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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창조과학에 관한 것은 창조과학회에 물어보겠습니다. 근데 이 사이트가 성경 무오류를 주장하는 곳이니 성경에 관한 질문은 해도 되겠지요? 제 독창적 견해는 아니고 전에 다른 블로그에서 봤던 내용입니다. 성경을 문자그대로 믿는다면 창조설을 믿어야 하고 그 창조설은 근대과학과 여러가지 면에서 상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기네요. 그렇게 성경을 문자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한데 왜 막상 창조론자들은 성경을 따르지 않나요?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고린도전서 11:6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거든, 그는 머리를 깎으십시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면, 그는 머리를 가리십시오. -창조론자 여성들은 머리를 다 깎고 있습니까? 아니면 잘 가리고 있습니까? 신명기 14:8 돼지도 여러분에게 부정하오. 돼지는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은 하지 못하니 여러분들은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지고 말고, 그 시체를 만지지도 마시오. -창조론자들은 돼지고기 안먹습니까? 스포츠용품등 돼지가죽 제품은 만지지도 않습니까? 다양한 분야에 쓰이는 젤라틴도 돼지 뼈에서 우려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레위기 19:19 종류가 다른 두 재료를 섞어서 만든 옷을 입지 마라. -창조론자들은 혼방 안입으시나요? 면 100%만 입으시나요? 레위기 15:19 여자가 월경을 할 경우,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할 것이다. 누구든지 그의 몸에 닿는 사람은 저녁때까지 부정할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여자분들 만날때 월경중이신지 꼭 질문하나요? 만약 월경이라고 하면 그 여자분과는 악수도 하지 않나요? 레위기 20:27 무당이나 점쟁이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모두 죽여라. 죽이되 돌로 쳐서 죽여라. -이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까? 왜 안죽이나요? 우리 동네에도 많던데 레위기 11:12 물에 사는 것 가운데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동물은 피하여라. -창조론자들은 문어나 새우, 조개를 절대로 먹지 않습니까? 레위기 19:27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말며 -개인적으로 많은 창조론자들을 봐왔지만 다듬지 않은 수염을 길게 기른 분은 단 한명도 보지 못했네요. 전도서 9:8 언제나 흰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머리에는 기름을 발라라 -창조과학회 김명현씨나 이웅상씨 같은 분들은 검은양복 입고 잘도 강의하시던데요. 레위기 19:23~25 ...삼 년 동안은 과일을 따먹지 말고 기다려라. ... 그러다가 오 년째 되는 해에 너희는 그 나무의 과일을 먹어라. -창조론자들은 마트에서 과일 사면서 과일이 오년 지난 나무에서 나온건지 확인하고 드시나요? 아직 그런분 한번도 못봤는데요. 제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이래서입니다. 사실 그분들은 성경을 문자그대로 믿고 실천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따르기 편한 것들만 몇 개 골라서 그것만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지, 자기들이 믿고 따르기 힘든 나머지 성경 말씀들은 전부 철저하게 무시하는것 아닌가요? 제 생각에는 성경은 그렇게 쉬운 책이 아닙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정확한 해답을 가지지 못한것 아닙니까? 저도 뭐가 옳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따르면 된다는 근본주의적 주장은 지키지도 못하고 지킬수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근거한 창조설은 사이비 과학적인 주장이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나 종교를 상세하게 논할 지식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학도의 입장에서 사이비과학이 뭔지는 제법 확실하게 알기 때문에 사이비과학에나 의존할수 밖에 없는 어떤 종파가 있다면 그게 틀렸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주장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9-07-16 10:31:49 | 나동민
과학은 계속 변하지만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 개정에 대한 시각이 저희와 다른 관점에서 말씀하신 것 같으신데요 성경변개의 역사를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본 사이트에 관련자료가 있습니다. 저도 기계공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학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질학, 생물학관련해서는 선생님에 비해 저는 형편없을 정도로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창조과학회 활동하시는 분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들이시고 이 분들이 각자 자기의 전문 분야에서 내놓으시는 결과를 볼 때에 저는 이 분들의 주장을 신뢰합니다. 뭐 이것을 가지고 맹목적이라고 하신다면 어쩔수 없구요. 한 사람이 물리학,생물학,지질학,의학,역사학등에 모두 정통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본 사이트에서 이런 것들을 논하기 보다는 창조과학회 사이트에 가셔서 지질학,생물학관련해서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인 질문(내가 가진 자료에 의하면 이 데이터에 의해서 지구는 몇십억년전에 생성되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기서 자료는 그 출처가 아주 구체적일 수록 답을 얻기가 좋을 것입니다) 을 하시면 전문가들이 자료 및 의견을 주실 것입니다. 아래 글은 창조과학회에서 복사한 자료입니다. "최근에 창조과학자들은 그러한 증거들을 더 많이 밝혀내기 위해서 'RATE 프로젝트'라는 실험적, 이론적,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 시계들은 같은 시료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결과들을 나타내었고, 진화론자들이 수억 수천만 년 되었다고 주장하는 다이아몬드와 석탄들에서 단지 수천 년에 해당하는 방사성탄소(carbon-14)가 남아있었으며, 방사성 붕괴율은 과거 한때 엄청나게 가속 붕괴되어졌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수십억 년의 연대가 수천 년으로 축소되어질 수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경의 기록을 확증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답변 받으시는 것이 있으시면 여기에 공유해주셔도 좋을듯 합니다. 성경은 신화도 아니고 과학교과서도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나중에 성경의 바울같은 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009-07-16 09:56:07 | 김학준
나동민 형제님께 이곳의 내용을 믿으라고 강요한적 없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이곳의 내용을 믿고 안믿고는 님의 자유의지 입니다. 모든 절대적 기준을 자신에게 두고 남을 판단하는 님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님께서 생각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맹목적인 믿음(?)은 형제님 자기자신을 두고 하는말 같습니다. 바로 세상지식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사람의 말과 글에 인격이 나타나는 법인데 다짜고짜 게시판에 사기라는등의 감정섞인 글들을 보며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군요 님같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불법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시편 53:1
2009-07-16 09:33:54 | 송재근
  살로메의 남편. 그는 요한과 야고보의 아버지로서 갈릴리 바다의 서쪽에서 어부로 지냈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의 두 아들을 부를 때에 곧 그들을 가게 하였다(막1:19-20). 그의 아내는 그리스도에게 시중을 들며 자기 재물로 그분을 섬겼다. 살로메 참조. 그의 아들 요한은 개인적으로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으며 우리 주님은 그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셨다(요18:15-16; 19:26).    
2009-07-16 03:03:09 | 관리자
  I. 라아마의 아들(창10:7). 그의 후손은 페르시안 만의 머리 부분에 산 것으로 추정된다. 구스와 라아마 참조. II. 욕단의 아들(창10:28). III.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의 아들인 욕산의 아들(창25:3). 그는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IV. 압살롬의 죽음 이후에 이스라엘에서 반역을 일으켜 다윗을 괴롭게 한 베냐민 사람. 그는 레바논 남단 부근의 아벨벧마아가에서 포위를 당했고 그곳의 거주민들이 그의 목을 베었다(삼하20:1-26).    
2009-07-16 03:02:10 | 관리자
  세금 거두는 사람. 로마 정부에는 두 부류의 세금 거두는 사람이 있었다. 한 부류는 자기 밑에 부관들을 두고 제국의 세금을 거두어들여 황제에게 보고하는 사람들로 정부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세력이 막강하였다. 그러나 그 밑에서 일하는 부관들 즉 유대인들이 경멸한 세리들은 말 그대로 강도와 소매치기 수준의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광야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은 곰과 사자이지만 도시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은 세리와 기생충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극도로 미워하였고 특별히 갈릴리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은 로마의 세리들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였으며 세금 바치는 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했고(신17:15) 자기 민족 중에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교도로 취급하였다(마18:17). 그래서 세리들은 성전이나 회당에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공중 앞에서 기도하는 것과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도 거부되었다. 우리 주 예수님 당시에 유대에는 세리가 많이 있었다. 삭개오는 세리들의 우두머리로 불리므로 아마도 부관들을 거느린 주요 세금 징수자였을 것이다(눅19:2). 그러나 마태는 부관 노릇을 하는 세리였다(눅5:27). 유대인들은 우리 주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친구이며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였지만(눅7:34) 우리 주님은 그들의 불신과 위선을 아시고 세리들과 창녀들이 그들보다 먼저 하늘의 왕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마21:31). 눅18:10-14에 나오는 세리와 바리새인의 비유에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2009-07-16 02:59:35 | 관리자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 때에 하만의 사악한 계략에서 유대인들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념하기 위해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만든 명절. 이 이름은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한 날을 결정하기 위해 하만의 앞에서 제비를 뽑은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하만이 제비를 신뢰한 것은 결국 유대인들에게 시간을 주어 그의 계략을 틀어 하만 자신을 대적하게 만들었다(잠16:33; 에3:7; 9:20-32). 이 명절에는 먼저 하루 동안 금식하고 회당에서 에스더기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선물을 하고 구제나 기도를 하였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3월경에 이 명절을 지킨다.    
2009-07-16 02:58:15 | 관리자
  I.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개개인을 구원으로 부르시는 것(롬8:28-30; 살전2:12). 구원의 부르심에는 구원받은 성도가 다른 이를 섬기며 사는 것도 포함된다(고전7:20). II. 기도를 통해 도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것(창4:26).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의 간구를 들어 주시는 긍휼 많으신 분이다. III. 이름으로 사람을 부르는 것(창17:5; 눅1:13).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이름을 부를 권리가 있다. IV. 하나님의 일을 위해 특별히 부르시는 것. 아브라함(창12:1-13), 모세(출3:4), 이사야(사6:1-13), 예레미야(렘1:1-12), 열두 제자(마4:18-22, 10:1-4), 바울(행9:1-19) 등이 이 같은 소명을 받았다.    
2009-07-16 02:57:27 | 관리자
  이것은 주로 가죽으로 만든 부대를 의미했다. 고대 사람들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잘 다듬은 뒤 다리가 있던 부분을 꿰매서 부대로 사용했으며 여기서 목 부분은 부대에 액체를 넣거나 빼는 데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쉽게 이런 부대를 메고 다녔다(창21:14, 수9:4, 13; 시119:83; 렘13:12 비교). 가죽 참조.   과일 즙을 가죽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크게 불어났으며 특히 포도즙의 경우에는 익으면서 발효가 되므로 크게 부풀어 올랐으므로 가끔씩 자루를 열고 공기를 빼지 않으면 자루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루에 흠이 있으면 그런 곳이 터지면서 포도즙이 새어 나갔다. 그러므로 새 포도즙을 새 부대에 넣은 것은 포도즙을 보관하는 일에 매우 필요했다. 왜냐하면 새 부대라야 강해서 이같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감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포도즙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낡은 부대는 이미 발효가 된 오래된 포도주를 넣는 데 적합했다(마9:17; 눅5:38; 욥32:19). 지금도 이런 가죽부대는 동방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포도즙 창고에 보관하기 위해 소나 낙타의 가죽으로 만든다. 한편 고대 사람들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있어서 여러 형태의 작은 그릇이나 통을 만들었고 또 돌이나 유리, 진흙, 설화석고 등을 이용해서 통이나 그릇들도 만들었다(렘19:1, 10-11). 포도즙, 눈물 참조.    
2009-07-16 02:56:48 | 관리자
  고린도의 동쪽 항구인 겐그레아에 거하던 크리스천 여인. 그녀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전달하였으며 거기서 바울은 그녀를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그녀는 교회의 종으로서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과 또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녀가 자기와 여러 사람의 후원자가 되었다고 기록한다(롬16:1-2). 어떤 이들은 그녀가 여자 집사였다고 주장하지만 여자는 결코 교회의 집사나 목사(혹은 장로)가 될 수 없다(딤전3:2; 12).    
2009-07-16 02:55:46 | 관리자
  사람이나 물건 혹은 지역을 거룩한 목적으로 쓰기 위해 아주 바치는 것. 그래서 성막과 첫째 및 둘째 성전은 하나님께 봉헌되었다(출40:1-38; 왕상8:1-66; 스6:1-22). 유대인들은 또한 성벽이나 벽 혹은 집을 봉헌하기도 했다(신20:5; 느12:27). 성전 봉헌절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이 파괴시킨 성전을 다시 복구하고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연례 절기이다(요10:22). 성전, 마카비 참조.    
2009-07-16 02:55:14 | 관리자
  성경에는 봉인과 관련된 구절이 많다. 봉인은 쉽게 말해 도장을 뜻하며 도장을 포함하는 인장 반지는 인류 역사 초기부터 쓰였고 여러 종류가 있었다. 어떤 것은 서명하는 사람 혹은 소유주의 이름을 적는 것 대신으로 쓰였으며 또 문서의 경우 그것을 기록한 사람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이것들이 사용되었다. 개인의 봉인은 주로 손가락의 반지나 손목의 팔찌 등이었다(렘32:10; 눅15:22; 약2:2). 반지 참조. 총독은 아주 안전하게 봉인을 가지고 다녔고 왕은 사적인 용도로 또 공적인 용도로 봉인을 사용하였는데 전자는 가지고 다녔으며 후자는 국가의 관리가 보관하였다(삼하1:10). 왕의 봉인이 찍힌 문서는 정부의 인가를 뜻하였다(왕상21:8). 또한 잠정적으로 봉인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권위의 부여를 뜻하였다(에3:10, 12; 8:2). 열기로 인하여 밀랍 대신 진흙에 도장을 각인하기도 하였다(욥38:14).   한편 봉인은 소유와 보존의 상징이었다(신32:34; 욥9:7; 14:17). 문을 열거나 혹은 그릇을 비밀리에 여는 것을 막기 위해 봉인을 하기도 하였고(아4:12; 단6:17; 마27:66) 또 책이나 상자나 두루마리 끈에도 진흙에 봉인을 찍어 붙여서 그것이 남용되는 것을 막았다(사8:16; 계5:1). 성령님도 그리스도인을 봉인하는데 이는 곧 그들이 자기 것임을 보여 주는 증표로서 그들에게 자신의 형상을 각인하는 것을 말하며 이로써 모든 악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엡1:13-14; 4:30).  
2009-07-16 02:54:48 | 관리자
  이 말은 양식 혹은 모방을 뜻하며 우리말 성경에서는 많은 경우 본보기 혹은 본으로 번역되었다(요13:15; 고전10:6, 11; 히8:5; 딤전4:12). Ensample과 example은 같은 뜻이지만 전자는 대개 좋은 본보기를 지칭한다.    
2009-07-16 02:53:59 | 관리자
  소아시아의 북동부 지방. 이곳에는 왕과 자치 정부가 있었으나 로마의 폼페이에 의해 정복되어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였고 그들은 종종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행2:9). 아굴라는 본도 출신이었고(행18:2) 초기부터 복음이 이곳에 선포되었다(벧전1:1).    
2009-07-16 02:53:31 | 관리자
  글이나 말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 초기에는 지금의 선교사들과 비슷하게 한 교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아무데나 가서 복음을 선포한 복음 전도자들이 있었으며 빌립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행21:8; 엡4:11).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을 견디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하라고 권하는데(딤후4:5) 그 이유는 그 일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9-07-16 02:52:59 | 관리자
  복된 소식.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요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신 계시요 경륜이다. 성경은 ‘왕국의 복음’(마24:14),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20:24), ‘그리스도의 복음’, ‘화평의 복음’(롬1:16; 10:15) 등을 제시한다. 한편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광스런 복음이기도 한데(딤전1:11) 우리 주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이 복음이 우리에게 선포되었다. 우리 주님의 삶과 기적과 죽음과 부활과 교리 등을 자세히 보여 주는 책들을 보통 복음서라고 하며 여기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복음서가 있다. 모든 사람이 이것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복음의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이것들이 예수님의 교리와 행적을 담은 표준 책으로 받아들였다. 정경 참조. 성경에는 몇 가지 복음이 나와 있다.   I. 왕국의 복음. 마24:14에 나오는 이 복음은 눅1:32-33에 예언된 것으로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통치하실 지상 왕국(王國)을 하나님께서 건설하려 하신다는 것을 알리는 좋은 소식이다. 성경에서 이 복음은 두 번 선포되었다. 처음에 침례자 요한의 사역과 함께 왕국의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했고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이 복음을 선포했지만 유대인들이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교회가 공중으로 들려진 이후에 이 왕국의 복음은 다시 선포될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마24:14에 있는 예언 즉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세상의 끝)이 오리라.”는 말씀의 성취이다. 이 말씀은 현재 각 민족에게 전파되고 있는 은혜의 복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 전파되고 있는 것은 구원의 복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지 하늘의 왕국의 복음이 아니다. 하늘의 왕국의 복음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증거를 위한 것으로 왕국을 건설할 때가 임박했음을 통보하는 것이다. 하늘의 왕국의 복음은 7년 환난기에 선두주자 엘리야와(말4:5-6)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전할 것을 위임받은 다른 사람들 - 계시록 7장과 14장의 십사만 사천 명 - 이 선포할 것이며 그것의 목적 중 하나는 온 땅에 흩어진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다시 모으는 것이다. 하늘의 왕국 참조. II.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행20:24에 나오는 이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사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좋은 소식이다. 이 복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롬1:1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 복음의 원천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요3:16). 이 복음의 성격은 은혜이고(행20:24)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롬1:16; 고후10:14)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또 이 복음은 화평의 복음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우리 혼에 화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엡6:15). 한편 이것은 영광스런 복음이라고도 하는데(고후4:4; 딤전1:11) 이 복음 역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서 특별히 영광 중에 계시고 영화롭게 되셨으며 많은 아들들에게 영광을 가져다주실 주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는 복음이다(히2:10). 이 복음은 그분의 재림과 관계가 있으며 특별히 그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종교와 복음 선도 참조(86). III. 영존하는 복음. 계14:6에 나오는 이 복음은 계시록에서 일곱 대접의 심판이 있기 바로 전에 한 천사가 선포하는 복음이다. 이것은 천사에게 맡겨진 유일한 복음으로 하늘의 왕국의 복음도, 은혜의 복음도 아니다. 이 복음의 목적은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다(계14:7). 이 복음은 7년 환난기의 심판의 시간을 통과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 신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터인데 그 까닭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의 심판과 멸망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고통이 곧 끝날 것을 이 복음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사람들에게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께 경배할 것을 요구한다. 족장들과 대언자들이 에덴동산 이후로부터 계속해서 이 복음을 선포해 왔다. 이 복음은 영생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모두 구원한다는 의미에서의 영원한 복음이 아니다. 또한 이 복음의 핵심은 “회개하라.” 혹은 “이것을 하라.” 또는 “저것을 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단지 이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각이 이르렀으니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경배하라는 것이다. IV. 다른 복음. 갈1:6-12; 고후11:4는 위의 복음들 이외의 다른 형태의 복음이 있음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참된 복음을 왜곡시킨 것으로 여러 가지 미혹하는 형태를 취하며 주로 믿음만으로 구원에 이르기에 부족하고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거짓 복음이다(골2:18-23; 히6:2). 그러나 이 가르침은 비성경적인 것으로 사도 바울은 갈1:8-9에서 이것을 가르치는 설교자들과 교사들을 강하게 저주하였다.    
2009-07-16 02:52:2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