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지역 교회의 소식처럼 반가운 것도 없을 듯합니다.
요즘 교회들의 문제는 알겠는데
그러면 어느 교회를 가야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적지 않아서 무척 곤혹스럽습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많은 어려움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은혜침례교회의 모습에 감사합니다.
지역의 많은 분들이 동참하는 하나님의 참된 교회로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겠습니다.
2015-09-08 08:53:23 | 김재욱
광주 은혜 침례교회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몇몇 형제 자매님들이 지역 교회란에 광주 은혜침례교회 사이트가 보이지 않아 궁금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 더 나은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에 있으며 조만간 새로운 홈페이지 주소를 올릴 예정입니다.
더불어 교회 형제, 자매님들이 한 마음이 되어 목사 임명식을 시행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킵바이블 사이트를 보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및 바른 교리에 대해 알게 되어, 전라도와 광주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문의를 해오고 직접 교회에 방문하고 계십니다.
새로 오시는 성도님들로 인해 교회도 생동감이 넘치며, 이를 통해 교회가 바른 말씀과 바른 교리에 서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합니다. 아울러 예수님을 진실되게 바르게 전하는 교회가 되고자 광주 은혜 침례교회 성도 모두가 힘을 합하고 있습니다.
광주 은혜 침례 교회를 위해 많은 관심을 갖고 성원해 주시는 킵바이블 형제, 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광주 은혜 침례 교회에는 풍성한 교제와 음식(?)이 있습니다 ^^
연락처 : 복음 전도자 한재석 010-8978-8275
모임장소 : 광주시 광산구 송정리 영광통 사거리 KT 송정 빌딩 3층
모임시간 : 수요일 저녁 8시, 주일 오전 11시
2015-09-07 23:07:36 | 한재석
《月刊 「건강과 생명」 2015년 9월호 特別寄稿》
동성애 이슈에 부쳐
J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먼저 며칠 전 점심시간에 초코 쉐이크를 사주신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씀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 같은데 뒤늦게나마 메일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교제의 시간이라 경황이 없어 마무리도 못하고 각자 오후 일과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 쉐이크의 훌륭한 맛은 지금도 제 미각회로 내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탁월한 디저트를 선물하여 주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던 점은 맛있는 음료를 마시며 경청하였던 교수님의 동성애에 관한 견해에 대해 제가 구체적으로 답변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교수님께 메일을 드려 제 의견을 소상히 밝히고 그럼으로써 서로 간에 영적인 유익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이처럼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J 교수님께서는 평소 교수님이 존경하는 K 목사님의 ‘동성 결혼 시대의 믿음’이란 제하의 설교문을 읽으시고 그분의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판단의 기준은 어떤 목사나 신학자나 영적 지도자 등과 같은 사람의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롬3:4).
그러면 이제 K 목사님의 설교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 훼손
우선 K 목사님은 설교의 서두에서 “기독교인들 중에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동성애 때문에 심판받았다는 소문이 널리, 그리고 깊이 퍼져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동성애 때문에 심판받은 사실이 그저 ‘소문(所聞)’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소문’은 사전적 정의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전하여 들리는 말’입니다. 즉 K 목사님은 ‘소문’이란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함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심판은 성경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총체적인 타락과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인데, 동성애 때문이라고 오해합니다.”란 부연설명까지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단골메뉴가 바로 이와 같은 주장인데 그들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성경을 최고의, 그리고 최종의 권위로 믿습니다.” 하면서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 말씀은 모두 여섯 개”라 하고는 이를 소개합니다. 소개로만 끝내지 않고 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말하고 나서 “이 해석에 어느 정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이라 한 후 동성애에 대한 바울의 정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 전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즉 성경 말씀의 선포 자체로 끝나지 않고 인본주의적인 해석을 첨가하는 것은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동성애지지자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아울러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해 언급된 구절들(창19:5; 레18:22,23; 20:13; 신23:17,18; 삿19:22,23; 왕상14:24; 15:12; 22:46; 왕하23:7; 욥36:13,14; 롬1:26,27; 고전6:9,10; 딤전1:10, 유1:6,7) 중 반 이상을 생략하고 단지 여섯 구절이 전부인양 언급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특히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총체적인 타락과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란 본인의 주장이 틀렸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유다서를 배제한 것은 고의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것들의 주변 도시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음행에 내주고 낯선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된 것과 같으니라.”(유1:6,7, 이하 흠정역)
분명히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가 자기를 음행(fornication)에 내주고 낯선 육체(strange flesh)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낯선 육체에 대한 음행이 없었더라면, 즉 동성애가 만연되지 않았더라면 소돔과 고모라는 결코 유황과 불로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창19:4-11; 23-25).
성경 말씀을 잘 모르더라도 동성애를 뜻하는 영어 단어 소도미(sodomy)가 어떻게 유래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지 상식적으로 헤아려 본다면 K 목사님을 비롯한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누구든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성경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문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아예 제거해 버리는 이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2. 자살
K 목사님은 동성애자들을 크게 두 종류로 ‘타락한 동성애자들’과 ‘타고난 동성애자들’로 나누고 있습니다. 운(韻, rhyme)을 맞추어 동성애자들을 이렇게 둘로 대별하기 위해 K 목사님은 세 가지 논거를 들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자살’입니다. K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자살은 죄다. ~ 우울증이나 다른 사정으로 인해 자살로 몰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 자살한 사람들의 사정이 모두 다르듯,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을 교리적으로만 단죄할 수 없듯이,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교리만으로 정죄하고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자살은 죄다’라는 생각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자살은 죄다. -> 죄인은 지옥에 간다. ->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이 논리를 따라갑니다.” 자살은 죄며, 우울증이나 다른 사정으로 인해 자살로 몰린 사람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되었든 잘못된 선택입니다. K 목사님의 논리와 달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때론 자살충동을 느낄 수 있겠지만 자살을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인내의 본이 되는 자로서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였던 욥이나 구약을 대표하는 자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 인정받은 모세, 그리고 메시야가 오기 전에 보냄을 받아야 하는 자로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하였던 엘리야 등에게도 자살 충동이 있었습니다(욥1:1; 7:15,16; 약5:11; 민11:15; 12:3; 요1:17; 왕상19:4; 왕하2:11; 말4:5). 그렇지만 그들은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살하면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입니다(삿16:21-31; 히11:32; 삼상28:19; 31:1-6). 진실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죽음을 맞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요1:12; 롬10:9,10).
아울러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살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확고한 것처럼 동성애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성경적 진리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졸저 ‘성서건강학’ 중 ‘자살’ 칼럼이나 졸저 ‘성경으로 세상보기’ 중 ‘동성애가 복음에 미치는 영향’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K 목사님께서 일부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일반화시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에 대해서도 무지하리라 예측하고 자신의 판단을 받아들이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성애 이슈에 대해 일종의 침묵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잠16:18,19; 눅19:40).
3. 타고난 동성애자
두 번째 논거로서 K 목사님은 설교의 본론에서 ‘동성애가 선천적’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든, 어느 사회든지 인구의 3-5% 정도가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거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을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인구의 3-5% 정도가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라고요? K 목사님은 또한 설교의 결론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동성애자들은 더 흔해질 것입니다. 인구의 3-5%면 적은 수가 아닙니다. 통계적으로 말하자면 30명이 모여 있을 때 한 사람 정도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타락한 동성애자들’과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구별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결론적으론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서구 인구의 2-3%인 동성애자보다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 모두가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란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렇다면 동성애는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동성애는 결코 선천적이지 않습니다.
우선 동성애가 유전이 아닌 과학적 근거는 자녀를 적게 낳는 행동양식은 유전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남성 동성애자의 15%만이 결혼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하기에, 동성애 유전자를 가진 집단에 속한 사람 수가 점차 줄어들어서 동성애는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어야 합니다.
돌연변이에 의해 정상적인 유전자가 손상되어 나타난 이상 현상이라는 주장도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전적 결함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질환은 0.25% 이하의 빈도를 가지고 있고, 모든 유전질환자를 합치더라도 전체 인구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며, 동성애자 수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1993년에 동성애자인 해머에 의해 Xq28과 남성 동성애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발표된 논문이 아마도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주장을 확산시킨 주범일 텐데요, 이것을 포함하여 동성애 유발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 모든 논문들은 후속 논문들에서 그 연구 결과들이 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온라인에는 Xq28과 남성 동성애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해머의 결과는 소개되고, 라이스 등에 의해 동성애 유발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과와, 해머를 포함한 연구팀이 많은 가계를 조사하여 Xq28과 동성애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과는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체구조에 의한 연구 및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연구 등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들에 의해 왜곡된 결과들이 나왔지만 최근의 대규모 연구결과들에 의해서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요8:32,44).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다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라온누리’에서 출간된 ‘동성애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4. 언론
이처럼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음에도 K 목사님의 경우처럼 동성애가 선천적이라고 믿게 만든 주범은 언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술하였듯이 국내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미디어는 동성애에 대한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오히려 이의 확산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며칠 전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게재된 ‘디지털 썰전’이라는 사회현안 투표 사이트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설명한 동성결혼 반대 문구를 보십시오. 그 내용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부재로 시기상조이다.’입니다. 즉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면 동성결혼은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반대를 누르는 사람에게조차 ‘당신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아직 안되어 있는데 동성애에 대해 앞으론 제대로 인식하라’고 세뇌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더욱 가관인 것은 투표종료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간발표라는 형식을 빌려 7월 13일 오후 1시 21분경에 허용 41% 반대 59%로 동성결혼 지지수가 가장 높았던 상황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다수인 것처럼 기사를 발표하고자 했으며, 7월 14일 0시 투표 종료 시에 ‘반대 71%(131,439명), 찬성 29%(53,407명)’으로 최종집계가 나왔으나 14일 오전 6시에 찬성 35%, 반대 65%로 수치가 조작된 채 홈페이지에 게재가 된 사실입니다.
비단 이뿐입니까. 올해 초 중앙일보의 자회사인 케이블방송 JTBC에서는 청소년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동성애에 빠진 여학생들이 오랜 시간 깊은 키스를 하는 장면이 방송되어 청소년들 및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었지요. 청소년 시기는 성적 정체성이 확립되는 중대한 시기로 자칫 잘못된 성 정보가 주어질 경우 성 정체성 혼란과 성 정체성 장애를 가져 올 수 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중앙일보가 (해킹 당했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동성결혼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고자 여론조작 행위를 조직적으로 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중앙일보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매스미디어가 친동성애자들에 의해 장악이 되어 있으며 심지어 뉴스앤조이, 복음과 상황, CBS 등 기독교 언론에서조차 동성애 확산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향으로 K 목사님과 같이 속임을 당하고 또 그럼으로써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본의 아니게) 속이게 되어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에 대해 분별력을 잃게 되는 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요8:44; 고후4:4; 엡2:2).
5. 인권
또한 언론에서 동성애가 후천적이라는 과학적 진실 하나만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선진국의 자료에 의하면 ‘신규’ 에이즈 감염자의 70% 이상이 남성 동성애자들입니다. 특히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보고에 의하면 ‘13-24세’ 신규 남성 에이즈 감염자인 약 94%가 동성 간 성행위로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성과학연구협회는 “동성애는 에이즈를 전파하는 위험행동”이라고 발표했지만 언론에서는 (국민일보를 제외하고는) 이를 결코 보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요? 2011년 9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정한 ‘인권보도준칙’때문입니다. 그 안에 ‘성적소수자(동성애자)를 에이즈 등 특정질환이나 사회적 병리현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2012년 3월 이전에는 언론사들의 동성애 지지보도 비율이 51.75%였으나 그 이후에는 77.25%로 급격이 상승했고, 조만간 90%이상이 되지 않을까 예측됩니다.
즉 ‘인권’(?)을 내세워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동성애를 거리낌 없이 쉽게 접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지요.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국내에서 지난 10년 동안 성인 에이즈 감염자 수는 4배, 지난 14년 동안 청소년 에이즈 감염자 수는 26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2013년 에이즈 감염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은 공식적으로 ‘에이즈 확산 위험국가’가 되었지요.
에이즈 감염자 1인당 평균 평생 5억 원 정도의 치료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에이즈 환자 1명의 에이즈 억제제 약값 비용만 한 달에 약 3백만 원 곧 1년간 약 3천 6백만 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에이즈 환자가 1만 명이면 한 해 이 약값만 3천 6백억 원이고 10만 명이면 3조 6천억 원이 됩니다. 이 모든 비용은 100% 국민 세금으로 부담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에이즈 치료비용을 100%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나라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온 국민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K 목사님께서는 ‘타고난’ 동성애자들이라는 허상을 강조하는 대신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심각한 실상들을 언급하면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예언자적 사명을 잘 감당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렘14:14).
6. 교육
미디어와 함께 동성애 확산에 크게 기여하는 분야가 교육입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서구 여러 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동성애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캐나다 일부 주의 커리큘럼을 보면 초등학교 때 생식기 구조를 가르치는데 만 8세 때 동성애가 정상이라고 교육하며, 만 13세 때 구체적으로 항문·구강성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해 6월 12일 전국의 고1·2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전국연합학력평가 사회과 탐구 영역에서 “동성(애) 결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시험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고1 사회과 탐구 ‘생활과 윤리’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이해하기’라는 의도로 출제된 문제를 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예시가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개인적인 선택까지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는 성적(性的) 취향만 다를 뿐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동성 결혼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고 아이를 낳지 못해 인구를 감소시킬 것입니다.” “㉤이성 결혼은 허용하면서 동성 결혼을 규제하는 것은 평등 정신에도 어긋납니다.”로 나와 있는데 이 중 ㉣ 곧 동성 결혼 반대 입장이 정답(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2 사회과 탐구 ‘생활과 윤리’에서도, “성적 소수자들은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과 성 정체성이 다를 뿐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고 ‘틀린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성적 소수자들의 성 정체성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묻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시험에서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라도 ‘동성애’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데, 그렇다면 K 목사님의 지론(持論) 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서’도 안 되고 ‘피켓을 들어서’도 안 되며 그저 침묵해야 하는 것인지요(눅19:40)?
7. 헨리 나우웬
K 목사님이 ‘타락한 동성애자들’과 ‘타고난 동성애자들’로 대별하기 위해 들고 있는 마지막논거는 ‘헨리 나우웬’입니다. K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였던 헨리 나우웬은 여섯 살 때부터 자신에게 동성애적 경향이 있음을 알았고 평생토록 그 경향과 싸웠습니다. 그는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자신처럼 '거룩한 독신'(holy celibacy)을 선택하라고 권했습니다.”
K 목사님은 교회 주일예배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하면서 헨리 나우웬을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헨리 나우웬(1932-1996)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영적 지도자인 것이 사실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1957년 예수회(제수이트, Jesuit) 사제로 서품을 받은 카톨릭 신부입니다. 예수회는 이냐시오 로욜라에 의해 1534년 8월 15일 설립되었는데 그 목적은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의 모든 흔적들을 파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회원들은 이것을 반종교개혁(the Counter-Reformation)이라 불렀지요. 예수회는 자신들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고,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회원들은 철저하게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자신들의 최고위직인 총장(General)의 명령에 절대 복종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회주의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으시면 에드몽 파리가 쓴 ‘예수회의 비밀역사’나 에릭 펠프스가 쓴 ‘바티칸 암살단’ 등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헨리 나우웬은 제수이트 신부(神父)이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을 신봉하는 종교다원주의자이고, 신세계질서(NWO)를 추구하는 뉴에이저입니다(마23:9; 벧전2:5,9; 요14:6; 행4:12; 계13:1-18).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지도자가 되기는커녕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하는 ‘빛의 천사로 가장한 자’입니다(고후11:14).
그가 집필한 30여권의 저서들 가운데 성경에 반하는 많은 내용들이 나오지만, 지면 관계상 본 메일의 주제인 동성애에 관한 트릭 하나만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삶’ (IVP 간) 제 1장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19 P) 중에서 인용합니다.
“창살 안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제 ‘저주받은’ 자로 분류되어 더 이상 살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원수, 반역자, 아웃사이더, 사회의 위험요소가 되었다. 그는 격리되어야 하며 사회생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왜?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흑인이고, 흑인들은 위험하다. 그는 동성애자이며 동성애자는 타락한 이들이다. 그는 유대인이며 유대인은 신뢰할 수 없다. 그는 난민이며 난민은 우리 경제를 위협한다. 그는 아웃사이더이며,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오히려 우리가 잊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나게 한다.”
흑인이기 때문에, 유대인이기 때문에, 난민이기 때문에,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죄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헨리 나우웬은 거기에 동성애자를 슬쩍 끼워 넣고 있습니다. 즉 동성애는 죄가 될 수는 없다는 논리를 교묘하게 집어넣고 있는 것이지요.
비록 헨리 나우웬은 19년 전에 죽었지만 그가 취했던 이와 같은 방식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헨리 나우웬과 같은 제수이트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관련 행보를 들 수 있는데요, 그는 지난 1월 스페인의 트랜스젠더와 그의 약혼자를 교황청으로 불러 접견하였고 7월 11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열린 교황과 시민사회 단체 대표들과의 만남에 동성애자이며 동성애 인권단체 소모스게이 대표인 시몬 카살을 참석토록 하여 동성애를 통한 신세계질서(NWO)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K 목사님이 헨리 나우웬에 대해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라고 한 말은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사5:20).
8. 타락한 동성애자
K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타락한 동성애’는 타락한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혐오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동성애’에 대해서는 그렇게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이미 ‘타고난 동성애’란 꾸며낸 이야기임을 말씀드렸는데요, 그러면 결국 동성애는 ‘타락한 동성애’만 남게 됩니다. 2000년 커밍아웃 한 유명한 한 연예인이 2007년 5월 17일 서울대 특강에서 “중고등학교 때 관계를 가진 남자 선배들이 300명은 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동성애자)가 4년 사귄 거면 스트레이트(이성애자)가 40년을 사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동성애 삶을 고백한 책에서 자기의 삶과 사랑이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의 사랑은 사회의 따가운 편견 앞에서 시련을 겪지만 그는 단지 사랑을 할 뿐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 이 동성애자를 K 목사님은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 표현하실지 궁금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동성애는 죄다(창19:5; 레18:22,23; 20:13; 신23:17,18; 삿19:22,23; 왕상14:24; 15:12; 22:46; 왕하23:7; 욥36:13,14; 롬1:26,27; 고전6:9,10; 딤전1:10, 유1:6,7).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고전6:9,10)
“이것을 알라. 곧 율법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아니하고 오직 법을 무시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와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속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사람을 죽이는 자와 음행을 일삼는 자와 남자와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는 자와 사람을 납치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위증하는 자와 그밖에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인해 만들어졌느니라.”(딤전1:9,10)
그렇습니다. 동성애는 음행, 우상 숭배, 간음, 도둑질, 탐욕, 술 취함, 욕, 착취, 살인, 납치, 거짓말 등을 비롯하여 그밖에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과 함께 우리가 끊어버려야 할 ‘죄’입니다(살전5:22).
9. 판단
그러나 K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무엇 무엇은 죄다’라는 표현은 조심해야 할 표현 중 하나입니다. 자살은 죄다, 이혼은 죄다, 살인은 죄다, 혹은 동성애는 죄다. 모두 그렇습니다. 너무도 모호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 한 문장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진실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아주 속기 쉽고 또한 속이기 쉬운 말입니다.”
즉 K 목사님은 동성애뿐 아니라 모든 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라고 하시는 것인데요, 비단 K 목사님뿐이겠습니까. 동성애옹호론자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지적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목회자의 간통과 같은 죄악들이 기독교 안에 넘쳐나고 있는데 이러한 죄들을 덮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조소는 들어도 마땅하지요. 한국 교회가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만약 동성애가 죄로 규정되지 못한다면 (일반 사회에서보다는 덜 하겠지만) 교계에도 자주 발생하는 온갖 성적 범죄도 정죄할 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아울러 성경적 결혼의 정의가 깨져 중혼이 가능해지고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유럽 국가들에서 보듯) 수간이나 근친상간이 허용되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성적인 죄악뿐 아니라 모든 죄를 (다 나름대로의 상황윤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죄라고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딤후4:3,4).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지요(마1:21; 눅5:32). 곧 동성애옹호론자들의 최종 목표(NWO)가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없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하였을 거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죄인들 중 우두머리라 칭하고 있습니다(딤전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성도들에게 죄를 판단하여 회개의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고전6:2; 고후7:9,10; 12:21).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기 전까지 모두들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끊임없이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히12:4).
10. 사랑
다시 말씀드리자면 분신자살을 해서라도 동성애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처럼 동성애자를 대해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아울러 K 목사님의 주장 곧 ‘동성애가 인간이 짓는 다른 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그들의 고통과 번민에 공감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서 진정 동성애자들을 참된 사랑으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랜 기간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인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한 후 동성애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기쁨과 평강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성애자들을 적지 않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탈동성애’만이 진정한 동성애 해결책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그들이 복음을 통해 동성애의 죄로부터 벗어나 ‘탈동성애자’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요1:12; 3:16; 고전15:1-4; 고후5:17; 요일1:6-10).
J 교수님이나 저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빚진 자로서 동성애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며 그들이 동성애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롬1:14; 6:15-22; 요일3:23; 요8:32). 이것이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제 메일에 대해 답변을 주신다면 이번에는 제가 초코 쉐이크를 사도록 하겠습니다.
주후 2015년 7월 20일 TH 드림
2015-09-05 14:56:32 | 관리자
말씀의 빈곤으로 생각하고 읽으니
마지막 연이 더욱 와 닿습니다.
바른 말씀을 지닌 책임은 더욱 큰 것 같고요...
또한 상대적 빈곤으로 고통하는 이들도 많은 요즘에
많은 생각을 주는 좋은 시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09-01 11:02:16 | 김재욱
어떤 아이 둘이서 걸어가는데
동생은 쌍상투하고 누이는 묶은 머리 했네
동생은 말을 배울 나이고
누나는 다박머리 드리웠네
어미를 잃고 우는 저 두 갈래 길에서
붙잡고서 연유를 물으니
흐느껴 울며 말을 못하네
울면서 말하길, 아빠는 오래 전 떠났고
엄마는 짝 잃은 신세였어요
쌀독은 벌써 비어서
사흘이나 굶었어요
엄마는 저를 안고 흐느껴 울며
눈물 콧물 두 뺨에 얼룩졌어요
동생은 울면서 젖을 찾았지만
젖은 말라서 붙어버렸어요
엄마는 제 손을 잡고
이 젖먹이를 업고서
저 산골에 가서는
구걸하여 먹였어요
어시장에 이르러서는
제게 엿도 먹여줬어요
이 길까지 데리고 와서는
동생을 사슴 새끼 품듯 안고 잤어요
동생은 세상모른 채 잠이 들었고
저 역시 죽은 사람처럼 잠들었어요
문득 깨고 나서 보았더니
엄마는 여기 없었어요
말하다가 울다가
눈물 콧물 줄줄 흐르네
날 저물어 어두워지면
새들도 집을 찾는데
외로운 두 오누이
찾아갈 집이 없구나!
슬프다! 이 나라 백성들
하늘의 떳떳함마저 잃었구나!
지아비와 지어미가 사랑하지 못하고
엄마도 제 자식 돌보지 않네
옛날 내가 마패 갖고 암행어사 되었을 때
당시가 갑인년(甲寅年)이었는데
임금님 분부하셨지, 고아들을 보살펴서
고생 없게 하라고..,
모든 벼슬하는 관리들아!
이 말씀 감히 어기지 말지어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년 전, 조선후기. 절대빈곤으로 인하여 가족이 해체되는 지경을 한탄하며 다산(茶山)이 지은 시(時)입니다. 다행히 오늘날 이 시대에는 절대빈곤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말씀의 빈곤은 날로 더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또 마치 이 시가 오늘날의 기독교를 풍자하고 있는 듯해서 인지 시(時)를 읽고 또 다시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에려옵니다.
바른 말씀으로 많은 혼들이 회심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 같은 소망을 품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혼들이 더해지길 원하는 마음에서, 다산 선생님의 시(時) 한 수와 함께 글을 공유해봅니다.
2015-08-31 23:36:54 | 김상진
빌3:11의 ‘죽은 자들의 부활’은 무엇을 말하나요?
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함이라(빌3:11).
바울은 죽은 모든 자들이 부활할 것을 알았습니다(행24:15; 26:6-8).이런 차원에서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분명히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스스로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했을까요?
어떤 이들은 바울이 아직 부활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전 15장을 볼 때 근거 없는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resurrection of the dead)을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resurrection from the dead)이나 개역성경처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resurrection among the dead)로 바꾸려 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이렇게 바꾸면 바울은 살아생전에 부활을 확신하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실제로 바울을 그렇게 보려는 자들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면 빌3:9-14는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resurrection of the dead)이 나오는데 이 부활에 도달하려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1. 유대교, 천주교 등의 예식을 통한 종교 예식을 배설물로 여겨야 한다.2.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얻어야 한다. a. 개인적으로 그분을 알아야 한다(10). b. 그분을 부활시킨 권능을 알아야 한다(10). c. 그분처럼 고난당해야 한다(10). d. 매일 죽어야 한다(갈2:20). e.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12). f. 과거를 잊어야 한다(13). g. 앞으로 밀치며 나아가야 한다(13, 14).
그러므로 여기의 ‘죽은 자들의 부활’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나중에 부활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 사실 이 부활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이미 약속되어 있다 - 그리스도를 알고 닮으며 그분과 하나가 되려는 노력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분을 만날 때 얻게 될 칭찬과 보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것은 히11:35가 말하는 ‘더 좋은 부활’을 의미할 것입니다.
여인들은 자기들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고문을 당하되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히11:35)
앨버트 반즈, 매튜 헨리 등도 이 부활을 보상의 부활 혹은 천국의 행복으로 봅니다.
끝으로 한 가지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이 구절을 오용하여 바울이 부활할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도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고전15). 다만 여기서 그는 주님과 하나 되는 일을 통해 얻게 될 보상의 부활, 천국의 행복을 기술하였습니다. 그 부활이 바로 ‘죽은 자들의 부활’입니다.
다음의 글도 유용하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faithalone.org/magazine/y1991/91aug3.html
샬롬
패스터
2015-08-28 18:41: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8월 26일(수)에 열기로 한 김재근 목사님의 성경 세미나는 주최 교회의 사정으로 연기되었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697
일정이 다시 잡히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8-24 22:05:54 | 관리자
안녕하세요?
다음 주 수요일(8월 26일) 저녁 7시 30분부터 2시간에 걸쳐 김재근 목사님께서 "성경의 역사 ~ 개역성경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사당동에 있는 한마음 침례 교회에서 성경 세미나를 여십니다.
강사: 김재근 목사시간: 8월 26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2시간장소: 서울 한마음 침례교회(사당동 총신대 부근, 7호선 남성역 4번 출구, 20m 앞, 15번 마을 버스승차 후 “LG 자이아파트 상가 입구”역 하차
※지하철 7호선 남성역에서 도보 15분 소요 / 주차장은 건물 지하에 있습니다.
연락처: 노인균 형제님(010-5380-2753)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5_04&write_id=63
참가 비용: 없음
저녁 6시 30분부터 저녁 식사를 제공하려 하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8-18 15:17:20 | 관리자
마태복음 2장을 흠정역 한영대역으로 자세히 보니 많은 것을 알수 있었고 바른 성경기록에서 벗어나면 엉뚱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베뢰아 사람들처럼 오늘 사도바울이 복음을 선포한다해도 바른성경을 펴고 말씀을 확인하고 검증하는것이 하나님께 고귀한자라는 칭찬을 듣고 속지않는자가 된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2015-08-11 02:22:57 | 김수영
하나님앞에서 거룩함을 들먹이기 부끄러운 존재인 내가 거룩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습니다.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의 덕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녀의 도리를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5-08-08 19:30:38 | 김상진
PDF파일을 인쇄해서 나누어주면 누구라도 쉽게 성경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08-08 14:11:42 | 관리자
다음을 참조하세요.http://www.keepbible.com/KJB2/View/2W4
2015-08-08 14:10:49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시내 사본 조작 사진을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ㅇ 개역/개역개정 성경의 마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다른 설명에는 “9-20절 단락은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는 빠져 있으며 이 부분은 2세기에 덧붙여졌음”이라고 되어 있다.
ㅇ 이 현상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제외한 NIV, NASB 등 모든 현대 역본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ㅇ 현대 역본들의 주장이 사실이고 따라서 마가복음 16장이 8절에서 끝난다면,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떨며 놀라서 급히 도망하고 두려움에 잠겨 숨어 지낸 셈이 된다. 그러면 이게 과연 ‘복된 소식’ 즉 복음일까?
ㅇ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 가운데 마가복음 16장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800개이고 이 중에서 1,797개가 9-20절을포함한다. 즉 현존하는 그리스 사본들의 99.8%인 절대다수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포함한다. 이쯤 되면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절대다수의 증거가 채택되어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담은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인정될 것이다.
ㅇ 그런데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원래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시내 사본이다. 이 사진에 보면,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분명히 원래 사본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우고 그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이런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온 세상 모든 성도들에게서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닌가?
(이 사진은 영어 Google에 가서 ‘Sinaiticus Mark 16’이라고 치면 이미지 섹션에서 누구라도 즉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샬롬
2015-08-08 14:0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시내 사본 조작 사진을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ㅇ 개역/개역개정 성경의 마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다른 설명에는 “9-20절 단락은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는 빠져 있으며 이 부분은 2세기에 덧붙여졌음”이라고 되어 있다.
ㅇ 이 현상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제외한 NIV, NASB 등 모든 현대 역본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ㅇ 현대 역본들의 주장이 사실이고 따라서 마가복음 16장이 8절에서 끝난다면,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떨며 놀라서 급히 도망하고 두려움에 잠겨 숨어 지낸 셈이 된다. 그러면 이게 과연 ‘복된 소식’ 즉 복음일까?
ㅇ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 가운데 마가복음 16장을 포함하는 사본은 약 1,800개이고 이 중에서 1,797개가 9-20절을 포함한다. 즉 현존하는 그리스 사본들의 99.8%인 절대다수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포함한다. 이쯤 되면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절대다수의 증거가 채택되어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을 담은 성경이 바른 성경으로 인정될 것이다.
ㅇ 그런데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원래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시내 사본이다. 이 사진에 보면, 마가복음 16장 9-20절은 분명히 원래 사본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우고 그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이런 엉터리 자료를 가지고 온 세상 모든 성도들에게서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마귀의 앞잡이가 아닌가?
(이 사진은 영어 Google에 가서 ‘Sinaiticus Mark 16’이라고 치면 이미지 섹션에서 누구라도 즉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샬롬
다음은 이에 대한 영어 기사이다.
마가복음 16장 마지막 12구절
내용:
Furthermore, there is abundant manuscript evidence supporting the authenticity of Mark 16:9–20. E F Hills wrote, “They [Mark 16:9–20] are found in all the Greek manuscripts except Aleph [i.e. Sinaiticus], and B [i.e. Vaticanus], … And more important, they were quoted as Scripture by early Church Fathers who lived one hundred and fifty years before B and Aleph were written, namely, Justin Martyr (c. 150), Tatian (c. 175), Irenaeus (c. 180), Hyppolytus (c. 200). Thus the earliest extant testimony is on the side of these last twelve verses.”
또한 마가복음 16:9-20의 진위를 뒷받침하는 풍부한 사본 증거가 있습니다. E F 힐즈는 “그것[마가복음 16:9-20]은 알레프 [즉, 시나이투스]와 B [즉, 바티칸우스]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 사본에서 발견되며, ... 더 중요한 것은 B와 알레프가 기록되기 150년 전에 살았던 초대 교회 교부들, 즉 저스틴 마티어(150년경), 타티안(175년경), 이레네우스(180년경), 히폴리투스(200년경)가 성경으로 인용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증언은 이 마지막 열두 구절이 있어야 한댜는 것을 지지합니다..”
다음 링크를 보세요.
시내 사본 문제
2015-08-08 14:0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더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서 "시내 사본 조작"이라는 제목의 PDF 파일을 추가로 만들어 올립니다.
고화질로 되어 있으니 인쇄해서 주변 분들에게 보여 주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5-08-08 14:02:19 | 관리자
안녕하세요?
더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서 "시내 사본 조작"이라는 제목의 PDF 파일을 추가로 만들어 올립니다.
고화질로 되어 있으니 인쇄해서 주변 분들에게 보여 주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5-08-08 14:02:19 | 관리자
'모든 사랑은 기준이 있어야 바른 사랑이 될 수 있는데 그 기준이 바로 거룩함이다,'
'교회 안에서 사랑과 거룩함이 갈등을 일으킬 때 반드시 거룩함을 선택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죽이기 힘든 것이 자존심인 것 같습니다. 자존심을 죽이면 화낼 일도 줄어들고 그러다 보면 조금은 거룩한 척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Thank you pastor for yet another priceless teaching!
2015-08-01 15:08:51 | 김항수
주께 거룩한 것
성경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구약 시대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섬기러 갈 때 여러 가지 의복을 차려입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관의 앞에는 금으로 된 패를 붙였습니다.
그 패에는 “주께 거룩한 것”(HOLINESS TO THE LORD)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너는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긴 것 같이 그 위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 새기고(출28:36)
그들이 순금으로 거룩한 관의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긴 것 같이 그 위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는 글을 쓰고(출39:30)
하나님께서는 시청각 교육을 하시려고 자신 앞에 나오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주께 거룩한 것”(Holiness to the LORD)이라는 글을 적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께로 온전히 구분된 거룩한 존재이어야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자기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는 거룩히 구분하는 숫양의 피를 발라야 했습니다. 피가 없이는 거룩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22 또 그가 다른 숫양 곧 거룩히 구별하는 숫양을 가져오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23 그가 그것을 잡으니라. 모세가 그것의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그 피를 바르고(레8:22-23)
이것은 대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며(귓불) 그것대로 행하며(손), 그분이 지정한 곳에만 가야 함을(발) 뜻합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거룩히 구분된 자가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주께 거룩한 것”이라는 표현은 렘2;3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주}에게 거룩한 자요(Holiness unto the LORD), 그의 소출의 첫 열매였으니 그를 삼키는 모든 자는 실족하고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주}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은 온전히 주님께로만 거룩히 구별된 자들입니다.
천년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질 때에는 심지어 말들의 방울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 기록되고 심지어 이스라엘의 모든 그릇도 “주께 거룩한 것”이 됩니다. 말방울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쳐다보면 거기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음식을 삶는 그릇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함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때가 천년왕국입니다.
그 날에는 말방울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라(HOLINESS UNTO THE LORD) 기록될 것이요, {주}의 집에 있는 솥들은 제단 앞의 대접들과 같으리라. 21 참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주}께 거룩한 것이 되리니(holiness unto the LORD) 희생물을 드리는 모든 자들이 와서 그 솥들 중에서 취하여 그 안에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주}의 집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이제 이런 예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한 분인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거룩함이 없으면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히12:14). 천년왕국에서 주의 집에는 가나안 사람이 없습니다. 가나안 사람은 거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함(Holy, Holiness)은 현시대 사람들에게 크게 결여되어 있는 성품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습니까?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고전3:16-17).
거룩함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아나니야와 삽비라 같이 구원받은 성도라도 심지어 죽이십니다.
이 거룩함이 없을 때 모세와 아론은 구원은 받았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복은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서 나를 거룩히 구별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20:12).
사도 바울의 권고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28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두려움을 가지고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시니라(히12:28-29).
성도는 거룩히 구분된 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거룩히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한번 구원받으면 구원은 유지되지만 보상을 일을 수 있고 심각한 경우에는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에스라 사전)에 있는 거룩함 기사를 옮깁니다.
주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스터디 바이블(에스라 사전)의 ‘거룩함’ 기사
거룩함은 종종 밖으로 나타난 깨끗함을 표현하고 어떤 때는 내적인 순수함과 성결함을 나타낸다. 참된 거룩함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마음의 생각과 의도에 특징을 부여한다. 거룩함은 내적인 원리이므로 단순히 정직함이나 자비 등과 같은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을 뜻하지 않고 모든 선한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무한대로 완전한 방법으로 거룩한 존재이시다(사1:4; 6:3). 메시아 역시 거룩한 분이었고(시16:10; 눅4:34; 행3:14) 물론 성령님 역시 거룩한 영이시다. 하나님은 거룩함과 무죄함과 성결함의 근원이시다.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의 타락 때에 이 모든 거룩함을 상실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거룩함에 점진적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그들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성결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 일을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라고 생각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 선도 참조(60).
성경은 거룩하다는 말을 2차적인 의미로 하나님께 속한 것을 지칭하는 데 사용한다. 그래서 천국과 그분의 성전과 그 안의 기구들과 그 안에서 행하는 일과 그분의 날과 그분의 사역자들과 제사장들과 대언자들과 사도들이 거룩하다. 성경은 또한 유대인들을 가리켜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 거룩히 구분된 사람들이며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한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거룩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 그 사람이 내적인 순수함과 긍휼과 깨끗함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현대 교회는 거룩함을 잃고 있고 그것을 사랑과 혼동하고 있다. ‘거룩하다’는 말은 성경에 611회 나오며 사랑은 488회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사랑보다 거룩함에 대해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근본 속성은 거룩함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사랑이 아니라 거룩함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께 거룩하게 경배하여야 한다(출15:11; 대하20:21; 사6:2-3; 계4:8).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며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시29:2).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 사이에는 중요한 관계가 있다. 실로 사람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켰으며 그 결과 그분의 거룩함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분의 사랑이 사람에게 나타나게 되었다. 참으로 거룩함은 하나님의 다른 모든 성품을 조절하는 근본 속성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속죄는 사랑에서 왔으나 그 사랑을 요구한 것은 그분의 손상된 거룩함이었다. 모든 사랑은 기준이 있어야 바른 사랑이 될 수 있는데 그 기준이 바로 거룩함이다. 사랑이라는 엔진이 아무 데나 굴러가면 무절제의 도구가 되는데 그분의 거룩함이 사랑의 엔진을 조절하여 바른 곳으로 인도하므로 그것은 사랑보다 높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어야 하는 근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희생 예물이 되어야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이 만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가진 사람도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분과 같이 거룩해야 하며 성경은 분명하게 그것을 요구한다(레20:26; 벧전1:15-16).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하나님, 거룩한 아드님, 거룩한 영, 거룩한 성경을 믿으며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 불린다.
현대자유주의자들은 거룩함보다 사랑을 더 중요시하며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거룩함을 찾기 어렵고 각 사람이 자기 보기에 선한 대로 하나님께 나오려 한다. 그러나 사랑은 반드시 거룩함이라는 궤도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교회 안에 각종 어려움이 발생한다. 사랑으로 해야 한다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교회가 수용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훼손되며 그런 식의 거룩하지 못한 경배는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신다(잠28:9). 그러므로 기준과 표준을 요구하지 않는 기독교는 바른 기독교가 아니다. 세상과 분리되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만족시킬 수 있으므로 세상의 것을 버리고 야곱과 같이 벧엘로 올라가야 거기에 부흥이 있다(창35:1-5). 따라서 교회 안에서 사랑과 거룩함이 갈등을 일으킬 때 반드시 거룩함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교회가 살 수 있는 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2015-08-01 13:34:54 | 관리자
신약성경에 [주]피터 라는 데이터상의 오류가 났었는데
제작하시는 분이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적용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 됩니다.
왼쪽 하단 버튼 ㅡ 더 보기 ㅡ 설정 및 데이터 관리 ㅡ 데이터 관리 ㅡ 맨밑 성경 데이터 업데이트 ㅡ 흠정역 다운로드
애써주신 앱 관리자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2015-07-28 21:00:07 | 관리자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정확하게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지만
계속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믿음이 커질것이라고 믿습니다
2015-07-25 00:33:57 | 심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