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희 출판사에서는 2023년 12월 1일,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총 428쪽)을 출간하였습니다.
정가: 18,000원
구매: 생명의 말씀사(곧 책이 등록되면 링크를 올릴 것임).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
첵 소개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요, 연장이요, 음식이며, 또한 헌법이요, 매뉴얼이다. 성도는 진리인 말씀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성령님의 권능으로 선포되어야 할 살아 있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모든 말씀(단어)을 우리에게 오류 없이 주셨고 또한 자신이 친히 영원토록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총체적인 축자 영감(verbal inspiration)과 무오성 그리고 섭리로 그것을 보존하시며 교회와 성도들을 그 말씀으로 세우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은 우리의 확신이요 우리가 누릴 커다란 특권이며 지켜야 할 과업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아니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이 있는가? 그것은 있어야만 하고 또 그것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그런데 축자 영감을 믿어도 섭리로 보존되어 온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 많다. 완전한 말씀이 없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심지어 신학교와 교회도 그렇게 믿고 가르쳐 왔다. 학자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여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 즉“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을 없어 지지 아니하리라.”(마24:35)라는 말씀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대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땅 어디엔가 그분의 완전한 말씀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그 말씀을 찾았다고 믿는다. 영어 KJV를 믿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 말씀을 자기가 찾았다고 믿는다. 반면에 적지 않은 수의 학자들은 이 땅에 현재 완전한 말씀은 없고 다만 자기들이 그것을 찾아가는 중이고 자기들이 그것을 편집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나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다. “현재 이 세상에는 완전한 말씀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을 좋은 길로 안내하리라고 믿는다.
책 내용
추천사 6
감수자의 글 8
역자 서문 13
저자 서문 16
일러두기 18
제1장 NIV 성경에 있는 심각한 삭제들 20
제2장 역사적 배경 100
제3장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부패한 그리스어 신약 성경을 공개적으로 수용하다 105
제4장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믿었던 거짓 교리들을 생각하고 당신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109
제5장 영국 성경 개정 위원회(1871-1881)의 이단 교리, 속임수, 잘못된 방법과 황당한 일 120
제6장 왜 현대 역본의 편집자 6명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었는가? 129
제7장 현대 역본들의 나쁜 영향들 135
제8장 참 신약 성경 본문을 결정하기 위한 7가지 시험 139
제9장 NKJV(뉴킹제임스역)의 오류들 145
제10장 신약 성경 본문 역사 165
제11장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16:9-20) 180
제12장 현존하는 사본 자료들 187
제13장 NIV의 또 다른 238개 삭제들 212
제14장 ‘절충주의’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264
제15장 호르트의 다수 본문 거부에 대한 세 가지 잘못된 이유 267
제16장 고대 사본들은 대개 다수 본문(KJV)을 가지고 있다 275
제17장 킹제임스 성경의 역사 293
제18장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의 부패 299
제19장 NASB가 삭제했지만 나중에 NIV가 교정하면서 KJV와의 일치를 이룬 구절들 306
제20장 NIV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삭제하고 있다 313
제21장 현대 역본 사용자들에게 드리는 질문들 321
제22장 “현대인을 위한 좋은 소식” 역본의 오류들 328
제23장 리빙 바이블의 오류들 341
제24장 NIV에 나타나는 101개의 고어들 344
제25장 NIV는 30가지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한다 347
제26장 KJV는 네 번 개정되었는가? 357
제27장 왜 우리는 연합성서공회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을 거부하는가? 361
제28장 NIV가 삭제한 16구절을 본문에 포함해야 하는 증거 377
제29장 요약과 결론 391
부록 1 용어 설명 407
부록 2 영어 성경과 사본 이름 421
부록 3 외경 422
추천사 중에서(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
성경은 어느 사본, 어느 역본에, 어떤 신학적 입장에서 번역했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제네바 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KJV)은 그 당시 종교 개혁의 정신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또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정신 위에 공인(共認) 본문(TR)을 바탕으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영역 성경들 특히 NIV는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종교 통합주의(Ecumenism), 뉴에이지(New Age), 로마 카톨릭주의(Roman Catholicism)의 영향에 따른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 사상으로, 성경 번역 면에서 심대한 번역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학자로 알려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사람들이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본문을 재구성한 것을 철저히 믿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의 이단이며 가장 잘못된 사본을 사용하고,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안목으로 [영국개역성경]을 번역해서 도리어 기독교 신앙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 자들입니다.
이 책, 즉 키이쓰 파이퍼 저, 이황로 역의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는 KJV와 NIV 등을 사본과 정확히 대조하면서 참된 번역과 잘못된 번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학문적이며 사본학의 근원을 파헤치는 역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이 신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목회자와 모든 신학생들에게 두루 읽혀져서 성경 교육과 설교에 크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2023-12-04 16:57:0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희 출판사에서는 2023년 12월 1일, <칼빈주의 비평>(총 446쪽)을 출간하였습니다.
정가: 19,000원
구매: 생명의 말씀사
<칼빈주의 비평>
책 소개
본서는 다음과 같은 칼빈(칼뱅)의 무조건적인 이중 예정설을 성경과 역사에 근거해서 철저히 비교 분석하고 연구한 책이다. 오직 성경만이 크리스천 믿음과 실행의 모든 면에서 표준 잣대가 되기를 바라며 동일한 믿음과 구원의 소망을 가진 형제/자매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리는 예정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뜻한다고 믿으며 이 작정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셨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조건하에서 창조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사람들은 영원한 저주에 이르도록 예정된다. 각 사람은 이 둘 중의 어느 한쪽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므로 우리는 각 사람이 생명이나 또는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분명히 보여 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하고도 변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구원에 이르도록 받아 줄 사람들과 멸망에 이르도록 정죄할 사람들을 영원히 확정하셨다고 말한다. 선택된 사람들에 관한 한 이 계획은 그들의 인간적 가치와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긍휼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정하고 흠이 없으면서도 이해가 불가능한 심판에 의거하여 정죄에 이르도록 내어 주신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문을 닫으셨다. …
부르심과 칭의에 의해 자신의 선택받은 자들을 봉인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또한 버림받은 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과 성령님의 거룩하게 구분하심에 이르는 것을 끊어 버리심으로써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심판의 표징을 주신다.”(「기독교 강요」 3권 21장 5항,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
책 내용
서 문 6
1. 어거스틴의 실체 15
2. 칼빈의 실체 55
3. 칼빈주의 비평 77
4. 왜 나는 칼빈주의를 믿지 않는가? 205
5. 개혁주의 신학의 위험들 239
6. 로드십 구원이란 무엇인가? 281
7. 칼빈주의에서의 14년 여정 295
8. 칼빈주의자의 정직한 의심 325
9. 칼빈주의 비평 결론 375
부록
1. 율법과 은혜 387
2. 두 본성 394
3.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상태 402
4. 선택과 자유 의지 408
5. 어거스틴의 창세기 6장 해석 변개 415
6. 마르틴 루터의 흑역사 423
본서의 뒤에는 7장의 저자가 만든 <성경과 칼빈주의 비교>, <성경적 구원 선도>, <칼빈주의 구원 선도>, <칼빈주의 5대 강령 비교> 컬러 선도 6쪽이 들어 있다.
2023-12-04 16:46:3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사랑침례교회는 이번에 2024년도 탁상형 캘린더를 제작하였습니다.
국내에 계신 성도들 가운데 이 캘린더를 원하시는 분은 다음 링크로 들어가 주소, 성함, 연락처 등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무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무료 캘린더 배송 링크
1/ 선착순으로 3,000부 주문을 받으며 물량이 소진되면 더는 못 보냅니다.
2. 국내 거주 1가정당 1개를 보냅니다.(해외 배송 불가)
3. 동일한 이름, 주소, 연락처 등으로 여러 개 신청하는 것은 안됩니다.
4.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5. 이것은 반드시 위의 링크로 들어가서 주문해야 하며 이 건으로 교회로 전화하면 응대하지 않고 문자로도 주문을 받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6. 발송은 12월 10일경까지 주문받은 후 취합하여 일괄적으로 발송 예정이니 교회로 전화하거나 문자는 자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 그리고 외국에 계시는 분들은 PDF 파일을 올리니 이것을 인쇄하거나 화면 캡쳐해서 쓰시기 바랍니다.
2023-11-21 15:23:39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 분이 왕하23;29의 ‘아시리아 왕’에 대해 질문하셔서 답을 적습니다.
그(요시야)의 시대에 이집트 왕 파라오느고가 ‘아시리아 왕’을 대적하러 유프라테스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이집트 왕을 대적하러 나가니 그가 요시야를 본 뒤에 므깃도에서 그를 죽이니라(왕하23;29).
In his days Pharaohnechoh king of Egypt went up against ‘the king of Assyria’ to the river Euphrates: and king Josiah went against him; and he slew him at Megiddo, when he had seen him.
질문의 요지는 요시야를 죽인 이집트 왕 파라오느고가 싸우려고 한 대상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 KJV, NIV, 개역 성경 등 모든 성경에는 그 왕이 ‘아시리아 왕’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본문의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시리아는 이 시대에 이미 바빌론에 의해 멸절되어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시리아 왕이 나오느냐갸 질문의 요지입니다.
병행 구절이 대하35:20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이 모든 일 뒤에 즉 요시야가 성전을 정비한 뒤에 이집트 왕 느고가 유프라테스 옆의 갈그미스와 싸우러 올라오므로 요시야가 그를 대적하러 나갔으나(대하35;20)
여기에는 파라오느고가 갈그미스와 싸우러 올라왔다고 되어 있는데 갈그미스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여기의 ‘아시리아 왕’은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느부갓네살의 아버지인 나보폴라살로 보입니다.
반즈 등의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기서 ‘아시리아 왕’이란 말은 니느웨가 아직 함락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니느웨와 바빌론에서 번갈아 가며 궁정을 관리했던 아시리아 왕들에게 익숙한 유대인들(왕하19:36; 대하33:11)은 처음에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왕조의 변화로 간주하고 이전 종주국 군주에게 부여했던 칭호인 ‘아시리아 왕’을 그대로 나보폴라살이라는 새로운 왕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이 남 왕국 유다를 침공했을 때 유대인들은 그가 자신을 ‘아시리아 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바빌론 왕’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 칭호가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죽자마자 그의 삶을 기록하고 열왕기의 저자가 복사한 연대기는 덜 정확하기는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더 친숙한 명칭인 ‘아시리아 왕’을 자연스럽게 사용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나보폴라살을 아시리아 제국의 상속자로 여겼고 그래서 그를 ‘아시리아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사례는 스6:22에도 있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스6:22에 있듯이 바빌론의 뒤를 이은 페르시아 왕도 ‘아시리아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레 동안 기쁘게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주께서 그들을 기쁘게 하셨으며 또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에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시려고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리셨기 때문이더라(스6:22).
스6:22의 ‘아시리아 왕’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두 경우의 ‘아시리아 왕’은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영토를 차지한 바빌론 왕이나 그 뒤를 이은 페르시아 왕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것은 부정확한 것이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더 알아듣기 쉽고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이 그렇게 이야기하므로 우리는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수용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성경 신자들의 믿음입니다.
샬롬
2023-11-02 14:28:0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성경 사본학에 대한 최근의 동향을 자세히 설명하는 책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가 10여 년 만에 저희 출판사에서 재출간됩니다.
저자는 키이스 파이퍼 목사이고 역자는 이황로 박사입니다.
450여 쪽에 걸쳐 성경 사본들의 증거에 대해 자세히 밝히는 이 책은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도움과 유익이 될 것입니다.
11월 말쯤에 출간되면 역시 생명의 말씀사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출간되는 대로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 1차 공급이 끝나면 역자와 의논해서 이 책 역시 모두가 무료로 볼 수 있게 PDF 파일을 공개하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2023-10-31 11:26:1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희 출판사는 에스라 성경 지도를 이번 주에 재출판합니다.
11월 1일부터 생명의 멀씀사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본 사이트의 무료 자료에서 최신판을 무료 PDF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배포해도 됩니다.
에스라 지도 선도 무료 PDF
2023-10-31 11:19:1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희 출판사는 이번 주에 킹제임스 성경 시리즈 3권을 재출간하였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 변호
2. 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3.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11월 1일부터 생명의 말씀사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들은 모두 문서 자료에서 최신판을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1. 킹제임스 성경 변호 무료 PDF
2. 킹제임스 성경의 영광 무료 PDF
3.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무료 PDF
꼭 종이 책이 필요한 분들만 구매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23-10-31 11:13:3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희는 2023년 6월 4일 첫 예배를 시작한 울산 지역 성경 신자들의 모임입니다!
울산 은혜 침례 교회
바른 성경, 바른 교리, 바른복 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실현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복 신앙, 은사 주의, 잘못된 비유 풀이 등으로 신자들을 미혹하는 모든 것을 배격합니다!
저희와 같이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실 분들을 환영합니다.
문의 사항은 다음으로 연락하기 바랍니다.
장인교 형제 : 010-3838-2351
샬롬
2023-10-24 18:27:33 | 관리자
다니엘은 콩을 먹었나, 채소를 먹었나? (다니엘서 1장 12절)
안녕하세요?
한 분이 다니엘서 1장에서 히브리 아이들이 채소를 먹었는데 왜 킹제임스 성경은 콩을 먹었다고 하는지 알고 싶다고 하여 글을 씁니다.
단1:12, 간청하건대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사 그들이 우리에게 콩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뒤에
KJV: Prove thy servants, I beseech thee, ten days; and let them give us pulse to eat, and water to drink.
단1:16, 그런 까닭에 멜살이 그들의 배정 음식과 그들이 마실 포도주를 거두어 가고 그들에게 콩을 주니라.
개역 단1: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NIV: Please test your servants for ten days: Give us nothing but vegetables to eat and water to drink.
개역 단1;16,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간단하게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 성경 그리고 NIV를 비교해 보면 킹제임스 성경은 콩(pulse)으로 되어 있고 개역이나 NIV 등은 채소(vegetable)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pulse는 콩과의 식물을 말합니다.
OED: The edible seeds of leguminous plants cultivated for food, as peas, beans, lentils, etc.
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제로아(스트롱 번호 2235)는 다니엘서 1장 12, 16절에만 나옵니다.
반즈 주석, 길 주석 등에는 이것이 분명히 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배도한 히브리 학자 독일 사람 겐세니우스는 이것을 채소로 바꾸었고 그 뒤로는 현대 역본들이 이것을 채소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소년들은 단순히 채식을 한 것이 아니라 콩을 먹었기에 피부가 윤택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건강이 좋았습니다.
콩 단백질이 좋다는 것은 지금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콩을 먹을 수 있게 허락하셨고 그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났습니다.
17 이 네 아이들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식을 주시고 모든 학문과 지혜에 능숙함을 주셨는데 다니엘은 모든 환상 계시와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 한편 그가 그들을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고 왕이 말한 날들이 끝나매 그때에 내시들의 통치자가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들어오니
19 왕이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 모두 가운데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 같은 자를 찾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이 왕 앞에 섰는데
20 왕이 지혜와 명철에 대한 모든 문제에 관하여 그들에게 묻고는 그들이 자기의 온 영토 안의 모든 마술사들과 별을 살피는 자들보다 열 배나 나은 것을 발견하니라(단1:17-20).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에 확신을 두면 늘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깊도다! 그분의 판단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들은 찾아내지 못하리로다!(롬11:33)
샬롬
패스터
2023-09-28 09:29:29 | 관리자
마가복음 1장 4절의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는 올바른 번역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 어떤 분들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마가복음 1장 4절의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가 오역이라고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기에 간략히 답을 씁니다.
대답: 아닙니다. 지금 그대로가 정확한 번역이며 혹시 오해하는 분이 있으면 목사나 교사가 침례에 대해 잘 설명해 주면 됩니다.
마가복음 1장 4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John did baptize in the wilderness, and preach the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remission of sins.
요한이 광야에서 침례를 주고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선포하매
위에서 보듯이 문제로 부각된 이 구문의 영어 원문은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remission of sins’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총 2번 나오며(막1:4; 눅3;3) 침례자 요한과 관련되어 단순히 ‘회개의 침례’(baptism of repentance)라고 기록된 곳 또한 두 군데 있습니다(행13:24; 행19:4).
침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 당시에 침례자 요한이 와서 유대 광야에서 선포하여 이르되,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3:1-2).
그의 메시지는 전체가 회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눅3:1-18).
그때에 그가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너희 속으로,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로 있다, 하고 말하기 시작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눅3:7-8).
침례자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선포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회개의 침례란 회개의 징표로 그가 침례를 주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구문의 ‘for’라는 단어 때문에 번역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실 ‘for’도 ‘of’ 만큼이나 간단하면서도 번역이 어려운 단어입니다. 여기서 ‘for’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eis’로 이 단어는 주로 장소를 가리키는 ‘to’ 혹은 ‘into’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마10:10 등에서 ‘너희의 여행을 위하여’(for your journey) 등에서는 목적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기 위하여(혹은 위한)’으로 번역하는 것은 앞뒤 문맥으로 보아 당연합니다.
그런데 주로 피터 러크만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여기의 ‘for’를 ‘때문에 혹은 인하여’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번역하면 “침례를 통해 죄들의 사면이 이루어지며 따라서 침례 중생 교리가 생긴다.”는 것이 지금의 번역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구절에서 고의로 ‘회개의’를 빼고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침례'라고 읽으면서 마치 흠정역 성경이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침례를 가르친다(즉 침례 중생 교리를 가르친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오도합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침례를 주고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OOO 침례를 선포하매
또 흠정역 성경이 개역성경처럼 침례 중생을 가르친다고 말하면서 개역성경을 인용합니다.
개역: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매우 잘 번역하였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개역성경이 바르게 번역한 것은 바르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러크만의 이상한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말씀보존학회처럼 번역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킹: 요한이 광야에서 침례를 주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문제는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영어의 ‘for’는 ‘repentance’를 수식하지 ‘baptism’을 수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것은 회개이지 침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길게 풀어서 쓰면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회개로 말미암은(혹은 회개에 기초한) 침례’가 됩니다. 따라서 성경을 바꾸지 않고도 얼마든지 바르게 교리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들도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매튜 풀: 회개가 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으며 회개의 징표가 바로 침례였다.
존 길: 침례를 받기 전에 먼저 회개가 있어야 했다. 회개가 있어야 침례를 주었다.
마가복음 1장 4절 주석
물론 여기서 또 러크만의 기발한 교리를 들고 나와 구약 시대의 짐승 희생물로 인해 죄들이 사면되었으므로 여기를 ‘죄들의 사면으로 인하여’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앞뒤 문맥은 그런 것을 지지하지 않으며 또한 성경의 용례 또한 그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에 보면 ‘for the remission of sins’의 용례가 나오며 여기의 ‘for’도 같은 그리스말입니다.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New Testament)의 피니라.여기를 ‘죄들의 사면으로 인하여’로 번역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피로 인한 죄들의 사면이 가려지지 않습니까?
저희는 러크만의 비상한 생각을 이해할 만한 능력이 없어서 그냥 평범하게 문맥에 따라 이렇게 번역하고 이해할 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도 저희와 같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는 바른 번역이며 이 구절이 ‘침례 중생’ 교리를 가르치지 않음은 설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사와 목사가 있습니다.
끝으로 옥스퍼드 사전에서 unto의 용례를 보면 '무엇을 위하여'가 있으며 사전에는 구체적으로 1582년 신약 성경의 마가복음 1장 4절을 예로 듭니다.
OED Unto의 용례
b.A.III.8.b With a view to; for the purpose of; for.
1582 N. T. (Rhem.) Mark i. 4 Preaching the baptisme of penance vnto remission of sinnes.
여기의 unto가 바로 킹제임스 성경의 for와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회개'로 번역되어야지 '죄들의 사면으로 인한 회개'로 번역되면 안 됩니다.
끝으로 개역성경과 대부분의 현대역본들은 주님의 만찬을 보여 주는 마26:28 등에서 ‘새’(New)라는 중요 단어를 삭제했습니다. 즉 이들은 아직도 신약 시대가 열리지 않았고 여전히 구약 즉 ‘Old Testament’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주교에서는 여전히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이 있으므로 이런 시스템이 없는 신약 시대의 도래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기관들을 동원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선언하신 신약(새 상속 언약)시대를 부인합니다.
2023-09-25 11:35:08 | 관리자
시편 68편 14절의 그것은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한 분이 시편 68편 14절에 대해 물어서 간단히 답을 합니다.
먼저 시편을 연구하기 위한 준비로 '드보라의 노래'(삿5장)를 읽고 평행점을 비교하면 좋을 것입니다(시68:4/삿5:3,7-8).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 거하기로 결정하신 강력한 행동에 초점이 놓여 있습니다. 엘로힘(23회), 여호와(Jehovah), 야(할렐루야, 엘리야 등의 약자), 아도나이(6회), 샤다이 등 여러 하나님의 이름이 이 시편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편은 메시아 시편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엡4:8에서 이 시편의 18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승천에 적용합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하나님을 통한 네 가지 승리의 표현을 표현하는 찬송입니다.
시68:14는 다음과 같습니다.
When the Almighty scattered kings in it, it was white as snow in Salmon.
전능자께서 왕들을 그것 안에서 흩으실 때에 그것은 마치 살몬의 눈처럼 흰색을 띠었도다.
여기에는 2개의 그것(it)이 나옵니다.
처음 나오는 그것은 가나안 땅으로 보입니다. 10절 등 전체 문맥\잭이 이런 해석을 지지하고 다수의 주석들도 동일하게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그것은 하나님께서 왕들을 흩으시는 그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일은 살몬 산에서 눈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죽은 자들의 뼈가 눈처럼 하얗게 땅을 덮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다음 주석들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68편 14절 주석
샬롬
2023-09-25 10:49:18 | 관리자
레위기 18장 23절 혼동, 혼돈, 혼란 confusion
영어 성경을 번역할 때 가능하면 같은 단어를 우리말로 같게 번역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늘, 땅, 왕국 등은 각각의 단어의 어원이 같으므로 처음부터 동일하게 하늘, 땅, 왕국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어에는 다른 어원에서 왔지만 영어로는 한 단어로 표기된 것들도 매우 많습니다.
confusion이라는 단어가 그중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confusion이라는 말이 구약에 23회, 신약에 3번 나옵니다.
영한사전에서 confusion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① 혼동《with; between》.
② 혼란 (상태), 분규; 착잡.
③ 당황, 얼떨떨함.
⟨관련어⟩ confuse v.
♣ be in 〔throw ... into〕 ~ 당황하다〔하게 하다〕; 혼란되어 있다〔시키다〕.
♣ Confusion! 《구어》 제기랄, 야단났군!
♣ ~ worse confounded 혼란에 또 혼란.
♣ covered with ~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하여.
♣ drink ~ to …을 저주하여 잔을 들다.
일이 꼬이고 정신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즉 당황할 때 우리는 I am confused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confusion에는 성질이 다른 두 개가 합쳐져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con과 fusion이 합쳐진 것입니다. 여기서 con은 함께의 뜻이고 fusion은 합쳐지다는 말입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가서 confusion을 보면 일곱 번째 용례가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7.7 Mixture in which the distinction of the elements is lost by fusion, blending, or intimate intermingling.
†b.7.b Fusion together. Obs. rare.
1828년판 웹스터 사전의 일곱 번째 정의는 성질이 다른 것들을 수치스럽게 하나로 혼합한 것이라고 말하며 레위기 18장 23절과 20장 12절을 구체적인 예로 들고 있습니다.
7. A shameful blending of natures, a shocking crime. Leviticus 18:23, 20:12.
레18:23 Neither shalt thou lie with any beast to defile thyself therewith: neither shall any woman stand before a beast to lie down thereto: it is confusion.
너는 어떤 짐승과 함께 누워 그 일로 너 자신을 더럽히지 말며 어떤 여자도 짐승 앞에 서서 그것을 향해 눕지 말라. 그것은 혼동(混同)이니라.
사람과 짐승은 본성이 다르므로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면 안 되는데 수간은 그렇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confusion이라고 말합니다.
레20:12 And if a man lie with his daughter in law, both of them shall surely be put to death: they have wrought confusion; their blood shall be upon them.
남자가 자기 며느리와 함께 눕거든 그들을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혼동(混同)을 일으켰으므로 그들의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리라
위와 비슷하게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면 안 됩니다.
우리말 혼동(混同)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구별하지 못하고 뒤섞어서 생각함.
2. 서로 뒤섞이어 하나가 됨.
대개 우리는 첫번째 의미의 혼동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의미의 혼동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confusion입니다.
confusion은 참으로 어려운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confusion에는 당황하다, 패배를 당하다, 치욕을 당하다는 뜻도 있고 위의 두 구절처럼 혼동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으며 무질서 상태의 혼돈을 뜻하는 경우도 있고 뒤죽박죽이 되어 어지럽고 질서가 없음을 뜻하는 혼란도 있습니다.
다만 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며 또한 올빼미와 까마귀가 그 안에 거하리라. 그분께서 그 위에 혼돈(confusion)의 줄과 공허의 돌들을 팽팽히 드리우시리니(사34:11)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하나님은 혼란(confusion)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시니라(고전14:33).
레위기 18장과 20장의 confusion을 혼돈이나 혼란이라고 이해해도(번역해도) 사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그 경우 성질이 다른 두 개가 하나가 되어 무질서를 일으킨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경우의 confusion이 원래 ‘con+fusion’이고 이런 confusion은 보통의 confusion 즉 당황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 혼란스럽다, 무질서하다 등의 confusion과는 어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23-09-22 09:09:33 | 관리자
예레미야 48장 27절 의미
예레미야 48장은 전체가 모압에 대한 심판을 기록합니다.
27절은 모압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한 일을 기록합니다.
27 이스라엘이 네게 조롱거리가 아니었느냐? 그가 도둑들 가운데서 발견되었느냐? 네가 그에 대하여 말한 이후로 기뻐 뛰었느니라.
.
첫 부분: 이스라엘이 네게 조롱거리가 아니었느냐?
모압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긍휼을 베풀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였습니다.
중간 부분: 그가 도둑들 가운데서 발견되었느냐?
이 부분은 일종의 속담입니다.
사람이 도둑질을 하다 걸리면 큰 조롱을 받는데 이스라엘(유다)이 그런 적이 있느냐고 하나님은 묻습니다.
마지막 부분: 네가 그에 대하여 말한 이후로 기뻐 뛰었느니라.
그런 적이 없는데도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유다)이 도둑질을 하다가 걸린 것처럼 그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손뼉을 치고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모압의 악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48장에 47절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돕고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번영하리로다(시122:6).
2023-09-20 14:04:33 | 관리자
예레미야 33장 2절의 그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성경에는 지시 대명사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의 그것이 바로 이런 사례 중 하나입니다.
Thus saith the LORD the maker thereof, the LORD that formed it, to establish it; the LORD is his name;
그것을 만든 자 주, 그것을 형성하여 굳게 세운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주가 그의 이름이니라.
그것을 만든 자 주,에 해당하는 영어는 the LORD the maker thereof입니다. 영어 thereof는 보통 앞에서 언급된 것의 소유격으로 종종 ‘그것의’, ‘그것에 속한’ 등으로 번역됩니다.
바로 다음에는 그것을 형성하여 굳게 세운 주 즉 the LORD that formed it이라는 말이 나오며 앞의 thereof와 it이 같은 것을 가리킴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it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단 it은 앞에 있는 무엇을 말하는데 33장 1절에는 그것이 없으므로 32장에서 그것의 정체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32장 17절의 땅입니다.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큰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
또 다른 하나는 32장 36절의 이 도시 즉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 도시 즉 너희가 말하기를, 칼과 기근과 역병으로 말미암아 바빌론 왕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는 이 도시에 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또 다른 하나는 32장 43절의 이 땅입니다.
너희가 이 땅에 관하여 말하기를, 이 땅이 사람이나 짐승이 없는 황폐한 곳이 되었고 갈대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도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이 땅에서 밭들을 사리라.
그런데 33장을 가서 보면 4절, 5절, 6절, 9절 등에 계속해서 에루살렘이라는 도시가 등장합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여기의 ‘그것’은 앞뒤 문맥상 예루살렘 도시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바빌론 군대가 공성퇴로 무너뜨리려 하는 이 도시 예루살렘은 내가 만들었다. 비록 너희 유다 백성이 갖은 수를 동원해서 막으려 해도 이 도시는 망한다(5). 그런데 내가 다시 그것을 복원한다.”(6, 10-11, 16).
물론 다른 뜻으로 보는 것도 성도의 자유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주석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여러 사람들이 예루살렘 도시나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 주석 모음
성령 하나님의 조명이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2023-09-20 10:14:59 | 관리자
디모데전서 5장 12-15절, 구원이 취소되는가?
한 분의 문의:
12. 그들은 자기들의 처음 믿음을 내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5. 이는 어떤 자들이 이미 사탄을 따라 돌아섰기 때문이라.
이 말씀에서 "처음 믿음을 내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라는 말씀과 "이미 사탄을 따라 돌아섰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영원한 속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다는 말씀과 대치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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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도의 구원은 영원토록 안전합니다, 즉 영원토록 안전 보장이 되어 있어서 아무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엡4:30).
그럼에도 육체를 가지고 사는 동안 성도가 심하게 죄를 지으면 - 즉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면 -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기도 하고 병들게도 하십니다.
디모데전서 5장의 이 부분도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이 구절들은 성도들의 구원이 취소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1. 구원받고도 몸에 정죄를 받을 수 있고 2. 사탄을 따라 그의 일을 도울 수도 있으며 3. 심지어 하나님의 심판으로 저주를 받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1의 사례: 고전11:27-30
2의 사례: 딤전1:19-20
3의 사례: 행5:1-11, 요일5:16-17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다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도록 판단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5:5).
고린도전서 5장을 잘 읽어 보시면 디모데전서 5장에 대한 답이 나올 것입니다.
사랑침례교회유튜브 채널에서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구원 시리즈 설교 9-12
감사합니다.
2023-09-15 09:43:33 | 관리자
영어가 안 되는데 왜 영어 성경을 읽으려고 할까?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여쭤볼 말씀이 있어서요
히브리서2:4 원문 물음표는 어떻게 해석이 되는 것입니까? 평서문인지 의문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히2:4, God also bearing them witness, both with signs and wonders, and with divers miracles, and gifts of the Holy Ghost, according to his own will?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답을 드렸습니다.
네 물음표는 2장 3절에 있습니다.
영어는 3, 4절이 길게 한 문장이지만 우리말은 그렇게 못해요.
3 How shall we escape, if we neglect so great salvation; which at the first began to be spoken by the Lord, and was confirmed unto us by them that heard him;
4 God also bearing them witness, both with signs and wonders, and with divers miracles, and gifts of the Holy Ghost, according to his own will?
3 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이요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인데
4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뜻에 따라 표적들과 이적들과 다양한 기적들과 성령님의 선물들로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셨느니라.
설명: 보시다시피 영어에는 4절 끝에 물음표가 있고 우리말 번역에는 3절 초반에 물음표가 있습니다.
영어를 보면 3절 중간에 if 문장이 있고 그 끝에 구원에 대한 설명이 which부터 시작되어 4절까지 쭉 이어집니다. 물론 우리말에서는 3절에서 문장을 나누고 설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말과 영어의 구조가 심히 많이 다르므로 번역할 때는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을 읽으면 이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영어를 보면서 4절에 물음표가 없다고 하는지 궁금해서 간단하게 물었습니다.
나: 이제는 이런 것 신경 쓰지 않고 읽어도 되지 않나요?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담을 보내 왔습니다.
그분: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워낙 영어를 모르니 답답해서요.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나: 그러면 한국말만 읽으세요. 영어가 안 되는데 왜 영어를 보려 하나요. 감사합니다.
나는 결코 그분을 폄하하거나 조롱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안 되는데 왜 굳이 영어를 보려 하는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영어 그대로!'를 주장하는 사람들(특히 목사들)에게 세뇌되어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번역의 정의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성도들의 99.9퍼센트는 영어를 전혀 보지 않고 한국어 성경만을 읽습니다.
저도 30년 전에는 거의 영어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말로만 성경을 읽습니다. 영어와 대조해서 읽으면 성경이 제대로 읽히지 않습니다.
물론 번역과 교정을 할 때에는 당연히 영어를 보아야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면서 묵상과 경건 생활을 위해서는 우리말 성경만 읽습니다. 사실 이렇게 해야 정상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서 그것이 확실하지 아닌지 알기 위해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옆에 두고 대조해서 읽는 사람은 미국에서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말로 주어진 성경을 우리말로 마음껏 읽을 수 읽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영어를 모르면서도 영어와 대조해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 땅에 킹제임스 성경이 들어온 지 30년이 지났고 많은 교정을 거쳐 우리말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이 나왔습니다. 마음껏 쭉쭉 읽기 바랍니다. 그래야 성경이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오늘은 영어에 함몰되어 시간을 낭비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간단히 적었습니다.
고후2;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는 많은 사람들 같지 아니하고 도리어 순전함에서 난 자같이, 하나님에게서 난 자같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2023-09-15 09:22:35 | 관리자
빌립보서 2장 6절,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했다는 말의 의미
안녕하세요?
한 분이 빌립보서 2장 6절에 대해 물으셔서 간단히 답을 적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6절 후반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6절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킹제임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즉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계시므로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강탈해서 자기 것으로 취할 필요가 없으셨음을 보여 줍니다.
즉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동하다는 것이 원래부터 자기 것이므로 강제로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존 길의 주석: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강탈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분께서 아버지와 동일한 형상, 본성, 본질을 갖고 있었다면, 그분은 있는 그대로 아버자와 동등해야 합니다. 그분에게는 영원함, 전지함, 전능함, 무소부재함, 불변함, 자존하심과 같은 완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참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 만유의 하나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와, 영광의 주, 동일한 창조와 섭리의 업적이 그분에게 돌아가고 동일한 예배와 경의와 영광이 그분에게 주어집니다.
매튜 헨리 주석: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강도 행위)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 일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침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30). 단순한 인간이나 단순한 창조물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라고 공언하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강탈(강도 행위)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십일조와 헌금에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의 권리를 도적질하는 것입니다(말 3:8).
그분께서 하나님의 형체로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말입니다.
7-8절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5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생각을 품고 우리 자신을 겸손히 낮추라고 이야기합니다.
천천히 5-8절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5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으라.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니라.
6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강도 행위)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7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으며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곧 십자가로 인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느니라.
NIV도 킹제임스 성경과 거의 비슷한 생각을 보여 줍니다.
NIV 6절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NIV 직역: 그분은 하나님의 본성 바로 그 자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자기 손으로 움켜쥐려 하지 않았으나
NIV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므로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자기 힘으로 움켜쥐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탈이라고 했으면 더 확실하였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미국 사람들은 NIV의 뜻이 KJV와 비슷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 성경 번역은 뜻이 애매모호하거나 오히려 반대로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개역: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것은 명백한 오역으로 보입니다. 개역성경은 NIV의 to be grasped를 취할 것으로 번역하면서 무엇인가 번역이 꼬여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보여 줍니다.
여하튼 6절은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8절은 영어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8절 And being found in fashion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unto death, even the death of the cross.
끝부분을 직역하면 십자가의 죽음이 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느니라.
우리말 직역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가 잘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이런데 사용된 of는 ‘..으로 인하여’의 뜻입니다.
He died of cancer. 그는 암으로 죽었다.
그러므로 8절은 이런 of를 살려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곧 십자가로 인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것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기초임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23-09-11 13:35:33 | 관리자
예레미야 30장 8절, 인칭 대명사의 변화
구약성경, 특히 이사야서, 예레미야 등의 대언서에는 한 문장에서 갑지가 인칭 대명사가 바뀌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예레미야 30장 7-8절을 보겠습니다.
7 Alas! for that day is great, so that none is like it: it is even the time of Jacob's trouble, but he shall be saved out of it.
8 For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saith the LORD of hosts, that I will break his yoke from off thy neck, and will burst thy bonds, and strangers shall no more serve themselves of him
7 슬프도다! 그 날이 커서 어떤 날도 그것과 같지 아니하니 그날은 곧 야곱의 고난의 때니라.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라.
8 군대들의 주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니 타국인들이 다시는 그를 종으로 삼아 자기들을 섬기게 하지 못할 것이요,
7절에서 그는 이스라엘(야곱)입니다.
8절 초반부 즉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에서 네 목의 '너'는 이스라엘이고 그는 야곱의 고난의 때(7절)에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적그리스도로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렘30-31은 7년 환난기의 유대인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8절 후반부 즉 '타국인들이 다시는 그를 종으로 삼아 자기들을 섬기게 하지 못할 것이요'의 그는 다시 이스라엘입니다.
이렇게 인칭 대명사가 바뀌면 혼동을 줄까 염려해서 개역성경은 뒤의 그를 너로 바꾸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 이방인이 다시는 너를 부리지 못할 것이며
물론 원어는 너가 아니라 그입니다.
이렇게 인칭 대명사의 변화가 갑자기 생기는 구절이 대언서에 많으므로 조심해서 문맥에 따라 잘 읽어야 합니다.
샬롬
2023-09-07 22:19:45 | 관리자
예레미야 29장 1-3절 배경지식
안녕하세요?
오늘은 매튜 헨리의 주석과 함께 예레미야 29장 1-3절의 배경을 잠시 설명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2절에는 괄호와 함께 After로 시작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왜 After가 나오며 어떤 일이 After로 표현된 사건 다음에 일어났는지 보려고 합니다. 2절에는 주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앞뒤 문맥을 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원래 정상적인 문장이라면 It is after.....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It is는 무엇일까요?
1 Now these are the words of the letter that Jeremiah the prophet sent from Jerusalem unto the residue of the elders which were carried away captives, and to the priests, and to the prophets, and to all the people whom Nebuchadnezzar had carried away captive from Jerusalem to Babylon;
2 (After that Jeconiah the king, and the queen, and the eunuchs, the princes of Judah and Jerusalem, and the carpenters, and the smiths, were departed from Jerusalem;)
3 By the hand of Elasah the son of Shaphan, and Gemariah the son of Hilkiah, (whom Zedekiah king of Judah sent unto Babylon to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saying,
매튜 헨리 주석(렘29:1-7)
여기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바벨론 포로들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먼저 2절은 왕하24:8-16에 기록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여고니야(여호야긴)는 3개월을 통치한 뒤 포로가 되었고 그의 어머니 왕후와 그의 집안의 시종들(여기서는 내시들이라 불림)과 당시에 가장 활동적이었던 유다와 예루살렘의 많은 고관들이 함께 포로가 되었습니다. 목수들과 대장장이들도 마찬가지로 강압적인 요구를 받아 항복했고 그 결과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도시를 요새화하거나 전쟁 무기를 마련할 적절한 손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복종으로 느부갓네살이 진정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오만한 정복자 느부갓네살은 아합 당시 벤하닷처럼 그들의 양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1절은 2절이 있은 뒤에 일어난 다른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2절의 그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에 다시 와서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대언자들과 백성 중 더 많은 사람들 즉 자기 생각에 합당한 자들, 또 자기 병사들이 손을 뻗어 바벨론으로 데려갈 수 있는 자들을 또다시 포로로 데려갑니다.
이 포로들은 매우 우울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땅에 남아 있는 나머지 형제들과 구별되어 마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죄인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본토에 남겨진 형제들을 부러워할 이유도 없음을 확신시켜 줍니다.
1.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마찬가지로 진실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널리 흩어져 있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적절한 방법이었습니다.
2. 우리는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적절한 위로와 건전한 조언이 담긴 경건한 편지를 써서 하나님을 섬기고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기록된 것은 남아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예레미야의 이 편지는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시드기야 왕이 느부갓네살에게 보낸 사신들의 손에 의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사람들에게 보내졌는데, 아마도 이들은 그에게 조공을 바치고 그에게 복종을 다시 약속하거나 그와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런 사자들을 통해 이 메시지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그것에 영예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였기 때문입니다. 그곳의 포로들의 상황은 더욱 우울해졌고 그들은 자기들이 두고 온 친구와 친척들의 소식을 거의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서로 헤어진 사람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기억하면서 1-4절을 읽으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특히 2절의 내용이 1절 이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2절의 It is는 '이렇게 끌려간 일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4절
1 한편 포로로 끌려간 장로들 중에서 남은 자들과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고 간 제사장들과 대언자들과 온 백성에게 대언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보낸 편지의 말들은 이러하니라.
2 (이렇게 끌려간 일은 여고니야 왕과 왕비와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통치자들과 목수들과 대장장이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뒤에 있었으며)
3 (이 편지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빌론에 있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보낸)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의 손에 맡겨진 것이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4 나 군대들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하므로 포로로 끌려간 모든 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2023-09-07 17:21:4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잠1:32는 다음과 같습니다.
For the turning away of the simple shall slay them, and the prosperity of fools shall destroy them.
이는 단순한 자들의 돌이켜 떠나감이 그들을 죽일 것이며 어리석은 자들의 번영이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기 때문이라.
turning away는 무슨 뜻일가요?
단순한 자들은 어디에서 돌이켜 떠나갈까요?
그들은 지혜, 진리, 복음, 하나님, 그리스도, 생명에서 돌이켜 떠나갑니다. 그 결과 그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turning away는 여기서 이런 뜻을 가집니다.
카톨릭, 공동 번역 등은 배반, 등을 돌림 등으로 비슷하게 번역하였고 개역은 퇴보로 잘못 번역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23-09-06 10:32:0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