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僞善)은 참으로 집요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집요함이 마치 그림자와 같습니다. 아무리 떨쳐내려고 달음질을 해도 전혀 거리가 벌어지지 않고 사람의 뒤를 바짝 쫓아옵니다. 잠시 마음의 긴장을 풀면 어느덧 위선은 사람의 내면 깊숙이 둥지를 틀고 곧바로 증식을 위한 세포분열을 시작합니다.
위선과 관련된 성경 구절은 신구약을 통틀어 모두 42번 등장합니다. 위선, 위선자들에 해당하는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는 hypocrite, hypocrites, hypocritical, hypocrisy, hypocrisies, dissemblers, dissembled, dissimulation 등이며 특히, 신약성경에 27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위선(僞善) 관련 구절들 중에 마태복음 7장 1~5절과 누가복음 6장 41~42절에 기록된 동일한 예수님의 교훈을 중심으로 성경이 위선과 위선자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며 위선이 사람의 내면에 파놓은 은밀한 함정은 무엇인지 살펴보려 합니다.
위선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가로막는 사탄의 무기 중에도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중화기에 속합니다. 매우 선한 사람조차도 한순간에 위선의 늪에 빠질 수 있고 복음 사역에 매진하던 교회나 단체가 위선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거나 심지어 와해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삶을 황폐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마치 누룩과 바이러스처럼 강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기에(눅12:1) 삽시간에 대중들을 선동해 위선적 사고와 행동 아래로 헤쳐 모이게 만들어 한 시대를 타락하게 하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합니다.
먼저 위선의 독특한 기능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심리적 좌절을 경험하게 될 때 또는 외부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게 될 때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인과 단체 그리고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찾게 합니다. 그런 후에 외부로부터 포착한 문제를 자신의 내면에서 확대 재생산하고 왜곡시켜 집착하게 만듭니다.
41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또 너 스스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찌 네 형제에게 이르기를, 형제여, 내가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주겠노라, 할 수 있겠느냐? 너 위선자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리라. (눅6:41~42)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가 빠져버린 함정의 특징이 타인의 잘못과 부정적인 면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정확하게 잡아내지만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는 보지 못하는 모순의 극치임을 보여주십니다. 여기서 위선자가 집중하는 타인은 우선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가까이에 있는 동역하는 형제/자매일 경우가 많다는 것도 중요한 점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아주 작은 먼지로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고 사실 시간이 지나면 눈물 등에 의해 저절로 제거되어 해결될 수 있는 정도의 사안입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속담을 적용해도 무방할 정도의 것으로서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지만 크게 걱정하거나 공론화할 정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위선자의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어떤가요? 물론 물리적으로 눈 속에 기둥만큼이나 큰 나무인 들보가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인 비유이기에 그런 관점에서 보면 들보는 눈의 모든 기능을 영구히 상실시키고도 남을 치명적이고 위급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선자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어 감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는 부산물과 같은 형제의 눈 속에 작은 티에 대해서는 맹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댑니다. 사실 이 정도의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온유하게 문제에 대한 권면의 말을 건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선이라는 함정에 빠진 사람은 절체절명의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형제를 몰아붙이고 공격하며 급기야 공동체 전체를 극심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할 일은 형제의 눈 속에 미세한 티끌을 놓치지 않는 극도의 예민함이 자신을 성찰하는 것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 내면은 이미 파국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데 아직은 그냥 두어도 괜찮은 형제의 문제에만 집착하는 이 어리석음은 결국 심각한 위기로부터 방치된 자기 자신과 무모한 위선자의 비판의 칼날을 감내해야 하는 형제/자매와 공동체 모두를 영적으로 황폐하게 만들고 맙니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할 수 없고 눈 속에 거대한 들보로 막혀 있는 자가 어찌 티끌이 들어간 사람의 눈 속에 바람을 집어넣어 그 부스러기를 제거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누가복음 6장의 위선자는 그런 명백한 자신의 모순과 약점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내겠다고 소리를 칩니다. 내 의견과 관점이 정확하니 내 말을 듣고 내가 제시한 해결책을 따르라고 호언장담하는 위선자는 교회 안의 지체들과 공동체에 커다란 짐이 될 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위선자가 발견한 형제의 눈 속에 티는 당장은 그냥 두어도 되지만 제거해 버린다면 좋을 것이고 분명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들보를 눈 속에 간직한 위선자가 그 티를 제거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눈 속에 있는 들보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코가 눈인지 입이 눈인지 분간조차 못하는 위선자의 손은 치료하고 해결하는 손이 아니라 흉기로 돌변할 것이 뻔합니다.
문제를 발견한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위선자의 좌충우돌하는 일련의 행동은 사사건건 지체들과 공동체에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아주 작은 위선이라도 사람의 내면에서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내버려두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에게 진리의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해결책을 꺼내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치명적 문제인 들보에 대해 집중하고 깊이 생각하라는 교훈입니다(마7:3). 자기 내면의 어떤 굽어진 요소들이 거대한 들보라는 문제를 키웠나를 차분하게 생각하고 돌아보는 것이 묵직한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입니다.
위선자의 눈 속에 들보를 빼내는 첫 시작은 자신의 눈 속에 들보를 정확하게 보고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눅6:42) 눈 속의 티가 점점 커져 시야를 가리는 들보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또한,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들보를 제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부지런히 자신을 말씀의 거울로 비춰보고 자신의 내밀한 마음을 속속들이 성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성급한 행동보다 먼저 깊이 자신의 속 중심까지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이 위선의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치료제입니다.
마태복음 7장과 누가복음 6장에 나타난 위선자의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참모습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님 초림 당시 유대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위선자 그룹이었으며 종교 시스템의 전도사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도 자신의 참모습을 정확히 보지 못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마치 회칠한 돌무덤 같도다. 그것은 겉으로는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부정한 것으로 가득하도다. (마23:27)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곤경에 빠트릴 함정을 파는 행위가 정당하고 선한 것이라 여겼기에 자신들의 악행을 절대로 고침 받지 못했습니다.
자! 오늘날 교회 안에 널리 퍼지고 있는 배교의 물결을 보십시오. 이 가증한 물결의 최전방에 서 있는 타락한 기독교계의 리더들은 자신들이 이런 악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렇게 행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느 날 밤 베개를 베고 누워 잠들기 전 저절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 짧은 몇 분의 시간조차 두려워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져 항구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스스로 장애를 입힌 사람들입니다.
1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시는데 2이들은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기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이라. (딤전4:1~2)
이 시대가 더욱 빠르게 극악한 배교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 것은 소수의 기독교 지도자들만이 위선의 독주에 취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대다수의 기독교인들도 이런 심각한 배교현상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하기만 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은 성경에 선명하게 기록되어있는 '위선의 역사'가 주는 뼈아픈 교훈을 깊이 되새기지 않았기에 발생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착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적어도 현시대의 기독교는 예수님 초림 당시 유대교보다 당연히 하나님 앞에 선하며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보다 오늘의 목사와 신학자들은 월등하고 바르며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같은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이 무모한 믿음은 성경의 교훈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이미 있던 것 즉 그것이 후에 있겠고 이미 행한 것을 후에 다시 행하리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전혀 없도다. (전1:9)
그러나 백성 가운데 거짓 대언자들이 있었던 것 같이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니 그들은 정죄 받을 이단 교리들을 몰래 들여와 심지어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기까지 하고 자기들 위에 신속한 파멸을 가져오리라. (벧후2:1)
은사주의로 교인들을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자들로 전락시키고 WCC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도 자신을 복음주의자라 외치며 만담가와 개그맨처럼 우스갯소리로 설교시간을 장식하는 타락한 목사들도 강단에서만큼은 다들 한국교회는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럼 그 위기는 도대체 누가 불러온 것일까요? 각자 다 선한 선생이 되어 한국교회의 위기와 해법을 논하는데 과연 그 위기를 만든 장본인은 누구란 말입니까?
독주에 진탕 취하고 싶은 알콜중독자도 처음엔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딱 한 잔 만!!'이라는 위선의 구호를 외칩니다. 이처럼 한국교회를 어지럽게 만든 배교의 장본인들이 하나같이 강단에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를 걱정하고 위기라고 떠드는 것은 자신의 배교행위에 면죄부를 발행하기 위한 일종의 위선입니다. 가증함으로 가득한 이런 위선적 설교에 취해 교인들은 '그래 아직 우리 교회는 괜찮은 교회야.' '아직 우리 교회는 살아있어.' '그래도 우리 목사님은 이 시대의 모순과 문제를 분별하는 제대로 된 분이군.'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깊은 늪 속에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위선으로 가득 찬 거짓 대언자, 거짓 선생을 구별하는 간단명료한 기준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달콤하고 번지르르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행위 그것도 오랜 세월 동안 쌓인 구체적인 행동들입니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진리의 길을 택한 행동들이 그의 세월의 앨범 속에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15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 16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변질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변질된 남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마7:15~18)
위선자의 가장 큰 문제는 정작 자신의 치명적인 문제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겁니다. 더불어 위선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모순은 자신의 치명적 문제는 제쳐 두고 타인의 작은 잘못과 문제를 교정해보려 달려드는 무모함입니다.
정리하면, 위선이라는 모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첫 번째 행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마7:3)”와 “또 너 스스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눅7:42)”의 말씀처럼 먼저 자신의 문제를 감지하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실체를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영적 장애를 겪게 하는 자신의 치명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서야 형제/자매의 영적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고 교회와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 원리입니다.
성경은 많이 선생이 되길 권장하지 않고(야3:1)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밝혀내는 논박의 전문가가 되라고 말씀하지도 않습니다(마7:1~2, 눅6:37). 물론 한편으로 성도는 시대를 분별하고 옳고 그름을 성경을 기준으로 바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고전6:2).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반드시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허물은 없는가, 나에게 부족함은 없는가, 내 생각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가를 항상 먼저 살피는 사람이 지혜롭게 위선의 은밀한 함정을 피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논쟁과 논박에서 승리한 사람보다 한참이나 성숙한 주님 보시기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도 한없이 부족한 사람인 저에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엄격하고 빈틈없이 자신을 살피고 온유하게 지체를 섬길 수 있는 지혜와 명철함이 임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 (갈6:1)
2014-01-08 14:36:13 | 김대용
킵바이블 형제, 자매님들의 뜨거운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또한 이곳 킵바이블을 통해 바른 말씀과 교리를 알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곳이며, 킵바이블을 통해 바른 신앙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그 자체가
제게는 행복입니다
자주 들러서 글도 올리고 교제도 나누어야 할텐데요. 늦게나마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제 걸음마 단계라 은혜 침례교회를 위해 꾸준한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광주 뿐만아니라 곳곳에서 바른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가 이곳 킵바이블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생겨나기를 기대합니다
2014-01-08 13:25:43 | 한재석
바른 말씀으로 바른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이 정말 좋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실 것을 생각하니 기쁨이 넘치는군요.
앞으로도 여러지역에 바른 교회가 세워지길 바라며 광주 은혜 침례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2014-01-08 10:43:46 | 차대식
서울에 있는 다른 독립교회 말씀인가요?
상단 메뉴 중 지역교회 안내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4-01-08 10:32:50 | 김재욱
참 보기가 좋습니다.
지속적으로 많은 분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알고
합류하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더 많은 교회들이 지역마다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2014-01-08 10:29:56 | 김재욱
한재석 형제님~!
이렇게 벅찬 소식을 성경지킴이에 전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교회 사역과 여러 일로 너무나 바쁘시겠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가끔
이곳에 귀한 글을 선보여 주실 때를 기대만 하고 있겠습니다. ^.^
항상 강건하시고 광주 은혜 침례교회에 우리 주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부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4-01-08 10:08:20 | 김대용
한 형제님!
새해 벽두에 너무 귀한 소식 듣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앞으로 전남 광주 지역에 우리 주님의 아름다운 교회가 잘 세워지기를 간절히 원하며 함께하시는 형제/자매님 모두에게 교회 이름처럼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2014-01-08 09:57:39 | 관리자
혹시 서울에는 없나요?
2014-01-07 23:29:17 | 이혜숙
킵바이블 형제,자매님 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소식을 전해야지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 훌쩍 한 해가 지나가버렸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많은 분들이 문의를 주시고, 광주 은혜 침례교회에 관심을 갖고 계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바른 말씀으로 바른 신앙을 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2013년 5월 부터 김규태 형제님 댁에서
저희 부부와 김선희 자매님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김형제님 부부의 섬김으로 맛있는 음식이 늘 넘치고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2013년 7월 경 부터 나상규 형제님의 요청으로 나형제님 사무실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드디어 7월 28일 사랑 침례 교회에서 저를 비롯한 약 12명의 광주 거주 성도분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8월 14일, 15일은 정동수 목사님을 모시고 킹제임스 성경과 바른 교리를 광주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성경 사경회를 열었습니다. 예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른 말씀을 알고자 갈급해서 산전수전(?) 겪은 성도님들이 한 두분 씩 오셔서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2월 25일,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탄성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넘치는 하루였습니다!!!
다시금, 김규태 형제님 댁에서 모여서 이지아 자매님의 음식 솜씨와 함께
나상규 형제님이 준비한 삼겹살과 싱싱한 굴을 형제님들이 정성스럽게 구었습니다
너무도 맛있어서 계속 먹다가 배가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선물도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모두들, 교회를 이루어 주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제는 모이는 수가 거의 30명이 되어서 모임 장소를 위해 건물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같은 생각으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한 같은 확신을 갖고,
바른 교리에 대한 같은 믿음으로 광주 은혜 침례교회가 출발하였습니다
율법주의,은사주의,거짓 교리등에 빠져 헤매이다가 이제야 진정으로 말씀에 기초한
바른 신앙을 하겠다는 한가지 결심으로 모였습니다.
동일한 고민 가운데 있다가 찾아 오시는 분들을 위해
언제든지 환영하는 마음과 섬기는 마음을 갖도록 다짐하고 있습니다.
광주 은혜 침례교회에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안한 마음으로 연락 바랍니다
한재석 형제 : 010-8978-8275 ( 낮 12시 30분 ~ 1시 30분, 오후 6시 이후 )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우리 주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형제,자매님들의 관심과 기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4-01-07 22:18:15 | 한재석
풀리지 않는 말씀으로 고민중입니다.
첫 번째 아론은 모세가 산에 올라간후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았는데 도저히 납득이 안됩니다. (출 32:01-06)
그후 그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인해 즉사했습니다. (레 10:01-02)
성경이 잘못되었을리는 없고, 저는 아론을 먼저 죽였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명한 답변을 기다립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장막절에 형제에게 먼저 올라가라 하시고,
나는 내때가 아니므로 올라가지 않겠다 하신후
은밀하게 올라가신 이유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요? (요07:08-10)
속된말로 “거짓말“을 하실꺼 까지야 없었을 건데요...
아님 당신의 때가 갑자기 임했을까요?
용서하옵시고, 말씀을 밝히 열어 깨닫게 하소서..
2014-01-07 16:01:10 | 오정근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는
국기가 초록 바탕에 아랍어(語)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알라 외에는 신(神)이 없고, 무함마드는 예언자이다.”라는
《코란》1절이 씌어 있을 정도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이며,
외국인의 내륙여행은 불가능할 정도로 폐쇄적인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한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유적 발굴이나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볼 만은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무엇보다도
히브리서 11 : 1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의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1-07 13:24:21 | 강평원
늑대가 아주 사려깊은 동물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부일처로 평생 산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
인간 세상에도 늑대같은 양과 양 같은 늑대가 있지요.
동물은 인간과 차원이 다른 존재지만 그들의 세계를 통해 느끼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동물은 철저히 인간을 위한 창조물이며, 우리가 다스릴 존재라는 것,
인간은 아무리 짐승 같아도 본질을 잃어버렸을 뿐 본디 하나님 종류라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좋은 관찰이자 시도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김 형제님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보는 이야기,
계속 잘 보겠습니다~.
2014-01-07 10:42:37 | 김재욱
성경지식이 일천하여 두서없는 질문이었습니다만 알고 싶은 요점을 자세하고도 친절히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본 사이트를 통해 성경말씀을 더 정확하게 더 많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친절한 답변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2014-01-07 09:17:31 | 이성호
강평원 형제님~! 평안하시지요?
자료를 정리해서 올려주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저 또한 수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이 분의 강연을 직접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떨기나무'라는 책 출간 후에 여기저기 강의를 많이 다니시는 듯합니다.
중동지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이 분의 참신한(이미 널리 알려진) 주장은 귀담아들어 볼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적인 입장이나 종말적 현상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태도 등 잘 분별하고
걸러서 들어야 할 부분도 있었습니다. 분별해서 잘 살피면 될 줄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01-07 00:09:46 | 김대용
반갑습니다. 강평원 형제님.
저도 몇년전 김승학씨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떨기나무 책도 사 보았구요.
상당히 신뢰가 가는 내용이라 관심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강운곡씨라는 분의 "시내산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책도 있는데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성경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좀더 확신할 수 있는 좋은 증거자료라고 생각 됨니다.
좋은글 감사 함니다. 샬롬!
2014-01-06 21:36:05 | 허광무
이성호 형제님 반갑습니다. 평안하셨는지요?^^
위에 글에 써 주신대로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전12:7).
그러나 마치 물처럼 하나님께 돌아간 영들이 섞이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사람에게 고유의 몸과 혼이 있듯이 영도 그렇기 때문에(신2:30, 시106:33)
가령, 이 사람의 영을 저 사람에게 주어도 상관없다는 등의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구원은 영과 혼과 몸 셋이 다 받습니다.(고전5:5)
영은 강퍅해질 수도 있고(신2:30) 이스라엘 백성이 마실 물이 없으므로 불평하여
모세의 영을 자극해 분별없는 말을 하게 했다는 성경 기록을 보았을 때(시106:32~33)
영이 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영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잠20:27; 요4:24; 롬8:16; 고전14:14-15)
하나님과의 소통하며 믿음, 소망, 경외감, 기도 등의 부분을 담당하는데
어떻게 믿음과 무관할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좀 더 자세하게 부연하여
기록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전혀 별개의 일에 대한 기록으로 해석하거나 영적 인간이니
구체적 인간이니 하는 해괴한 주장을 하면 창세기는 물론
성경 전체의 해석이 뒤틀리게 되며 결국 수렁으로 빠지게 됩니다.
조심해야겠지요.^^
다음의 조직신학 강의를 참조해 주십시오.
*조직신학 40_사람01(영혼육01)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97&cate_name=%EC%A1%B0%EC%A7%81%EC%8B%A0%ED%95%99&page=2
*조직신학 41_사람02(영혼육02)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98&cate_name=%EC%A1%B0%EC%A7%81%EC%8B%A0%ED%95%99&page=2
*영의 구원? (질문과 답변)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656
*성경 바로 보기 PDF 파일
-파일을 다운받아 제7장 '영의 세계'를 참조하세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151
형제님께서 며칠 전에 출판사로 문의해 주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킵바이블에서 좋은 교제가 이어지길 기대하며
앞으로도 성경 구매와 기타 문의 사항 있으실 때
032-872-1184로 전화해 주시면
성심껏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1-06 18:45:16 | 김대용
자매, 형제님들 안녕하세요.
군포에서 사는 강평원 형제라 합니다.
새해에도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은혜와 평안이 늘~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처음으로 글을 써 봅니다.
그동안 몇 번 이런저런 글을 써볼까 하다가
부끄러운 솜씨에 썼다가 지우곤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자의 주치의 지내셨던
김승학 집사님의 강연을 보고
"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출애굽의 경로가 다르구나!"
란 생각이 들었고 여러가지로 찾아보고 연구해 봤는데,
맞다는 가능성이 있어 같이 생각해 보고자 이렇게
"출애굽의 새로운 경로?"란 글을 써 봅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어제 목사님께 문의를 하려고 했는데,
바쁘셔서 말씀을 못드렸고 검증이 안된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래 그림과 같은 출애굽의 경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 그림을 보면..
여러 지명은 물음표로 있거나
다녀오신 분들의 성지순례 후기를 들어보면
성경기록과 조금은 다르다는 내용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승학 형제님의 강연을 들어보고
출애굽의 새로운 경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출애굽이라 하면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말할텐데..
지금까지 건넜다는 홍해 왼쪽부분(시나이 반도 오른쪽도 홍해임)과 시내산은
시나이반도에 있는 것으로 이집트내에 있는 장소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새롭게 유추해본 출애굽의 경로입니다.
"몇일만에 어떻게 그렇게 멀고 먼 경로(약560km)를 몇백만의 사람이 이동할수 있는가?"란 생각이 들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특별한(?) 힘을 쓰신 성경 기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특히 기존 시내산은..
AD527년경 로마카톨릭에서 지정한 것으로 더더욱 믿을 수 없으며
지금의 새로운 경로가 더 확실성을 갖게 합니다.
뉴웨이바 삼각주입니다.
가로 9KM, 넓이 6KM 여의도의 4~5배 면적으로
이정도는 되어야 몇백만명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곳 주변 바다에서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는 데요.
특히 옛날에 싸움에서 사용하는 병거와 병거 바퀴가 많이 발견된다 합니다.
위 사진 말고도
많은 증거 물품이 발견되었다 합니다.
또 특별한 것은..
솔로몬 왕이 홍해를 건넌 지점에 기둥을 새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철거해서 바다에 수몰 시켰다고 그분은 증언합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지금은 푯말 하나만 썰렁하니 세워져 있다 합니다.
(이집트 누웨이바 지점에 있는 기둥은 현재 존재함)
위 사진은..
홍해 건넌지점과 건넌 후의 지점을 보여줍니다.
양쪽 다 특이하게 삼각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넓은 평지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위 그림은..
위성에서 찍은 바다의 깊이를 나타내는 사진입니다.
정말 정말 특이하게도 홍해 양쪽 삼각지를 이은 부분만이 깊지 않은 지점이고
그 옆으로는 급격하게 깊은 바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것을 보노라면..
정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준비하신게 아닌가란 경이로운 느낌마져 듭니다.
사실 광대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요.
하나님이 강림하신 시내산을 보고 계십니다.
산이 정말 다른 곳에 비하여 조금은 검게 보이네요.
출애굽기 19장 16~25절을 보면..
강림하시는 모습과..
보기 위하여 더 가까이 나와 죽을까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산입니다.
열왕기상 19장 8~18절을 보면
대언자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있는 동굴에서 있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림에는 없지만 동굴 사진도 있습니다.
요즘 3일 동안..
구글 어스를 통해 여러 장소를 탐험(?)을 해봤는데..
이것말고도 정말 놀라운 흔적들(장막친 흔적 등등)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출애굽의 경로는 많은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위에 있는 장소가 조금은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요?
만약 이 장소가 사실이라면..
그동안 이슬람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폐쇄되어 볼 수 없었고,
어찌보면 그로 인하여 보존 되었던 증거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믿지 않는 시대에..
눈에 보이는 증거들 까지도 보여주시며 은혜를 주시려는 것은 아닐까요?
형제 자매님들 생각은 어떠세요?
김승학 형제님의 강연 동영상을 찾아서 보시고요.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2014-01-06 14:54:50 | 강평원
안녕하십니까?
사람은 영 혼 육으로 되어있고 영은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께로 간다고 이곳의 동영상에서 본것 같습니다.
그러면 각사람의 영이 하나님께로 가면 그것이 끝인지요? 즉 더 이상 영의 역할이나 기능은 없는지요?
그렇다면 각 사람의 영은 그 사람의 생존 시의 죄나 믿음과 무관한 그 무엇인지요?
다시 말씀드려서 각 사람의 영은 각 사람이 죄악을 행하거나 선행을 해도 아무런 차별이 없는지요?
어떤 글을 보면 창세기 1장 26절은 아직 영적인 인간창조이고
창세기 2장 7절에서 구체적인 인간창조를 했다고 합니다(제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읍니다)
창세기 1장 26절과 창세기 2장 7절을 연관지여 인간창조를 가르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곳의 참된 가르침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01-06 12:22:07 | 이성호
어느 날 인간관계에서 회의감을 느끼면서, 문득 ‘인간이나 동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인간에게서 지능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과연,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측면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더 나은 점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나름 비교해보니, 첫째, 동물은 그들의 본능을 꾸밈없이 자신들의 삶속에 투영시키면서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최소한 인간보다 ‘정직’합니다. 둘째, 인간은 지능을 탐욕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동물은 자신이 가진 탁월한 능력을 생존을 위한 유일한 도구로 여길 뿐 자랑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인간보다 ‘겸손’합니다. 셋째, 인간의 본성은 교만하고 이기적이어서 화려하게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지만, 동물은 자연의 법칙을 거슬리지 않고 소박하게 자신들의 삶에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인간보다 ‘순리적인 존재’입니다. 넷째, 인간은 탐욕에 눈이 멀어 합리적이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우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동물은 생존을 위한 기초욕구 이외에는 욕심이 없어 인간보다 균형감이 있다는 측면에서 ‘중용(中庸)의 미학’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더 많은 동물들에 대해 관심으로 가지고 다큐나 자료들을 즐겨 보는 가운데, 인간과 가장 흡사하게 사회구조를 이루며 살아가는 동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물은 다름 아닌 ‘늑대’라는 맹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늑대라는 동물은 친숙한 동물이 아닙니다. 매우 사납고, 잔인하며, 음흉한 맹수로 각인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음흉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을 가르켜 늑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오해는 동화나 영화, 음악 속에서도 그대로 묘사되어져 있으며, 심지어는 성경에서도 사납거나 약탈하는 사람을 늑대(이리)로 비유하기도 합니다(합1:8, 렘5:6, 마7:15. 요10:12, 욥 30:29).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늑대의 습성에서 기인된 비유일 뿐이지 늑대 자체가 부정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비유는 늑대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인 셈입니다.
늑대를 11년간 직접 추적하며 연구한 생물학자 ‘팔리 모왓’은 자신의 저서「울지않는 늑대」라는 책의 서문을 통하여 늑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 했습니다.
「오히려 늑대는 먹이가 되는 생물종(種)의 장기적인 안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며, 가축에게 입히는 손해는 아주 적은 정도이며, 대개의 경우 인간의 거주지나 농업 시설 가까이에는 살려고 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문제의 ‘진실’이다. 우리는 특대의 유죄를 선고할 때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적인 잘못된 인식에 근거를 두면서, 포악하며 무자비한 킬러라는 신화화된 이미지는 사실상 우리가 던진 우리 스스로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희생 늑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팔리 모앗의 글이 사실일까? 하며 실제로 늑대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니, 늑대는 실제로 ‘잔인한 킬러’ 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동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안전한 동물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 여러 문헌들과 자료들을 통해서 알게 된 늑대의 특징을 살펴보니, 늑대는 한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 하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암컷과 새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죽을 때까지 싸우는 유일한 포유류입니다. 거기다 언제나 자신의 새끼에게 먹이를 양보하며, 독립하고 나면 자신들의 영역에 접근하는 새끼를 적으로 간주하는 다른 맹수들과는 달리, 새끼들은 종종 부모늑대에게 찾아와 인사를 합니다. 게다가 늑대는 매우 조직적으로 사냥을 하고, 용맹하며, 절대로 비굴하게 물러서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동물 중에서 가장 탁월한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효율적인 소통능력으로 조직을 보존하며, 자신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즉시해가면서 앞날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동물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늑대’라는 맹수는 매우 매력적이고 호기심을 갖게 할 만큼 충분한 동물입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말이지요.
최근 이와 같은 늑대에 대한 오해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늑대와 관련된 서적들이 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는 달리 조금 엉뚱한 것 같지만, 인간의 본성과 배치되는 늑대의 습성을 가지고 신앙과 접목을 시켜 보면 나름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전술한 바와 같이 동물이 인간보다 분명이 나은 면도 있다는 전제 하에서 늑대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무런 죄가 없는 늑대는 인간이 만든 오해와 편견이라는 올가미로 인해서 무참히 학살을 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는 아직도 잔인한 킬러로 묘사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진실의 왜곡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통해 우리 기독교 역사에 위로와 교훈을 리뷰해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셋째, 늑대의 습성들 가운데서 인간이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그들만의 특유의 행태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매우 규칙적이고 철저해서 우리 신앙과 비교해보면 그들에게서 얻어 낼만한 몇몇의 반성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판단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늑대(동물)를 통해서 신앙에 접목시켜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동물을 재물로 삼은 것은 동물이 인간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죄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이 그랬듯이..,) 하나님께서는 어떤 동물보다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지만 인간은 동물처럼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인 이른바, ‘죄 덩어리’라는 부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동물보다 낫다고 단언하는 교만과 만용을 결코 즐비해서는 안 됩니다. 그 동안 인간을 대신해서 죽은 동물에게서 우리가 배워야할 신앙적인 교훈은 어쩌면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독교는 속죄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도덕과 윤리라는 잣대를 절대 선(善)인 것처럼 들먹이며 자신들의 의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 병이라는 죄의 열매임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동물과 비교만 해봐도 인간은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단지 그 대상이 늑대라는 맹수가 가장 적절하다고 발견했을 뿐입니다.
단지 하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생물학자도 아닌 반쪽짜리 지식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늑대라는 동물의 특성만을 가지고 감히 신앙에 접근해보겠다는 것이 다소 억지적이고, 모순적인 한계가 드러날 수도 있지만 나름의 생각의 깊이를 정리하고 나누어 보고자 이렇게 용기를 내어 <신앙에 대한 늑대와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몇 차례에 걸쳐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글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물론, 사실에 기초해서 말입니다. 다소 글이 부족하더라도 늑대라는 동물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해본다는 사실에 흥미로 여겨주시고 기대 없이 읽어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왜, 늑대인가?’에 대한 글을 줄이고자 합니다.
2014-01-05 01:59:20 | 김상진
저도 가끔 생각날 때 다시 보곤 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새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형제님 처럼 올바른 교리로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길 소망합니다.
형제님의 글에 그 소망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4-01-05 01:54:56 | 김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