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12108개
아는 동생이 제게 역대하 22장 2절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대하 22:2) -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 역시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더라.       대하 22장 2절에서는 아사시야가 통치할 때의 나이가 사십이 세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대하 21장 20절을 보면 여호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하 21장:20) - 여호람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다가 원하는 자가 없이 떠났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들의 돌무덤에 두지는 아니하였더라.     그런데 여호람은 아하시야의 아버지입니다.     (대하 22:1) -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여호람을 대신하여 그의 막내아들 아하시야를 왕으로 삼았더라.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이른 사람들의 무리가 그보다 나이가 많은 자들을 다 죽였더라. 이처럼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통치하니라.     한마디로, 여호람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는 나이가 삼십이 세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그럼 사십 세일 때 통치를 그만뒀겠군요.   그런데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그의 뒤를 이어받았는데 그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의 나이는 사십이 세였습니다. 여호람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여호람보다 두 살이 많습니다.(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열왕기하 8장에도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에 대해 나옵니다.     (왕하 8:25-26)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이십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하니라.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                      의 어머니의 이름은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더라.     왕하 8장 25-26절은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의 나이가 이십이 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여호람의 아들이고요.   대하 22장 1-2절에 보면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은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목사님께 여쭤보니   '하나님이 성경을 완전하게 주셨는데 사람들이 옮겨 적으면서 실수가 있어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만으로 온 세상과 땅과 하늘, 바다를 지으시고 온갖 동식물을 만드신 분께서, 빛과 어두움과 모든 것을 만드신 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할 능력이 없으시다는 건 전 믿지 못하겠습니다.       (시 12:6-7)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게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마 24:35)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5: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       (창 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저는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혼이 구원받고 그 안에 성령님이 항상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셨고, 그 보존된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는 분이시니까요.     아는 동생이 이것때문에 고민에 빠졌는데,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안타깝네요. 공부 좀 할걸 하고 요즘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 성경 실력으로는 이 구절이 왜 이렇게 나와 있는지, 그 연유를 알기 어려웠습니다.   혹시 대하 22:2와 왕하 8장 26절이 왜 차이가 나는지 아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주 왔던것도 아니고 가끔 와서 이렇게 질문하니 죄송스럽네요. 한 줄도 좋고 양이 많아도 좋으니, 이것에 대해 아는 분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알려주세요. 그 동생 신앙이 흔들렸었다고 하네요. 도와주고 싶은데 저는 능력이 안 돼서···. 전 읽어도 이게 왜 이렇게 적혀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4: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12 12:15:01 | 조두현
저번주에 일이 있어서 대구에 갔습니다. 회사가 끝나고 기차를 타고 대구로 향했지요. 회사에서 끝나고 바로 갔기 때문에 무거워서 노트북을 안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 정도 자고나니까 잠도 안 오더군요. 머릿속에선 막 글쓰고 싶은 거 생각났고요.   대구역에 도착했는데 기차가 연착해서 11시 27분이었습니다. 화장실에 갔다오면 늦을 것 같아서 안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화장실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멀지 않아서 그냥 갔다왔지요.   그리고 그 후에 물어물어 재빨리 지하철을 타려고 했습니다. 가운데 환승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재빨리 내려왔는데 문이 닫히고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면서 열차 시간표를 보니 다음에 오는 열차가 막차더군요... 갈아타야 하는데 이게 막차라니...   아까 화장실을 안 갔으면 탈 수 있었을텐데...(5초만 빨라도 탔을 거에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마지막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이랑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옆 의자에 앉아 계셔서 말을 걸었는데, 알고보니 이 동네 사시더군요(···).   이러니 저러니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반월당 역에 이르렀습니다. 대구역에서 반월당역은 두 역밖에 안 걸려요. 어쨌든 막차니 여기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타기 위해 역무원에게 택시타기 좋은 출구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로 나가려는데, 반월당 역은 정말 크더군요. 진짜 동대문역사공원이나 그런 데 비견될 정도로 크더군요. 거기 상점 엄청 많아요. 깜짝 놀랐어요. 대구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고···.       원래 14, 15번 출구로 나가라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다른 출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뭐, 택시는 타면 다 똑같으니까요.   그분은 택시를 따로 타시려고 했던 것 같은데, 가는 방향이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같이 갔으면 하고 바랐죠.   그래서 택시를 같이 탔습니다.   택시 기사분과, 또 뒷자리의 그분과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분은 정말 좋은 분인데,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주변도 없고 또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라(훈련 부족 · 준비 부족)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킹제임스 흠정역 2010 캘린더를 꺼냈습니다. 왠지 평소에 만지는 것보다 큰 느낌입니다. 손을 비벼봐서 다른 개인적인 카드와 섞이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그걸 드렸습니다.   “이게 뭐에요?”   “명함같은 거에요.”   사실 저에게는 명함이 없지요. 아직 명함 나올만한 직장에 못 들어가서요···. 지금 있는곳은 인턴이고요.   뭐 사실 킵바이블에 자주 오는것은 아니지만, 간단히 줄 수 있으면서도 복음에 대해서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해 전할 수 있는 게 제가 가진 것 중에서는 킹제임스 흠정역 2010 캘린더였어요.   그분이 차비를 5,000 원이나 주시고 내리셨어요. 많이 주셔서 저는 거의 얻어탄 것이 되었지요.   이름도 모르지만 그때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재미도 있었고요.       킹제임스 흠정역 2010년 캘린더를 한번 만들고 그 이후에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 사람들이 받은 양만큼 제대로 나눠주지 못했기 때문 같습니다. 하긴 뭐 저는 잔뜩 받아놓고 집에 많이 쌓여있지요(···).   그래도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알릴 수 있는 이런 캘린더는 만들어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줄 수 있고, 크기도 작으니까요. 지갑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기도 편합니다. 내년이 2012년이니 미리 만들어두면 미리 나눠주기도 편하겠군요. 사실 캘린더가 1년이 지나면 캘린더의 가치는 상실하니까요.   그렇게 많이 나눠주진 못했지만, 명함 크기의 흠정역 캘린더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2011-09-12 10:49:06 | 조두현
안녕하세요? 400주년 기념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해 보면 좋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미 공개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마태복음, 로마서, 요한계시록 파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2단으로 편집한 파일을 올립니다. 시간이 날 때 인쇄해서 둘을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1-09-09 13:54:58 | 관리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을 보니..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젠 학생이 동성애적 성적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상담을 해도 함부로 바로잡으려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격려하고 용기를 내라고 응원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제2장 1절 6조 학생은...........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② 학생은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설하는 행위나 모욕,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 4절 제13조 ① 학생은 ..........., 성적지향ㆍ성정체성 등의 개인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7절 ②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및 학교의 장은 .....성소수자 학생......,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사유로 권리 실현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배려하는 데에 우선적으로 예산 등의 자원을 배정하여야 한다.   ----- 조례안의 의도는 명확한 것 같네요.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소수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항목에 저촉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바로잡아야 할 것을 괜찮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 않는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09 10:20:20 | 박종철
침례회 출판사에서 아주 좋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책의 제목은 '침례교 신학 논쟁: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월터 셔든이고 역자는 김용복과 김태식입니다.   제1장침례교의 기원 논쟁: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2장선교 논쟁: 이방인 선교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3장흑인 논쟁: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4장교단 논쟁 : 교회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5장신학 논쟁 : 교리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6장창세기 논쟁: 성경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7장근본주의 대 온건주의 논쟁최근 남침례교 총회의 교권 투쟁   결론: 침례교 논쟁을 통해 배운 교훈들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침례 교인(Baptist)입니다. 침례교는 장로교나 감리교 등과 달리 인간 창시자도 없고 교리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그래서 침례교 안에는 칼빈주의자도 있고 세대주의자도 있습니다(물론 후자가 대부분임). 침례교는 획일적이지 않고 모두가 자기 양심에 따라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을 지고의 선으로 여깁니다. 이러다 보니 이단 교리나 극단적 교리도 가끔씩 나옵니다(국내에서도 과거에 극단적인 교리들을 편 교회들의 상당수가 침례교회였음. 김기동의 베레아 등).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침례교회가 형성되면서 생긴 여러 가지 갈등에 대한 것입니다. 침례교인들이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들 내부의 중요 갈등들을 다루는 것은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여기에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면에서 치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솔직 담백하게 다루는 모습이 바로 성도들의 바른 자세라고 믿습니다.   랜드마키즘(Landmarkism,지계석주의)   침례교인들 중에는 랜드마키즘(지계석주의 혹은 지계표주의)이라는 특정 교리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랜드마크는 성경에서 지계표로 번역됨). 이것은 한 마디로 "침례교회만, 그것도 미국식 독립침례교회만 교회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장로교나 감리교 등은 실제로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 때부터 이미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우리는 오순절 날에 교회가 형성되었다고 믿습니다). 더 극단적인 이들은 침례자 요한(John the Baptist)이 침례교회의 창시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장로교, 감리교 등의 개신교회는 천주교회에서 갈라져나온 창녀라고 주장합니다(지금은 고인이 된 잭 하일스 목사 등의 주장).   또한 예수님의 몸인 교회 즉 전 우주적인 교회를 무시하고 땅에 있는 지역 교회만 교회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지역 교회를 통해서만 이루어져 한다고 주장합니다(성경 번역 및 출판, 신학교, 대안 학교, 문서 사역 등 거의 모든 일).   이런 구조 속에서 믿음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교회의 성도들은 극단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매우 배타적이 됩니다. '우리 교회만 바른 교회'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교만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같이 믿음 생활하다가 무슨 이유로든 그 교회를 떠나는 사람을 향해 '구원받지 못한 자'라는 비난을 합니다.  국내에도 구원파라는 침례 교파의 경우 공공연히 자기들만 주님께 붙은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회를 떠나면 자동으로 구원 받지 못한 자가 됩니다. 이러다 보니 교회에서 심한 갈등이 형성됩니다. 교회에 남느냐, 떠나느냐로 큰 갈등이 빚어집니다.    미국의 경우 이보다 좀 더 극단적인 자들은 Baptist bride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자기들만 예수님의 신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만 휴거가 되겠지요.  그러므로 다른 데서 성경적인 침례를 받았어도 그 교회의 회원이 되려면 반드시 그 교회에서 다시 침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또한 이런 교회에서는 많은 경우 목사가 심한 독재를 합니다. 은밀하게 독재하는 목사도 있고 드러내놓고 독재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물론 후자가 더 많지만 이렇든 저렇든 독재는 주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잘못된 교회관 즉 랜드마키즘에서 비롯됩니다.   랜드마키즘의 에러는 다음의 글에 자세히 쉽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랜드마키즘의 에러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lochurch/landmark.htm   이번에 소개하는 이 책의 4장은 이 문제의 배경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남부 지방에는 랜드마키즘 교리가 상당히 강합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에 파송되어 온 독립침례교회의 미국 선교사들은 대부분 이 교리를 강하게 가르쳐 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초창기 침례교회, 구원파 교회 그리고 최근에 형성된 근본주의 독립침례교회들 중에 몇몇 교회가 이 교리를 강하게 지지합니다.   이것은 개인 양심의 문제이므로 제가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로 인해 많은 사람의 영혼이 피폐하게 되므로 경고를 줄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4장을 PDF 파일로 올립니다.   1장도 대단히 중요하므로 꼭 이 책을 요단출판사에서 구입해서 보기 바랍니다.   교회도 실수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우리 교회는 지금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우리만 교회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교회에 다니면 빨리 그런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목사와 성도들이 "우리 교회는 무엇이 부족한가?"를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교회는 부족합니다. 죄 투성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에서 대리 만족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이 다 걸어 다니는 교회요,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샬롬.
2011-09-08 13:49:08 | 관리자
사람들이 만약 나에게 종교와 복음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해 줄 것이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애초에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 행위를 하는   그 사람 자신이 수없이 속습니다.   왜냐고요? 종교란 그것이 곧 사람 자신이 만든 것이므로   오직 종교 행위를 하는   자신의 입맛을 맞추어 주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자신은   자신 속의 깊은 곳에 사는 자신의 영혼의 눈이   점점 멀어가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계속 그 행위를 하게 되는 겁니다..(벧전2:19b)   종교 행위를 하면 할 수록   사람 자신의 본연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마치 문둥병이 발생할 때 환자가 병의 진행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 병이 온 몸을 잠식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겁니다.(마7:13)   사람들은 오직 자기 눈에 편해 보이는 것만 찾기 때문입니다.   이 종교란 것은 이 땅위에 살아 숨쉬는 이 동안만 만족을 줄 뿐입니다.(고후4:18)   그런데 사람의 행위는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다 맞추지 못합니다.(벧전1:18)   결국 종교를 택하는 자에게는 불지옥만이 기다릴 뿐입니다.(사5:14; 계21:8)"       "그러나 복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점차적으로 한 사람이 스스로 거짓말에 속고 있었다는 것을   늘 상기시켜 줍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될때마다 그의 영혼은 점차적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이르겠지요. 하지만 그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일입니다.(욥5:18)   사람 자신이   결코 자기 자신의 기준조차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서 돌이켜 나오는 것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다는 아닙니다.   그 사람을 부끄럽게 했던 모든 추악한 모습들을   가려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 자신은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조차도 만족시킬 수 없는,   가지고 있는 의조차도 더러운 누더기일 뿐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사64:6)   따라서 유일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기준조차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롬3:10, 23)   이런 사람이란 존재를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해 두셨습니다.(요19:30)   이 해결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1:14)   하나님 자신이 우리 인간과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요1:14)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낮아지사(빌2:8)   하나님을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거부하고(시10:4; 14:1)   모든 불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어가고 있던(엡2:1-2) 우리를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귀한 피를 흘려주사 죽으셨으며   묻히시고, 성경 기록대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고전15:3-4)   이것이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사람의 행위와 행실에 기초를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신 공로에 기초를 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자기를 자랑할 수 없게 합니다.(고전1:29)"   그리고 이에 덧붙인다면...   "따라서 여러분은 지금 이 복음의 복을 누리실지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고후6:2)   바로 지금 말입니다.(히3:13)   여러분이 직접 그 진실을 확실하게 대면하게 될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잠27:1)   그게 1초 뒤가 되었든, 1분 뒤가 되었든, 1시간 뒤가 되었든, 1일 후가 되었든, 1개월 뒤가 되었든, 1년 뒤가 되었든.... 여러분의 숨이 언제 끊어질지는 여러분 자신도 모릅니다.(약4:14; 히9:27)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찾고 신뢰하시며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그 존재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켜 나오시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여러분 자신의 영원한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시고   오직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마9:13; 롬10:9-10)   그 순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엡2:8-9)   하늘나라 행의 영원한 티켓, 즉 영존하는 생명을 받으신 것입니다.(요3:16; 5:24)   여러분을 지옥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길 바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롬1:1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롬5:8)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8: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07 20:13:26 | 소범준
여기의 천사는 하늘에 있는 천사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유대인들의 회당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회당은 원래 집회를 뜻하지만 교회와 비슷하게 후에는 유대인들이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 집회를 갖는 장소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회당은 대개 높은 곳에 지었으며 건물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서쪽 편은 율법서가 담긴 궤가 있으므로 신전이라 불렸고 동쪽 편은 사람이 모이므로 회당의 몸이라 불렸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앉았고 장로들은 사람들을 마주 보고 반대편에 앉았습니다. 장로들이 앉는 곳은 좀 더 귀한 곳으로 생각되어 회당의 높은 자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마23:6). 여인들은 격자창 등으로 구분된 발코니에 앉았습니다.   모든 회당에는 직분을 가진 열 사람이 있었고 그 중에서 회당의 치리자는 모든 것을 주관하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회당의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회중의 사역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기도와 말씀 선포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목사들은 이런 연유로 천사로 불린 것으로 보입니다(계2:3).
2011-09-05 14:08:0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전자책(e-book 혹은 ebook)이 유행하고 있슨데 무료 콘텐츠 찾기가 쉽지 않지요?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에 가면 다양한 전자책을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들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golibrary.go.kr/   좋은 것들이 많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샬롬.
2011-09-05 13:44:1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