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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형제님!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제이씨 페니, 콜게이트, 록펠러, 링컨 등은 김삼환, 김홍도, 조용기, 곽선희 목사 등의 단골 메뉴입니다. 참으로 우스운 사라들 이야긴데 다들 거기에 넘어지네요. 돈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오순절 은사주의 번영 신학의 복음이 아닙니다.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2010-06-01 15:17:08 | 관리자
요즘 많은 교회들이 은사주의 금가루 쓰러트림 방언 병고침... 거기다 영서까지 또 영서를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또 성경적이지도 않게 생각되는 현상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고 이것들을 경험해야 뭔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성도들을 이끌어 가는 것 같아 많은 회의를 느끼고 거기에 따라갈 수 없는 내 자신을 보고 많이 괴로웠습니다.우연히 아래와 같은 글을 보았는데 바른성경을 보았다면 확실한 것을 <신령한 은사>라고 번역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좀 어렵게 설명한 감이 있어 추가로 흠정역성경을 추가시켜 보았습니다.여기 저기서 바른 성경관으로 주장을 펴고있는 많은 목회자를 볼 수 있는데 이런 분들의 주장은 크게 부각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한번 은사주의로 흐른 교회는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든것 같습니다.어제도 어떤 형제들을 만나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은사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이야기 하였더니 그걸 사모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간절히 사모해야 된다고... 그러면서 방언과 영서 이야기를 하는데... 도데체 영서는 뭔지... 뭐 이상한 것을 만드는 천제적인 소질은 어디서 오는건지...그래서 영서에 관해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무슨 어린아이 낙서?  아니면 뭔지 모르는 꼬부랑 낙서를 쓰고 해석한다고 하는데...참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은사와 표적만을 강조하는 복술(卜術)의 목회자들 만능의 열쇠인 무적의 축복권(6)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복음사역을 통해 경험하였던 가장 놀라운 사건은 ‘오랜지 베일의 패밀리 크리스천 센터 목사 리치 올리버(Orangeval!!e, Family Christian Center, Pastor Rich Oliver)’를 선두로 한국의 일부 목사들도 이를 답습해 흉내를 내면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속임수로 행하고 있는 변화된 금이빨을 보거나 금가루가 날리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罪人)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 의인(義人)들이 되는 놀라운 사건들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롬 1:11) (롬 1:11, 개정)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11, 킹흠정)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내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   하지만 비단 다른 나라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부 은사주의 목사(기존 정통교회 목사들도 일부 포함)들까지도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성경적인 신령한 은사와 표적을 비성경적으로 왜곡, 변질시켜 성경적으로 무지한 교인들 앞에서 감탄을 자아내게 하며,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신비한 기적적 현상으로 각인시키면서 현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금이빨 만들기’나 ‘금가루 날리기’도 그 옛날 사도 바울도 로마 교인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도 이러한 신령한 은사 중, 한 가지였다고 거짓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로 직접 가서 하나님의 능력인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려고 하였지만, 자기의 소원대로 로마를 목적으로 한 전도 여행이 빨리 성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9~15)   (롬 1:9, 킹흠정) 내가 그분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 되시거니와 내가 기도할 때에 언제나 너희에 관하여 끊임없이 말하며 10 어찌하든지 이제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탄한 여정을 얻어 너희에게 나아가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11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내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 12 이것은 곧 너희와 나 사이의 공통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와 함께 위로를 받고자 함이라. 13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 14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15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분량대로 나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인 로마서에는 그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신령한 은사 즉, 신기한 선물이 반드시 언급이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로마서를 읽어 보면, 로마서 그 어디에도 오늘날의 신비한 기적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금이빨 만들기나, 금가루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언급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신기한 선물이란 바로 오늘날 복술적(卜術的)인 은사주의자의 목사들이 주장하는 신기한 기적적 현상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일평생 동안 경험하였던 가장 놀라운 사건은 변화된 금이빨을 보거나 금가루가 날리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그동안 죄인들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전했던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의인들이 되는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던 사도 바울까지도 자기 자신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죄악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절망하며 탄식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러한 죄악으로 물들어 있는 자신의 몸에서 어떻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철저하게 고민을 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일평생동안 배워왔던 율법도 자기 자신에게 그 어떠한 해답도 주지를 못했으며, 그 어떠한 해결책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밤잠을 설치며 외웠던 율법과 그토록 헌신했던 율법에의 삶은 자신이 죽을 죄인임을 스스로 자책하며 고발하여 왔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그는 이생의 절망 한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뒤늦게나마 십자가의 의(義)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의를 통하여 생명의 하나님과 연합된 자기 자신이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 위해서는 연약한 자기 자신의 죄성을 극복하고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해 대해서는 다시 사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로 고민을 하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 생명을 통한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육신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의(義)의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1~2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 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롬 8:3, 킹흠정)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셨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느니라. 4 이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죄악 가운데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값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새 생명 가운데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롬 8:4) 삶의 비밀을 새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로서 그도 자기 자신이 연약하여 율법으로 할 수 없었던 위대한 ‘영화(榮華)로의 변화가 새 생명의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 육신의 땅에 살고 있는 자신을 죄의 유혹으로부터 건져내어지며, 종국에는 자기 자신의 죽을 몸조차 살려 주실 것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당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로마 교인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주님의 말씀인 새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먹여 그들을 견고케 하고자 했던 신령한 은사, 즉 신기한 선물은 먹어도 다시 배고픔을 느끼는 돌로 만든 떡의 기적이 아니라, 영생의 복음이었으며, 바로 이러한 영생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새 생명의 성령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의 금은보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이라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선물을 받아서 이미 죽어야 할 죄인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이라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선물을 받아서 죽을 죄인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값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새 생명 가운데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러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이 성도들이 사도 바울과 같은 모습을 닮아야 하는 미래의 모습이란, 세상적인 모습과 같은 삶을 꿈꾸어야 하는 미래의 자화상인 카네기나 록펠러, 그리고 에디슨이 아니라, 온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카네기와 록펠러를 닮기 위해서는 십일조만 철저히 해도 되고, 에디슨을 닮기 위해서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서 창의적인 사고와 마인드를 갖추면 되겠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는 카네기나 록펠러의 십일조 정도가 아니라, 에디슨의 근면한 노력과 집중력 정도가 아니라, 부모와 처자 그리고 소유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육신적인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7)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그러므로 카네기와 록펠러를 닮기 위한 신앙의 길과 온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한 신앙의 길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이 육신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대부분 그런 길을 가기를 원하는 카네기와 록펠러를 닮은 신앙의 길과, 온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한 신앙의 길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카네기와 록펠러를 닮기 위한 신앙의 길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평탄하고 넓은 길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한 온전한 신앙의 길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좁고 협착한 길이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복술적인 은사주의 목사들은 자기부인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필생의 신앙의 경주(競走)를 소홀히 여기고 회피한 채, 하나님의 신기한 금이빨을 만드는 기적이나, 금가루를 흩날리는 눈속임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오도하여 수많은 성도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체험이라는 명분의 거짓된 간증을 통하여 잘못된 신앙을 옹호케 하여 헛된 기적적 체험을 성도들에게 주입시킴으로서 자신들의 능력과 열정을 쏟아 붇는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이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4:27)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도다.”(딤전 6:11~12)   - 윤요셉 / 벧엘교회 목사                               (뉴스앤조이에서 베스트 글에 뽑힌 내용입니다.)추가하였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1:57: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01 13:36:07 | 허광무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과 주의 날(Lord's day)을 구분 한다면 앞에는 그리스도의날을 의미하는 주일(주일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되는데 자꾸 이런 표현을 써서 두가지의 개념을 섞어서 흐리는 경우가 있더군요 특히 네이버 백과사전 같은 세상적 지식들)이고 뒤에는 일반적인 주의 첫날 즉 오늘날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일요일로써의 주일(主日)입니다. 근데 백과사전 뒤져보면 앞의 것을 주일의 일반적인 개념으로 정의하는 경우가 있어서 제 글에 오해가 있을까봐 부연설명 답니다. 기존 교회들이 너무 안식일이나 주일성수 같은 율법적 색채가 진하게 베어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색채를 줄이고자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것에 특별히 큰 의미를 두지 않도록(성탄절, 부활절 마냥 어떠한 날에 의미 두는 건 성경적이지 않기에) 가장 모이기 쉬운날 모여서 예배드리는 거라 설명한 건데 잘못 생각하면 주일 그 자체를 부정하는 글로 보일수 있을까봐 노파심에 댓글 답니다.그럼 주안에 승리하세요~!!
2010-05-30 21:52:57 | 변경진
유대인의 시간으로는 6시가 정오(12시)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루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6시, 해질 무렵에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는 창세기 말씀처럼 말이지요. 요한복음의 시간이 로마식으로 적용된다는 얘기는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받는 시점에 대한 기록 때문에 나온 것으로 압니다(요 19:14). 요 19:14의 6시를 정오로 보면 이미 십자가에 달리셨을 시간이고, 타 복음서에는 재판이 아침이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이곳만은 로마 시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로마시간이 적용됐다는 것은 근거 없는 것입니다.
2010-05-30 14:49:49 | 김재욱
요한복음에 6시에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수가성의 여인을 만났다. 라고 되어있는데 왜? 보통 이야기 할때에 정오에, 아무도 물길러오지 않는 한낮이라고 하는지요? 어떤 곳에서 보니 요한복음의 시간계산은 로마식으로 되어 6시는 오후 6시다라고 하는데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1:57: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8:22:42 성경교리에서 이동 됨]
2010-05-30 11:00:47 | 양동현
답변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오랜동안 의문을 가지고 찜찜해하던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성경을 좀 더 집중해서 봐야할것 같습니다. 모두다 읽어보았던 구절들이지만 의문을 풀 수 있도록 서로서로 연결시키진 못 했네요.^^;;
2010-05-30 08:23:35 | 김대영
침례교라고 하는 것입니까? 저는 재세례파라고 생각합니다. 단일화된 교파는 아니지만 가장 초기 교회에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위에서 예로 언급된 교파들 중에는 그래도 침례교가 제일 나아 보이긴 합니다.
2010-05-30 00:12:06 | 금운호
다녀보면... 이런 글에 대단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글쓴이의 본의와 상관없이 굳이 뭔가를 알리려 애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자신의 관점이 대단히 옳은 것처럼 .. 당신이 잘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말이죠.. 사실은 상대적인 것인데도 말이죠. 항상 그렇습니다. 어디나 예외가 없는 것 같더군요. 개인적으로 저 또한 이승만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0-05-29 23:05:03 | 박종철
교회사 44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2010-05-28 22:47:46 | 관리자
교회사 43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2010-05-28 22:46:12 | 관리자
저는 "필라델피아" 영화를 보고 동성애도 이젠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의 일부로 알았고 "브로큰백 마운틴"을 보면서 "정말 세상이 막장까지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의 "이루어질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 이라고 미화시킨 동성애 그들의 말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끔찍한 일입니다.
2010-05-28 17:12:50 | 송재근
여기 올라온 글은 단편적이 이야기 인데 너무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았으면 하네요. 물론 저도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만, 사람에게 공과는 분명있는 거니까요 그러나 여기 올라온 글에 그 사람의 모든 걸 판단하거나 아니면 부정적인 면을 덮어서 생각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김용묵형제님이 여기에 글 쓰신 이유가 저는 분명하다고 본다면 어떠한 의도가 있는 글은 아니라고 보니까요. 우리 모두 때론 객관적으로 나의 생각보단 사물을 보는 것도 좋을 때가 있다 생각합니다. 전 고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더 싫어하는 인물이지만 이글에서 어떠한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8 11:30:48 | 변경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로와 과실에 대한 평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그를 평가할 것인가, 한 크리스천으로서 그를 볼 것인가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그 동안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독재자"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글이 이승만이라는 정치인을 높이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다른 측면을 조명하는 글이기에 제게는 별다른 거부감이 없습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우리 주님께서 종합적으로 판단하시겠지요.
2010-05-28 11:28:16 | 김문수
이승만 대통령의 공 과는 누구나 인정하는 바 입니다. 저도 전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많이 있었는데 나이를 들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더 들어감니다. 커밍아웃? 요즘 정말 부끄럽고 나타낼 수 없는 분들이 커밍아웃하여 박수 받고 용기있는 일이다 칭찬받기도하고 그 후로는 당당하게 대중앞에 나서는 것을 볼때면 그걸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 지기도 합니다. 그걸 본 청소년들은 그런걸 당연한 일로 여길거고....................
2010-05-28 10:38:30 | 허광무
안식일(한 주週의 마지막 날)은 이방인과 상관 없는 날이고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때문에 그 이상 더 지킬 이유도 없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토요일 저녁시간 때(6시경) 유대력으로 한 주週의 첫째날(창조의 첫째날과 같은 개념) 입니다. 오늘날의 시간 개념으로 일요일에 부활 하신게 아닌 토요일 오후6시경이라는 걸 아셔야합니다. 주主님이 일요일에 부활해서 일요일에 주일主日 성수해야 한다는 개념은 잘못된겁니다. 다만 유대시간으로 토요일 오후 6시경 부터는 한주週의 첫째날(주週의 첫날)이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그날을 주일(主日) 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근데 보통 주의날(主日)로 이해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개념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예배드리는거는 주일(主日)이라는 개념보다는 그날이 모이는데 쉽기 때문입니다. 원래 카톨릭에서 태양신에게 일요일에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간인 11~12시 사이에 우상숭배하는 풍습이 몰래 들어온것이 훗날 개신교에서도 그냥 받아들인데서 유래한 것일뿐 아무 의미 없는 것이죠. 주일성수도 안식일도 아닌 일요일이 다른 어떤 날보다 모이기 쉽기때문에 그날 예배를 드리는 것일뿐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안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새 날이 시작되는 저녁에 모여서 만찬과 말씀교제를 한 것을 본다면 매일 모이면 좋겠으나 그게 어려우니 공식적으로 쉬는 날인 일요일에 모이는 것일뿐입니다. 다만 주週의 첫날이라는 개념으로 볼때 주主의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날이 일요일이 아니라 유대력의 주週의 첫날이니 시간개념이 잘못되면 엉뚱하게 되어버리죠 분명 부활은 일요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외 자세한것은 여기 사이트에 도움되는 글을 참고하시고 위에 형제님들이 쓰신 내용을 이해하신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8 10:35:43 | 변경진
그래서 성경에 약 3:1 같은 구절이 있는 걸겁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더 큰 정죄를 받을 줄 아노라."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정교 일치주의자가 당연히 아닙니다. 제가 무슨 "크리스천은 무조건 크리스천 정치인에게 표 줘야 된다. 우리나라 국교를 기독교로, 목사를 공무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같은 주장을 하는 걸로 받아들이는 분이 제발 없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천은 정치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도 아닙니다. 저는 여기에 그렇게 자주 글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휴게실...까지도 아니구요. 진짜 제 개인 공간에다가는 이것보다 훨씬 더 덕후스러운 분야를 다루는 글을 훨씬 더 과격한-_-;; 표현도 가미해서 쓰고 지냅니다. 아무쪼록 형제님의 첨언을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5-28 10:08:48 | 김용묵
이승만 전 대통령을 생각할 때 마다 믿음의 사람의로서 시민 정부의 중책을 맡는 것이 그리 복된 일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세상의 권세를 얻게 된 자가 감당해야 할 시험과 유혹이 얼마나 예리하고 컸으면 다윗 같은 신실한 대언자도 솔로몬 같은 지혜자도 모두 때로 범죄하고 그릇된 길로 갔겠습니까. 솔직히 저도 과거 친구들과 역사 얘길 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허나 골방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격동의 시대 그 자리에서 이 전대통령이 겪었을 갈등과 고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위 글은 부족한 제가 봤을때는 정치적인 의견은 거의 없이 이승만 전대통령과 프란체스카 도나 여사의 만남을 신앙적 관점에서 잔잔하게 서술한 글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사실 글 자체로만 보고 지나치면 좋은데 댓글로 쟁점이 점화되다 보니 정치적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네요. 아궁이의 불은 음식도 조리하고 방 안을 따뜻하게도 하지만 아궁이 밖으로 나와 여기 저기 불이 번지면 온 집을 다 태울 만큼 재앙의 씨앗이 됩니다. 똑같은 불인데 말이지요. 많이 아둔한 사람이지만 제 생각엔 글과 의견도 때론 너무 확대해서 논란을 일으키기보다 그 자체로만 보는 것이 좋겠다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만 더 첨언 하자면 평소 김용묵 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마치 keepbible게시판의 휴게실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신앙과 성서의 심도깊은 고민들 속에서 때론 김 형제님의 글처럼 다양한 세상의 일들을 신앙적 관점에서 생각하며 또 다른 교훈을 얻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 했었습니다. 관현악단에서 현악기만 진짜 관현악이다 하고 관악기나 타악기는 물러가라고 하면 어떻게 관현악단이 완성될까요? 물론 전자바이올린 같은 놈이 은근슬쩍 들어오는 것은 철저히 걸러내야 할 것입니다. 김용묵 형제님께서 성서적 분리주의의 소중한 전통 아래서 심사숙고하여 글을 올리신다면 앞으로도 이 사이트에 소중한 유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귀한 글과 댓글들 잘 읽었습니다!
2010-05-28 09:39:10 | 김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