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의 유명한 사도.
그는 원래 히브리말로 사울이었으며 행13:13에서 처음으로 로마 이름인 바울로 나온다. 아마도 이렇게 이름을 바꾼 것은 그 당시 이방 땅에 살던 유대인들의 관습이었으며 어쩌면 그의 친구이자 처음에 개종한 서기오 바울 총독을 기념하기 위해 그 이름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행13:7). 그는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출생하여 자기 아버지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물려받았다. 그의 부모는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며 그를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으로 양육하였다(빌3:5). 그 당시 다소는 학문과 문화로 유명하였으며 바울은 여기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 그는 합당한 나이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당시 최고의 학자라 불리는 가말리엘의 지도하에 교육을 받았다. 예수님의 사역 기간에 그가 예루살렘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그는 다소로 돌아가서 유대인들의 관례에 따라 장막 만드는 일을 한 것 같다(행18:3; 20:34; 살후3:8).
그 뒤 그는 30세쯤에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가말리엘에게 교훈을 받고 율법을 알게 되어 바리새파의 엄격한 제자가 되고 열렬한 유대교 수호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이 되었다(행8:3; 26:9-11). 그는 기적적으로 회심하였고 그 이후에는 그리스도가 그에게 전부가 되었다(행9:22, 26).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그에게 나타나셨고(행26:15; 고전15:8) 그는 그분에게 자기의 온 마음과 혼과 힘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살든지 죽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호하고 전파하는 일을 하며 특히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일을 하였다. 그는 기독교 정신이 순수하고 고상하며 그 안에서의 경배와 그로 인한 영향력이 실제로 강하고 분명함을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유대교의 의식과 예식과 경배를 반대하고 이로 인해 자기 동포로부터 심한 고통과 핍박을 받았다. 그들의 고소로 인해 그는 가이사랴에서 약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그 뒤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갔다. 그 이후의 재판 결과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가 2년 뒤 옥에서 풀려났다가 다시 로마로 가서 옥에 갇혔고 결국 네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한다.
바울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알려진 학문을 다 배웠고 그리스 문학에도 익숙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그리스말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그리스 철학자들과 변론하며 그리스 시인들의 시를 인용한 것 등에서 잘 드러난다(행17:28; 고전15:33; 딛1:12). 그러나 그리스 교육이 그를 지배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그리스도 신앙의 영적 본질과 전 세계적인 우주관 등이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그러한 신앙은 신실하게 그것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성격을 다 순화시키고 고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온 인류를 위한 구속의 사랑을 직접 느꼈다(갈1:12).
대부분의 사도들과 교사들은 유대교와 의식과 예식과 교리 등을 굳게 붙들었고 그런 교리 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기독교를 자기들이 간직한 토양 위에 접붙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에게는 유대교가 기독교라는 ‘새로 접붙여진 가지’를 지탱하는 그루터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이 같은 좁은 견해에서 벗어나 기독교가 전 우주적인 신앙 체계임을 처음으로 보인 듯하다. 다른 이들은 기독교를 새로 접한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 준수 등을 부여하려 하였지만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보여 주었다(엡2:11-22). 그의 모든 수고는 이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그는 위선 태도를 보이는 베드로를 서슴지 않고 책망하였다. 그가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와 로마에서 근 5년 동안 옥살이를 한 것도 결국 이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바울 사도는 세 차례나 선교 여행을 하였으며 그 대부분을 걸어서 다녔고 그 내용은 사도행전 13-28장과 고후11:23-29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 바울의 1, 2, 3 차 선교 여행 지도 참조(42, 43). 그가 여행한 지역과 개종시킨 사람과 세운 교회와 참고 이겨 낸 고난과 노력과 수고와 행한 기적과 기독교를 변호하고 알리기 위해 기록한 편지들과 그가 받은 계시와 그가 이룩한 선한 일과 순교자의 죽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바울의 성격은 그가 기록한 서신서들에 잘 드러나 있다. 이 편지들에서 우리는 열정적인 한 사람을 변화시켜 후에 있을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게 만든 힘 즉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게 된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면서도 남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며 자신을 희생하였다. 그는 신약성경에서 로마서에서 히브리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14편의 서신서를 기록하였고 이 안에서 기독교의 원리와 본질을 설명하였다.
2009-04-26 01:00:49 | 관리자
엘루마 참조.
2009-04-26 00:59:59 | 관리자
압살롬이 자기의 양떼를 치던 곳(삼하13:23).
이곳은 에브라임에 가까웠으며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2009-04-26 00:59:38 | 관리자
고대 이집트의 마을.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이곳을 마주보고 또 이곳 앞에서 진을 쳤다(출14:2; 민33:7).
2009-04-26 00:58:47 | 관리자
마12:24에 나오는 이 이름은 에그론 사람들이 섬긴 우상 신 바알세붑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은 ‘파리들의 주’ 혹은 ‘파리 신’이라는 뜻이다. 그는 그 지역에 많았던 모기와 파리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주는 자였다(왕하1:2-3, 16). 그것은 어떤 때에 바알세불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똥 신을 뜻한다. 유대인들은 사탄이 우상숭배 오염의 창시자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그를 부른 것 같다.
2009-04-26 00:58:22 | 관리자
터져 나온 곳. 이 이름은 다윗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의 싸움을 묘사하기 위해 다윗이 사용한 이름이다(삼하5:20; 대상14:11; 사28:21).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부에서 멀지 않은 르바임 골짜기에 있었으며 짧게 브라심이라 불리기도 한다.
2009-04-26 00:57:52 | 관리자
요르단 너머 르우벤의 지역 안에 있던 도시(민32:38).
이곳은 또한 벳므온 혹은 벳바알므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렘48:23; 수13:17).
2009-04-26 00:57:24 | 관리자
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갈 당시의 암몬 족속의 왕.
그는 그 당시 유다 총독인 그달리야를 암살하려 하였다(렘40:14; 41:1-10).
2009-04-26 00:56:55 | 관리자
갓의 고을(수19:44).
이곳은 벳호론에서 멀지 않았다. 이곳이 솔로몬이 다시 지은 바알랏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왕상9:18; 대하8:6).
2009-04-26 00:56:12 | 관리자
시므온의 고을(수15:29; 19:3). 이곳은 또한 빌하로 불리기도 했다(대상4:29).
2009-04-26 00:55:41 | 관리자
헤르몬 산 기슭의 레바논 골짜기의 도시.
이곳은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여호수아가 전쟁을 벌인 최북단 도시이다(수11:17; 12:7; 13:5).
2009-04-26 00:55:15 | 관리자
I. 구약성경에서 이것은 페니키아 사람들 특히 두로 사람들의 우상을 가리킨다.
바알 숭배는 아스다롯 숭배와 함께 히브리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마리아에서 엄숙한 의식과 함께 도입되었다(삿6:25-32; 왕하10:18, 28). 아스다롯 참조. 바알의 복수인 바알들(Baalim)은 바알의 형상들을 의미했다(삿2:11; 10:10). 엣바알, 여룹바알, 한니발 같은 이름들을 통해 바알 숭배가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지역에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바빌론 사람들은 이것을 벨이라 불렀다(사46:1; 렘50:2; 51:44). 바빌론의 바알 숭배는 유명한 바벨탑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탑의 꼭대기 방은 별을 관측하고 그 기록들을 담아 둔 곳이었다.
동방의 점성술에서 바알 숭배는 곧 천체 숭배를 뜻하였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바알이 태양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것을 행운의 신 주피터라 불렀다. 그래서 주피터는 비너스와 함께 사람의 행운을 주관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그 관계가 바알과 아스다롯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바알의 형상들과 전들은 대개 높은 곳에 있었다. 므낫세는 예루살렘 성전의 두 뜰에 하늘의 군대 특히 아스다롯을 위한 제단들을 세웠다(왕하21:5-7). 예레미야는 지붕에서 바알에게 경배를 드린 유대인들에게 경고를 주었으며(렘32:29) 요시야는 아하스가 자기의 궁전의 난간에 세운 이런 제단들을 파괴시켰다(왕하23:12). 또 고대 사람들은 종종 인신 제물을 바알에게 드리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바알의 산당들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불로 태워 바알에게 번제 헌물로 드린 유다와 예루살렘의 거주민들을 책망하였다(렘19:5). 몰렉 참조.
이스라엘 자손은 바알을 섬기는 일에 잘 빠졌다(민25:3; 삿2:13-14; 3:7). 사무엘 시대에 그들은 우상들을 제거했으며(삼상7:4) 이 일은 다윗과 솔로몬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합의 통치 때에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로 말미암아 바알 숭배가 다시 크게 성행하였다(왕상16:31). 다른 단어들과 결합될 때 바알은 다른 거짓 신을 나타낸다. 바알베릿(Baal-Berith)은 ‘언약의 주’를 뜻하며 세겜 사람들의 신이었고(삿8:33; 9:4), 바알브올(Baal-Peor)은 ‘브올의 주’를 뜻하며 모압 족속의 우상이었으며(민25:3-5; 호9:10), 바알세붑(Baal-Zebub)은 ‘파리들의 주’를 뜻하며 에그론의 블레셋 사람들의 신이었다. 바알세붑 참조.
II. 바알이라는 말은 우상과 관계없이 여러 장소의 복합어로 사용되었다.
2009-04-26 00:54:39 | 관리자
아히야의 아들. 그는 이스라엘 왕 나답의 군대 대장이었지만 주전 953년경에 깁브돈에서 자기 주인을 배신하고 죽인 뒤 왕국을 차지했다. 그는 왕상14:7-14에 예언된 대로 여로보암의 친족을 모두 죽였지만 우상숭배와 극도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왕상15:1-34; 16:1-12).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언자 예후를 보내어 경고를 주셨고 이것은 그가 죽은 뒤 그의 가족이 몰살당함으로서 성취되었다(왕상16:12).
2009-04-26 00:53:54 | 관리자
림몬의 아들. 바아나와 레갑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섬기던 자들로서 다윗에게 보상을 얻을 줄 알고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들고 갔다가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삼하4:1-12).
2009-04-26 00:53:31 | 관리자
수확절 참조.
2009-04-26 00:52:24 | 관리자
시체를 땅에 묻는 일.
팔레스타인 지방은 더워서 시체가 금방 부패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이내에 묻었다. 히브리 사람들은 특별 상황이 아니면(삼상31:12) 그리스 사람들의 관습처럼 화장하지 않았으며 화장한 경우에도 뼈는 꼭 묻었다(삼상31:13). 사람들은 죽은 몸을 싼 뒤 열린 관에 올려놓고 매장지로 갔다. 재물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시체는 땅을 낮게 파고 돌로 덮거나 돌무덤에 안장했고 매장하지 않는 것은 큰 수치로 여겨졌다(왕상14:11; 왕하9:36-37). 성경적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음, 매장, 부활을 상징하는 중요한 규례이다(롬6:3-5; 골2:12). 장사지내는 일, 침례 참조.
2009-04-26 00:52:01 | 관리자
망대는 바깥 성벽뿐만 아니라 도시 안의 높은 곳과(삿9:47-49; 시48:12; 눅13:4) 또 적군이 넘어올 수 있는 경계 지역에도 세워졌다(삿8:17; 사21:6-9; 겔33:2-6). 망대는 적군의 침입에서 거주민들을 보호하는 피난처가 되었고 종종 도시의 대부분이 함락된 경우에도 망대는 함락되지 않고 백성을 보호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망대가 되신다(시18:2; 61:3; 잠18:10). 한편 양떼나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낮은 높이의 망대를 세우기도 하였다(대하26:10; 사5:2; 미4:8; 마21:33).
2009-04-26 00:51:34 | 관리자
므리바 참조.
2009-04-26 00:51:10 | 관리자
가자 근처의 도시로 처음에 유다에게 배정되었으나 후에 시므온에게 배정되었다(수15:31; 대상2:49).
2009-04-26 00:50:44 | 관리자
우리 주님이 침례를 받고 승천하기까지 그분과 함께한 제자들 중의 하나(행1:21-26).
승천 이후에 그는 다른 열한 제자와 함께 사도로 임명을 받았으나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다.
2009-04-26 00:50:1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