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형제님
제 이름을 말하셨으니 답변드리겠습니다.
저는 성경을 볼 때 제 생각을 넣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서 주시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자기 정원이나 자기 밭은 예수님께서 직접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마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손들이로되 가라지는 그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니라.
물론 이 말씀은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신 것이지만 문맥의 의미는 같습니다.
겨자씨나 누룩은 모두 하늘의 왕국을 비유로 설명하신것이지 소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누룩은 성경에서 대부분 악의 상징으로 인용되었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로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인용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위에 제가 먼저 답변드린것을 보면, 일부러 옆에 And again 이라는 단어를 붙여 놓았는데 성경에서 이 단어가 쓰인 용례를 보시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되실겁니다.
(고전 3:20) 또 다시, [주]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 하였느니라.
(고전 3:20) And again, The Lord knoweth the thoughts of the wise, that they are vain.
(히 2:13) 또 다시, 내가 그분을 신뢰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나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을 보라, 하시느니라.
(히 2:13) And again, I will put my trust in him. And again, Behold I and the children which God hath given me.
즉 And again 의 용례는 모두 같은 뜻이 담긴 의미의 말씀을 전할 때 사용된 말씀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용례가 있지만 이 두 구절만 가지고도 충분할것 같아서 이 말씀들만 인용합니다.
물론 형제님의 말씀도 이해를 합니다. 저 또한 바른 진리를 알기 전에는 형제님처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내려놓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안에서만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글을 남겨 놓은 것은 바른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세워주기 위해 적어 놓은 것이지 저의 무엇을 드러낼려고 적은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이 순종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우리의 생각들이 항상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은 그게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여 마음으로 순종이 어려우면 복종이라도 하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길이라 생각합니다.
And again 의 용례도 찾아보시고 문맥의 의미를 주님의 심정에서 잘 생각 하시면 저처럼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샬롬.
2017-09-09 21:47:06 | 이명석
이명석 형제님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누룩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는 약간 다릅니다..
누룩의 비유는 '굵은 가루 서 말 ' 의 소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자의 소유라면 다음 말씀에 이어지는 "숨겨 넣어" 라는 말씀이 필요 없겠지요..
겨자씨의 비유는 "자기 정원"에 뿌린 것이구요.. 이 부분에서 약간 다릅니다..
하늘의 왕국, 하나님의 왕국이 커지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비유겠구요..
겨자씨가 비정상적으로 자란 것이 누룩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면(비슷한 내용의 비유라면) 누룩이 들뜨게 한다는 것을 '어떤 여자'는 알고 있었듯이, 겨자씨 비유에서 자기 정원에 뿌린 겨자씨가 크게 자라게 된다는 것을 뿌린 사람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17절의 하반절을 보시면
겨자씨 비유나 누룩의 비유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영광스러운 일로 기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2017-09-09 17:37:21 | 유해용
이명석형제님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9-06 15:49:26 | 김영익
오광일 형제님, 마태복음 13장의 하늘의 왕국을 이해하기 쉽도록 잘 분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보시는 다른 분들을 위해 조금 더 보충 설명을 드리고 싶어서 글을 적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2절의 겨자씨 비유에 대해 많은 성도들이 교회의 확장이나 하늘의 왕국의 확장으로 잘못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단 겨자는 1-2년생 초본 식물로서 풀이지 나무가 아닙니다. 중동지역의 흑겨자 같은 경우 크기가 더 커져서 줄기가 목질화가 되어 새들이 깃들수가 있지만 비정상적인 성장인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보다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바르게 알 수 있는 똑같은 말씀이 누가복음 13장 19절에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눅 13:16~21) 그러면, 보라,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 이 결박에서 그녀를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시니라.
그분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시매 그분의 모든 대적들은 부끄러워하고 모든 사람들은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영광스러운 일로 인하여 기뻐하니라.
그때에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왕국은 무엇과 같은가? 내가 그것을 어디에 비길까?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라. 그것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매 공중의 날짐승들이 그것의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하시고 또 다시(And again)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왕국을 어디에 비유할까?그것은 마치 어떤 여자가 가져다가 굵은 가루 서 말 속에 숨겨 넣어 마침내 전부를 뜨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이런 논란이 있을 줄 알고 하나님께서 누가복음에 겨자 나무에 대해 명확히 기록 해 놓으셨네요.^ 예수님께서 십팔 년 동안 병약하게 하는 영, 즉 사탄에게 매여있던 여자의 결박을 풀어주시며 고치실 때 회당의 치리자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분을 내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절입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고 말씀하시고, 20절에 또 다시(And again)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왕국을 누룩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즉 누가복음 13장 10절에서 21절까지는 계속 이어지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라도 누가복음 13장의 말씀의 문맥을 읽어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사람위에 군림하고 율법을 지키는 종교 행위를 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겨자씨가 겨자 나무로 자라 공중의 날짐승들이 깃든다는 것을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다음 구절인 누룩 비유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해 주고 계시니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날짐승에 대해 조금 더 덧붙여서 말씀을 보여 드리면,
(마 13:4) 뿌릴 때에 어떤 씨들은 길가에 떨어지매 날짐승들이 와서 그것들을 먹어 버렸고
(마 13:19) 어떤 사람이 왕국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그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채어 가나니 이 사람은 곧 길가에 씨를 받은 자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리는 정확히 자로 잰 듯, 바른 진리를 보여 주고 계십니다.
샬롬~~
2017-09-05 19:44:52 | 이명석
예.. 감사합니다..
형제님도 평안 가운데 계시길 기도드립니다..
2017-08-27 23:31:38 | 유해용
유해용님
굳이 논쟁할 필요없는 구절이지만,
건전한 성경교사들의 해석과 다른 해석은 영적으로 도움은 안될듯 합니다.
제 글에서 밝혔듯이 제 생각을 적은게 아니라
위어스비 목사님과 정목사님의 강해 그리고 이 구절에대한
킹제임스 진영의 일반적인 성경해석을 주 내용으로 하여 정리한 거에요.
그리고 겨자는 채소이지 나무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성장이라는 말입니다. 검색해보시면 겨자는 풀이라는 것을 알수 있으실거에요.
여기까지만 얘기해요. 영적유익은 없을듯 합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겠죠.
평안하세요. 샬롬~^^
2017-08-27 17:31:02 | 오광일
교회의 확장이 아니라 하늘의 왕국의 확장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 말씀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볼수 없는 이유
1. 주인은 본인의 의지로 겨자씨를 가져다 심었고, 32절의 '채소중에서'라는 표현을 보았을때 31절의 '겨자씨 한알'은 많은 겨자씨를 심은 것 중의 한 알이 아니라 여러 채소 밭에 겨자씨를 한 알을 뿌렸다는 것.
2. 시제를 보시면 채소가운데 '가장 커지고, 나무가 된다'는 표현으로 보아서 겨자씨를 가져다 심은 주인이나 지금 말씀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아셨다는 것. 예상외의 결과라면 가장 커졌고 나무가 되었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기대 했던것과는 다른 결과라는..
3. 새들이 와서 그 것의 가지에 깃들인다는 말씀 외에 이후 다른 말씀이 없다는 것. 부정적인 의미라면 가지에 깃들게 되어 밭을 망친다던가 어디에 해를 끼친다던가 등의 말씀이 있었을 것임.
4. (2번과 중복되지만) 비정상적으로라는 말씀이 없음. '씨는 작지만 채소중에는 가장 크다" 라는 말씀으로 보아 정상적인 성장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음.
해석은 자유이겠으나 조금은 무리한 해석이다 싶어 참견해 보았습니다..
2017-08-27 11:13:47 | 유해용
본문을 긍정적으로 보시는건 본인의 자유지요.^^
저도 제 해석이 완벽하다는 것을 주장하는건 아닙니다.
그리고 비유로 경고하셨다는건 지극히 제 생각일 뿐이니
그냥 넘기세요~^^ 표현이 과한측면이 있었네요.
1)중요한건 교회시대에 신앙인과 종교인이 존재한다는 점. 알곡과 가라지가 존재하듯. 좋은밭 이외에 돌밭,길가,가시덤불밭이 존재하듯.
2)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나무는 결코 긍정적인 교회의 확장이 아니라는 점.본문의 맥락상 그렇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3) 자기밭에 씨를 뿌린 것으로 보아..분명 교회라는 타이틀로 시작했지만..오늘날 영적으로 부패한 대형교회들에대한 교훈으로 적용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저는 본문이 긍정적인 교회의 확장(천주교식 해석, 무천년주의적 해석)을 의미하는건 아니라고 생각되어져서 부정적인 측면을 얘기해 본것이에요.
참고로, 본문구절을 신천지 이단은 나무가 신천지교회고 그위에 새들은 성령이라고 비유풀이하여 자기들 교회에만 성령이 있다고 억지주장을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편견, 내가 주장하고싶은 방향을 내려놓고 본문 맥락과 배경을 살피고 건전한 성경교사들의 주석을 참고하면 좋은 방향으로 성경을 해석할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샬롬^^
2017-08-26 14:29:49 | 오광일
예수님께서 교회시대에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교회들을 경고하시기 위해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셨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마 13:31-32 말씀은 단순히 하늘의 왕국의 '특성'을 말씀하시는 부분으로 보여집니다.
하늘의 왕국은 겨자씨 한알처럼 작지만 자라게 되면 새가 와서 깃들 정도로 커지게 된다는 하늘의 왕국의 확장성의 의미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은데요..
이렇게 보면 나무나 새가 그리 부정적인 의미로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이 구절에서 생각해 볼 부분은
1. "어떤 사람"이 누구일지,
2. 다른 사람의 밭이 아닌 "자기 밭" 에 뿌렸다는 점과,
3. 밭에 굳이 겨자씨 한알을 뿌린 것으로 보아서는 원래는 겨자를 키우기 위한 밭이 아니라 다른 용도의 밭이라는 점,
4. 겨자씨를 뿌린 이유가 단순히 새가 와서 깃드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지 등
입니다..
2017-08-26 11:38:14 | 유해용
손형제님
반갑습니다.~^^ 올려주신 글 내용 잘 읽었어요.
그런데 약간 영해가 되는 부분이 있는것 같아서..
다음의 글을 참고 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마태복음13:31-32 바로 이해하기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5026&page=&cate_name=&sfl=&stx=&sst=&sod=&spt=&page=
2017-08-26 03:01:04 | 오광일
마태복음13:31-32 바로 이해하기핵심요약-[성경적인 하늘의 왕국의 도래를 의도치 않게 반대하거나 성경적 교회와는 거리가 먼 비정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설명하는 비유]
최근에 이 부분에 대한 질문과 교제가 있어서 위어스비 목사님 주석과, 정동수 목사님 마태복음 강해 설교자료, 성경어휘사전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정리해보았습니다.영적 유익이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1. 개념 구분 짓기(하늘의 왕국)먼저, 본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왕국과 교회의 개념을 잘 구별하기 보시는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왕국이 교회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늘의 왕국이니 무조건 좋은 것을 이야기 하시는 비유겠지 라고 단정 지으시면 오해가 되는 것 같아요.
하늘의 왕국: 이 왕국의 기간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이며 그 범위는 우리가 기독교계(Christendom)라고 부르는 영역입니다. 이것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①예수님 당시의 하늘의 왕국, ②신비 속의 하늘의 왕국(왕국의 연기 기간), ③실제의 하늘의 왕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 마13:31-32에 나오는 하늘의 왕국은 바로 두 번째 단계인 신비 속의 하늘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이 신비속의 하늘의 왕국(=교회시대라고 이해하셔도 좋습니다)에는 선과 악, 알곡과 가라지,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 지혜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가 서로 섞여 있습니다.
2. 잘못된 영해 교회가 확장되고, 세상을 통치하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 기현상으로 성장 하게된 나무위에 깃든새들을 성령이라고 오해하는 것 이 나무가 자라고 활동하는 시기를 천년왕국으로 오해하는 것
겨자씨 믿음비유와 본문 마13:의 겨자씨의 기현상을 동일하게 보는 것. 겨자씨를 본문 마13장 나온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다른 것으로 영해하는 것.
3. 본문에 나온 용어 이해하기1) 씨= 하나님의 말씀 (마13:1-9, 막4:1-9, 눅8:4-8)2) 겨자씨를 심었는데 채소가 나무가 되는 기현상 발생= (단4:10-14) 나무=교회시대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종교인들의 모임에 불과한 부패한 교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딤전4:1-3, 계18:2)3) 공중의 새들= 날짐승(마13:4)= 사악한 자(마13:19)=마귀의 악한 영들
4. 본문 마13:31-32 올바른 이해 요약마태복음 13장에 하늘의 왕국의 비유는 초림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이루시고자 했던 하늘의 왕국이 어떤 과정을 겪게 될지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13: 전반부에는 씨뿌리는 자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늘의 왕국을 시작하시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마13:24-43 이스라엘 민족에게 거부되어 연기된 하늘의 왕국이 이제 교회시대를 거치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보여주는 구절인 것 같습니다. 마13: 후반부에는 이스라엘 민족들과 관련된 비유로 보입니다.
5. 요약그러므로 본문은 교회시대에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교회들(종교통합, 은사주의, 각종 프로그램, 무너진 교회음악, 심리학과 경영학을 접목한 교회 성장론 등등)의 모습을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나무(종교집단이 된 부패된 교회)와 그 위에 깃든 새들(악한 마귀의 영들)을 비유로 들어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2017-08-26 02:59:20 | 오광일
안녕하세요 ^^
저 실례지만 신구약 mp3파일 보내주실 수 있을까해서 덧글답니다..
opop105@naver.com 입니다. ^^ 감사합니다..~~
2017-08-16 11:51:18 | 변영욱
여러 명의 다리오
성경에는 다리오라는 이름의 왕이 여럿 나옵니다.
특히 바빌론의 벨사살 왕을 멸망시킨 다리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는 분명히 메데 사람이고 페르시아 왕국의 초대 왕으로 유대인 귀환을 명령한 왕은 고레스인데 이 둘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음은 에스라 사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1. 메대 사람 다리오(단5:31; 9:1; 11:1). 이 사람은 아스티가게스의 아들로서 메대 사람들의 왕이었으며 어머니 쪽으로 에빌므로닥과 고레스의 삼촌이었다. 그는 BC 539년에 갈대아 사람들의 벨사살 왕을 폐위시키고 2년 후에 죽을 때까지 왕좌를 차지하였으며 그 후에 왕좌는 고레스에게 넘어갔다. 그의 통치 때에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다(단6:1-28). 고레스는 BC 536년에 유대인 귀환을 선포하였고 그 결과 유대인들은 BC 606년에 있었던 바빌론의 1차 침공 이후 70년 만에 본토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다리오는 고레스 밑에 있던 대장으로 메대-페르시아 왕국의 일부인 갈대아 사람들의 영역을 다스리도록 세워진 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KJB에는 분명하게 그가 왕으로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단9:1).
https://www.biblegateway.com/resources/encyclopedia-of-the-bible/Darius-Mede
2. 다리오 히스타스피스. 에스라와 학개 그리고 스가랴 대언자에 의해 언급된 이 왕은 고레스가 유대인들에게 칙령을 내려 성전을 지으라고 했으나 그 후에 유보된 것을 다시 회복시켜 유대인들이 공사를 하도록 허가한 인물이다(스4:1-24; 5:1-17; 6:1-22; 7:1-28). 그는 주전 521년경에 마기승족의 왕위 찬탈자 스메르디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36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는 정부를 수사(수산)로 옮겼고 바빌론이 자기를 대적하여 반역을 일으키자 반역을 제압하고 바빌론의 성벽을 무너뜨려 렘51:58의 예언을 성취했다.
3. 다리오 코도마누스. 느12:22에 언급된 이 왕은 페르시아의 왕들 중에서 가장 용맹스럽고 인자한 왕이었다. 알렉산더 대제는 여러 차례 그를 패배시켰고 마침내 260년의 역사를 가진 페르시아 왕국을 무너뜨렸다. 다리오는 6년간 통치한 뒤에 자기의 장군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이로써 단8:1-27에 나오는 예언이 성취되었다. 다니엘은 숫양이라는 상징으로 페르시아 왕국이 거대해지는 것을 예언했고 이 양이 뿔로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밀고 들어가나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 숫양은 서쪽에서 나와 땅에 닿지 않고 온 세상을 휘저으며 다닌 염소 즉 눈과 눈 사이에 큰 뿔을 가진 염소인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멸되었다. 다니엘의 예언은 역사상 일어난 일을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다.
2017-08-12 14:36:28 | 관리자
the Book 뮤지컬 관련하여
팻머스란 선교단체에서
9월 한달간 11,000원 지원하여
15,000원 예약 가능하여 안내드립니다.
http://ticket.ipatmos.com/
위화면에서 '공연예약하기' 들어가셔서
아이디 : 이메일주소
비번 : 이메일비번 (아무번호 넣어도 된다고 써있는데, 저는 잘안되서 이메일 비번을 넣으니 넘어감)
* 회원가입하면 좋은데 주소>우편번호에서 안넘어감
좌석선택은 안되는데 예매하니 VIP(팻머스지정석)으로 나옵니다.
2017-08-04 06:35:09 | 조성재
안녕하세요?
2017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해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뮤지컬 더북이 1년 내내 공연되고 있습니다.
https://musicalthebook.modoo.at/
며칠 전에 교회 밖의 한 자매님께서 뮤지컬을 보시고 후기를 보내 주셔서 소개합니다.
휴가 시즌에 가족끼리 혹은 성도들끼리 같이 관람하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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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롤라드들의 출현을 기대한다-뮤지컬 ‘더 북’ 관람 후기- 전O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공연인 뮤지컬 ‘더 북(The Book)’은 롤라드들과 가톨릭교회와의 진리 전쟁을 그리고 있다. ‘롤라드’(Lollard, ‘중얼거리며 암송하는 자’, ‘독버섯’이라는 뜻)는 종교기득권자들이 경멸의 의미로 부른 명칭이다. 롤라드들은 교회의 교리나 관행보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을 사랑하여 목숨 걸고 진리를 전파했으며, 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 종교적 관습과 전통을 더 중시하며 그들을 이단자로 낙인찍고 박멸하려 하였다. 종신선교사로 헌신한 배우들이 열연한 ‘더 북’은 롤라드의 이야기를 통해 평신도들이 진리를 분별할 필요성과 아울러 진리를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시사한다.
기독교는 “한 권의 책(The Book)의 종교”로 일컬어진다. 롤라드 운동이나 종교개혁의 중심에는 ‘그 책(The Book)’이 있다. ‘그 책’을 특권층의 전유물로 삼았던 종교기득권자들에 대항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만민에게 펼쳐 놓은 사건이 종교개혁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성경을 성직자들만 읽으라고 주셨겠는가.
1517년에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웬만한 사람은 알 만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종교개혁 100년 전부터 이미 가톨릭교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오직 성경’을 외치며 종교개혁의 마중물 역할을 한 롤라드 운동은 그만큼 알려져 있지 않다.
중세암흑기로 불리던 당시에는 성경이 귀족과 식자층만 알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평민들은 성경에 접근할 수 없었는데 이는 교회의 권위를 교황에게만 두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가톨릭사제들은 교회의 제도와 교리와 관행을 따라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고, 교황은 십자군 원정비용과 베드로 성당의 건축기금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해 구원을 돈으로 사게 만들었다. 또 고해성사로 사제에게 사죄나 처분권을 주어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게 만들고, 회개를 위선적이고 피상적으로 만들어 죄사함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경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길과 예수의 피로 말미암는 죄사함의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지만 사람들이 성경에 무지했기에 교회의 제도와 관행을 따르는 것이 구원의 길인 줄로만 알았다. 그 외에도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타락한 종교지도자들 아래서 평신도들도 영적으로 타락해갈 때,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에 저항하는 평신도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종교개혁가 존 위클리프의 제자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접하고 진리에 눈을 뜬 자들이었다. 천 년의 전통을 깨고 영어로 성경이 완역되어 읽히면서 사람들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영어로 번역된 성경의 확산을 막기 위해 번역 성경을 지닌 자들과 전하는 자들을 무참히 고문하거나 화형에 처했다. 번역 성경을 지니기만 해도 목숨을 위협받던 롤라드들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성경 66권의 이름을 취한 후 한 권씩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감찰사제의 눈을 피해 특정한 비밀 장소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한 권씩 암송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 적어 퍼뜨렸다. 성경을 지키고 전하기 위해 저마다 스스로 워킹바이블이 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쉽게 성경을 다운받아 볼 수 있고,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못 외우는 디지털 치매 환자들인 현대인들에게는 성경 한 권은커녕 한 장도 제대로 암기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롤라드들이 성경을 암송한 것은 들켜서 죽을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든 성경을 전해야 했던 절박함 때문이었다. 대체 그 말씀을 전파하려는 열망이 얼마나 컸으면 한 사람이 성경 한 권을 통째로 다 외운단 말인가.
게다가 그들은 아는 것, 외운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목숨 걸고 전파하며 그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썼다. 롤라드들의 말씀 사랑의 정신과 삶의 태도는 신앙에서조차 쉽고 편함을 숭배하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경외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어떤 것의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보기 쉽다. 밥 한 그릇 안에도 그게 식탁에 밥이 되어 오르기까지는 우리를 먹이시기 위해 햇빛과 비를 주시고 곡물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씨 뿌려 가꾸고 수확하는 농부의 노고, 도정과 판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거쳐, 가족을 부양하려는 가장의 수고와 정성껏 밥을 짓는 주부의 수고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이 성경이 이렇게 우리말로 번역되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책을 아무런 방해나 박해 없이 자유롭게 마음 편히 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생명 걸고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도록 번역한 사람들과 생명 걸고 그 번역된 성경을 전파한 롤라드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 선배들이 물려준 최고의 유산은 번역된 성경이다. 지금은 휴대가 가능한 크기로 얇고 예쁘게 제본되고 인쇄되어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지만 불과 500년 전만 해도 성경을 사려면 1억 가까운 돈을 줘야 하고, 말 두 대가 이끄는 수레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성경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중세기 성도가 아닌 것을 감사한다.
게다가 누구나 하나님을 자기 나라의 말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성서가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으며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는 한, 성서는 성직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그 나라의 언어로 존재해야 한다.”라는 모토 아래 진행된 성경번역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종교개혁 역시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불씨들이 있어왔고, 루터는 그 도화선이 되었을 뿐이다. 종교개혁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평범하지만 결코 진리와 믿음에 타협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바로잡으시기 위해서 존 위클리프, 얀 후스, 마르틴 루터 등의 사제나 신학자들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다. 구두수선공, 타일제조공, 푸줏간 주인, 가정주부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사용하셨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는 목숨 걸고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번역된 성경을 전하기 위해 애썼던 무수한 롤라드들의 물밑작업이 있었던 것이다.
극심한 카톨릭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롤라드는 학교를 세워 롤라드를 양성해 영국 전역에 보냈다. 그들은 개인 성경공부를 장려하고, 성령의 인도에 의지하며, 제도권이 내세우는 신조가 아닌 독자적인 믿음을 갖도록 격려했다. 또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는 만인제사장의 개념을 확고히 하고, 교황과 추기경들이 교회를 이룬다는 가톨릭의 정통 교리를 거부하고 본질적인 교회는 신자의 집합체라고 보았고, 설교와 성례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회개와 제자도, 단순한 삶을 강조하고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개인의 갱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재정립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롤라드의 지도자들은 이동하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그룹을 만들고, 구성원들은 가정방문, 술집 전도, 시장 등 공공장소에서의 설교, 식탁대화, 성경방 초대 등을 시도하였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창안으로 롤라드의 성경보급운동은 더욱 확산된다. 이러한 롤라드들의 활동은 많은 평신도들에게 기독교 본질에 관해 눈을 열어주었으며 훗날 종교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존 위클리프가 비판한 대로 성경만이 최종적인 권위이며 기독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예수님께서도 “기록되었으되...”, “성경이 뭐라고 말하느냐?”라고 하시면서 성경을 기준으로 가르치셨다. 누구든지 그 무엇이든지 말씀보다 더 우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가 교황이라도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말을 할 때는 믿어선 안 된다. 사실 예수님은 교황도 세우지 않았고, 종교제도도 만들지 않으셨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따를 대상은 교황도 교회도 총회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뿐이고 성경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교회에 다니면 구원 받는 줄로 안다. 봉사를 좀 하거나 교회의 제도나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확신이 더하다. 그러나 성경을 펼쳐 읽지 않으면 그는 영적 소경이다. 뮤지컬 ‘더 북’에서도 롤라드의 수장 윌리엄의 가르침으로 성경의 진리에 눈을 뜬 아이린이 제화공인 아버지 토마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려고 애를 쓰지만 가톨릭 교리에 세뇌되어 온 아버지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아이린은 이단 감찰사제 베르나르에게 쫓기다가 끝내 붙잡혀 죽는다. 가톨릭교회의 제도에 순응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롤라드를 이단시하던 토마스는 딸을 잃고 나서야 딸의 유품인 번역성경을 읽으며 비로소 진리에 눈을 뜨게 된다.
또 다른 가톨릭 이단감찰 사제인 로버트는 롤라드들에게 자신과 다른 신앙의 생명력이 있음을 느끼고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롤라드들을 변호한다. 그는 롤라드의 지도자인 윌리엄 사제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중심에 성경이 있음을 알게 되고, 진정한 진리를 갈망하게 된다.
그런데 로마가톨릭 산하의 교회는 롤라드들이 전하고자 한 것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기득권이 더 중요했기에 그들을 기만하고 이단시하고 탄압한 것일까? 진리를 몰라서 탄압한 것일까? 주님은 진리의 말씀이 온 땅에 전파되기를 원하시는데 누구보다도 그 일에 힘써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진리를 전파하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화형에 처했다면 그것은 주님이 아닌 자신을 섬긴 것이다. 로마와 결탁되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죽인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믿음의 선진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성경을 번역해 전해주었고 그 안에 모든 좋은 약속이 다 들어있는데도 우리는 성경을 읽지 않아 중세시대 성도들처럼 무지하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기를 섬기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전해진 성경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읽고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말씀은 2000년이 넘는 역사 가운데 거듭 검증되면서 오늘날까지 왔다. 150년 전에 유럽 교회가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인하자 그 산산이 찢어진 말씀과 함께 교회가 다 망하고 말았다.
이 시대의 종교개혁은 누구를 대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가? 교회는 물론 개개인의 심령에도 부단히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종교개혁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항상 현재진행형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세속화와 무신론화, 다원주의, 자유주의 신학 등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이 시대에 워킹 템플, 워킹 바이블이 되어 말씀을 살아내고 복음을 바르게 전해 줄 21세기의 신롤라드들을 주님은 애타게 찾고 계실 것이다. 이 종말의 때에 머지않아 우리가 성경을 갖고도 펴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성경을 펴서 읽을 수 있을 때 펼쳐 읽고 펼쳐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
성경은 만인의 것이며, 지금은 만인제사장의 시대다. 신학을 하지 않은 평신도에게도 주님은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그 깨달은바 말씀을 맡은 종이 되도록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다. 그들이 바로 이 시대의 롤라드들이다. 600년 전 롤라드들이 100년 후의 종교개혁을 촉진했다면 21세기 신롤라드들은 마치 담쟁이덩굴처럼 이 땅을 복음으로 덮어 예수님의 재림을 촉진시킬 것이다.
뮤지컬 ‘더 북’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경외감과 두려움 속에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개혁이 필요하지 않은가,
당시의 타락한 가톨릭교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가.나는 진리를 분별하는 힘이 있는가,
나는 얼마나 진리의 말씀에 눈 떴나,나는 성경의 가치를 얼마나 아나,
나는 그 말씀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나,나는 얼마나 말씀을 알고 얼마나 외우며 얼마나 전하고 싶어 하나,나는 말씀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21세기의 신롤라드인가?
2017-08-03 09:07:06 | 관리자
하나님은 무엇을 주셨나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요한일서 4장 13절이 이상하다고 하여 잠시 답을 드립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이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4:13).
Hereby know we that we dwell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th given us of his Spirit.
질문은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셨으므로”에 대한 것이며 초점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는지 목적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 구절에는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러면 영어는 어떤가요?영어에도 “because he hath given us of his Spirit.” 목적어가 없습니다.
이것을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영어 ‘of his Spirit’에서 ‘of’를 빼내야 하는데 원어에도 ‘of’가 들어 있으므로 빼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생략된 목적어는 성령님의 은혜, 영향력, 열매, 은사(선물) 등 그분의 영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7절 이후부터 보면 그분의 영이 주신 것 중 하나가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는 줄 압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7-26 10:54:07 | 관리자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인가요?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자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실히 믿지만,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냐고 누가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기에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답: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간단한 예를 두 개만 들겠습니다.
1. 이사야서 6장 1-13절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또한 내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2 그것 위에는 스랍들이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진 채 서 있더라. 그가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며 두 날개로는 날더라. 3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그 외치는 자의 음성으로 인해 문기둥들이 흔들리며 그 집이 연기로 가득하더라. 여기서 이사야는 [주](Lord) 즉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이사야가 자기의 부정한 상태를 고백하자 주님은 그를 정결하게 해 주셨습니다(5-8절).
그리고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9 ¶ 그분[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10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매 그분께서 대답하시되, 도시들이 피폐하게 되어 거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땅은 완전히 황폐하게 되며 12 또 {주}가 사람들을 멀리 옮겨서 이 땅 한가운데에 버림당하는 일이 심히 많을 때까지니라.
12절의 {주}(LORD)와 1-11절의 [주](Lord)는 같은 분입니다.
이 구절들에는 신약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매우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9 ¶ 그분[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10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자, 이에 대해 우리 주 예수님은 수난 당하기 1주일 전 쯤에 요한복음 12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7 ¶ 그러나 그분[예수님]께서 이렇게 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그분을 믿지 아니하였으니 38 이것은 대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말하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러므로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하였으니 그 까닭은 이사야가 다시 말하였기 때문이라. 이르되, 40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더라. 41 이것들은 이사야가 그분[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에 대해 말하였을 때에 이른 것이더라. 39-40절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들은 바로 이사야서 6장 9-10절입니다.
여기서 41절은 참으로 굉장한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사도 요한은 39-40절이 이사야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사야는 그 당시 누구를 보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분이 곧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구절은 신구약의 여러 군데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은 재림 시에 올리브 산에 오실 것입니다. 행1:11-12를 보기 바랍니다. 11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12 그때에 그들이 올리벳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도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더라.
스가랴서 14장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이 기록되어 있습ㄴ다.
1 보라, {주}의 날이 이르리니 사람들이 네게서 노략한 물건들을 네 한가운데서 나누리라. 2 내가 모든 민족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전쟁하게 하리니 그런즉 그 도시가 함락되며 집들이 강탈을 당하고 여인들이 강간을 당하며 그 도시의 반이 포로가 되려니와 백성의 남은 자들은 그 도시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그때에 {주}께서 나아가사 그 민족들과 싸우시되 전에 전쟁의 날에 싸우신 것 같이 하시리라. 4 ¶ 그 날에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설 것이요, 올리브 산이 거기의 한가운데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므로 심히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그 산의 반은 북쪽으로, 그 산의 반은 남쪽으로 이동하리라.
4절을 보면 {주}(LORD) 곧 여호와 하나님이 올리브 산에 강림하시며 주의 날(재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과 비교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 구절들을 모아서 교리를 만드는 것을 우리는 조직 신학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큰 평안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7-07-26 10:36:09 | 관리자
함재선 형제님 안녕하세요.
수고해주신 파일을 제가 받고 싶습니다.
kyi8700@hanmail.net
샬롬
2017-07-20 14:08:57 | 김영익
안녕하세요?
캐나다 에드먼튼에 살고있는 함재선 형제입니다. 제가 최문선자매님이 유튜브에 올려놓으신 성경낭독본에서 음성만 추출해서 MP3화일로 만들어 갖고 있습니다. 신구약 전체를 갖고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2017-07-18 13:45:48 | 함재선
흠정역 신약 듣기 mp3 는 keepbible 웹하드에서 다운 받아서 듣고 있습니다.그런데 구약 듣기 mp3 는 어디서 다운 받는지 몰라서 문의 드립니다.
2017-07-14 12:35:49 | 김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