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12152개
블로그를 정리하다 한참 전에 퍼논 글이 좋아서 여기에 올려 봄니다.    여친 생긴 아들에게 주는 엄마의 편지      아들아, 세상의 반은 여자, 그리고 나머지 반은 남자로 이루어져 있단다. 하느님은 어떤 생각을 하셧는지 모르지만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게 하셧어. 엄마가 인생의 짝인 아빠를 만났듯이 우리 아들도 나머지 반쪽을 찾게 되겠지.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너는 잘 모를 거야. 왜냐구? 그건 자석의 극과 극처럼, 그녀는 여자고 넌 남자이기 때문이지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할 줄 알아라는 말을 하고 싶구나. 그러기 위해서 네가 알아야 할 몇가지를 엄마는 당부하고 싶단다.   ♡ 아들아! 그녀의 몸은 유리와도 같아 너의 그녀의 가장 큰 차이는 뭐니뭐니해도 신체적인 차이겠지? 그러나 아들아,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자 몸의 소중함이란다. 여자는 유리와 같아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 잘못했다간 영영 붙일 수 없는 깨진 유리조각이 되 버리고 만단다. 요즘 너희들 세대의 성 가치관이 많이 개방됐다고는 하지만! 실제 행동이 앞서갈 때는 이미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해. 낙태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사라져가고 사랑없이 쾌락만 좇아서는 안되겠지? 엄마가 너를 낳았을 때의 그 아픔은 실로 상상하기 힘든 것이란다. 하지만 아픈 만큼 믿음직한 아들을 보게 되었지. 그런데 여자의 몸이란 너무나 복잡하고 하나라도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안되는 것이야. 특히 한 번 낙태를 하는 것은 출산의 아픔, 후유증과 맞먹는 것이기 때문에 젊음은 물론 건강까지 앗아가게 되지. 네가 정말 사랑하는 "그녀"라면 그녀의 신체까지 소중히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해. 장차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생명을 잉태하게 될 그녀의 귀중한 몸을 조심스럽게 다뤄져야겠지?   ♡ 아들아! 작은 섬세함이 그녀를 감동케한단다 설마 너까지 여자는 화려한 것과 크나큰 이벤트에 감동하는 존재로 알지는 않겠지? 수백송이의 장미와 값비싼 반지, 브랜드 옷만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란다. 오히려 네가 무심코 내던진 자상한 말 한 마디, 길을 걷다 무심코 생각난 그녀를 위해 꺾은 들꽃 한 송이, 잘 자라는 전화 한 통화에 여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야.  그녀를 위해 뭔가 큰 것만을 해주려 골머리를 앓지도 말 것이며 그녀를 감동시키는 자체가 귀찮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정말 사랑한다면 너의 감정 가는대로, 그녀를 위한 노력 그대로 표현하면 그녀도 가슴속으로 느끼게 될 거야. 여자를 감동시키기 위한 방법, 그것은 바로 작은 섬세함이란다.    ♡ 아들아! 때로는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다 왜 너는 항상 그녀에게 이기려 드니?  모든 싸움은 서로의 기와, 자존심, 고집 등이 부딪쳐서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네가 그 조그만 여자에게 이겨서 무얼 어쩌려고 그러니.  여자란 말이지, 자신이 잘못 했다는 걸 안다 해도 고개를 굽히려 들지 않아.  그건 고집이나 뻔뻔함만으로는 설명이 안돼. 최소한의 여자로서의 "자존심"때문이지. 여자는 자존심이 꺾이는 순간, 여자로서의 매력도 일순간에 상실하지.  이 세상이 모두 끝난 것만 같은 자포자기의 심정을 갖기도 하거든. 물론 너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겠지만, 여자의 속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단다.  혹시 그녀와 싸우게 되더라도 5번 중 3번 정도는 항상 져 주어라. 그렇다고 해서 넌 패자, 그녀는 승자가 되어 의기양양하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전보다 더 상냥하고 부드러워진 그녀의 태도를 접하게 될 걸? 여자는 남자의 무조건적인 이해를 갈구할 때가 많아. 알아도 모른 척, 그녀의 자존심을 받들어 주는 것이 현망한 길이며 사랑을 가꾸는 비결이란다.    ♡ 아들아! 환상은 욕심의 씨앗! 여자든 남자든 이성에 대해 크고 작은 환상을 갖고 있단다. 물론 너 역시 여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 거야. 너희 아빠만 해도 총각 시절, 여자는 화장실도 안 가고, 이슬만 먹고사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너희 세대야 그런 "순진함"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여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아라.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야. "사랑하니까", "여자니까"라는 이유들로 그녀의 생각이나 행동에 한계를 긋다 보면 그녀도 힘들겠지만 오히려 네가 더 힘들어질 거야. 비록 네 눈에 못마땅한 점도 있을 테고 눈에 띄는 단점도 있을 거다. 하지만 옥에서 티를 찾으려 하지 말고, 티에서 옥을 찾는 습관을 길러라.  지나친 환상은 널 괴롭게 할뿐만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단다. 괜스레 욕심을 키워 한참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나이에 불만 투성이어야 되겠니? 너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고 네 주위의 여자들의 장점부터 찾는 습관을 길러라. 특히 네가 사랑하는 여자라면 그녀의 단점도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단다.    ♡ 아들아! 화려한 꽃보다는 너만의 꽃을 찾아라 화려한 꽃은 꺾기 쉽겠지만 모두 한 순간이란다. 예쁜 여자를 보면 엄마도 같은 여자이지만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모두 그때뿐이지, 그녀가 너의 꽃은 될 수 없을 거야. 그녀의 가치관, 성격, 말투, 행동가짐, 취미 등 여러 가지가 어우러졌을 때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또한 화려한 외모의 여자들은 이미 너 뿐만 아니라 뭇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지. 그만큼 경쟁률도 높을 뿐더러 알고 보면 그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는거야. 하지만 너의 안목, 심미안으로 고른 꽃은 오로지 너만의 꽃이 되는 것이지. 한 순간 폈다 져버리는 화려한 꽃보다는 꾸준하게 빛을 더해 가는 실속 있는 꽃을 골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여자란 사랑받는 만큼 빛나게 되어 있어. 진실한 너의 사랑을 그녀에게 듬뿍 쏟아 보렴. 나날이 아름다워지는 한 송이 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5 15:23:18 | 허광무
※ 최대한 글을 부드러운 느낌이 들도록 다듬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알게 모르게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수단(쪽지, 이메일)을 통해 알려주시면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 저는 제 글에 대하여 읽으시는 형제 자매님들의 열린 참여를 기다립니다. 언제라도 제 글에 대해서 참여하실 부분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참여해 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다립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초등(국민)학교 음악 시간에 불러봤음직한 우리 민요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네 어르신들이나 부모님의 입을 통해서 들어보셨으리라 싶습니다.   참으로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민요는 이 <아리랑>을 떼어놓고 생각하면 서러울 정도로 우리네 가슴에 쾅 박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려고 하는 한 명 한 명의 죄인들을 바라보시고 끊임없이 참고 말리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품을 끝까지 떠나려 하는 죄인인 인간의 경우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창1:1) 그 위의 모든 만물들을 만드신(창2: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시고(마10:30) 우리 몸 속에 있는 것까지도 다 아시고(시139:15)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시139:7-10)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하나님을 전혀 의식할 수 없게 하고, 그래서 마침내는 그분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게 하는 것이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사59:1-2)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사59:1-2, 킹제임스 흠정역)   지금,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 피하려 했고, 그래서 마침내는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된 아담과 하와처럼(창3:6-8, 23, 24) 하나님을 멀리 떠나보려 하시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는 안타까움으로 펜을 잡았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여러분처럼 나의 죄가 넘쳤으므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려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엡2:8) 구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주님의 간절함으로 여러분께 호소하고 있습니다.(잠8:1)   저는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나서 여러분의 기분이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글을 읽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지 마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하나님 앞에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 글, 이 은혜의 복음을 읽고 듣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약4:14) 그리고,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심판이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히9:27) 이것은 여태껏 변하지 않았고, 이후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사40:8; 마24:35) 하나님의 말씀이 보증하는 우리 눈 앞에 있는 절대 불변적인 진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토록 고치기 어렵다는 암도 고쳐볼려고 무슨 일이든 하려 하는데, 이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영혼의 문제는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육신에 걸리는 암조차도 쉽게 낫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안고 사는 평생의 모든 문제들의 근본인 영혼의 문제는 아무도 고쳐줄 수 없습니다. 영혼의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고쳐줄 분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요14:6; 행4:12)   저는 이제 여러분께 강력히 선언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값을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로 지불하시고 고귀한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15:3-4; 골1:14(흠정역))   이제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자신의 구원자로 시인하시면 됩니다.(롬10:9-10)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사역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 그분을 직접 자신의 구원자라고 시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이 구원이란 선물을 과감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어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시기 전에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저와 같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2011-05-25 14:41:51 | 소범준
성경은 환란전 휴거를 말하고있습니다. 휴거후 환란기간동안에 일곱나팔이 울리는데 왜 고린도전서15장에서는 휴거시에 울리는 나팔이 마지막나팔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것입니다. 성경에 첫번째 아담 마지막 아담이 있듯이, 첫번째 나팔소리와 마지막 나팔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2011-05-25 00:10:24 | 최홍진
한참 전에 본 글인데 여기에 올려 봄니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않을때 "괜찮아,괜찮아"하면서도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면서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곳을 직장이라고 한다)에는 즐거운 일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세개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 시킬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여기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살이든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 :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 :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 : 아빠와 선생님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 :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다. 14세때 : 우리 아버지요? 세대차이가 나요. 25세때 :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 :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 :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 :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 : 아버님 께서 살아 계셧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를 안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하고 성가도 부르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 옮긴 글입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4 14:58:13 | 허광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그런데 제가 영어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해석문 중에 존댓말과 반말이 같이 있네요. 혹시 영어에도 그런 존칭이 있나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 알고 계시면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2011-05-24 07:13:14 | 조두현
수고하셨습니다. 비록 일부는 진심이 아니라 기독교인을 의식해서 결의에 참여했을지라도 한 나라 국민의 대표기관 이름으로 이런 결의문을 작성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2011-05-24 04:29:47 | 류인선
112TH CONGRESS 1ST SESSIONH. CON. RES. 38   Recognizing the 400th anniversary of the publication of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킹 제임스 성경의 출판 400주년에 부쳐   IN THE HOUSE OF REPRESENTATIVESAPRIL 12, 20112011년 4월 12일, 미국 의회   Mr. ADERHOLT (for himself and Mr. RAHALL) submitted the following concurrent resolution; which was referred to the Committee on Oversight and Government Reform 공동 결의 (CONCURRENT RESOLUTION) 킹 제임스 성경이 출판된 지 400주년이 되었다.킹 제임스 성경은 미국에서 출판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다.킹 제임스 성경은 권위역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영어의 언어적 형성에 독자적인 기여를 했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 일상적으로 쓰이는 수백 종류의 관용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킹 제임스 성경의 언어는 무수히 많은 시와 연설, 설교문, 음악, 노래, 문학 작품들을 통해 미국의 문화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성경이 가르쳐짐으로써 미국의 건국 이념에 담긴 시민 정부라는 개념과 관련 법률이 태동하였으며, 이에 대한 결정적인 공로자도 킹 제임스 성경이다.대통령을 포함해 공직에 종사하는 관료들은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 취임 선서를 킹 제임스 성경에다 손을 얹고 해 왔다.역대 국가 원수들도 성경이 미국의 발전에 끼친 탁월한 영향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민주당의 앤드류 잭슨 전대통령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조국을 지탱하는 반석”이라고 일컬었으며,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국내외로 대면하고 있는 이 모든 복잡하고 무시무시한 문제들의 대한 해답은 저 작은 책 안에 들어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킹 제임스 성경은 수많은 개인, 가정, 사회의 교육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킹 제임스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인쇄되고 가장 널리 읽힌 저작물이며, 올해로 드디어 출판 400주년을 맞이했다.2011년의 킹 제임스 성경 출판 400주년 기념은 교회 차원에서와 공공 행사 차원에서 행해질 것이며 관련 학회에서는 추가 연구가 논의되고 연설· 설교들이 오갈 것이다.킹 제임스 성경이 미국에 끼치는 영향력과 사회 기여도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그러므로 이제 국회는 상· 하원 공히(1) 킹 제임스 권위역 성경의 출판 400주년을 기념하며,(2) 그 성경이 미국의 수많은 가정과 개인과 기관들에 끼친 영구한 영향력을 인정한다. 그리고(3) 그 성경이 미국에 지금까지 베푼 공적을 치하하는 바이다. * 우리 같은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인데, 번역문이 올라와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제가 그냥 발번역 한 걸 올립니다. 도움 되셨으면 합니다.* 원문 사이트는 예나 지금이나 페이지가 굉장히 더디게 뜨며 속도가 느린 듯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21: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3 23:29:52 | 김용묵
* 스포일러: 이 글은 잘 나가다가 뒷부분부터 삼천포로 빠지는 구조임을 밝힌다. 분명히 예고했다.   본인은 정확하게 언제 구원받았는지 모르는 일명 '예수쟁이'이다. 고등학생이던 1998년 가을에 처음으로 성경을 한 번 완독했으며, 2002년 무렵에 KJV believer가 되고 세례 대신 침례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엔,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전체 거리 설교 때 난생 처음으로 preaching을 해서 지금까지도 이를 계속하고 있다.   주변의 불신자, 개독안티, 무신론자와 얘기를 나눠 보면, 그들은 교회 댕기는 주변 사람들의 행실 때문에 실망하고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잃은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디서 접했는지 별 희한한 교회, 예수 사칭하고 다니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사람에 의한 온갖 나쁜 기억과 응어리는 꼭 하나씩 갖고 있는 듯했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예수 못 믿겠다고.   물론, “크리스천들의 행실은 불신자들이 보는 성경”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상대로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고 본인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점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예외가 아니다-_-. 그런 못난 것들이, 자기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고상하게 산 사람들도 다 예수 안 믿었기 때문에 죽어서 지옥 간다고 말하면 그것만치 기분 나쁘고 정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는 애시당초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교회란, 열심히 도 닦고 인격 수련해서 구원을 받으려 애쓰는 고매한 사람들의 모임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다니는 일종의 병원 같은 곳이다. 병원에 완벽한 사람, 성한 사람이 다닐 리가 없잖아..;; 100% 완벽한 교회에 당신이 가입하고 나면 그 교회의 100% 완벽 무결성은 깨진다. -_-;;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 초청에 차별이 있던가?? 신앙생활이란 그런 마인드로 하는 거다.   그리고 기독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불신자들의 안목이 늘 객관적이고 정확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형 교회에 대해서는 부패하고 비리 많고 돈만 밝힌다고 욕하면서, 한편으로 진짜 성경대로 좁은 길을 고집하는 마이너 교회에 대해서는 자기밖에 모르고 편협하고 옹고집 교조주의라는 식으로 응수한다면? 교회는 어떤 노선을 가든 어차피 욕을 하게 돼 있는 불신자의 취향까지 만족시켜 줄 의무는 결코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마 11:18-19 같은 부류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기는 점이 하나 있는데, 신앙생활에 관한 한 사람 때문에 시험 들고 실족한 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온갖 오덕질과 괴팍한 성격 때문에, 남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사람이 원래 다 저렇나 식으로(ㄲㄲㄲㄲㄲㄲㄲㄲ) 시험 들게 하고 간증 망친 게 더 많을 것이며, 기독교계 전체의 관점에서는 내가 빚진 게 더 많을 것이다. -_-;;; 죄인을 받아준다는데 내가 왜 마다하며, 다른 죄인으로부터 끼친 여파에 그렇게까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사후 심판이 있다는 것, 인간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으며 인간의 의는 몹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거나 그에 반감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신이 인간을 지옥에 보낸다는 말에 불쾌해하기에는 인간의 죄악이 너무 극심하다는 현실에 훨씬 더 공감이 갔다. 이런 발상의 차이가 불신자의 사고방식과 신자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만들어 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누구 만만찮게 나만의 인생 개똥철학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고, 죄의 결과와 여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열폭하고 인생이... 으, 생각도 하기 싫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고전 15:10)   길거리에서 복음을 설교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자기만의 패턴이 있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패턴이 있다. 나는 내가 깨달은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성경이 어떤 책인지 먼저 얘기한 뒤, 인생은 유한하고 언젠가 죽음과 심판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얘기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경제· 교육· 정치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고 그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살인· 간음을 저질러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던 것,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던 것, 절대적인 선과 악이란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 이걸 전하려고 한다.   거리 설교라는 게 처음에 입을 떼기가 힘들다. 본인도 초창기에는 원고를 미리 써 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찾아 봤는데, 결국은 여러 번 하고 나니까 요즘은 원고 없이도 한번 말을 하면 최하 15분은 금방 지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복음과 구원 메카니즘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를 조리 있게 얘기도 곧장 할 수 있다. 내가 평소에 다른 곳에서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다가 말 더듬고 혀 꼬이고 실수하는 것에 비하면, 내가 생각해도 거리 설교는 꽤 유창하게 잘 하는 것이다. -_- (본인, 작년 여름에 간증할 때도 얼마나 말 자주 더듬고 말투가 어눌했던가? ㄲㄲㄲㄲ)   또박또박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고 나면 굉장히 기쁘고 후련한 마음이 든다. 이걸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이 주는 기쁨”이라고 한다. “네가 드디어 나에 대해서 공개 석상에서 당당히 증언을 할 정도로 성장했구나! 아이고 기특해라!” 정도? ㄲㄲㄲㄲ거리 설교가 주는 유익: http://biblebaptistpublications.org/streetpreaching.html 클릭. (영어)   그런데, 하루는 거리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득 이런 선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간절히 들었다. “여러분은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나라 철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전해 드리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어쩌구저쩌구... 중략)이처럼 철도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철도는 21세기의 트렌드에 어울리는 친환경 고효율 교통수단입니다. 우리나라 철도를 알면 역사와 지식을 보는 눈이 바뀝니다. 철도는 정서 수양과 교양 함양에 좋습니다. 철도를 알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깁니다. 이렇듯 철도 덕질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선한 간증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앞으로 철도에 관심을 갖고, 여행 갈 때 철도를 적극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나눠 드리는 열차 시각표를 꼭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설마 진짜로 길거리에서 이렇게 외치고 왔다면, 여기 계시는 크리스천들께서 “용묵 형제가 부디 철도를 끊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라도 하셔야 할 배도(背道)-_- 단계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철도를 전하는 데는 영적 전투가 필요하지 않다. 철도를 전하다가 순교? 순직?했다는 사람 얘기는 못 들었다. -_-철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죄, 죽음, 심판, 지옥 같은 유쾌하지 못한 주제를 꺼낼 필요가 없다.“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해 줘야지 왜 너만 독단적으로 구냐?” 이런 말을 들을 일도 없다.   요즘은 철도역, 시외버스 터미널, 고속버스 터미널을 통합해서 교통 허브로 건설하는 게 유행이라지만, 그게 무슨 교통수단간의 에큐메니컬 운동이랍시고 경계라도 해야 할 대상이지는 않다.   허나, 철도에는 불행히도 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하늘로부터의 보상이 있다고 약속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 인센티브가 없으니 철도 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해야지 뭐, 별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도 철도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는다. (뭐, 주변에서는 용묵 형제가 철도 덕질을 할 때마다 성령님은 탄식할 거라고 악담을 하는데... ㄲㄲㄲㄲㄲ) 새마을호 객실에서 Looking for you가 내 귀에 울려 퍼지던 그 날은 내게 정말 오순절 성령 강림절이나 마찬가지인 날이었다. 철도와 본인과의 만남은 가히 운명적이고 필연이었다.   본인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 밑으로 지하철이 깔리는 날을 꿈꾼다.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에서 “열 도시를 다스리라”(눅 19:17)가 ‘10개 철도 노선(사철 ㄲㄲ)을 다스리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사 40:3)는 사막에서 철도가 건설되는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어디 가서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나, 지하철 시스템에 대해서 강연이라도 실컷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철도 얘기를 담대하게 늘어놓고 싶다.   나는 한때는, 요즘 같은 영악하고 험악한 세상에 나 같은 별종, 괴짜, 덕후가 아니면 누가 성경 따위를 믿겠는지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나 말고는 이제 아무도 주를 안 섬긴다고 생각했던 엘리야 타입의 소영웅주의 중2병이긴 했다만, 세상의 유행 풍조하고 성경의 사고방식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다시 말해, 철도 덕후나 KJV believer나 비슷한 수준의 geek라고 생각했....는데, 후자에 속한 분에 따르면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으며, 그 둘을 상호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그러네.. ㅋㅋㅋㅋㅋ 정말인지?? ㅠㅠ[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3 23:22:37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