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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약12421개
  I. 벧엘 근처 유다의 마을(수15:34). II. 잇사갈에게 속한 제사장들의 도시. 이곳은 다볼 산에서 2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수19:21; 21:29).    
2009-07-19 02:12:38 | 관리자
  이스라엘을 모압에게서 건져 낸 베냐민 사람 재판관. 그는 먼저 그들의 왕 에글론을 죽이고 군대를 일으켜 그의 백성을 멸망시켰으며 그 뒤 여러 해 동안 명예롭게 이스라엘을 재판했다(삿3:12-31; 4:1).    
2009-07-19 02:11:39 | 관리자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들. 그들은 유물론자요 무신론자이며 자연의 원자들이 영원 전부터 존재해 왔고 그것들이 우연히 결합되어 모든 것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형성했다고 믿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사람의 혼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부인하고 죽은 뒤의 심판과 심지어 혼 자체를 부인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기준이라고 믿었으며 과욕이나 탐닉이 사람의 행복을 빼앗지 않는 한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학파의 창시자 에피쿠루스는 학식과 윤리가 있는 사람으로 이런 원리에 따라 모범적인 삶을 살다가 주전 271년에 73세로 죽었으나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만든 한계를 저버리고 무제한으로 쾌락을 추구했다. 사도 바울 당시에 그들은 극도로 부패하였고 자신들의 철학과 인생관에 의해 하나님, 부활, 영원한 심판 같은 진리를 대적하였다(행17:16-34). 아레오바고, 스토아 학파 사람들 참조.    
2009-07-19 02:11:07 | 관리자
  홍해의 동쪽 만의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 이곳은 에시온가벨이라고도 불리며 엘랏 부근에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유랑의 기간의 마지막 해에 여기서 안식했다(민33:35; 신2:8). 이곳의 항구에서 솔로몬은 오빌에 가는 배들을 만들었지만(왕상9:26) 여호사밧은 여기에서 그 일을 하지 못했다(왕상22:48; 대하20:36). 엘랏 참조.    
2009-07-19 02:10:07 | 관리자
  사울의 넷째 아들(대상8:33). 그는 대개 다른 곳에서 이스보셋이라 불렸다(삼하2:8-15). 꼼꼼한 유대인들은 우상의 이름인 바알을 발음하지 않고 그 대신 ‘혼동’이라는 뜻의 보셋(Bosheth)을 넣었으며 그래서 므립바알 대신 므비보셋이라 불렀다(삼하4:4; 대상8:34). 이스보셋, 므비보셋 참조.    
2009-07-19 02:09:38 | 관리자
  제사장 겸 서기관으로 바빌론에 끌려간 포로들을 이끌고 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그는 율법에 능한 서기관이요 학식이 많고 신실한 사람으로 페르시아 왕궁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편지와 돈과 각종 도움을 받아 주전 457년경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포로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들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왔고(스7:1-28) 거기서 백성들의 행위와 공중 예배를 개혁하였다(스8:1-36; 9:1-15; 10:1-44; 느8:1-18). 많은 사람들은 그가 구약성경의 모든 책을 모아 지금의 형태로 정경화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포로로 잡혀감, 정경 참조. 유다의 귀환 지도 참조(33).    
2009-07-19 02:09:10 | 관리자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아비하일의 딸. 그녀는 하닷사라는 페르시아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고레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내린 이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거기 머물렀으며 그녀는 그리스도의 출생이 있기 500년 전에 티그리스 강 너머에서 출생하였다. 그녀의 부모가 죽자 그녀의 사촌인 모르드개가 그녀를 데려다가 교육을 시켰다. 아하수에로가 왕비 와스디를 폐위시킨 뒤 페르시아 전역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을 뽑을 때에 에스더도 그 안에 뽑혔고 왕의 호의를 입어 왕비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올라 그들을 죽이려고 모함한 하만의 궤계를 물리치고 자신의 백성을 극적으로 구출하였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지금도 페르시아에서 자기 선조들이 구출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림절을 지킨다. 에스더의 남편은 세속 역사에서 크세륵세스(Xerxes) 왕으로 알려져 있다. 부림 참조.  
2009-07-19 02:08:02 | 관리자
  I. 헤브론 근처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통치자. 그는 아브라함과 연합하여 소돔을 멸하고 롯을 잡아간 동방의 군대를 추격하였다(창14:13-14). II. 작고 물이 많던 골짜기. 여기에서 히브리 정탐꾼들은 큰 포도송이를 취하고 그것을 안전하게 모세에게 가져오려고 두 사람이 막대기에 메고 왔다(민13:22-27; 32:9; 신1:24).    
2009-07-19 02:07:07 | 관리자
  부시의 아들 대언자. 그는 주전 598년경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의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가 그발 강가에서 살았다. 니느웨 참조. 그는 30세에 사역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요시야의 통치 때에 하나님과의 언약이 갱신된 후 30년이 되는 때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겔1:1) 이때는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간 뒤 5년이 되는 해이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그에게 와서 조언을 구했으며 그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포로로 잡혀간 뒤 14년이 될 때까지 근 20년 동안 대언하였다. 그는 처음 8년 동안 예레미야와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그는 말세에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최후 귀환과 천년왕국 성전에 대하여 자세하게 대언하였다(겔37-48장). 천년왕국의 성전과 도시 선도 참조(93).    
2009-07-19 02:06:27 | 관리자
  이삭의 맏아들, 야곱의 형(창25:1-34). 그는 맏아들로서 가문의 상속자였으나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았다. 창26:34는 그의 잘못된 결혼에 대하여, 창27:1-46은 그가 아버지의 으뜸가는 복을 놓치고 야곱을 향해 분노를 품는 것에 대하여, 창32:1-32; 33:1-20은 그들이 후에 화해하는 것에 대하여, 창36:1-43은 그의 후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에돔이라고도 불리고 사해의 남쪽 산지에 정착하였으며 아카바 만에 이르는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세력을 과시했다. 그래서 이 지역은 그의 이름을 따라 에돔이라 불리다가 후에 이두매아가 되었다. 에돔, 이두매아 참조.    
2009-07-19 02:05:58 | 관리자
  아시리아의 왕. 그는 산헤립의 뒤를 이어 주전 896년경에 왕이 되었고(왕하19:37; 사37:38) 사마리아가 멸망한 뒤에 그곳으로 식민지 사람들을 보냈다(스4:2). 산헤립 참조.    
2009-07-19 02:05:26 | 관리자
  느부갓네살의 아들로 그의 뒤를 이은 바빌론의 왕. 그는 포로로 잡혀온 유다의 여호야긴 왕을 옥에서 풀어 주고 다른 포로들보다 특별히 대우해 준 일로 기억된다(왕하25:27; 렘52:31-34). 그는 자기 누이의 남편인 네리글리사르의 음모에 의해 왕권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    
2009-07-19 02:05:04 | 관리자
  아브라함 당시 헤브론에 거주하던 헷 족속(창23:1-20). 그는 아브라함에게 막벨라의 굴을 소유 매장지로 팔았는데 그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는 그 지역의 유지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2009-07-19 02:04:38 | 관리자
  갈렙의 두 번째 아내. 그녀는 훌의 어머니였고 에브라다라 불리기도 하였으며(대상2:19) 그녀로부터 에브랏 즉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대상2:50-51; 4:4; 비교 창35:16, 19). 룻의 시아버지인 엘리멜렉은 다윗과 마찬가지로 베들레헴의 에브랏 사람이었다(룻1:2; 4:11; 삼상17:12).    
2009-07-19 02:04:09 | 관리자
  이집트에서 태어난 요셉의 둘째 아들(창41:52). 그는 둘째였지만 자기의 조부 야곱으로부터 장자의 복을 받았고 그로 인해 항상 므낫세보다 뛰어난 위치를 차지했다(창48:8-20; 민2:18-21). 가나안에서 에브라임의 몫은 크고 중앙에, 가장 비옥한 지역에 있었다. 그들은 지중해로부터 요르단에 이르기까지 실로와 세겜을 포함하여 단과 베냐민 지파의 북쪽 지역을 차지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지도 참조(19, 22). 이 지역을 관통하는 산악 지대는 대개 ‘에브라임의 산들’ 혹은 ‘에브라임 산’ 등으로 표현되었고 이것은 남쪽으로 내려가 유다의 몫에까지 이르렀으며 거기서는 ‘유다의 산들’이라 불렸다. 에브라임에 있던 사마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으며 종종 그것 자체가 북 왕국을 지칭하기도 하였다(사11:13; 렘31:6; 50:19). 압살롬이 목숨을 잃은 에브라임의 숲은 요르단의 동쪽 마하나임 근방에 있었다(삼하18:6-8). 신약에서 주님께서 자신의 원수들로부터 몸을 피한 에브라임이라는 마을은(요11:54) 대하13:19에 나오는 에브라인과 동일하며 이곳은 오브라라고도 불렸다(수18:23; 삼상13:17; 참조 삼하13:23). 가나안 정복 이후에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출신의 여호수아와 유다 출신의 갈렙의 후손들이 세력을 발휘하여 전자는 북 왕국을 후자는 남 왕국을 형성하였다.    
2009-07-19 02:03:4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