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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위를 잘못 표기한 오류가 있지 않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몇 개월 전에 어떤 분이 한 형제를 만나 킹제임스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누가복음 19장 13절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흠정역: 자기 종 열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십 므나를 건네주며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올 때까지 관리하라, 하니라. KJB:  And he called his ten servants, and delivered them ten pounds, and said unto them, Occupy till I come.   그분의 질문 요지는 “왜 KJB는 여기에서 므나를 파운드(pound)로 표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복음서에서 KJB는 달란트, 드라크마 등을 영국 단위로 표기했으니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므로 오류가 있는 성경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제게 보내면서 그 형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하기에, 저도 참는 데 지쳐서 그런 쓸데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해도 해도 안 되니 이제는 단위를 가지고 오류 시비를 거는 분들이 있네요. 이런 쓸데없는 질문에 매번 답변을 해야 하나 싶지만, 한편으로 목사는 오래 참고 가르쳐야 하기에 결국 간단히 답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것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적습니다.   영어 위키 백과에 가서 pound를 치면 무게 단위인 파운드의 유래가 나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Pound_(mass)   영어 단어 파운드는 로마 단어 즉 라틴어 ‘libra’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파운드를 표기할 때는 ‘lb’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로마 사람들의 단위는 그리스 사람들의 단위에서 나왔습니다.  다음 기사의 첫째 줄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ncient_Roman_units_of_measurement   그러면 영어 파운드와 라틴어 리브라에 해당하는 그리스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므나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단위를 보여 주는 다음 기사에서 무게(weight) 부분을 보기 바랍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ncient_Greek_units_of_measurement   므나는 100드라크마이고 표준에 따라 431-630그램입니다.영국에서 1파운드는 약 450그램입니다.   그러므로 1611년 당시의 영어 성경 번역자들은 므나에서 리브라로, 그리고 리브라에서 파운드로 무게, 혹은 화폐 단위의 이름이 바뀌었기에 보통의 영국 사람들을 위해 므나를 그대로 파운드로 번역하였습니다. 즉 영국의 문화는 많은 면에서 그리스, 로마(라틴) 문화의 연장선에 있어서 심지어 화폐/무게도 이름만 바뀌었지 내용은 같습니다. 사실 파운드 자체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단위를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번역을 할 때 원어를 그대로 살려서 화폐 파운드의 경우 므나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교사가 므나의 무게 혹은 가치를 가르쳐 주면 됩니다.   한편 요한복음 19장 39절의 경우 같은 파운드라 해도 무게를 나타내는 경우는 '근'이라고 하였는데 이 경우, 원어는 리트라(litra)이고 파운드 무게와 같습니다.   흠정역: 또 처음에 예수님께 밤에 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알로에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오니라. KJB: And there came also Nicodemus, which at the first came to Jesus by night, and brought a mixture of myrrh and aloes, about an hundred pound [weight].   NIV 등을 포함한 모든 메이저 영어 성경이 100 파운드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은 채소의 경우 375그램, 고기의 경우 600그램이므로 영어 파운드를 이와 비슷한 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단위는 성경의 오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름 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Jesus’를 예수라고 표기합니다. 그런데 영어를 조금 안다고 하는 분은 꼭 ‘예수스’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다 님 자를 붙이면 ‘예수스님’(잘못 읽으면 예수 스님)이 되지요.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런 분들은 성령님도 성숨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Paris’를 우리는 파리 혹은 빠리라고 하고, 미국 사람들은 패리스라고 합니다. ‘Thomas’를 우리는 도마라고 하고, 미국 사람들은 토머스라고 합니다. 토머스 에디슨 아시지요?   그러면 ‘스’를 붙이고 안 붙이고가 오류의 유무를 결정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갈렙(Calep)은 여분네(Jephunneh)의 아들입니다.그런데 이름이 틀렸다고 ‘칼렙’, ‘예푼네’로 쓴 성경도 있습니다(표지에는 킹제임스라는 단어가 붙어 있음).   ‘예푼네’가 ‘여편네’로 들리지 않습니까?   ‘예푼네’가 정말로 맞나요? 끝의 h는 어디로 갔나요? Jesus의 s는 어디로 갔나요?   누구보다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자신들의 기준에도 미달입니다.   단위나 이름 같은 문제로 양심이 연약한 형제들을 실족하게 하면 안 됩니다.   파운드라고 하든 므나라고 하든 근이라고 하든,우리나라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하든 미국 사람이 지이저스라고 하든 하나님은 다 같은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분은 각 나라 문화와 언어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하는 단위나 이름 표기 문제로 성경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성경 안의 단어들이 있는 그대로 가능한 일대일 대응이 되게, 정직하게 수용 언어로 번역되면 그 성경을 인정하십니다.   흠정역 성경은 바로 그런 성경입니다. 제가 오늘 이 글을 쓴 것은 이런 무익한 질문을 통해 성경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려는 사람을 설득하려 함이 아닙니다. 이런 분은 이미 믿지 않기로 마음에 굳게 작정하였으므로 이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것을 가져옵니다. 마치 여호와의 증인들과 비슷합니다. 이런 불신의 악순환은 끝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접하고 고민하는 그 형제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의 큰 평강이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6:24:37 | 관리자
흠정역 성경은 복수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면서요?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비방하면 안 됩니다.   몇 달 전에 어떤 분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진영의 한 목사님이 흠정역 성경이 복수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요한복음 1장 12절이었습니다.   흠정역: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KJV: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power to become th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영어로 보면 ‘the sons of God’이 복수인데 왜 흠정역은 ‘하나님의 아들’로 단수 처리했느냐는 것이 질문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번역자가 이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번역할까요?   우리말은 특별히 접미사 '-들' 등을 사용해 복수를 부각하지 않아도 의미상 복수가 되면 복수로 쓰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교양 있는 표현이 될 때가 많습니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할 때 어떻게 말합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입니까? 아니면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들’입니까?   이 경우 영어식 문법에 맞게 복수를 써야 한다고 ‘여러분들’이라 하면 자연스럽지 못한 번역 투의 문장이 되며 연설이 조잡해집니다.   우리말은 특히 ‘모든’, ‘여러’ 등과 같이 수 개념의 형용사가 앞에 붙으면 뒤에 오는 명사는 복수라도 대개 단수로 표현합니다.   모든 국민, 모든 사람, 여러 사람, 꽃 세 송이, 네 마리 개 등   물론 이런 데서 영어처럼 하려고 ‘들’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 모든 사람들, 여러 사람들, 꽃 세 송이들, 네 마리 개들 등   그리해도 ‘모든 국민들’, ‘모든 사람들’, ‘여러 사람들’처럼 어떤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고 ‘꽃 세 송이들, 네 마리 개들’처럼 전혀 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자는 앞뒤 문맥과 특히 읽힘성을 보고 판단하여 복수의 경우 ‘-들’을 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번역한 뒤 많이 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대화를 봅시다.   아들: “아버지, 저기 있는 꽃들은 다 뭐예요?”아버지: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They are all roses).   아버지의 대답이 “그것들은 다 장미들이란다.”로 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가 훨씬 더 우리말처럼 느껴집니다. 즉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에 굳이 '-들'을 넣으면 번역 투의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됩니다.   이전에는 이런 것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영어가 보편화하다 보니 복수 등에 신경 쓰는 사례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로 하는 경우 장미는 물론 단수이고 영어로는 복수인 ‘roses’이므로 단편적으로 비교하면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것들은 다 장미란다.”라고 말하거나 써도 장미가 복수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즉, '-들'을 생략하는 것이 우리말로서는 더 자연스럽고 교양 있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장미를 단수로 표현해도 앞에 ‘그것들’과 ‘다’가 모두 여러 개를 표현하므로 그 말을 복수로 듣거나 읽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분 중에 그래도 '-들'을 붙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여러 번역자가 번역 작업에서 우리말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하게 '-들'을 사용한 책과 글이 이미 세상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은 1장 1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흠정역: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우리 주님은 성도들에게 다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 경우 ‘아들들’이라 해도 문제가 없지만 단수 아들로 하는 것이 우리말에서는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부분을 영어와 비교하고는 기계적으로 복수 처리하려 하면 교양 있는 우리말 번역이 아닌 번역 투의 조악한 번역이 됩니다.    영어에는 ‘children of Israel’이 640여 회 나옵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성경들은 이것을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원래대로 하자면 ‘이스라엘의 자손들’ 혹은 ‘이스라엘의 아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즉 야곱의 후손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일단 ‘의’를 빼도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자손’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집합 명사로 복수로 이해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매번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하면 오히려 성경의 자연스러운 읽힘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막혀 독자가 수월하게 읽지 못한다는 겁니다.    분명하게 야곱의 자손들이 아니라 그의 12 아들을 표현할 때는 '이스라엘의 아이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수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말로는 ‘이스라엘 자손’이라 해도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는 좋은 짐승입니다.”의 경우에 어떤 특정한 개, 즉 개를 단수로 본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Dogs are good animal.”로 해야 합니다. 우리말이 단수라고 ‘A dog'이라고 하면 촌스러운 번역이 됩니다.   그러므로 sons, children 등의 복수는 앞뒤 문맥을 보고 아들들이나 아들, 자손들이나 아이들이나 자손 등으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   이제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 그리고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와 반대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차이를 잘 이해해야 좋은 번역이 된다는 점을 이해하셨습니까?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들은 바로 이런 점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아들들’로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쉬움과 불만을 토로하면 결국 성도들의 성경 신뢰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말 등 명백하고 단순한 것에 대한 교양이 부족해 설익은 주장이나 가르침을 양산하거나 그것에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말 용법을 잘 이해하면서 이런 주장을 지속해서 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의 의도가 순수한지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말에서는 복수를 쓰면 자연스럽지 않지만 교리적으로 꼭 써야만 하는 경우 저희는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포기하고 모두 복수 처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들’(heavens)과 ‘죄들’(sins)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단어들은 교리적으로 반드시 단복수 구분이 되어야 하므로 자연스럽지 않아도 복수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고민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나, 혹은 한국어의 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성도들 앞에서 자기자랑을 하기 위해 흠정역 성경이 단수와 복수도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결국 킹제임스 성경의 위상이 약화되며, 자신의 목회와 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목사나 교사는 이런 일을 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며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흠정역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부디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먼저 제게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5:15:45 | 관리자
흠정역 성경은 시제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면서요?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문제를 제기하려거든 먼저 사실관계부터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는 흠정역 성경을 비판하면 그것은 성경 신자들을 특히 연약한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흠정역 성경을 보는 분들 가운데 시제를 문제로 삼아 혼란을 일으키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1-4절을 보겠습니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이런 분들은 1절의 ‘창조하시니라’, 2절의 ‘움직이시니라’, 그리고 5절의 ‘부르시니라’가 영어로는 ‘created’, ‘moved’, ‘called’로 시제가 과거로 되어 있는데 왜 흠정역은 이것들을 현재로 번역했느냐고 꼬투리를 잡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으로 흠정역 성경의 번역을 비난하는 분들은 한국말을 쓰는 성경 신자 중에 자기만 독보적으로 영어를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런 설익은 주장에 미혹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우, 번역의 의도와 사실을 잘 알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위의 세 단어를 현재로 표현하려면 각각 ‘창조하시느니라’, ‘움직이시느니라’, ‘부르시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흠정역은 각각 ‘창조하시니라’, ‘움직이시니라’, ‘부르시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흠정역 성경은 ‘하느니라’체라는 고어체의 예스러운 표현을 수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문체를 웅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면으로만 보자면 개역성경은 뛰어난 번역입니다. 우리말의 웅장한 표현을 성경에 잘 녹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을 현대인에게 익숙한 문체로 바꾸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얼마나 조잡하고 가볍게 읽힐까요?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물론 시중에는 이미 이런 식의 번역으로 출간된 성경이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이 당장 읽기에는 친숙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심과 장중한 경륜으로써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오신 바로 그 놀라운 성경 기록의 격이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더불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 불가한 최고의 경전이라는 성경의 독보적 위상과 가치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번역은 일단 현대인에게 친숙하고 또 어법상 틀린 번역은 아니겠지만, 성경 번역으로는 합당하다 할 수 없습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읽는 창작 동화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이제 독자 스스로 두 번역을 비교하며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 시제를 잘 살려야겠다고 다음과 같이 번역하면 어떨까요?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더라.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더라…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더라.   이렇게 모든 구절을 ‘하셨더라’로 해 놓으면 웅장하게 선언하는 분위기가 전혀 살아나지 않고 그 표현이 조잡해집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독자께서 스스로 읽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는 예스러운 표현인 ‘하느니라’체를 도입하여 웅장하게 선언하는 표현기법을 써야 합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것을 잘 표현하였고 개역개정을 내면서도 이런 부분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다음은 개역개정 위원회의 번역 원칙입니다.   개역 성경의 옛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하다’체를 사용하여 현대화하지 않고, ‘하느니라’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고어체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1-4절에서 보듯이 ‘하시니라’ ‘좋았더라’ 등의 표현을 ‘하셨다’ ‘좋았다’ 등으로 고치지 않았다. http://www.bskorea.or.kr/kbs_gae/change/change2.htmlhttp://pcouncil.net/jboard/?code=ilban-aa002&id=1781&p=detail&page=48(번역의 원칙만 참조하기 바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의 뜻은 현재 평균적인 교양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현시대에 쓰고 있는 말이 아닌 지금 실생활에서 쓰고 있지 않은 예스러운 고어체의 글에서 경전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흠정역 성경 창세기 1장 1절은 과거를 현재로 오역한 것이 아니라 ‘하느니라’체로 과거의 사건을 웅장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고어체로 유려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이 굳이 이 부분을 집요하게 따지는 이유는 1장 1절은 오래전에 마친 일이고, 2절부터는 재창조임이 나타나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도 흠정역 성경은 3, 4, 5절 끝에는 ‘빛이 있었고’, ‘좋았더라’, ‘첫째 날이더라.’라는 말로 과거 시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조합을 거쳐서 성경이 웅장한 경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입다의 이야기를 하나 더 예로 들겠습니다.   사사기 11장 34-40절을 읽으시면서 각 절의 어미 처리를 유심히 보시면 ‘하느니라’와 ‘하였더라’가 조합으로 나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9절의 ‘돌아오니라’와 ‘아니하니라’는 현재 시제가 아니라 고어체로 과거 시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로 표현하려면 ‘돌아오느니라’와 ‘아니하느니라’가 되어야 합니다.   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35 그가 그녀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네가 나를 심히 참담하게 하였으며 나를 괴롭게 하는 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도다. 내가 {주}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매 3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를 향해 입을 여셨을진대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주}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원수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그러므로 이런 부분을 지적한 뒤 줄을 긋고는 흠정역이 오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자가 번역 과정에서 시제도 못 맞추었다거나 혹은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해 억지로 시제를 고쳤다고 한다면, 그것은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단언컨대 저는 흠정역 성경에서 제가 알면서 고의적으로 시제 등을 고친 곳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미처 알지 못한 채 시제 등이 잘못 표기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데를 발견하시면 언제라도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마치 제가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역한 것으로 개인 블로그 등에 발표하면 결국 킹제임스 성경 자체의 위상이 약화됩니다. 특히 목사나 교사가 이런 일을 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며 성경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더불어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겠습니다. 한국말을 쓰는 한국 사람에게 목회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려면 한국어와 영어 중에 어느 언어를 우선해서 잘 이해하고 구사해야 할까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한국어입니다. 물론 목회자나 성경 교사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 아직도 많은 자료와 좋은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못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먼저 한국어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깊고 품위 있게 구사할 줄 알아야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신장이 크지 않은, 즉 다리가 길지 않아 큰 보폭으로 움직일 수 없는 육상 선수와 한쪽 다리만 비정상적으로 긴 육상 선수가 있다면 실제 경기에서 누가 더 유리할까요? 물어볼 것도 없이 비록 짧지만, 정상적인 다리를 지니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처럼 영어에 관해서는 비교적 정통하지만 정작 한국어에 대한 교양과 이해가 부족하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설익은 문제를 제기하고 어설픈 주장을 하게도 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영어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면 우리말로 된 흠정역 성경과 기타 자료들만 충실하게 공부하고 연구한 그리스도인보다 어느 부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독자 여러분!    흠정역 성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거든 아직 양심이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먼저 제게 이메일 등을 통해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지체들을 위한 이러한 배려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잘 헤아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8 14:26:0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일반 서적을 읽기 위해서라면 네이버 사전도 훌륭합니다. 단, 독해는 사전이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구조를 이해해야 가능합니다. 1. 기초 문법을 공부하시고, 2. 무한 반복을 통해 문장 구조의 패턴을 익히시기 바랍니다. 일반인이 번역해 놓은 예문은 조심하세요. 오역이 많습니다. 샬롬
2015-03-27 21:19:51 | 김항수
참고로 게인스 존슨의 다소 과한 주장은 재창조론을 믿는 분들도 다 받아들이지 않는데, 특히 지질학적인 부분에서 대개의 성경 신자들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재창조론 자체도 유신론적 진화론과 일치시키기 위함이 아니고, 과학적 주장보다는 성경의 단 한 구절이라도 놓치고 무시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취지임을 한 회원님이 피력하셨으며, 저 역시 글에서 여러 번 썼듯이 그런 오해와 선입견을 바탕으로 이 글을 쓴 것은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2015-03-27 15:59:11 | 김재욱
이 사이트에서 재창조론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최근에 다시 거론되는 이유는 최근 많은 분들이 혼란을 겪으며 궁금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주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같은 성경 신자들끼리 더 큰 차원에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나중에 또 꺼내기보다는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써 봅니다.       저는 이미 재창조를 믿지 않는 것이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과학자는 아니지만 창조과학의 많은 문헌을 보며 설명하고 전달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책임도 있고, 할 말도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잘못 보았으면 저서가 아무리 많아도 두려운 마음으로 고치면 됩니다. 성경을 잘못 전달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더욱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므로 나름 깊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재창조를 믿는 분들의 생각을 바꾸고 강요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분들도 더 제대로 믿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다만 무엇을 믿든지 서로 타당한 근거들을 가지고 접근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재창조든 6일 창조든 친한 분이나 존경하는 지체가 다 그것을 믿으니 자신도 친근함을 느끼고 서로 인정해주는 그런 이유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저에게는 재창조 관련 서적 자체가 없었는데, 최근에 얻은 자료 중 게인스 존슨이라는 분이 쓴, 창세기 간극 이론의 비판을 재반박한 책이 있습니다. 워낙 다양한 재창조 주장 논리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어 이분의 소책자를 위주로 썼습니다. 재창조를 믿는 또 다른 분들의 견해와 다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분은 젊은 지구 지지자들에게 독설에 가까운 비방을 하고 있어서 조금 불편했습니다만, 내용만 가지고 몇 가지 주제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라킨       클라렌스 라킨은 훌륭한 성경 해설가이며 그의 그림들은 직관적인 시각화로 많은 이들의 성경 이해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성경에 100% 다가간 사람은 없습니다. 라킨이 재창조를 믿고 가르쳤다고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http://www.chartgeek.com/wp-content/uploads/2011/08/charles-larkin-1.jpg     이 링크에서 보듯이 라킨은 주의 천사를 날개가 있는 존재로 그렸습니다. 그러면 천사는 날개가 있어야 할까요? 라킨이 틀리고 성경이 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날개를 지우고 알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라킨도 기뻐하리라 믿습니다.       성경의 계시는 점진적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지식이 증가한다는 다니엘서의 말씀처럼 지식이 증가하여 거의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파악하는 지혜는 과거의 사람들이 더 깊이가 있고 통찰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명백히 관측되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일은 후대의 사람들이 더 많이 알 수 있고, 축적된 정보와 발달하는 과학이 더 많이 보여 주므로 성경의 사실성을 믿는 믿음의 근거로 삼을 것들이 많습니다.     라킨은 달이나 화성탐사, 나노기술, 원자 현미경, 베리칩 같은 것을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가 부실한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그가 창조과학을 자기 가르침에 반영하지 않은 것도 시기상 당연한 일입니다.       존슨은 '젊은 지구 창조론’이 탁월한 세대주의 성경 교사 라킨의 커다란 줄기에서 이탈하는 것이고, 킹제임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을 이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라킨은 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짜 이탈은 킹제임스 성경에 없는 것을 장황하게 만들어 '진리'로 칭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2. 진화론       간극 이론 지지자들은 그것이 성경의 단순한 사실을 알고자 하는 것뿐이지, 진화론의 연대와 맞추려는 시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진심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화석들이 과거 세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아담과 이브는 화석더미 위를 걸어 다닌 것이라고 합니다.     6일 창조 이전에 호미니드(hominid), 즉 완전한 인간은 아닌 어떤 존재가 살았다는 것입니다(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최초의 인간임은 인정함).       아무튼 그 호미니드들이 물에 의해 멸망을 받았고, 그때의 세상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화석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화석이 있는데 인간 비슷한 화석은 전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인류 화석은 모두 원숭이와 유인원이거나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호미니드나 유인원에서 진보한 중간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담 이전에 있던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 화석은 당연히 없겠지만, 죽지도 못하는 존재일 테니 떠돌다가 6일 창조 이후의 세상에서 귀신처럼 사람을 거처로 하고 산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돌아가듯 멸망으로 인해 모두 회수된 것일까요? 육이 없는 영적인 존재면 천사와 비슷한 상태인데, 그들에게 땅과 식물과 다스릴 다른 동물이 필요했는지... 왜 그들 때문에 애먼 동식물과 땅이 저주를 받아야 했는지 알 수 없는 의문뿐입니다.             3. 성년현상       간극 지지자들은 재창조론이 지금의 화석과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 등에 잘 부합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연대측정법은 가장 나은 방법이지만 오류가 많아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는데요...) 오래전에 묻힌 것으로 보이는 화석 등의 긴 연대가 6천년 이전을 말해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해와 달과 모든 동물은 6일 동안 창조된 것이 맞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태양은 6천년짜리로 보이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성경의 창조는 '성년 현상' 없이 세상의 과학에 부합될 수 없습니다.       존슨은 우주도 6천년이 맞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수십억 광년 걸려서 다른 별에서 오는 빛은 언제 창조된 것입니까? 이것을 믿으려면 그들이 거부하는 젊은 지구론을 믿는 것과 똑같은 믿음과 근거가 필요하므로 재창조가 지구의 상태를 더 잘 설명한다는 말은 별 효력이 없습니다.   빛의 속도와 우주론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적이 있습니다만, '주께서 정하신 달과 별들을 내가 깊이 생각하오니'라는 구절(시 8:3)처럼 이미 인간이 느낄 수 있도록 주신 것입니다. 물론 간극 지지자들도 성년현상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긴 연대를 지지하는 증거가 지구에 많으니 이것이 재창조의 증거가 된다"는 설명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존슨은 그 옛 세상에 (지금 화석으로 나타나는) 생물들이 있었을 테니 하늘에 햇빛과 구름과 밤하늘의 별이 왜 없었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도 지금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세상인데, 하나님이 다 멸하시고 해와 별 등 모든 것을 다시 만드신 것이 됩니다.             4. 공룡과 인간       계속해서 존슨은 과거의 세상에서 인간과 공룡이 함께한 것이 아니라, 공룡이 멸종하고 한참 후에 아담 이전의 인간인 유인원이 번성했다는 설명을 합니다.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진화론의 이야기와 같은데요, 유인원이 현존하는 하나의 동물인데, 그런 것이 과거 세상의 인간이었다면 모순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6일 창조 이전에는 동물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세상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그저 유인원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공룡은 분명히 공존했고, 함께 찍힌 발자국 화석은 유인원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의 것이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룡에 대한 기록과, 그림과 조각을 남겼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많은 증거들이 있으며, 공룡은 20세기에도 여러 번 목격되고 포획되었습니다.   심지어 2012년에는 적혈구와 DNA, 피부조직까지 그대로인 공룡의 살점이 발견돼 <추적 60분>의 원조인 <60minutes>에 실험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습니다(유튜브에 다 공개됨). 아무리 길어도 100만년이면 단백질이 광물화 된다는 자신들의 과학을 무시하고 진화론자들은 6,600만년 전에 멸종한 공룡의 조직이 그대로 남은 기적이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욥기 38장의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인간이고, 이들이 하나님의 원 창조 때 기뻐 찬양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옛 세상에서 공룡이 창조될 때 인간이 없었다는 주장은 무엇일까요?             5. 다양한 견해       간극 지지자들의 견해는 성경의 여러 구절을 각기 다르게 보기도 합니다. 스코필드 성경은 이미 재창조를 참고용으로만 두고 젊은 지구를 채택했지만 과거에는 예레미아 4장 23~26절을 창세기 1장 2절의 재창조 관련 구절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존슨은 그것이 오류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대환난 후 주님 강림과 천년왕국 직전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견해들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주장됩니다. 어떤 사람은 스코필드의 재창조 견해를 다 믿고, 어떤 사람은 일부만 믿는데, 과학이 드러난 지금의 스코필드 성경은 재창조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다른 견해가 많다는 것은 그것이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하다는 증거입니다.             6. 하늘들       (벧후 3:6)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 3: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존슨은 지금 있는 세상이 노아의 홍수 이후가 아닌 6일 창조의 세상 전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기 나오는 '하늘들’을 두고, 노아의 홍수 때는 '하늘들’이 파멸되지 않았으므로 그때 있던 세상은 아담 이전의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이라고 했으니 6절에 있는 '그때 있던 세상'도 '그때 있던 하늘들과 땅들'로 보고 이것이 노아의 홍수 때의 파멸이 아닌 과거 세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헷갈리죠?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있던 세상이라고 하면 그냥 그 말만 받아들이면 되지, 알아서 7절의 '하늘들'을 앞 구절에 대귀로 삽입하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숨은 그림 찾기도 아니고, 어떻게 이 구절에 과거의 세상을 대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모든 간극 지지자들이 채택하는 근거 구절은 아니었습니다.)             7. 창조과학 비난       위키백과나 네이버 지식인 등에 가면, 아니 온라인 세상 도처에 창조과학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있습니다. 저주에 가까운 비아냥거림을 저도 무수히 당하는데, 늘 골치입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가장 큰 요지는 창조과학이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존 과학을 무시하고 단순히 6천년이니 6일 창조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어느덧 창조과학 진영도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긴 연대를 지지하는 양 모 교수가 학회에서 퇴출되면서 새로운 세력을 만든 것입니다. 학회 내에서조차 겉으로는 젊은 지구론 지지자들에 섞여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연대 문제를 애매하게 피력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아 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적이고 많은 공부를 한 분들은, 성경을 단순히 믿는 것은 조금 유치한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학문이 방향은 다르지만 팩트에 있어서는 더 정확한 결과를 보여 준다고 믿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도 증거를 댈 수 없는 기원의 문제이며 그것은 믿음에 근거한 하나의 해석 체계이지, 팩트로는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성경 신자들은 성경을 철저히 믿는 분들이지만 화석 문제나 첨단과학을 동원한 연대에 관한 증거들이 믿기지 않을 때 성경이 재창조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       지금까지 살펴 본 것들만으로도 재창조론은 혼란스럽습니다.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더 많은 근거가 있을 것이고, 그 이론 중에 잘못된 주장들도 있는데 그것만 봐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것을 '간극 진리'라고 부르는 점입니다. 그저 이런 견해, 이런 학설도 있다는 정도를 넘어 이것이 진리라면 우리가 그간 배우고 가르친 많은 것이 다시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이런 미미한 근거로 창세기라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흔들려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창조과학 강의를 할 때 기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불신자가 암흑 속을 걷는 것이라면   창세기를 모르는 신자는 안개 속을 걷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로운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사 11:3)         성경을 바로 보자는 의도이긴 하지만, 사실상 재창조론이 기독교 신앙과 창세기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논의가 단편적인 사실에 관한 논쟁보다 무엇이 진리인지 다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다음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은밀히 진리를 감춰놓는 분이 아니라 밝히 드러내는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땅의 어두운 곳에서 은밀한 가운데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의 씨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를 헛되이 찾으라, 하지 아니하였노라. 나 {주}는 의를 말하며 옳은 것들을 밝히 알리느니라. (사 45:19)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정상적으로 창세기 1장과 2장 읽기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892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www.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2015-03-27 14:18:11 | 김재욱
    영어 원서로 처음 읽어보려 하는데 많이 어렵고 더디네요 ㅜㅜ 아예 빈번하게 나오는 단어를 단어장처럼 만들어 놓고 외워가면서 매일 조금씩 읽으려 하는데 영어 사전 좀 추천해 주세요~   '노아 웹스터의 'The American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라는 사전이 추천되어 있던데 영영 사전이더라구요..ㅜㅜ...   단어로 인해서 읽는 시간이 많이 더딘 편인데. 혹시 그나마 영한사전 중에서 가장 추천하시는 사전은 무엇인가요?     -  
2015-03-27 14:10:30 | 장은지
성정훈 형제님, 반갑습니다. 저는 멜번 Rowville에 사는 최상만 형제입니다. 주님 안에서 함께 교제하는 이재수 형제가 어제 형제님 글을 보고 제게 연락을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님 글처럼 여기 멜번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는 한인 교회는 아직 없고, 우리 성경 신자들이 그 터전을 일구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KeepBible 사이트를 통해서나 멜번 교민들에 대한 광고를 통해 성경 공부 모임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일을 풀어가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형제님을 포함해서 세 사람이 함께 만나서 나누면 좋겠습니다. 이재수 형제님도 성정훈 형제님 글을 보고 무척 반가와하며 속히 만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제 전화는 (0422) 134 315 입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뉴질랜드 최문선 자매님께서 연결해 주시려고 글을 올리셨는데 국제 전화를 하시기가 곤란하실지도 몰라서 제 전화번호를 다시 올렸습니다. (최문선 자매님, 감사합니다. ^^)
2015-03-26 16:57:59 | 최상만
안녕하세요?   어제 ‘창조인가, 재창조인가?’라는 글을 올리며 재창조를 온 세상에 파급시킨 성경이 바로 스코필드 성경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http://keepbible.com/BQNA01/View/4Nz   스코필드 성경은 전 세계의 근본주의 성도들이 가장 많이 읽고 사랑한 성경이고 저 역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위키 백과에 가서 보면 알겠지만 이 성경은 1909년에 스코필드가 킹제임스 성경에 주석을 단 스터디 성경이고 근본주의와 세대주의를 파급시킨 유명한 성경입니다. 그 뒤 1917년 판이 나오면서 어셔의 성경 연대를 성경 안에 집어넣었고 이것이 보통 구 스코필드 성경(Old Scofield Reference Bible)으로 불리며 가장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cofield_Reference_Bible   이 성경을 1967년에 옥스퍼드 출판사가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조금 현대화하고 몇 가지 주석을 바꾸어 New 스코필드 성경(New  Scofield Reference Bible)이라는 이름으로 수정판을 출간하였는데 1917년의 구 스코필드 성경만큼 반응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옥스퍼드 출판사는 2003년에 다시 스코필드 성경 III(Scofield Reference Bible III)을 출간하면서 원래의 킹제임스 성경 본문으로 성경 본문을 바꾸었습니다. 다만 창세기 1장 주석은 1967년도의 뉴 스코필드 성경 내용을 거의 유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점은 창세기 1장 2절 주석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창조 과학 입장을 먼저 소개하고 뒤에 간극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에 올려놓은 2003년도 판 창세기 1장을 캡처한 사진의 주석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창조 과학 입장은 ‘Original Chaos interpretation’으로서 그 핵심은 하나님이 창조의 첫 날 지구와 우주 공간을 만드셨는데 그때에는 아직 지구와 우주에 있어야 할 것들이 채워지지 않아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절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반면에 간극 이론은 ‘Divine judgement interpretation’으로서 원래 구 스코필드 성경이 주장하던 바로 1절과 2절 사이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고 수백 억년의 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 스코필드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기억하는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간극 이론인데 왜 지금은 그 이론을 창조 과학에 의한 주석 뒤로 밀어 놓았을까요? 이것은 결국 간극 이론이 아니라 창조 과학이 맞는다는 것을 스코필드 성경 편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간극 이론과 창세기 6장의 천사에 관한 해석만 빼면 스코필드 성경만큼 좋은 스터디 성경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 스터디 성경으로는 가장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증거들이 창조 과학을 지지하는데 간극 이론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그 부분을 뺄 수는 없고 창조 과학에 따른 주석 뒤에 남겨 둔 것입니다.   왜 이러한 변화가 생겼을까요?   그 이유는 현시대의 많은 증거들이 창조 과학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에 간극 이론이 나올 때는 진화론에 대항할 무기가 크리스천들에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순순한 의도로 간극 이론을 가지고 성경과 과학을 조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이미 창조 과학의 많은 증거들 자체가 지구의 생성 연대가 얼마 되지 않음을(Young earth) 확연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지질/화석 체계도 단 하나의 퇴적층을 보여 줍니다. 간극 이론대로 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멸절하였다면 현재 지구의 화석/퇴적층은 최소한 2개로 확연하게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간극이론이 역사의 진실이라면 창조 이전의 퇴적층과 또 다른 하나인 노아의 홍수 때의 퇴적층이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질학의 증거는 단 하나의 퇴적층만을 보여 줍니다.   다음은 미국에 계시는 이황로 목사님의 편지 내용입니다.   --------- 현재는 결국 세 판의 스코필드 성경이 모두 판매되고 있고, 미국의 독립침례교회 목사/성도들은 내용상 대부분 2003년도의 3판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재창조가 틀림을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독립침례교회 계통 신학교들의 거의 대부분과 복음주의 크리스천대학교들은 모두 현재 ‘창조 과학’을 믿고 신학생들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학교의 교사로 지원하는 학생들은 필수과목으로 ‘창조 과학’을 이수해야 합니다. 피터 러크맨 계열과 다른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아직도 간극 이론을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구 스코필드 성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워낙 많이 팔렸습니다. 그래서 1950년 이전에는 근본주의 진영의 사람들은 거의 다 간극 이론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   이런 이슈로 인해서 킹제임스 성경 진영이 나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정역 성경의 창1;28 등이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기에 사실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오늘도 간단히 적었습니다.   부디 이러한 상황과 저의 마음을 너그럽고 지혜롭게 잘 헤아려 주시길 부탁합니다.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new.keepbible.com/Cmn2/View/4CU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keepbible.com/BQNA01/View/4O2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keepbible.com/Study5/View/3Zr     샬롬   패스터
2015-03-26 10:51:47 | 관리자
'킹제임스흠정역'은 '없음'이 없는 성경이자 하나님의 최종 권위의 성경임을 믿습니다. 그것을 믿는 분들이 이제와서 왜? '없음'이 있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없음'이 없기에 밋밋해서 내용을 추가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간극이론을 지지하게 되면, 창세기 1절과 2절 사이에 원래 있어야 하는 것을 뺀 것으로 보던지 아니면 원래 없는 것에 무엇을 더하고자 하는 의도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지식이나 논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가 않습니다. 성경이 더 이상의 것을 말씀하지 않으면 인간은 거기에서 멈춰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인간의 어쭙잖은 지식으로 인류의 6000년의 기간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상상력을 더한다면 그것은 지식이라는 아름다움을 탐하는 일종의 선악과일 것입니다. 이론은 가설일뿐입니다. 명제가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가설을 세운다는 그 자체가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그 중심이 문제인듯 싶습니다. 말씀을 다룰 때는 아래의 말씀을 참고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주장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KJV흠정역] 요한계시록 22:18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2015-03-25 21:37:18 | 김상진
저는 물론 성경대로의 창조를 단순하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리고 저뿐 아니라 많은 분이 이 명쾌하고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고믿음의 기초로 삼기를 바랍니다.그러나 김** 형제님의 댓글처럼 재창조를 믿는 형제/자매님이라고 해도바른 성경을 알리고 바른 교리를 전파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고영적 갓난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을 일깨워야 한다는논쟁의 여지 없는 시대의 대의(大義)를 위해 동료로서 마땅히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분명한 것은 흠정역 성경이 한국말을 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 널리 전파되고 확고하게 뿌리내려야만이 시대의 대의가 실현되어 갈 수 있다는 겁니다.과연 지금 소수의 성경 신자가 이렇듯 대의를 이루어가는 일에 다른 대안이 존재합니까?저는 현재로써는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흠정역 성경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봅니다.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상황 속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지혜롭게 분별해 내야 합니다.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것이 어떤 가치와 신념이건 흠정역 성경을 알리는 사역이 손상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경 신자이며 침례성도로서 양심의 자유를 믿음 생활의 기본 원칙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 양심의 자유로 인해 반드시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회계 보고 해야 함을 잊지 말고 무엇이 진리이고 더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 대의인가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맑은 정신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5-03-25 20:45:44 | 김대용
성정훈 형제님, 안녕하세요? 저는 호주 옆동네 뉴질랜드에 사는 최문선 자매입니다. 호주 멜번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는 한국어 서비스 되는 교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는 두 형제님이 만나서 함께 성경읽고 교제하고 계십니다. 그 중 한 형제님은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현지인 독립침례교회로 출석하고 계시고요. 저에게 연락주시면 그분들과 연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64(국가)-27-779-8877(휴대전화) 입니다. 카톡도 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3343#c_
2015-03-25 20:32:12 | 최문선
안녕하세요?   요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독자들 가운데 창세기 1장 28절의 ‘replenish’를 ‘채우다’로 번역한 것에 대해 오역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창1: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심지어 어떤 분들은 대단히 우려스럽게도 책을 쓰면서 이 단어를 흠정역 성경이 잘못 번역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누구라도 사전에 어떤 사람의 가르침에 의해 편견을 갖거나 세뇌되지 않은 상태로 성경을 평이하게 보았을 때 재창조라는 주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간단히 보여 드리려 합니다.   앞서 밝힌 대로 흠정역 성경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에 대한 우려와 고심이 있었지만 흠정역 성경 자체가 오역이라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음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재창조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창1:1과 2절 사이에 수백억 년도 될 수 있는 엄청나게 긴 기간이 들어 있어서 진화론자들의 주장과 성경의 연대를 일치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재창조를 주장하는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분명히 간극(Gap)이 있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자, 이제 마음을 열고 다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창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창1:31-2:2,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출31:17,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하라.   4. 창1:26-27,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5. 마19:4,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at the beginning)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6. 막10:6, 창조의 시작부터(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2절까지는 하나님의 7일 특별 창조를 보여 줍니다. 이 특별 창조는 창세기 1장 3절부터가 아니라 1절부터입니다. 창세기 2장 1절이 창세기 1장의 모든 일을 요약하고 2절은 그 뒤의 일곱째 날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창1:1의 '하늘과 땅'은 2:1의 '하늘들과 땅'과 동일합니다. 즉 창1:1의 하늘은 셋째 하늘을 제외한 우주 공간을 이야기하며 여기에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이 있기에 2:1은 그 우주 공간을 구체적으로 하늘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창2:1은 창1:1 이하의 창조 기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기록한 모세는 출20:11, 31:17에서 다시 한 번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2절까지의 7일 창조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이 7일 안에 수백 억년이라는 간극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의 하루는 지금의 24시간의 하루입니다.   더욱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직접 재창조가 불가능함을 복음서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위에 있는 막10:6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람이 [재창조의 시작이 아니라] 창조의 시작부터 즉 창조가 시작되며 여섯째 날에 지어졌다고 하십니다. 마19:4도 동일합니다.   재창조 논란에 대해 고심하는 분들은 과연 재창조가 역사의 사실이라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창조의 시작을 말씀하시면서 재창조에 대해 일절 거론하시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를 솔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명백한 성경 기록을 두고도 계속해서 재창조를 주장하면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명백한 창조 진실을 두고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분으로 비쳐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창세기 2장 1절은 창세기 1장 1절 이하의 모든 창조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백억 년이든 수천 년이든 혹은 심지어 단 하루라도 간극(Gap)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창세기 1, 2장을 편견을 갖거나 세뇌되지 않은 채 읽으면 누구라도 간극이 있다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에게 1장부터 2장 2절까지를 가져다주고 이 창조가 며칠 동안에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금세 답이 나옵니다.   한편 재창조론자들은 렘4:23과 사34:11을 재창조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렘4:23은 창조나 재창조와 무관합니다.문맥을 보십시오. 이것은 유다 민족의 멸망을 이야기합니다.   23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하늘들을 보니 그것들에는 빛이 없었고 24 내가 산들을 보니, 보라, 산들이 떨며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움직였고 25 내가 보니, 보라, 사람이 없었으며 하늘들의 모든 새들이 도망갔고 26 내가 보니, 보라,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그곳의 모든 도시들이 {주} 앞에서 그분의 맹렬한 분노로 말미암아 무너졌도다. 27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온 땅(the whole land)이 황폐할 터이나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인하여 땅이 애곡하고 위에 있는 하늘들이 검게 되리라. 내가 그것을 말하였고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며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도다.   비록 23절의 땅이 영어로 earth로서 창1:2와 같지만 그 earth는 지구가 아닙니다. 27절이 그 땅을 ‘그 온 땅’(the whole land)이라고 설명하면서 유다의 온 땅이 심판을 받아 초토화될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런 데서 왜 창조. 재창조가 나옵니까? 여기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이사야서 34장 11절 역시 창1:2에서 사용된 동일한 히브리어가 쓰였다 해도 그 구절은 결코 창조나 재창조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구절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에돔 땅이 영원히 폐허가 되어 짐승들의 거처가 될 것을 말합니다.   11 다만 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그것을 차지하며 또 올빼미와 까마귀가 그것 안에 거하리니 그분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돌들을 팽팽히 드리우실 터인즉 12 그들이 그것의 고귀한 자들을 왕국으로 부르되 거기에 아무도 없겠고 그녀의 모든 통치자들도 없으리라.   편견 없이 이 구절들을 문맥 안에서 있는 그대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베드로후서 3장 5-6절을 가지고 재창조를 입증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5 그들은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6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베드로는 전서와 후서에서 지금 있는 세상과 옛 세상(벧후2:5)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5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   벧후3:7의 지금 세상은 6절의 홍수 이후의 세상이고 벧후2:5의 옛 세상은 홍수 이전의 세상입니다.   베드로는 재창조를 주장하는 이들의 ‘창조 이전의 또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을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심지어 예수님도 그런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지난 80-90년 동안 온 세상에 재창조를 가장 널리 파급시킨 성경은 스코필드 관주 성경입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그 성경은 대단히 좋은 성경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스코필드 성경은 창세기 1장의 재창조를 수정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젊은 지구(Young earth)에 대해 증언하는 창조의 증거들이 넘쳐나서 이제는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인 재창조를 가지고 진화론을 대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 많은 성도들이 선한 의도로 재창조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양심의 자유로 선택한 이러한 일에 대해 무어라 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창조 가설 때문에 흠정역 성경 번역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가르침을 지속해서 여러 사람에게 퍼트리는 일만큼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재창조는 성경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문맥에 맞게 읽고 해석해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이론입니다.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인한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그 주장에 맞추어 인위적으로 성경 기록을 조합하고 줄을 세워야만 논증이 가능한 가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출한 지혜와 통찰력을 통해 다른 사람이 모르던 성경의 숨은 보화를 캐내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일이라 해도 인위적으로 또는 인간의 욕심으로 성경 해석에 있어 도가 지나친 상상력과 추리를 가미하면 오히려 단순하고도 명백한 성경의 진리가 가려지고 왜곡됩니다. 재창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성경 신자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지 무조건 새롭고 기발한 가르침과 남이 모르는 지식에 열광하며 남보다 우월하다는 지적 자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발 줄과 줄 사이 혹은 구절과 구절 사이의 빈 공간을 읽지 말고 그저 모세가 기록한 대로 창세기 1장부터 2장 2절까지를 편견 없이 단순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직한 분이라면 재창조가 불가능함을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계기가 되면 추후에 이런 증거들을 모아 창조와 진화와 관련된 책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new.keepbible.com/Cmn2/View/4CU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www.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샬롬   패스터  
2015-03-25 16:07:57 | 관리자
창25:18의 ‘네가’는 오역인가요?   어떤 분이 흠정역 성경은 ‘네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라는 구절에서 ‘네가’를 첨가했으니 오역이라고 말합니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흠정역: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수르에까지 거하였는데 수르는 네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 이집트 앞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의 모든 형제들 앞에서 죽었더라.   개역: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KJV: And they dwelt from Havilah unto Shur, that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and he died in the presence of all his brethren. NKJV: They dwelt from Havilah as far as Shur, which is east of Egypt as you go toward Assyria.) He died in the presence of all his brethren. NASB: They settled from Havilah to Shur which is east of Egypt as one goes toward Assyria; he settled in defiance of all his 5relatives. (NASB는 you를 one으로 쓰고는 각주에 원래는 ‘you’라고 기술함)  NIV: His descendants settled in the area from Havilah to Shur, near the border of Egypt, as you go toward Asshur. And they lived in hostility towardc all their brothers.   히브리어 원본에는 ‘네가’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모든 역본이 다 ‘네가’를 뜻하는 ‘thou’ 혹은 ‘you’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말대로 ‘네가’를 포함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하지 않은 개역성경 등이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 삭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네가’가 들어가면 우리말 어법상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네가’를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자기보다 500년쯤에 전에 살던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수르라는 도시가 그때에도 있었고 모세 당시에도 독자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 이집트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500년 전이나 지금 모세 당시 독자의 시대나 동일함을 보여 주려고 즉 생동감을 주려고 모세는 독자를 지칭하는 ‘네가’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살던 구체적인 독자(수신자)를 염두에 두고 쓰인 글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도 일차적으로 당시 모세와 함께 살고 있던 구체적인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인 성경 기록이라는 점을 전제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네가'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독자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읽으면 '네가'라는 인칭 대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을 성경 본문에서 바로 찾을 수 없기에 오역 혹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번역이라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이런 구절은 창10:9, 10:30, 삼상27:8 등에도 있으며 흠정역은 이것을 다 반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에서 단편적인 생각으로 우리말 어법에 맞추겠다고 임의대로 ‘네가’를 삭제한 성경이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5 15:10:0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호주 멜번에 거주하고 있으며 항상 진리의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흠정역 성경을 알게 되어 말씀을 읽게 된지 3년이 되었는데요, 미국이나 다른 나라는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호주에는 아직 없는 것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혹시 호주 지역에는 다른 사역 계획이 없으신지 궁금하구요, 추천하실만한 계획이나 현지 독립침례교회 정보가 있으면 알고 싶습니다.   특히 멜번의 현지 교회들은 거의 장로교가 90%이상이고, 대부분 연합교회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즘 많이 혼동스럽고 어느 교회를 나가서 어떻게 섬겨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어서 여쭈어 봅니다.   오늘 하루도 은혜 가득한 하루 되세요.   호주 멜번에서...
2015-03-25 06:43:15 | 성정훈
안녕하세요? 한국은 이제 완연한 봄인가 봅니다. 봄이 되면 꽃 소식과 함께 황사소식을 접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호흡기가 약하신 분들에게 참으로 힘든 시기일 것 같습니다. 지혜롭게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저녁에는 생각지 않았었는데 하와이 힐로에 사시는 형제님께서 일부러 전화를 해주셔서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니   많이 놀라기도 하고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사랑침례교회와 KeepBible을 통하여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바른 진리를 알게 되고 스스럼없이 전화 통화를 하게 되고 서로 말이 통하니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요? 가끔은 신앙적인 문제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지만 그 때마다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 진리의 말씀을 찾고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Bible Believer 의 만남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오늘 밤입니다. 미디어 사역을 통해 국내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이런 귀한 만남들이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뉴질랜드 20차 모임을 <아래>와 같이 안내합니다. 지난 2015년 2월까지는 토요일 저녁 7시에 모임을 했었는데, 이번 3월부터 주일 저녁 6시로 시간과 요일을 변경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1.  모임 일자와 시간 : 2015년 3월 29일(주일) 저녁 6시    2.  장      소  : ** Awa Road. Kumeu. Auckland    3.  내       용 : 다니엘서 70 이레    4.  휴 대 전 화 : 027-779-8877(최 문 선)    
2015-03-23 18:05:01 | 최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