5 의로 자기 허리의 띠를 삼고 신실함으로 자기 콩팥 주위의 띠를 삼으리라. 6 이리도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염소 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젊은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인도하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로되 9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10 ¶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어서 그것이 만백성의 기로 설 것이요, 이방인들이 그에게 찾아오리니 그가 베푸는 안식이 영화로우리라.   자, 그러면 이때에도 사람이 죽을까요? 20절에 보면 백 세에 죽는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때에도 사람이 죽습니다. 그 이유는 여기에 처음 들어가거나 거기서 태어난 사람은 다 첫 사람 아담의 후손이므로 죽음을 면제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1000년 동안 무저갱에 갇혀 있는데 이들이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처음에 거기 들어간 사람들은 100%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다른 시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비록 마귀의 직접적인 유혹이 없어도 그들은 첫 사람 아담의 후손이므로 모든 시대의 사람들처럼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죽습니다. 마귀의 유혹이 없어서 조직적인 저항이나 범죄는 없다 해도 구원은 마음의 문제이므로 이들이 회개하고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지 않으면 비록 유토피아에 살아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65:20은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1000년이 흘러가는 동안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됩니다. 계20:7-10은 이들의 마지막 상황을 보여 줍니다. 마귀가 잠시 풀려나자 이 죄인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귀에게 붙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마귀와 함께 영원무궁토록 불 호수의 치욕을 당합니다.   7 그 천 년이 다 차매 사탄이 자기 감옥에서 풀려나고 8 나가서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속이며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을 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땅의 넓은 곳으로 올라가 성도들의 진영과 그 사랑받는 도시를 에워싸매 불이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켰고 10 또 그들을 속인 마귀가 불과 유황 호수에 곧 그 짐승과 거짓 대언자가 있는 곳에 던져져서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환경만 좋으면 사람이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사람의 문제가 환경이 아니라 타고난 죄성이라고 말합니다. 유토피아의 천년왕국에서도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불 호수로 들어가는 자들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천년왕국에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양 민족)만 들어갑니다.이들은 아이를 낳습니다.이 아이들 중에는 죄인들이 많고 또 천년왕국의 시민들 중에는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기 적어도 7년 전에 휴거 받거나 부활한 신약 성도들과 7년 환난기 끝에 부활할 구약 성도와 환난기 성도들은 영화로운 몸을 입고 - 아이는 낳지 못함 - 아마 이때에 왕국의 백성들과 함께 천년왕국(에덴동산)의 아름다움과 부요함을 누릴 것입니다.   샬롬   참고로 천년왕국에도 성전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있고 구약의 희생 예물을 드리며(겔40-48장, 말3:1-3) 또 장막절을 지킵니다(슥14:16-19). 이때의 희생 예물은 십자가 사건 이후의 신약시대 성도들이 지키는 주의 만찬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2013-06-15 15:38:54 | 관리자
사무엘기상 28장에 보면 사울이 위급한 상황에서 엔돌의 영매를 찾아가 죽어 있는 사무엘을 불러오라고 이야기하고 그 영매는 사무엘을 불러옵니다(7-20절).   많은 이들이 이때에 올라온 사무엘은 가짜라고 이야기합니다.영매가 어떻게 죽은 사람을 불러올릴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실로 모든 영매나 소위 ‘귀신 쫓는다는 목사’들이 불러올리는 처녀 귀신, 할아버지 귀신 등은 사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거짓 영인 마귀들입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진짜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목소리를 내니까 이들은 자기들이 진짜로 죽은 사람을 불러올린 것으로 착각하게 되고 또 그것을 보는 이들도 그렇게 착각하게 됩니다. 죽은 사람과 목소리도 같고 말하는 게 같기 때문에 그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 다 마귀들의 장난에 속아 넘어갑니다. 김기동 목사 등의 베뢰아 귀신들도 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속이고 있습니다. 매일 귀신/사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마귀의 종들입니다. 다락방이라는 데도 늘 마귀 이야기하만 하지요. 이런 단체가 사실은 마귀에게 속아 넘어간 단체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영매나 ‘마귀 들려 축사하는 목사’는 결코 죽어 있는 사람의 영/혼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러 특별한 일을 허용하십니다.   사무엘기상 28장에서는 분명히 사무엘이 올라왔습니다. 영매는 자기가 사무엘을 불러올린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이 일은 사실 하나님의 허용에 의해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매 자신도 놀라고 맙니다(12-13절). 사무엘기상 28장의 앞뒤 문맥 상 땅 속에서 올라온 이 존재가 사무엘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 존재는 분명히 땅속의 낙원에 있던 사무엘입니다. 그는 사울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였고 그대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싸움터에서 죽어서 사무엘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근거로 영매가 죽은 사람을 불러올릴 수 있다고 믿으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은 성경에 단 한 번 나오는 예외적인 기적입니다.   민수기 22장 22-35절에는 나귀가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 역시 성경에 단 한 번 나오는 일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개나 고양이에게 말을 시키려 하면 안 됩니다. 이 일 역시 보편적인 하나님의 일과는 거리가 먼 특별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만 이런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간구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어떤 단회적 사건을 가지고 보편적 해석을 하는 오류에 빠지면 안 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도 단회적 사건입니다. 지금 이 시간 또 다른 오순절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 번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행하신 사건이지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매일 매일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보편적 사건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다마스쿠스(다메섹) 도상의 회심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대개 보편적인 방법으로 섭리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단회적 특수 상황을 가지고 보편적 교리를 만들려고 하면 여기서 이단 교리나 잘못된 가르침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식과 이성과 논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의 틀 안에서 바르게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법을 늘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다음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07&page=   샬롬
2013-06-15 14:39:14 | 관리자
우리는 벧전3:19-20을 통해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의해 노아 시대에 죄를 지은 영들(천사들과 거인들)에게 가셔서 자신의 승리와 그들의 패배를 선언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214   그런데 곧바로 벧전4:6에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와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벧전4:6에는 ‘죽어 있는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 천주교를 포함해서 - 이 두 부분을 이용하여 사람이 죽은 뒤에도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명백한 말씀 즉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다,”는 히9:27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그러므로 죽은 뒤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벧전4장의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은즉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는 이미 죄를 그쳤나니 2 그런즉 그는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 3 우리가 색욕과 정욕과 과음과 환락과 연회와 가증한 우상 숭배 속에서 걸어 이방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한 것이 우리 삶의 지나간 때로 우리에게 족하도다. 4 이 점에서 그들이 너희가 자기들과 함께 달음질하여 그처럼 극한 방탕에 이르지 아니함을 이상히 여기며 너희를 비방하나 5 그들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할 준비가 되신 분에게 회계 보고를 하리라. 6 이런 까닭에 죽어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나니 이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사람들을 따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1-2절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정욕을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을 보여 줍니다. 3절은 과거의 우리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변하자 과거에 같이 지내던 불신 친구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봅니다. 그것이 4절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주님께 모든 것을 낱낱이 회계 보고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 모든 것을 회계 보고해야 하므로 - 죽어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여기의 ‘죽어 있는 자들’은 베드로 당시에 이미 죽어 있는 자들로서, 복음 선포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살아 있을 때에는 5절이 이야기하듯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영으로는 살아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가장 명백한 해석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벧전4:6은 벧전3:19-20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문맥이 그렇게 말합니다.   샬롬
2013-06-08 15:47:09 | 관리자
사사기 14:10-17 10 이처럼 삼손의 아버지가 그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젊은이들이 그리하곤 하였더라. 11 그들이 삼손을 보고 서른 명의 동무를 데려다가 그와 함께하게 하니라. 12 ¶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능히 수수께끼를 알아내어 확실히 내게 밝히 보이면 내가 얇은 옷 서른 벌과 겉옷 서른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 그러나 너희가 그것을 능히 내게 밝히 보이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얇은 옷 서른 벌과 겉옷 서른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수수께끼를 내어 우리가 듣게 하라, 하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지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더라. 15 일곱째 날에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네 남편을 꾀어 그가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밝히 보이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너와 네 아버지 집을 불태우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취하려고 우리를 청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매 16 삼손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당신이 내 백성의 아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는 그것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였도다, 하니 삼손이 그녀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늘 어찌 그대에게 알려 주리요? 하였으나 17 그들이 잔치할 때에 그의 아내가 이레 동안 그 앞에서 울며 그를 몹시 괴롭게 하므로 일곱째 날에 그가 자기 아내에게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수수께끼를 자기 백성의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질문의 요지는 15절에서 삼손의 아내가 일곱째 날에 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왜 17절은 그의 아내가 잔치하는 이레 동안 울었느냐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그냥 풀리는 것 같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삼손이 잔치를 시작하면서 수수께끼를 냈는데 아무도 그것을 풀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처음부터 그에게 울면서, 이레 동안 내내 울면서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15절에 있는 대로 블레셋 사람들이 그녀의 집을 불사르고 죽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급해지니까 이레 째 되는 날 그녀에게 와서 15절처럼 확실하게 위협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삼손 앞에서 또 울었습니다. 큰 문제가 안 되는 이런 부분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잠시 생각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기와 자기 아버지 집의 생명이 위협을 받자 처음부터 이레 동안 내내 운 것으로 보면 됩니다. 샬롬 (*) 참고로 다음에 질문을 올릴 때에는 차분하게 요점을 잘 적어서 올리면 좋겠습니다. 글을 잘 쓰면 보기에도 좋고 답하는 사람도 요점을 알고 잘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3-05-10 10:15:56 | 관리자
삿 14장 15절에 일곱째 날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삼손이 동무들에게 수수께끼를 낸 기간이 잔치 기간 이레인데 14절에 그들이 사흘이 지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더라. 라고 되어있고 15절에는 일곱째 날에 그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17절에 그들이 잔치할 때에 그의 아내가 이레 동안 이라 되어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사흘이 지나서 하면 4일 남았는데 17절에 이레 동안 이라하면 날짜가 안 맞는거 같은데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면 감사합니다. 전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제가 이해가 부족하니 너그러운 아량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5-10 10:16: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5-09 16:22:00 | 김기덕
여기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은 옳고 사람의 해석은 틀릴 수 있음을 전제하고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사밧이 유다(유다와 베냐민의 두 지파)의 왕이었지만 유다는 넓은 의미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속하기에 이스라엘의 왕이라 불린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기에 아마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은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불린 것은 여기가 처음이 아닙니다. 바로 전에 대하20:34에서 보면 그는 이스라엘 왕들의 책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보라, 이제 여호사밧의 남은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책에 다 기록되어 있으며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의 책에 언급되어 있느니라(대하20:34). 바로 이 구절 다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35 이 일 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연합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하게 행한 자더라. 36 여호사밧이 그와 연합하여 다시스로 갈 배들을 만들고자 하였더라. 그들이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만들었더니 37 그때에 마레사 출신으로 도다바의 아들인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해 대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연합하였으므로 {주}께서 왕이 이룬 일들을 부수셨나이다, 하더라. 그 배들이 부서져서 그들이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밧이 유다 왕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책에 언급되어 있고 또 그가 아하시야와 연합하여 행한 일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역대기 기자가 자세히 기록한 것을 보면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연합한 것을 주님이 매우 싫어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역대기는 우상숭배로 멸망한 유다 자손들이 바빌론으로 포로 생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후에 왜 유다가 멸망하였는지를 회고하며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유다에 도입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를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조롱하는 투로 적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음의 두 사례가 이를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1) 역대기하 28장 19절에 보면 아하스 왕도 이스라엘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로 하여금 벌거벗게 하고 또 {주}께 크게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로 인하여 유다를 낮추셨기 때문이더라. 아시다시피 아하스는 심히 타락하여 우상 숭배를 한 인물입니다. (2) 한편 유다의 왕으로 이스라엘 왕들의 책에 언급된 또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의 아들로서 사악한 일들을 많이 행한 므낫세입니다. 보라, 이제 므낫세의 남은 행적과 그가 자기 [하나님]께 드린 기도와 선견자들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전한 말씀들은 이스라엘의 왕들의 책에 기록되어 있고(대하33:18) 이런 구절들을 종합해 볼 때 포로 생활 이후의 역대기 기자는 유다 왕국 몰락의 원인인 우상 숭배를 이스라엘로부터 배워 실행하거나 도입하게 한 왕들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조롱하는 투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추측입니다. 여기서 모르는 일은 천국에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다 안다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이성적으로 맞추기 위해 개역성경처럼 여호사밧을 유다의 왕으로 바꾸는 것은 명백한 성경 변개입니다. NASB와 NIV 등은 각주에서 이런 일을 하였고 개역 성경은 본문 자체를 변개시켰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샬롬
2013-04-16 12:18:33 | 관리자
허광무 형제님 참고글 감사합니다.그러나 그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역대기하 21장 2절에 여호사밧이 유다왕인데 왜 북왕국이스라엘 왕으로 기록된는지를 질문하는 내용입니다.성경을 의심해서 질문하는 것이아니라 누군가 아신다면 관련설명을 부탁드리는 겁니다.역대기하 28장19절에도 아하스왕이 이스라엘왕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기는 유다왕들에 대한기록들이고 다른왕들은 유다왕이라고 명명되는데 왜 이두왕은 이스라엘왕으로 기록되었는지요? 북왕국의 아합과의 인척관계과 동맹이 지나쳐서 실재로 유다왕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타락한이스라엘왕으로 기록된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12지파의 통칭으로 큰개념으로 통털어서 이스라엘왕이라고 명명된것인지 애매해서 질문드린겁니다.
2013-04-16 10:57:45 | 이지호
안녕하세요 질문드립니다. 역대기하는 유다 왕들에 대한 기록으로 여호사밧이 유다왕 인데 왜 역대기하 21장 2절에 ~이스라엘왕 여호사밧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요? 이상해서 개역성경을 보니 개역성경은 유다 왕 여호사밧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 왕인데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 왕으로 나온 것은 무엇때문인가요? 여호사밧 왕에 대한 이전 글들을 다시 여러 번 읽어 보았으나 그래도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16 12:20:0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15 08:34:26 |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