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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수 목사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소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안녕하세요? 저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인 인천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정동수라고 합니다.   오늘은 저의 성장 배경, 학업 과정, 일, 성경 확신, 교회 등에 대해 잠시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주중에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주말에만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2년 3월부터 지금까지 인하대학교에서 정교수로 25년 재직하였고, 앞으로 정년까지 8년이 더 남아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정동수 교수’를 검색하면 저의 공식 학력과 경력이 나오니 참조해 주십시오.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A0%95%EB%8F%99%EC%88%98&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3526540   저는 1959년 출생부터 만 32세까지 감리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반공 포로 출신의 아버님께서 제가 어릴 때부터 믿음 생활을 하시면서 온 가족이 인천의 용현감리교회를 섬겼고, 아버지는 소천하시기 전까지 장로로 20년 이상 섬기다가 1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1982년 9월에 유학을 가서 1988년 5월에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4년간 교수 생활을 하다가 귀국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고(故) 구영재 선교사님을 만나 천주교의 본질을 알게 되면서 여러 가지 신학 문제를 접하게 되었고, 밥존스 대학, 리버티 대학 등의 근본주의 침례교 학교들에 관심을 두면서 침례를 받고 침례교인(Baptist)이 되었습니다. 특히 보수적 근본주의에 매료되어 근본주의의 핵심인 ‘성경의 무오성’(Infallibility of the Bible) 관련 문헌들을 탐독하였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는 성경 이슈가 불어 닥치면서 1611년 이후로 근 400년 동안 영미권을 석권하며 모든 교회와 신학교의 신학과 교리를 정립해 주고, 5대양 6대주에 복음을 전해 준 킹제임스 성경(KJV)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교계가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저 역시 근본주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확인하고 싶어서 KJV, NIV, ASV, 개역성경 등을 비교해 보았고, 사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수십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결과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공인본문(TR)이 정확한 본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내용 개정 없이 400년간 사용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믿음(faith)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저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증언하지만 절대 누구에게도 강요할 생각이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없습니다. 이것은 과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개역성경에 단 한 개의 오류도 없다고 믿었던 믿음과 동일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다만 저는 많은 자료를 읽고 수천 시간 비교를 한 결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믿을 뿐입니다.   이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개역성경을 비롯한 다른 성경으로도 얼마든지 구원받고 믿음 생활할 수 있다고 믿고 가르쳤으며, 다만 저희 교회나 출판 사역 등에서는 저의 믿음에 따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만 사용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국가가 인정하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따른 개인과 교회의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의 밥존스 대학, 제가 다닌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 그 외 보수적인 침례교 대학들은 공적으로 100% 킹제임스 성경만 사용하고 있고, 아예 본인들의 학교 사이트 등에 킹제임스 성경만 사용한다고 공식적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신앙과 규칙이 그렇다는 것이며, 그것을 알고 입학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국내에서도 총신대, 대신대 학장님을 지내신 정성구 박사님께서 2014년 9월에 출간된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흰돌 출판사, 450쪽 분량)라는 책에 추천사를 쓰시면서, 킹제임스 성경과 그것의 근간이 된 공인본문이 종교 개혁자들의 본문으로 바른 것이며 여기서 나온 성경이 바르다고 증언하셨습니다.   저는 1992년에 국내에 들어와 여러 형제들(성서침례교회 목사들,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등) 과 사귀면서 약 8년에 걸쳐 번역을 시도하여 2000년 8월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초판을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생명의 말씀사’에서 총판을 하며 배급하고 있고 네 차례 교정을 거치면서 2011년에 5판을 냈습니다.   저희는 유료 광고를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일부 성도나 대조와 참조용으로 사용하기 원하는 분만 스스로 알아서 구매하고 있기에 많은 양이 팔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실 매출이 많지 않아 적은 규모의 지하창고에 책들을 보관하고 있고 직원은 한 명도 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고로 저는 과거에 장로교 합동 교단과 통합 교단에서 이단으로 결의한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와는 일면식도 없고 전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개역성경은 사탄성경이다!” “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등의 비상식적이며 비논리적인 주장 혹은 선동에 결코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런 주장을 천박한 것으로 여겨 늘 금기해 왔으며, 초창기에 만든 책자에도 명시한 바가 있습니다. 그 결과 그 단체는 저에게 육두문자가 포함된 심각한 인신공격을 하며 지난 20년 이상 저를 타협자 혹은 모방자 등으로 수없이 비방해 왔습니다. 말씀보존학회 이단 결의 당시 합동 및 통합 교단의 이단성 연구보고서를 보면 말씀보존학회가 이단 판정을 받은 이유가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 사용하는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독선과 과한 주장, 과격한 언행 때문임이 드러나 있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증언하였듯이, 저나 제 부모님 그리고 저희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의 95% 이상이 다 개역성경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국내 역사는 개역성경에 비해 무척 짧기 때문에 이는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구원받지 못한다거나 그것이 사탄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저는 분명히 믿고 그렇게 증언해 왔습니다. 유튜브에서 <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나요?>를 치시면 저희가 가르치는 것을 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4x8ldEGlw   또한 지난 15년 이상 저희와 거래한 대형 기독출판사인 생명의 말씀사에 확인해 보시면 저나 저희 출판사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저희 성경은 생명의 말씀사 인터넷 집계 베스트 성경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http://lifebook.co.kr/final/bibles/bible_best.asp   참고로 저희 교회와 출판사 사이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 www.CBCK.org출판사: www.KeepBible.com   저희는 저희가 출간하는 성경, 20여 권의 책, 제 설교 노트, 강해 노트, 교회 서류(헌법, 믿음 진술문) 등 모든 자료를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공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9년부터 미국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Pensacola Christian College) 신학대학원(Pensacola Theological Seminary)을 다녔고 2001년에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학교는 밥존스 대학 출신의 호튼 박사 부부가 세운 대학으로, 현재 미국의 침례교 대학 중 그 규모가 가장 큽니다(총 학생 수 5,000명 정도).   Pensacola Christian Collegehttp://www.pcci.edu/   또한 여기서 펴내는 홈스쿨링 교재 베카북(Beka Book)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교재이고, 미국의 근본주의 교회들과 학교들, 가정들에서 교과서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미 소개되어 있습니다.   A Beka Bookhttp://www.abeka.com/   이 학교는 또한 미국 정부의 인가를 받았기에 한국에서도 이 학교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장로교 목사님들의 자제들을 포함해 많은 한국 성도들의 자제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근본주의 교육 기관인 이 학교는 1990년대부터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을 공표하고 믿고 가르치며 저도 여기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그렇게 믿습니다.   저는 2001년에 미국에서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고 인천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가 모든 것이 미숙하여 1년 후 교회 문을 닫게 되었고, 2008년 5월부터 다시 시작하여 현재 주일에 아이들 포함해서 500여 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저희는 미국의 근본주의 독립침례교회를 벤치마크해서 교리를 가르치고 설교하며 주일 오전과 오후,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만 모이고 있습니다. 기존 한국 교회와 모임의 횟수나 형식이 다르지만 그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고 교리적 문제가 따르는 것도 아니며 미국의 침례교회들과 비슷한 형식일 뿐입니다. 제가 믿고 가르치는 조직신학 교리는 리버티, 댈러스, 밥존스 신학교와 거의 동일하다고 보셔도 됩니다.  저는 1988년 5월에 미국 메릴랜드 주립 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를 받은 뒤 28년 동안 냉동/공기조화/발전과 관련된 열역학, 열전달, 수치해석 등의 연구를 하였고 200편이 넘는 국제/국내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30여 건의 특허를 출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저의 성장 배경, 신학, 성경 사역, 교회, 하는 일 등을 소개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성령님의 큰 평안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주번역자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7 09:10:08 | 관리자
<하나님은 한 분이신가?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안녕하세요?   삼위일체야말로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특이한 것이며 사실 이 교리로 인해 많은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삼위일체를 가르쳐야 할 성경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을 가르친다면 그 결과가 어떨까요?   개역/개정/바른/현대인/공동: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역번역: God is one person. 딤전2:5) 킹제임스 흠정역: 한 하나님이 계시느니라(영어 KJV: There is one God).   이런 번역 문제는 본문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며 번역자들이 원어나 영어 자체를 또는 성경 교리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보통 기독교는 유일신교(Monotheism)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대개 이 말이 한 분의 신(one person God)을 믿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유일신교는 여러 신(many gods)이 아니라 한 하나님(one God)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God is one). 한 분이 아니라 하나이십니다(신6:4-5; 사45:5-6; 엡4:4-6, 딤전2:5,).      킹제임스 흠정역: 4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신6:4)KJB: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개역/개정: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바른 성경(공동, 현대인 등): 들어라. 이스라엘아,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고, 여호와는 한분이시니    개역/개정은 한 하나님, 한 주에 가깝게 ‘하나이신 여호와’라고 번역하였으나 다른 성경들은 모두 한 분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NIV는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으로 하여 한 분은 피하였습니다.   한 하나님, 한 주의 ‘한’은 복합적 단일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장 24절에는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창2:24).    즉 남자와 여자가 둘이지만 복합적 의미의 한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절대적 하나를 나타내는 ‘야케드’(Yachead)라는 말은 총 12번 나오지만(창22:2; 슥12:10의 only) 이 단어는 단 한 번도 ‘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구약성경에서 복합적 하나를 나타내는 ‘에카드’(Echad)는 ‘무리가 하나로 모인 것’ 등을 나타내며 한 주, 한 하나님의 ‘한’은 이것을 표현합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창1:26)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하시고(창3:22)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a.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벧전1:2; 롬1:7 등) b. 아들은 하나님이시다(요1:1; 요20:28; 요일5:20) c.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행5:3-4)         그런데 개역/개정성경처럼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여호와의 증인들 주장대로 하나님은 한 분 즉 아버지 하나님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한 분이 아니며 아버지, 아들, 성령님의 뚜렷한 세 분으로 존재하시되 이 세 분이 하나이십니다.    기존 성경들은 야고보서 2장 19절 역시 번역을 잘못하였습니다.   개역성경 등: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하나님이 한 분이기 때문에 귀신들이 떨까요?이상하지 않습니까?   실상은 그러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KJB: Thou believest that there is one God; thou doest well: the devils also believe, and tremble.   마귀들은 한 하나님인 존재하시며 그분이 심판하실 줄 알기에 떠는 것입니다.   심지어 NIV도 이 점을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NIV: You believe that there is one God. Good! Even the demons believe that--and shudder.   그러므로 이런 번역은 영어나 원어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 것이지 본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야말로 너무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의 근간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흠정역: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그런데 기존 성경들은 알렉산드리아 철학을 따라 요한일서 5장 7절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개역: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6 09:49: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기독교는 유일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믿습니다.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므로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이런 속성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삼위일체(Trinity)입니다.   삼위일체는 참으로 중요한 교리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예로부터 이로 인해 여러 이단들이 생겼고 한국에서도 많은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으며 심지어 복음적인 교단의 목사들이나 지도자들도 이런 이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태론이 이단인 이유는 무엇인가'는 양태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양태론자들은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을 가졌으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한분 하나님께서 모양만 성부, 성자, 성령의 다른 형식(forms)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령의 인격은 사라지고 단일한 신격만 남게 되어 이단 사상이 되어 버린다. 전형적인 양태론은 같은 하나님이 창조 시에는 성부 하나님으로, 구속에는 성자 하나님으로, 성화 때는 성령 하나님으로 활동한다고 본다. 즉 양태론은 교회의 정통적 삼위일체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58123/20120913/조덕영-칼럼-양태론-이-이단인-이유는-무엇인가.htm   예를 들어 누가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요,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성도들에게는 목사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이 곧 양태론입니다. 또는 “물은 얼음도 되고 액체도 되고 수증기도 된다.”는 주장 역시 양태론에 근접한 진술입니다.    이렇듯 양태론의 핵심은 한 하나님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고 성령님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분명하게 이단 교리라고 말합니다.   한국에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이고 성령님의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하며 그래서 침례를 줄 때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으로 준다.”고 합니다. 이런 이론이 생기게 된 것은 전적으로 기존 성경의 번역 때문입니다. 이들은 요한복음 17장 11절을 근거로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합니다.   개역: 나[예수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개역성경뿐만 아니라 개역개정, 바른 성경, 공동 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에 분명하게 예수라는 이름이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기에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합니다. 그들이 성경대로 그렇게 믿는다고 주장해도 도저히 반박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대로 믿는다고 주장하므로 본심은 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교리는 결코 이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한편 킹제임스 성경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흠정역: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KJB: And now I am no more in the world, but these are in the world, and I come to thee. Holy Father, keep through thine own name those whom thou hast given me,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로 되어 있습니다. 즉 개역성경에는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자들 즉 믿는 자들을 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다르면 교리가 변할 수밖에 없고 순진하게 성경대로 믿으려 하다가 오히려 이단이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것은 번역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 본문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과 목사들이 알고 있듯이 성경 번역의 대본인 본문(Text)은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개역성경 등의 모체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에서 나온 소수본문(Minority text) 혹은 비평 본문(Critical text)입니다. 그래서 같은 본문에서 나온 NIV, NASB 등도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이름이 예수임을 보여 주며 그 결과 예수 유일주의 같은 이단 교리가 발붙일 틈을 주고 있습니다.   NIV: I will remain in the world no longer, but they are still in the world, and I am coming to you. Holy Father, protect them by the power of your name--the name you gave me--so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    이제 성경적 삼위일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뚜렷이 구분되는 서로 다른 세 인격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한 하나님으로서 이 세 인격체 중 하나가 없으면 한 하나님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간을 생각해 봅시다. 시간은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며 각각이 다 시간이고 이 셋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시간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공간을 차지하면서 반드시 길이(x), 너비(y), 높이(z)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하나가 없으면 더 이상 물체가 아닙니다. 아무리 얇은 것도, 작은 것도 반드시 x, y, z 세 방향의 크기를 가지며 이로써 그 물질이(혹은 공간이) 구성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증거들을 우주에 많이 만들어 두셨습니다.   확실한 삼위일체 하나님 –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 을 우리의 유일한 주님으로 삼고 굳건히 세상을 이기며 나갑시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공학박사 
2016-12-16 09:00:41 | 관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인가요, 세계 혹은 계보인가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마태복음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인가요, 세계 혹은 계보인가요?”라는 질문을 주셔서 답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가 맞음을 보여 줍니다. 먼저 대상 성경 구절을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마1:1).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이 세상 성경 중에서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 신약 성경 서두에 “세대에 대한 책이라”(The book of the generation)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역본들은 개역성경처럼 ‘책’을 삭제한 경우가 많고 또한 ‘세대’를 ‘계보’(genealogies) 혹은 개역성경처럼 ‘세계’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역 성경인 NIV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예수그리스도의 족보 기록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의 ‘책’은 엄연히 그리스어 본문에 있으며 이 말은 그리스 말로 ‘비블로스’이고 영어로는 이 단어가 곧 ‘바이블’ 즉 ‘성경’이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단어를 삭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1장 1절에서 이렇게 ‘세대에 대한 책’이라고 선언한 뒤 2절부터 16절까지 단 15절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마태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혹은 계보에 대한 책이라면 당연히 책 전체가 족보를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태복음은 첫 장에서 단지 15절만 족보를 다룹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복음이 족보(계보)를 기록한 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 킹제임스 성경대로 마태복음이 세대에 대한 책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세대는 무엇일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먼저 ‘세대’(generation)라는 단어를 이해하려면 시편 22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시편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30, 3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씨가 그분을 섬기리니 [주]께서 그것을 한 세대로 여기시리라. 그들이 와서 앞으로 태어날 한 백성에게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되 그분께서 이것을 행하셨음을 드러내리로다(시22:30-31).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널리 알리는 씨는 곧 그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믿으면 주님께서 그 씨를 단 한 세대로 여기십니다. 따라서 ‘세대에 대한 책’이라는 말씀은 신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며 바로 거듭난 성도들이 이 책을 들고 주 예수님의 의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께는 자식들(children)은 있어도 손자들(grandchildren)은 없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성경적으로도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형제입니다. 손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한 세대입니다.   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 한 세대로서 모두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대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이 쉽게 풀립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마24:34).   예수님은 33절에서 분명히 제자들(너희)에게 말씀하셨으며 35-42절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 뒤 문맥으로 보아 여기의 세대 역시 그분을 섬기는 씨의 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마12:45에서 ‘사악한 세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세대에 대해 동일한 정의를 적용하면 이 사악한 세대는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어찌 되었든지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은 단지 한 세대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단지 시편 22편만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14:5; 24:6; 73:15; 78:6, 8; 102:18; 112:2; 사53:8; 렘7:29; 마23:36; 24:34; 막13:30; 눅21:32; 행8:33; 벧전2:9 등.   거기서 그들이 큰 두려움 가운데 있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들의 세대(generation) 안에 계시기 때문이로다(시14:5).   그는 감옥에도 가지 못하고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generation)를 밝히 드러내리요? 그는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으며 내 백성의 범법으로 인하여 매를 맞았도다(사53:8).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generation)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 구절들은 다 같은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것이야말로 성경 공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용어색인 즉 ‘Concordance’가 필수적입니다.   스트롱 코드 혹은 스트롱 번호는 무엇인가요?(용어 색인)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0   끝으로 신약 성경은 맨 처음에 책에 대하여 언급하고 맨 마지막에도 책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계시록 22장 1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신약성경에서 저주가 기록된 곳은 단지 여기뿐입니다. 이 저주는 ‘이 책의 말씀에 더하거나 거기서 빼는 자들을 향한 저주’입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이 1차적으로는 계시록이라고 믿으며 또 신약 성경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이 저주는 온갖 종류의 성경 비평가들 곧 성령님께서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 성령님께서 성경을 보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성경이 바르게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성령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보존되었다고 주장하면 그들은 우리를 가리켜 “마귀 들렸다” 혹은 “무식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세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첫 아담의 세대를 도입하면서 역시 창세기 5장 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세대들(generations)에 대한 책이라(창5:1).   5장 1절 이후에는 계속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즉 첫 아담의 세대들(generations)은 다 죽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의 세대(generation)에 속하면 살게 됩니다. 할렐루야!   결론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의 마태복음 1장 1절은 오역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세대를 이해하게 되면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12-15 10:43:56 | 관리자
'비유가 아니면’인가, ‘비유가 없이는’인가?   한국의 대표적 이단 중의 하나인 신천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마태복음 13장 34-35절을 인용합니다.   개역: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들은 34절 즉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사용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모두 비유이며 심지어 창세기 이후의 모든 성경 말씀이 다 비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비유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 혹은 단체(물론 신처지이겠지요)에게 성경을 배워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에도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들의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그들의 성경이 말하니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비유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성경 전체가 비유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사실 바른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마태복음 13장 34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들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이해가 부족함을 아시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요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쉬운 비유(예)를 들어 핵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존 성경에서 ‘비유가 아니면’으로 번역된 구는 영어로 ‘without a parable’이며 이것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비유가 없이는’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 성경 중 이것을 ‘비유가 아니면’으로 오역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의역 성경으로 유명한 NIV도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카톨릭 성경도 ‘비유를 들지 않고는’이라고 바르게 번역하였고 공동 번역도 ‘비유를 쓰지 않고는’이라고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개역성경을 번역한 대한성서공회는 이런 심각한 오류를 알고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 성서 공회는 2024년에 새 한글 성경을 발간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구절이 ‘비유를 들지 않고서는’이라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 성서 공회는 이런 오역을 신속히 발표하고 고쳐야 합니다.   이런 간단한 말씀이 기존 개역성경처럼 잘못 번역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무지 속에 빠뜨립니다. 성경의 오역으로 사이비 종파에 속아 넘어가 궁극적으로 생명을 잃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들(words, 단어들)을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정확히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구절의 번역이 의심쩍거든 꼭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구글 앱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이 성경의 앱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고 개역성경과 대조해서 비교해 가며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의 영감과 보존도 중요하지만 번역 역시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2016-12-15 10:15:2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국의 대부분 성도들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 셈이 맏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셈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의 특별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창5:32, 6:10, 7:13, 대상1:4에는 셈이 가장 먼저 나오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셈은 첫째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들의 조상이요, 연장자(형)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창10:21)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셈이 셈보다 ‘나이 많은 자’(the elder) 즉 연장자 야벳의 동생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기존성경은 다음과 셈이 형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역개정 등 :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한국 성도들의 장자 축복 개념은 대개 셈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음은 김경래 교수님이 쓴 <창세기 1-11장의 난해 구절 성경의 미스테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제가 쓰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이야기를 제시하려 합니다.   참고로 김경래 교수님은 총신대와 이스라엘 Institute of Holy Land Studies(M.A.)를 졸업하고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사본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전주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 노아 세 아들의 연령별 순서   일반적으로 노아의 세 아들은 셈, 함, 야벳의 순으로 일컬어진다(창 5:32, 6:10, 7:13, 9:18, 10:1, 대상 1:4). 대부분의 성경 독자들은 이러한 배열로 인하여 그들의 나이 역시 같은 순서대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노아에게 셈, 함, 야벳의 순서로 아들들이 태어난 것인가? 우리는 성경 본문을 통하여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어 번역본들에 나타나는 성경 오역이 바로 그것이다.   개역성경은 창세기 5장 32절을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 조그만 글자로 인쇄된 '된 후에'는 원문에 없으므로 문맥을 고려하여 번역문에 삽입한 것이다. 표준새번역 역시 이를 같은 뜻의 "노아는 오백살이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창세기 5장 32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노아가 오백 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이다.   이 문장을 통하여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노아가 오백 세 되던 해에 세쌍둥이가 태어났다. 둘째, 이들 세 아들이 노아가 오백 세 되기까지 차례대로 태어났다. 셋째, 노아가 오백 세 되던 해 첫 아들이 태어났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다른 두 아들도 태어났다. 히브리어 어법 상 앞의 두 가지보다는 세 번째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역과 표준새번역 둘 다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고찰해야 하는 구절은 창세기 10장 21절이다. 우선 우리말 번역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개역은 이를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라고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은 "야벳의 형인 셈에게서도 아들딸이 태어났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다"라고 번역함으로써, 둘 다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들 번역문은 과연 히브리어 원문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여기서 '야벳의 형'이라고 번역된 문제의 구절을 원문 및 고대 번역문인 칠십인역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이 두 가지로도 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데 충분하다고 본다.   창세기 10장 21절의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 본문은 ('악히 예펫 하가돌')이다. 마소라 학자들이 고안해낸 엑센트와 모음 부호를 무시할 경우 이 히브리어 구절은 두 가지의 직역이 가능하다. 첫째, '야벳의 큰 형제', 둘째, '큰 야벳의 형제'이다. 다시 말해서 '크다'('하가돌')라고 하는 형용사가 '야벳'과 '형제' 중 어느 것을 수식하느냐에 따라 이 문구의 해석이 달라진다. '야벳'을 수식할 경우 야벳이 형이 되고, '형제'를 수식하면 셈이 형이 된다.   마소라 학자들이 고안해낸 엑센트 부호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구두점 역할일 것이다. 마소라 성경의 엑센트는 여기서 '크다'가 '야벳'을 수식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마소라 학자들은 야벳을 셈의 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칠십인역 역시 마소라 학자들의 견해를 지지해준다. 이 구절에 대한 칠십인역의 번역문에 있어서 명사 '야벳'과 형용사 '크다'는 동일한 2격(소유격)을 취하고, '형제'는 3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큰 자'는 셈이 아니라 야벳인 것이다.   셈이 야벳보다 더 어리다는 사실은 창세기 11장 10절을 통하여서도 찾아볼 수 있다.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는 아르박삿을 낳았고"라는 이 기술에 의하면, 셈이 일백 세가 된 것은 홍수 후 이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이레 후 곧 2월 17일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40일을 내렸으며(창 7:9∼12), 노아 홍수는 햇수로 볼 때 2년이나 지속된 장기간의 대사건이었다.   '홍수 후 이년'(슈나타임 악하르 하마불')이란 히브리어 문구는 분명히 홍수 사건이 완전히 끝난 후 또 두 해가 흐른 뒤의 일임을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에게 노아 나이 육백 세와 육백일 세의 두 해는 홍수가 일어난 해로 기억되었을 것이고, 그 후 두 해(노아 나이 육백이 세와 육백삼 세)가 지나 노아의 나이가 대략 육백사 세(혹은 603)가 되던 해에 셈은 나이 백 세가 되어 아르박삿을 낳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셈은 노아가 오백사(혹은 503세)세가 되던 해에 태어난 셈이 된다. 이상 고찰한 바를 창세기 5장 32절("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과 묶어서 볼 때 셈은 결코 노아의 맏아들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노아는 분명히 500세에 맏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아가 504(혹은 503)세일 때 태어난 셈은 그의 맏아들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맞는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들의 조상이요, 연장자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창10:21) 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   이상으로 우리는 야벳이 셈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을 고찰해보았다.   그러면 사실 창5:32, 6:10, 7:13, 대상1:4에는 왜 셈이 가장 먼저 나올까요?   성경은 많은 경우 나이가 아니라 중요도 순으로 사람들을 배열합니다.   대상1:28,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이삭과 이스마엘이니라.   사실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살이나 많습니다.   또한 성경은 둘째 사람들의 책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사울과 다윗, 첫때 아담과 둘째 아담, 구약과 신약   하나님은 두 번째 사람 혹은 사건 등을 통해 중요한 일을 수행하십니다.   이런 자료를 통해 우리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고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입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12-14 09:19: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장신대 교수를 역임한 나채운 박사님의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성경 번역과 관련해서 많은 것을 보여 주는 매우 좋은 글입니다.   나채운 박사님은 1932년 경북 성주 출생으로 고려대학교에서 법학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학을 공부하고(문학석사),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과 벨더빌트대학교 및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신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노스웨스트기독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분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교수,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대한성서공회에서 성서 번역, 개정 위원으로, 한국찬송가공회에서 가사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우리말 주기도 사도신경 개정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최현배의 우리말본에 심취하여 후에 대한성서공회와 한국찬송가공회에서 성경의 번역·개정과 새 찬송가 개발에 다년간 참여하여 공적을 남겼고, 개정된 주기도문, 사도신경은 혼자서 개정을 하여 전 한국 교회가 사용하도록 그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700쪽이 넘는 <우리말 성경연구>(기독교문사, 1994, 절판)는 우리말 성경의 역사와 오류 등을 다루고 있는 심히 귀한 책입니다.   원글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jkkhh2232&logNo=50072478206   0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 영과 진리로 예배 (요 4:24) 개역--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개정--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개역 본문의 "신령과 진정"이 개정판에서 "영과 진리"로 바뀐 것이다. 이 원문은 en pneumati kai aletheiai 로서, 우리말의 "신령과 진정" (神靈과 眞情)은 합당하지 않고 "영과 진리" (靈과 眞理)가 바른 번역이다(영어성경에서는 예외 없이 in spirit and truth).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의 잘못된 예배관을 시정해 주는 말씀으로서,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의문적(儀文的)이고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제사를 부정 경계하는 것이며,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뜻은 아니다(그러므로, 영어로 쓰면 대문자 S로 쓰지 않는다).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이방인들 (사마리아인 같은)의 거짓 신에 대립되는 참 신에 대한 예배를 뜻하는 것이다. 즉 예배할 장소와 예배할 때와 예배할 대상을 바로 알아서 참된, 진정(眞正)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0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마 6:34) 개역성경에서의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가 개정판에서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의 개역으로는, 내일 일을 염려하되 오늘 하지 말고 내일에 하라는 말, 즉 염려하는 시간(날)에 관한 언급으로 이해되는데, 원문의 뜻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내일 일은 내일 자체가 염려할 것이니, 너는 도무지, 내일에도 염려하지 말라는 뜻, 즉 염려하는 주체(네가 아닌 내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3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도 “...그 날로 족하니라”로서 더 정확한 표현으로 바꾸었다.*3) 영어성경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1989)에서는 for tomorrow will bring worries of its own 으로, 우리말 표준새번역에서는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로 되어 있다.   여기 '진정'은 한자어 (국한문 성경에서)로 '眞正'이 아니고 '眞情'이니 더더구나 안 된다. 이 본문은 목회자들이 많이 인용하고, 또 설교의 본문으로 삼는 중요한 구절인데도, 대다수의 설교자들이 개역성경 본문의 번역이 잘못되어 있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설교해 온 것이 사실이다 (주석서에서도 성경 본문의 번역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 이제 설교자는 더 이상 지금까지의 개역성경을 쓰지 말고, 개정판을 씀으로써 우선 본문에서부터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0 증거→증언 (요 1:7) “그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 에 대하여 증언하고”개역성경에서 ‘증거하다’가 동사로 쓰인 경우는 수다하다. 그러나 ‘증거하다’는 결코 사전에도 없는 틀린 말이다. 즉, ‘증거’는 명사로만 쓰이는 것이며, 거기에 동사 어미 ‘--하다’를 붙여서 동사가 될 수 없다. 원어 Martureo 에 대한 바른 번역은 ‘증언하다’이며, 이것은 이번 개정판에서 모두 고쳐졌다.
2016-12-13 17:19:08 | 관리자
누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는가?   솔로몬 사후에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백성이 부담을 줄여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결국 왕국의 분열을 초래하였습니다.   북쪽의 10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왕국을 건설하자, 그는 자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주님을 구하면서 첫 3년 동안은 바르게 행합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신 일이 역대기하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유다에 수비하는 도시들을 건축하였습니다(5-12).2. 그는 이스라엘에서 도망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함들과 함께 왕국을 바르게 세웠습니다(13-17).   그 뒤에 르호보암의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솔로몬 비슷하게 아내를 많이 두었습니다. 그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취하여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더라(21).   그는 총 78명의 여인들로부터 88명의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우두머리로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행하였습니다.   그가 지혜롭게 행하여 자기의 모든 아이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지방 곧 성벽을 두른 모든 도시에 두루 흩어지게 하고 그들에게 양식을 후히 주었더라. 그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더라(23).   그런데 23절 끝에는 매우 재미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내를 많이 구하였더라(23).   78명의 아내를 구하였으니 이 말씀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해를 준비하다가 기존 성경을 보았더니 마지막이 이상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개역 및 개역개정: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   기존 성경은 르호보암이 많은 아내를 탐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아들들을 위해 여러 아내를 구해 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른 성경, 공동 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상해서 영어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NIV, ASV, NKJV 등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맨 끝에 ‘for them’ 즉 ‘그 아들들을 위하여’를 첨가하였습니다.   2 Chron 11:23   And he desired many wives. KJVHe also sought many wives for them. NKJVAnd he sought many wives for them. NASBHe gave them abundant provisions and took many wives for them. NIVHe gave them abundant supplies, and he sought many wives for them. AMPAnd he sought (for them) many wives.   첨가한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요?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for them’이 없습니다.   NKJV, NASB는 for them을 이탤릭으로 처리하여 첨가하였음을 시인하였고 ASV는 괄호로 처리하여 동일하게 시인하였으며 NIV, Amplified Bible은 이탤릭체가 아니 정체로 기록하여 진실을 알 수 없게 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영어 KJV는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하여 르호보암이 많은 아내를 탐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반면에 다른 것들은 르호보암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들을 위해서 여러 아내들을 구해 주었다고 합니다.   현명한 독자께서는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샬롬   패스터 
2016-12-12 12:04: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진해에 있는 등대성서침례교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등대성서침례교회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는 근본주의 독립침례교회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5_04&write_id=39   오랫동안 부산에서 선교하시던 레이 레드먼 선교사님이 이 교회를 인도해 오시다가 2016년 9월 25일부터는 선교사님 후임으로 강찬재 목사님이 부임해 섬기고 있습니다. 참고로 강 목사님은 부임 전에 일산 갈보리침례교회에서 부목사로 3년간 섬기셨습니다.   현재 진해를 비롯한 인근 창원, 마산 등의 지역에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교회는 100여 명이 모일 수 있는 자체 예배당과 교육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교회가 성경이 말씀하는 신약교회로 굳건히 자라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또 가까이 계신 분들은 방문하고 교회로 모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큰 평안을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12-06 10:31:51 | 관리자
안녕하세요 형제님의 질문 자체가 정확히 무엇을 질문하는지 잘 이해가 않되지만 7절의 진정한 뜻은 김형제님의 성경사전의 내용에서와 같이 후손을 말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아들들은 므낫세나 여호야긴이나 시드기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모두 히스기야의 아들들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아들들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다니엘 등입니다. 이들은 모두 왕의 씨들이며, 느부갓네살의 내시장관과 치리자의 권위아래 두었습니다 . 원하시는 답변인지는 몰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6-11-25 11:11:55 | 김경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형제님께서 답해주신 것 중에 '음부(陰部)'라고 하는 것은 지옥(하데스)의 불교식 표현으로 '귀신'과 함께 기존 우리말 성경들에서 잘못 번역된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번역에서와 같이 지옥(hell)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아 잠시 말씀드립니다.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이 곳곳에 계시는 것이 참 기쁜 일입니다.^^
2016-11-23 20:15:59 | 정진철
이현철 형제님 반갑습니다. 킹스타운 침례교회에 다녀온지도 1년이 훌쩍 지났네요. 저희 가족이 방문하였을때는 못 뵈었던 성함인데 그래도 너무너무 반가워요.^^ 김영배 목사님과 김수진 자매님 및 모든 성도님들 안녕하시지요?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우리 킹스타운 침례교회에서도 좋은 소식이 날로 더해지기를 늘 소망하며 언젠간 다시 방문할 기회가 된다면 이 곳에 못다한 인사 오랜시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2016-11-20 10:49:19 | 김남희
형제님의 귀한 글에 언제나 도전이 되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깊이 생각하여 쓰시는 글이 얼마나 큰 유익이 되는지 모릅니다. 형제님도 늘 말씀으로 더욱 힘 내시고 내년 이맘때는 형제님 블로그에 이민 광고 추가 덕분에 캐나다에 많은 성경 신자분들이 이민 오셔서 기쁜 소식 엄청 전해드릴것도 기대해봐야 겠네요.ㅎㅎ 힘주시는 글 감사드려요^^
2016-11-13 22:20:19 | 김남희
차분한 듯 늘 열정이 넘치시는 김 자매님, 먼 곳에서 고생이 많으시네요. 뚝 떨어져 있으면 때론 기운이 빠지고, 열심히 하는 만큼 반응이 없으면 허탈할 때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늘 말씀으로 힘내시고 내년 이맘때도 기쁜 소식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2016-11-13 10:47:09 | 김재욱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마네요.. 모임으로 인해 사랑한다는 말..축복한다는 말...응원 해주신다는말..들을 너무 오랜만에 듣는것 같아요. 진짜 모질게 악바리처럼 1년을 버텨온것 같어요. 수많은 비난과 욥의 친구들같은 잘 들어보면 좋은 말 같은데 집에 와서 곰곰히 되새겨보면 분해서 잠이 안오는 시간을 보내며 버텼는데 그래도 최근에 한가정이 오랫동안 정목사님 말씀을 들으시고 고민하시다가 용기를 내어 와 주셔서 정말 기쁘답니다.^^ 청원자매님.문선자매님. 멀리서 응원해주시고 든든히 늘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저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16-11-13 05:07:06 | 김남희
김남희 자매님, 오랫만에 keepbible을 통해 만나니 반갑습니다.^^ 자주 방문하셔서 좋은 글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임길원 형제님과 예쁜 두따님과 함께 신실하게 영적인 수고와 함께 육적인 수고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유투브 조회수가 2위이지만 캐나다가 워낙 넓어서 토론토 외에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도 많아서 기대만큼 성경신자들이 토론토에 많지는 않은가 봅니다. 토론토에 사는 분들이 아닐지라도 댓글이나 전화, 카톡 혹은 이메일로 연락하고 지내시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 사시는 분들 우리 남희 자매님에게 연락 많이 주세요~~~ 국경을 넘어 많은 가족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교제해주신 오혜미 사모님과 동행해주신 가족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토론토 성경신자 모임에 참으로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1년을 지나며 많은 아픔과 그리고 또 기쁨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말없이 기도로 응원하는 이들이 있으니 지금까지 해오신 것처럼 씩씩하고 야무지게 계속 나아가시길 박수로 응원합니다. 자매님 많이많이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아자! 아자! 화이팅!
2016-11-13 04:41:47 | 최문선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분이 marvel, astonish의 차이에 대해 묻기에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이것은 둘 다 놀라다는 뜻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놀랄 때(marvel) 그는 속으로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논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놀랄 때(astonished) 그는 아무 생각도 못한 채 바라만 봅니다.   한편 어떤 사람이 놀랄 때(astonied) 그는 그 일에 압도되어 돌(stone)처럼 됩니다. astonied 안에 stone이 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 단어는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옵니다.   marvel의 경우 당사자는 여러 이유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상히 여기다로 번역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astonished의 경우 당사자는 거의 얼어붙은 상태입니다. 능동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대개 바라만 봅니다. 이것은 깜짝 놀라다로 번역된 경우가 많습니다.   astonied의 경우 당사자는 완전히 얼어붙어 돌처럼 됩니다.911 테러를 목격한 사람은 astonied 상태일 것입니다. 즉 돌처럼 어안이 벙벙한 상태입니다.   marvel은 많은 경우 기적과 연관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말씀으로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자 제자들은 놀랐습니다(marvelled). 즉 그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는지 논리적인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놀라며 이르되,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심지어 바람과 바다도 그분께 순종하는가! 하더라. But the men marvelled, saying, What manner of man is this, that even the winds and the sea obey him!   예수님이 12살에 성전에서 박사들과 토론하는 것을 보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astonished, 눅2:47).   그분의 말을 들은 모든 자들은 그분께서 깨닫고 답변하시는 것들로 인하여 깜짝 놀라더라.And all that heard him were astonished at his understanding and answers.   이사야서 52장에서 대언자는 메시아의 얼굴이 너무나 상해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놀랐다고 말합니다. 여기는 돌처럼 굳었다는 astonied가 사용되었습니다(사52:14).   그의 얼굴이 누구보다도 더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의 아들들보다 더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너를 보고 놀랐느니라. As many were astonied at thee; his visage was so marred more than any man, and his form more than the sons of men:   이런 묘한 차이를 우리말로 다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썼습니다. 제 의견과 달라도 괜찮습니다. 이 셋 다 놀라다의 의미로 보면 됩니다.   샬롬   패스터
2016-11-12 16:49: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Out of’와 ‘from’에 대하여 묻기에 간략하게 답을 드립니다.   ‘from’은 대개 출발점을 나타내므로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out of’는 문맥에서 뜻이 결정되므로 사람마다 달리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래아 한글 내장 영어 사전에서 Out of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1. ⦗운동·위치⦘ …의 안에서 밖으로, …의 밖으로, …의 안으로부터(⟨OPP.⟩ into); …의 밖에서, …에서 떨어져《문맥상 명백할 때는 of가 생략됨: go out 밖으로 나가다》┈┈• a few miles ~ of 〔away from〕 Seoul 서울에서 몇 마일 떨어져(서)┈┈• come ~ of 〔from〕 the room 방에서 나오다《out of는 안에서 밖으로의 운동을, from은 기점(起點)을 강조함》 2. ⦗어떤 수에서의 선택⦘ …에서, …중(에서)┈┈• one ~ of many 많은 것 가운데서 하나 3. ⦗범위⦘ …의 범위 밖에〔범위를 넘어〕, …이 미치지 않는 곳에.┈┈• The plane was ~ of sight. 비행기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Never let these children ~ of your sight. 이 아이들로부터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out of’에 몇 가지 뜻이 있으므로 영어 성경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눅5:3을 보면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신 뒤 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분께서 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더니 he taught the people out of the ship.   이런 경우 그분은 배에 앉아 말씀하셨고 그분의 가르침은 배에서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분께서 배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셨다”고 해석하거나 “배 밖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오역입니다.   눅 5장 1~3절의 문맥에서 기록자 누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배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셨다”것이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약성경을 기록한 그리스말은 이런 전치사 하나까지 세밀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out of’에 해당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1537  ejk   ek {ek} or ex {ex}기본전치사, ‘원천’(동작이나 활동이 ‘시작하는 시점’)을 나타냄;(장소,  시간, 원인, 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직접이나 간접으로)‘로부터’, 후에, ~중에, ~에 의하여,  엄청나게, ~에게서,~로 말미암아, ~으로 만든, ~에게 속한, 자주  같은 일반적인 의미로 복합어에서 사용, 자주 기원,원인, 동기, 이유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 <눅 1:5;골 4:11>전. out of, from;   성경에서 ‘out of’의 용례는 ‘from’의 용례와 거의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사야서 2장 3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법이 시온에서 나아가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라.for out of Zion shall go forth the law, and the word of the LORD from Jerusalem.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으로 가면 out of나 from에 해당하는 말이 없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그냥 시온과 예루살렘만 나와 있습니다.즉 전치사가 없어도 히브리 사람들은 앞뒤 문맥을 보고 ‘out of’나 ‘from’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글을 읽었습니다.   물론 영어나 우리말에서는 ‘out of’나 ‘from’이 있어야만 번역이 가능합니다.   이 경우 ‘out of’나 ‘from’이 출처를 이야기함을 누구라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구절을 “시온 밖에서 법이 나아간다”거나 “시온 밖에 있는 법이 나아간다”고 하면 오역이 됩니다.   요나서에는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가 토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제 {주}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시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더라. (1:17)그때에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주} 자기 [하나님]께 기도하며 (2:1)이르되, [ …….. 요나의 기도 내용 …… ], 하니라. (2:2-9){주}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내니라. (2:10)   2장 1절은 영어로 다음과 같습니다.   Then Jonah prayed unto the LORD his God out of the fish's belly,   이런 부분 역시 “요나가 배에서 나와 밖에서 기도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는 고래의 배 속에서 기도한 것입니다(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몸은 고래 배 속에, 그의 혼은 지옥에 있었습니다). 다만 성경이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기도하였다고 하므로 그대로 받으면 됩니다. 그 뒤에 10절에서 고래는 요나를 토했습니다.  베들레헴 성경 소프트웨어로 10여 종의 우리말 성경을 보면 모두 고래 배 속에서 요나가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정상적인 해석입니다.   반즈 주석, 매튜 헨리 주석, 아이언사이드, 제네바 성경 노트 등 제가 가진 모든 주석서는 다 그가 고래 배 속에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he prayed in the fish's belly.).   그러므로 이런 데 나오는 ‘out of’를 ‘밖에서’로 해석하면 오역이 됩니다. 어떤 미국인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매우 많습니다. 구약 창2:10과 신약 행7:4를 보겠습니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나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개의 근원이 되었는데(창2:10)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became into four heads.in the fish's belly.   이에 그가 갈대아 사람들의 땅에서 나와 하란에 거하였고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그분께서 그를 거기에서 지금 너희가 거하고 있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7:4).   Then came he out of the land of the Chaldaeans, and dwelt in Charran: and from thence, when his father was dead, he removed him into this land, wherein ye now dwell. 이렇게 같은 장소에서 나오는 경우 영어 성경은 ‘out of’와 ‘from’을 번갈아가면서 씁니다. 이런 데서 예외는 찾을 수 없습니다.   창2:10을 “강 하나가 에덴 밖에서 나가”로 하면 오역입니다. 행7:4를 “그가 갈대아 사람들의 땅 밖에서 나와”로 하면 오역입니다.   이런 데 사용된 ‘out of’는 한결 같이 출처를 뜻하지 출처에서 나와 현재 있는 곳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잘 이해하면서 성경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설명한 것과 달리 ‘밖에서’로 해석하고자 하면 그리해도 됩니다. 아무도 그것을 막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이역이 아니라 오역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6-11-12 16:12:4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