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저는 킵바이블을 출근하듯이 들러는 형제입니다.받은 은혜와 진리의 말씀에 대한 마음을 나누려 여러번 로그인을 했지만 익스플러 에러로 지금에야 짧은 글을 남깁니다.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제 얘기를 조금 하자면...2000년대 초반 말/보 학회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었고믿고만 있었던 완전한 성경에 대한 영감과 보존을 확신하게 되었지요.그 당시 그 학회에서 출간한 성경과 럭크만 주석 등수십권을 구입하여 나름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엄청 충격이었지요.그래서 주위의 몇분들에게 나눴지만 반응은~~~~썰렁~~ 아시죠?그러고는 저에게도 이 성경의 문제는 잠시 덮였습니다.(저의 성향은 저돌적이지는 않지만 맞다고 확인되면이러 저러한 방법으로 나누고 끌어들이는 성격입니다.그런데 그 때의 반응을 보며 다른 이들이 나와 같지는 않구나라고 생각하며 한 걸음 물러섰지요.사실 그전에 다른 사안으로 어려움이 있었던 차라 같은 방법으로 행하지 않기로 했지요)그러고 2004년 쯤 다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 홈페이지를 통해킹제임스 흠정역을 알게 되었고 새로이 킹제임스 성경 한글판을 읽게 되었습니다.결론을 말씀드리자면저의 가정은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부르심을 따라 타국에 있습니다.진리의 말씀이 간절하고 이것으로만 일할 수 있음을 고백하지요.2슬람의 사람들은 그들의 신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지만거짓이라는 것이 맹종이라는 것이 행위라는 것이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멀어지게 하는지 알게 됩니다.(자신들의 경전은 변질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성경은 변질되었다고 주장하지요.이 말에 반박할 신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입니다.)이로 인해 더욱 하나님의 말씀, 킹제임스 성경이 완전하게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믿게 됩니다.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순간의 언변이나 행위가 아니라말씀을 통해 알리고 이해시키고 삶을 나누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지난 해 다시 이 땅으로 오면서 아내와 두 아이에게킹제임스 흠정역 작은 성경을 색깔별로 선물했습니다.아내는 빨간색, 큰 아이는 파란색, 작은 아이는 검정색 작은 성경을 선택했습니다.저는 그전에 있던 스터비 바이블을 잃어 버리고 다시 400주년 기념판으로 구입했습니다.저희 아이들은 아빠가 말하면 믿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진짜 성경이라고 믿습니다.)아내는 인정하지만 여러가지 것들을 묻고 하나 하나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얼마나 감사하지요.한 가정안에 발견된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드리고 그분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은.....아무쪼록 귀 사이트를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눈을 뜨게 되기를 고대하고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온전하게 자라기를 소망합니다.하시는 사역이 너무나 귀한 사역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둘째가 그린 킹제임스 성경(웃고 있는 그 만의 자신감)추신:바이블 빌리버, 형제,자매 여러분!어제 옆 도시(지난 4년 동안 저희의 고향 도시였지요.)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100여명이 죽고 200여명의 다쳤습니다. 저희들이 사는 도시도 상황은 일반입니다.이런 일들이 일상이지만 그때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을 고백하고하나님께서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죽음을 두려워하고 원수 갚음으로 분노하고 스스로 죽고 마는 이 땅의 인생들을 향한 사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 사람에게 한 마을에 알려지기를 위해 손모아 주시를 바랍니다.장차 허락하실때에 킹제임스 성경으로 모이는 공동체를 꿈꿉니다.길어졌네요. 기회가 되면 다시 뵙지요.감사합니다.
2013-01-11 17:52:23 | 허충식
KJV의 우수성은 여러 가지 이유와 증거로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이유와 증거 중에서도 사본을 근거로 설명하여 주시니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3-01-11 16:06:47 | 양희석
저는 검은 머리에서 흰머리카락 하나를 찾았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암세포를 발견했기 때문에 이 소란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증거들을 보여주면서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이 얼마나 거짓되고 허황되었는지 알려주어도
시내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물건'인지 주장하여도,
돌아오는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성경대로 삽니까?"
"상관없어 성경이 이렇던 저렇던 나랑은 상관이 없으니까."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이게 있던 말던 무슨 상관입니까? 나만 잘 믿고 구원받으면 되지."
극소수의 양심있고 깨어있는 신앙인만 이 문제(성경)에 대해서 반응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증거들을 KJV 바이블 빌리버 형제님들에게 알려드리는 이유는
KJV을 본다고 해서 무조건 이단 취급 받는 한국의 불모지 같은 환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시고 진리를 수호하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01-11 13:20:51 | 안정환
시내사본을 살펴봅시다.
시내사본은 시작부터 대박입니다.
저는 이것을 보는 순간 입에서 a railing accusation이 나왔습니다(나오면 안되는데... 그래도 꾹 참아야 하는데...).
시내사본의 발견자 디센로르프 비평본문
ΚΑΤΑ ΜΑΡΚΟΝ 1:1 Greek NT: Tischendorf 8th Ed. with Diacritics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웨스트코트 호르트 비평본문
ΚΑΤΑ ΜΑΡΚΟΝ 1:1 Greek NT: Westcott/Hort with Diacritics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υ Χριστοῦ
1550년 스테파누스 TR
ΚΑΤΑ ΜΑΡΚΟΝ 1:1 Greek NT: Stephanus Textus Receptus (1550, with accents)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시내사본은 마가복음 1장 1절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누락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십시오. 윗부분에 정직한 필사가가 하나님의 아들을 추가해서 써놓았습니다.
저러한 축약형태를 Nomina sacra라고 합니다.
개역을 펴보시면 마가복음 1장 1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사본에는 없음이라고 써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본다면 마가복음 1장 1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사본에는 없음을 꼭 각주로 달아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사본에 추가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써져있는 이 불편한 진실을 왜 현대역본과 신학자들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까요?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 전에 페이지입니다. 마가복음15:47을 본래 시내사본 필사자가 빼먹었기 때문에 아래 틈에 추가해놓은 것입니다. 친절하게 화살표 표시를 한 것이 보이시나요? 그렇다면 마가복음15:47도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이라고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시내사본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책으로만 본문비평을 공부하였지 실제 사본은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오기와 누락이 많은 시내사본을 어떻게 성경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16장 6절을 보시면
ΚΑΤΑ ΜΑΡΚΟΝ 16:6 Greek NT: Stephanus Textus Receptus (1550, with accents)ὁ δὲ λέγει αὐταῖς Μὴ ἐκθαμβεῖσθε· Ἰησοῦν ζητεῖτε τὸν Ναζαρηνὸν τὸν ἐσταυρωμένον· ἠγέρθη οὐκ ἔστιν ὧδε· ἴδε ὁ τόπος ὅπου ἔθηκαν αὐτόν
비평본문(W/H)과 TR(KJV)이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런데 시내사본만 τὸν Ναζαρηνὸν(그 나사렛사람)이 빠져있습니다.
이것은 본문비평에서는 필사자의 실수(인간적인 착오)라고 보여집니다. 글자 하나를 가지고도 티격태격하는 학자들이 이런 사본의 진실함과 순수함, 정결함을 믿는 것은 정말 숭고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냄새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잉크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8절의 마지막은 중간도 넘지 않은채 끝나는 것도 이상할 뿐더러
그 부분까지 채워버리면서 추가적인 장식을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두려워했다 -------------------
[->->->->->->->->->->->->->->->
본문이 끝난 다음에 '-------------------' 이렇게 채우는 패턴은
알레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끝은 어떨까요?
밋밋합니다. 거기다가 글시 크기를 요리조리 조정하면서 마지막 끝을 맞추어놓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있는 마가복음의 과도한 데코레이션은 무엇을 뜻하는지 감이 오시나요?
마가복음1장 1절과 마가복음 15장 47절을 후에 필사자들이 추가해서 넣은 것을 생각하시면, 마가복음 16장9절-20절을 후에 정의로운 필사가가 추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마치 현대역본들처럼)
그래서 원 필사자가 아닌 후대의 다른 사람이 마가복음 16장9절-20절이 추가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데코레이션을 한 것입니다.
마지막 냄새는 바로 마가복음 16장과 누가복음1장의 직접적인 비교입니다.
1.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정상적인 글씨체보다 더 위아래로 길쭉합니다.
2.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누가복음이 구분없이 완전히 붙여쓰기 한데에 반해서 유세비우스 캐논에 맞추어서 공백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3. 정상적인 시내 사본의 글씨로 가정해서 다시 써본다면 마가복음16:9-20절은 바티칸 사본처럼 다 쓰여 들어갈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필사자들은 성경 필사만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정도 조정은 식은죽 먹기라고 보여집니다.
시내사본 원본
시내사본 가정본 마가복음 16장 2절 ~ 16장 20절(1894 Scrivener's Textus Receptus기준)
성서 엉셜체임에도 불구하고, 커시브(소문자)로 작업함에 대해서는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13-01-11 12:38:11 | 안정환
먼저 바티칸사본(B)를 살펴봅시다. 어머나! 없어요. 막16:9-20이 없어요!
저명한 학자들도 이런 사진을 꺼내보이면서 마가복음 뒷부분은 없습니다. 할 것 입니다.
눈먼 양으로 사시고 싶다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아래 페이지를 보시는 순간 그 저명한 학자들이 위선자들로 보이실테니깐요...
캐톨릭도 예수님을 믿지 않나요? 왜 스스로 말씀의 수호자라는 바티칸까지 이러한 일에 가담을 했을까요?
로마 캐톨릭은 변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 클레멘트가 수호하던 구 캐톨릭이 아닙니다.
성모 마리아를 신성시하는 교리를 성경 위에 세우고, 연옥 교리를 세워서 구원이 사실상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가능하도록 열어놓은 것입니다. 면죄부를 기억해보세요. 헌금함에 돈을 넣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로마 캐톨릭은 교황이 새로운 구원(예수님 없는)의 길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이가 죽어도 상관없던 여성은 KJV 바이블 빌리버인가요? 아니면 로마 캐톨릭인가요?
완전한 복사본을 찾아봅시다.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3단짜리 사본에서 3단이 완전히 비어있습니다. 유독 마가복음에서만 이렇게 공백을 심하게 남겨놓았습니다.
그래서 남은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크기와 배열을 감안해서 추가해 넣어보았습니다.
원래 필사자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보이십니까? 마가복음 16:9-20절을 추가해서 넣으면 2줄이 초과되는 상태에서 딱 맞습니다. 이것은 컴퓨터 글씨라서 그렇지만 만약 실제 필사라면 크기를 조절해서 딱 맞출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재구성한 마가복음처럼 결말표시가 텍스트를 넘어선 것이 존재할까요?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을 보시겠습니다.
빌립보서의 마지막 부분을 보겠습니다.
가정했던 마가복음 16:9-20장이 모두 채워져있어서 마지막 subscription을 아래 여백에 채우는 것은 다른 곳에도 존재합니다. 저는 아무리 봐도 마가복음을 필사한 사람이 무언가 음모가 있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2013-01-11 12:00:07 | 안정환
KJV 바이블 빌리버 형제, 여러분, 한국에서 KJV을 선택하신 것은 사실은 고생길, 좁은 문을 선택하신 겁니다.
지혜롭게 행동을 하셔야 합니다. 더욱 정확하고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도록 해야합니다.
'믿으니라 믿으라.'를 넘어서서 '믿으니까 보여주시더라.'라는 주장을 해야 합니다.
현대역본이고 KJV이고 성경자체를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가장 오래된 몇몇 사본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신약에 이 부분은 2군데 존재합니다.
1. 마가복음 16:9-20
2. 요한복음 7:53-8:11(간음한 여인)
성경의 존재 이유인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증거하는 마가복음 16:9-20을 삭제하고자 하는 근거는 딱 2가지가 있습니다.
바티칸 사본(B)와 시내 사본(알레프) - 현대 본문비평가들이 신성시하는 이 가장 오래된 (몇몇) 2개의 사본입니다.
그러나 B와 알레프를 제외한 수많은 필사본에는 마가복음 16:9-20이 있습니다.
이제 신학교에서도 학생이 '마가복음 16:9-20은 원래의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면 근본주의자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는 학생에게 이렇게 받아칩니다. "그럼 너 성경에 나온대로 독을 마시고 살 수 있어?!"
그동안 우리 성도들은 눈먼 양처럼 그저 그러면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우리도 눈뜨고 사본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에 감사합니다.
말씀보존학회 때문에 한국교회에서는 'ㅋ' 꺼내는 것도 홍석천의 커밍아웃보다 어려운 이 한국 현실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KJV을 증거할 수 있는 증거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신성시하는 B와 알렙입니다.
2013-01-11 11:45:45 | 안정환
4세기 바티칸 사본 그림이다. 바티칸사본? B사본으로 비평본문에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고 광고하고 있고
마가복음16:9-20의 삭제 근거가 B와 알렙프 아닌가?!!!그런데 눈을 뜨고 보라! 저 그림의 히브리서 1장의 시작부분의 옆의 공란(두 단락 중간)을 보자. 적혀있는 글귀는 다음과 같다."어리석은 무뢰한이여! 옛 문서를 그대로 두시오! 변개시키지 말고!"히브리서를 필사하면서, 필사자가 지 멋대로 단어를 바꿔버렸다. 그래서 이를 다음 필사자가 또 고쳤다.참고하라! 바티칸사본에는 히브리서 9장 14절까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느 필사자가 필사를 하면서 멋대로 고치지 말라고 울부짖는 소리인것이다.
우리는 바보 멍청이가 아니다. 이런 것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위선자가 아닌가?
불쌍한 신학생들은 바티칸 사본이 최고의 사본이라면서 학교에서 배우고 자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목사가 되면 TR과 킹제임스 성경이 오류가 있다면서 'ㅋ'도 꺼내는 것도 허락치 않을 것이다.
신학생이 이것을 못봤다면 그 죄가 가중되지 않을 것이나, 봤다면 그 죄가 가볍지 않은 것이다.
2013-01-11 11:24:49 | 안정환
http://codexsinaiticus.org/en/manuscript.aspx (직접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이문인 시내사본에 근거한 W/H 본문
ΚΑΤΑ ΛΟΥΚΑΝ 23:42 Greek NT: Westcott/Hort with Diacritics
καὶ ἔλεγεν Ἰησοῦ· μνήσθητι μου ὅταν ἔλθῃς εἰς τὴν βασιλείαν σου.
시내사본
καὶ ἔλεγεν Ἰησοῦ· μνήσθητι μου ὅταν ἔλθῃς ἕν τῃ βασιλείαν σου.
그리고 말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그런데! 그런데! 뒤에 수정작업이 들어간 것을 보라
디센도르프에 의해서 발견되기 전에 τᾠ을 예수님 앞에 추가했다.
시내사본 내 첨가
καὶ ἔλεγεν τᾠ Ἰησοῦ μνήσθητι μου ὅταν ἔλθῃς ἕν τῃ βασιλείαν σου.
그리고 예수께 말했다.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필자가 발견한 누가복음 내 JESUS내러티브를 통한 증명은 둘째치더라도 시내사본은 진짜 아닌 것 같지 않는가?
최소한 시내사본을 본 사람은 이 구절이 엄청난 문제와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추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본을 믿으란 말인가?! 이렇게 수정이 가해지고 결함이 있는 본문을 믿으란 말인가?
코덱스A는 TR과 동일한 본문을 가짐으로서 TR을 완전히 증거해주고 있다.
ΚΑΤΑ ΛΟΥΚΑΝ 23:42 Greek NT: Stephanus Textus Receptus (1550, with accents)
καὶ ἔλεγεν τᾠ Ἰησοῦ μνήσθητί μου Κύριε, ὅταν ἔλθῃς ἕν τῃ βασιλείᾳ σου
W/H는 시내사본보다 더 나아가서 특이한 이문을 만들어냈다.
W/H : εἰς τὴν // TR, A, 베자 : ἕν τῃ
W/H 판타지 – 누가복음 23장 42절 성경의 진화과정
W/H 비평본문
1. καὶ ἔλεγεν Ἰησοῦ· μνήσθητι μου ὅταν ἔλθῃς εἰς τὴν βασιλείαν σου.
시내사본의 본래 오리지날 텍스트(W/H는 이것이 가장 순수한 본문이라 주장한다.)
2. καὶ ἔλεγεν Ἰησοῦ· μνήσθητι μου ὅταν ἔλθῃς ἕν τῃ βασιλείαν σου.
시내사본 내 첨가
3. καὶ ἔλεγεν τᾠ Ἰησοῦ μνήσθητι μου ὅταν ἔλθῃς ἕν τῃ βασιλείαν σου.
최종적인 진화의 텍스트(W/H의 주장대로라면 이것은 3 세기 말에 Lucian에 의해 개정된 것으로서 (후기의 것이라고 간주되어) 부패한 본문이다.)
4. καὶ ἔλεγεν τᾠ Ἰησοῦ μνήσθητί μου Κύριε, ὅταν ἔλθῃς ἕν τῃ βασιλείᾳ σο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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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 믿는 사람의 텍스트
누가의 손에 쓰인 순간부터 지금까지
ΚΑΤΑ ΛΟΥΚΑΝ 23:42 Greek NT: Stephanus Textus Receptus (1550, with accents)
καὶ ἔλεγεν τᾠ Ἰησοῦ μνήσθητί μου Κύριε, ὅταν ἔλθῃς ἕν τῃ βασιλείᾳ σου
그리고 예수께 말했다 “나를 기억하소서, 주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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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단
양자론(역동적 단일신론; dynamistischer Monarchianismus)
양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부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인정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원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예수님을 양자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양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처음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비로소 성령을 통해서 신적인 요소가 부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때부터 여러 가지 신적인 기적과 능력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한 분이시며, 예수님은 후에 성령의 통해서 하나님과 역동적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양자론자들은 십자가에 예수님이 죽을 때에 그 성령의 능력이 빠져나가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인간으로 죽었다고 설명합니다.
십자가에 죽는 예수님은 성자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였다는 이야기이지요. 이러한 초대교회 이단을 살펴보았을 때에 시내사본은 양자론을 지지하는 텍스트입니다.
2013-01-10 11:15:42 | 안정환
정말 갈 데까지 가는군요.
신성모독은 말할 것도 없고, 제임스 왕도 열 좀 받겠네요....-_-;
2013-01-08 11:30:17 | 김재욱
저자의 의도야 명확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그저 세상의 좋은 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신성모독 행위로 보입니다.
2013-01-07 19:28:34 | 박상완
저는 이 사실에 대하여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 드립니다. 우선 부록의 성경지도를 수정해야하는 사건이고 신학교에서 배우는 성서고고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물론 지금까지도 천주교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관광산업에 큰 영향을 주는 일입니다. 물론 시내산의 위치 출애굽여정 등이 우리구원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우리들의 성경교육등에는 영향을 주는 사건입니다. 성경에서 배우는 사실을 천주교의 인위적인 조작으로 영향을 받았다면 빨리 극복을 해야합니다. 늘 그렇지만 극복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리고 시내산이 미디안의 라오즈산이라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이미 이러한 논쟁은 계속 있어왔더군요. 자료사진이나 내용들은 다음 홈페이지에 있고 책은 "떨기나무" 입니다. http://www.sinaimount.com
2013-01-07 17:30:01 | 계정일
저도 다운 받았어요. 감사 드립니다.
2013-01-06 14:18:26 | 윤미숙
2013년에는 '주님,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Lord, Keep Me True)라는
시와 함께 고난을 이기고 전진합시다.
고난, 꼭 오게 되어 있습니다.
쓰러져도 같이 일어나 앞으로 갑시다.
제 생일에 미국에 사시는 웨이트 박사님 사모님이 보내 준 시입니다.
남윤수 자매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PDF파일을 인쇄한 뒤 한영대역 등 성경 뒤의 흰 면에 붙이고 가끔씩 읽으세요.
작은성경은 75%로 줄이면 됩니다.
샬롬
주님,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주님, 기쁠 때나 자유로울 때나모든 것이 평안할 때나 사람들이 나를 칭송할 때에나를 진실하게 하소서.주님, 이런 복들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내가 기억하게 하시며주 예수님,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주님, 쓰라린 절망 가운데서나두통이나 상실감 혹은 실패가 내게 넘칠 때라도나를 진실하게 하소서.주님의 가슴에 더욱 기댈 수 있도록 도우시고사랑의 주님, 내가 진실하기 위해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주님, 아픔이 찾아올 때나죽음이 찾아와 사랑하던 자들을 데려갈 때에도나를 진실하게 하소서.그때에, 주님, 아 그때에 내가 주님의 힘을 내게 달라고 기도하리이다.사랑의 구원자시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주님, 다른 사람들은 진실하지 않아도 나는 진실하게 하시고내가 몇 안 되지만 신실한 자들 안에 서게 도우소서.비록 조롱 받고 갇히고 죽음이 나를 엄습해도주 예수님,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오 주님, 내가 기도하오니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매일 어떤 운명에 처할지 몰라도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나의 힘은 약하오니 주님께서 나의 견고한 버팀목이 되소서.내가 진실하기 위해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 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절대 포기하지 마라
가끔씩 그러하듯 일들이 잘못되어 갈 때힘겹게 걷고 있는 길이 늘 오르막처럼 보일 때가진 돈은 부족하고 갚을 돈은 늘어날 때웃고 싶지만 한숨만 나올 때염려가 당신을 짓누를 때필요하다면 쉬어라.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마라.
삶이란 뒤틀리고 뒤집히는 것들로 이상하게 얽혀 있다.모두가 가끔씩 배우고 있듯이 수많은 실패들도 돌고 돌므로끝까지 실패를 붙잡고 늘어졌다면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절대 포기하지 마라.걸음이 느리게 보이더라도한 번 더 시도하면 성공할지 모른다.
성공이란 실패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의심의 구름 속의 은빛 조각처럼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멀리 있어 보이지만 훨씬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니 크게 얻어맞을 때에도 싸움은 계속해라.일들이 최악일 때야말로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때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12:6-7)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24:35)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마5:18)
2013-01-05 16:41: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2013년 일사분기에 저희 출판사는 다음과 같이 3종류의 책들을 내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1. 2역본(혹은 4역본) 대조 신약 성경
흠정역/개역 혹은 흠정역/개역 , 영어 KJB/NIV(혹은 ASV)
개역성경 판권이 2011년 말로 만료되었기에
대한성서공회의 허락 없이도 이와 같은 대조 성경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열티를 내고 NIV 본문 사용을 허락받으면 NIV로 하고
허락을 못 받으면 개역성경의 모체가 된 ASV를 사용하려 합니다.
본문만 약 1300쪽이고 개역성경분석을 100쪽 부록으로 넣으면 1400쪽 정도 되어 박사성경 두께가 될 것입니다.
PDF 샘플을 보기 바랍니다.
페이지 크기는 한영대역, 스터디, 큰글자, 박사 성경과 같은 152*222mm입니다.
그런데 책의 두께가 너무 커지면 문제가 있고(가격 등)
또 굳이 영어를 넣을 필요가 없이 개역성경만 비교해도 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흠정역/개역 대조신약성경이 될 것입니다.
두께는 800쪽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가격을 15,000원 이하로 할 수 있습니다.
의견이 있으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는 후자로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2. 킹제임스 성경의 보존
Floyd Jones의 Which Version is the Wod of God?의 앞 부분과 지금까지 사이트에 올랐던 성경 보존 관련 글들 (대부분 책으로 출간되지 않은 것들)을 모아 400-450쪽 두께로 내려고 합니다.
3. 재림과 휴거 바로 알기
바로 알기 시리즈에 이 내용이 없어서 기존에 우리가 냈던 '종말은 있다'를 중심으로 다시 편집해서 출간하려고 합니다.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01-05 13:39:50 | 관리자
한 10년쯤 전에도 이미
Judith Christ of Nazareth, the Gospels of the Bible, Corrected to Reflect That Christ Was a Woman
라는 충격과 공포의 책이 출간된 적이 있었답니다.
http://www.amazon.com/exec/obidos/ISBN=0966143728
탕자의 아들이 탕자의 딸(Prodigal Daughter)로, “주의 기도”가 “Lady’s Prayer.”로..
예수님을 미혼 여성인 she로 받고 이름도 유딧으로..
다행히 그래도 저 책에 대한 독자 평점들은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세상의 오타쿠 계에도 '모에화'라는 게 있긴 합니다만, 성경의 모에화는 정말 누가 생각해 낸 건지 혀를 내두르게 되며,
성 정체성과 관련된 타락이 하나님께서 왜 그리 가증스럽게 보시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2013-01-05 07:51:52 | 김용묵
참 입에 담기도 민망한, 소위 게이바이블(동성애자를 위한 성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난 11월에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정체도 모호한 QJB 편집팀이 밝힌 이 성경의 출판배경에 의하면
저자는 하나님, 기고자는 예수 그리스도, 발행자는 제임스 여왕으로.
세상이 왜이렇게 까지 되었는지......
뉴스보기☞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51670
2013-01-05 01:17:35 | 이청원
개인적 체험적 간증이라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각자에게 필요에 맞게
주어진거라 생각이 듭니다.
김승학 박사님이 영상 속에서 직접 촬영한 실제적인 자료나 설명에 주의를 기우리는 것이 좋으리라 여겨지내요. *^^*
2013-01-03 16:05:33 | 윤대원
반갑습니다.
새해에도 변함없는 성장과 묵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갈수록 부족함을 깨달으면서도 점점 더 교만해지는 것이 사람 같습니다.
저도 가진 것에 비해 참 많은 이야기를 했고 실수도 많이 한 한 해였습니다.
아울러 사이트 운영상 불가피한 일들이 많은데 널리 양해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3-01-03 10:39:05 | 김재욱
2013-01-03 00:40:54 | 이충현
글쎄요... 개인의 신앙이니 뭐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평소 행동과 달리 하나님 이야기하면 우려도 되지만, 진정성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참가자들 옷차림이 민망하고 재미도 없어서 저는 잘 안 보는데 이번에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었나 보군요. 잠시 보니 마침 선우 모라는 원로 배우가 나무라듯이, 자신은 하나님 부처님 천주님에게 다 감사한다고 하는 걸 보니 그들 사이에서도 수상 소감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분은 우리 교회 권사님인데 요즘은 교회에서 거의 안 보이고, 몇년 전 죽은 동료 탤런트 납골당에 가서는 합장도 하시더군요.
이런 일들을 볼 때,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하나님 믿는다 안 믿는다 말은 많이 해도 다 제대로 된 성도는 아닐 것이라 봅니다. 그렇게 드러내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탓도 있겠고, 진짜 신앙심도 있겠지만, 이처럼 기독교가 욕먹는 세상에서 드러내는 일은 예전보다 더욱 심해지니 이상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세속적인 기독교가 하나의 시장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간증집회와 이른바 찬양집회, 총동원 주일 등이 그들의 수입원이 되기도 하는데,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견 연예인들에게는 황금어장일 수 있으며 젊은 사람들도 미래에는 기댈 수밖에 없는 부분이겠지요. 물론 그렇게 다니는 분들을 모두 매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증과 실제가 다른 분들도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연예인들의 이런 행동은 믿음이 연약한 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택해 무슨 영향을 미쳐도 하나님 믿고 살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주어서, 교회에서 노래하던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연예계를 희망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러브콜이 많아도 찬양만 하겠다던 가수는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더니 매니지먼트사를 끼고 몸값이 이전보다 열 배로 뛰어 초대형 교회가 아니면 부를 엄두도 못 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교회 쪽은 이제 안 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노래를 잘하게 된 것도 하나님 은혜라고 했었는데, 그걸로 출세하고 나니 세상의 법칙대로 움직이는 것이지요. 이런 일들이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될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대중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좋게 보면 본받을 부분이 아닐까요. 제가 아는 분은 교회에 다니는데, 다른 사람들하고 밥 먹을 때는 기도를 안 하면서 저랑 먹을 때는 제가 기도하니까 자기도 식사기도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전국방송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 창녀와 세리까지 사랑하고 친구가 되셨는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바리새인처럼 정죄하며 '우리는 이런데 너희는 왜 그러냐' 할 자격은 없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도 아니면서 선거 때면 교회에 가는 정치인들도 많은데 그들에게는 관대하지 않나요. 또 어떤 부적절한 일을 했어도 정치 성향만 맞으면 다 용서하고 지지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연예인이 광대라는 전통적 편견 때문에 더 혹독한 비판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부디 그들이 말뿐이 아니라 진짜 거듭난 크리스천이기를 바라고, 아직 부족해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져 가는 과정이었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도 교인도 기독교도 양극화되어 진짜와 가짜가 나뉘는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는 한 크리스천 연예인이 불신자인 스포츠 스타와 유명 승려가 여행을 하며 천주교 성당에서 대화하는 다큐멘터리를 하길래 조금 지켜보았는데,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들의 진솔해 보이는 대화의 함정 속에 크리스천들까지 마음이 풀려, 나만 옳다고 주장하면 안 되겠구나 반성(?)하게 만들고 저런 신실한 승려가 지옥 가겠나 싶어 결국 어느 신학자 말대로 정상에 오르는 길은 하나가 아닐까 헷갈리게 되겠지요.
그런 대중적 직업, 그런 만남들 속에서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는 힘듭니다. 바른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나눌 몫이 있겠느냐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세속적 교인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열심히 믿고, 다른 신앙도 인정하고, 서로 터치하지 말자는 식이지요. 시상식 때 하나님 이야기하는 사람 중 과연 몇이나 당당하게,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고 모두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회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무조건 색안경 낄 필요는 없겠지만 우려를 갖고 참 성도와 명목상의 교인을 잘 구분하여 자녀들을 가르치고 잠자는 크리스천들을 깨워야겠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고, 급속도로 이런 흐리멍덩한 복음으로 옮아가는 현상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남들도 주시하고 잘 판단해야겠지만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말씀에 비추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좀 길어졌네요. 이상 제 의견이었습니다.
형제님도 새해 하나님의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013-01-02 10:16:00 | 김재욱