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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장 17절의 ‘믿는 자들’이   모든 믿는 자들이다 VS 열한 명의 (유대인) 제자이다(막16:17)    이전에도 한 번 이 글의 제목와 관련하여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 1월에 은사주의 진영의 모 형제와 논쟁한 이후 부단히 성경도 묵상하고 관련 서적도 탐독하면서, keepbible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도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물론 최근에도 또 한 번 만나서 이 글의 제목과 관련하여 조금 논쟁을 했습니다(결론이 안나오더군요). 저는 그에게 저와 그  중에 한 명은 분명히 미혹이 된 사람이라고까지 말을 했으며, 말로 하지 말고 글로 정리하여 서로 논쟁하자고 한 후 아래의 첨부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앞뒤 문맥의 흐름 내지 성경 전체(또는 다른 부분)와 관련지어, 그리고 되도록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성경의 기록 목적, 수신자, 시대 등을 정확히 구분하여 마가복음 16장 17절의 믿는 자들(표적을 행하는 자들)이 누군지 밝히는 자세가 성경을 대하는 바른 자세로 확신합니다. 아울러 김문수 형제님의 글이 잘되어서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도 있습니다.  첨부 파일을 필요한 분들에게 프린트하여 주시거나 아니면 이메일 등으로 알려주셔서, 은사주의 진영이 표적의 정당한 근거로 제시하는 마가복음 16장 17절의 '믿는 자들'이 누구인지에 관해 분명한 이해를 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4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 앞에 앉았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과 마음이 강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일어나신 뒤에 그분을 본 자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18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 이렇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시니라. 20 그들이 나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막16:14-20]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8:01:21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1-08-16 18:16:36 | 신대준
안녕하세요?   지난 번 판의 경우 한영 성경과 스터디 성경을 열면 맨 앞에 성경의 강 - 영감과 보존의 강 - 그림이 있었고 뒷장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간되는 400주년 기념판 성경에는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 사진이 맨앞에 커버로 들어가고 뒷장에 성경의 강이 들어갑니다.   집에서 인쇄하실 분들을 위해 PDF 파일도 올립니다.   또한 오픈 성경의 케이스와 지퍼 성경의 포장 비닐에는 모두 50mm 크기의 400주년 기념 금박 라벨이 붙습니다.   한영 성경과 스터디 성경의 케이스는 이전과 같습니다. 이번에는 큰글자 성경도 오픈과 지퍼 두 가지를 다 냅니다.   오픈 큰글자 성경의 박스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로운 행로를 가지고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1-08-15 18:18:30 | 관리자
8월말에 지퍼로 된 작은성경(신구약) - 검정, 자주, 파랑색 지퍼 장정 - 이 나옵니다. 사이트에 공지가 뜨면 그때 주문하세요. 아마 사람들 - 아이들, 청년들, 자매님들- 이 가장 많이 들고 다닐 사이즈의 성경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08-15 17:40:31 | 관리자
  제가 6월쯤 출판사쪽으로 물어봤었거든요..   저는 어디 가든지 성경을 잘 들고 다니는 편인데 두 아들을 가진 엄마라 짐도 많고... 양쪽에 애들 붙잡고 다니는게 쉽지 않아요.   교회에 갈 때도 기도모임 갈 때도 친할아버지 집에 가서 말씀 알려드릴 때도 성경 들고 다니려고 하는데 흠정역성경은 너무 무거워요ㅠㅠ   기독교 서점에서 신약하고 창세기, 시편만 나온 작은 성경 있긴 했지만...   신구약 다 있는거는 제작이 불가능한가요???
2011-08-15 17:17:35 | 최고은
글쌔요..그렇게 은유적으로 해석하기에는, 표에대해서 성경은 너무 구체적,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고있는데요.. 그냥 문자적으로 해석하는게 나을듯 합니다.. 지금 전세계상황으로 볼때 이러한 사람의 신체에 삽입하는 바이오칩 기술이 절정에 다다랐구요.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법안도 이미 다 준비된상태라고 합니다. 또한 얼마전에 삼성이라는 기업이 정부로부터 그 기술확산에 선구자의 몫을 따냈다고 좋아하면서 떠들어대던데요...이유불문하고 국가적인 정책으로 사람의 신체에 무언가 기계장치를 집어넣는다는 것이,, 참... 세상이 이상한건지 제가 이상한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도저히 비상식적이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납득이 안갑니다.. 무엇이든지 말세에는 그에따른 그림자, 즉 예표적인 사인(sign)이 있다는것을 감안해볼때 계시록의 표가 그러한 기술을 이용하는것이 아닌가 추측해도 무리가 없을듯한데요.. 뭐, 어떻게 해석을 하든 우리랑은 상관없으니..확실한건 현제 배리칩은 표가 아니라는거죠! 다만 말세일수록 주님오실때 책망받을것이 없도록 열심히 일하고, 구별되게 살아야겠죠.
2011-08-14 21:11:11 | 최홍진
인용을 위해 약간의 검색을 해봤는데 성철의 말 중 위의 말은 출처가 확실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인용하면 안티들이 거세게 반응합니다. 없는 얘기를 지어내 불교를 헐뜯는다고.. 오히려 기독교를 욕하는데 이용되더군요.
2011-08-14 06:00:49 | 박종철
    안녕하세요?   이번에 출간되는 400주년 기념판 성경을 기독교 잡지에 광고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내는데도 반대가 극심하여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로운 행로를 갖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첨부하는 PDF 파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e-mail로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샬롬
2011-08-13 15:35:27 | 관리자
성철이 죽기전에 남긴 글. 생평기광 남녀군 - 일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미천과업 과수미 -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신보다 더 크다 활염아비 한만단 -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갈래나된다 일륜토홍 괘벽산 - 한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2011-08-13 10:02:20 | 허광무
▶미국의 저명한 작가 -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믿음을 거스르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그가 마지막 순간 남긴 말...   "오 하나님! 어떤 일을 행했길래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아야합니까?""제발 내 곁에 있어 주시오. 어린 아이라도 내 곁에 머물게 해 주시오""홀로 있다는 것은 지옥이기 때문이오""마귀에게 대리인이 있다면 내가 바로 그였을 것이오" `▶프랑스 여류작가 - "롤랑드"(Madame Rolland 1866~1944)   "오 자유! 너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들이 범해졌는지..."   ▶무신론자 - 프랜시스 뉴돈 "나는 영원히 정죄받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아! 지옥과 저주의 견딜수없는 고통을 나는 받게 되었노라!"   ▶영국의 대법관 - "토마스 스코트 경"(Sir Thomas Scott 1535 – 30 December 1594)   "나는 이 순간까지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둘 다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전능자의 공정한 심판에 의해 멸망을 받을수 밖에 없구나!"   ▶18세기 프랑스의 작가, 대표적 계몽사상가 - "볼테르"(Voltaire 1694~1778)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이교도작가로서 기독교를 방해하고 분쇄하기 위해 펜을 사용했다.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받았소!" "만일 당신이 내게 여섯 달동안 살 수 있게 해 준다면 당신에게 내 소유의 절반을 주겠소." "나는 지옥으로 갈거요. 오 예수 그리스도여!"   ▶독일 문학가 - "괴테"(Johann W. von Goethe 1749~1832)    그는 세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파우스트, 진리와 허구 등을 집필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한가지를 요청했다   "빛이 더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라."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어두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함)   ▶무신론자 - "윌리엄 포프"(William Pope 영국, 1797년 사망)    교황을 의미하는 성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으며    모든 종교적인 것들을 비웃은 그가 했던 일은 성경을 마루바닥에 차고다니거나 찢는것이었다.    그의 임종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은 그가 죽으면서 부르짖는 모습은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고 한다.   "나는 회개하지 않네. 아니 회개할 수 없다네. 하나님은 나를 저주할 것일세!" "나는 은혜의 날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안다네""자네들은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을 보고있네. 오! 영원! 영원! 내게는 지옥밖에 없다네. 오라 영원한 고통이여!""나는 하나님이 만든 모든것을 증오했네. 내가 증오하지 않은것은 마귀뿐이라네. 그와 함께 있기 바라네""지옥에 있기를 갈망하네. 자네들은 보지 못하는가? 그를 보지 못하는가? 나를 위해 그가 오고 있는것을..."   ▶이교도 케이(Kay) 마지막에 이렇게 부르짖었다..      "지옥, 지옥, 지옥"       * 참고서적 : 죽음 앞에서 남긴 마지막 말 (허버트 로켜, 생명의말씀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0:4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8-12 23:35:02 | 최홍진
임재영 형제님, 초면인 것 같아서 우선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본문의 핵심 내용이, 우리말의 특성상 직역이 되기가 아주 어려운 부분이어서 최대한 영어 원어에 가깝게 번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께서 잘 분석하시고 정리하셔서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다시 생각나게 하시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성경을 깊이 그리고 넓게 묵상하고 연구를 하다보면, KJV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그분의 뜻과 마음, 그리고 진리 등을 바르게 알 수 있도록 해 주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와 넓이를 두루뭉술하게 알고서 그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에게는 하늘의 보화가 그렇게 밖에 주어지지 않으니, '찾는 자가 찾을 것이라'는 말씀이 당연히 적용되고 있네요. 한국 사람들이 바르고 정확한 성경, KJV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으며 그것들에 합당하게 삶을 영위하는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2011-08-12 17:32:30 | 신대준
마태복음 4장(누가복음 4장, 마가복음 1장)에는 주 예수님께서 친히 시험을 받으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 째는 주님께서 메시아로 오신 분이심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의 3장에서 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자,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공표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따라서 마귀는 그분을 메시아의 길에서 실족시키고자 주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두 번째 는 히브리서 2:18과 4:15에서 밝히고 있듯이 연약함을 갖고 있는 믿는 이들을 시험에서 능히 구조하시는 구주(救主)가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조하실 수 있느니라"(히 2:18) "우리에게 계시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히 4:15)   따라서 마귀의 목적은 시험을 통하여 주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험을 이기지 못한 자는 다른 이를 시험에서 능히 구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 공관복음서에 기술된 기사를 살펴볼 때, 주님은 40일 낮과 밤을 금식하시며 온갖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변에 야생 짐승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를 가진 인성 안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받으신 시험은 어떠한 시험이며 얼마나 많은 시험을 받으셨을까요? 히브리서 4:15는 이 시험의 범주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in all points tempted like as we are)"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40일 동안의 시험에서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을 갖고 온갖 시험을 다 받으셨습니다. 곧, 죄의 본성을 입고 태어난 자들이 연약함 가운데 받게 될 모든 시험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겪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받는 시험 가운데 주님이 몸소 겪지 않은 시험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살과 피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우리와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긍휼이 많은 대제사장이 되시는 이유는 우리와 똑같은 영과 혼과 몸으로 시험을 받으셨고 그 시험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왜 KJV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가?"에 대한 믿음의 증거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4:15에 대한 역본들의 차이를 보겠습니다.   KJV : For we have not an high priest which cannot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 our infirmities; but was in all points tempted like as we are, yet without sin.   RSV : For we have not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in every respect has been tempted as we are, yet without sin.   NIV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 yet was without sin.   NASB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has been tempted in all things as {we are, yet} without sin.   NKJB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as in all points tempted as we are, yet without sin.   KJV과 현대 역본 사이의 차이점은 "몸소 느끼다"라는 부분에 있습니다. KJV는 이 부분을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로 번역한데 비하여, New KJV를 포함한 모든 현대역본들은 한결같이 "sympathize wit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헬라어 원어는 "sumpatheo"로서 "with"+"passion"의 합성어임). 영어로 "sympathize"는 "공감하다", "위로하다", "동정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KJV가 왜"sympathize with"로 번역하지 않고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로 번역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왜 KJV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분께서 인성 안에서 갖고 계신 연약함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와 동일하게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때로는 굶주리셨고, 목마르셨으며, 여행길에 지치셨으며, 시험을 당하셨습니다(눅 4:2). 때로는 분노를 나타내셨으며,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눅 7:34),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잠을 주무셨으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때로는 슬퍼하시고, 때로는 아파하시고, 때로는 기뻐하시고, 때로는 즐거워하시며, 죄인들 가운데서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시고 그들과 같이 잡수시고 그들의 연약함의 감정을 세밀히 느끼시고 그들의 어리석음과 약함과 어둠에 갇힌 모습을 불쌍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인성을 입고 살과 피에 참여하시면서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의 감정을 가지셨지만, 그분은 본성에서 우리와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벧전 2:22).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잘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께서는 본성 안에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연약함을 가지셨지만, 시험이 올 때 죄의 본성이 반응을 하여 그 시험에 굴복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비록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가지셨지만 그분 안에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주님은 시험에 대하여 내부에서 반응하여 죄를 범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본성적으로 외부에서 오는 시험만 겪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 라고 번역하는 것이 주님의 본성과 주님이 어떻게 시험을 받으셨는지를 나타내는 바른 번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역본들처럼 "sumpatheo"를 "공감하다(sympathize)"로 번역하는 것은 우리 주님을 마치 우리의 연약함의 모든 감정을 하나하나 시험을 받는 가운데 직접 몸으로 체험하신 분이 아니라, 동정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바라만 보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혹 누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이나 자녀가 심한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면, 차라리 자신이 대신 고통을 당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타까운 마음도 실제로 동일한 질병으로 아파보지 않았다면, 그 환자의 아픔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가 없으며, 그 환자와 고통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역본은 주님을 단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거나 공감하시는 분으로 만들어서 주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을 보다 객관적인 사실로 약화시켰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분의 죄 없으심을 보여주는 더 정확한 번역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 가운데 외적으로 시험을 받으신 분으로 묘사하는 "touched with the feeling of" 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외면한 채 섬김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친히 인성 안에서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으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힘들고 약하고 어려울 때 팔짱을 끼고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이 땅에 계실 때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셨기 때문에 어떠한 시험에서도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며 우리를 능히 구원해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오늘날 믿는 이는 시험이 임할 때, 그 시험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이 인성을 입으시고 2000년 전에 겪으시고 승리하신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신약의 믿는 이가 겪어야 할 모든 시험에 대한 피할 길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자상한 분이신가요! 그분의 사랑은 얼마나 큰지요! 그분은 참으로 긍휼이 많고 신실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0:4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8-12 15:17:36 | 임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