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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 글을 읽으면서 친절함과 부드러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고 있어 제가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킵바이블을 통해 흠정역 성경을 알게되고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믿음안에서 형제,자매님들과 은혜나누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2-09-13 06:13:27 | 한재석
특별히 제목에서 진리에 다가가는 형제님 특유의 살아있는 시선이 진하게 배어 있어 너무도 귀하게 다가옵니다. 성경을 능가하는 믿음은 곧 감히 성경을 능멸하는 믿음입니다. 이 시대 교회의 화두는 단연코 성경대로 만의 믿음이냐 그렇지 않느냐 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경대로 만의 믿음에 전 인생을 걸 수 있는 은혜가 부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음에 또 귀한 나눔에 대한 기대감이 솟아나게 하는 글에 감사드립니다.
2012-09-12 20:12:55 | 김대용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 말씀중에 요지는 이렀습니다 - 용돈을 모아 태블릿 등을 사서 이 사이트에 무료로 올려놓은 좋은 책들을 다운받아서 읽으면 구입할 책값보다 싸게 어디서 든지 경건서적을 읽을 수 있으니 좋다-라고 하셔서, 스마트 폰도 없는 제가 일주일 전에 뉴아이패드를 구입하여 그 동안 데스크 탑 컴퓨터에 저장하여 둔 모든 파일을 복사하여 읽으니 아주 좋습니다. 믿음의 선한 양심과 자유 가운데 한글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좋은 경건서적 등을 출간해주신 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한글로 킹제임스 성경과 사무엘 깁, 제임스 낙스 목사님 등의 글을 접할 수 없었다면 아직도 어둠속을 헤메고 다닐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16기가를 구입하였는데요, 용량이 금세 가득찹니다. 가급적이면 32기가로 구입하시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습니다.
2012-09-12 11:18:48 | 길준남
흠정역성경을 우리의 온전한 성경으로 믿는 이유를 자꾸자꾸 일깨워가는 것은 답답하고 외로운 그리고 태만하고 의식없는 성경신자들을 다시한번 일으키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자꾸자꾸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2012-09-11 16:33:23 | 오혜미
한글자 차이가 이렇게 크게 다름을 한눈에 보여주셨네요. 마지막 말씀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오늘 남편과의 대화에서 진리의 관한것이라면 한치도, 한발이라도 물러서하거나 대충 넘어가서는 안된다라고 서로 나눴습니다. 저 또한 성경을 기초로한 믿음이 아닌것은 과감히 버릴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2012-09-11 14:45:09 | 주경선
성경공부를 하면서 여러 주석을 참고하게 되었습니다. 주석을 읽으면서 유익한 점도 많지만, 저자의 사상이 들어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책 저자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흠정역 성경이 아니거나 또는 번역자가 개역성경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경우에 책 내용이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종종 발생함을 발견합니다.   미가서 1장 15절도 그 중의 하나인 경우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1 : 15,16 15 오 마레사의 거주민아, 그러할지라도 내가 상속자를 네게로 데려오리니 그가 이스라엘의 영광인 아둘람에 이르리라. 16 너는 네 아름다운 자녀들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짧게 깎아 대머리가 되게 할지어다. 네 대머리를 독수리같이 크게 할지어다. 그들이 너를 떠나 포로가 되었느니라   영어킹제임스 1 : 15,16 15 Yet will I bring an heir unto thee, O inhabitant of Mareshah: he shall come unto Adullam the glory of Israel. 16 Make thee bald, and poll thee for thy delicate children; enlarge thy baldness as the eagle; for they are gone into captivity from thee   NIV 1 : 15,16 15 I will bring a conqueror against you who live in Mareshah. He who is the glory of Israel will come to Adullam. 16 Shave your heads in mourning for the children in whom you delight; make yourselves as bald as the vulture, for they will go from you into exile     개역 1 : 15,16 15 마레사 거민아 내가 장차 너를 얻을 자로 네게 임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 람까지 이를 것이라 16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찌어다 네 머리로 크게 무여지게(?)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찌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니라   개역개정 1 : 15,16 15 마레사 주민아 내가 장차 너를 소유할 자로 네게 이르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 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16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   미가서 1장은 전체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항상 앞뒤문맥을 살피고 내용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며 전달자가 누구에게 어떤 의도로 말씀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장은 성읍들을 열거하면서 하나님께서 각 성읍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고 있는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15절에서 이스라엘의 영광인 아둘람에 이르리라고 번역한 반면에, 개역성경(NIV, 개역개정 포함)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둘 중 어느 번역이 맞을 까요?   마레사는 유다의 도시들 중 하나(여호수아 15:44)입니다. 역대하 11장 8절에 르호보암이 국경 방어를 위해 성벽을 두른 도시입니다. 상속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성읍은 하나님께서 다른 상속자(심판자)를 데려옴으로 그가 이스라엘의 영광인 아둘람(다윗이 사울을 피해 있던 곳, 삼상 22:1)에 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16절에서 정복당한 그 성읍의 자녀들이 당할 극심한 수치심과 슬픔이 나옵니다. 그런데, 개역 성경은 심판대신 영광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개역성경 번역대로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른다면, 영광이 임한 곳의 자식이 어떻게 대머리 같게 머리털을 깎고 사로잡혀 갈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이 남한을 공격 했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남한의 영광인 서울까지 이르렀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남한의 영광이 서울까지 이르렀다” 어느 말이 맞나요?   겨우 “ㄴ”받침하나 있고 없고 차이인데, 뜻은 완전히 다르게 됩니다. 침략자가 영광을 가져다 준 자로 둔갑해 버립니다. 이런 경우는 개역 성경(개역 개정포함)에 너무도 많아 이제 새롭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형제와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에 구원에 관해서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빌립보서 2장 12절, 베드로 전서 2장 2절 등 개역성경의 잘못된 번역으로 인하여 구원에 대한 관점이 왜곡되었음을 지적하였는데, 개역 성경 번역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분이라 개역 성경은 번역이 잘못 되었으며, 바르게 번역 된 성경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줄 알았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제가 놀랐습니다. 그분 의견에 따르면 개역 성경 번역은 이러지만, 원래 이 뜻은 이러 이러하여 그렇게 이해하고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구요? 성경을 능가하는 믿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번역이 잘못된 성경 구절을 보고도 하나님의 의중을 파악해버리니 놀라운 믿음 아닙니까? 그에게는 성경 번역이 옳든지 그르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틀려도 자신의 믿음은 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저는 성경을 능가하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면 뭐하냐?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중요 부분만 맞으면 되지, 하고 말하곤 합니다. 말씀 한 구절도 절대 틀려서는 안 되지만, 중요한 구원문제, 교회문제, 삼위일체 문제에 대해 개역 성경 번역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알고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말씀 보면서 개역성경과 비교해 가며 무엇이 틀렸는지 알아보는데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믿는 하나님은 대충 넘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류가 있어도 대충, 번역이 잘 못 되도 대충, 이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성경에 그런 하나님은 안계십니다. 죄는 어떤 죄라도 하나님 앞에 있을 수가 없는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오류는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내가 믿고 있는 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대충 성경을 보고 대충 믿을 수가 없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옳다는 것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신자라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자가 아니고 믿어야 할 것을 믿는 자며, 읽고 싶은 것을 읽는 자가 아니고 읽어야 할 것을 읽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또,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자가 아니고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 자가 아니고 들어야 할 것을 듣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신자라면 성경 밖에 예수님이 아닌 성경 안에 예수님을 믿는 자며, 성경을 초월한 믿음이 아닌 성경에 갇힌 믿음을 소유한 자라고 믿습니다. 저도 이렇게 믿고 살고 싶습니다. 그런 바램 입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한없이 어리석은 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라면(성경에 관해서라면) 결코 어리석은 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2012-09-11 12:32:23 | 한재석
가정과 교회: 부부로 함께 사는 것   요즘 지인들과 대중 매체를 통해 어떤 교회(선교회)의 비리들을 접하고 있습니다.그중의 하나는 교회와 목사가 부부 사이를 갈라놓아 이혼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그 교회(목사)의 부정과 비리를 알게 되어 도저히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교회(목사)가 남편이 이상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아내에게 남편과 이혼할 것을 권유/강요합니다. 물론 교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주장하지요.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남편을 택할 것인가?”를 두고 압박을 받다가 결국 아내가 남편과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같은 문제를 두고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요.   교회나 목사가 교회를 유지하려고 멀쩡한 부부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까요?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가정입니까? 교회입니까?   이단의 특징은 가정을 붕괴시키면서까지 교회에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부부가 이혼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사람입니다.그런데 목사가 하나님의 일을 빌미로 이혼을 부추기면 될까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어떻게 해서라도 아들딸이 결혼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 이혼을 부추기거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결혼 생활하면서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따로 떼어 놓으면 좋은 사람들인데 둘이 함께하면 웬일인지 화합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이혼하면 어떻게 온전한 가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우리가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하였습니다.그 서약을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결혼 서약문을 썼습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보다 어렵고,두 외길이 한 길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고통과 아픔이 따름을 알면서도내가 이 길을 선택함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당신을 만난 것을 내 인생 최고의선물이라 감사히 여기며 한 평생 당신을 사랑하고,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빚어지는 작은 다툼으로 인해큰 상처 받지 않도록 항상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변치 않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또한 당신이 힘들거나 지칠 때, 당신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소박한 이 땅에서의 인연이 천국까지 이어지도록 사랑하겠습니다.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저와 제 아내도 혹은 제 딸과 사위도 앞으로 살면서 결혼의 어려움을 당하면 극단적으로 이런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저는 제 자신과 아내와 딸과 사위에게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고 참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저는 “예수님의 답답한 심정에 비하면 내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는 심정으로 좀 더 참고 인내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주변에 타격을 받을 연약한 사람들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을 같이 하도록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모두가 그분 앞에 설 것이 확실할진대 이 땅에서의 우리의 결정을 신중하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목사로서 간곡히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평강을 기원합니다.   샬롬   정동수   (*) 부부 중 한 사람은 우리 교회를 나오기 원하고 다른 사람은 다른 교회를 나가기 원해 문제가 생기는 가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가정의 경우 저는 우리 교회를 나오기 원하는 분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할 때 oo님께서 배우자가 원하는 교회로 가셔서 한 가정이 마음을 합쳐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의 화목입니다. 그러므로 oo님께서 가정의 일치를 위해 온 가족이 같이 섬길 수 있는 교회로 나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나중에 온 가족이 마음이 바뀌어 저희 교회로 오시면 또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가정의 평안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시고 두 분이 다시 잘 의논해서 교회 문제를 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혼이 정말로 불가피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쓰든지 설교를 하겠습니다.
2012-09-07 14:22:06 | 관리자
사랑침례신학원에 등록한 형제님들 중에는 나중에 설교자가 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이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교에 대한 글을 적습니다.   다음은 “Preaching the Word” Commentary 편집자인 휴즈(R. Kent Hughes) 목사님의 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자의 특성   예배 시 설교에서 설교자와 회중이 성령님에 의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설교자에게 있어야 한다.   1. 로고스(Logos)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우리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회중 앞에 섰을 때 설교자들은 일단 우리의 숙제를 한 것이다. 우리는 본문 구절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보며 문맥 안에서 그 안의 단어들의 뜻을 찾아내고 그 단어들이 회중에게 바르게 전달되도록 올바른 해석 방법에 의해 본문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로고스 그 자체를 선포한다. 이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의 핵심이다.   2. 에토스(Ethos) 둘째는 에토스인데 이것은 곧 설교자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설교를 할 때 아주 치명적인 병이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것들을 다룬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손과 마음을 마비시켜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는 이것을 열차 안내원 비유를 통해 잘 보여 준다. 안내원은 다음 역에 도착하기 전에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자기가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을 알려주었기에 지금 자기와 승객들이 그 역에 도착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브룩스는 설교는 반드시 인격체를 통해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우리가 전하는 진리를 우리가 다 구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그것에 복종하려 하고 그것을 갈구하며 그것이 우리의 에토스(정신세계)의 일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청교도인 에임스(William Ames)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설교가 효력을 발휘하려 할 때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꾸밈없이 설교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에토스이다.” 설교자의 에토스가 그가 전하는 로고스를 뒷받침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설교를 이룰 수 있다.   3. 파토스(Pathos)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열정과 확신이다. 한번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불신자인 흄(David Hume)이 조지 윗필드(George Whitefield)의 설교를 들으러 가는데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은 복음을 믿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아는데요.” 그러자 흄이 대답하였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설교자가 자기가 설교하는 것을 믿을 때에는 열정이 생기게 되어 있다.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필수적인 열정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설교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설교 시 하나님의 기쁨은 로고스(말씀)와 에토스(설교자)와 파토스(설교자의 열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신도 이 셋을 갖추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할 수 있고 그때에 회중 가운데 임하는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휴즈(R. Kent Hughes) “Preaching the Word” Commentary 편집자   부언: 저도 지금까지 짧은 세월이지만 설교를 해 왔고 다른 이들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이 짧은 기간을 통해 제가 몸으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교자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논리적으로 진리를 제시해도 회중에게 감화를 주는 설교는 하지 못할 수 있다. 설교자가 행동도 반듯하고 가정생활도 바르게 하며 모든 면에서 원리와 원칙을 잘 지키는데도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의해 큰 감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그가 설교단에 나오면 성도들은 의례히 “오늘도 바르게 살라고 이야기하겠지.”하고는 타성에 젖어 설교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설교자가 로고스 중심으로 설교한다고 하면서 에토스와 파토스가 없는 설교를 하기 때문이다.로고스만으로는 하나님과 회중의 기쁨을 이룰 수 없다. 이 경우 설교는 대개 성경 공부 스타일의 훈계/설명 설교가 되고 만다.이런 식으로는 성도들의 감화를 이끌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에토스와 파토스는 설교자가 자기와 회중이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공유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설교자들은 스스로 고고한 세상에 살면서 이 어둡고 부조리한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삶이 어떤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경우 설교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허공을 치게 된다. “이 설교는 일차적으로 내게 하는 것이며 바로 내 자신이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라는 에토스가 들어가야 설교가 살아나고 그러면 자연히 몸에서 퍼져 나오는 열정을 성도들이 느낄 수 있다. 이때에 하나님의 기쁨이 생기면서 회중은 말씀에 비추어 나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를 외치는 좋은 설교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샬롬 정동수
2012-09-07 14:12:1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에 어떤 분을 통해 참으로 의미심장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글을 토대로 한국에 만연한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조목 조목 분석해 놓았는데 내용이 참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거짓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잘 파악해서 그들을 구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링크를 겁니다. 참고로 이 카페의 다른 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http://blog.naver.com/sanyaro46?Redirect=Log&logNo=100145460119   위의 링크를 눌러서 내용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 이유(간단 요약)   1. 악랄한 거짓말2. 사랑 폭격3. 고립화 기법4. 비난 기법5. 고백 기법6. 언어 조작7. 실존의 마약8. 종말론9. 심리적 협박10. 최면과 세뇌(하이라이트): 복잡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이건 쉽다. 집회 혹은 찬양을 할 때 신도들 모르게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최면 - 일단 집단 최면은 몇 사람이 강한 믿음을 갖고 열성적인 종교 예식을 할 경우 특유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자신도 그런 행동과 체험을 하게 된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음악, 낮게 깔리는 목소리, 강한 신뢰감, 주위의 분위기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암시를 받기 쉬운 상태가 된다. 최면이란 생리학적으로 대뇌는 현재 의식을 관장하는 신피질의 일부분을 남기고 휴식한 상태이며 그것으로 인해 잠재의식으로 형성된 구피질과의 연락통로가 열린 상태이다. 약간 몽롱한 상태라고 봐도 좋고 의식이 있으나 멍한 상태이다. 몸과 마음이 매우 편하다. 때 받는 암시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며 이로 인해 어떤 강한 신념을 갖는 동기가 된다. 인간심리에 관한한 해박한 지식이 있다면 더욱 다양하게 구사 할 수 있다.   최면과 세뇌는 기성 종교에서도 비의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세뇌 - 세뇌의 3대 원칙 - 반복, 지속, 속도   TV의 광고도 세뇌의 일종으로 계속되는 반복이 뇌에 잔상으로 남아 선택관 판별의 기준에 영향을 준다. 종교 집회에 지나치게 자주 나오라고 하는 것도 반복과 각인을 위해서이다.
2012-09-07 11:34:00 | 관리자
오늘 이단경계주일이라 하루종일 신천지에 대해 강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이트에 들어 와보니 정목사님이 그런 류로 취급받다니......저는 어머니 배속에서 부터 장로교인이었으며 지금까지 3대째 입니다. 그리고 처고모부까지 장로교 모 신학대학 교수님 이십니다. 그런 장로교 골수분자인 제가 벌써 7년 이상 이 사이트에서 목사님의 글을 읽고 보고 듣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마태복음, 성막, 창세기강해를 통해 장로교인 으로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수없는 성경의 깊이를 저는 목사님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관한한 우리나라 전 개신교회가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교 강단에서는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설교하지만 막상 킹제임스성경의 무오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세상에 절대 무오한 성경이 어디있냐고 스스로들 반문합니다. 관념이란 틀속에 갇혀 더 이상에 것에 대한 생각 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관습에 관한 생각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고모부님도 십일조에 관한 것은 수정해야 한다고 하시 더군요? 위에서 이단 언급된것 중에 하나 자살자에 관한 것 저도 처음에는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 예수를 마음으로믿고 믿음으로 시인한 사람이 자살했다는 이유로 지옥에간다고 결론내어 버린다면 우리는 더이상 교도소에 있는 살인죄수들에게 전도할 이유가 없을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은 거짓이되는것 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시인한 자가 믿음의 부재가 아닌 죄문제로 지옥에 간다면 십자가의구원은 불완전한 구원이고 다이루었다가 아니라 아직 덜 이루었다가 되는것 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것은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인해 그 분을 믿는 믿음으로 (only) 천국 가는것이지 우리의 공로나 행위(죄문제 포함) 로 유무가 결정되는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방종한 생활이나 자살을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지요.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방종, 자살에 대한 철저한 회계가 있겠지요. 그점은 목사님께서도 강의때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한 논재에 대한 문제를 기승전결없이 거두절미하고 이단으로만 관주해 버린다면 영적전투에서 승리자는 오직 마귀일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으로 이미 구원받은 순례자들 이지만 아직은 성화의 단계를 거치고 있어 우뢰의아들처럼 화내어 욱할때도 있고 극히 이례적이겠지만 욱해서 자신의목숨 조차 절대살인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결코 없는것 입니다. 지금도 한번 구원 받은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절대 살인(자살) 같은것은 할수 없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죄인의괴수(우두머리) 입니다.
2012-09-02 18:47:54 | 김신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